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主日説教原稿

2009 2009년5월24일, 고린도후서4:18-5:7(우리는 영원을 사모하는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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投稿者 박성철
コメント 0件 照会 13,850回 日時 09-06-01 13:49

本文

  옆에 계신 복스러운 지체들에게 이렇게 축복합시다.
  당신의 헌신은 하나님의 보좌 앞 기념 책에 귀하게 기록될 것입니다.

  당신과 당신의 그 섬김은 천국에서 해 같이 빛날 것입니다.
  여러분은 왜 신앙생활을 하십니까 ?
  여러분이 교회생활을 하시는 가장 큰 목적은 무엇입니까 ?
  무엇을 얻을 목적이십니까 ?
  또한 여러분 인생의 최종 목적지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

  저는 요사이 예배당 구입의 절차를 진행하면서,
  마음을 무겁게 하는 한 가지로 인해 자주 기도하게 됩니다.
  마음을 무겁게 하는 그 한 가지라 함은,
  아직 신앙의 본질을 체험하지 못한 본향에 속한 몇몇의 성도들입니다.

  저는 확신이 서지 않습니다.
  전철역에서 3분도 걸리지 않은 이 예배당까지 예배드리러 오는 것이 그렇게도 힘든데,
  교회가 이전을 하게 되면, 그곳까지 와서 예배를 드릴 수 있을까 ?
  이들이 교회 이전을 계기로 영영 교회로부터 멀어져 버리지 않을까 ?
  더구나 이들은 신앙에 대해, 진리에 대해 아직 미숙한 것 투성이인데.
  그래서 깊이 후회가 되고 회개가 됩니다.
  더 빨리, 더욱 간절히 신앙의 본질과 성경의 진리를 전했어야 했는데 ....

  그리고 이런 것이 두렵습니다.
  이들은 교회에 와본 것뿐입니다.
  아직 진리에 대해 미숙합니다.
  그러므로 세상과 사단의 유혹에 빠지기 쉽습니다.
  마치 정말로 온전한 사랑을 해보지 못한 이혼부부가 가정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가정을 비판하고, 가정은 필요악이라고 외치는 것처럼,
  진리에 미숙한 사람들은
  신앙의 본질과 교회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자칫 비판의 선두에 서기 쉽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요사이 제 마음을 무척 무겁게 합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부터 기독교의 본질,
  그리고 우리는 무엇을 믿는지,
  과연 성경은 무엇을 말하는지에 대해서
  한 가지씩 매 주일 예배를 통해 전하고자 합니다.

  혹, 지금 이곳에 함께 하신 여러분가운데 진리에 대한 확신이 없거나,
  위에서 질문한
 "여러분은 왜 신앙생활을 하십니까 ?"
 "여러분이 교회생활을 하시는 가장 큰 목적은 무엇입니까 ?"등의 질문에
  금방 확신에 찬 답을 할 수 없는 분들이 계시다면,
  이번 기회가 마지막이라는 절박한 심정으로 말씀에 집중하여
  기독교의 본질,
  성경이 말하는 가장 중요한 진리들을 꼭 마음에 새기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부탁합니다.

  다시 또 한 가지를 묻겠습니다.
  여러분은 '영원(永遠, forever)'을 믿으십니까 ?
  왠지 고리타분하게 느껴지십니까 ?

  영원한 사랑 ?
  영원한 진리 ?
  영원한 행복 ?
  영원한 생명 ? .......
  이러한 단어를 마음에 떠올릴 때, 이것들이 존재한다고 믿습니까 ?

  사랑하는 여러분 !
  저는 분명하고도 확실하게 말합니다.
  영원한 사랑, 영원한 진리, 영원한 행복, 영원한 생명은 분명히 있습니다.
  더구나 영원한 세계도 반드시 있습니다.
  우리가 죽으면 죽음 다음의 세계는 반드시 여러분과 저 앞에 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우리가 살 영원한 시간들에 비하면
  전체의 억만 분지 일도 되지 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야고보서4:14,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그렇습니다.
  이 땅에서의 인간의 삶은 잠시 나타났다 사라지는 안개와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존재입니까 ?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분입니다.
  요한복음10:28에서 예수님은 우리들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저희에게 영생(영원한 생명)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가 가야 할 나라는 어디입니까 ?
  우리들 신앙의 최종 목표는 어디입니까 ?
  이 땅 일본의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이유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
  그렇습니다.
  영원한 나라, 영원의 세계, 우리 주님이 계신 곳, 소망의 나라 천국입니다.

  저는 오늘 함께 한 여러분들이 영원(永遠)의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전도서3:11,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이 말씀에는 중요한 세 가지 진리가 담겨 있습니다.
  첫째,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이 만드셨다는 것이고,
  둘째, 영원(永遠)을 사모하는 마음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며,
  셋째, 인간이 하나님의 깊은 뜻을 전부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저는 여러분들이 지나치게 현실 지향적인 삶을 살지 말고,
  영원을 사모하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자 ! 그렇다면, 영원을 사모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

  첫째, 영원의 사람이 된다는 것은 영원을 보는 자가 된다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영원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현대무용의 어머니라고 불리는 마사 그레이엄은 현대무용계의 전설적인 인물입니다.
  그녀가 전설적인 인물로 평가받는 이유는,
  1991년 97세의 나이로 타계할 때까지 작품을 구상하고 가르치고
  직접 무대 위에서 공연을 했던 그 왕성한 활동력 때문이 아닙니다.
  그것도 훌륭했지만 그녀가 그렇게 위대하다는 것은
  350년 동안이나 지속되어 왔던 고전 발레의 틀을 깨어버린 데 있습니다.

  그녀는 1894년 미국 펜실베니아에서 의사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어느 날 아버지가 어린 그레이엄을 불러 컵 속에 있는 물을 보게 했습니다.
  그것은 수정처럼 맑은 물이었습니다.
  곧 이어 아버지는 그 물 한 방울을 현미경에 떨구어 놓고
  그레이엄으로 하여금 그 속을 들여다보게 했습니다.
  놀랍게도 현미경을 통해 들여다 본 물 속에는 수많은 균들이 우글거리고 있었습니다.
  그토록 맑게 보였던 물인데도 말입니다.
  그레이엄은 너무나 놀랐습니다.
  놀라워하는 딸을 보고 아버지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레이엄 ! 너는 표면에 드러나 있는 것만 보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
  언제나 표면 안에 있는, 보이지 않는 진실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어린 그레이엄 마음 속에 이 말이 깊이 새겨졌습니다.
  그리고 그 후부터 그레이엄의 눈에는 뭔가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인간의 웃는 얼굴 뒤에 감추어진 슬픔이, 품위 속의 위선이,
  친절 속의 증오가, 무지 속의 순박함이 보였습니다.
  그 보이지 않는, 그러나 자신은 뚜렷이 볼 수 있는 진실을,
  말로는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무용을 택했습니다.
  그녀에게는 말보다 무용이 더 편한 자기표현의 도구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본 진실을 나타내기에는 고전 발레의 틀은
  너무나 좁고 제한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과감하게 고전 발레의 틀을 깨어버리고
  현대무용의 막을 올리는, 무용사(舞踊史)에 획을 긋는 전설적인 인물이 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사도 바울이 말하고 싶었던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본문4:18,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
  보이지 않는 영원(永遠)을 보기 위해서는 보이는 것에 집착하지 말아야 합니다.
  보인다는 것 자체가 시간과 공간에 지배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것은 이미 쇠퇴하는 중에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새로 만들어진 것이라 할지라도 보이는 형체를 지녔다는 것은,
  그것이 이미 쇠퇴하기 시작했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표현처럼 하나님의 관점에서 본다면
  그것은 '잠깐'후에 사라져 버리고 말 것입니다.
  이 사실을 깨닫는 사람에게만 영원이라는 것이 보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원을 보는 사람만이 자신의 삶에 분명한 획을 그을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별과 우주를 참 좋아했습니다.
  그중 가장 관심 깊었던 분야는 우주의 크기였습니다.
  지금 현재의 과학으로 우주의 크기는 약150-200억 광년(光年)입니다.
  1光年이라함은 빛이 1년 동안 달려가는 거리로서 약9조5천억km입니다.
 (참고. 빛은 1초에 지구를 일곱 바퀴 반을 돔=약30만km)
  그러므로 우주의 크기를 km로 계산하면,
  20,000,000,000 x 9,500,000,000,000 = 190,000,000,000,000,000,000,000km입니다.

  정말 엄청난 크기입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지금도 우주는 점점 커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과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지구로부터 300광년 떨어진 별이 1시간에 36,000km(참고, 지구의 둘레는 40,000km)씩
  지구로부터 멀어져 가고 있다는 것을 밝혀냈습니다.
  결국 현재도 무지하게 큰 우주는,
  바로 이 순간도 쉬지 않고 엄청난 속도로 점점 커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
  우주가 커질 수 있다는 것은, 커질 공간이 있어야 가능한 것 아닙니까 ?
  여기 풍선을 보십시오.
  과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우주는 지금 풍선처럼 커지고 있다하는데,
  풍선이 커지려면 커질 공간이 있어야 커지는 것 아닙니까 ?
  무엇인가가 가로막고 있으면 풍선은 더 이상 커질 수 없지요.

  그래서 저는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주가 커진다.
  그렇다면, 그 우주의 밖은 무엇인가 ?
  제가 우주의 끝에 도달했다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거기서 또 다시 한 발자국을 디디면, 그곳은 우주가 아닌가 ?

  결국 과학자들은 주장합니다.
  우주는 무한하다고, 우주는 영원하다고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는 영원한 공간인 우주 속에 살고 있습니다.
  눈앞에 있는 것들만 쳐다보고,
  그 뒤에 펼쳐진 놀라운 진리를 보지 못하는 근시안적인 삶을 버립시다.
  영원한 우주, 영원한 사랑, 영원한 진리, 영원한 행복, 영원한 생명을 소망하는
  우리가 됩시다.

  둘째, 영원의 사람이 된다는 것은 영원을 위해 심는 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영원한 것을 심어야만 영원을 거두기 때문입니다.

  갈라디아서6:7-8,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무엇을 심든지 심은 것만을 거둔다는 것은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는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심지 않고 거두려는 것은 본문의 지적처럼 자신을 속이는 자기기만이요,
  하나님을 향한 심각한 도전입니다.

  음악을 하는 분들에게 들어보면, 연주를 잘 하는 사람과 못 하는 사람의 차이는
  연습시간에 있다고 합니다.
  언뜻 들으면 '그거야 당연하지'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연주자가 미리 연습을 하게 되면 연습은 연습을 부르게 된답니다.
  그러니까 연습을 많이 하는 사람은 점점 더 연습할 게 많아지고,
  연습을 안 하는 사람은 점점 더 연습할 게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흔히 생각하기는 연습을 잘 안 하는 사람은 연습할 게 많을 것 같아도
  사실은 연습할 게 별로 없다는 거지요.
  하지만 연습을 많이 하는 사람은 점점 더 연습할 분량이 늘어난답니다.
  결국 실력은 연습의 분량에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연습을 심는 자는 연습을 거두고 거기서 실력이 탄생합니다.
  봉사를 심는 자는 더 큰 봉사의 자리를 찾게 되고 거기서 主를 만납니다.
  기도를 심는 자는 더 많은 기도의 자리를 찾게 되고 거기서 主를 만납니다.
  헌신을 심는 자도 더 많은 헌신의 자리를 찾게 되고 거기서 主룰 만납니다.
  사랑을 심는 자도 더 많은 사랑의 자리를 찾게 되고 거기서 主를 만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영원을 심으십시오.
  영원을 위해 심으십시오. 그래야 영원을 거둘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12장16-21절의 예수님의 비유를 소개하겠습니다.
  어떤 부자가 농사가 잘 되어 많은 수확을 얻었습니다.
  그 부자는 생각했습니다.
 "내 창고에는 이미 곡식이 가득하고, 또 이렇게 많은 수확을 얻었으니 어찌할까 ?"
 "그래 지금의 창고를 부수고 더 큰 창고를 지어
  나의 모든 재산을 그곳에 쌓아 두어야겠다."

  창고를 지으며 부자는 자기 영혼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누가복음12:19, "내 영혼아,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물건을 쌓아 두었으니,
  너는 마음을 놓고, 먹고 마시고 즐겨라"(표준새번역)

  바로 그때 하나님께서 그 부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12:20, "'어리석은 사람아, 오늘밤에 네 영혼을 네게서 도로 찾을 것이다.
  그러면 네가 장만한 것들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표준새번역)

  예수님은 이 비유를 이렇게 설명하시며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누가복음12:21, "자기를 위해서는 재물을 쌓아 두면서도,
  하나님께 대하여 인색한 사람은 바로 이와 같이 될 것이다"(표준새번역)

  사랑하는 여러분 !
  영원을 심기를 축원합니다.

  셋째, 영원의 사람이 된다는 것은, 영원을 누리는 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원을 주신 이유는 영원을 누리도록 하는 데 있습니다.
  우리에게 보배가 있다면 그것은 박물관이나 금고 속에 진열해 놓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1>영원을 누린다는 것은 자유를 누린다는 것을 뜻합니다.
  100만 엔을 가진 사람은 1000엔의 유혹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금반지를 가진 사람은 구리반지의 유혹으로부터 자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영원보다 더 크고 가치 있는 것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영원을 누리는 사람은
  이 세상의 모든 유혹으로부터 비로소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2>영원을 누린다는 것은 '평안을 누리는 것'입니다.
  성경과 찬송에는 평화, 평강, 평안, 화평이라는 단어들이 많이 나옵니다.
  이것은 모두 히브리어 '샬롬'과 헬라어 '에이레네'를 옮긴 것으로 모두 같은 뜻입니다.

  미국의 전도자 코넬은 자신 속에 평강을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찬송가469장(내 영혼이 그윽히 깊은 데서)
 "이 땅 위의 험한 길, 가는 동안 참된 평화가 어디 있나"
  그렇습니다.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참된 평안이란 없습니다. 금방 사라지고 맙니다.
  이 세상에 속한 것은 모두 소멸하고 있는 까닭입니다.
  소멸 속에는 어떤 평안도 솟아나지 않는 법입니다.

  그러나 코넬은 그 다음에 다음과 같이 노래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다 예수를 친구 삼아 참 평화를 누리겠네"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덮으소서"
  코넬은 위로부터 내려오는 평화를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진정한 평화(샬롬, 에이레네)는 오직 위로부터,
  영원하신 하나님으로부터만 임하는 것입니다.

 "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 데서 맑은 가락이 울려나네
  하늘 곡조가 언제나 흘러나와 내 영혼을 고이 싸네"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덮으소서"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지능지수가 모자라는 모델이 아니라면,
  모델은 자기가 입은 옷과 같은 색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지 않습니다.
  그것은 자기가 입은 옷 뿐 아니라 자신까지 죽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유한한 인간이 세상의 것을 배경으로 삼으면,
  그것은 자기 자신과 자기 인생을 동시에 망치고 죽이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것은 다 소멸과정에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유한한 인간의 배경이 될 수 있는 분은 오직 영원하신 하나님뿐이십니다.
  그분을 배경으로 삼을 때에만 자신도 살고 자신의 일도 절대적 의미를
  지니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1>눈앞에 것만 바라보지 말고 영원한 것을 바라봅시다.
  2>썩어 없어질 것에 심지말고, 영원한 것에 심읍시다.
  3>영원을 누리므로, 눈앞의 유혹을 이기고 영원한 평안을 누립시다.

  무엇보다도 성령의 감동에 순종하며 삽시다.
  왜냐하면 성령이 우리들의 영원한 삶을 보증하기 때문입니다.
  본문5:5, "이것(영원한 생명, 행복, 기쁨)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

  평생을 육신의 욕망이 아닌 성령의 감동을 좇아 살아,
  영원한 나라를 차지하는 모든 성도들 되시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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