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2009년4월26일, 고린도전서9:16-23(복음을 위해 힘쓰는 본향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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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 계신 복스러운 지체들에게 이렇게 축복합시다.
당신은 하나님의 재산을 맡고 계신 하나님의 충성된 자녀입니다.
작은 일에 충성한 당신에게 하나님은 더 많은 것을 맡기실 것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때의 일입니다.
독일군과 연합군이 치열한 총격전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처절한 정도의 전투를 마치고 연합군 병사 한 사람이
자신의 막사(幕舍)로 돌아 왔는데, 절친한 동료 병사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리저리 찾아 헤매었지만 도저히 찾을 수 없었습니다.
이에 병사는 중대장에게 이렇게 보고했습니다.
"친구가 보이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조금 전의 전투에서 큰 어려움에 빠진 것 같습니다.
돌아가서 친구를 찾아보고 싶습니다."
중대장은 그 병사를 이렇게 만류했습니다.
"그곳은 매우 위험한 곳이다.
네가 지금 그곳에 가면, 너마저 위험에 처할 것이다.
더구나 너의 친구가 아직 돌아오진 않은 것을 보아서는 혹 죽었거나,
분명 큰 부상을 당했을 것이니 네가 가도 소용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병사는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병사는 중대장의 만류를 뿌리치고 총알이 빗발치는 격전지로 달려갔습니다.
뒹구는 수많은 시신들을 찾아 헤맨 끝에 총을 맞고 피를 흘리며 숨을 헐떡이며
죽어가고 있는 친구를 드디어 찾았습니다.
그러나 잠시 후, 그 친구는 결국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병사는 자기의 자리로 다시 돌아와 상황을 중대장에 보고했습니다.
보고를 받은 중대장이 책망하며 말합니다.
"그것 봐라, 어차피 죽을 것이었는데,
그 위험한 곳까지 왜 너의 귀중한 목숨을 걸고 갔느냐 !"
그때 병사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중대장님, 제가 그 친구를 찾아간 것은 정말 잘한 일이었습니다.
제가 갔을 때 그 친구는 숨을 헐떡거리며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친구야 ! 나는 네가 꼭 올 줄 알았어"
"그리고 더욱 놀라운 일은, 그 친구가 숨을 거두기 전에,
저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천국을 향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만물이 새 봄의 기운으로 나날이 성장하는 화창한 이 봄날에도,
차갑게 닫혀진 마음과 어두움의 처소에서
아직도 봄을 기다리고 있는 영혼들이 이 땅에는 정말로 많습니다.
그들의 지친 영혼은 우리들을 향해 이렇게 외치고 있을지 모릅니다.
"도와주세요. 도저히 홀로서는 일어날 수 없어요."
어떤 사람이 길을 가다가, 강도를 만나, 자기의 가진 모든 것을 빼앗기고,
심한 폭행을 당해 거의 죽게 되어 길가에 버려졌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고 싶었지만, 도움을 요청할 조그마한 힘도 없었습니다.
바로 그때, 한 제사장(성직자)이 그의 옆을 지나갔습니다.
이 사람은 생각했습니다.
"이제는 살았다. 저 제사장이 분명히 날 도와줄꺼야 !"
그러나 제사장은 죽어 가는 이 사람을 분명히 보았지만,
오히려 그를 피해 지나가 버렸습니다.
잠시 후, 한 레위인(교회 직분자)이 그곳을 지나갔습니다.
강도를 만난 사람은 또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이제야 말로 살았다. 저 레위인은 분명 날 도와주겠지 !"
그러나 레위인 역시 이 사람을 피해 지나가 버렸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
우리들 주위에서 인생을 송두리째 빼앗겨
신음할 힘조차 남지 않은 사람들의 고통이 보여지지 않습니까 ?
지난3월 일본정부로부터 발표된 통계에 의하면,
지난10년 동안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본인의 수가 매년 3만 명을 훨씬 넘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이 땅의 교회와 성도들로부터 사랑과 위로를 받기를 간절히 기다렸을 지도 모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가 왜 강도 만난 사람,
마음에 병이 든 사람,
홀로 일어 날 힘조차 없는 사람들에게 나아가야 합니까 ?
첫째, 그것은 주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전도와 구제, 사랑은 우리를 향한 예수 그리스도의 엄숙한 명령입니다.
누구도 피해갈 수 없고 누구도 외면할 수 없는 주님의 명령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도 이 명령을 거부해서는 안됩니다.
주님은 우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부르셨습니다.
우리들이 직장에 출근하든, 사업을 운영하든, 학교에 등교하든
우리들은 사람 낚는 어부로 부름 받은 것입니다.
우리들의 삶의 현장에서 영혼을 낚는 거룩한 어부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들의 믿음의 선배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사도행전20:24,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무슨 말입니까 ?
연약한 영혼을 건지는 일을 위해서는 자신의 생명을 버려도 괜찮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바울은 오늘 본문16절에서,
연약한 사람들에게 복된 소식을 전하는 일은,
자기가 좋으면 하고 싫으면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니라,
부득불(不得不, 하는 수 없이) 행해야 하는 것임을 강조합니다.
본문16절, "내가 복음을 傳할찌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
물론입니다.
가끔은 영혼을 사랑하고, 하나님 사명을 감당하는 일에 장애가 생기고,
어려움이 생기고, 때로는 전혀 하기 싫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라도 감당해야 할 일이 이 땅 일본의 영혼을 사랑하며,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는 일입니다.
앞에 앉은 찬양 대원 여러분 !
여러분은 찬양 대원을 좋아서 하십니까 ? 할 수 없이 하십니까 ?
그렇습니다. 아마 10번 중에 9번은 좋아서 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가끔은 찬양대 석에 앉고 싶지 않을 때도 있지요 ?
당연히 앉아야 하지만 '오늘은 기분도 별로 좋지 않고,
또 감기 때문에 목소리도 나오지 않고' 그래서 쉬고 싶은 날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
찬양대는 싫다고 쉬고, 좋다고 하고 하는 그런 자리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찬양의 제사를 드리는 자리로서,
목숨을 다하여 지켜야 하는 자리입니다.
사명이 무엇입니까 ?
그것은 하기 싫어도 억지로라도 하는 것, 그것이 사명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들에게 복음 전파의 사명, 영혼 사랑의 사명이 주어진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때론 그 일이 하기 싫어도, 피해가고 싶어도,
그러나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명이 바로 복음 전파입니다.
영혼 사랑인 것입니다.
한국의 어느 교회에서 있었던 일을 소개하겠습니다.
주일 오전에는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주일 오후에는 전도하는 습관을 가진 한 성도가 있었습니다.
다른 날은 바빠서 전하지 못하니 主日 만큼은 꼭 전도하자는 간절한 마음으로
몇 년 간을 그렇게 행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주일 날,
그날 따라 날씨도 차고, 비도 오고, 몸도 으슬으슬 춥고,
코끝이 간지러운 것이 감기 기운까지 있었습니다.
전도하러 가기 싫은 마음에 침대에서 뒹굴 거리고 있는데
일곱 살짜리 아들이 와서 말을 겁니다.
"아빠, 오늘은 왜 전도 안 나가세요 ?"
"응 ! 비도 오고, 몸도 으슬으슬 춥고 ..... 오늘은 쉬려고 해 !"
"아빠, 이렇게 비가 오고 추운 날은 하나님이 전도하는 것을 안 좋아 하시나보죠 ?"
"아니 ... 그건 아니고 아빠가 좀 피곤해서 그래 !?"
"그럼 아빠 ! 아빠 대신 제가 전도하러 가면 안 되요 ?"
"그래 ? 음... 그럼 조금만 가지고 가서 얼른 돌리고 돌아와야 돼 !"
일곱 살짜리 아이가 아빠를 대신해서 전도하러 갔습니다.
비가 오기 때문에 사람들을 길에서 만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간혹 만나는 사람에게 "안녕하세요 ! 예수님 꼭 믿으세요 !"라고
말을 건네며 전도지를 주었습니다.
가져온 전도지를 다 돌리고 마지막 한 장이 남았습니다.
만나서 누굴 주려는데 아무도 지나가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어떤 집 대문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래, 이 마지막 장을 여기 사는 분에게 드려야겠다."싶어 초인종을 눌렀습니다.
한번 눌렀는데 아무런 응답이 없었습니다.
두 번째 눌러도 반응이 없었습니다.
세 번째 눌렀더니 그제야 무거운 발자국 소리가 들렸습니다.
문이 삐걱 열리는데 보니, 아주 초췌한 모습의 아주머니 한 분이 나왔습니다.
아이는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건네고는 전도지를 전해주며
"아줌마도 예수님 믿으세요. 예수 믿으면 행복해져요"하고 인사를 건네고는
종종걸음을 치며 집에 돌아왔습니다.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나 主日이 되었습니다.
아이가 다니는 교회에 한 중년 부인이 새로 나와 목사님을 찾았습니다.
그 부인은 목사님께 이러한 사정을 고백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2년 전, 사랑하는 남편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두 달 전에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마저 불치의 병으로 고통 하다가
제 곁을 떠났습니다. 저는 의지할 모든 것을 잃어 버렸습니다.
하루에도 수 없이 외로움과 두려움이 저를 괴롭혔습니다.
심한 우울증이 저를 찾아 왔습니다.
마침내 비 오는 지난주일 오후, 저는 스스로 목숨을 끊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막 목숨을 끊으려는 순간, 누가 초인종을 눌렀습니다.
한번 누르고는 가겠지 했는데 두 번째 또 눌렀습니다.
조금 있다 가겠지... 세 번째 또 울렸습니다.
무슨 일인가 하여 문을 열었더니 제 앞에 천사가 서 있었습니다."
"아이가 전해주는 전도지를 받는 순간, 제 눈에 한 문장이 들어왔습니다."
마태복음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저는 그 문장을 보는 순간 제가 어릴 때 시골에서 주일학교에 다닐 때
우리 교회 앞에 써 있던 글귀가 생각났습니다.
저도 모르게 그 순간 저의 무거운 인생의 모든 짐을
예수 그리스도께 다 내어드렸습니다.
제 마음속에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저는 이제 죽지 않고 살기로 다짐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복음 전파, 영혼 사랑은 때로는 하기 싫어도 부득불,
억지로라도 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둘째, 왜 우리들이 강도를 만난 사람에게 나아가야 합니까 ?
그것은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사랑 때문입니다.
로마서5:8절,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
죄로 인해 영원히 멸망 받을 우리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내가 매달려야 할 십자가의 자리에 주님이 대신 달리신 것입니다.
내가 맞아야 할 채찍을 그 분이 대신 맞으셨습니다.
내가 당해야 할 수치와 모욕을 그 분이 대신 담당하셨습니다.
이사야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바울은 본문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본문19절, "내가 모든 사람에게 자유(自由)하였으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그렇습니다.
그는 종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최고로 인정받는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가말리엘 문하 출신으로
학문에도 매우 깊은 실력을 갖춘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이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모든 자유를 던져 버리고 오히려 스스로 종이 되었습니다.
왜 입니까 ?
많은 사람을 그리스도의 사랑의 자리로 인도하고 싶어서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가 종이 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
내가 누릴 수 있는 모든 특권과 자유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인에게 예속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종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종(從)이십니까 ?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 전,
한 외국인 선교사가 자신의 고향과 가족과 말(言語)을 버리고,
조선의 원산에 와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아무도 가려하지 않는 시골에서 농민들과 함께 살았습니다.
더구나 도포를 입고 갓을 쓰고 한글을 배우고 농사를 지으면서 생활했습니다.
그 분이 얼마나 한글에 능통했는지 한글로 농담을 할 정도였습니다.
이 분이 장날에 시장엘 가면 아주 재미있는 일을 한답니다.
시장에서 잣을 파는 곳에 가서 잣 장사에게 묻는 답니다.
"이게 뭐요 ?"
그러면 주인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잣이오(자시오) !"
그러면 잣을 맛있게 집어먹었다고 합니다.
그런 다음에 자신의 갓을 가리키며 "이것은 뭐요 ?"라고 물으면,
주인이 대답하기를, "갓이오(가시오) !"라고 대답하면
자신의 갈 길을 총총히 갔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왜, 이 선교사님이 이렇게 조선과 한글을 그 정도까지 공부했습니까 ?
그렇습니다. 조선과 조선의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이 그 속에 간절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이 땅 일본을, 그리고 이 땅의 지체(영혼)들을 더욱 사랑합시다.
영혼의 사랑을 위해, 일본을 더욱 공부합시다.
언어도 더욱 열심히 갈고 닦아, 깊이 있는 실력을 갖춥시다.
왜 입니까 ?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빗진 자이기 때문입니다.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는 오늘 세 번째 맞는 코리안 파티를 맞이합니다.
지난 몇 주간,
우리 본향의 지체들은 이 땅의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 일을 준비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분명, 강도 만난 자와 같이 영혼에 깊은 상처를 가진 분들이
우리 본향의 자리에 나아올 것입니다.
그들을 사랑으로 섬깁시다.
따뜻함으로 감싸줍시다.
겉모습으로 볼 때는 훌륭해 보일지 몰라도,
그들은 모두 지금 이 상태로는 지옥 불에 던져질 불쌍한 영혼들입니다.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께서 분명 우리들을 통해 놀라운 일을 오늘 이루실 줄 믿습니다.
이 일에 협력하는 여러분 모두에게
하나님의 놀라운 은총이 가득하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할렐루야 !
당신은 하나님의 재산을 맡고 계신 하나님의 충성된 자녀입니다.
작은 일에 충성한 당신에게 하나님은 더 많은 것을 맡기실 것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때의 일입니다.
독일군과 연합군이 치열한 총격전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처절한 정도의 전투를 마치고 연합군 병사 한 사람이
자신의 막사(幕舍)로 돌아 왔는데, 절친한 동료 병사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리저리 찾아 헤매었지만 도저히 찾을 수 없었습니다.
이에 병사는 중대장에게 이렇게 보고했습니다.
"친구가 보이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조금 전의 전투에서 큰 어려움에 빠진 것 같습니다.
돌아가서 친구를 찾아보고 싶습니다."
중대장은 그 병사를 이렇게 만류했습니다.
"그곳은 매우 위험한 곳이다.
네가 지금 그곳에 가면, 너마저 위험에 처할 것이다.
더구나 너의 친구가 아직 돌아오진 않은 것을 보아서는 혹 죽었거나,
분명 큰 부상을 당했을 것이니 네가 가도 소용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병사는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병사는 중대장의 만류를 뿌리치고 총알이 빗발치는 격전지로 달려갔습니다.
뒹구는 수많은 시신들을 찾아 헤맨 끝에 총을 맞고 피를 흘리며 숨을 헐떡이며
죽어가고 있는 친구를 드디어 찾았습니다.
그러나 잠시 후, 그 친구는 결국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병사는 자기의 자리로 다시 돌아와 상황을 중대장에 보고했습니다.
보고를 받은 중대장이 책망하며 말합니다.
"그것 봐라, 어차피 죽을 것이었는데,
그 위험한 곳까지 왜 너의 귀중한 목숨을 걸고 갔느냐 !"
그때 병사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중대장님, 제가 그 친구를 찾아간 것은 정말 잘한 일이었습니다.
제가 갔을 때 그 친구는 숨을 헐떡거리며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친구야 ! 나는 네가 꼭 올 줄 알았어"
"그리고 더욱 놀라운 일은, 그 친구가 숨을 거두기 전에,
저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천국을 향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만물이 새 봄의 기운으로 나날이 성장하는 화창한 이 봄날에도,
차갑게 닫혀진 마음과 어두움의 처소에서
아직도 봄을 기다리고 있는 영혼들이 이 땅에는 정말로 많습니다.
그들의 지친 영혼은 우리들을 향해 이렇게 외치고 있을지 모릅니다.
"도와주세요. 도저히 홀로서는 일어날 수 없어요."
어떤 사람이 길을 가다가, 강도를 만나, 자기의 가진 모든 것을 빼앗기고,
심한 폭행을 당해 거의 죽게 되어 길가에 버려졌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고 싶었지만, 도움을 요청할 조그마한 힘도 없었습니다.
바로 그때, 한 제사장(성직자)이 그의 옆을 지나갔습니다.
이 사람은 생각했습니다.
"이제는 살았다. 저 제사장이 분명히 날 도와줄꺼야 !"
그러나 제사장은 죽어 가는 이 사람을 분명히 보았지만,
오히려 그를 피해 지나가 버렸습니다.
잠시 후, 한 레위인(교회 직분자)이 그곳을 지나갔습니다.
강도를 만난 사람은 또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이제야 말로 살았다. 저 레위인은 분명 날 도와주겠지 !"
그러나 레위인 역시 이 사람을 피해 지나가 버렸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
우리들 주위에서 인생을 송두리째 빼앗겨
신음할 힘조차 남지 않은 사람들의 고통이 보여지지 않습니까 ?
지난3월 일본정부로부터 발표된 통계에 의하면,
지난10년 동안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본인의 수가 매년 3만 명을 훨씬 넘고 있습니다.
어쩌면 그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이 땅의 교회와 성도들로부터 사랑과 위로를 받기를 간절히 기다렸을 지도 모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가 왜 강도 만난 사람,
마음에 병이 든 사람,
홀로 일어 날 힘조차 없는 사람들에게 나아가야 합니까 ?
첫째, 그것은 주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전도와 구제, 사랑은 우리를 향한 예수 그리스도의 엄숙한 명령입니다.
누구도 피해갈 수 없고 누구도 외면할 수 없는 주님의 명령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도 이 명령을 거부해서는 안됩니다.
주님은 우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부르셨습니다.
우리들이 직장에 출근하든, 사업을 운영하든, 학교에 등교하든
우리들은 사람 낚는 어부로 부름 받은 것입니다.
우리들의 삶의 현장에서 영혼을 낚는 거룩한 어부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들의 믿음의 선배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사도행전20:24,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무슨 말입니까 ?
연약한 영혼을 건지는 일을 위해서는 자신의 생명을 버려도 괜찮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바울은 오늘 본문16절에서,
연약한 사람들에게 복된 소식을 전하는 일은,
자기가 좋으면 하고 싫으면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니라,
부득불(不得不, 하는 수 없이) 행해야 하는 것임을 강조합니다.
본문16절, "내가 복음을 傳할찌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
물론입니다.
가끔은 영혼을 사랑하고, 하나님 사명을 감당하는 일에 장애가 생기고,
어려움이 생기고, 때로는 전혀 하기 싫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라도 감당해야 할 일이 이 땅 일본의 영혼을 사랑하며,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는 일입니다.
앞에 앉은 찬양 대원 여러분 !
여러분은 찬양 대원을 좋아서 하십니까 ? 할 수 없이 하십니까 ?
그렇습니다. 아마 10번 중에 9번은 좋아서 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가끔은 찬양대 석에 앉고 싶지 않을 때도 있지요 ?
당연히 앉아야 하지만 '오늘은 기분도 별로 좋지 않고,
또 감기 때문에 목소리도 나오지 않고' 그래서 쉬고 싶은 날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
찬양대는 싫다고 쉬고, 좋다고 하고 하는 그런 자리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찬양의 제사를 드리는 자리로서,
목숨을 다하여 지켜야 하는 자리입니다.
사명이 무엇입니까 ?
그것은 하기 싫어도 억지로라도 하는 것, 그것이 사명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들에게 복음 전파의 사명, 영혼 사랑의 사명이 주어진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때론 그 일이 하기 싫어도, 피해가고 싶어도,
그러나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명이 바로 복음 전파입니다.
영혼 사랑인 것입니다.
한국의 어느 교회에서 있었던 일을 소개하겠습니다.
주일 오전에는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주일 오후에는 전도하는 습관을 가진 한 성도가 있었습니다.
다른 날은 바빠서 전하지 못하니 主日 만큼은 꼭 전도하자는 간절한 마음으로
몇 년 간을 그렇게 행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주일 날,
그날 따라 날씨도 차고, 비도 오고, 몸도 으슬으슬 춥고,
코끝이 간지러운 것이 감기 기운까지 있었습니다.
전도하러 가기 싫은 마음에 침대에서 뒹굴 거리고 있는데
일곱 살짜리 아들이 와서 말을 겁니다.
"아빠, 오늘은 왜 전도 안 나가세요 ?"
"응 ! 비도 오고, 몸도 으슬으슬 춥고 ..... 오늘은 쉬려고 해 !"
"아빠, 이렇게 비가 오고 추운 날은 하나님이 전도하는 것을 안 좋아 하시나보죠 ?"
"아니 ... 그건 아니고 아빠가 좀 피곤해서 그래 !?"
"그럼 아빠 ! 아빠 대신 제가 전도하러 가면 안 되요 ?"
"그래 ? 음... 그럼 조금만 가지고 가서 얼른 돌리고 돌아와야 돼 !"
일곱 살짜리 아이가 아빠를 대신해서 전도하러 갔습니다.
비가 오기 때문에 사람들을 길에서 만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간혹 만나는 사람에게 "안녕하세요 ! 예수님 꼭 믿으세요 !"라고
말을 건네며 전도지를 주었습니다.
가져온 전도지를 다 돌리고 마지막 한 장이 남았습니다.
만나서 누굴 주려는데 아무도 지나가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어떤 집 대문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래, 이 마지막 장을 여기 사는 분에게 드려야겠다."싶어 초인종을 눌렀습니다.
한번 눌렀는데 아무런 응답이 없었습니다.
두 번째 눌러도 반응이 없었습니다.
세 번째 눌렀더니 그제야 무거운 발자국 소리가 들렸습니다.
문이 삐걱 열리는데 보니, 아주 초췌한 모습의 아주머니 한 분이 나왔습니다.
아이는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건네고는 전도지를 전해주며
"아줌마도 예수님 믿으세요. 예수 믿으면 행복해져요"하고 인사를 건네고는
종종걸음을 치며 집에 돌아왔습니다.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나 主日이 되었습니다.
아이가 다니는 교회에 한 중년 부인이 새로 나와 목사님을 찾았습니다.
그 부인은 목사님께 이러한 사정을 고백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2년 전, 사랑하는 남편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두 달 전에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마저 불치의 병으로 고통 하다가
제 곁을 떠났습니다. 저는 의지할 모든 것을 잃어 버렸습니다.
하루에도 수 없이 외로움과 두려움이 저를 괴롭혔습니다.
심한 우울증이 저를 찾아 왔습니다.
마침내 비 오는 지난주일 오후, 저는 스스로 목숨을 끊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막 목숨을 끊으려는 순간, 누가 초인종을 눌렀습니다.
한번 누르고는 가겠지 했는데 두 번째 또 눌렀습니다.
조금 있다 가겠지... 세 번째 또 울렸습니다.
무슨 일인가 하여 문을 열었더니 제 앞에 천사가 서 있었습니다."
"아이가 전해주는 전도지를 받는 순간, 제 눈에 한 문장이 들어왔습니다."
마태복음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저는 그 문장을 보는 순간 제가 어릴 때 시골에서 주일학교에 다닐 때
우리 교회 앞에 써 있던 글귀가 생각났습니다.
저도 모르게 그 순간 저의 무거운 인생의 모든 짐을
예수 그리스도께 다 내어드렸습니다.
제 마음속에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저는 이제 죽지 않고 살기로 다짐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복음 전파, 영혼 사랑은 때로는 하기 싫어도 부득불,
억지로라도 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둘째, 왜 우리들이 강도를 만난 사람에게 나아가야 합니까 ?
그것은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사랑 때문입니다.
로마서5:8절,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
죄로 인해 영원히 멸망 받을 우리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내가 매달려야 할 십자가의 자리에 주님이 대신 달리신 것입니다.
내가 맞아야 할 채찍을 그 분이 대신 맞으셨습니다.
내가 당해야 할 수치와 모욕을 그 분이 대신 담당하셨습니다.
이사야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바울은 본문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본문19절, "내가 모든 사람에게 자유(自由)하였으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그렇습니다.
그는 종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최고로 인정받는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가말리엘 문하 출신으로
학문에도 매우 깊은 실력을 갖춘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이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모든 자유를 던져 버리고 오히려 스스로 종이 되었습니다.
왜 입니까 ?
많은 사람을 그리스도의 사랑의 자리로 인도하고 싶어서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가 종이 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
내가 누릴 수 있는 모든 특권과 자유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인에게 예속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종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종(從)이십니까 ?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 전,
한 외국인 선교사가 자신의 고향과 가족과 말(言語)을 버리고,
조선의 원산에 와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아무도 가려하지 않는 시골에서 농민들과 함께 살았습니다.
더구나 도포를 입고 갓을 쓰고 한글을 배우고 농사를 지으면서 생활했습니다.
그 분이 얼마나 한글에 능통했는지 한글로 농담을 할 정도였습니다.
이 분이 장날에 시장엘 가면 아주 재미있는 일을 한답니다.
시장에서 잣을 파는 곳에 가서 잣 장사에게 묻는 답니다.
"이게 뭐요 ?"
그러면 주인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잣이오(자시오) !"
그러면 잣을 맛있게 집어먹었다고 합니다.
그런 다음에 자신의 갓을 가리키며 "이것은 뭐요 ?"라고 물으면,
주인이 대답하기를, "갓이오(가시오) !"라고 대답하면
자신의 갈 길을 총총히 갔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왜, 이 선교사님이 이렇게 조선과 한글을 그 정도까지 공부했습니까 ?
그렇습니다. 조선과 조선의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이 그 속에 간절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이 땅 일본을, 그리고 이 땅의 지체(영혼)들을 더욱 사랑합시다.
영혼의 사랑을 위해, 일본을 더욱 공부합시다.
언어도 더욱 열심히 갈고 닦아, 깊이 있는 실력을 갖춥시다.
왜 입니까 ?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빗진 자이기 때문입니다.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는 오늘 세 번째 맞는 코리안 파티를 맞이합니다.
지난 몇 주간,
우리 본향의 지체들은 이 땅의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 일을 준비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분명, 강도 만난 자와 같이 영혼에 깊은 상처를 가진 분들이
우리 본향의 자리에 나아올 것입니다.
그들을 사랑으로 섬깁시다.
따뜻함으로 감싸줍시다.
겉모습으로 볼 때는 훌륭해 보일지 몰라도,
그들은 모두 지금 이 상태로는 지옥 불에 던져질 불쌍한 영혼들입니다.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께서 분명 우리들을 통해 놀라운 일을 오늘 이루실 줄 믿습니다.
이 일에 협력하는 여러분 모두에게
하나님의 놀라운 은총이 가득하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할렐루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