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6월4일, 히브리서 11:17-19 (복된 눈으로 변화시켜 주시는 하나님) > 主日説教原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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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2023년6월4일, 히브리서 11:17-19 (복된 눈으로 변화시켜 주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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投稿者 박성철 日時 23-06-16 17:16 ヒット 18,562 コメント 0

本文

  지난 주일 말씀을 생각하며, 함께 한 지체들과 이렇게 고백합시다.

  성도님 !

  [성령 세례]는, 구원받을 사람에게 성령을 통해 단 한 번,

  반드시 주어지는 회심(悔心)과 중생(重生, 거듭남)을 말합니다. 

  [성령 세례]를 받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에게는 여전히

  신앙적인 면과 도덕적인 면 등에서 많은 결점(缺點)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님,

  [성령 세례]를 받은 사람이, 온전한 신앙인으로 변화
  (즉, 성화 聖化)되기 위해서는, [성령 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대부분 사람은 듣는 것보다 자기의 눈으로 직접 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왜냐하면, 자기 눈으로 본 것을 가장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백문이 불여일견(百聞而 不如一見)]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것이 낫다는 말입니다.

  일본어에서는 이렇게 쓰입니다. (百聞不如一見)

  1> おなじみの、あれこれ聞くよりも、一度見たほうがよくわかる。

  2> あれこれ考えるよりも、一度やってみればよくわかる。


  그러므로 여러분 !
  눈을 포기하든지 귀를 포기하든지 둘 중의 하나를 택하라고 하면,

  차라리 귀가 없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라디오를 듣는 것보다 TV를 보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또한, 우리는 "맛을 본다", "만져 본다", "(냄새를) 맡아 본다", "들어 본다" 등,
  어떤 말에 "본다"라는 말을 많이 붙여서 씁니다.

  이처럼, 대다수 사람은 자기 눈으로 직접 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
  사람 눈의 시력은 모두가 같지 않습니다.

  가까운 곳부터 먼 곳까지 잘 보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습니다.


  또한, 여러분 ! 우리의 눈은 [육신의 눈]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식의 눈]도 있습니다. 물론 이 눈도 사람마다 차이가 있습니다.

  다음 문제의 답은 무엇입니까 ?!

  문제> 3 + 1 × 2 = (       )

  정답이 8입니까, 아니면 5입니까 ?! 예 ! 5입니다.


  [지혜의 눈]도 있습니다.

  물론 이 눈도 사람마다 차이가 있습니다.

  어린 자녀들 간에 작은 다툼이 있을 때, 지혜로운 눈으로 양쪽 모두를 살펴본 후,

  원만하게 해결하는 부모도 있고, 미련한 눈으로 한쪽만을 보고,

  자녀의 작은 다툼을 부모 간의 큰 다툼으로 만드는 부모도 있습니다.


  이 외에도 [믿음의 눈], [소망의 눈], [사랑의 눈], [영적인 눈],

  [바둑이나 장기의 눈] 등등 여러 가지 눈이 세상에 존재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

  똑같은 눈의 시력(視力)을 가지고 있고,

  똑같은 수준의 [지식의 눈]과 [지혜의 눈]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보는 위치]와 [보는 각도]에 따라 그 모습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다음의 사진과 영상은, 지난 4월, 올 여름수양회의 장소로 확정한

  [プレジール箱根]를 사전 답사(踏査)하러 갔을 때,

  근처에 있는 어느 [결혼식장 교회(敎會)]의 외관(外觀)을 촬영한 것입니다.

  내부 -> http://motif-flower.jp/hakone/

  외관 -> 사진 3장, 영상 1편 (설교보기를 보시면, 영상과 사진을 보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 ! 교회의 모습이 어떻게 보입니까 ?!

  물론입니다.

  분명히 이 교회는 똑바로 서 있는데, 보는 사람이 선 위치나 보는 각도에 따라서,

  그 모습이 왼쪽으로 기울어진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오른쪽으로 기울어진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가 보는 것이, 전부 바르게 보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

  [내가 분명히 보았어요 ! 그러니까 내 말이 맞고, 당신의 말은 틀려요.]

 라고 단정해서 말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잘 못 본 것일 수도 있으니까요.

  아니, 자기의 주관적인 눈으로 보았지,

  객관적인 눈으로 보았을 가능성이 훨씬 낮아,

  사실은 내가 틀렸을 가능성이 훨씬 크니까 말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오늘 이 시간, 하나님의 은혜로 [복된 눈]을 받으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 아브라함은 참 [복된 눈]을 가진 분이었습니다.

  자 ! 어떤 눈일까요 ?!


  어느 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창세기22:2.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あなたの子、あなたが愛しているひとり子イサクを連れて、モリヤの地に行きなさい。

  そして、わたしがあなたに告げる一つの山の上で、

  彼を全焼のささげ物として献げなさい。)


  여러분 ! 아브라함에게 이삭은 어떤 존재였습니까 ?!

  물론입니다. 이삭은 아브라함 자신의 생명보다 귀한 존재였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이삭은, 세상 그 무엇보다도 소중하고 귀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이삭을 아브라함에게 요구하셨습니다.

  번제(燔祭), 즉 제물로 태워 드리라고요.

  하나님의 이 명령은, [너의 가장 소중한 것을 바치라]는 것입니다.


  자 ! 우리 모두에게 묻습니다.

  만약 내일, 하나님께서 [너의 가장 소중한 것을 바치라]라고

  우리에게 말씀하신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겠습니까 ?!

  어떤 분은 하나님께 이렇게 구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나님 ! 저에게 내일을 주지 마세요 !"

  혹은 "하나님 ! 저에게 내일이 오지 않게 해 주세요 !“


  자 ! 여러분 !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어떻게 했습니까 ?!


  첫째, 아브라함에게는 하나님이 주신 [말씀의 눈]이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브라함은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라는 하나님의 지엄한 명령을,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말씀의 눈]으로 보았습니다.


  여러분 ! 과거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약속하셨습니다.

  창세기15:3-5.

  3. 아브람이 또 이르되, 주께서 내게 씨를 주지 아니하셨으니,

     내 집에서 길린 자가 내 상속자가 될 것이니이다

    (さらに、アブラムは言った。「ご覧ください。あなたが子孫を私に

     下さらなかったので、私の家のしもべが私の跡取りになるでしょう。」)

  4.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고

    (すると見よ、主のことばが彼に臨んだ。「その者があなたの跡を継いではならない。

     ただ、あなた自身から生まれ出てくる者が、あなたの跡を継がなければならない。」)

  5.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そして主は、彼を外に連れ出して言われた。「さあ、天を見上げなさい。星を数えられるなら

     数えなさい。」さらに言われた。「あなたの子孫は、このようになる。」)

  그렇습니다. 자손을 셀 수 없이 주시겠다고요.


  하나님은 또한, 아브라함에게 이런 약속도 하셨습니다.

  본문17-18절.

  17.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들을 받은 자로되 그 외아들을 드렸느니라

     (信仰によって、アブラハムは試みを受けたときにイサクを献げました。

      約束を受けていた彼が、自分のただひとりの子を献げようとしたのです。)

  18. 그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神はアブラハムに「イサクにあって、あなたの子孫が起こされる」と言われましたが、)

  그렇습니다. 이삭을 통해, 자손을 주시겠다고요.


  그렇습니다. 여러분 !

  아브라함은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라는 하나님의 지엄한 명령에,

  처음에는 많이 놀랐지만,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셨던 약속들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런 결론을 내렸습니다.


  결론 1> 하나님은 이삭을 통해, 나에게 많은 자손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결론 2> 그러므로 이삭을 번제의 제물로 드려도,

            하나님은 반드시 이삭을 다시 살려내실 것이다.

  결론 3> 왜냐하면, 이삭이 죽고 불에 태워져 버리면,

            이삭을 통해 많은 자손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하나님은 지키실 수 없다.

  결론 4> 그러므로 나는, 두려워하지 말고, 이삭을 번제로 드리자.


  아브라함이 이런 생각을 했을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오늘 본문에 이런 말씀이 있기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19절. 그가 <즉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彼は、神には人を死者の中からよみがえらせることもできると考えました。)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아브라함이 가졌던, [말씀의 눈]을 받으시기를 축복합니다.


  자 ! 여러분 !

  어떤 것이 [하나님이 주신 말씀의 눈으로 바라본 것]인가요 ?!

  한 가지 일을 가정(假定)하여,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가정(假定) - [20대 자녀가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되고 가족에게도 옮겨,

  작년부터 예정했던 해외 가족여행을 못 가게 되었다.

  여러분 ! 만약 위와 같은 일을 당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


  가정(假定)에 따른 대응(對應) (1)

  그토록 조심하라고 했더니,

  부모의 말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린 20대 자녀에게 욕을 사발로 퍼붓고,

  이후로는 자녀와 함께 가는 가족여행은 절대로 계획하지 않기로 온 가족이 합의했다.


  가정(假定)에 따른 대응(對應) (2)

  여행을 못 가게 된 것은 아쉽지만,

  얼마 전(4월 30일)에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생각하며, 하나님의 뜻을 구하기로 했다.

  전도서7:13-14절(표준새번역 성경).

  13.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생각해 보아라, 하나님이 구부려 놓으신 것을 누가 펼 수 있겠는가

     (神のみわざに目を留めよ。神が曲げたものをだれがまっすぐにできるだろうか。)

  14. 좋은 때에는 기뻐하고, 어려운 때에는 생각하여라.

      하나님은 좋은 때도 있게 하시고, 나쁜 때도 있게 하신다.

      그러기에 사람은 제 앞일을 알지 못한다

     (順境の日には幸いを味わい、逆境の日にはよく考えよ。

      これもあれも、神のなさること。後のことを人に分からせないためである。)


  본향성도여러분 !

  두 가지 대응(對應) 중 어떤 것이,

  하나님이 주신 [말씀의 눈]으로 보고, 대응한 것인가요 ?!

  물론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생각하고, 그 말씀에 의지해서 대응한,

  두 번째 대응이 [말씀의 눈]으로 보고한 대응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하나님의 무슨 명령이든지, 또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든지,

  하나님의 주신 말씀에 의지해서 [말씀의 눈]으로 먼저 보는

  우리가 되기를, 주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 아브라함에게는 [하나님이 전능하신 분인 것을 아는, 믿음의 눈]이 있었습니다.


  본문19절. 그가 <즉 아브라함이>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彼は、神には人を死者の中からよみがえらせることもできると考えました。)


  여러분 ! 본문19절을 보면,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어떤 일도 능히 하실 수 있는 분이라고 생각했습니까 ?!

  물론입니다.

  죽은 자도 다시 살려낼 수 있는 [전능한 하나님]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모리아 산의 사건, 즉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있기

  약 30년 전,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큰 죄를 범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고, 하갈과 동침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아닌, 자기 방법으로 아들을 얻으려고요.

  크게 진노한 하나님은, 그로부터 14년간 아브라함을 찾지 않으셨습니다.

  성도여러분 !

  하나님의 명령과 약속만 믿고, 고향을 떠나 머나먼 가나안까지 온 아브라함으로서는,

  그 14년이 참으로 길고, 두렵고, 힘든 기간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14년이 지난, 아브람의 나이 99세 때에, 드디어 하나님이 다시 나타나셨습니다.

  14년 만에 아브람을 찾으신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말씀하십니다.

  창세기17:1.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アブラムが九十九歳のとき、主はアブラムに現れ、こう言われた。

 「わたしは全能の神である。あなたはわたしの前に歩み、全き者であれ。)


  그리고, 그의 이름을 [아브람]에서 [아브라함 (많은 무리의 아버지)]으로 바꾸십니다.

  그리고, 그에게 다시 한번 약속하십니다.

  창세기17:15-16.

  15.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내 사래는 이름을 사래라 하지 말고 사라라 하라

     (また神はアブラハムに仰せられた。「あなたの妻サライは、

      その名をサライと呼んではならない。その名はサラとなるからだ。)

  16.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가 네게 아들을 낳아 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를 여러 민족의 어머니가 되게 하리니, 민족의 여러 왕이 그에게서 나리라

     (わたしは彼女を祝福し、彼女によって必ずあなたに男の子を与える。わたしは彼女を

      祝福する。彼女は国々の母となり、もろもろの民の王たちが彼女から出てくる。」)


  여러분 ! 하나님의 거듭되는 약속에, 아브라함이 어떤 행동을 보입니까 ?!

  예 !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며, 웃어버립니다.

  창세기17:17. 아브라함이 엎드려 웃으며 마음속으로 이르되,

  백 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출산하리요

 (アブラハムはひれ伏して、笑った。そして心の中で言った。「百歳さいの者に子が

  生まれるだろうか。サラにしても、九十歳の女が子を産めるだろうか。」)


  그리고는 하나님께 이렇게, 정말로 믿음 없는 말을 합니다.

  창세기17:18. 아브라함이 이에 하나님께 아뢰되,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

 (そして、アブラハムは神に言った。

 「どうか、イシュマエルが御前で生きますように。」)


  그럼에도 하나님은, 믿음 없는 아브라함에게 다시 한번 약속하십니다.

  창세기17:19. 하나님이 이르시되 아니라, 네 아내 사라가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내가 그와 내 언약을 세우리니,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

 (神は仰せられた。「いや、あなたの妻サラが、あなたに男の子を産むのだ。

  あなたはその子をイサクと名づけなさい。わたしは彼と、わたしの契約を立て、

  それを彼の後の子孫のために永遠の契約とする。)


  창세기17:21. 내 언약은 내가 내년 이 시기에, 사라가 네게 낳을 이삭과 세우리라

 (わたしがわたしの契約を立てるのは、サラが来年の今ごろ

  あなたに産むイサクとの間にである。」)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그리고 하나님은, 약속하신 대로 1년 후,

  100세가 된 아브라함과 90세가 된 사라에게, 이삭을 주셨습니다.

  더구나 당시 사라는 [여성의 생리(生理, 月經)]가 끊어진 상태였습니다.

  창세기18:11. 사라는 나이가 많아 늙었고, 사라에게는 여성의 생리가 끊어졌는지라

 (サラは年を重ねて老人になっていて、サラには女の月のものがもう止まっていた。)


  이에, 이 모든 것을 체험한 아브라함은 생각했습니다.

  내가 섬기는 하나님은,

  어떤 불가능한 것도 가능케 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구나.

  그리고 그와 동시에, 아브라함에게는,

 [하나님이 전능하신 분인 것을 아는, 믿음의 눈]이 생겼습니다.

 (물론,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혹 이삭이 제물로 죽게 된다 할지라도,

  죽은 이삭을 다시 살릴 수 있는 능력이 하나님께 있다고 믿은 것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에게도,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눈]이 있기를 주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내 눈으로 분명히 보았어도, 내가 잘 못 본 것일 수 있습니다.

  더구나 똑같은 눈의 시력(視力)과,

  똑같은 수준의 [지식의 눈]과 [지혜의 눈]을 가지고 보았다 하더라도,

  [보는 위치]와 [보는 각도]에 따라 그 모습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분명히 보았어요 ! 그러니까 내 말이 맞고,

  당신의 말은 틀려요.]라고 단정해서 말하지 마십시다.


  이 시간,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6:22-23.

  22.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몸이 밝을 것이요

     (からだの明かりは目です。ですから、あなたの目が健やかなら全身が明るくなりますが、)

  23. 눈이 나쁘면 온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둠이 얼마나 더하겠느냐

     (目が悪ければ全身が暗くなります。ですから、

      もしあなたのうちにある光が闇なら、その闇はどれほどでしょうか。)

  그렇습니다. 눈이 밝고 맑아야 우리의 삶이 밝아집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은혜로 복된 눈을 가졌습니다.

  물론, 아브라함의 복된 눈은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것입니다.

  첫째, 모든 것을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통해 보는 [말씀의 눈]을 가졌습니다.

  둘째,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전능하신 하나님인 것을 아는 [믿음의 눈]을 가졌습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이 두 눈을 하나님께 구하시고, 얻으셔서,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을 크게 기쁘시게 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할렐루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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