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主日説教原稿

2009 2009년3월22일, 빌립보서1:12-14(도리어 복음의 進歩를 이룰 성도의 고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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投稿者 박성철
コメント 0件 照会 14,469回 日時 09-03-23 12:19

本文

  옆에 계신 복스러운 지체들을 축복합시다.
  오늘 당신에게서 향기로운 (기도의) 꽃내음이 느껴집니다. 상큼합니다.
  당신의 이 아름다운 향기가 어두운 사람들의 마음을 밝힐 것입니다.

  오늘은 퀴즈로 말씀을 시작하겠습니다.
 "출근 시간, 만원 버스와 트럭이 정면 충돌을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쳤는데 그 가운데 가장 안타까운 죽음은 어떤 죽음일까요 ?"

  첫째, 2230번 버스를 타야 하는데, 잘 못 보고 2290번 버스를 탄 노인.
  둘째, 결혼식을 하루 앞두고 예복을 찾으러 가다 죽은 노총각.
  셋째, 버스가 막 출발할 때, 급히 세워 겨우 탄 여학생의 죽음.
  넷째, 버스 안에서 졸다가 그만 자기 내릴 정거장을 놓쳐서 한 정거장 더 간 바람에 죽은 아저씨.

  어떤 죽음이 가장 안타까운 죽음입니까 ?
  이 이야기는 실제 일어난 이야기가 아닙니다.
  누군가가 웃자고 만들어 낸 이야기입니다. 그러므로 정답은 없습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결코 웃어만 넘길 수 있는 내용이 아닙니다.
  왜 그렇습니까 ?
  이런 일들이 실제로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세상엔,
  사람들이 바라지도 않고 원치도 않는 일들이 여기저기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더구나 그런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다른 사람에게서가 아니라 바로 우리 삶 속에서도 일어날 수 있고,
  또 일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우연'(偶然)이란 말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한국어사전에는 '우연'(偶然)의 의미를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아무런 인과(因果) 관계가 없이 뜻하지 아니하게 일어난 일"
  그리고 일본어사전에는 "思いがけないこと"(생각하지 못한 것)으로,
  스토아 학파는 "원인을 알 수 없는 것"으로 각각 규정했습니다.

  몇 해 전, 한국의 한 가수가 '만남'이라는 노래를 불러서 크게 인기를 얻은 적이 있습니다.
  그 가사는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요....."였습니다.
  전혀 모르는 두 사람이 만난 것 자체가 우연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기독교인들은
  이 땅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어떤 시각으로 보는 것이 옳을까요 ?
  실마리가 되는 성경 말씀들을 함께 보겠습니다.

  마태복음10:29-30,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느니라"
  (二羽の雀が一アサリオンで賣られているではないか.
  だが, その一羽さえ, あなたがたの父のお許しがなければ, 地に落ちることはない.
  あなたがたの髮の毛までも一本殘らず數えられている.)

  마태복음6:30,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今日は生えていて, 明日は爐に投げ まれる野の草でさえ,
  神はこのように裝ってくださる.)

  그렇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당하는 모든 일들은, 그것이 만남이든 이별이든, 기쁨이든 슬픔이든,
  행복이든 고난이든 간에 모두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있음을 말합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는 '하나님의 섭리'를 이렇게 말합니다.
 "만물의 위대한 창조자이신 하나님은 자기의 지혜와 권능과 의와 선과 자비와 영광을
  찬양하도록 하기 위하여 ....... 변함 없는 뜻의 계획에 따라 ...... 거룩하신 섭리로써
  가장 위대한 것에서부터 가장 작은 것에 이르기까지
  모든 피조물과 그들의 행동과 물질을 보호하시고 지도하시고 처분하시고 통치하신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요즈음 여러분들의 삶 속에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까 ?
  혹, 기쁘고 즐거운 일보다는 답답하고 안타까운 일,
  또는 속상하고 기가 막히고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을 겪으면서 힘들어하지는 않습니까 ?
  그럴 때, 우리 속에서는 이런 질문들이 터져 나옵니다.
 "하나님 !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겁니까 ?"
 "왜 우리 가정이 이런 일을 겪어야 합니까 ?"
 "왜 내 사랑하는 아내에게, 내 부모에게, 형제에게, 자식들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까 ?"

  사랑하는 여러분 !
  예기치 않았던 일들, 또는 너무나 갑자기 일어난 어려운 일들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하고 대처해 나가야 할까요 ?

  좋은 샘플이 오늘 본문에 나타납니다.
  그렇습니다. 복음 전도자 바울 사도입니다.
  바울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고통스러운 환경을 통해, 낙망하고 탄식했습니다.
  그러나 그 고난을 지내는 가운데 놀라운 깨우침을 얻고 한 가지 고백을 합니다.
  더구나 그의 고백은 낙심과 불평의 고백이 아닌,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은
  놀라운 신앙의 고백이었습니다.

  자 ! 그렇다면, 바울은 고난 가운데서 어떠한 고백을 했을까요 ?
  본문12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형제들아 나의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의 진보가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오늘 이 말씀 속에는 아주 귀한 의미가 숨어 있습니다.
  이 시간 말씀을 통해 본문의 의미를 깨닫고, 우리들의 삶에 적용하여,
  범사에 넉넉한 승리자가 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자 ! 그렇다면 먼저 사도 바울이 당한 일은 무엇일까요 ?
  빌립보서 전체를 잘 읽어보면 바울이 말하고 있는 '나의 당한 일'이란,
  첫째, 그가 로마의 감옥에 갇혀있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바울은 지금 아무 죄도 없이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거기서 쇠사슬에 묶인 채 고통 당하고 있습니다.

  둘째, 바울이 지금 말하고 있는 '나의 당한 일'이란
  헬라어 원문 시제(時題)가 현재완료형입니다.
  헬라어에서 현재완료형이란, 과거에 시작해서 현재까지 여전히 일어나고 있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말하는 '나의 당한 일'이란,
  지금 감옥에 갇혀있는 일 뿐만이 아니라,
  그가 여기 올 때까지 겪었던 모든 환란과 역경을 다 포함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감옥에 갇히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가 고난을 당하기 싫어서가 아니었습니다.
  감옥에 갇히게 되면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할 수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로마 감옥에 갇혀 있는 처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것도 재판도 없이 2년 간이나 그 곳에 갇혀 있었습니다.

  여러분 ! 잠깐 바울의 입장이 되어보십시오.
  빨리 나가서 복음을 전해야 하는데, 시간이 별로 없는데,
  감옥에서 2년씩이나 갇혀있습니다. 그 마음이 얼마나 답답했겠습니까 ?
  바울은 이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긴 세월 동안 나를 감옥에 있게 하실까 ?"
  언제 감옥의 문이 열릴지, 아니면 그 감옥에서 인생을 마감하게 될 지
  아무 기약이 없었습니다. 막막하고 고통스러웠습니다.
 "도대체 이 생활이 언제나 끝이 날까 ?"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에게,
  지금 자신이 감옥에 갇혀 있는 것, 또한 이제까지 당한 모든 고난이,
  결국에는 복음의 진보로 나타났음을 기쁘게 고백합니다.
  다시 말하면, 참 억울하고 답답한 그 감옥살이가
  오히려 복음을 전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진보'라는 말은 헬라어로 '프로코페'라는 단어인데,
  그 뜻은 '나무를 찍어가면서 앞으로 전진한다'는 뜻입니다.
  이 말은 로마 군대에 속한 공병대가 본대(本隊)보다 앞서 나가면서
  장애물을 제거하고 길을 놓고 다리를 놓을 때 쓰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바울이 감옥에 갇혀 있고, 고난을 당한 것이 바로 이런 공병대의 사명을
  감당하게 되었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었을까요 ?

  본몬13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나의 매임이 그리스도 안에서 온 시위대 안과 기타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으니"
  여기에서 시위대라함은, 로마 황제의 경호를 맡고 있는 황제의 친위부대를 말합니다.
  당시 이 부대는 엄청난 특권을 갖고 있었습니다.
  대부분이 유력한 집안의 자식들이었고,
  로마정신에 투철한 사람들로 이루어진 부대였습니다.

  황제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키는 경호부대였기 때문에 여기에 선발되면
  급료도 다른 부대의 곱을 받고, 남다른 조건에서 근무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원로원 의원들이나 상권(商圈)을 쥐고 있는 가문의 자식들은 하나같이
  이 시위대에 뽑히기를 원했습니다.
  시위대를 처음 조직한 황제가 바로 그 유명한 아우구스투스 황제였고,
  그 수는 만 명 정도였다고 합니다.

  또한 이 시위대는 막강한 권력을 가진 부대였습니다.
  권력 투쟁 등으로 황제가 바뀔 때, 새로운 황제는 이 시위대로부터
  새로운 황제로 인정받기를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했을 정도입니다.
  이렇듯 시위대는 로마인들 가운데 가장 큰 특권을 누리는 세력들이었고,
  그러기에 아무나 시위대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들 가운데 사도 바울이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이 일이 가능했을까요 ?

  금방 읽은 본문13절에, '매임'이란 단어는,
  바울이 바로 그 시위대 병사들이 지키고 있던 로마의 감옥에 들어간 것을 말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그냥 '매임'이라고 되어 있지만 에베소서6:20절이나
  사도행전28:20절에 보면 바울은 쇠사슬에 매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로마정부는 모든 죄인을 쇠사슬에 맨 것은 아닙니다.
  특수한 죄인들만 쇠사슬로 매어 두었습니다.
  더구나 쇠사슬에 매어 둘 때는 그냥 죄수만 매어 두는 것이 아닙니다.
  당시 로마는 특수한 죄수를 가둘 때에는 간수 두 사람이 죄수의 양쪽 팔에
  각각 자기의 손을 같이 묶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한 이유는 탈옥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과,
  만의 하나 있을지 모르는 죄수의 자살을 막기 위해 그렇게 했던 것입니다.
  또한 그렇게 양쪽에서 손을 묶어두었을 뿐 아니라
  감옥 문 앞에는 별도로 두 명의 간수가 또 지키게 했습니다.
  그러니까 한 사람의 중죄인을 지키기 위해서
  네 사람의 시위대 병사들이 배당되는 셈입니다.
  근무는 하루에 여섯시간씩 4교대였습니다.
  그러니까 바울 곁에는 하루 최소한 16명의 시위대 군인들이 지키고 있었다는 말이 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시위대와 하루 종일 함께 있었던 바울이 그 때 무엇을 했겠습니까 ?
  그렇습니다. 그는 복음전파에 모든 것을 건 사람이었습니다.
  사도행전21:27-22:21절에 보면,
  바울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유대인들에 잡혀 몰매를 맞아 거의 죽어갈 때,
  로마의 천부장의 도움으로 간신히 목숨을 건졌습니다.
  그런데, 온통 상처투성이였던 바울이 천부장에게 한 가지 부탁을 합니다.
  한 마디를 하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천부장이 허락했더니, 바울에 입에서 예수님 이야기가 한없이 흘러나옵니다.
  천부장의 입장에서 보면, 몰매를 맞아서 다 죽어 가는 사람을 살려 놓았더니,
  겨우 일어나서 한다는 소리가 예수 이야기입니다.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전파합니다. 이것이 바울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그가 지금 로마감옥에 갇혀서
  시위대 군사들과 함께 쇠사슬에 묶여 있을 때 뭘 했겠습니까 ?
  바울에게 그것보다 더 좋은 기회가 어디 있었겠습니까 ?
  하루 종일 얼굴을 마주보면서 아무 할 일도, 아무 할 얘기도 없는 사람들을 두고
  사도 바울은 뭘 했겠느냐 이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바울은 시위대의 젊은이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으로서 왜 이 땅에 사람으로 오셨는지,
  왜 그 분이 고난을 당하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는지,
  또 그 분이 이 땅에서 하셨던 일은 무엇이며, 우리의 나중은 어떻게 될 것인지,
  그리고 인생의 진정한 의미란 무엇인지,
  행복은 어디 있으며, 천국과 영원한 나라는 어디에 있는지,
  그런 것들에 대해서 끝없이 얘기했을 것입니다.

  또 사도 바울은 자기가 예수 믿게 된 계기도 말했을 것입니다.
  왜 예수를 핍박하던 사람이 예수를 믿게 되었는지,
  또 왜 당시의 최고학부를 나오고서도 그것들을 배설물처럼 버렸는지,
  그리고 왜 로마시민권을 가지고도 그것을 사용하지 않았는지
  등등을 얘기했을 것입니다.

  그 복음을 전해들은 시위대 병사들의 마음은 조금씩 흔들렸을 것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다음 근무시간을 기다렸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사도 바울은 지금 로마를 움직이고, 로마의 정신이며 사상을 대표하던 젊은이들의
  중심에 들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복음은 바로 로마의 중심부에 들어가서 로마를 움직이던 사람들을 강타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혹시 여러분 가운데는 지금 감옥에 갇혀 있는 것 같은 상황에 처한 분도 있을 것입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그런 상황 말입니다.
  물론 감옥은 언뜻 보면 자유를 박탈당한 곳으로 보여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곳에서도
  우리가 마땅히 해야할 놀라운 일을 예비해 놓으셨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어렵고, 힘들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일 때,
  그것에 핑계 대고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는 것입니다.
  내가 힘들고 어려울 때일수록, 그곳에 함께 하신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이 기대하시는 일을 행해야 합니다.

  바울은 감옥에서 주님이 지시하시는 그 일을 행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복음을 들은 누군가가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 가족에게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그 복음은 황실의 친척에게로 들어가고, 그의 친구들에게도 전해졌습니다.
  어느덧 로마황제의 아주 지척에 있는 사람에게까지 복음이 전해져졌습니다.

  네로 황제의 삼촌과 친척들이 예수를 믿었고,
  또한 가장 많은 순교자를 냈던 도미티아누스황제의 어머니와 딸들도
  기독교인이 되었습니다.
  그 결과, 사도 바울이 재판을 받게 되었을 때는
  로마의 온갖 고관대작들이 함께 자리했습니다.
  그런데 로마의 법정은 피고가 자신을 변론할 수 있는 기회도 주어져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사도 바울이 뭘 했겠습니까 ?
  로마의 법이 잘못 되었으니 공정한 법 집행을 해달라고 했겠습니까 ?
  목숨을 구걸했겠습니까 ?
  아마도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나는 지금 당신들의 배려로 나를 변호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지금 나를 변호할 아무 필요도 느끼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나에게는 삶이나 죽음이나 별 차이가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열심으로 나를 기소했습니다.
  나도 나의 열심으로 나를 이 법정에까지 오게 하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 모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합니다.
  원로원 의원 여러분이나 여러분의 자녀, 또는 황제폐하라고 예외가 있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그토록 찾아 헤매는 참된 평화와 참된 기쁨의 세계란 이 세상에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구원자가 되십니다.
  예수 외에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주 예수를 믿으십시오. 그리하면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이 구원을 얻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이 재판정에서 나를 죽이자고 판결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내 육체는 죽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죽일 수 있는 것은 그 뿐입니다.
  내 영혼은 여전히 살아서 예수를 전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내 죽음을 두고 걱정하겠지만 정말 걱정해야 할 것은 여러분입니다."

 "나는 내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계속해서 증거할 것이고,
  그 일을 마치기까지는 내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 선택은 여러분의 몫이지만 다시 한 번 호소합니다.
  예수 안에 새로운 삶이 있습니다.
  그분께로 오십시오.
  단언(斷言)하건데 여태껏 한 번도 맛보지 못한 세계를 경험케 될 것입니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그때 로마의 법정에서 재판 받는 바울의 모습을 눈여겨본 많은 귀족들이
  로마의 감옥에 찾아왔다고 합니다.
  그 옛날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 온 니고데모처럼 로마의 고관들이 밤중에 찾아와서
  복음을 들은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배경이 된 때가 主後 60년경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시위대와 로마의 고관대작들에게 복음을 전한 지 불과 300년 만에
  그 거대하던 로마 제국은 나사렛의 목수,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정복되고 맙니다.
  主後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 때 기독교가 공인되었고,
  主後 380년 데오도시우스 황제 때는 오직 하나의 종교,
  기독교만이 존재할 수 있다고 법으로 공포했습니다.
  결국 시위대부터 영글기 시작한 복음이
  로마의 황궁과 제국 전체에까지 퍼지게 된 것입니다.

  바울은 빌립보서를 마감할 때, 이렇게 인사합니다.
  빌립보서 4:22, "모든 성도들이(즉, 로마교회 교인들이) 너희(빌립보 교인들)에게
  문안하되 특별히 가이사(황제)의 집사람 중 몇이니라"
  그렇습니다.
  여기서 '가이사의 집사람 중 몇'이라는 말은 '카이사르' 즉 로마황제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황제의 친척들이나 고관대작을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너무나 중요한 진리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나의 당한 일' 뒤에 숨어있던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물론 바울이 처음부터 그것을 안 것은 아닐 것입니다.
  시위대 병사들에게, 그리고 법정에서,
  또한 자기를 찾아 온 고관대작들에게 복음을 전하면서 깨달았을 것입니다.

 "아 ! 내가 감옥에서 몇 년간 있었던 이유가 이거였구나 !
  하나님께서 나를 이토록 힘들게 감옥에 두셨던 이유가 바로 이거였구나 !"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런 유언을 했습니다.
  디모데후서2:9, "복음을 인하여 내가 죄인과 같이 매이는 데까지 고난을 받았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아니하니라"

  아마도 오늘 이 자리에 앉아있는 분들 중에는 오랜 기간 동안 어려운 환경 가운데,
  답답해하고 실망하는 분이 있을 것입니다.
  도무지 왜 이런 어려움이 계속되는지 이해하지 못해서
  안타까워하시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 꽉꽉 막힌 감옥처럼 느껴져서 절망 가운데 있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또는 그 모든 원인을 알고 있으면서도
  내 힘과 능력으로는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문제 앞에서
  한숨짓고 있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학교문제, 건강문제, 경제문제, 비자문제, 부모님의 건강문제,
  인간관계 문제, 직장문제 때문에 아파하는 분들이 계실 줄 압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한 가지가 있습니다.
  바로 우리의 어려운 환경과 역경 뒤에 숨어있는 하나님의 뜻과 섭리입니다.

  바울에게 감옥에서의 생활이 복음의 진보를 가져온 것처럼
  우리들의 역경과 고난은 우리들의 인생과 삶을 크게 진보하게 할 것입니다.
  그것을 믿으십시오.
  물론 지금은 그 당하는 일의 이유를 모를 수 있습니다. 다 알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손바닥에 그 이름을 새겨놓은 당신의 자녀입니다.
  자기의 피로 구원한 자식입니다. 어떻게 그냥 두시겠습니까 ?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많은 믿지 않는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있습니다.
  사실 그들은 우리에게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어려운 때를 어떻게 이겨나가나 보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해야할까요 ? 우리의 믿음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당한 일을 통해서 역사(役事)하시는 하나님을 드러낼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 가운데 이런 믿음 보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모두 이 믿음으로 승리하십시다.
  그리고 고통과 시련 속에서도 이렇게 외치십시다.
 "나의 당하고 있는 일이 복음의 진보를 크게 이룰 것이다 !"
 "나의 당한 일이 내게 복된 일이 되었노라 !"
 "나의 당하고 있는 모든 일들이 내 가정과 교회와 민족에게도 복된 일이 될 것이다 !"
  이렇게 외쳐 승리하시는 저와 여러분의 생애가 되시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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