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2023년3월12일, 요한일서 4:7-12 (형제 우애에 사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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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먼저, 지난 몇 주간의 말씀을 잠시 돌아보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믿음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 우리에게 [믿음을 선물]로 주신 하나님은,
우리가 [좋은 열매를 맺는 당신의 자녀]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좋은 열매는 [우리가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한편, 우리가 예수님을 닮아가려면, 받은 믿음에 [덕을 더해야] 합니다.
덕에 [지식을 더해야] 합니다. 지식에 [절제를 더해야] 합니다.
절제에 [인내를 더해야] 합니다. 인내에 [경건을 더해야] 합니다.
경건에 [형제 우애]를 더해야 합니다.
지난 주일 말씀을 생각하며, 함께 한 지체들과 이렇게 고백합시다.
성도님 ! 어떤 일이 있어도 [같은 마음]으로
[옆에 있어 주는 것]이 형제 우애입니다.
[형제 우애]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넘쳐 흐르는 기름의 복을 주십니다.
[형제 우애]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은은한 이슬의 복을 주십니다.
[형제 우애]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영생의 복을 주십니다.
오늘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좋은 열매를 맺기 위해,
믿음에 더해야 할 마지막 일곱 번째 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무엇이지요 ?!
예 ! [사랑(愛)]입니다.
베드로후서1:7.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敬虔には兄弟愛を兄弟愛には愛を加えなさい。)
성경 전체에는 [사랑]이란 단어가 약 800번 등장합니다.
그중에서 구약성경에 약 450번, 신약 성경에 약 350번 등장합니다.
제 생각으로는, 365일 매일 오전에는 독생자를 아낌없이 주시는
[구약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랑하며 살라는 뜻이고,
365일 매일 오후에는 자신을 버리신
[신약 예수님의 사랑]으로 사랑하며 살라는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자 ! 여러분 ! 퀴즈를 내겠습니다.
신구약 성경 전체에서, [사랑]이란 단어가
가장 많이 등장하는 성경은 어디일까요 ?
물론입니다.
[요한일서]에 51번 등장해서 두 번째로 많고,
[요한복음]에 56번 등장해서 가장 많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
신구약 성경 전체에서, [사랑]이란 단어가
가장 많이 등장하는 성경 장(章)은 어디일까요 ?
예 ! [요한복음 14장]과 [요한복음 15장]에 각각 10번씩 등장하여, 공동2위이고,
[사랑]이란 단어가 가장 많이 등장하는 성경 장(章)은
오늘 본문인 [요한일서 4장]으로, 총 30번(원문 헬라어 성경) 등장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
한글 신약 성경과 일어 신약 성경에 [사랑]으로 기록된 단어는,
전부 [사랑(愛)]으로 번역되어 있지만, (하나님이 처음 주신) 원문 헬라어 성경에는
[네 가지 사랑]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① 에로스 – 연인(戀人)의 사랑
② 필레오 – 친구의 사랑, 우정(友情)
③ 스톨게 – 부모와 자녀, 형제자매의 가족 사랑
④ 아가페 – 하나님의 사랑, 완전한 사랑, 무조건적 사랑
자 ! 그렇다면 여러분 !
오늘 본문인 요한일서 4장에 등장하는 사랑은, [에로스 사랑],
[필레오 사랑], [스톨게 사랑], [아가페 사랑] 중, 어떤 것이겠습니까 ?!
물론입니다. 30번 전부가 [아가페 사랑]입니다.
또한, 여러분 !
하나님이 원하시는 좋은 열매를 맺기 위해,
우리가 믿음에 더해야 할 [사랑]은, 위 네 가지 중 어떤 사랑이겠습니까 ?!
물론입니다. [완전한 사랑], [무조건적 사랑]인 [아가페 사랑]입니다.
자 ! 그렇다면 여러분 !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아가페 사랑]은 어떤 사랑일까요 ?!
첫째, 독생자(獨生子)까지 버리신 [완전한 사랑]입니다.
본문9절.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神はそのひとり子を世に遣わし、その方によって私たちにいのちを得させて
くださいました。それによって神の愛が私たちに示されたのです。)
그렇습니다. 여러분 !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사랑은, 가장 소중한 것, 가장 아끼는 것을,
주저 없이 주신 [완전한 사랑]입니다.
[성령에 속한 사람]이라는 책에 기록된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어느 날 매우 친한 목사님 두 분이 만났습니다.
그런데, 한 목사님은 아들이 다섯이나 있었고, 다른 목사님은 딸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딸만 있는 목사님이 친구 목사님에게,
“목사님은 아들이 다섯이나 되니까, 하나 정도는 제게 양자로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
라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했습니다.
그러자 다른 목사님이 역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목사님 ! 그러지요. 뭐”라고 대답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날 밤, 딸 하나만 둔 친구 목사님의 덕행과 마음을 너무나 잘 아는
다섯 아들을 둔 목사님이, 고민하며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그래 ! 아무리 농담 반 진담 반의 말이었지만, 약속을 지키자 !'
그날 밤, 다섯 아들을 둔 목사님은, 아들 다섯 중에 누구를 양자로 주어야 하나
고민하면서, 아들들이 잠들어 있는 방문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곤히 잠자고 있는 아들 다섯을 물끄러미 내려다봅니다.
‘어떤 아이를 양자로 줄까 ?! 장남 ! 장남은 안 되지.
우리 가정의 첫 열매인데 어떻게 다른 집에 주나 ?’ 그래서 첫째는 두고 둘째를 봅니다.
‘얘를 보낼까 ! 아니지, 이 녀석은 다섯 아들 중에서
제일 똑똑하고 장래가 촉망되는 아이인데 안되지 !’ 그러면서 셋째 아들을 보았습니다.
‘이 녀석은 나를 쏙 빼닮았어. 마음도 넓고. 셋째도 안 되겠어 !’
그리고는 넷째를 보았습니다.
‘이 녀석은 병치레를 자주 해서 너무 약해. 이 녀석을 줄 수는 없지 !’
이제 마지막, 막내아들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목사님은 막내아들을 한참 동안 바라본 후, 자기 마음을 향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토록 귀여운 막내를 어떻게 보낼 수 있나 !’
결국, 목사님은 친구 목사님에게, 한 아들도 줄 수 없는 자신의 마음을 확인하고,
친구 목사님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사과했다고 합니다.
또한, 독생자를 아낌 없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다시금 깊이 감사드렸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여러분이 가진 것 중에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입니까 ?!
그것을 주님께 아낌없이 드릴 수 있습니까 ?!
가장 소중한 그것을 이웃에게 덥석 줄 수 있습니까 ?!
가장 소중한 것을 주님께 드리는 것, 가장 소중한 것을 아낌없이
이웃에게 주는 것, 그 사랑이 바로 [아가페 사랑]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가장 소중한 것(즉, 독생자)을
아낌없이 주시는 [아가페 사랑]입니다.
이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을,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요한복음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神は、実に、そのひとり子をお与えになったほどに世を愛された。それは御子を
信じる者が、一人として滅びることなく、永遠のいのちを持つためである。)
둘째, 목숨까지 버리신 [완전한 희생의 사랑]입니다.
에베소서1:7.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このキリストにあって、私たちはその血による贖い、背きの罪の赦しを受ています。)
이사야53:5-6.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しかし、彼は私たちの背きのために刺され、私たちの咎のために砕かれたのだ。彼への
懲らしめが私たちに平安をもたらし、その打ち傷のゆえに、私たちは癒やされた。)
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私たちはみな、羊のようにさまよい、それぞれ自分勝手な道に向かって行った。
しかし、主は私たちすべての者の咎を彼に負わせた。)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이유는 너무나 분명합니다.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죽으려고 오셨습니다.
그 예수님께서, 우리를 친구라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15:13-14.
13.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人が自分の友のためにいのちを捨てること、
これよりも大きな愛はだれも持っていません。)
14.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わたしが命じることを行うなら、あなたがたはわたしの友です。)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아가페 사랑]은,
우리를 위해 자기의 목숨을 버리신 [희생의 사랑], [완전한 사랑]이었습니다.
이 크고 놀라운 사랑을 받은 여러분 !
항상 감사하며 살며 찬송하며 살기를, 주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자 ! 여러분 ! 지금부터가 오늘 메시지의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우리에게 완전한 사랑을 주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본문11절.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愛する者たち。神がこれほどまでに私たちを愛してくださったのなら、
私たちもまた、互いに愛し合うべきです。)
여러분 ! 묻습니다.
이 말씀에서,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은,
어떤 사랑을 말씀하는 것입니까 ?!
물론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두 가지 사랑입니다.
첫째, 독생자(獨生子)까지 버리신 [완전한 사랑]입니다.
둘째, 목숨까지 버리신 [완전한 희생의 사랑]입니다.
한 가지 더 묻습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는 말씀은,
우리도 서로에게 어떤 사랑을 주라는 것입니까 ?!
물론입니다.
첫째, 독생자(獨生子)까지 버리는 [완전한 사랑]을 주라는 것입니다.
둘째, 목숨까지 버리는 [완전한 희생의 사랑]을 주라는 것입니다.
한국 출신의 순교자(殉敎者)로 세계에 널리 알려진 분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잘 아는 손양원 목사님입니다.
1902년 6월 3일, 경상남도 함안군에서 태어난 손양원 목사님은, 1919년,
조금은 늦은 나이에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일본으로 건너와 동경
스가모(巣鴨) 중학교에서 2년 동안 힘겨운 유학(留學) 생활을 보냅니다.
1921년, 한국으로 귀국한 손양원 목사님은, 경상남도 진주에 있던
[성서 학원]에 입학하여, 주기철 목사님으로부터 신학교육을 받습니다.
그리고 1925년, 신학교를 졸업한 손양원 목사님은, 부산 나환자 시설에서
헌신적으로 봉사하던 매켄지 선교사를 만나 큰 감명을 받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이 나환자(문둥병자) 중심이었던 여수 애양원 교회에 부임한 것은,
사실은 부산에서의 나환자 섬김이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애향원 교회에 부임한 손양원 목사님은, 나환자들을 정성과 사랑으로 섬기던
어느 날, 나환자 어린이들과 함께 소풍을 갔습니다.
예배를 드리고, 게임도 한 후, 도시락을 먹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나환자 어린이들은 자기들을 너무너무 사랑하는 손양원 목사님이,
혹시라도 자기들 때문에 나병에 걸릴까 봐 걱정하면서,
손양원 목사님에게서 멀리 떨어져 앉아, 자기들끼리 도시락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손양원 목사님은 아이들의 그 마음을 알고, 그들에게 가까이 가서,
서로의 도시락을 나누어 먹으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나환자 어린이들은, 목사님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 우리와 음식을 같이 드시면, 목사님도 문둥병자가 되고 말아요 !"
그러나 손양원 목사님은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아이들과 도시락을 나누어 먹었습니다.
얼굴에 따스한 미소를 띠면서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문둥병에 걸리는 것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고,
오히려 자기도 문둥병에 걸리기를 실은 바라고 있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이 애양원 교회의 나환자들을 힘껏 섬기고자 할 때,
애양원 교회의 어린이들과 달리, 어른들은 손양원 목사님을 매우 경계했습니다.
어느 날 어른 나환자들이 목사님을 이렇게 비판했습니다.
"건강한 목사님이 나환자인 우리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습니까 ?"
"건강한 목사님이 어떻게 우리를 사랑할 수 있습니까 ?"
"목사님의 모든 섬김과 행동은, 사랑을 가장(假裝)한 가식(假飾)일 뿐입니다."
그 날 이후 손양원 목사님은, 매일 매일 이런 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하나님 ! 저에게도 문둥병을 주세요.
아버지 하나님 ! 저에게도 저분들이 가진 문둥병을 주세요 !
그래서 저분들을 온몸과 마음으로 이해하며 사랑할 수 있게 해 주세요 !"
손양원 목사님은 그렇게 스스로 나환자가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손양원 목사님의 [아가페 사랑]을 통해
많은 나환자들과 사람들이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게 된 줄 믿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의 이야기를 조금 더 소개합니다.
1948년 10월, 여수와 순천 지역에서 공산주의자들이 주동한 반란(反亂)이 있었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좌익(左翼) 학생들에 의해, 손동인과 손동신, 즉 두 아들을 잃습니다.
좌익 학생들은 손양원 목사님의 두 아들을 총으로 살해한 것입니다.
여러분 ! 졸지에 두 아들을 잃은 손 목사님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까요 ?!
한편, 반란이 진압된 후, 손 목사님의 두 아들을 죽인 주모자가 경찰에 잡혔습니다.
대한민국 법은, 그에게 사형을 선고했습니다. 더구나 즉결 처분이었습니다.
바로 그때, 손양원 목사님은, 죽음 직전이던 주모자와 담당 공무원들을 찾아가,
진실한 마음과 사랑으로, 아들을 죽인 청년의 목숨을 구해 냅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두 아들을 죽인 그를, 자기 아들(養子)로 맞이합니다.
그리고 훗날 그 양아들을 목사님이 되게 하지요.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이 얼마나 놀라운 사랑입니까 !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 하나님은, 우리에게 바로 이런 사랑을 행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요한일서3:16.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キリストは私たちのために、ご自分のいのちを捨ててくださいました。
それによって私たちに愛が分かったのです。
ですから、私たちも兄弟のために、いのちを捨てるべきです。)
지금도 한국의 전라남도 여수 애양원에 가면,
손양원 목사님을 통해 역사하신 하나님의 큰 사랑이 가득하게 넘쳐나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 본향성도들이, 한 번은 꼭 애양원을 방문하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그곳에서 [아가페 사랑]을 하기 위한, 힘과 용기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참으로 교만한 우리, 참으로 완고(頑固)한 우리에게,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을 수 있는 믿음을 선물로 주신 하나님 !
그 자비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열매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 예수님을 닮기 위해,
우리가 [받은 믿음]에 더해야 할 일곱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덕입니다.
둘째, 지식입니다.
셋째, 절제입니다.
넷째, 인내입니다.
다섯째, 경건입니다.
여섯째, 형제 우애입니다.
일곱째, 사랑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사랑은, 독생자(獨生子)까지 버리신 [완전한 사랑]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예수님의 사랑은, 목숨까지 버리신 [완전한 희생의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바로 이 [아가페 사랑]을 우리도 행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함께 읽으면서, 오늘의 말씀을 마칩니다.
요한일서3:18. 자녀들아 !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子どもたち。私たちは、ことばや口先だけではなく、行いと真実をもって愛しましょう。)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