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2024년1월28일, 마태복음 13:24-30 (가라지도 함께 자라게 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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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일 말씀을 생각하며, 함께 한 지체들과 이렇게 고백합시다.
성도님 ! 욥처럼 하나님을 경외하여 하나님이 자랑하는 우리가 됩시다.
성도님 ! 욥처럼, 온전하게 살고, 정직하게 살려고, 힘쓰고 애씁시다.
성도님 ! 욥처럼, 자녀들이 신앙 안에서 살도록, 힘껏 가르칩시다.
성도여러분 ! 여러분은 ‘천국(天国)’하면, 어떤 단어가 떠오르십니까 ?
평강, 영원한 안식, 풍요, 찬란한 빛, 낙원, 행복, 생명수, 희락 .......
그렇습니다.
천국은 하나님의 나라이며, 우리가 주님과 영원히 동거할 곳이며,
죽음, 눈물, 슬픔은 없고, 영원한 안식과 희락이 있는 곳입니다.
이 천국은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난 후에 들어갈 우리들의 나라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러한 천국이 아닌, 또 다른 천국도 말씀합니다.
위의 천국이 이루어질 천국이라면, 다른 천국은 이루어진 천국입니다.
그리고 앞의 천국이 앞으로 우리가 들어갈 천국이라면,
또 다른 천국은 우리가 이미 경험하고 있는 천국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우리들은 이미, 천국에 들어와 있습니다.
도대체 이 말이 무슨 말일까요 ?
성경에서 말하는 천국은, 대개의 경우 통치(統治)의 개념입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그 나라를 다스리는 왕이 누구인가에 따라,
그 나라가 누구의 나라인지를 알 수 있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 나라의 주권(主権)이 누구에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그 나라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으면, 그 나라는 국민의 나라입니다.
지금의 한국, 일본, 미국 등이 그러한 나라입니다.
또한, 그 나라의 주권이 왕에게 있으면, 그 나라는 왕의 나라입니다.
옛날의 朝鮮, 江戸, 清 등이 바로 왕이 주인인 나라였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주권이 하나님께 있으면 그 나라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반대로 주권이 사탄에게 있으면, 그 나라는 사탄의 나라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사후(死後) 천국에 가겠지만,
이 땅에서도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며, 하나님 백성으로서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우리에게 “먼저 그의 나라를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6:31-32.
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ですから、何を食べようか、何を飲もうか、
何を着ようかと言って、心配しなくてよいのです。)
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これらのものはすべて、異邦人が切に求めているものです。あなたがたにこれらのもの
すべてが必要であることは、あなたがたの天の父が知っておられます。)
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まず神の国と神の義を求めなさい。
そうすれば、これらのものはすべて、それに加えて与えられます。)
물론, 여기에서 [그의 나라]는 하나님의 나라이며,
하나님이 왕이신 나라,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나라를 말합니다.
즉, “그의 나라를 구하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나의 왕이 되셔서, 이 땅에서도 나를 다스려 주옵소서 !”
하는 말과 같은 뜻인 것입니다.
한편, 오늘 본문인 마태복음13장에는,
예수께서 말씀해 주신, 천국에 대한 여러 비유가 기록되어있습니다.
씨뿌리는 비유, 겨자씨 비유, 누룩 비유, 감추인 보화 비유,
진주 장수의 비유, 물고기 그물 비유 등입니다.
자 ! 여러분 ! 이 비유들은 두 천국 중 어떤 천국에 대한 비유일까요 ?
물론입니다. 성취된 천국, 이 땅에 이미 이루어진 천국의 비유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 오늘 정말로 중요한 문제는 지금부터입니다.
내가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통치 안에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나를 괴롭히는 가라지는 여전히 내 삶 속에 있고,
또 나를 힘들게 하느냐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고민이요, 우리가 꼭 풀어야 할 숙제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어둠의 세력과 하나가 돼서,
혹은 몰라서 그랬다 치지요.
그런데 지금은 그것이 아니잖아요.
이제는 주님을 믿고 사랑하고 따릅니다.
예수님의 다스림 받기를 원해서, 날마다 기도하고, 시시때때로 예배드리는데,
왜 내 삶 속에 있는 가라지는 여전히 없어지지 않느냐 이겁니다.
바로 이것이 오늘 나눌 말씀의 핵심입니다.
자 ! 본문을 보겠습니다.
종(従)들이 주인에게 묻습니다.
본문27절. 집 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런데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しもべたちが主人のところに来て言った。『ご主人様、畑には良い麦を
蒔かれたのではなかったでしょうか。どうして毒麦が生えたのでしょう。』)
주인이 대답합니다.
본문28절. 이르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敵がしたことだ。)
이에 종들이 다시 주인에게 묻습니다.
본문28절.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それでは、私たちが行って毒麦を抜き集めましょうか。)
이에 주인이 대답합니다.
본문29절. 가만 두라 (いや。<そのままにしておけ。>)
본문30절.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어라
(収穫まで両方とも育つままにしておきなさい。)
정말 이해하지 못할 일입니다.
하나님은 악한 가라지가 우리를 괴롭히고 있는 것을 아시면서도,
그것을 그대로 두라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여러분 !
우리들 대부분의 기도의 제목들이 무엇입니까 ?
그렇습니다.
“이 가라지를 뽑아 주세요. 저 가라지를 없애 주세요”입니다.
이러한 것들이 우리가 매일 드리는 기도의 내용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때마다 뭐라고 말씀하신다는 것입니까 ?
“가만 두어라 !” “그대로 둬라 !”.......
그러니까 하나님과 우리의 기도의 모습을 그려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는 -> “뽑아 버릴까요 ?” 하나님은 -> “그대로 두어라 !”
우리는 -> “짤라 버릴까요 ?” 하나님은 -> “아니, 그대로 두어라 !”
우리는 -> “쫒아 버릴까요 ?” 하나님은 -> “그대로 그냥 두라니까 !”
그런데 여러분 ! 지금 두 고집이 맞붙어 싸웁니다.
누가 이길까요 ?
물론입니다. 하나님이 이기십니다.
사실이 이렇다면,
우리는 일찌감치 쫒아내는 것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합니다.
사실 저에게도 가라지가 있습니다.
짧은 인생 동안 저를 힘들게 한 가라지가 적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여러분도 저와 똑같을 것입니다.
그 가라지 때문에 자주 고통하고 괴로워하면서,
쓰라린 가슴을 움켜쥐었던 것이
여러분이나 저나, 어디 한두 번이었습니까 ?
그렇다면 여러분 !
왜 하나님은 우리 옆에 가라지를 있게 하실까요 ?
첫째,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가라지를 뽑아버리느냐 하고 묻는 종들에게 주인은 대답합니다.
본문29절. 가만 두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いや。毒麦を抜き集めるうちに麦も一緒に抜き取るかもしれない。)
그렇습니다. 가라지를 뽑다가 자칫 곡식이 다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두 가지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먼저는, 말 그대로 가라지(毒麦)를 뽑다가 알곡(麦)이 다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지난주일에 오셨던 한 목사님이 몇 년전 크게 다친 적이 있습니다.
빙판이 된 길에서 넘어져, 얼굴 광대뼈가 깨져 일곱 조각이 났습니다.
손가락도 골절되고, 갈비뼈도 몇 대나 부러지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얼굴 광대뼈를 맞추는 수술을 할 때, 한 개는 하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눈 밑 너무 깊은 곳에 그 뼛조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뼛조각을 꺼내 맞추려다,
다른 것들을 다치게 할 위험이 컸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대로 두면, 본래 자리로 돌아가기도 한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우리의 직장과 가정, 그리고 교회
또한, 우리의 몸에, 사탄이 심어놓은 가라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뽑으려 하다가, 자칫 알곡인 우리가 다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지금 자신 속에 있는, 혹은 자신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가라지 때문에, 괴롭고 아파하는 분이 계십니까 ?
그 가라지를 뽑아내기 위해 기도하고 또 기도하지만,
여전히 든든히 박혀 자신을 괴롭히는 것 때문에,
어찌할 바 몰라 하는 분이 계십니까 ?
그것은, 아직 우리가 너무나 연약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그 가라지가 우리에게서 뽑혀나갈 때,
우리에게 줄 상처를 생각하십니다.
그래서 기다리십니다.
우리가 강하고 담대해질 때까지 (그 아픔을 이겨낼 수 있을 때까지)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가라지가 뽑혀나갈 때의 아픔을 견딜 수 있을 정도로,
우리가 장성해질 때까지 우리 하나님은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오늘 이후 여러분들에게 가라지가 보이거들랑 이렇게 고백하십시오.
“하나님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빨리 장성해질 테니, 그때는 이 가라지를 뿌리채 완전히 뽑아주세요.”
본문29절. 가만 두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いや。毒麦を抜き集めるうちに麦も一緒に抜き取るかもしれない。)의
두 번째 의미는,
우리에게는 곡식과 가라지를 구분할 능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 우리는 겉만 보고 판단하는 우(愚)를 참 자주 범합니다.
우리의 생각은 늘 얕습니다.
중심을 잘 못 헤아립니다.
그저 겉만 봅니다.
그래서 알곡인 것을 ‘가라지’라 그러고,
가라지인 것을 ‘알곡’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여러분 !
그런 우리들에게 가라지를 뽑는 권한을 주면,
얼마나 많은 알곡이 다치겠습니까 ?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들이 가라지를 뽑으려다 하다가,
곡식까지 뽑을까봐, 그냥 두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
어떤 무엇이 여러분에게 가라지 중의 가라지처럼 느껴지십니까 ?
아닙니다.
어쩌면 그것이, 우리에게 너무나 필요한 알곡일 수 있습니다.
고로, 뽑아달라 구하지 마시고,
“내게 유익이 되게 하소서”라고 구하기를 바랍니다.
우리 하나님은, 도리어 가라지도
우리에게 유익이 되게 하실 줄 믿습니다.
둘째, 가라지를 두게 하시는 이유는, 믿지 않는 자에 대한 主님의 배려입니다.
무슨 의미일까요 ?
그렇습니다. 기다려 주신다는 것입니다.
앞에서 이미 살펴보았지만,
본문에서 주인의 시각과 종의 시각은 극명하게 갈립니다.
종이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
그랬더니 주인이 “가만 두어라” 그럽니다.
아마 종들은 재차 물었을 것입니다.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가만 두어라”
“뽑아야 하는데요” “가만 두어라”
“글쎄 ! 뽑아 버려야 됩니다” “가만 두래도 !”
그렇다면, 주인의 생각은 무엇일까요 ?
함께 말씀을 읽겠습니다.
베드로후서3:9.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主は、あなたがたに対して忍耐しておられるのです。だれも滅びることがなく、
すべての人が悔い改めに進むことを望んでおられるのです。)
그렇습니다.
이것이 바로 불신자들에게 대한 우리 주님의 마음이십니다.
언젠가는 심판하겠지만,
또한, 때가 되면 알곡과 가라지를 구분하겠지만,
그러나 지금은 때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지금은 은혜의 때입니다.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받아야 합니다.
이것이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하나님의 마음이 이러하시다면,
우리 역시, 기다려 주시는 주님의 심정(心情)을 마음에 새기고,
우리 또한 그 마음으로 기다려야 할 줄 믿습니다.
그리고 이런 마음은,
우리 본향교회 공동체 안에까지 이어져야 합니다.
“저 성도가 없어져야 교회가 잘 될 텐데 .......”
혹 이런 마음이 드십니까 ?
사랑하는 여러분 !
주님께서 기다려 주셨듯이 우리도 기다려 줍시다.
관용을 베풀며, 품어주고, 포용 하십시다.
기다려 주시는 주님의 마음으로 하나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셋째, 가라지를 그냥 두게 하시는 것은, 주님의 자신감 때문에 그렇습니다.
본문30절.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収穫まで両方とも育つままにしておきなさい。収穫の時に、私は刈る者たちに、
まず毒麦を集めて焼くために束にし、麦のほうは集めて私の倉に納めなさい、と言おう。)
여기에는 우리 주님의 확신이 있습니다.
당당함과 자신이 가득 차 있습니다.
우리(従)의 시각으로는 지금 안 뽑으면,
농사를 망칠 것 같은데 괜찮다는 것입니다.
자신 있으시다는 겁니다.
나중에라도 언제든지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 이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격려가 됩니까 ?
우리 생각에는, 저 가라지가 금방이라도 날 죽일 것 같은데,
저 사람 때문에 망할 것 같은데,
그래서 당장이라도 뽑아내야 할 것 같은데,
우리 주님은 괜찮다는 것입니다.
다 생각이 있으시다는 거예요.
결국은 승리케 하신다는 겁니다.
이것이 우리 주님의 자신감입니다.
이 사실을 깨달은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빌립보서1:6.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あなたがたの間で良い働きを始められた方は、キリスト・イエスの日が
来るまでにそれを完成させてくださると、私は確信しています。)
할렐루야 !
아멘 !
본향성도여러분 !
성경을 창세기부터 요한 계시록까지 자세 살펴 보십시오.
각 장마다, 하나님의 자신감으로 꽉 차 있는 것을 보시게 될 것입니다.
왜 요셉의 주위에는 그토록 배신과 유혹과 아픔이 있도록 하셨습니까 ?
왜 다윗에게는 사울 왕이라고 하는 그토록 집요한 가라지를 두셨습니까 ?
그렇습니다. 결국은 이기게 하실 자신이 있으셨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저와 여러분께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 있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때때로 가라지를 허용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 가라지를 극복하실 수 있다고 믿으시는 것입니다.
또한,
그 가라지 때문에 우리가 성장하고, 자라날 것을 믿기 때문이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는 잘 느끼지 못하지만,
주님의 그 자신감은 항상 우리를 뒤덮고 있습니다.
결국은 우리를 승리하게 하실 것입니다.
지치면 도와 주실 것입니다.
그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다윗은 이 사실을 믿었습니다.
아니 믿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시편23:1-6.
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主は私の羊飼い。私は乏しいことがありません。)
2.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主は私を緑の牧場に伏させ、いこいのみぎわに伴われます。)
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主は私のたましいを生き返らせ、御名のゆえに、私を義の道に導びかれます。)
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たとえ、死の陰の谷を歩むとしても私はわざわいを恐れません。
あなたが、ともにおられますから。
あなたのむちとあなたの杖、それが私の慰めです。)
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私の敵をよそに、あなたは私の前に食卓を整え、
頭に香油を注いでくださいます。私の杯はあふれています。)
6.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まことに、私のいのちの日の限り、いつくしみと恵みが、
私を追って来るでしょう。私はいつまでも、主の家に住まいます。)
여러분 ! 이 얼마나 당당한 자신감입니까 !?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들도 이런 자신감을 가집시다.
우리가 이런 자신감을 가지게 되면,
우리는 자신을 괴롭히는 가라지에 대해 관대해집니다.
우리가 자신이 없어서, 가라지에 대해 민감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가 주님 주시는 확신 가운데 자신감을 가지면,
우리는 가라지에 대해 여유가 생깁니다.
그리고 도리어 가라지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게 됩니다.
이 시간 이런 믿음과 확신과 자신감을 가지시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이 세상은 양과 염소가, 알곡과 가라지가,
그리고 좋은 나무와 못된 나무가 섞여있는 세상입니다.
성공이 있으면 실패가 있고, 합격과 불합격이 공존하고,
승리와 패배가 한 공간에 같이 있습니다.
피할 수 없습니다.
어느 한 쪽만 있을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 모두 감사와 행복의 눈을 가집시다.
그런 아름다운 눈을 구합시다.
그러면 우리 눈에 보이는 결과와 사람과 사건은,
모두 감사와 행복이 될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로마서8:28절의 말씀은 언제나 힘이 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神を愛する人たち、すなわち、神のご計画にしたがって
召された人たちのためには、すべてのことが
ともに働いて益となることを、私たちは知っています。)”
여러분 ! 오늘부터 가라지에 대한 우리의 시각은 달라져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앞에 가라지 같은 일이나 사람이 나타나면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가라지님 고맙습니다. 저를 귀한 사람 만들려고 찾아오셨군요. 환영합니다 !”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오늘 말씀을 통해, 가라지에 대한 우리 주님의 사랑과 배려와 계획을 알았으니,
오늘 이후 신앙의 눈으로 가라지를 맞이하여,
하나님이 준비하신 복과 은혜를 누리는 모두가 되시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