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1월25일, 사사기 21:23-25(자기 소견(所見)에 옳은 대로 行하는 사람들의 悪) > 主日説教原稿

本文に飛ぶ
  • 日本語日本語 韓国語한글
사이트 내 전체검색

主日説教原稿

2009 2009년1월25일, 사사기 21:23-25(자기 소견(所見)에 옳은 대로 行하는 사람들의 悪)

ページ情報

profile_image
投稿者 박성철
コメント 0件 照会 13,882回 日時 09-01-31 18:23

本文

  옆에 계신 복스러운 지체들을 축복합시다.
  당신의 밝은 얼굴, 웃는 얼굴, 미소지어주는 얼굴, 다정한 얼굴은
  연약한 사람들을 살리는 참 아름다운 얼굴입니다.
  당신의 따뜻한 말 한마디는 영혼을 살리는 능력이 있습니다.

  오늘은 성경에 나타난 가장 황당한 이야기를 한 가지 소개하겠습니다.
  이 이야기는 이스라엘이 애굽을 떠나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 아직 왕이 있기 전,
  즉 사사들이 통치하고 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B. C. 1370년경)
  한 레위 사람이 에브라임 산골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에겐 첩이 있었는데, 그 첩이 바람을 핀 후 친정에 가 넉 달째 오지 않았습니다.
  이에 레위인은 첩을 데려 오기 위해 첩의 친정인 베들레헴으로 갔습니다.
  무사히 도착했고 장인에게 극진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4일 후, 이제는 떠나려 했는데 장인이 하도 붙잡아 하루를 더 있게 됩니다.
  닷새 째 되는 날 오후, 레위인은 첩과 함께 자기 집을 향합니다.
  그런데 너무 늦게 떠난 탓에 기브아라는 곳에 오니까 해가 지고 말았습니다.
  그곳은 베냐민 지파 땅이었는데 그곳에서 하루를 묵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각박한 민심으로 방을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두운 길에서 고민하고 있는데, 마침 에브라임 출신의 한 노인을 만나
  그의 호의로 그 집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여기부터 일이 벌어집니다.
  그 지방 사람이 레위인 일행이 노인의 집에 들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날밤, 불량배들이 그 노인의 집을 에워싸고 문을 두드립니다.
  사사기19:22, "네 집에 들어온 사람들을 끌어내라 우리가 그를 상관하리라"
  이들은 동성연애자들이었는데, 레위인과 관계하기를 바라고 횡포를 부리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노인이 한사코 말립니다.
  자기 집에 온 손님을 제발 건드리지 말아 달라고 거듭 거듭 부탁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한 걸음도 물러날 기미가 없었습니다.
  당장이라도 대문을 부수고 들어올 기세였습니다.
  결국 노인이 한 가지 제안을 합니다.
  자기 딸과 레위 사람의 첩을 내 줄 테니까 맘대로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불량배들은 노인의 말을 들을 태세가 아니었습니다.

  이때까지 이것을 지켜보던 레위 사람이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자기 첩을 밖으로 내 보냅니다.
  결국 불량배들은 그 여인을 밤새도록 폭행하고 새벽에 놓아줍니다.
  아침에 레위 사람이 보니까 자기 첩이 대문 앞에 쓰러져 죽어 있는 것이 아닙니까.
  레위인은 시신을 나귀에 얹어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리고는 그 시신을 열 두 토막내서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에 한 토막씩 보냅니다.
  그 후 어떻게 되었을까요 ?

  온 이스라엘에 난리가 났습니다.
  시체를 토막내는 이런 일은 지금까지 그 누구도 본 일도 없었고
  들은 적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미스바에 백성이 쏟아져 나왔는데 그 수가 어른만 40만이었습니다.
  분노한 백성들이 그 레위 사람에게 자초지종을 물었습니다.

  이에 레위 사람이 설명합니다.
 "내가 사정이 있어 베냐민 땅 기브아에 머물렀는데 그 지방 사람들이 내게 성폭행을
  하려 했고, 또 내 첩을 처참히 폭행하고 죽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저지른 이 악행을 알리기 위해 첩의 시신을 토막내서 보냈습니다"

  그러자 모든 백성들이 그 자리에서 결의를 합니다.
 "이 일이 수습될 때까지는 그 누구도 집으로 돌아가지 말자"
  그리고 곧바로 베냐민 지파로 사람을 보내서 그 불량배들을 넘기라고 합니다.
  그런데 베냐민 지파 사람들이 그 요구를 거절합니다.
  결국 이스라엘 열 한 지파와 베냐민 지파사이에 전쟁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이른바 동족상잔이 시작된 것입니다.

  베냐민 지파는 한 지파였지만 결코 만만치 않았습니다.
  특히 그들 중 기브아 출신 왼손잡이 7백 명은 특공대에 가까웠습니다.
  하지만 전체 숫자로는 이스라엘 열 한 지파가 훨씬 많았고,
  전체적인 전력 역시 베냐민 지파보다 훨씬 강했습니다.
  전쟁이 시작됐는데 처음 두 번은 베냐민 지파가 이겼습니다.
  이스라엘 연합군의 군사들 역시 용맹한 자들이었지만,
  두 차례의 싸움에서 4만 명이나 전사하고 말았습니다.
  세 번째 전투에서야 연합군은 승리를 거둡니다.
  그런데 연합군의 승리는 곧 베냐민 지파의 참패로 이어졌고,
  이스라엘 연합군은 베냐민 땅에 들어가 처참한 살육을 저질렀습니다.

  사사기20:48, "이스라엘 사람이 베냐민 자손에게로 돌아와서 온 성읍과 가축과
  만나는 자를 다 칼날로 치고 닥치는 성읍마다 다 불살랐더라"
  그 날에 도망간 병사 600명이 겨우 목숨을 건진 정도였습니다.
  이런 엄청난 결과가 난 후, 그때 비로소 이스라엘 연합군은
  자기들이 저지른 일이 얼마나 엄청난 일인지를 깨달았습니다.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 중, 한 지파가 없어질 위기에 빠졌습니다.
  이에 온 이스라엘은 600명을 살리기로 하고,
  그들에게 아내를 줘서 베냐민 지파를 보존케 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큰 문제가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연합군은 베냐민 지파와 전쟁하기 전에,
  그 누구도 자기 딸을 베냐민의 아들들에겐 주지 않기로 서원을 해버렸기 때문입니다.
  고민하던 그들에겐 묘한 방법이 떠올랐습니다.
  처음 이 사태가 터졌을 때, 미스바 총회에 단 한 명도 사람을 보내지 않은 부족이
  있었는데 바로 길르앗의 야베스 족속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연합군은 이 부족을 공격하여 처녀들을 제외한 남녀노소를 다 죽이고,
  처녀 4백 명을 베냐민 지파에게 줍니다.

  그러나 아직도 200명의 신부감이 모자랐습니다.
  그래서 연합군 지도자들이 또 꾀를 냅니다.
  당시 언약궤가 있는 실로에서는 매년 예배 축제가 열렸습니다.
  그 축제에는 이스라엘 처녀들이 춤을 추러 나오는데 그때 그 처녀들을 붙잡아서
  아내를 삼으라고 나머지 200명에게 허락을 했습니다.
  물론 그렇게 붙잡혀간 처녀들의 부모나 오빠들이 항의를 하면
  그때는 지도자들이 알아서 뒤처리를 해 주겠다는 밀약도 했습니다.

  오늘 본문23절이 이야기가 바로 이것입니다.
 "베냐민 자손이 그같이 행하여 춤추는 여자 중에서 자기들의 수효대로 아내로 붙들어
  가지고 자기 기업에 돌아가서 성읍들을 중건하고 거기 거하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
  사사기19장에서 21장에 기록된 이 이야기를 듣고 느낌이 어떻습니까 ?
  말 그대로 기괴하고, 이상야릇하고 또한 엽기적이지 않습니까 !
  대충 살펴보더라도, 이 사건에는 수많은 문제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문제1> 레위인이면 제사장이나 성전 일을 보는 사람인데 웬 첩 ?
  문제2> 마을에 온 손님을 어떻게 동성연애자로 취급 ?
  문제3> 노인이 레위 사람을 보호하려는 것은 알지만,
    그렇다고 어떻게 자기 딸과 손님의 첩을 대신 내 주겠다는 발상을 할 수 있는가 ?
  문제4> 자기 살자고 첩을 내 준 레위 사람은 과연 인간인가 ?
  문제5> 자기 대신 죽은 불쌍한 여인을 장례는커녕 열 두 토막 ?
  문제6> 어떻게 한 사람의 충동질에 온 나라가 휩쓸리나 ?
    사건을 제대로 조사할 생각을 가진 지도자가 한 명도 없었나 ?
  문제7> 베냐민 족속은 못된 불량배를 위해 웬 의미 없는 전쟁 ?
  문제8> 베냐민 지파를 보존토록 결정을 해 놓고, "자기들 딸은 줄 수 없다"
    이것은 또 무슨 궤변 ?
  문제9> 베냐민 지파 신부감을 구하기 위해 애매한 한 부족의 씨를 말리는
    이스라엘 연합군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 ?
  문제10> 모자란 신부를 충당하기 위해 예배에 온 여인들을 보쌈을 하라 ?
    이들이 과연 하나님을 믿는 백성인가 ? 그들이 과연 선민인가 ?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지금 이들에게 올바른 가치관이 있기는 있습니까 ?
  무엇이 이들의 삶의 기준이고, 행동의 지표입니까 ?
  오늘 본문은 이들을 이렇게 말합니다.
  본문25절, "그 때에 ...... 사람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그렇습니다. 이것이 당시의 사회상이었습니다.
 "너희들은 떠들어라 니들이 뭐라 하든 나는 내 맘대로 살겠다"
  그런데, 여러분 ! 이러한 생각은 비단 오늘 본문만의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사는 지금, 이 세상이 돌아가는 것을 보십시오.
  본문의 사건보다 훨씬 심한 일들이 우리 주변에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것도 매일 매일 말입니다. 뉴스를 보면 정말 황당합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들이 확실히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은 결코 선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냥 두면 금방 악해 집니다.
  본색을 드러냅니다.
  성경을 펴서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보십시오.
  인간에 대해 무엇이 느껴집니까 ?
  그렇습니다. 인간은 죄악의 덩어리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진단하시고 내 놓은 결론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을 읽고 들을수록 내 자신이 엄청난 죄인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도저히 온전히 살 방법이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성자(聖者)는 다른 사람이 성자가 아니라 내가 너무나 추악한 죄인이라는 것을
  뼈에 사무치도록 느끼는 사람이 聖者입니다.
  우리가 나아갈 목표가 '거룩'이고 '예수를 닮아 가는 것'이라면
  우리가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본문25절을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무엇이 없다고요 ? '왕이 없으므로'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사람은 자신을 강력하게 통제하는 존재가 없으면 필경은 망합니다.
  자기 생각대로만 살다가, 점점 목표를 잃어버리고, 의미 없는 삶, 엉뚱한 삶을 살다가
  결국은 인생의 끝을 맞이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부분을 오해하지 마십시오.
  오늘 본문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의 의미는 그 말이 아닙니다.
  실제로 사사 시대가 끝나고 사무엘 시대에 이스라엘이 왕을 세우려 할 때,
  하나님께서 매우 슬퍼하셨습니다.
  이렇듯 오늘 본문의 왕은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왕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을 주관하시는 만왕의 왕, 즉 하나님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인간이란 존재는 언제나 마음에 왕을 모시고(두고) 사는 존재입니다.
  누군가가 만물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자신의 왕으로 믿지 않고 있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 대신 다른 어떤 것을 자신의 왕으로 삼고 살아갑니다.

  예를 들면, 그에게는 다른 우상이 왕이든지, 혹은 자식이, 혹은 돈이, 혹은 명예가,
  혹은 권력이, 혹은 자기 자신이 그의 왕입니다.
  사사기에는 '왕이 없으므로'는 말씀이 여러 번 등장합니다.
  이 말씀은 오직 한 분이신 왕을 버리고 자신의 소견을 왕으로 삼고 살아가는
  이스라엘을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탄식인 것입니다.

  저는 오늘 소개한 말씀을 통해, 우리들이 하나님을 우리 인생의 유일한 왕으로
  모시고 살아가야 하는 가장 핵심적인 교훈 외에 두 가지 교훈을 얻고자 합니다.

  오늘 이런 비극적인 일의 시발점은 역시 한 레위 사람이었습니다.
  만약, 이 레위인이 정말 레위인답게 살았더라면 오늘 같이 괴상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당시 레위인은 제사장이든지 아니면 제사장을 도와 성전 일을 보는 사람입니다.
  먹고사는 것도 다른 열 한 지파가 다 책임져 줍니다.
  그러므로 레위인들의 최고, 최선의 임무는 하나님의 전에서 자기 책무를
  다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직분에 맞게 성결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이 레위인의 모습을 보십시오.
  어떻게 성직자가 첩을 두며, 또한 자기 살겠다고 연약한 여인을 사지로 밀어냅니까 ?
  더구나 백성들 앞에서 사건 경위를 말할 때는 자기에게 유리한 말만하지,
  자기가 저지른 악행은 말하지 않습니다.
 "나 살자고 아내를 불량배 놈들에게 내 주었습니다. 밤새 남자들에게 시달리다
  다 죽어 돌아왔을 때, 빨리 조치를 취했어야 했는데
  아침까지 그냥 놓아두고 말았습니다. 사실은 내가 죽인 거나 다름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레위인은 레위인답게 살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한 레위인 때문에 민족적 비극이 일어났다면,
  만약에 우리 교회같이 작은 공동체에서 레위인 하나가 잘못되면
  우리 모두가 망가지는 건 시간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레위인이 레위인답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이 시대에 누가 레위인입니까 ?

  첫째, 목사인 저와 이 목사님, 사모님 등이 레위인입니다.
  여러분의 목사이기 때문에 저를 위해 기도하시라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잘못되면 여러분까지 잘못되기 때문에, 어쩌면 이 땅에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그 여파가 갈 수 있기에 기도하시라는 것입니다.
  수많은 유혹들이 우리들 앞에 있습니다. 앞장 선 자로서 스스로 시험에 들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는 것은 물론이고, 기도의 동역자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둘째, 본향의 집사님, 권찰님들이 레위인입니다.
  고린도후서6:1에서 바울은 자신, 그리고 자신과 함께 복음을 위해 힘쓰는 청지기들을
  향해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라 했습니다.
  또한 로마서16:3에서는, 브리스길라 집사 부부를 향해 '동역자'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함께 하는 자'의 의미입니다.

  오늘 함께 하신 사랑하는 여러분 !
  본향의 집사님, 권찰님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이분들이 성령충만하여 복음을 전하고, 뜨겁게 하나님을 섬기며,
  겸손히 본향의 지체들을 섬길 때, 우리 교회는 놀랍게 부흥합니다.

  셋째, 우리들 모두가 레위인입니다.
  베드로전서2:9절에 보면,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모두 왕 같은 제사장입니다. 즉, 레위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모두 레위인의 사명을 감당하며 살아야 합니다.
  베드로는 우리를 향해 제사장이라 축복하면서, 이어 이런 권고를 했습니다.

  베드로전서2:11-12절, "사랑하는 자들아 .......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권고하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그렇습니다. 육체의 정욕, 즉 인간의 썩어질 욕망을 제어해야 합니다.
  욕심과 욕망으로 살지 말고,
  오직 말씀을 따라,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또한 세상 속에서도 선한 삶, 정직한 삶, 사랑을 베푸는 삶을 살아,
  예수를 모르는 사람들조차도 여러분과 저를 보고 하나님을 찬양하게끔 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레위인의 사명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레위인의 사명을 간직하고 아름다운 삶을 사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둘째, 오늘 본문의 사건을 통해 마지막으로 나눌 교훈은 이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레위인의 영적 생활을 한 번 보십시오.
  레위인은 첩의 집에서 무려 닷새를 머물렀습니다. 그 닷새 동안 무엇을 했습니까 ?
  사사기19:4-6을 보면, 먹고 마시고 즐겼습니다.
  그런데 이 레위 사람의 집이 에브라임의 산골짜기였고,
  아내의 집은 베들레헴이었으므로, 이틀이 걸리는 거리입니다.
  그렇다면, 머문 날자 5일과, 오고 간 날자 3-4일을 합하면 분명히 중간에
  안식일이 끼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안식일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그가 에브라임 산골짝에 살았다는 것을 보면,
  그는 분명 레위 지파의 사명을 던져버린 자입니다.
  왜냐하면, 그곳에는 성전도 예배의 처소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많은 레위인들은 이렇듯 사명과 예배에 대해 관심이 없었습니다.
  레위인이 그러하니 다른 보통 이스라엘 사람들이야 오죽했겠습니까 ?
  한 마디로 당시 이스라엘은 예배가 완전히 무너진 상태였습니다.
  이스라엘은 예배공동체입니다. 마치 우리 본향교회가 예배공동체인 것처럼 말입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예배가 무너지면 그들의 모든 것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예배만큼은 가장 귀하게 구별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방족속들의 행위를 부러워하고 배워갔습니다.
  당시 이방인들은 신상 하나를 세워놓고 거기에다 간단히 제사했습니다.
  이스라엘이 볼 때 그것은 너무나 간편해 보였습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간편하게 예배드립니다. 예배를 대충 때웁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인터넷으로 자기 방에서 앉아 예배를 드렸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절대로, 절대로 예배를 쉽게 대충 드려, 치울 생각을 해서는 안됩니다.
  어렵게 힘들게 벌벌 떨면서 드리십시오.
  예배를 드리고 나면 온 몸에 힘이 다 빠져야 합니다. 정성도 빠지고, 시간도 빠지고,
  마음도 빠져야 합니다. 최선을 다한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그 정도가 되어야 여러분의 마음에 위로부터의 놀라운 평안과 기쁨이 찾아옵니다.

  여러분 ! 단 한 번의 온전한 예배로 인생이 바뀝니다. 한 주간에 바뀝니다.
  예배 한 번에 전심을 다 하십시오. 예배 한 번에 목숨을 거십시오.
  이시간 다른 생각일랑 말고 하나님에 대한 갈망으로 여러분의 마음을 채우십시오.
  하나님의 임재가 여러분에게 가득하도록 하나님만 바라고,
  그 분의 손이 아니라 얼굴을 바라보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의 평강이 여러분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여러분을 적실 것입니다.

  여러분 ! 본문의 이스라엘 사람들이 얼마나 예배를 우습게 알았으면,
  예배를 드리러 온 여인들을 납치하라고 했겠습니까 ?
  성도여러분 ! 이렇듯 온전한 예배가 사라지면 엽기적인 일들만 일어납니다.
  더구나 온전한 예배가 없는 곳에 온전한 기도도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온전한 예배를 드려야 비로소 온전한 기도도 드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베냐민 지파와의 전쟁을 앞두고 이스라엘 연합군은 나름대로 기도도 하고,
  예배도 드렸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첫 기도의 내용이 무엇이었을까요 ?

  사사기20:18 "...... 우리 중에 누가 먼저 올라가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 ......"
  여러분 ! 전쟁처럼 큰 문제를, 그것도 동족과 싸우는 큰 문제를 앞두고 그들이 제사를
  드리면서 가장 먼저 기도한 것이 "누가 먼저 가서 싸울까요 ?"입니다.

  여러분 ! 이 기도가 옳은 기도입니까 ?
  이런 중대한 문제를 두고 전쟁을 시작하려 한다면 먼저
 "하나님 이 전쟁은 옳은 것입니까 ?
  우리가 전쟁을 시작해야 될 명분이 있는 것입니까 ?
  하나님의 뜻은 어디에 있습니까 ?"하며 물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
  그런데 "전쟁은 피할 수 없다"고 다 정해놓고 기도합니다.
  여러분 ! 이것이 기도입니까 ? 아니 여러분은 혹 이런 기도하지 않습니까 ?
  이렇게 기도하니까 하나님이 온전히 응답하시겠습니까 ?

  마치 집안에 어른이 계신데, 자식들이 모든 일 자기들 마음대로 하다가,
  어쩌다 한 번 와서 "이렇게 하기로 했는데, 그래도 되겠습니까 ?"하고 물으면
  어떻게 대답합니까 ?
  그렇지요. 이것입니다. "알아서(네 마음대로) 해라"
  우리들이 그렇습니다. 평소는 내 마음대로 살고, 내 생각대로 살고,
  내 욕심대로 살다가, 조금 어려운 일 있으면 그때 겨우 기도하고 예배합니다.

  그런데 이미 나름대로 대책은 다 세우고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그리고 나가서 자신이 세운 방법과 대책대로 하니 십중팔구 일이 더 꼬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다시 하나님 앞에 엎드려 뭐라고 하는지 여러분 잘 아시지요 !
 "하나님이 나가라고 해서 나갔는데 왜 지게 했습니까 ?"
 "기도하고 나갔는데 왜 일이 더 꼬입니까 ?" "하나님이 계시긴 계십니까 ?"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 이것은 더 이상 기도가 아닙니다.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의 소견은 참으로 좁습니다. 더구나 믿을 것이 못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소견대로, 생각대로 살지 맙시다.
  우리의 왕 되신 하나님께 모든 것 내려놓고 묻고, 깨닫고 삽시다.
  하나님은 온전히 예배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온전한 뜻을,
  말씀을 통해 應答하십니다.

  여러분 ! 우리는 왕 같은 제사장이며 레위인입니다.
  우리는 절대로 막 살아서는 안됩니다.
  우리를 통해 사람들이 예수님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때문에 이 땅의 사람들이 하나님께 나오고 싶은 마음을 갖게 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온전한 예배를 회복합시다.
  온 정성을 다해 진액(津液)을 쏟아 붇는 간절한 예배를 이제는 드립시다.
  이 번 한 주간도 주님 안에서 빛을 발하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コメント一覧

Total 947件 61 ページ
  • RSS
主日説教原稿 リスト
番号 タイトル 投稿者 照会 日付
게시물이 없습니다.

検索

会員ログイン

新規会員登録へ

サイト情報

〒132-0024 東京都江戸川区一之江2丁目6-1 1F
1F 6-1 Ichinoe2 Chome, Edogawa-Ku, Tokyo, Japan
phone : 090-1501-8465

アクセス者集計

今日
2,294
昨日
3,873
最大
5,398
全体
1,974,486
Copyright © 本郷宣教教会.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