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2022년9월25일, 갈라디아서 6:11-17(우리 몸에 예수님의 흔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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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일 말씀을 기억하며, 함께 한 귀한 지체들과 이렇게 고백합시다.
성도님 !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음식 규례]를 주신 것은,
1> 이스라엘을 이방인들로부터 분리하시려는 목적이었습니다.
2> 이스라엘에게, 순종을 가르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3> 이스라엘을 구별하셔서, 거룩한 훈련을 시키기 위함이었습니다.
또한, 성도님 ! [지식(知識) 면에서], [윤리(倫理) 면에서],
[교제(交わり) 면에서], 성도인 우리는 불신자와 구별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말레이시아 페낭에 무사히 다녀왔습니다.
말레이시아는 일본(약 38만㎢)보다 조금 작은 국토(약 33만㎢)에,
약 3300만 명이 사는 작지 않은 나라입니다.
GDP는 세계 37위이고 GNI 31000달러로,
동남아시아에서는 싱가포르 다음으로 잘 사는 나라입니다.
둘째 날 오후, 잠시 박물관을 관람하던 중,
전시물 중에서 10cm도 안 되는 예쁜 신발들을 보았습니다.
당연히 여자 어린아이의 신발이겠지 생각했는데,
그것이 장성한 여인들의 신발이라고 했습니다.(신발 사진)
과거 중국에는 전족(纏足, 찬조우-)이란 풍습이 있었습니다.
과거 중국 여성 미인(美人)의 제일 조건은 [작은 발]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여자아이가 3∼6세가 되면, 엄지발가락 외의 발가락을
발바닥 방향으로 꺾어 넣어서 묶고, 매우 작은 신에 고정했답니다.
워낙 강하게 발가락을 꺾어 묶으니까, 발가락들이 부러지고 만답니다.
아이가 고통스러워해도, 몇 년간 그렇게 묶어 놓으면,
발은 10cm 정도로밖에 성장하지 않고, 결국 미인의 조건인 작은 발을 갖게 된답니다.
본래 이 풍습은 중국 북부의 부유한 계층에만 내려오는 풍속이었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중국 각 지역에 퍼졌고,
상류층의 중국 여인들은 앞다퉈 전족이 되기를 자처했고,
그로 인해, 전족(纏足)을 하지 않은 여성들은 천민으로 취급되었다 합니다.
전족의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그중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전족의 발로는 걸을 수는 있었지만, 뛰거나 힘든 일을 할 수 없었으므로,
신분이 높은 여성이란 사실을 과시하기 위함이었다 합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약 1000년간, 중국의 많은 여인은 자신의 발에 전족(纏足)이라는
흔적을 남겨, 자신의 신분을 과시(誇示)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
오늘 본문에 보면, 이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자 ! 어떤 사람들일까요 ?!
본문이 기록될 당시 갈라디아에서는, 예루살렘에서 온 일부 유대인들이,
구원의 조건으로 할례(割禮)받을 것을 강조했습니다.
물론 이것은 매우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할례(割禮)를, 단 한 번도 구원의 조건으로 삼으신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갈라디아 성도들을 유혹하는 할례파(割禮派)들을
염두에 두고,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본문12절. 무릇 육체의 모양을 내려 하는 자들이, 억지로 너희에게 할례를 받게 함은
(肉において外見を良くしたい者たちが、あなたがたに割禮を強いています。)
이 말씀에서, [육체의 모양을 내려 하는 자들]이란,
할례파(割禮派)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마치 전족(纏足)을 한 여인들이 자신을 뽐내는 것처럼,
할례(割禮)를 행한 자신을 뽐내는 자들입니다.
더구나 그들은, 할례만 받았지, 하나님의 말씀은 우습게 생각한 자들이었습니다.
마치 오늘날 일부 크리스천들이, 하나님 말씀에 전혀 순종하지 않으면서,
스스로를 구원받은 자녀로 착각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본문13절. 할례를 받은 그들이라도, 스스로 율법은 지키지 아니하고
(割禮を受けている者たちは、自分自身では律法を守っていないのに、)
안타까운 바울은, 계속해서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외칩니다.
본문13절. <그 할례파들이> 너희에게 할례를 받게 하려 하는 것은,
그들이 너희의 육체로 자랑하려 함이라
(あなたがたの肉を誇るために、あなたがたに割禮を受けさせたいのです。)
그렇습니다. 할례파들의 목적은 분명했습니다.
할례를 받아, 스스로 우쭐대는 이들이 많아질수록, 그들보다 먼저
할례를 받은 자신들이 높아지고, 존경받게 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마치 전족을 먼저 한 여인들이, 전족을 하지 않은 여인들이나,
혹은 전족을 나중에 한 여인들 앞에서 우쭐대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에 바울은 본문에서, 갈라디아 성도들을 향해 이렇게 고백합니다.
본문14절.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しかし私には、私たちの主イエス・キリストの十字架以外に
誇りとするものが、決してあってはなりません。)
예 ! 할례파들은 할례를 자랑하지만, 바울 자신은, 할례가 아닌
십자가의 보혈로 자신을 구원해 주신, 예수 그리스도만을 자랑한다고요.
그리고 바울은, 오늘 본문의 가장 끝에서, 이렇게 외칩니다.
본문17절.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
(だれも私を煩わせないようにしてください。
私は、この身にイエスの焼き印を帯びているのですから。)
그렇습니다.
바울의 몸에는 할례파들이 자랑하는 [할례(割禮)]보다
더 소중한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예수님의 흔적]이었습니다.
자 ! 그렇다면 여러분 !
바울이 가진 [예수님의 흔적]은 무엇일까요 ?!
본문의 갈라디아서와 비슷한 시기에 기록한 [고린도후서]에서,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에게 이런 고백을 한 적이 있습니다.
고린도후서11:23-27.
23.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労苦したことはずっと多く、牢に入れられたこともずっと多く、むち打たれたことは
はるかに多く、死に直面したこともたびたびありました。)
24.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ユダヤ人から四十に一つ足りないむちを受けたことが五度、)
25.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ローマ人にむちで打たれたことが三度、石で打たれたことが一度、
難船したことが三度、一昼夜、海上を漂ったこともあります。)
26.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何度も旅をし、川の難、盗賊の難、同胞から受ける難、異邦人から受ける難、
町での難、荒野での難、海上の難、偽兄弟による難にあい、)
27.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労し苦しみ、たびたび眠らずに過ごし、飢え渇き、しばしば食べ物もなく、
寒さの中に裸でいたこともありました。)
사랑하는 여러분 !
바울이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다가 당한, 이런 고난들을 통해,
바울의 몸에 생긴 [예수님의 흔적]은 과연 무엇이겠습니까 ?!
물론입니다.
수많은 상처와 흉터, 그리고 병(病)이었을 것입니다.
바울은 [할례(割禮)]가 아닌,
바로 그 [예수님의 흔적]을 소중히 여겼고,
또한, 감사하게 여겼던 것입니다.
우리 본향성도들에게 묻습니다.
우리 몸에는 어떤 [예수님의 흔적]이 있을까요 ?!
첫째, 어떤 성도에게는 [사랑의 흔적]이 있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사랑하며, 예수님을 따르는 자에게
이런 어려움이 따른다고 말했습니다.
로마서8: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だれが、私たちをキリストの愛から引き離すのですか。苦難ですか、苦悩ですか、
迫害ですか、飢えですか、裸ですか、危険ですか、剣ですか。)
또한, 히브리서의 기록자는,
예수님을 사랑하며 끝까지 따라간 사람들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히브리서11:36-38.
36. 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받았으며
(また、ほかの人たちは嘲られ、むちで打たれ、
さらに鎖につながれて牢に入いれられる経験をし、)
37.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また、石で打たれ、のこぎりで引かれ、剣で切り殺され、羊ややぎの
皮を着て歩き回り、困窮し、圧迫され、虐待されました。)
38.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この世は彼らにふさわしくありませんでした。)
그렇습니다. 여러분 !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을 따르면 아픔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아픔이 크면, 때로는 우리 몸에 흔적으로 남습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에게 새겨져야 할 [예수님의 흔적]입니다.
더구나, 예수님의 몸에도 [사랑의 흔적]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두려워하던 제자 도마에게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20:27.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あなたの指をここに當てて、わたしの手を見なさい。手を伸ばして、わたしの脇腹に
入れなさい。信じない者ではなく、信じる者になりなさい。)
그렇습니다. 여러분 !
하나님을 사랑하고, 우리를 사랑하신 예수님의 손과 발과
옆구리에는 [사랑의 흔적]이 깊게 새겨져 있었습니다.
낙타는 하루를 시작하고 마칠 때마다, 주인 앞에 무릎 꿇는다고 합니다.
새날이 시작되면 주인 앞에 무릎을 꿇고, 주인이 얹어주는 짐을 짊어집니다.
주인은 낙타의 사정을 잘 알기에, 낙타가 짊어질 수 있는 만큼만의 짐을 얹어줍니다.
낙타는 주인이 얹어주는 짐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루 일을 끝마칠 시간이 되면, 낙타는 주인 앞에 또 한 번 무릎을 꿇습니다.
짐이 내려지기를 기다리며, 주인 앞에 엎드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살다 보니, 낙타에게는 무릎에 두꺼운 굳은살이 박여 있습니다.(낙타 무릎)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도 세상과 사람이 아닌, 하나님 앞에 매 순간 무릎을 꿇어,
우리의 무릎에도 [예수님 사랑의 흔적]이 두툼하게 (새겨지고)
남겨지게 되기를 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둘째, 어떤 성도에게는 [헌신과 봉사의 흔적]이 있습니다.
본문17절.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
(だれも私を煩わせないようにしてください。
私は、この身にイエスの焼き印を帯びているのですから。)
그렇습니다.
앞서 소개한 것처럼, 바울은 복음 전파를 위해
수많은 헌신과 봉사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 결과 그 몸에는 많은 상처가 남았습니다.
제 왼쪽 눈은, 처음보다는 많이 나아졌지만,
보이는 물건이 전부 찌그러져 보입니다.
왜냐하면, 제 왼쪽 눈의 망막(網膜)이 꾸겨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지난 2012년 12월 22일 토요일 아침, 세수를 하는데 갑자기 왼쪽 눈이 이상했습니다.
눈의 초점도 맞지 않고, 앞을 전혀 볼 수 없었습니다.
매우 놀라, 급하게 집 앞 안과에 갔는데, 의사의 눈이 동그라졌습니다.
즉시, お茶の水에 있는 順天堂병원으로 직접 전화를 해, 제 눈의 상태를 전했습니다.
오늘 중으로 수술을 하는 것이 좋겠다는 말도 했습니다.
그리고 저에게는, 머리를 움직이지 말고, 조심조심 順天堂병원으로 가라고 했습니다.
큰 대학 병원에 도착해 자세히 검사한 결과, 눈 표면에 있었던 인공수정체를
담고 있던 주머니와 인공수정체가, 눈알 뒤로 가고 말았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즉시 눈알을 작게 만들어 옆으로 옮기고, 눈알 뒤에 있는 인공수정체를 꺼내지 않으면,
수일 내로 시신경(視神經)이 큰 상처를 입어, 실명(失明)하게 된다는 설명도 있었습니다.
저는 고민했습니다.
그다음 날이 12월 23일 주일이고, 다시 이틀 뒤에는 성탄절이었습니다.
수술도 중요하고, 눈도 중요했지만, 주일예배는 더 중요했습니다.
이에 저는, 의사를 설득하여,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물론, 다음 주간에 저는 무사히 수술을 받았습니다.
그로부터 몇 개월 후, 저는 2차 수술을 후에 다시 順天堂병원에 입원했습니다.
못 쓰게 된 인공수정체와 수정체 주머니를 대신해,
눈알에 새로운 인공수정체를 부착(附着)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수술과 10여 일의 입원을 마치고 퇴원한 날,
친하게 지내던 목사님이 저에게 한 가지 부탁을 했습니다.
그 목사님이 섬기는 교회 성도의 심방을 같이 가자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날이 퇴원한 날이어서 조금 불안했지만, 간절한 부탁이어서 같이 갔습니다.
그런데 그만, 그것이 무리가 되었는지, 수술한 눈알에 구멍이 나고 말았습니다.
눈동자가 동그래야 하는데, 눈알에 구멍이 나서, 눈알이 찌부러지고 만 것입니다.
결국, 저는 또다시 긴급하게 입원해 3차 수술을 받아야 했습니다.
제3차 수술은 무사히 끝났지만, 대신 수술 후 제 왼쪽 눈을 통해서는,
모든 사물(事物)이 찌그러져 보이게 되고 말았습니다.
그때 수술 부위가 터져 눈알이 찌부러졌을 때, 눈알 뒤에 있는 망막(網膜)까지
같이 떠올라, 망막이 꾸겨지고(しわ、皺) 말았기 때문입니다.
이른바 망막박리(網膜剝離)로 인한, 후유증(後遣症)이 발생한 것입니다.
저는 지금도, 왼쪽 눈으로 보는 모든 물건이 찌그러져 보입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느낄 때마다(요새는 느끼지 못할 때도 있음) 이렇게 생각합니다.
물건이 찌그러져 보이는 것은,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섬김과 봉사의 흔적]이라고요.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33세밖에 되지 않았던 예수님의 육체는,
당시 사람들의 눈에 50에 가까워 보일 정도였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얼마나 힘껏 [섬김과 봉사의 삶]을 살았는지,
그것을 통해서도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도 우리 몸에, [섬김과 헌신과 봉사의 흔적]을 남깁시다.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하나님은 요한계시록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이런 깨우침을 주십니다.
요한계시록7:2-3.
2. 또 보매, 다른 천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받은 네 천사를 향하여 큰소리로 외쳐
(また私は、もう一人の御使いが、日の昇る方から、生ける神の印を持って上って来るのを見た。
彼は、地にも海にも害を加えることを許された四人の御使いたちに、大声で叫んだ。)
3. 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들을 해하지 말라 하더라
(「私たちが神のしもべたちの額に印を押してしまうまで、
地にも海にも木にも害を加えてはいけない。」)
그렇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천사를 통해, 우리의 이마에 인(印)을 쳐,
특별한 표시를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 몸에 [예수님의 흔적]이 나날이 채워지기를 축복합니다. 그러기 위해,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합시다.
(あなたは心を尽くし、いのちを尽くし、力を尽くし、
知性を尽くして、あなたの神、主を愛しなさい。)
누가복음10:27.
또한, 이웃 사랑하기를 내 몸과 같이 사랑합시다.
(隣人を自分自身のように愛しなさい。)
야고보서2:8.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 몸에 [예수님의 흔적]이 나날이 채워질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 이마에 천사를 통해,
[하나님의 인(印)]을 새겨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가, 이것을 꼭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아멘 !
할렐루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