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2008년6월22일, 열왕기상21:25(충동하는 이세벨, 충동되는 아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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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에 계신 복스러운 지체들을 축복합시다.
하나님 말씀대로 살기 위해 힘쓰는 당신,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그 말씀의 능력을 크게 체험하게 하실 것입니다.
말씀대로 살 때 오는 아픔을 이겨낼 힘을, 오늘 얻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여러분은 인복(人福)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
앞, 뒤, 옆, 위를 둘러보니, 우리는 분명 人福이 풍성한 사람입니다.
여러분 !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만남'은 매우 매우 중요합니다.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한 만남을 소개하겠습니다.
시골의 호숫가에 홀로 뛰놀던 소년 하나가 호수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었습니다.
그는 런던에서 온 귀공자였으며, 수영을 할 줄 몰랐습니다.
마침 근처를 지나던 시골 소년이 그를 구해 주었습니다.
그로부터 십 년 후, 런던의 소년은 시골 소년을 찾아갔습니다.
생명의 은인인 시골 소년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런던의 소년은 그때, 시골 소년이 의사가 되고 싶어한다는 것과
가정 형편상 의과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습니다.
그는 시골 친구의 사정을 아버지에게 전했고,
그의 부친은 아들의 친구가 의학에 전념할 수 있도록 모든 뒷바라지를 맡아주었습니다.
런던 소년의 이름은 영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수상, 윈스턴 처칠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시골 소년은 후에 페니실린을 발명한 불세출의 의학자
알렉산더 플레밍 박사입니다.
1940년5월, 영국이 독일군의 침공을 받았을 때,
전쟁터를 순시하던 처칠 수상은 폐렴으로 쓰러집니다.
당시만 해도 폐렴은 목숨을 건지기 어려운 불치의 병이었습니다.
이때 또 한 번 처칠의 생명을 살려낸 것이 바로 플레밍 박사가 개발한 페니실린이었습니다.
이렇듯 두 사람의 만남은 서로의 인생에 커다란 복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의 만남이 이런 만남이 되기를 바랍니다.
성경에도 보면, 많은 좋은 만남이 있습니다.
요셉과 바로의 만남, 모세와 여호수아의 만남, 바울과 루디아의 만남 .......
이들의 만남은 하나님의 은혜와 기적을 부르는 만남이었습니다.
그러나 성경 속에는 절대로 만나지 않아야 할 만남도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오늘 본문에 기록된 이스라엘 왕 아합과 그의 부인 이세벨의 만남입니다.
성경 전체에서 가장 악명 높은 두 사람의 만남은 한 마디로 재앙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재앙은 자기들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나라 전체와 그들의 후대에까지 심각한 악영향을 끼치고 말았습니다.
저는 오늘 말씀이, 절대로 만나지 말아야 할 만남을 억지로 이어가려 하는
우리 모두에게 분명한 경고가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현재 우리 만남 속에서,
분명히 버릴 것과 끊을 것을, 용기 있게 버리고 끊는 결단이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아합 왕은 이스라엘의 7대 왕으로서 22년 간을 통치했던 왕이었습니다.
그리고 왕후 이세벨은 블레셋 계통 출신의 이방여인이었습니다.
이 아합과 이세벨의 만남이 불행하다는 것은, 두 사람 다 영적으로 큰 결점이 있었고,
성격적으로 상당히 위험스런 특징을 가진 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먼저 아합 왕은 어떤 사람일까요 ?
아합은 마음이 약한 남자입니다.
신하들에게 큰 소리도 못 치고, 어떤 일이든 결단력이 부족한 연약한 사람입니다.
어찌 보면 어린아이와 같은 순진함도 있습니다.
반면, 그 내면에는 무서운 욕심이 있어서,
그것을 도무지 절제할 만한 영적 능력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다음 이세벨은 어떤 여인이었을까요 ?
대단히 담이 크고 간교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마음은 선악을 분별할 만한 어떤 능력조차도 없는, 영적으로 캄캄한 여자였습니다.
이런 두 사람의 성격이 조합될 때 어떤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
아합은 그의 마음의 약함 때문에 이루지 못했던 내면의 욕심을,
강한 기질의 부인을 통해서 마음껏 성취해 나갔습니다.
또 이세벨은 남편의 그러한 욕심과 지위를 십분 이용해서,
자신의 간교하고 대담한 기질을 맘껏 부리며 즐겼습니다.
성경은 이 두 사람을 이렇게 평합니다.
열왕기상21:25, "예로부터 아합과 같이 스스로 팔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한 자가 없음은 저가 그 아내 이세벨에게 충동되었음이라"
그렇습니다. 두 사람은 충동의 관계였습니다.
성경에는 상대에게 좋은 자극을 주는(이른바 도전)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오히려 악을 행하는 데 충동적인 사람도 있습니다.
아합이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악한 왕이 되고 만 것은 바로 그 악을 충동한 이세벨을
가장 가까운 곳에 두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특히 지금부터 소개하고자하는 사건은
아합과 이세벨의 이러한 충동 관계를 대표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사건입니다.
어느 해 여름, 아합은 별장이 있는 이스르엘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이스르엘은 아주 작은 마을이었는데,
어느 날 아합이 보니까 자기 별장 옆에 아주 탐스러운 포도원이 있는 거예요.
순간 드는 마음이, "저 포도원을 싹 갈아치우고 채소를 심으면,
내가 늘 신선한 야채와 나물을 먹을 수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포도원 주인 나봇을 불러 이렇게 말했습니다.(열왕기상21:2,)
"네 포도원이 내 궁 곁에 가까이 있으니 내게 주어 나물 밭을 삼게 하라
내가 그 대신에 그보다 더 아름다운 포도원을 네게 줄 것이요
만일 합의하면 그 값을 돈으로 네게 주리라"
어떻습니까 ? 여러분 ! 아합 왕의 요구가 정당합니까 ?
그렇습니다. 상식에 어긋난 거래가 아닙니다.
우리들의 기준으로 보면, 아주 정당한 거래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는 죄입니다.
나봇은 아합 왕의 제안을 이렇게 거절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고 하는 일은 할 수가 없습니다"(본문3절)
그렇다면, 하나님이 무엇을 하지 말라고 금지시켰을까요 ?
여러분이 아시는 것처럼 이스라엘은 모두 12지파로 되어 있고,
그 각 지파들은 가나안 정복 때 지파 별로 각각 땅을 분배받았습니다.
그리고 각 지파 안에서는 또 가족 단위로 분배되어 집집마다 땅이 구분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한 번 조상으로부터 땅을 상속받으면
그 땅은 절대로 남에게 넘겨주어서는 안됐습니다.
팔아서도 안 되고 남에게 빼앗겨서도 안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세우신 법이었습니다.(레위기25:23)
"토지를 영영(永永)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라
너희는 나그네요 우거(寓居)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
그런데, 빚을 져서 자기 땅이 남에게 넘어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만약 그런 일이 있다 하더라도 그 땅을 저당 잡은 사람은
50년에 한 번씩 돌아오는 희년에는 반드시 본 주인에게 돌려주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에서는 지파 땅이든 개인 땅이든 정해진 소유를 유지하게 했습니다.
에스겔46:18절에 보면, "왕이라도 백성의 땅을 취할 수 없다"고 분명히 못을 박았습니다.
그런데, 아합은 지금 그러한 포도원을 나봇에게 팔라고 한 것입니다.
포도원 주인인 나봇은 자기 생명이 위협받을 줄 알면서도,
파는 것은 하나님의 뜻과 어긋나기 때문에 행할 수 없었습니다.
아합은 이러한 이유로 자신의 욕심을 이루지 못하자,
너무 속상하고 화가 나서 앓아 눕습니다.
침상에 드러누워 식음을 전폐하고 아무도 만나지 않고 끙끙 앓습니다.
여러분 ! 지금 이 아합의 모습을 보십시오. 얼마나 유치합니까 ?
꼭 어린애가 장난감 안 사준다고 제 방에 들어가서
방문을 꽁꽁 걸어 잠그고 끙끙 앓는 것과 똑 같습니다.
아합을 일컬어 욕심이 많다고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지금 그는 왕입니다. 이스라엘 백성 누구보다 많은 것을 가졌습니다.
그런데도 포도원 하나 가지지 못했다고 식음을 전폐합니다.
아합은 분명 무서운 욕심의 사람입니다. 지독한 탐심을 가진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몇 끼를 굶어 배고프다가, 음식을 급하게, 과하게 먹는 것을 탐심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탐심은 평소에도 잘 먹으면서도 빼앗기지 않으려는 것이 탐심입니다.
이런 탐욕을 가진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꽤 있습니다.
자식도, 건강도, 아름다움도, 적당한 물질도, 더구나 천국도 가지고 있으면서
남의 것에 더 관심이 많으면, 그것은 분명 탐욕이며 탐심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내 속에 탐욕이 있을 때에 우리는 누구의 충동에 쉽게 넘어갑니다.
저는 우리 본향교회 성도들 모두가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자기에게 없는 한 두가지 때문에 다른 지체를 시기하고 질투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악한 탐심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
아합은 자신의 탐심을, 식음을 전폐함으로 밖으로 표출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그의 탐욕을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만족시켜줄 수 있는 사람,
바로 이세벨이 아합을 향해 다가왔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도 탐심을 버리지 않으면, 이세벨과 같은 사람이 우리 주위에 맴 돔을 알아야 합니다.
이세벨은 남편을 통해 자초지종을 듣습니다.
그리고는 난리를 치며 이렇게 말합니다.(본문7절)
"당신이 이스라엘 왕 맞습니까 ? 왕이 되가지고, 저런 천한 백성 하나 다루지를 못합니까 ?"
"이 나라가 다 당신 것 아닙니까 ?"
"왕이 땅이 필요하다는데 그 땅을 못 갖는다고 하면 그게 어디 왕입니까 ?"
"잠깐만 기다려 보세요. 이번 일은 제가 처리하지요"
이세벨은 신속하게 음모를 꾸밉니다.
포도원 주인 나봇에게 하지도 않은 죄목을 뒤집어씌워 재판을 벌입니다.
건달 두 사람을 매수하여 거짓으로 증언을 하게 합니다.
그래서 뒤집어씌운 나봇의 죄는, '왕을 욕하고 하나님을 저주했다'입니다.
신정국가 이스라엘에 있어서 이 죄는 참으로 큰 죄였습니다.
결국 간단히 사형선고를 내리고 나봇을 돌로 쳐죽입니다.
여러분 ! 이 얼마나 황당한 이야기입니까 ?
이세벨은 이런 끔찍한 일을 저지르고 와서 아합에게 태연하게 말합니다.
"여보 ! 당신이 갖고 싶어하던 그 포도원이 우리 것이 되었어요."
"가서 한 번 당신이 가지고 싶엇던 그 땅을 돌아보시지요"
유대의 유명한 유대 역사가였던 요세푸스는 이 부분을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소식을 들은 아합 왕은 너무 기뻐서 침상을 껑충 뛰어서 한달음에 그 포도원으로 달려갔다]
여러분 ! 참 얼마나 무서운 두 사람입니까 ?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의 하나인 맥베드에도 사악한 커플이 나옵니다.
맥배드는 스코틀랜드의 장군입니다.
하루는 던컨 왕이 그의 집에 와서 밤을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왕이 오기 전에 맥베드와 그의 아내가 악한 모의를 합니다.
"저 왕만 죽이면 권력은 우리 것이 되니까 오늘 거사를 치룹시다"
그런데 그 음모를 꾸밀 때 부부 중 누가 더 탐욕스럽고 적극적이었는가 하면,
바로 부인이었습니다. 참 여자들 중에도 무서운 사람이 많습니다.
여자 성도들이나 자매들한테는 미안한 얘긴데,
어디까지나 작품 중의 얘기니까 양해하시기 바랍니다.
그 부인이 거사 전에 맥베드에게 이런 소름끼치는 말을 합니다.
"나는 귀여운 아기의 입을 내 젖꼭지에 물려서 키운 자상한 어머니이기도 하지만
내가 하고자 하는 일, 내가 손에 넣고자 하는 일을 할 때에는
사정없이 그의 입에서 젖꼭지를 빼버리고,
그 애를 당장 집어 던져 뇌가 터져 나올 정도의 일도 자신 있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 머리카락이 바짝 서지 않습니까 ?
드디어 왕이 도착했습니다.
모의를 하긴 했지만 남편 맥베드가 그 끔찍한 일을 할 용기를 못 내고 주저주저하니까
그 부인이 또 말합니다.
"영주나리, 당신 얼굴은 수상한 내용이 적혀진 책과 같군요.
세상을 속이려고 하면 세상과 같은 얼굴을 하고 눈과 손과 혀는 고요하게 감추셔야 해요.
겉으로는 무심한 꽃 같아 보이지만 그 뒤는 독사가 되야 합니다.
오늘 밤 큰 일은 제게 맡기세요. 성공하면 스코틀랜드는 당신과 나의 왕국이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아무리 이야기이지만 이 얼마나 섬뜻한 이야기입니까 ?
아합과 이세벨, 맥베드와 그 부인이 가장 어리석은 것은,
자신들의 모의가 자신들의 성공을 가져올 것이라는 착각에 빠져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기들을 지켜보고 계심을 깨닫지 못했던 것입니다.
다윗은 이러한 자들을 보면서 이런 시를 지었습니다.
시편2:4절의 말씀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자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저희를 비웃으시리로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지금 여러분의 주위에는 어떤 사람들이 있습니까 ?
여러분을 충동질하는 사람입니까 ? 아니면 바르게 살도록 자극을 주는 사람입니까 ?
지금 여러분의 애인, 친구, 동업자, 이웃, 심지어 신앙을 가졌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도
우리가 만나지 않아야 할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충분히 구별할 수 있습니다. 누가 충동의 사람인가를.
충동의 사람은,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멀리하게 합니다.
분명히 악한 일인데 그렇지 않은 것 같은 마음을 가지게 합니다.
선한 마음을 번잡하게 합니다. 다른 사람을 비판하게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가 아합이나, 맥베드와 같은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주저 없이 끊어야 합니다.
정리해야 합니다.
더구나 오늘 말씀을 통해 특히 마음 속 깊이 새겨야 할 것은,
나를 만난 사람이 불행해지지 않도록 나 또한 변화되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어떤 사람이 나를 만나서, 불행해 진다든지, 후회하게 된다든지,
고귀한 인격이 망가진다든지 하는 일은 정말 참을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가정에서나 사회에서나 평화의 도구가 되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처럼 복의 근원이 되어야 합니다.
비록 우리가 만나는 사람이 아합처럼, 이세벨처럼 간악한 사람일지라도 우리를 만나면,
우리 때문에 복 받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때문에 어두움에서 광명을 찾는 일들이 끊임없이 일어나야 합니다.
자 ! 그렇다면, 우리를 만나는 사람들이 불행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요 ?
이것을 말씀드리고 오늘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우리가 남을 불행하게 하지 않으려면
하나님과의 관계를 항상 정상적으로 유지하고 살아야 합니다.
제가 청년, 학생 때 신앙 생활하던 교회에 전 모집사님이란 분이 있었습니다.
그분은 어린이들을 섬기는 달란트, 찬양의 달란트, 봉사의 달란트가 출중했습니다.
특히 작은 체구에서 나오는 찬양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더구나 작은 몸으로 쉴새없이 움직이며 교회의 많은 어려운 일을 살피는 모습은
그 집사님을 바라보는 많은 사람들에게 훌륭한 자극과 도전이 되었습니다.
당시의 많은 성도들이 그 집사님과의 만남을 통해, 사명을 향해 나아가고,
헌신과 봉사를 향해 나아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집사님과 견줄만한 봉사와 섬김, 그리고 기도의 달란트를 가진 분이
새로 교회에 왔습니다. 그때부터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질투와 시기, 비교의 마음이 그분을 괴롭혔습니다.
결국 그 집사님은 그것으로 인해 하나님과의 관계까지 흔들리고 말았습니다.
그 후 그 집사님이 그 교회를 떠나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그로 인해 상처와 고통과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더구나 놀라운 것은, 그 집사님이 악을 행할 그때에 많은 지체들이
그의 영향을 받아 동일한 악을 행했다는 것입니다. 이른바 충동되고 만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 이 시간 한 번 우리를 돌아보십시다.
저나 여러분이나 과거를 돌이켜 보면, 나를 만났기 때문에 행복해 진 사람도 있고,
또한 나를 만났기 때문에 불행해 진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내가 어떤 상태일 때, 나를 만난 사람들이 행복해 졌습니까 ?
분명하지요. 우리가 주님 앞에 바로 섰을 때입니다.
반대로, 내가 어떤 상태일 때, 나를 만났던 사람들이 힘들어했습니까 ?
그렇습니다. 분명합니다. 내가 主 안에서 온전치 못할 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이것을 우리가 반복해서는 안 됩니다.
내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이어갈 때,
우리를 만나는 사람들도 그 만남 때문에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가정에서나 시장에서나 직장에서나 어디서든 사람을 만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길게 만나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단 한 번 인사로 평생 다시는 못 볼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만나든, 그 모든 사람이 나를 통해서 복을 받아야 합니다.
나 때문에 새 삶이 꽃피도록 해야 합니다.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혹시 끊어야할 만남을 이어가고 있지는 않으십니까 ?
우리들의 영혼에 깊은 상처와 병을 주는 그 사람을 내게 물질의 유익을 준다해서,
혹은 情 때문에 관계를 이어가고 있습니까 ?
그러나 우리 몸에 암이 자라면, 빨리 잘라 버려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온 몸에 암이 퍼져 죽고 맙니다.
시편1편은 분명 말합니다. 함께 交讀하겠습니다.
1절,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2절,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3절,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4절,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5절, 그러므로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리로다
6절,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아멘.
그렇습니다. 악인과 함께 해서는 절대로 안됩니다.
이번 한 주간도 그리스도 안에서 좋은 만남을 이어가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모두 되시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하나님 말씀대로 살기 위해 힘쓰는 당신,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그 말씀의 능력을 크게 체험하게 하실 것입니다.
말씀대로 살 때 오는 아픔을 이겨낼 힘을, 오늘 얻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여러분은 인복(人福)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
앞, 뒤, 옆, 위를 둘러보니, 우리는 분명 人福이 풍성한 사람입니다.
여러분 !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만남'은 매우 매우 중요합니다.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한 만남을 소개하겠습니다.
시골의 호숫가에 홀로 뛰놀던 소년 하나가 호수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었습니다.
그는 런던에서 온 귀공자였으며, 수영을 할 줄 몰랐습니다.
마침 근처를 지나던 시골 소년이 그를 구해 주었습니다.
그로부터 십 년 후, 런던의 소년은 시골 소년을 찾아갔습니다.
생명의 은인인 시골 소년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런던의 소년은 그때, 시골 소년이 의사가 되고 싶어한다는 것과
가정 형편상 의과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습니다.
그는 시골 친구의 사정을 아버지에게 전했고,
그의 부친은 아들의 친구가 의학에 전념할 수 있도록 모든 뒷바라지를 맡아주었습니다.
런던 소년의 이름은 영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수상, 윈스턴 처칠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시골 소년은 후에 페니실린을 발명한 불세출의 의학자
알렉산더 플레밍 박사입니다.
1940년5월, 영국이 독일군의 침공을 받았을 때,
전쟁터를 순시하던 처칠 수상은 폐렴으로 쓰러집니다.
당시만 해도 폐렴은 목숨을 건지기 어려운 불치의 병이었습니다.
이때 또 한 번 처칠의 생명을 살려낸 것이 바로 플레밍 박사가 개발한 페니실린이었습니다.
이렇듯 두 사람의 만남은 서로의 인생에 커다란 복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의 만남이 이런 만남이 되기를 바랍니다.
성경에도 보면, 많은 좋은 만남이 있습니다.
요셉과 바로의 만남, 모세와 여호수아의 만남, 바울과 루디아의 만남 .......
이들의 만남은 하나님의 은혜와 기적을 부르는 만남이었습니다.
그러나 성경 속에는 절대로 만나지 않아야 할 만남도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오늘 본문에 기록된 이스라엘 왕 아합과 그의 부인 이세벨의 만남입니다.
성경 전체에서 가장 악명 높은 두 사람의 만남은 한 마디로 재앙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재앙은 자기들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나라 전체와 그들의 후대에까지 심각한 악영향을 끼치고 말았습니다.
저는 오늘 말씀이, 절대로 만나지 말아야 할 만남을 억지로 이어가려 하는
우리 모두에게 분명한 경고가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현재 우리 만남 속에서,
분명히 버릴 것과 끊을 것을, 용기 있게 버리고 끊는 결단이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아합 왕은 이스라엘의 7대 왕으로서 22년 간을 통치했던 왕이었습니다.
그리고 왕후 이세벨은 블레셋 계통 출신의 이방여인이었습니다.
이 아합과 이세벨의 만남이 불행하다는 것은, 두 사람 다 영적으로 큰 결점이 있었고,
성격적으로 상당히 위험스런 특징을 가진 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먼저 아합 왕은 어떤 사람일까요 ?
아합은 마음이 약한 남자입니다.
신하들에게 큰 소리도 못 치고, 어떤 일이든 결단력이 부족한 연약한 사람입니다.
어찌 보면 어린아이와 같은 순진함도 있습니다.
반면, 그 내면에는 무서운 욕심이 있어서,
그것을 도무지 절제할 만한 영적 능력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다음 이세벨은 어떤 여인이었을까요 ?
대단히 담이 크고 간교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마음은 선악을 분별할 만한 어떤 능력조차도 없는, 영적으로 캄캄한 여자였습니다.
이런 두 사람의 성격이 조합될 때 어떤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
아합은 그의 마음의 약함 때문에 이루지 못했던 내면의 욕심을,
강한 기질의 부인을 통해서 마음껏 성취해 나갔습니다.
또 이세벨은 남편의 그러한 욕심과 지위를 십분 이용해서,
자신의 간교하고 대담한 기질을 맘껏 부리며 즐겼습니다.
성경은 이 두 사람을 이렇게 평합니다.
열왕기상21:25, "예로부터 아합과 같이 스스로 팔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한 자가 없음은 저가 그 아내 이세벨에게 충동되었음이라"
그렇습니다. 두 사람은 충동의 관계였습니다.
성경에는 상대에게 좋은 자극을 주는(이른바 도전)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오히려 악을 행하는 데 충동적인 사람도 있습니다.
아합이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악한 왕이 되고 만 것은 바로 그 악을 충동한 이세벨을
가장 가까운 곳에 두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특히 지금부터 소개하고자하는 사건은
아합과 이세벨의 이러한 충동 관계를 대표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사건입니다.
어느 해 여름, 아합은 별장이 있는 이스르엘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이스르엘은 아주 작은 마을이었는데,
어느 날 아합이 보니까 자기 별장 옆에 아주 탐스러운 포도원이 있는 거예요.
순간 드는 마음이, "저 포도원을 싹 갈아치우고 채소를 심으면,
내가 늘 신선한 야채와 나물을 먹을 수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포도원 주인 나봇을 불러 이렇게 말했습니다.(열왕기상21:2,)
"네 포도원이 내 궁 곁에 가까이 있으니 내게 주어 나물 밭을 삼게 하라
내가 그 대신에 그보다 더 아름다운 포도원을 네게 줄 것이요
만일 합의하면 그 값을 돈으로 네게 주리라"
어떻습니까 ? 여러분 ! 아합 왕의 요구가 정당합니까 ?
그렇습니다. 상식에 어긋난 거래가 아닙니다.
우리들의 기준으로 보면, 아주 정당한 거래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는 죄입니다.
나봇은 아합 왕의 제안을 이렇게 거절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고 하는 일은 할 수가 없습니다"(본문3절)
그렇다면, 하나님이 무엇을 하지 말라고 금지시켰을까요 ?
여러분이 아시는 것처럼 이스라엘은 모두 12지파로 되어 있고,
그 각 지파들은 가나안 정복 때 지파 별로 각각 땅을 분배받았습니다.
그리고 각 지파 안에서는 또 가족 단위로 분배되어 집집마다 땅이 구분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한 번 조상으로부터 땅을 상속받으면
그 땅은 절대로 남에게 넘겨주어서는 안됐습니다.
팔아서도 안 되고 남에게 빼앗겨서도 안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세우신 법이었습니다.(레위기25:23)
"토지를 영영(永永)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라
너희는 나그네요 우거(寓居)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
그런데, 빚을 져서 자기 땅이 남에게 넘어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만약 그런 일이 있다 하더라도 그 땅을 저당 잡은 사람은
50년에 한 번씩 돌아오는 희년에는 반드시 본 주인에게 돌려주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에서는 지파 땅이든 개인 땅이든 정해진 소유를 유지하게 했습니다.
에스겔46:18절에 보면, "왕이라도 백성의 땅을 취할 수 없다"고 분명히 못을 박았습니다.
그런데, 아합은 지금 그러한 포도원을 나봇에게 팔라고 한 것입니다.
포도원 주인인 나봇은 자기 생명이 위협받을 줄 알면서도,
파는 것은 하나님의 뜻과 어긋나기 때문에 행할 수 없었습니다.
아합은 이러한 이유로 자신의 욕심을 이루지 못하자,
너무 속상하고 화가 나서 앓아 눕습니다.
침상에 드러누워 식음을 전폐하고 아무도 만나지 않고 끙끙 앓습니다.
여러분 ! 지금 이 아합의 모습을 보십시오. 얼마나 유치합니까 ?
꼭 어린애가 장난감 안 사준다고 제 방에 들어가서
방문을 꽁꽁 걸어 잠그고 끙끙 앓는 것과 똑 같습니다.
아합을 일컬어 욕심이 많다고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지금 그는 왕입니다. 이스라엘 백성 누구보다 많은 것을 가졌습니다.
그런데도 포도원 하나 가지지 못했다고 식음을 전폐합니다.
아합은 분명 무서운 욕심의 사람입니다. 지독한 탐심을 가진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몇 끼를 굶어 배고프다가, 음식을 급하게, 과하게 먹는 것을 탐심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탐심은 평소에도 잘 먹으면서도 빼앗기지 않으려는 것이 탐심입니다.
이런 탐욕을 가진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꽤 있습니다.
자식도, 건강도, 아름다움도, 적당한 물질도, 더구나 천국도 가지고 있으면서
남의 것에 더 관심이 많으면, 그것은 분명 탐욕이며 탐심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내 속에 탐욕이 있을 때에 우리는 누구의 충동에 쉽게 넘어갑니다.
저는 우리 본향교회 성도들 모두가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자기에게 없는 한 두가지 때문에 다른 지체를 시기하고 질투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악한 탐심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
아합은 자신의 탐심을, 식음을 전폐함으로 밖으로 표출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그의 탐욕을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만족시켜줄 수 있는 사람,
바로 이세벨이 아합을 향해 다가왔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도 탐심을 버리지 않으면, 이세벨과 같은 사람이 우리 주위에 맴 돔을 알아야 합니다.
이세벨은 남편을 통해 자초지종을 듣습니다.
그리고는 난리를 치며 이렇게 말합니다.(본문7절)
"당신이 이스라엘 왕 맞습니까 ? 왕이 되가지고, 저런 천한 백성 하나 다루지를 못합니까 ?"
"이 나라가 다 당신 것 아닙니까 ?"
"왕이 땅이 필요하다는데 그 땅을 못 갖는다고 하면 그게 어디 왕입니까 ?"
"잠깐만 기다려 보세요. 이번 일은 제가 처리하지요"
이세벨은 신속하게 음모를 꾸밉니다.
포도원 주인 나봇에게 하지도 않은 죄목을 뒤집어씌워 재판을 벌입니다.
건달 두 사람을 매수하여 거짓으로 증언을 하게 합니다.
그래서 뒤집어씌운 나봇의 죄는, '왕을 욕하고 하나님을 저주했다'입니다.
신정국가 이스라엘에 있어서 이 죄는 참으로 큰 죄였습니다.
결국 간단히 사형선고를 내리고 나봇을 돌로 쳐죽입니다.
여러분 ! 이 얼마나 황당한 이야기입니까 ?
이세벨은 이런 끔찍한 일을 저지르고 와서 아합에게 태연하게 말합니다.
"여보 ! 당신이 갖고 싶어하던 그 포도원이 우리 것이 되었어요."
"가서 한 번 당신이 가지고 싶엇던 그 땅을 돌아보시지요"
유대의 유명한 유대 역사가였던 요세푸스는 이 부분을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소식을 들은 아합 왕은 너무 기뻐서 침상을 껑충 뛰어서 한달음에 그 포도원으로 달려갔다]
여러분 ! 참 얼마나 무서운 두 사람입니까 ?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의 하나인 맥베드에도 사악한 커플이 나옵니다.
맥배드는 스코틀랜드의 장군입니다.
하루는 던컨 왕이 그의 집에 와서 밤을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왕이 오기 전에 맥베드와 그의 아내가 악한 모의를 합니다.
"저 왕만 죽이면 권력은 우리 것이 되니까 오늘 거사를 치룹시다"
그런데 그 음모를 꾸밀 때 부부 중 누가 더 탐욕스럽고 적극적이었는가 하면,
바로 부인이었습니다. 참 여자들 중에도 무서운 사람이 많습니다.
여자 성도들이나 자매들한테는 미안한 얘긴데,
어디까지나 작품 중의 얘기니까 양해하시기 바랍니다.
그 부인이 거사 전에 맥베드에게 이런 소름끼치는 말을 합니다.
"나는 귀여운 아기의 입을 내 젖꼭지에 물려서 키운 자상한 어머니이기도 하지만
내가 하고자 하는 일, 내가 손에 넣고자 하는 일을 할 때에는
사정없이 그의 입에서 젖꼭지를 빼버리고,
그 애를 당장 집어 던져 뇌가 터져 나올 정도의 일도 자신 있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 머리카락이 바짝 서지 않습니까 ?
드디어 왕이 도착했습니다.
모의를 하긴 했지만 남편 맥베드가 그 끔찍한 일을 할 용기를 못 내고 주저주저하니까
그 부인이 또 말합니다.
"영주나리, 당신 얼굴은 수상한 내용이 적혀진 책과 같군요.
세상을 속이려고 하면 세상과 같은 얼굴을 하고 눈과 손과 혀는 고요하게 감추셔야 해요.
겉으로는 무심한 꽃 같아 보이지만 그 뒤는 독사가 되야 합니다.
오늘 밤 큰 일은 제게 맡기세요. 성공하면 스코틀랜드는 당신과 나의 왕국이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아무리 이야기이지만 이 얼마나 섬뜻한 이야기입니까 ?
아합과 이세벨, 맥베드와 그 부인이 가장 어리석은 것은,
자신들의 모의가 자신들의 성공을 가져올 것이라는 착각에 빠져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기들을 지켜보고 계심을 깨닫지 못했던 것입니다.
다윗은 이러한 자들을 보면서 이런 시를 지었습니다.
시편2:4절의 말씀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자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저희를 비웃으시리로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지금 여러분의 주위에는 어떤 사람들이 있습니까 ?
여러분을 충동질하는 사람입니까 ? 아니면 바르게 살도록 자극을 주는 사람입니까 ?
지금 여러분의 애인, 친구, 동업자, 이웃, 심지어 신앙을 가졌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도
우리가 만나지 않아야 할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충분히 구별할 수 있습니다. 누가 충동의 사람인가를.
충동의 사람은,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멀리하게 합니다.
분명히 악한 일인데 그렇지 않은 것 같은 마음을 가지게 합니다.
선한 마음을 번잡하게 합니다. 다른 사람을 비판하게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가 아합이나, 맥베드와 같은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주저 없이 끊어야 합니다.
정리해야 합니다.
더구나 오늘 말씀을 통해 특히 마음 속 깊이 새겨야 할 것은,
나를 만난 사람이 불행해지지 않도록 나 또한 변화되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어떤 사람이 나를 만나서, 불행해 진다든지, 후회하게 된다든지,
고귀한 인격이 망가진다든지 하는 일은 정말 참을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가정에서나 사회에서나 평화의 도구가 되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처럼 복의 근원이 되어야 합니다.
비록 우리가 만나는 사람이 아합처럼, 이세벨처럼 간악한 사람일지라도 우리를 만나면,
우리 때문에 복 받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때문에 어두움에서 광명을 찾는 일들이 끊임없이 일어나야 합니다.
자 ! 그렇다면, 우리를 만나는 사람들이 불행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요 ?
이것을 말씀드리고 오늘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우리가 남을 불행하게 하지 않으려면
하나님과의 관계를 항상 정상적으로 유지하고 살아야 합니다.
제가 청년, 학생 때 신앙 생활하던 교회에 전 모집사님이란 분이 있었습니다.
그분은 어린이들을 섬기는 달란트, 찬양의 달란트, 봉사의 달란트가 출중했습니다.
특히 작은 체구에서 나오는 찬양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더구나 작은 몸으로 쉴새없이 움직이며 교회의 많은 어려운 일을 살피는 모습은
그 집사님을 바라보는 많은 사람들에게 훌륭한 자극과 도전이 되었습니다.
당시의 많은 성도들이 그 집사님과의 만남을 통해, 사명을 향해 나아가고,
헌신과 봉사를 향해 나아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집사님과 견줄만한 봉사와 섬김, 그리고 기도의 달란트를 가진 분이
새로 교회에 왔습니다. 그때부터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질투와 시기, 비교의 마음이 그분을 괴롭혔습니다.
결국 그 집사님은 그것으로 인해 하나님과의 관계까지 흔들리고 말았습니다.
그 후 그 집사님이 그 교회를 떠나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그로 인해 상처와 고통과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더구나 놀라운 것은, 그 집사님이 악을 행할 그때에 많은 지체들이
그의 영향을 받아 동일한 악을 행했다는 것입니다. 이른바 충동되고 만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 이 시간 한 번 우리를 돌아보십시다.
저나 여러분이나 과거를 돌이켜 보면, 나를 만났기 때문에 행복해 진 사람도 있고,
또한 나를 만났기 때문에 불행해 진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내가 어떤 상태일 때, 나를 만난 사람들이 행복해 졌습니까 ?
분명하지요. 우리가 주님 앞에 바로 섰을 때입니다.
반대로, 내가 어떤 상태일 때, 나를 만났던 사람들이 힘들어했습니까 ?
그렇습니다. 분명합니다. 내가 主 안에서 온전치 못할 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이것을 우리가 반복해서는 안 됩니다.
내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이어갈 때,
우리를 만나는 사람들도 그 만남 때문에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가정에서나 시장에서나 직장에서나 어디서든 사람을 만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길게 만나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단 한 번 인사로 평생 다시는 못 볼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만나든, 그 모든 사람이 나를 통해서 복을 받아야 합니다.
나 때문에 새 삶이 꽃피도록 해야 합니다.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혹시 끊어야할 만남을 이어가고 있지는 않으십니까 ?
우리들의 영혼에 깊은 상처와 병을 주는 그 사람을 내게 물질의 유익을 준다해서,
혹은 情 때문에 관계를 이어가고 있습니까 ?
그러나 우리 몸에 암이 자라면, 빨리 잘라 버려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온 몸에 암이 퍼져 죽고 맙니다.
시편1편은 분명 말합니다. 함께 交讀하겠습니다.
1절,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2절,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3절,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4절,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5절, 그러므로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리로다
6절,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아멘.
그렇습니다. 악인과 함께 해서는 절대로 안됩니다.
이번 한 주간도 그리스도 안에서 좋은 만남을 이어가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모두 되시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