2022 2022년12월4일, 누가복음 3:4-6(주의 길을 준비하며 오실 길을 곧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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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일 말씀을 기억하며, 함께 한 귀한 지체들과 이렇게 고백합시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파수꾼들을 세우셔서, 우리를 돌보아 주십니다.
우리의 말(言)을 지키시려고, [입술의 파수꾼]을 세워 주십니다.
우리의 삶을 인도해 주시기 위해서, [말씀의 파수꾼]을 세워 주십니다.
우리에게 항상 복을 주시기 위해, [축복의 파수꾼]을 세워 주십니다.
오늘은 교회력(敎會曆)으로, [대림절(待臨節) 두 번째 주일]입니다.
대림절(待臨節), 혹은 대강절(待降節)이라고 하는 이 절기(節氣)는,
11월30일과 가장 가까운 주일에 시작해서 12월24일까지의 기간입니다.
옛날 교회들에 남겨진 기록들을 살펴보면, A. D. 4세기경에
이미 교회들은 대강절(待降節)을 교회의 중요한 절기로 지키고 있었습니다.
자 ! 그렇다면 여러분 !
대림절(待臨節) 즉, 대강절(待降節)은
무엇을 기념(혹은 기억)하고, 무엇을 준비하는 절기일까요 ?!
첫째, 성탄절을 앞두고, 2천 년 전에 오신 예수님을 기억하고, 감사하며,
우리 마음과 삶의 중심에 맞아드리는 절기입니다.
둘째, 세상에 다시 오실 예수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절기입니다.
2022년 대강절(待降節, Advent, アドベント)을 맞이한 사랑하는 여러분 !
올 대강절을 보내면서, 첫 성탄절에 오신 예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며,
다시 오실 예수님을 맞을 준비를 온전히 이루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할렐루야 !
자 ! 그렇다면 여러분 !
우리가 대강절(待降節, Advent, アドベント)을 맞아,
다시 오실 예수님을 맞이할 준비를 어떻게 해야 할까요 ?!
약 2천 년 전, 예수님이 처음 세상에 오실 때,
[예수님이 오실 길을 준비했던 세례 요한]을 통해, 지금 우리가 할 일을 배우고자 합니다.
그렇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의 오실 길을 준비한 사람입니다.
본문4절. 선지자 이사야의 책에 쓴 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預言者イザヤのことばの書に書いてあるとおりである。「荒野で叫ぶ者の声がする。
『主の道を用意せよ。主の通られる道をまっすぐにせよ。』」
자 ! 세례 요한은 예수님의 오실 길을 어떻게 준비했을까요 ?!
두 주에 걸쳐,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첫째, (깊이 파인) 마음의 골짜기를 메웠습니다.
본문5절. 모든 골짜기가 메워지고 (すべての谷は埋められ、)
지난 11월17일, 사실상 현재 사우디아라비아의 실권자(實權者)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한국에 다녀갔습니다.
무함마드 왕세자는 자신의 방한(訪韓)을 미리 준비할 선발대를 보내,
자신이 방문할 모든 곳을 철저히 확인하며 준비하게 했습니다.
우선, 선발대 등을 위해, 롯데 호텔 객실을 400개나 빌렸고,
특히 자신이 머문 롯데 호텔의 스위트룸은 1박에 2200만원(230만엔)이나 했는데,
방에 비치된 모든 것을 새것으로 바꾸게 했다고 합니다.
냉장고, TV, 욕조, 에어컨, 전등, 수납장, 기타 전기제품 등등
여러분 ! 왜 모든 것을 새것으로 바꾸게 했을까요 ?!
그 이유는, 도청(盜聽) 등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왕이 어느 곳을 행차(訪問)하게 되면,
전위대(前衛隊)가 먼저 가서, 왕이 갈 길을 평탄하게 합니다.
특히, 옛날 마차를 타던 시절에는 도로 상태가 중요했습니다.
돌멩이들은 치우고, 움푹 파인 곳은 메우고,
먼지가 많은 곳에는 적당히 물을 뿌려 먼지를 잠재웠습니다.
물론입니다. 여러분 !
다시 오실 예수님을 맞이하기 위해, 우리가 가장 먼저 할 일은,
깊이 파인 [마음의 골짜기]를 메우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
[메워야 할 마음의 골짜기]는 무엇을 말할까요 ?!
성경주석 중에 유명한 [풀핏주석]은,
메워야 할 마음의 골짜기는 [신앙적(종교적) 무관심]이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 예수님은, 말씀에 무관심한 신앙인들을 이렇게 책망합니다.
마태복음11:16-17.
16.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까, 비유하건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この時代は何にたとえたらよいでしょうか。広場に座って、
ほかの子どもたちにこう呼びかけている子どもたちのようです。)
17. 이르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슬피 울어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笛を吹いてあげたのに君たちは踊らなかった。
弔いの歌を歌ってあげたのに胸をたたいて悲しまなかった。』)
예수님 당시, 유대 지방의 어린이들이 즐기는 놀이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결혼식 놀이]와 [장례식 놀이]였습니다.
아이들이 두 편으로 나뉘어서, 한쪽 편이 피리를 불면,
다른 편이 그 피리 소리에 맞춰 춤을 추고,
한쪽 편이 슬피 울며 곡(哭)을 하면,
다른 편이 그 곡(哭)소리에 맞춰 가슴을 치는 놀이였습니다.
이 [결혼식 놀이]와 [장례식 놀이]가 재미있게 이어지기 위해서는,
한쪽 편이 다른 편의 장단(拍子)을 맞춰 주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사람들은, 요한의 간절한 외침에도,
예수님의 사랑의 말씀에도 귀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관심이 없었습니다.
아이들도 잘 맞춰 주는 장단(拍子)을, 안 맞춰 준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안타까운 마음으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누가복음7:32.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하여도 너희가 울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笛を吹いてあげたのに、君たちは踊らなかった。
弔いの歌を歌ってあげたのに、泣かなかった。)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만약 우리의 마음이, 좌우에 날이 선 검보다도 예리한 하나님의 말씀
(両刃の剣よりも鋭い神のことば)에 꿈쩍도 하지 않는다면,
우리 마음에는 사망의 골짜기가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말씀의 파수꾼]을 세워,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해도,
우리가 그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다면, 우리 마음에는
[메워야 할 마음의 골짜기]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이지요 !
사랑하는 여러분 !
올 대강절을 보내면서, 우리 마음의 골짜기를 [순종]으로 메웁시다.
혹 우리 마음속 사망의 골짜기를, [십자가의 사랑]으로 채웁시다.
그리하여, 다시 오실 예수님을 맞이할 만반의 준비를 마칩시다.
찬송가 144장 3절.
피와 같이 붉은 죄, 없는 이가 없네. 십자가의 공로로, 눈과 같이 되네
예수님, 예수님 나의 죄 위하여, 보배 피를 흘리니 죄인 받으소서.
이렇게 찬송하며 십자가의 주님을 바라볼 때,
우리 속의 마음의 골짜기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으로 깨끗이 메워질 것입니다.
둘째, 산(山)과 같이 높고 교만한 마음을 낮추었습니다.
본문5절.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지고 (すべての山や丘は低くなる。)
여기서 ‘모든 산, 작은 산’은 사람들의 마음에 있는 [교만]을 말합니다.
예수님 당시, 가장 교만했던 사람들은,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에게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누가복음11:43.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회당의 높은 자리와 시장에서 문안받는 것을 기뻐하는도다
(わざわいだ、パリサイ人。
おまえたちは会堂の上席や、広場であいさつされることが好きだ。)
그렇습니다.
바리새인들의 대표적인 교만은, 사람들로부터 높임을 받고,
사람들로부터 대접을 받고 싶어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 이것이 그토록 잘못된 것일까요 ?!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이런 자세를, 왜 강하게 책망하셨을까요 ?!
당시 바리새인들은, 자기들이 남들보다 월등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있고,
그 누구보다도 하나님 편에 섰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이러한 생각 자체가 교만입니다.
자 ! 그렇다면 여러분 !
바리새인들은, 왜 자신들이 가장 훌륭한 신앙인이라고 생각했을까요 ?!
예 ! [율법(律法)]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이 세상 그 누구보다
[모세의 율법(律法)]을 잘 지키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로 인해, 자신들은 이미 [구원받은 백성]이라고 착각도 했지요.
그래서 바리새인들을 [율법주의자]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
사람이 [율법을 잘 지키는 것] 즉, [율법의 행위]로 의롭게 될 수 있나요 ?!
또한, [율법의 행위]로 구원받을 수 있나요 ?!
아니요 ! 율법으로는 의로워질 수도 없고, 구원받을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히 말합니다.
로마서3:20.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人はだれも、律法を行うことによっては神の前に義と認められないからです。
律法を通して生じるのは罪の意識です。)
갈라디아서2: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人は律法を行うことによってではなく、ただイエス・キリストを信じることによって
義と認められると知って、私たちもキリスト・イエスを信じました。
律法を行うことによってではなく、キリストを信じることによって義と認められるためです。
というのは、肉なる者はだれも、律法を行うことによっては義と認められないからです。)
그렇습니다. 여러분 !
율법은 우리의 죄를 깨우쳐 주는 것이지,
그 율법을 통해 우리가 의로워질 수도, 또한 구원받을 수도 없습니다.
물론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비춰볼 때,
당시 바리새인들은 의롭게 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또한, 구원받은 백성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정작 바리새인들은 스스로 생각하기를,
자신들은 가장 의로운 사람들이고,
가장 먼저 구원받은 사람들이라고 착각한 것입니다.
바로 이것을 [바리새인들의 자기의(自己義)]라고 합니다.
예 ! [바리새인들의 자기의(自己義)]는 실제로는 의롭지 않은데,
정작 자신들은 의롭다고 착각한 [거짓된 의(義)]였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 바리새인들의 문제는 거기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자기의(自己義)를 바탕으로,
다른 사람들 앞에서 자신들을 스스로 높였습니다.
자기들 스스로를 [섬김과 높임을 받을 존재]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너희들보다는 내가 훨씬 더 의롭다.'라는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바리새인들은 자기의(自己義)를 바탕으로, 다른 사람들을 판단했습니다.
또한, 바리새인들은 자기의(自己義)를 바탕으로,
다른 사람들을 비판하고 정죄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했지만,
사실은 [자기의(自己義)]를 의지한 매우 교만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그들의 악(惡)이었고, [죄]였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
지금 우리의 신앙과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
혹, 바리새인들이 휘둘렀던 [교만의 방망이]를
우리도 손에 쥐고 있지는 않습니까 ?!
우리의 예배로, 다른 사람의 예배를 판단하거나 비판하지는 않습니까 ?!
혹은, 나 자신의 헌신으로, 다른 사람의 헌신을 판단하거나 비판하지는 않습니까 ?!
혹은, 나 자신의 봉사로, 다른 사람의 봉사를 판단하거나 비판하지는 않습니까 ?!
혹은, 나 자신의 기도 생활이나 헌금 생활로,
다른 사람의 기도나 헌물을 판단하거나 비판하지는 않습니까 ?!
만약, 이런 마음이 우리에게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 마음을 허물어야 합니다.
그런 모든 산과 작은 산은 하나도 남기지 말고, 철저하게 깎아내려야 합니다.
바로 그것이, 이번 대강절 동안 우리가 해야 할 일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야고보를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야고보서4:6.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神は高ぶる者には敵対し、へりくだった者には恵みを与える。)
한국 교계의 매우 유명한 어느 K 원로 목사님의 간증을 소개합니다.
오래전, K 목사님이 청량리중앙교회 유년부 교육전도사로 헌신할 때,
유년부 어린이들의 신앙 교육을 위해, 당회에 건의할 내용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K 전도사님은, 건의할 내용을 그 교회의 김익명 장로님에게 부탁했습니다.
왜냐하면, 김 장로님이 유년부의 부장이기도 했지만,
당시 김 장로님은 그 교회 1년 예산의 1/3 정도를 헌금할 정도로 경제적인 능력이 있었고,
그로 인해 K 전도사님은 김 장로님이 당회에 건의하면,
그 안건이 꼭 통과될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K 전도사님의 부탁을 들은 김 장로님이,
K 전도사님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K 목사님은 그때 김 장로님의 말을 평생 잊지 못했다고 합니다.
자 ! 김 장로님은 K 전도사님에게 뭐라고 말했을까요 ?!
이렇게 말했답니다.
“전도사님 ! 전도사님도 아시다시피, 제가 헌금을 좀 많이 하지 않습니까 ?!
그래서 저는 당회에서 될 수 있는 대로 발언을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왜 그러시냐고 묻는 K 전도사님에게, 김 장로님은 이렇게 말씀했다고 합니다.
“교회의 직분자들은, 연보를 많이 하든지, 말을 많이 하든지
(의견을 많이 내든지) 둘 중 한 가지만 해야 해요. 둘 다 다 하면 못써요.”
그렇습니다. 여러분 !
청량리중앙교회 김익명 장로님은 지혜롭고 겸손한 분이었습니다.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대강절(待降節, Advent, アドベント)은,
첫째, 성탄절을 앞두고, 2천 년 전에 오신 예수님을 기억하고, 감사하며,
우리 마음과 삶의 중심에 맞아드리는 절기입니다.
둘째, 세상에 다시 오실 예수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절기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다시 오실 예수님을 맞이하기 위해,
첫째, 깊이 파인 마음의 골짜기를 메우면서, 올 대강절을 보냅시다.
메워야 할 마음의 골짜기는 [신앙적 무관심], [말씀의 무관심]입니다.
올 대강절을 보내면서, 우리 마음의 골짜기를 [순종]으로 메웁시다.
혹 우리 마음속에 있는 사망의 골짜기를, [십자가의 사랑]으로 채웁시다.
그리하여, 다시 오실 예수님을 맞이할 만반의 준비를 마칩시다.
둘째, 산(山)과 같이 높고 교만한 마음을 낮추면서, 올 대강절을 보냅시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神は高ぶる者には敵対し、へりくだった者には恵みを与える。)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의 신앙으로, 다른 사람의 신앙을 판단하거나 비판하지 맙시다.
우리의 헌신과 봉사로, 다른 사람의 헌신과 봉사를 판단하거나 비판하지 맙시다.
우리의 기도 생활과 헌금 생활로,
다른 사람의 기도 생활과 헌금 생활을 판단하거나 비판하지 맙시다.
다시 오실 예수님께, 겸손하게 잘했다고 칭찬받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할렐루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