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2009년5월31일, 요한복음3:16(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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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 계신 복스러운 지체들에게 이렇게 축복합시다.
영원을 사모하는 당신 ! 정말로 아름답습니다.
영원한 사랑, 영원한 행복, 영원한 생명은 당신의 것입니다.
저는 지난주일 설교를 시작하면서 이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저는 요사이 예배당 구입의 절차를 진행하면서,
마음을 무겁게 하는 한 가지로 인해 자주 기도하게 됩니다.
마음을 무겁게 하는 그 한 가지라 함은,
아직 신앙의 본질을 체험하지 못한 본향에 속한 몇몇의 성도들입니다.
저는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전철역에서 3분도 걸리지 않은 이 예배당까지 예배드리러 오는 것이 그렇게도 힘든데,
교회가 이전을 하게 되면, 그곳까지 와서 예배를 드릴 수 있을까 ?"
"이들이 교회 이전을 계기로 영영 교회로부터 멀어져 버리지 않을까 ?
더구나 이들은 신앙에 대해, 진리에 대해 너무 모르는데."
그래서 깊이 후회가 되고 회개가 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더 빨리, 더욱 간절히 신앙의 본질과 성경의 진리를 전했어야 했는데....
그래서 저는 지난 주일부터 기독교의 본질,
그리고 우리는 무엇을 믿는지,
과연 성경은 무엇을 말하는지에 대해서
한 가지씩 매 주일 예배를 통해 전하고자 함을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렸습니다.
지난주일 그 첫 시간을 통해 저는,
"우리들은 영원(永遠)을 사모하는 사람들입니다."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이 시간 다시 한 번 여러분들의 마음에, 영혼에 간절히 묻습니다.
당신은 영원을 사모하는 사람입니까 ?
눈앞 현실도 정말 중요하지만, 하나님이 예비하신 영원을 보십니까 ?
영원(永遠)을 위해 貴한 것들을 심고 계십니까 ?
이곳에 계신 여러분 모두는 지속적으로 영원(永遠)을 사모하는 사람이 되시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은 두 번째 시간으로,
우리가 믿는 하나님에 대해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어리석은 제가 감히 하나님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말씀드리겠습니까 !
또한 우리가 하나님을 완전히 알 수 있겠습니까 ?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호세아6:6,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燔祭)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わたしが喜ぶのは, 愛であっていけにえではなく,
神を知ることであって, 燒き盡くす獻げ物ではない.)
"내가 바라는 것은 변함 없는 사랑이지, 제사가 아니다.
불살라 바치는 제사보다는 너희가 나 하나님을 알기를 더 바란다"(표준새번역 성경)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기 위하여 힘써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이야기지만
소련의 우주인 가가린이 달에 다녀와서 하는 이야기가
달나라에 가보았지만 거기에도 하나님은 없더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후에 달 표면을 밟는 우주여행까지 하고 돌아온 미국의 어윈(Irwin) 대령은
우주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하며 하나님의 음성을 가까이 들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이 어윈 대령이 헝가리를 방문했을 때 한 젊은 청년이 그에게 물었습니다.
"가가린은 하나님을 보지 못했다는데 당신은 어떻게 보았습니까 ?"
그랬더니 어윈 대령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마태복음5:8)
이 세상의 많은 존재들 중 '하나님'만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존재는 없을 것입니다.
유신론자이든 무신론자이든 사물을 인지하기 시작하는 연령이 되면
神의 존재에 대한 호기심을 느낍니다.
"과연 하나님(神)은 존재하시는가 ?"
"만약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면 그는 어떤 분이신가 ?"
"왜 한 번도 자신의 모습을 분명하게 드러내지 않는 것일까 ?"
이런 물음과 의문은 누구에게 나 있을 것입니다.
이에 철학자들은 인간 理性으로 하나님 존재를 이렇게 추론했습니다.
1>본체론적 논증(안셀름, 데카르트, 사무엘 크락 등이 주장)
내용; 인간은 유한하고 불완전한 존재이기는 하지만,
무한하고 완전한 존재의 관념을 가지고 있는데,
인간이 완전한 존재의 관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완전한 그 존재,
즉 하나님(神)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2>우주론적 논증(존 록크, 라이프니츠, 아리스토텔레스, 토마스 아퀴나스)
내용; 우주는 인간이 창조할 수 없으며, 또 우주 자체가 만들어 낼 수도 없다.
그러므로 인간과 우주의 생성 원인을 찾아가 보면,
궁극적으로 자존재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
그 자존재(自存在)가 바로 하나님이시다.
3>도덕론적 논증(헤밀톤, 칸트, 존 뉴만)
내용; 인간 속에는 양심(良心)이 있는데, 이것은 악을 물리치는 의무감이다.
그런데 이 양심(良心)을 인간 속에 심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神) 외에는 누구도 할 수 없다. 고로 하나님은 계신다.
4>역사론적 논증
내용; 세계 역사를 통해 볼 때,
반드시 사필귀정(事必歸正->万事は必ず正しきに歸するということ)의
형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아
분명 세계를 움직이시는 초자연적인 하나님이 존재하신다.
그런데 이러한 논증은 하나님의 존재를 단지 추론해 본 것뿐이지
결코 온전한 것이 되지 못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아름다운 꽃의 색깔은 귀로 들어서는 알 수 없고 오직 눈으로 봄으로 알 수 있으며,
찬양의 아름다운 멜로디는 눈으로 보아 알 수 없지만 귀의 청각으로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음식의 맛은 귀로 들어서 알 수 없지만 혀로 그 맛을 알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존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영(靈)이시기 때문에 우리의 눈으로 보아서는 알 수 없지만
'영혼의 눈'으로는 밝히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철학자들의 이성(理性)의 눈으로는 결코 하나님을 온전히 볼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은 하나님의 존재에 어떤 입장일까요 ?
성경은 처음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창세기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初めに,神は天地を創造された.)
그렇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해 보려는 시도를 전혀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조금도 의심하지도 않습니다.
너무 분명하고 확실한 존재이기에 구태여 증명할 필요조차 느끼지 않는 것입니다.
복음전도자 바울은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로마서1: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찌니라"
(世界が造られたときから,目に見えない神の性質,
つまり神の永遠の力と神性は被造物に現れており,
これを通して神を知ることができます.)
사랑하는 여러분 !
여러분은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믿습니까 ?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히브리서11:6,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償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神に近づく者は,神が存在しておられること,
また,神は御自分を求める者たちに報いてくださる方であることを,
信じていなければならないんです.)
우리는 또한 하나님이 하신 일을 통해,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우주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조금 전에도 소개했지만, 성경의 첫 장 첫 절은 이렇게 선포합니다.
창세기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初めに,神は天地を創造された.)
그렇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한동대학교 총장 김영길 박사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멀지 않은 장래에 종말이 옵니다.
그 종말은 인간과 인간들이 만든 로봇들과의 전쟁으로 시작합니다.
로봇들은 화학전을 펼칩니다. 결국 숨을 쉬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식물 생명체들이
모두 죽고 기계인 로봇들만 살아남습니다.
그로부터 아주 오랜 세월이 흘러 로봇들은 자신들이 어디서 생겼는지 궁금해서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자기들을 만든 인간들이 다 죽어버렸기 때문에 도무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기들의 몸을 과학적으로 분석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거기서 구리도 나오고 철도 나오고 아연도 납도 인도 나왔습니다.
'이런 물질이 어디에 있는가 ?'하고 땅과 공기, 물 속을 찾아보았더니
바로 그곳에 그 모든 것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로봇들은 마침내 한 가지 결론을 내렸습니다.
"아 ! 우리는 바로 저 땅과 물 속 그리고 저 공기 속에서 저절로 생겨난 것이구나"]
어리석은 인간과 정말 비슷합니다.
여러분 !
우리 인간을 포함한 우주만물은 하나님이 만드셨습니다.
천문학자 케플러는 신실한 크리스천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와 함께 천문학을 연구하는 한 친구는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는 사람으로 늘
"태양계란 그 자체의 힘으로 생성된 것이며 유지되는 것이니 누가 만든 것이 아니다"
라고 주장했습니다.
케플러는 그 친구에게 우주만물이 하나님의 창조물임을 알게 해주고자 고심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태양계의 모형을 실제 크기의 축소 비율에 맞게 만들어
아름다운 색을 칠하고 별들이 빛을 발하며 빙글빙글 돌아가도록 모형을 만들어
그 친구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그것을 본 친구는 매우 감탄을 하며 케플러에게 물었습니다.
"누가 이렇게 아름답게 만들었나 ?"
케플러가 대답했습니다.
"아무도 만들지 않았네. 자기 힘으로 생겨나서 자기 힘으로 도는 것일세 !"
"뭐야 ? 친구여 거짓말하지 말게. 어떻게 만든 사람이 없이
저절로 만들어지고 돈단 말인가 ?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지 않는가 ?"
그때 케플러는 이렇게 친구에게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이 친구야 !
이렇게 작고 보잘것없는 장난감도, 만들어 움직이는 사람이 있다면
이 거대한 우주만물이 창조주가 없이 어떻게 생겨나고,
어떻게 한치의 오차도 없이 질서 있게 돌아갈 수가 있겠는가 ?"
한 가지 재미있는 이야기를 더 소개하겠습니다.
젊은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면서 화창한 봄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들과 산이 녹색으로 물들여져 있고, 새들은 지저귀며,
목장에서는 소가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었습니다.
이때 한 친구가 말했습니다.
"아아 ! 우리들의 하나님은 실로 偉大하시네.
이 벌레 한 마리를 보더라도 神의 위대함을 알 수가 있단 말야 !"
"또한 생각해 보게나, 저기 보이는 커다란 소가 처음에는 작은 송아지였잖아 !
저 하늘을 나는 새는 처음에는 알이었고."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아름답게 자라나게 하시는 구만 !"
다른 친구가 대답했습니다.
"하나님은 偉大하시다고 나도 생각하네. 그렇지만 한가지 모를 것이 있단 말이야 !"
"새들은 작으니까 별로 많이 먹지 않잖아,
반대로 소는 몸집이 크니까 엄청나게 많이 먹고 !"
"그런데 많이 먹기 위하여 찾아다니지 않으면 안될 소에는 날개가 없고,
조금만 먹어도 살 수 있으며 주위에 떨어져 있는 먹이를 주워 먹으면 되는 새에게는
날개가 있는 것은 정말 이상한 노릇이란 말야 !"
"하나님의 뜻을 정말 모르겠단 말일세 !"
바로 그 순간 두 사람의 머리 위를 새가 스쳐 날아갔습니다.
그리고는 한 친구의 이마 위에 새똥을 떨어뜨렸습니다.
두 젊은이는 동시에 이렇게 외쳤습니다.
"아하 이제 알겠네 !" "역시 하나님은 위대하신 분이야 !"
둘째, 하나님의 사랑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어느 날 밤, 유대인의 지도자 중 한 사람인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찾아 왔습니다.
그에게는 한 가지 고민이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을 잘 믿어왔다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마음 깊은 곳엔 뭔가 모를 갈증이 있었습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되는가 ? 영생이란 과연 있는 것인가 ?
있다면 누가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가 ?"
등등의 질문들이 꼬리를 물고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그 모든 의문을 풀어보려고 예수님을 찾아 온 것이었는데,
그런 니고데모에게 예수님은
성경 모든 말씀 중 가장 유명한 오늘 본문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본문16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런데 여러분 !
이 귀한 말씀을 많은 사람들 앞에서 하시지 않고,
왜 니고데모 한 사람에게 말씀하셨을까요 ?
그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 사랑은 일대일의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사랑의 대상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입니다.
한꺼번에 묶어서 베푸는 사랑이 아니라,
사랑할 대상이 딱 한 사람 밖에 없는 것처럼 사랑하시는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대상이 누구입니까 ?
하나님이 온 열정과 희생을 다해서 사랑하는 그 대상이 누구입니까 ?
그렇습니다.
바로 우리 각자입니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사실 이 말씀은 너무나 엄청난 것이기 때문에 감히 믿을 엄두도 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이 말씀을 잘 믿지 못합니다.
온 우주의 主人 되신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
베드로와 가룟 유다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
베드로는 예수를 세 번이나 부인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용서받았습니다.
그러나 가룟 유다는 그 하나님의 사랑을 믿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포기했습니다.
그리고 자멸했습니다.
회개란 무엇입니까 ?
소극적으로 죄를 뉘우치는 것만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이 크고 놀라운 용서의 사랑을 믿는 것입니다.
그 놀라우신 하나님의 사랑의 품에 우리 자신을 집어 던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 우리 한 영혼, 한 영혼은 이 거대한 우주보다도 더 귀한 것입니다.
어느 농장에 귀여운 병아리가 한 마리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그 병아리가 병이 들어 시름시름 앓더니
급기야 거의 죽게 되었습니다.
유명한 수의사를 불러 고칠 방법을 물었더니
암탉 한 마리를 잘 고와 먹이면 낫는다고 합니다.
주인은 수의사한테 당신 정신 나갔냐고 하면서 막 화를 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병아리를 살리려고 암탉을 죽이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
농장주인은 다른 의사를 불렀습니다.
그런데 그 의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병아리의 병이 더욱 깊어져 송아지를 잡아 먹여야 합니다"
농장주인은 기가 막혔습니다. 그래서 또 다른 의사를 불렀습니다.
그랬더니 그 의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는 딱 한 가지 방법밖에 없습니다."
"이 병아리를 살리려면, 하나밖에 없는 농장주인의 어린 아들을 잡아 먹여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병아리를 살리기 위해 자기 아들을 죽일 농장주인이 있습니까 ?
그런데 실제로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인간의 상식으로는 무모한 계획이고, 잘못된 계획으로 보일지 몰라도
하나님은 그 일을 결행하셨습니다.
당신의 외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처참히 죽이셨습니다.
이 일을 통해 하나님은
당신께서 우리 인간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밝히 보여주셨습니다.
로마서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わたしたちがまだ罪人であったとき,キリストがわたしたちのために
死んでくださったことにより,神はわたしたちに對する愛を示されました.)
사랑하는 여러분 !
오늘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놀라운 사랑의 말씀 앞에서
우리가 어떤 태도를 보이느냐는 것입니다.
때때로 우리는 무엇인가를 하는 것보다,
무엇을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게 더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오늘 말씀이 그렇습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듣고 뭔가 해야 될 일이 아니라,
말씀을 듣고 받아들여야 하는 말씀입니다. 아주 쉽습니다.
여러분 !
하나님이 여러분을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의심 없이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피상적으로 말고, 높은 산에서 시원한 공기를 흠뻑 들이마시듯이
오늘의 말씀을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인생이 달라집니다. 삶의 태도가 바뀝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이 다니는 직장의 사장이,
자신의 아들을 대신 죽일 정도로 여러분을 사랑한다고 여러분에게 고백한다면,
여러분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
이 나라의 수상이,
우리를 사랑해서 자신이 가진 가장 귀한 것을 버리겠다고 우리에게 고백한다면,
우리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
그렇습니다.
우주만물을 지으시고,
지금도 살아 계셔서 모든 인생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하신다고 지금 고백하고 계십니다.
여러분 !
이 놀라운 사실을 마음으로 받아들이십시오.
온 몸과 마음으로 느껴보십시오.
얼마나 행복합니까 !
얼마나 감사합니까 !
얼마나 좋습니까 !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에게 이 믿음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극진히 사랑하신다는 사실,
더 나아가서 그 사랑을 받아들일 작정을 하는 것입니다.
지금의 삶이 불안하고, 힘드십니까 ?
지금의 상황이 짜증나고 뭔가 체증이 있는 것처럼 무겁습니까 ?
하나님이 여러분의 그런 상황을 다 알고 계십니다.
이 시간, 하나님의 그 분의 위로를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그 분의 품으로 여러분의 몸과 맘을 집어 던지시기 바랍니다.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오늘은 우리가 믿는 하나님에 대해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더욱 하나님을 깊이 알아가기를 간절하게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肉身의 눈이나 理性의 눈으로는 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靈이시기 때문입니다.
靈의 눈을 회복하여 하나님을 보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너무나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버리신 분입니다.
그 하나님은 지금도 당신을 너무나 사랑하십니다.
스바냐 선지자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스바냐3:17,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お前の主なる神はお前のただ中におられ,勇士であって勝利を與えられる.
主はお前のゆえに喜び樂しみ,愛によってお前を新たにし,
お前のゆえに喜びの歌をもって樂しまれる.") 할렐루야 !
영원을 사모하는 당신 ! 정말로 아름답습니다.
영원한 사랑, 영원한 행복, 영원한 생명은 당신의 것입니다.
저는 지난주일 설교를 시작하면서 이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저는 요사이 예배당 구입의 절차를 진행하면서,
마음을 무겁게 하는 한 가지로 인해 자주 기도하게 됩니다.
마음을 무겁게 하는 그 한 가지라 함은,
아직 신앙의 본질을 체험하지 못한 본향에 속한 몇몇의 성도들입니다.
저는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전철역에서 3분도 걸리지 않은 이 예배당까지 예배드리러 오는 것이 그렇게도 힘든데,
교회가 이전을 하게 되면, 그곳까지 와서 예배를 드릴 수 있을까 ?"
"이들이 교회 이전을 계기로 영영 교회로부터 멀어져 버리지 않을까 ?
더구나 이들은 신앙에 대해, 진리에 대해 너무 모르는데."
그래서 깊이 후회가 되고 회개가 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더 빨리, 더욱 간절히 신앙의 본질과 성경의 진리를 전했어야 했는데....
그래서 저는 지난 주일부터 기독교의 본질,
그리고 우리는 무엇을 믿는지,
과연 성경은 무엇을 말하는지에 대해서
한 가지씩 매 주일 예배를 통해 전하고자 함을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렸습니다.
지난주일 그 첫 시간을 통해 저는,
"우리들은 영원(永遠)을 사모하는 사람들입니다."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이 시간 다시 한 번 여러분들의 마음에, 영혼에 간절히 묻습니다.
당신은 영원을 사모하는 사람입니까 ?
눈앞 현실도 정말 중요하지만, 하나님이 예비하신 영원을 보십니까 ?
영원(永遠)을 위해 貴한 것들을 심고 계십니까 ?
이곳에 계신 여러분 모두는 지속적으로 영원(永遠)을 사모하는 사람이 되시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은 두 번째 시간으로,
우리가 믿는 하나님에 대해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어리석은 제가 감히 하나님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말씀드리겠습니까 !
또한 우리가 하나님을 완전히 알 수 있겠습니까 ?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호세아6:6,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燔祭)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わたしが喜ぶのは, 愛であっていけにえではなく,
神を知ることであって, 燒き盡くす獻げ物ではない.)
"내가 바라는 것은 변함 없는 사랑이지, 제사가 아니다.
불살라 바치는 제사보다는 너희가 나 하나님을 알기를 더 바란다"(표준새번역 성경)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기 위하여 힘써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이야기지만
소련의 우주인 가가린이 달에 다녀와서 하는 이야기가
달나라에 가보았지만 거기에도 하나님은 없더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후에 달 표면을 밟는 우주여행까지 하고 돌아온 미국의 어윈(Irwin) 대령은
우주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하며 하나님의 음성을 가까이 들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이 어윈 대령이 헝가리를 방문했을 때 한 젊은 청년이 그에게 물었습니다.
"가가린은 하나님을 보지 못했다는데 당신은 어떻게 보았습니까 ?"
그랬더니 어윈 대령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입니다."(마태복음5:8)
이 세상의 많은 존재들 중 '하나님'만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존재는 없을 것입니다.
유신론자이든 무신론자이든 사물을 인지하기 시작하는 연령이 되면
神의 존재에 대한 호기심을 느낍니다.
"과연 하나님(神)은 존재하시는가 ?"
"만약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면 그는 어떤 분이신가 ?"
"왜 한 번도 자신의 모습을 분명하게 드러내지 않는 것일까 ?"
이런 물음과 의문은 누구에게 나 있을 것입니다.
이에 철학자들은 인간 理性으로 하나님 존재를 이렇게 추론했습니다.
1>본체론적 논증(안셀름, 데카르트, 사무엘 크락 등이 주장)
내용; 인간은 유한하고 불완전한 존재이기는 하지만,
무한하고 완전한 존재의 관념을 가지고 있는데,
인간이 완전한 존재의 관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완전한 그 존재,
즉 하나님(神)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2>우주론적 논증(존 록크, 라이프니츠, 아리스토텔레스, 토마스 아퀴나스)
내용; 우주는 인간이 창조할 수 없으며, 또 우주 자체가 만들어 낼 수도 없다.
그러므로 인간과 우주의 생성 원인을 찾아가 보면,
궁극적으로 자존재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
그 자존재(自存在)가 바로 하나님이시다.
3>도덕론적 논증(헤밀톤, 칸트, 존 뉴만)
내용; 인간 속에는 양심(良心)이 있는데, 이것은 악을 물리치는 의무감이다.
그런데 이 양심(良心)을 인간 속에 심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神) 외에는 누구도 할 수 없다. 고로 하나님은 계신다.
4>역사론적 논증
내용; 세계 역사를 통해 볼 때,
반드시 사필귀정(事必歸正->万事は必ず正しきに歸するということ)의
형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아
분명 세계를 움직이시는 초자연적인 하나님이 존재하신다.
그런데 이러한 논증은 하나님의 존재를 단지 추론해 본 것뿐이지
결코 온전한 것이 되지 못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아름다운 꽃의 색깔은 귀로 들어서는 알 수 없고 오직 눈으로 봄으로 알 수 있으며,
찬양의 아름다운 멜로디는 눈으로 보아 알 수 없지만 귀의 청각으로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음식의 맛은 귀로 들어서 알 수 없지만 혀로 그 맛을 알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존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영(靈)이시기 때문에 우리의 눈으로 보아서는 알 수 없지만
'영혼의 눈'으로는 밝히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철학자들의 이성(理性)의 눈으로는 결코 하나님을 온전히 볼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은 하나님의 존재에 어떤 입장일까요 ?
성경은 처음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창세기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初めに,神は天地を創造された.)
그렇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해 보려는 시도를 전혀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조금도 의심하지도 않습니다.
너무 분명하고 확실한 존재이기에 구태여 증명할 필요조차 느끼지 않는 것입니다.
복음전도자 바울은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로마서1: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찌니라"
(世界が造られたときから,目に見えない神の性質,
つまり神の永遠の力と神性は被造物に現れており,
これを通して神を知ることができます.)
사랑하는 여러분 !
여러분은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믿습니까 ?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히브리서11:6,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償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神に近づく者は,神が存在しておられること,
また,神は御自分を求める者たちに報いてくださる方であることを,
信じていなければならないんです.)
우리는 또한 하나님이 하신 일을 통해,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우주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조금 전에도 소개했지만, 성경의 첫 장 첫 절은 이렇게 선포합니다.
창세기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初めに,神は天地を創造された.)
그렇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한동대학교 총장 김영길 박사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멀지 않은 장래에 종말이 옵니다.
그 종말은 인간과 인간들이 만든 로봇들과의 전쟁으로 시작합니다.
로봇들은 화학전을 펼칩니다. 결국 숨을 쉬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식물 생명체들이
모두 죽고 기계인 로봇들만 살아남습니다.
그로부터 아주 오랜 세월이 흘러 로봇들은 자신들이 어디서 생겼는지 궁금해서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자기들을 만든 인간들이 다 죽어버렸기 때문에 도무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기들의 몸을 과학적으로 분석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거기서 구리도 나오고 철도 나오고 아연도 납도 인도 나왔습니다.
'이런 물질이 어디에 있는가 ?'하고 땅과 공기, 물 속을 찾아보았더니
바로 그곳에 그 모든 것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로봇들은 마침내 한 가지 결론을 내렸습니다.
"아 ! 우리는 바로 저 땅과 물 속 그리고 저 공기 속에서 저절로 생겨난 것이구나"]
어리석은 인간과 정말 비슷합니다.
여러분 !
우리 인간을 포함한 우주만물은 하나님이 만드셨습니다.
천문학자 케플러는 신실한 크리스천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와 함께 천문학을 연구하는 한 친구는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는 사람으로 늘
"태양계란 그 자체의 힘으로 생성된 것이며 유지되는 것이니 누가 만든 것이 아니다"
라고 주장했습니다.
케플러는 그 친구에게 우주만물이 하나님의 창조물임을 알게 해주고자 고심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태양계의 모형을 실제 크기의 축소 비율에 맞게 만들어
아름다운 색을 칠하고 별들이 빛을 발하며 빙글빙글 돌아가도록 모형을 만들어
그 친구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그것을 본 친구는 매우 감탄을 하며 케플러에게 물었습니다.
"누가 이렇게 아름답게 만들었나 ?"
케플러가 대답했습니다.
"아무도 만들지 않았네. 자기 힘으로 생겨나서 자기 힘으로 도는 것일세 !"
"뭐야 ? 친구여 거짓말하지 말게. 어떻게 만든 사람이 없이
저절로 만들어지고 돈단 말인가 ?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지 않는가 ?"
그때 케플러는 이렇게 친구에게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이 친구야 !
이렇게 작고 보잘것없는 장난감도, 만들어 움직이는 사람이 있다면
이 거대한 우주만물이 창조주가 없이 어떻게 생겨나고,
어떻게 한치의 오차도 없이 질서 있게 돌아갈 수가 있겠는가 ?"
한 가지 재미있는 이야기를 더 소개하겠습니다.
젊은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면서 화창한 봄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들과 산이 녹색으로 물들여져 있고, 새들은 지저귀며,
목장에서는 소가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었습니다.
이때 한 친구가 말했습니다.
"아아 ! 우리들의 하나님은 실로 偉大하시네.
이 벌레 한 마리를 보더라도 神의 위대함을 알 수가 있단 말야 !"
"또한 생각해 보게나, 저기 보이는 커다란 소가 처음에는 작은 송아지였잖아 !
저 하늘을 나는 새는 처음에는 알이었고."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아름답게 자라나게 하시는 구만 !"
다른 친구가 대답했습니다.
"하나님은 偉大하시다고 나도 생각하네. 그렇지만 한가지 모를 것이 있단 말이야 !"
"새들은 작으니까 별로 많이 먹지 않잖아,
반대로 소는 몸집이 크니까 엄청나게 많이 먹고 !"
"그런데 많이 먹기 위하여 찾아다니지 않으면 안될 소에는 날개가 없고,
조금만 먹어도 살 수 있으며 주위에 떨어져 있는 먹이를 주워 먹으면 되는 새에게는
날개가 있는 것은 정말 이상한 노릇이란 말야 !"
"하나님의 뜻을 정말 모르겠단 말일세 !"
바로 그 순간 두 사람의 머리 위를 새가 스쳐 날아갔습니다.
그리고는 한 친구의 이마 위에 새똥을 떨어뜨렸습니다.
두 젊은이는 동시에 이렇게 외쳤습니다.
"아하 이제 알겠네 !" "역시 하나님은 위대하신 분이야 !"
둘째, 하나님의 사랑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어느 날 밤, 유대인의 지도자 중 한 사람인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찾아 왔습니다.
그에게는 한 가지 고민이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을 잘 믿어왔다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마음 깊은 곳엔 뭔가 모를 갈증이 있었습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되는가 ? 영생이란 과연 있는 것인가 ?
있다면 누가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가 ?"
등등의 질문들이 꼬리를 물고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그 모든 의문을 풀어보려고 예수님을 찾아 온 것이었는데,
그런 니고데모에게 예수님은
성경 모든 말씀 중 가장 유명한 오늘 본문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본문16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런데 여러분 !
이 귀한 말씀을 많은 사람들 앞에서 하시지 않고,
왜 니고데모 한 사람에게 말씀하셨을까요 ?
그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 사랑은 일대일의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사랑의 대상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입니다.
한꺼번에 묶어서 베푸는 사랑이 아니라,
사랑할 대상이 딱 한 사람 밖에 없는 것처럼 사랑하시는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대상이 누구입니까 ?
하나님이 온 열정과 희생을 다해서 사랑하는 그 대상이 누구입니까 ?
그렇습니다.
바로 우리 각자입니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사실 이 말씀은 너무나 엄청난 것이기 때문에 감히 믿을 엄두도 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이 말씀을 잘 믿지 못합니다.
온 우주의 主人 되신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
베드로와 가룟 유다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
베드로는 예수를 세 번이나 부인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용서받았습니다.
그러나 가룟 유다는 그 하나님의 사랑을 믿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포기했습니다.
그리고 자멸했습니다.
회개란 무엇입니까 ?
소극적으로 죄를 뉘우치는 것만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이 크고 놀라운 용서의 사랑을 믿는 것입니다.
그 놀라우신 하나님의 사랑의 품에 우리 자신을 집어 던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 우리 한 영혼, 한 영혼은 이 거대한 우주보다도 더 귀한 것입니다.
어느 농장에 귀여운 병아리가 한 마리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그 병아리가 병이 들어 시름시름 앓더니
급기야 거의 죽게 되었습니다.
유명한 수의사를 불러 고칠 방법을 물었더니
암탉 한 마리를 잘 고와 먹이면 낫는다고 합니다.
주인은 수의사한테 당신 정신 나갔냐고 하면서 막 화를 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병아리를 살리려고 암탉을 죽이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
농장주인은 다른 의사를 불렀습니다.
그런데 그 의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병아리의 병이 더욱 깊어져 송아지를 잡아 먹여야 합니다"
농장주인은 기가 막혔습니다. 그래서 또 다른 의사를 불렀습니다.
그랬더니 그 의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는 딱 한 가지 방법밖에 없습니다."
"이 병아리를 살리려면, 하나밖에 없는 농장주인의 어린 아들을 잡아 먹여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병아리를 살리기 위해 자기 아들을 죽일 농장주인이 있습니까 ?
그런데 실제로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인간의 상식으로는 무모한 계획이고, 잘못된 계획으로 보일지 몰라도
하나님은 그 일을 결행하셨습니다.
당신의 외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처참히 죽이셨습니다.
이 일을 통해 하나님은
당신께서 우리 인간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밝히 보여주셨습니다.
로마서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わたしたちがまだ罪人であったとき,キリストがわたしたちのために
死んでくださったことにより,神はわたしたちに對する愛を示されました.)
사랑하는 여러분 !
오늘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놀라운 사랑의 말씀 앞에서
우리가 어떤 태도를 보이느냐는 것입니다.
때때로 우리는 무엇인가를 하는 것보다,
무엇을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게 더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오늘 말씀이 그렇습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듣고 뭔가 해야 될 일이 아니라,
말씀을 듣고 받아들여야 하는 말씀입니다. 아주 쉽습니다.
여러분 !
하나님이 여러분을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의심 없이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피상적으로 말고, 높은 산에서 시원한 공기를 흠뻑 들이마시듯이
오늘의 말씀을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인생이 달라집니다. 삶의 태도가 바뀝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이 다니는 직장의 사장이,
자신의 아들을 대신 죽일 정도로 여러분을 사랑한다고 여러분에게 고백한다면,
여러분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
이 나라의 수상이,
우리를 사랑해서 자신이 가진 가장 귀한 것을 버리겠다고 우리에게 고백한다면,
우리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
그렇습니다.
우주만물을 지으시고,
지금도 살아 계셔서 모든 인생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하신다고 지금 고백하고 계십니다.
여러분 !
이 놀라운 사실을 마음으로 받아들이십시오.
온 몸과 마음으로 느껴보십시오.
얼마나 행복합니까 !
얼마나 감사합니까 !
얼마나 좋습니까 !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에게 이 믿음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극진히 사랑하신다는 사실,
더 나아가서 그 사랑을 받아들일 작정을 하는 것입니다.
지금의 삶이 불안하고, 힘드십니까 ?
지금의 상황이 짜증나고 뭔가 체증이 있는 것처럼 무겁습니까 ?
하나님이 여러분의 그런 상황을 다 알고 계십니다.
이 시간, 하나님의 그 분의 위로를 받아들이시기 바랍니다.
그 분의 품으로 여러분의 몸과 맘을 집어 던지시기 바랍니다.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오늘은 우리가 믿는 하나님에 대해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더욱 하나님을 깊이 알아가기를 간절하게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肉身의 눈이나 理性의 눈으로는 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靈이시기 때문입니다.
靈의 눈을 회복하여 하나님을 보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너무나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버리신 분입니다.
그 하나님은 지금도 당신을 너무나 사랑하십니다.
스바냐 선지자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스바냐3:17,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お前の主なる神はお前のただ中におられ,勇士であって勝利を與えられる.
主はお前のゆえに喜び樂しみ,愛によってお前を新たにし,
お前のゆえに喜びの歌をもって樂しまれる.") 할렐루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