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2009년4월12일, 고린도전서15:12-22(최고의 메시지 - 예수님의 부활)
ページ情報

本文
옆에 계신 복스러운 지체들을 이렇게 축복합시다.
당신에게서 예수님의 향기가 납니다.
당신에게서 예수님이 모습이 보입니다.
예수님의 12제자 중, 사도 요한에게는 '사랑의 사도'라는 애칭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主님의 백성들에게 많은 교훈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에도 소개 드렸지만 요한에 대해 전해 내려오는 문헌에 의하면,
제자들이 요한에게 설교를 부탁하면,
노구(老軀)의 요한은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만 반복했다고 합니다.
결국 세상에서의 삶을 마감할 때에도,
"서로 사랑하라"는 말만 대 여섯 번 반복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이것말고 더 할 말씀이 없느냐고 묻자,
이렇게 대답하고 눈을 감았다고 합니다.
"그것이면 족해, 왜냐하면 그것이 주님 계명의 모든 것이니까 !"
어느 시대 때마다, 하나님은 자신의 종들에게 특별히 전할 말씀을 깨닫게 하십니다.
예를 들면, 얼마 전 소개한 조나단 에드워즈목사님은
1740년대, 변질되어 가는 미국 교회와 성도들을 향해,
"진노하시는 하나님의 손아귀에 있는 죄인들"이란 제목으로 회개를 선포했습니다.
또한 16세기 루터와 칼빈 등 종교개혁자들은
'성경으로 돌아가자'고 교회와 성도의 개혁을 외쳤습니다.
1907년 조선의 목회자들은 회개를 촉구했습니다.
저도 지난주일 설교를 통해,
교회가 교회다워야 하고,
성도가 성도다워야 함을 말씀드렸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그렇다면 지금으로부터 약 2천년 전,
교회가 가장 능력이 넘치고, 활기찼던 초대교회 시대에
가장 강조되고 가장 중심 되는 메시지는 무엇이었다고 생각하십니까 ?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증거"였습니다.
사도행전에 기록된 초대교회 첫 설교는 베드로가 열 한 사도와 같이 전한 것입니다.
그 내용은 사도행전2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특히 이 설교의 핵심은 사도행전2:23-24절입니다.
"그(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어 못 박아 죽였으나
하나님께서 사망의 고통을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강하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또한 사도행전 3장을 보면 베드로의 또 다른 메시지(설교)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성전 앞에서 구걸하는 나면서부터 앉은뱅이를
성령의 능력으로 치유케 한 후 전한 것입니다.
베드로는 이 설교에서도 예수님의 부활을 중심으로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사도행전3:12-15,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일을 왜 기이히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그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너희가 저를 넘겨주고 빌라도가 놓아주기로 결안한 것을 너희가 그 앞에서 부인하였으니
너희가 거룩하고 의로운 자를 부인하고 도리어 살인한 사람을 놓아주기를 구하여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로라"
초대교회가 예수님의 부활을 가장 중요한 메시지로 전한 모습은
사도 바울과 다른 사도들의 설교에도 똑같이 등장합니다.
오늘 본문, 고린도전서15장3절-8절에서 바울은 말하기를,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 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태반이나 살아 있고 어떤이는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이렇듯 예수님의 부활은
초대교회의 강단에서 가장 중요시되는 신앙의 중심이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왜 초대교회의 사도들은 이토록 예수님의 부활을 강조했을까요 ?
첫째, 예수님의 부활은 그들 신앙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잘 아시는 것처럼, 베드로는 예수님이 십자가의 죽음을 향해 나아갈 때,
예수님을 부인했던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처참히 죽임을 당하자 그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본래의 직업이었던 고기잡이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분명히 죽으셨던 예수님이 자신의 눈앞에서 음식을 드시고,
또한 이렇게 물으시는 것입니다.
"시몬아 !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
여러분 !
베드로의 삶은 예수를 맨 처음 만났을 때보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을 때, 완전하게 변화되었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부활하신 예수님은 자신의 신앙의 가장 중심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말합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사도행전3:12).
초대교회의 선교사 바울은 주님을 믿는 자를 핍박하는데 앞장섰던 사람입니다.
그는 스스로 말하기를,
"내가 이 도(예수)를 핍박하여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고 남녀를 결박하여 옥에
넘겼노니 이에 대제사장과 모든 장로들이 내 증인이라"(사도행전22:4-5)고 했습니다..
그러했던 바울이 어느 날 갑자기 변화되었습니다.
예수 믿는 자들을 잡아 죽였던 그가 이제는 예수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평생을 바쳤고, 결국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다가 옥중에서 순교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
물론입니다. 그의 고백대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그랬던 것처럼 바울도 분명히 예수님의 죽음을 확인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이 바울 앞에 나타나신 것입니다.
바울의 고백에 의하면,
"내가 저희에게서 다메섹 형제들에게 가는 공문을 받아 가지고 거기 있는 자들도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끌어다가 형벌 받게 하려고 가더니
가는데 다메섹에 가까웠을 때에 오정쯤 되어 홀연히 하늘로서 큰 빛이
나를 둘러 비취매 내가 땅에 엎드러져 들으니, 소리 있어 가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내가 대답하되 주여 뉘시니이까 하니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나사렛 예수라 하시더라"(사도행전22:5-8).
사랑하는 본향성도 여러분 !
초대교회 성도들의 신앙의 뜨거움은 자신에게 그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님께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신앙 생활의 중심을 내 자신에게 맞출 때, 우리 신앙은 요동합니다.
내 일이 잘되고 형통하면 기쁜 신앙생활,
어려우면 고통의 신앙생활, 즉 변화무쌍한 믿음의 생활을 하게 됩니다.
이것은 결코 바람직한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의 믿음의 중심을 내 환경이 아니라 부활하신 주님,
그리고 다시 오실 예수님께 맞춥시다.
기억하십시오.
초대교회 만큼 교회가 능력 있던 시대가 있었습니까 ?
그것은 그들의 신앙의 중심이 부활하신 예수님께 있었기 때문입니다.
둘째, 초대교회가 부활을 강조하였던 이유는 예언이 성취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기 훨씬 전부터 예언된 일이었습니다.
시편16:10,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이다"
이사야53:10,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케 하셨은즉
그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그 씨를 보게 되며
그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로다"
여기에서 '씨'는 일반적으로 후손을 의미하지만,
이곳에서는 '날'과 함께 생명의 연속성을 의미합니다.
즉 메시야는 죽임을 당할지라도 부활하셔서
하나님의 뜻을 계속적으로 이루실 것을 예언한 말씀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공생애 초기에 이러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요한복음2:19,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여기서 성전은 예수님의 몸을 의미하는 것이었고,
이 교훈은 훗날 예수님의 부활이 있은 후에야 제자들이 본래의 의미를 깨달았습니다.
또한 예수께서 잡히시기 전날 많은 교훈 가운데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제 일이 이루기 전에 너희에게 말한 것은 이룰 때에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요한복음14:29)
오늘 본문인 고린도전서15:3-4절에서도,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성경의 예언대로 되어졌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사"
그렇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이미 수 천년 전부터 하나님의 계획가운데
주님과 선지자들을 통해 예언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예언은 온전히 확실하게 성취된 것입니다.
그래서 초대교회 목자들과 성도들은 확신을 가지고 외친 것입니다.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 말씀대로 살아나셨다"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성경이 능력이 있는 것은,
이곳에 기록된 모든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초대교회 성도들의 믿음이었고, 오늘날 우리들의 믿음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
하나님의 계획은 예수님의 고난과 부활에만 그치지 않습니다.
이 시간 함께 한 우리 각 사람들에게도 하나님의 계획은 펼쳐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계획은 創世 전부터 있었습니다.
우리가 어느 날 갑자기 예수님을 알게 된 것이 아닙니다.
創世 전부터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계획이 있었던 것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이 사실을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에베소서1장에서 이 복음을 전했습니다.
"創世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에베소서1:4)
또한 3週 前에 소개한 것처럼,
우리의 모든 삶을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로 인도하십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하나님의 섭리'
"만물의 위대한 창조자이신 하나님은 자기의 지혜와 권능과 의와 선과 자비와 영광을
찬양하도록 하기 위하여 ....... 변함 없는 뜻의 계획에 따라 ...... 거룩하신 섭리로써
가장 위대한 것에서부터 가장 작은 것에 이르기까지
모든 피조물과 그들의 행동과 물질을 보호하시고 지도하시고 처분하시고 통치하신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이것을 믿고 능력이 넘치는 신앙생활을 했던 것입니다.
셋째, 초대교회가 예수님의 부활을 강조한 것은,
예수님의 부활이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신앙인들이 바라보는 것, 소망하는 것이 이 세상의 영화와 富貴뿐이라면
우리는 참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영화와 부귀는 다른 방법으로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신앙인들의 소망은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닙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 그 복된 처소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복된 곳은 죽은 상태에서 도달하는 곳이 아니라,
예수님과 같이 부활하여 이른 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기독교 복음, 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바로 이 부활에 있습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오늘 부활주일을 맞이하여,
초대교회 성도들이 가졌던 부활의 신앙을 여러분들 또한 소유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한복음11:25-26)
오늘 이 부활의 날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선물로 주시는 영생을 소유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
당신에게서 예수님의 향기가 납니다.
당신에게서 예수님이 모습이 보입니다.
예수님의 12제자 중, 사도 요한에게는 '사랑의 사도'라는 애칭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主님의 백성들에게 많은 교훈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에도 소개 드렸지만 요한에 대해 전해 내려오는 문헌에 의하면,
제자들이 요한에게 설교를 부탁하면,
노구(老軀)의 요한은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만 반복했다고 합니다.
결국 세상에서의 삶을 마감할 때에도,
"서로 사랑하라"는 말만 대 여섯 번 반복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이것말고 더 할 말씀이 없느냐고 묻자,
이렇게 대답하고 눈을 감았다고 합니다.
"그것이면 족해, 왜냐하면 그것이 주님 계명의 모든 것이니까 !"
어느 시대 때마다, 하나님은 자신의 종들에게 특별히 전할 말씀을 깨닫게 하십니다.
예를 들면, 얼마 전 소개한 조나단 에드워즈목사님은
1740년대, 변질되어 가는 미국 교회와 성도들을 향해,
"진노하시는 하나님의 손아귀에 있는 죄인들"이란 제목으로 회개를 선포했습니다.
또한 16세기 루터와 칼빈 등 종교개혁자들은
'성경으로 돌아가자'고 교회와 성도의 개혁을 외쳤습니다.
1907년 조선의 목회자들은 회개를 촉구했습니다.
저도 지난주일 설교를 통해,
교회가 교회다워야 하고,
성도가 성도다워야 함을 말씀드렸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그렇다면 지금으로부터 약 2천년 전,
교회가 가장 능력이 넘치고, 활기찼던 초대교회 시대에
가장 강조되고 가장 중심 되는 메시지는 무엇이었다고 생각하십니까 ?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증거"였습니다.
사도행전에 기록된 초대교회 첫 설교는 베드로가 열 한 사도와 같이 전한 것입니다.
그 내용은 사도행전2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특히 이 설교의 핵심은 사도행전2:23-24절입니다.
"그(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어 못 박아 죽였으나
하나님께서 사망의 고통을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강하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또한 사도행전 3장을 보면 베드로의 또 다른 메시지(설교)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성전 앞에서 구걸하는 나면서부터 앉은뱅이를
성령의 능력으로 치유케 한 후 전한 것입니다.
베드로는 이 설교에서도 예수님의 부활을 중심으로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사도행전3:12-15,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일을 왜 기이히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그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너희가 저를 넘겨주고 빌라도가 놓아주기로 결안한 것을 너희가 그 앞에서 부인하였으니
너희가 거룩하고 의로운 자를 부인하고 도리어 살인한 사람을 놓아주기를 구하여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로라"
초대교회가 예수님의 부활을 가장 중요한 메시지로 전한 모습은
사도 바울과 다른 사도들의 설교에도 똑같이 등장합니다.
오늘 본문, 고린도전서15장3절-8절에서 바울은 말하기를,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 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태반이나 살아 있고 어떤이는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이렇듯 예수님의 부활은
초대교회의 강단에서 가장 중요시되는 신앙의 중심이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왜 초대교회의 사도들은 이토록 예수님의 부활을 강조했을까요 ?
첫째, 예수님의 부활은 그들 신앙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잘 아시는 것처럼, 베드로는 예수님이 십자가의 죽음을 향해 나아갈 때,
예수님을 부인했던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처참히 죽임을 당하자 그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본래의 직업이었던 고기잡이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분명히 죽으셨던 예수님이 자신의 눈앞에서 음식을 드시고,
또한 이렇게 물으시는 것입니다.
"시몬아 !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
여러분 !
베드로의 삶은 예수를 맨 처음 만났을 때보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을 때, 완전하게 변화되었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부활하신 예수님은 자신의 신앙의 가장 중심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말합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사도행전3:12).
초대교회의 선교사 바울은 주님을 믿는 자를 핍박하는데 앞장섰던 사람입니다.
그는 스스로 말하기를,
"내가 이 도(예수)를 핍박하여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고 남녀를 결박하여 옥에
넘겼노니 이에 대제사장과 모든 장로들이 내 증인이라"(사도행전22:4-5)고 했습니다..
그러했던 바울이 어느 날 갑자기 변화되었습니다.
예수 믿는 자들을 잡아 죽였던 그가 이제는 예수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평생을 바쳤고, 결국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다가 옥중에서 순교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
물론입니다. 그의 고백대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그랬던 것처럼 바울도 분명히 예수님의 죽음을 확인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이 바울 앞에 나타나신 것입니다.
바울의 고백에 의하면,
"내가 저희에게서 다메섹 형제들에게 가는 공문을 받아 가지고 거기 있는 자들도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끌어다가 형벌 받게 하려고 가더니
가는데 다메섹에 가까웠을 때에 오정쯤 되어 홀연히 하늘로서 큰 빛이
나를 둘러 비취매 내가 땅에 엎드러져 들으니, 소리 있어 가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내가 대답하되 주여 뉘시니이까 하니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나사렛 예수라 하시더라"(사도행전22:5-8).
사랑하는 본향성도 여러분 !
초대교회 성도들의 신앙의 뜨거움은 자신에게 그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님께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신앙 생활의 중심을 내 자신에게 맞출 때, 우리 신앙은 요동합니다.
내 일이 잘되고 형통하면 기쁜 신앙생활,
어려우면 고통의 신앙생활, 즉 변화무쌍한 믿음의 생활을 하게 됩니다.
이것은 결코 바람직한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의 믿음의 중심을 내 환경이 아니라 부활하신 주님,
그리고 다시 오실 예수님께 맞춥시다.
기억하십시오.
초대교회 만큼 교회가 능력 있던 시대가 있었습니까 ?
그것은 그들의 신앙의 중심이 부활하신 예수님께 있었기 때문입니다.
둘째, 초대교회가 부활을 강조하였던 이유는 예언이 성취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기 훨씬 전부터 예언된 일이었습니다.
시편16:10,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이다"
이사야53:10,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케 하셨은즉
그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그 씨를 보게 되며
그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로다"
여기에서 '씨'는 일반적으로 후손을 의미하지만,
이곳에서는 '날'과 함께 생명의 연속성을 의미합니다.
즉 메시야는 죽임을 당할지라도 부활하셔서
하나님의 뜻을 계속적으로 이루실 것을 예언한 말씀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공생애 초기에 이러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요한복음2:19,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여기서 성전은 예수님의 몸을 의미하는 것이었고,
이 교훈은 훗날 예수님의 부활이 있은 후에야 제자들이 본래의 의미를 깨달았습니다.
또한 예수께서 잡히시기 전날 많은 교훈 가운데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제 일이 이루기 전에 너희에게 말한 것은 이룰 때에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요한복음14:29)
오늘 본문인 고린도전서15:3-4절에서도,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성경의 예언대로 되어졌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사"
그렇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이미 수 천년 전부터 하나님의 계획가운데
주님과 선지자들을 통해 예언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예언은 온전히 확실하게 성취된 것입니다.
그래서 초대교회 목자들과 성도들은 확신을 가지고 외친 것입니다.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 말씀대로 살아나셨다"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성경이 능력이 있는 것은,
이곳에 기록된 모든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초대교회 성도들의 믿음이었고, 오늘날 우리들의 믿음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
하나님의 계획은 예수님의 고난과 부활에만 그치지 않습니다.
이 시간 함께 한 우리 각 사람들에게도 하나님의 계획은 펼쳐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계획은 創世 전부터 있었습니다.
우리가 어느 날 갑자기 예수님을 알게 된 것이 아닙니다.
創世 전부터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계획이 있었던 것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이 사실을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에베소서1장에서 이 복음을 전했습니다.
"創世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에베소서1:4)
또한 3週 前에 소개한 것처럼,
우리의 모든 삶을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로 인도하십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하나님의 섭리'
"만물의 위대한 창조자이신 하나님은 자기의 지혜와 권능과 의와 선과 자비와 영광을
찬양하도록 하기 위하여 ....... 변함 없는 뜻의 계획에 따라 ...... 거룩하신 섭리로써
가장 위대한 것에서부터 가장 작은 것에 이르기까지
모든 피조물과 그들의 행동과 물질을 보호하시고 지도하시고 처분하시고 통치하신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이것을 믿고 능력이 넘치는 신앙생활을 했던 것입니다.
셋째, 초대교회가 예수님의 부활을 강조한 것은,
예수님의 부활이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신앙인들이 바라보는 것, 소망하는 것이 이 세상의 영화와 富貴뿐이라면
우리는 참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영화와 부귀는 다른 방법으로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신앙인들의 소망은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닙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 그 복된 처소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복된 곳은 죽은 상태에서 도달하는 곳이 아니라,
예수님과 같이 부활하여 이른 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기독교 복음, 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바로 이 부활에 있습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오늘 부활주일을 맞이하여,
초대교회 성도들이 가졌던 부활의 신앙을 여러분들 또한 소유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한복음11:25-26)
오늘 이 부활의 날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선물로 주시는 영생을 소유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