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9월24일, 역대하 34:8-13 (하나님의 전<殿>을 수리<修理>하라) > 主日説教原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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主日説教原稿

2023 2023년9월24일, 역대하 34:8-13 (하나님의 전<殿>을 수리<修理>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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投稿者 박성철
コメント 0件 照会 5,915回 日時 23-09-30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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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주일의 말씀을 생각하며, 함께 한 지체들과 이렇게 고백합시다.


  성도님 ! 신앙의 선배 갈렙처럼, 섬김을 받는 노인이 아니라,

  주님 안에서 야망(大志)을 품은 노인이 됩시다.

  그러기 위해,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말씀을 잊지 말고, 마음 깊이 간직합시다.

  꿈을 이루고, 응답받기 위해, 육신의 건강도 힘껏 관리하며 지킵시다.

  우리 자신의 힘과 경험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합시다.


  다윗과 솔로몬을 통해 성전이 세워진 후, 유다 백성들의 신앙 중심은 [성전]이었습니다.

  이른바 [성전 중심 신앙(聖殿中心の信仰)]이요.

  하나님은 성전에 계셨고, 백성들은 성전에서 하나님을 예배했습니다.

  열왕기상9:3. 여호와께서 ... 이르시되, ....... 네가 건축한 이 성전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내 이름을 영원히 그곳에 두며, 내 눈길과 내 마음이 항상 거기에 있으리<라>

 (主は言われた。「あなたがわたしの名をとこしえに置くために建てたこの宮を

  聖別した。わたしの目と心は、いつもそこにある。」)


  그러나 솔로몬 사후, 유다의 왕과 백성은 자주 하나님을 배반했습니다.

  하나님께 예배하지도 않았고, 성전도 소중히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유다의 왕들 중, 신앙 개혁을 외친 왕들의 공통점은,

 [성전 중심 신앙]을 회복하려 했고, [성전을 수리(修理)]하려 했습니다.

  오늘 본문도 개혁자 요시야 왕이, [성전 수리]를 명령하는 장면입니다.


  본문8절. 요시야가 왕위에 있은 지 열여덟째 해에, 그 땅과 성전을 정결하게

  하기를 마치고,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을 수리하려 하여,

  아살랴의 아들 사반과 시장 마아세야와 서기관 요아하스의 아들 요아를 보낸지라

 (その治世の第十八年に、ヨシヤはこの地と宮をきよめるために、アツァルヤの子

  シャファン、この町の長マアセヤ、エホアハズの子である史官ヨアフを遣わして、

  自分の神、主の宮を修理した。)


  이러한 선배들의 믿음을 본받아,

  우리 본향교회도 설립 25주년 예배를 앞두고

  예배당 곳곳을 새롭게 수리하며, 아름답게 하고 있습니다.

  본향의 모든 지체들이, 이 일을 위해 마음과 정성을 모으고 있습니다.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그런데 여러분 ! 얼마 전, 문뜩 이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건물의 형태(形態)가 있는 성전(聖殿)의 수리(修理)도 중요하지만,

  건물의 형태(形態)가 없는 성전의 수리도 매우 중요하지 않은가 ?!]


  여러분 ! 무엇이 건물의 형태가 없는 성전입니까 ?!

  물론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고린도전서3:16.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あなたがたは、自分が神の宮であり、神の御霊が

  自分のうちに住んでおられることを知らないのですか。)


  그렇습니다. 여러분 !

  우리는 교회설립 25주년 감사예배를 앞두고,

  예배당 곳곳을 수리하며, 아름답게 해야 함은 물론,

  또 다른 하나님의 성전인 우리의 몸과 영혼도,

  고칠 곳은 고치고, 상처 난 곳은 치료해야 합니다.


  이태리의 유명한 한 연예인(芸能人)이 심한 우울증에 걸렸습니다.

  그래서 정신과를 찾았는데 의사가 진찰 후 이러한 처방을 내렸습니다.

 “당신의 증세를 완화시키기 위해서는, 요즘 한창 유행하는

  가리말디의 코미디 프로그램을 자주 보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랬더니 이 환자가 더욱더 우울한 얼굴을 하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의사 선생님 ! 제가 바로 그 가리말디입니다.”


  그렇습니다. 남을 웃기고, 남에게 즐거움을 주는 그 사람이,

  사실은 가장 우울한 문제를 가지고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는 우리 주변에서 늘 행복해 보이고, 늘 즐거워 보이는 사람을 종종 봅니다.

  하지만 그렇게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이는 사람도,

  조금만 알고 보면 아픔투성이요, 상처투성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모두에게 존경받고 인정받으며 아무런 걱정이 없어 보이는 사람도,

  사실 그 속을 들여다보면, 이런저런 아픔과 상처가 가득합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치유 받아야만 하는 [상처와 아픔]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반드시 치료를 받아야만 합니다.


  전원일기(田園日記)라는 드라마에 이런 내용이 방송된 적이 있습니다.

  드라마 속의 귀동이라는 사람의 아내가 몇 해 동안 가출을 했다가,

  추운 겨울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이야기였습니다.

  자식도 남편도 팽개치고 다른 남자와 눈이 맞아 집을 나간 모양인데,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몇 년이나 지난 후 마을로 숨어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 그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연이 있었겠습니까 ?

  그러나, 그 모든 것을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데 그럴 용기가 나질 않습니다.

  자기가 난 아들(노마)은 엄마 얼굴도 기억을 못 합니다.

  엄마는 먼저, 길에서 노는 아들에게 다가가, 따뜻한 털스웨터를 입혀 줍니다.

  노마가 그것을 입고 집에 들어오니까, 귀동이는 모든 것을 짐작하고 화가 머리끝까지 납니다.

  그래서 그 옷을 발기발기 찢어서, 마을 사람들이 다 보도록 장대에 높이 매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마을 구석에 몰래 숨어있던 노마 엄마를 복길이 엄마가 발견합니다.

  깜짝 놀랍니다. 그리고 곧 모든 사정을 짐작합니다.

  엄동설한에 얇은 옷 하나만 걸친 노마 엄마를, 그냥 놔둘 복길 엄마가 아닙니다.

  자기 집으로 들입니다.

  그리고 그 소문은 입에서 입으로 퍼져서, 온 마을 사람들이 다 알게 됩니다.

  온 관심이 복길이네로 쏠립니다.

  마을 사람들은 노마 아빠가 모든 걸 용서하고, 노마 엄마를 집으로 데리고 갔으면 합니다.

  모두 들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런데 노마 아빠인 귀동이는 몇 년간의 세월을 눈물로 살았습니다.

  절대로 용서할 수 없습니다.

  도리어 더 화를 내고 더욱 흥분합니다.


  그런 귀동이를 마을의 형들과 친구들이 설득합니다. 용서해 주라고요.

  귀동이는 한참을 엉엉 웁니다.

  그리고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벌떡 일어나 노마 엄마가 있는 복길이네로 갑니다.

  마을 사람들도 뒤따릅니다.

  온 마을 사람들이 복길이네 마당에 모였습니다.


  바로 그때, 방안으로부터 일용 엄마(엄니)가

  귀동이 색시를 심하게 꾸짖는 소리가 들려 나옵니다.

  대략 이런 내용입니다.

 “너, 귀동이 색시 아니냐 ! 아이고 이게 웬일이냐 !

  그래, 네 서방, 네 새끼를 팽개쳐불고 웬 놈팽이 따라 나가더니 ...

  한두 해도 아니고, 몇 해 만에 이리 기어들어 왔다냐 !

  그래, 그 멀쑥한 놈하고 서울서 사니 좋더냐 ?

  김 안 매고 뜨듯한 아파트에서 사니 등 따숩더냐 ?”

 “그 어린 젖먹이 새끼를 두고,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살아있는

  지 서방을 두고 뛰쳐나가더니, 요 모양 요 꼴이더냐, 이 모진 예편네야 !”

 “니가 싫으면 나가고, 오갈 데 없으면 들어오는 곳이 집이 드냐 ?”

 “니가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다시 들어 올 생각을 했다냐 !”

 “우리 양촌리 사람 아무도 너 안 반긴다. 썩 나가라 !”

  그러면서 일용 엄마(엄니)도 눈물을 훔치기 시작합니다.


  그리곤 이번에는 조용히 말을 이어갑니다.

 “딴 사내 품이 아무리 좋더라도, 사람에게는 도리가 있는 법이다.

  아무리 촌 동네 살림이 구차스러워도 그러는 게 아니다.

  귀동이가 배운 건 좀 없고, 재주는 없지만, 걔는 지 분수를 아는 애여.

  지 각시와 지 새끼 위할 줄 알고, 농사일 말고는 딴 데 눈 파는 법을 모르는 애여.

  그래 그런 서방과 새끼가 눈에 안 밟히더냐 ?”

 “그랬다면 너는 인간이 아닌 기라. 내가 니를 용서 못혀 !”

  이야기를 듣던 마당에 모인 마을 사람들이 모두 눈시울을 붉힙니다.

  노마 아버지 귀동이도 눈물을 흘립니다.


  결국, 그 둘은 다시금 하나 되어 가정을 꾸리게 되었습니다.


  사실 일용 엄마는 귀동이가 하고 싶었던 말, 귀동이 색시가 하고 싶었던 말,

  또 마을 사람들이 하고 싶었던 말을 대신했습니다.

  그리고 그 꾸짖음으로 귀동이 마음, 색시의 마음,

  마을 사람들의 마음을 모두 후련하게 만들었습니다.

  즉, 각자의 마음속에 숨어있던 상처를 밖으로 끄집어내어,

  수술해서, 그 상처를 깔끔하게 치유한 것입니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그들이 다시 합치는 데까지는

  더욱더 많은 아픔과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상처는 밖으로 드러낼 때, 치유함을 받습니다.

  육신의 상처든, 마음의 상처든,

  상처는 겉으로 드러낼 때, 비로소 치유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상처 많은 사람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자기의 상처를 (용기 내어) 드러내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여러분들의 아프고 곪은 상처들을 밖으로 드러내어,

  완전한 치유함을 받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자 ! 그렇다면, 우리의 상처를 누구 앞에 드러내야 할까요 ?

 (상처를 아무한테나 드러내면, 더욱 큰 상처를 갖게 되니까요 !!!)

  드라마이긴 하지만, 일용 엄마의 말이 왜 그토록 큰 호소력이 있었을까요 ?

  그것은 그녀에게도 커다란 아픔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일찍 남편을 잃고 홀로 되어, 인생의 온갖 풍파를 다 겪었습니다.

  그녀는 가난이 뭔지, 고통이 뭔지, 피붙이(자식)가 뭔지, 배신이 뭔지를 다 압니다.

  그러므로 똑같은 아픔을 당한 사람을 이해해 줄 수 있고,

  감싸줄 수 있고, 또 야단도 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참된 치유자는, 상처받은 그 사람이 겪었던 아픔을,

  자신도 당해 본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자격이 있습니다.


  성도여러분 ! 우리에게는 그런 치유자가 한 분이 계십니다.

  그분은 자기의 문제라고는 하나도 없는 분이었습니다.

  아무런 잘못도 없었고, 부족함도 없는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을 치유하시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고쳐주시기 위해서, 스스로 고난과 아픔을 선택하셨습니다.

  또한, 자기 스스로 자기의 몸과 마음과 영혼에 큰 상처를 채우셨습니다.

  그분은 스스로 가장 낮은 자리에 내려오셨고, 가장 힘든 인간의 고통을 다 겪으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우리의 상처를 싸매어 주시고,

  모든 종류의 상처를 온전히 치료해 주셨습니다.


  헨리 나우웬은 이 분을 가리켜 [상처 입은 치유자]라고 불렀습니다.


  자 ! 여러분 ! 누가 상처 입은 치유자이실까요 ?!

  물론입니다. 여러분 !

  우리를 지금 여기에 있게 하시고, 우리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는 예수님이 [우리의 진정한 치유자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일생은, 그야말로 아픔과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탄생부터가 아픔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습니다.

  우주 만물을 지으신 분께서 친히 피조물이 되신 것입니다.

  여러분 !

  사람인 우리가 지금 이 마음과 지혜, 생각, 인격을 모두 가지고

  개미나 지렁이가 되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의 삶이 편안하겠습니까 ?

  그러나 예수님은 모든 장소,

  모든 시대를 초월하실 수 있는 자유로운 본체(本体)를 버리시고,

  하나의 작은 몸에 구속(拘束)되셨습니다.

  냄새나는 말구유에 탄생하셨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피난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애굽으로 도망했습니다.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육신의 아버지 요셉이 일찍 돌아가셔서, 어려서부터 생업에 힘써야 했습니다.

  복음 사역을 시작했을 때는, 고향 사람들이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같은 동족들도 비방했습니다. 심지어 제자들조차 예수님을 버렸습니다.

  더구나, 제자 중 한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고, 팔리기까지 하셨습니다.

  여러분 ! 예수님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셨겠습니까 ?!


  그뿐 아닙니다.

  예수님은 손과 발과 머리와 옆구리에 상처를 입으셨습니다.

  견딜 수 없는 육체의 아픔도 다 겪으신 것입니다.

  더구나 하나님에게서까지 버림받는 최고의 저주를 받으셨습니다.

  마태복음27:46.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エリ、エリ、レマ、サバクタニ。

  わが神、わが神、どうしてわたしをお見捨てになったのですか。)


  여러분 ! 몸도 마음도 영혼도 온통 상처투성이였던 그분이,

  우리의 주 예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

  예수님은 왜 그렇게 큰 아픔과 큰 고난을 겪으셨을까요 ?

  그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상처 많은 우리를 치료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온갖 상처를 입은 우리, 온갖 상처 가운데 괴로워하는 우리를,

  뜨거운 사랑으로 치료하시기 위해서,

  예수님은 스스로 큰 아픔과 큰 고난을, 미리 겪어보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예수님은 상처받은 그 가슴으로,

  우리의 가슴속에 있는 상처를 온전히 치유해 주십니다.

  버림받고 멸시받아 촛농처럼 타내려 가던 그 아픈 마음으로,

  우리의 마음에 난 상처를 따뜻하게 치료해 주십니다.

  안타깝게 흘리시던 그 눈물로, 우리의 슬픔을 치료해 주십니다.

  못 박히신 두 손과 발로, 육신의 병으로 아파하는 우리를 치유해 주십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가 우리의 아픔을 들고 주님 앞에 나아가면,

  주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내가 너를 잘 아노라. 사랑하는 내 딸아, 네게 축복 더 하노라.”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의 깊은 상처들을 예수님 앞에 부끄럼 없이 내려놓읍시다.

  그리고 이렇게 예수님께 이렇게 기도합시다.

 “주님 ! 저 정말로 아픕니다. 견디기 어렵습니다. 빨리 고쳐주세요 !”

  분명, 우리에게 놀라운 치유가 있을 것을 믿습니다.

  이번 한 주간, 우리 모두에게 큰 치유가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


  성경을 통해 하나님은, 상처 많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베드로전서2: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느니라>

 (キリストは自ら十字架の上で、私たちの罪をその身に負われた。

  それは、私たちが罪を離れ、義のために生きるため。

  その打ち傷のゆえに、あなたがたは癒やされた。)


  이사야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彼は私たちの背きのために刺され、私たちの咎のために砕かれたのだ。

  彼への懲らしめが私たちに平安をもたらし、

  その打ち傷のゆえに、私たちは癒やされた。)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예수님이 흘리신 보혈과 예수님이 겪으신 아픔을 통해,

  우리가 가진 어떤 아픔과 어떤 상처도 완전히 치유 받을 수 있습니다.

  왜 속에 품고 있으면서, 자신을 찌르고 또 찌르십니까 ?!

  부디, 이번 한 주간, 예수님 앞에 모두 내려놓고, 깨끗하게 치료받고,

  고침 받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


  그런데 여러분 ! 왜 하나님은 우리에게 아픔과 상처를 주실까요 ?!

  몇 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중 한 가지는

  예수님이 고난과 아픔을 당하신 것과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우리도 예수님처럼 [상처 입은 치유자]로 쓰시기 위함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앞서 소개한 일용 엄마(엄니)의 말이, 왜 그토록 큰 호소력이 있었다고 했나요 ?

  그렇습니다. 그녀에게도 커다란 아픔이 수없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아픔을 경험으로, 노마 엄마, 노마 아빠의 아픔을 본 것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왜 예수님이, 우리의 어떤 아픔과 상처도, 전부 위로하고 치유해 주실 수 있습니까 ?!

  그렇습니다. 여러분 ! 예수님이 친히 경험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4: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私たちの大祭司は、私たちの弱さに同情できない方ではありません。

  罪は犯しませんでしたが、すべての点において、

  私たちと同じように試みにあわれたのです。)


  그렇습니다. 여러분 !

  예수님에게는 온전한 사랑, 일용 엄마(엄니)에게는 [동병상련(同病相憐)]의

  마음(사랑)이 있기에, 아픈 마음을 고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참고> 동병상련 : 같은 병을 앓는 사람끼리 서로 가엾게 여긴다는 뜻으로,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끼리 서로 동정하고 도움을 이르는 말 

  <參考> 同病相憐 : 同じ病気に苦しむ人々が、互いに同情し合うこと。

  また広く、同じ境遇で苦しむ者同士は、互いになぐさめ合うことをいう。


  사랑하는 여러분 !

  하나님이 우리에게 아픔과 상처를 주시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우리에게도, 예수님의 사랑, 그리고 동병상련의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아픔과 고난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

  지금 많이 아프십니까 ? 지금 정말 고통스러우십니까 ?

  그렇다면 우리 감사드립시다.

  이 아픔 많은 세상의 [상처 입은 치유자]로 우리를 세우시는 하나님께 말입니다.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예수님은 우리가 가난할 때, 돈다발을 들고 오시는 분이 아닙니다.

  물론 그런 주님이 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난할 때, 주님은 그 가난 속에서 우리와 함께 아파하십니다.


  우리가 병들었을 때, 고쳐주시기도 하지만,

  도리어 예수님은, 우리의 병상에서 우리와 함께 아파하십니다.


  우리가 너무도 억울해 피눈물을 흘릴 때, 예수님은 우리의 눈물을

  닦아 주시기도 하지만, 주님은 우리 옆에서 뜨거운 눈물을 같이 흘리십니다.

  바로 이 모습이, [상처 입은 치유자]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여러 상처와 고난으로 지금 너무 아프십니까 ?

  이번 한 주간 예수님 앞에 엎드려, 우리의 모든 상처와 아픔과

  고통과 괴로움을 전부 내려놓고 완전히 치유 받으십시오.

  그리고 예수님처럼 상처 입은 치유자가 되어,

  아픈 사람들을 치유하는 하나님의 일꾼이 되십시오.


  혹, 좀처럼 치유되지 않는 큰 아픔과 상처를 가지고 계십니까 ?

  그것은 우리를 더욱더 큰 치유자로 삼으시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이며, [훈련]입니다.

  우리가 겪는 큰 아픔을, 지금 우리 속에서, 같이 겪어주시는 예수님을 의지합시다.

  그리하여, 이 땅에서 상처받은 사람들을 치유하는, [상처 입은 치유자]가 됩시다.


  참으로 상처 많고, 아픔 많은 이 시대에,

  예수님의 뒤를 따라 [상처 입은 치유자]가 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할렐루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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