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2023년2월26일, 야고보서 1:19-27, 디모데전서 4:7-8 (인내에 경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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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 주간의 말씀을 잠시 돌아보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믿음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
우리에게 [믿음을 선물]로 주신 하나님은,
우리가 [좋은 열매를 맺는 당신의 자녀]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좋은 열매는 [우리가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한편, 우리가 예수님을 닮아가려면, 받은 믿음에 [덕을 더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가 예수님을 닮아가려면, 덕에 [지식을 더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가 예수님을 닮아가려면, 지식에 [절제를 더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가 예수님을 닮아가려면, 절제에 [인내를 더해야] 합니다.
지난 주일 말씀을 생각하며, 함께 한 지체들과 이렇게 고백합시다.
성도님 ! 상황이 아무리 어려워도, 소망을 이루기 위해,
더 열심히 일하고 행동하며 참아내는 [인내(忍耐, 휘포모네)]를 가집시다.
하나님은 가장 적당한 때에, 가장 좋은 것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오늘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좋은 열매를 맺기 위해, 믿음에 더해야 할
덕, 지식, 절제, 인내에 이어, 다섯 번째 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자 ! 무엇일까요 ?!
베드로후서의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베드로후서1:6.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知識には自制を、自制には忍耐を、忍耐には敬虔を)
그렇습니다. 경건(敬虔)입니다.
자 ! 묻습니다.
여러분 ! 어떤 크리스천이 경건한 크리스천입니까 ?!
기도를 많이 해, 약간 목소리가 쉰 듯한 신자가 경건한 성도입니까 ?!
검은색 양복을 입고, 오른손에 성경을 들고 가슴에 살짝 붙인 후,
점잖게 예배당을 향하는 신자가 경건한 성도입니까 ?!
과거 교회사(敎會史)를 보면, 세속(世俗) 즉, 세상과 떨어져서
혼자 사는 것을 경건으로 생각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일부 수도자들은 높은 절벽 꼭대기와 같은 곳에 조그만 집을 짓고,
최소한의 음식만 먹으면서 고행하며 수도하기도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이런 것이 온전한 경건일까요 ?!
경건(敬虔)은 믿음(信仰) 생활과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믿음(信仰) 생활은 지정의(知情意),
즉 지적(知的)인 것과 정적(情的)인 것과 의지적(意志的)인 것을 모두 포함하는데,
경건(敬虔)은 의지적인 측면만을 강조한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경건(敬虔)은 [행동하는 믿음(信仰)], [실천하는 신앙생활]입니다.
실제로 경건의 원문 헬라어는 [유세베이아]인데,
그 뜻은 [거룩한 생활], 또는 [거룩한 삶]입니다.
자 ! 그렇다면 여러분 !
어떤 사람이 [경건한 성도] 즉, 거룩한 삶을 사는 성도일까요 ?!
오늘 본문인 야고보서를 통해, 그 답을 마음에 새기고자 합니다.
첫째, [경건한 성도는] 고아와 과부를 돌봅니다.
야고보서1:27.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고
(父である神の御前できよく汚れのない宗教とは、
孤児ややもめたちが困っているときに世話をし、)
고아와 과부는 예로부터 지금까지, 가장 어려운 사람의 대명사입니다.
이분들이 가장 어려운 이유는, 함께 살면서 힘이 되어 주고,
언제든지 도와주며, 용기를 줄 사람이 옆에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사람을 만드실 때, 둘이 하나가 되어 서로 도와주고,
서로 힘이 될 때 비로소 온전한 삶을 살 수 있게 만드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부모에게는 자녀가 옆에 있어야 하고,
또 자녀에게는 부모가 옆에 있어야 온전해집니다.
또한, 남편에게는 아내가 옆에 있어야 하고
아내에게는 남편이 옆에 있어야 온전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
고아와 과부에게는 옆에서 도와줄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어렵고 힘든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 이분들을 누가 돌보아야 하겠습니까?
물론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이분들을 돌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성경 말씀을 통해, 지금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신명기14:29. 너희 중에 ....... 고아와 과부들이 와서 먹고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あなたの町囲みの中にいる ....... 孤児や、やもめが来て食べ、満ち足りるであろう。
それはあなたの神、主があなたのすべての手のわざを祝福してくださるためである。)
신명기24:21. 네가 네 포도원의 포도를 딴 후에, 그 남은 것을 다시 따지 말고,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남겨두라
(ぶどう畑のぶどうを収穫するときは、後になってまたそれを摘み取ってはならない。
それは寄留者や孤児、やもめのものとしなければならない。)
시편68:5. 거룩한 처소에 계신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시며 과부의 재판장이시라
(みなしごの父やもめのためのさばき人は聖なる住まいにおられる神。)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고아와 과부와 연약한 분들을 사랑으로 돕고 섬기는 우리가 됩시다.
또한, 고아와 과부와 연약한 분들을 돕는 우리 본향교회가 됩시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경건(敬虔)입니다.
둘째, [경건한 성도는] 자신을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않게 합니다.
야고보서1:27.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
(父である神の御前できよく汚れのない宗教とは、
この世の汚れに染まらないよう自分を守ることです。)
그렇습니다. 여러분 !
성도인 우리는, 세상 속에 살면서도 세상에 물들지 않고,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살고, 세상 사람들이 하는 모습을 그대로 한다면,
우리는 절대로 경건한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비록 세상 속에서 살아가지만, 세상 사람들과 다른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고,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경건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 이런 경건한 삶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탄광 안에서 일하면서, 옷을 더럽히지 말라는 말과 비슷합니다.
매운 라면을 먹으면서, 흰옷에 튀지 않게 하라는 말과도 비슷합니다.
세상 속에 살면서 보고 듣는 것이, 우리의 삶에 큰 영향을 줍니다.
세상 사람들이 사는 방식 또한, 우리의 생각에 큰 영향을 끼칩니다.
더구나 그 영향력은 절대 작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여러분 !
세상 속에서 경건하게 사는 것이 힘들다고 해서, 세상 풍조를 따라 산다면,
그 삶이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있겠습니까 ?!
물론입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우리는 경건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인 야고보서 1장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경건한 삶을 살고자 하는 우리에게, 몇 가지 중요한 지침을 가르쳐줍니다.
첫째,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라고 합니다.
본문19절.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私の愛する兄弟たち、このことをわきまえていなさい。
人はだれでも、聞くのに早く、語るのに遅く、怒るのに遅くありなさい。)
여러분 ! 우리의 경건한 삶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벽은 말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99.9%의 사람은 말에 실수가 많습니다.
야고보서3:2.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もし、ことばで過ちを犯さない人がいたら、
その人はからだ全体も制御できる完全な人です。)
그렇습니다. 우리가 열 마디 말을 하면, 한두 마디는 실수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
우리가 어떻게 해야, 말실수를 줄일 수 있습니까 ?!
물론입니다. 말을 줄이면 됩니다.
하나님께서 잠언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잠언13:3. 입을 지키는 자는 자기의 생명을 보전하나,
입술을 크게 벌리는 자에게는 멸망이 오느니라
(自分の口を見張る者はたましいを守る。
唇を大きく開く者には滅びが来る。)
4개월 전에 한 번 소개해 드렸던 이야기를 다시금 소개합니다.
옛날 어느 마을에 매우 무서운 동굴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 동굴에 들어가는 사람은, 절대로 말을 해서는 안 되고,
만약 말을 하면 그 자리에서 죽고 마는, 정말 무서운 동굴이었습니다.
하루는 이웃 마을의 3형제가 그 동굴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동굴에 들어가면서 그중 제일 큰 형이 말했습니다.
"너희들 잘 알지 ! 이곳에서 말하면 죽는다." 그러면서 그는 죽어버렸습니다.
그러자 둘째가 막내를 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것 봐, 말하면 죽지, 절대로 조심해야 해 !" 그러면서 그도 죽고 말았습니다.
그때 셋째가 힘차게 말했습니다. "나는 절대 말 안 할 거야"
결국, 셋째도 죽고 말았습니다.
둘째, 마땅히 버려야 할 것을 전부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 합니다.
본문21절.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버리고
....... 마음에 심어진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
(ですから、すべての汚れやあふれる悪を捨て去り、
心に植えつけられたみことばを素直に受け入れなさい。)
약 2년 전, 錦糸町에서 이곳으로 예배당을 옮길 때,
20년 넘게 쌓였던 물건과 책과 옷 등을 정리했습니다.
버린 것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별로 필요하지 않은 것을 버리지 않고 쌓아두면, 그로 인해
삶의 자리(공간)만 작아지고, 나중에는 그것을 버리느라 큰 고생을 하게 됩니다.
본향성도여러분 !
세상 욕심, 세상 자랑, 세상 취미, 남기지 말고 다 버립시다.
우리가 못 버리는 많은 것들이, 우리의 경건을 방해합니다.
버릴 것을 버려야, 비로소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속에 들어옵니다.
2023년 사순절이 지난 수요일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올 사순절은, 매일 한 가지씩 버리는 우리가 되기를,
주 예수님 이름으로 권면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경건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습니다.
셋째,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만 하지 말고, 지켜 행하라고 합니다.
본문22절.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みことばを行う人になりなさい。
自分を欺いて、ただ聞くだけの者となってはいけません。)
가스펠 헤럴드(Gospel Herald)에 실렸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세실 씨는 어느 날, 그의 사랑하는 어린 딸의 방에 갔습니다.
딸은 간절히 아빠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눈을 반짝이며,
몇 년 전 어떤 사람이 그녀에게 준 아름다운 구슬 상자를 아빠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그 상자를 본 아빠는, 그 구슬 상자가 아직도 예쁘다고 감탄을 하고 나서는,
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얘야, 그것을 이제는 불 속에 던져버려라.”
소녀는 매우 당황하고 망설였습니다.
너무나 아끼는 상자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구슬 상자를 불 속에 던지라는 아빠의 말은, 그녀에게 큰 시험이었습니다.
매우 놀라 당황해하는 그녀에게, 아빠가 또다시 말했습니다.
“딸아 ! 너에게 강요하지는 않겠다. 너에게 맡기겠다. 이유는 말하지 않텐데
네가 아빠를 믿는다면 그 구슬 상자를 불 속에 던져버려라.”
어린 소녀는 고민 끝에, 결국 순종하기로 마음먹고 그 상자를 불 속에 던졌습니다.
다음 날, 아빠는 그녀가 오랫동안 갖고 싶어 하던,
훨씬 더 아름다운 구슬 상자를 그녀에게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내 딸아 !
아빠가 이렇게 한 것은, 네가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신뢰하도록 가르치기 위해서였단다.
너의 인생 중에서 하나님은, 여러 차례, 네게 이유를 말씀하시지 않으면서,
포기하고 버릴 것을 요구하실 거야.
딸아 ! 그때 네가, 오늘 아빠를 믿었듯이 하나님을 믿는다면,
너는 그것이 너에게 가장 좋은 것임을 알게 될 거야.”
그렇습니다. 여러분 !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이, 경건한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막스 비어의 소설 『행복한 위선자』가 있습니다.
이 소설은, 비양심적인 사람인 [로드 조지 헬]에 관한 내용입니다.
조지는 얼굴이 사악했습니다. 마음과 행동도 악하고 비열했습니다.
그런 그가, 어느 날 예쁜 여인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한 동안을 짝사랑만 하다가,
어느 날 용기를 내어 청혼(請婚, 프러포즈)하고 싶은데,
조지는 자신의 얼굴에 대해 너무나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조지는 그 여인이 너무나 보고 싶어, 매일 밤,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몇 날을 고민하던 조지는,
가면(假面)을 만드는 유명한 [가면(假面) 장인(匠人)]을 찾아가,
자신의 사악한 얼굴을 가릴 멋진 가면을 부탁합니다.
그리고 조지는, 가면을 쓰고 그 여인에게 프러포즈합니다.
여러분 ! 어떻게 되었을까요 ?!
여인은 조지가 가면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린 것을 모르고,
프러포즈에 응하고 말았습니다.
마침내 조지는 그녀와 혼인했습니다.
그리고 조지는, 자기 얼굴의 정체를 철저하게 숨긴 채, 5년 이상 가면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조지의 친구가 조지의 집을 찾아 왔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는 조지와 장난을 치다가 그만 조지의 가면을 벗기고 말았습니다.
졸지에 당한 일이라, 조지도 어떻게 할 틈이 없었습니다.
조지의 본래 얼굴을 보게 되면,
그의 아내는 자신을 속인 조지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 분명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5년 이상 가면을 쓰고 살았던 조지의 얼굴이,
가면과 똑같은 얼굴로 변해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조지가 지난 5, 6년간, 자상하고 인자한 표정의 가면을 쓰고 사는 동안,
그 얼굴과 그 마음도, 비열하고 사악한 모습에서,
자상하고 인자한 모습으로 바뀐 것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오늘의 또 다른 본문인 디모데전서를 통해,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개역성경 디모데전서4:7-8.
7.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俗悪で愚にもつかない作り話を避けなさい。
むしろ、敬虔のために自分自身を鍛錬しなさい。)
8.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肉体の鍛錬も少しは有益ですが、今のいのちと来たるべ
きいのちを約束する敬虔は、すべてに有益です。)
이 말씀에서 [연습하라(연단하라)]의 원문 헬라어는 [귐나조]입니다.
그 뜻은, [벌거벗고 연습하라]입니다.
오늘날 운동하는 체육관을 뜻하는
짐(gymn)과 짐나지움(gymnasium)이 이 단어에서 유래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당시 경기에 참여하는 선수들은, 옷을 벗고 연습하며 시합에 참여했습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는 경건한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 경건(敬虔)은 믿음과 달리, 선물이 아닙니다.
우리가 열심히 연습하고, 또 연습해서 이루어내야 합니다.
올 사순절 동안, 마땅히 버릴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마음에 떠올리며,
주신 말씀에 순종하여, 예수님 닮는 경건한 모두가 되기를,
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할렐루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