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主日説教原稿

2012 2012년8월19일, 로마서7:15-8:2(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된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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投稿者 박성철
コメント 0件 照会 10,600回 日時 12-08-26 23:15

本文

  자 ! 옆에 계신 지체들과 함께 이렇게 고백해 봅시다.

  믿음의 가장 기본은,
  나 자신이 멸망 받아 마땅한, 죄인 중의 죄인이라는 것을 깊이 깨닫고,
  또 고백하는 것입니다.
  자 ! 함께 고백합시다. "나는 멸망 받아 마땅한, 악한 죄인입니다."
 "나의 이 모든 죄를 위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한 부인이 매우 심각한 얼굴로 목사님을 찾아와 조언을 구했습니다.
 "목사님, 저는 아무리 애쓰고 노력해도, 좀처럼 저의 큰 교만함을
  벗어버릴 수가 없습니다. 도대체 이를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
  목사님이 묻습니다. "무엇 때문에, 또한 언제 자꾸 교만한 생각이 드십니까 ?"
 "예 ! 거울을 볼 때마다 거울 속의 제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아무리 교만한 마음을 안 가지려 해도, 자꾸만 교만한 마음이 생깁니다."

  목사님께서 그 부인의 얼굴을 한참 보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자매님 ! 자매님의 문제는 교만이 아니라 착각인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들이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더욱 아름다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다음의 두 가지를 꼭 알아야 합니다.

  첫째,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 가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둘째, 내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정신과 전문의로서 보라매병원 정신과 과장을 역임하고,
  미국 칼빈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여 神學과 정신의학을 접목해 연구하고 있는
  김 진 선생이, 그가 쓴 책에서 한 여인을 이렇게 소개했습니다.
  이 부인은 하나님을 열심히 믿는 기독교인이었고, 경제, 건강, 자녀 등 여러 면에서
  세상이 말하는 행복의 조건을 갖춘 두루 여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의 가정생활은 참으로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남편과의 관계가 지극히 원만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말해, 이 여인은 자기 남편을 매우 싫어했습니다.
  남편이 험한 사람도 아니고, 또 특별히 잘못한 것도 없는 데
  이상하게 남편의 얼굴만 보면 가슴이 얼음장처럼 차가워져 버립니다.
  결국 부부사이가 점점 멀어지게 되었고 나중에는 이혼까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여인은 하나님 앞에 엎드려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 제 남편을 사랑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
  그러나 아무리 기도해도 남편을 향한 마음은 변화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여인은 김 진 의사를 만나게 되었고,
  김 의사를 통해 비로소 자신의 문제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 여인이 어릴 적, 친정 아버지는 경제적인 능력은 전혀 없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술독에 빠져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술 취해서 집에 들어오면 어머니를 때리고 자식들을 때렸습니다.
  그때마다 이 여인의 마음 속에는 아버지에 대한 증오가 쌓여 갔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를 향해 그 증오를 발산할 수는 없었습니다.
  결국 자신의 마음 속에만, 아버지를 향한 증오를 쌓아 갔습니다.

  그러던 중, 이 여인은 어른이 되었고 결혼도 하게 되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아버지를 미워했던 마음도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느끼지 못하는 마음 깊은 곳에는
  아버지에 대한 증오가 그대로 남아있었습니다.

  그런데 결혼 후, 남편의 습관 가운데,
  친정 아버지와 말투, 행동 등이 몇 가지 비슷한 점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기 남편이 친정 아버지와 비슷한 행동을 할 때마다
  자기도 모르게 남편이 너무나 미웠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미움과 증오가 남편에게 표출된 것입니다.
  결국 이 여인의 문제는 남편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여인이 마음 깊이 묻어 두었던 자신의 과거 삶은,
  자기도 모르게 자신과 가족에게 큰 영향을 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병원에서 건강검진을 하면 꼭 물어보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祖父母나 父母 중에 큰 病에 걸린 사람이 있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내 건강을 검진하는데 왜 조부모나 부모의 병을 물어봅니까 ?
  그것은 많은 病이 여러 면에 있어서 유전적인 영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이 믿음 안에서 더욱 아름다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바로 알고, 또한 우리 자신을 알아야 하는데,
  나 자신을 온전히 알기 위해서는, 내 과거의 삶, 나 자신의 무의식 세계,
  또한 내 先祖들의 靈的 성향까지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한 걸음 더 나아가, 인류의 전체 역사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그 근본을 알아야만,
  내가 누구인가를 가장 똑바로 알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창세기1:26-27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한 군데 더 읽겠습니다.
  창세기2: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여러분 ! 이 말씀을 통해 볼 때, 우리 인간은 어떤 존재입니까 ?
  그렇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지음 받은 피조물(被造物)입니다.
  더구나 목적이 있어 지음 받은 존재입니다.
  특히 우리 인간이 피조물이라는 사실은,
  내 삶의 목적을 나에게서 찾으면 안 되고,
  나를 만드신 분에게서 찾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하나님께서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시매
  비로소 생령(生靈)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속에는 하나님이 주신 특별한 생명이 들어있습니다.
  또한 존귀함도 들어있습니다.
  그러나 또한, 흙으로 지음 받았기에 연약함도 가지고 있습니다.
  더구나 우리들의 조상 아담이 타락하여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우리 속에 죄악의 본성, 즉 죄를 범하고 싶은 本性이 가득 차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인간들은 흙의 연약함도 가지고 있고, 죄의 성향도 가지고 있으며,
  또한 하나님의 거룩성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을 알지 않고는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를 결코 똑바로 알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이런 우리들이 이제는 기독교인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되는 순간, 이 모든 연약함에서 완전하게 해방됩니까 ?
  그렇지 않습니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가진 커다란 착각이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신앙인이 되었기 때문에 이제 스스로 죄를 이길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즉, '원하기만 하면 나는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자신을 똑바로 모르는 것입니다.
  물론 처음 예수님을 구주로 확신하고 나면 그야 말로 천국 같은 삶을 삽니다.
  행복합니다. 세상이 아름답게 보이고, 감사가 넘칩니다.
  그런데 어느 한 순간 기도하는 시간이 줄어듭니다.
  그리고 자신의 경험과 힘으로 사명을 감당하려하고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때부터가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면서도 그것을 행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양심의 가책을 느낍니다.
  그러나 그 죄를 끊지 못합니다. 그 죄에 끌려 다닙니다.
  그리고 점점 깊은 고민과 갈등 속에 빠지고, 마침내 기쁨이 없어지고,
  오히려 사명이 짐이 되며, 드리는 예배가 능력을 상실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바울도 이렇게 말합니다.
  바울은 본문19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 도다"

  예수님을 믿고 의롭다고 인정함을 받은 우리들이
  그때부터 접어드는 구원의 단계는 성화의 과정입니다.
  즉 예수님을 닮아 가는 단계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
  이 성화 즉 예수님을 닮아 가는 것은, 우리의 힘과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계속되는 바울의 고백을 보십시오.
  본문22-24절,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 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그렇습니다. 바울은 깊이 깨달았습니다.
 '내 힘으로는 도저히 예수님을 닮아 갈 수 없구나 ! 거룩해질 수도 없구나 !'

  여러분 ! 목사는 목사답게 살 수 있는 능력이 목사에게 있습니까 ?
  집사답게, 권찰답게 살 수 있는 능력이 우리들에게 있느냐 말입니다.
  내 힘으로 목사가 되고, 내 힘으로 집사 되고, 내 힘으로 권찰 되고,
  내 힘으로 하나님 교회의 중직자가 된 것입니까 ?
  아니지요.

  학교를 갓 졸업한 딱따구리가 학교에서 배운 대로 실습을 했습니다.
  큼지막한 나무를 발견하고는 착 달라붙어서 부리를 세워 탁탁 쪼았습니다.
  그랬더니만 나무 조각이 요만큼 떨어져 나갔습니다.
  이번에는 더 힘을 주어서 아까보다 더 세게 쪼았더니
  아까보다 더 많이 나무 조각이 떨어져 나갔습니다.
  신이 난 딱따구리는 세 번째 더 힘을 주어 쪼는데 바로 그 순간에 벼락이 쳤습니다.
  그런데 '꽝'하고 친 벼락이 딱따구리가 쪼던 나무를 두 쪽으로 갈라 버렸습니다.
  깜짝 놀라서 땅에 떨어진 딱따구리가 툭툭 털면서
 "어허 참 ! 내가 목에 힘을 주어 세게 쪼았더니 과연 ......!"하고 말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
  이 딱따구리의 착각이 우리의 착각일 수 있습니다.
  내가 열심히 기도하고 경건 훈련을 쌓아서 목사가 되었지.
  내가 열심히 했으니까 장로가 되고 집사가 되고, 권찰이 된 것이야.

  사랑하는 여러분 !
  누가복음15장의 탕자가 왜 불행해졌습니까 ? 왜 고생했습니까 ?
  그것은 그가 아버지 집을 떠났기 때문이지요.

  그렇다면 왜 아버지 집을 떠났습니까 ?
  그것은 자신이 아버지를 떠나서도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간섭이 없어도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아니 더 잘될 것 같았지요.

  무슨 말씀입니까 ?
  자기 자신을 몰랐던 거예요. 자기 자신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를 말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예수님을 믿고 난 뒤에도, 나는 여전히 주님 없이는 한 순간도 살 수 없는
  나약한 존재요, 악한 존재라는 사실을.

  우리 기독교인들이 가진 또 한 가지의 커다란 착각이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하나님께 죄를 반복하여 행하였으므로
  더 이상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기대할 수 없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많은 신앙인들은 마음껏 교만해졌다가 그 교만으로 꼬꾸라집니다.
  그리고는 그 후 자포자기 신앙에 빠집니다.
 "나 같은 것은 아무 것도 안 돼" 이른바 자기 비하입니다. 자기 포기입니다.
  물론 자기를 비로소 똑바로 보게 되었으니까 크게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자기만을 보지말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형편없는 자리, 스스로도 창피한 자리에 떨어져 허덕일 때
  하나님은 우리를 어떻게 보십니까 ?
  같이 창피하게 여기셔서 우리를 외면하십니까 ?
  여러분 ! 우리의 부모님들이 우리가 어떤 악을 행했다고 내 버려 놓아둡니까 ?
  아니지요.
  세상 모든 사람들이 우리를 외면하고 우리를 향해 손가락질을 하고 돌을 던져도,
  우리의 부모님들은 우리를 감싸주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런 분이십니다.
  우리가 행한 죄를 씻어주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처참히 죽이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를 살리기 위해, 우리를 구렁텅이에서 건지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로마서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자신이 가지신 가장 귀한 것을 버리신 분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십니다.
 
  어느 날, 아이들이 서로 이야기하는 소리를 아빠가 들었습니다.
  형이 동생에게 말하는데, 동생이 아마 큰 잘못을 했나 봅니다.
 "너 이제 큰일났다 어쩌다 그런 일을 했니. 아버지가 아시면 아마도 다시는 너를
  보려 하지 않으실 거야"
  그 말을 듣고 동생은 울먹울먹합니다.

  이때 옆방에 있던 아버지가 이 둘을 부릅니다.
 "애들아 ! 이리 와 보아라.
  너희가 하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너희들이 잘 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 있구나.
  너희들이 만약 아빠의 말을 잘 들으면, 아빠는 기쁜 마음으로 너희를 사랑한단다.
  그러나 너희들이 만약 아빠의 말을 듣지 않고 아빠의 마음을 아프게 하면,
  아빠는 슬픈 마음으로 너희를 사랑한단다.
  그런데 기쁜 마음으로 너희를 사랑할 때나 슬픈 마음으로 사랑할 때나
  너희를 사랑하는 아빠의 마음은 변함이 없단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이것이 바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우리가 물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실패할 때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
  그때 스스로 자격지심을 가지고, "나는 틀렸다", "나 같은 것이"하며 절망하는 것은
  결국 자신을 의지하는 삶입니다.
  참으로 교만한 것입니다.
  꼭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하나님의 마음이 또한
  지체들을 향한, 자녀들을 향한, 가족들을 향한 우리들의 마음이어야 합니다.

  여러분 !
  성경에서 제일 뻔뻔한 사람이 누구라고 생각합니까 ?
  그렇습니다.
  이미 소개한 누가복음15장의 돌아온 탕자입니다.
  자신이 받을 모든 재산을 다 챙겨서 탕진하였으면 돌아 올 생각을 말았어야 지요.
  거기서 굶어죽든지 얼어죽든지 해야지 무슨 낯짝으로 다시 아버지에게 돌아옵니까 ?

  그러나 탕자의 마음 속에는 아버지를 향한 신뢰,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 마음은 '최소한 품꾼의 하나로는 써 주시겠지.'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자비하심에 대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아들의 예상 밖이었습니다.
  품꾼의 하나로 써 주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에 그냥 아들로 받아 준 것입니다.
  자기가 기대한 그 이상이었습니다.
  마치 아무 잘못도 없는 것처럼 새 옷을 입혀주고, 새 신발을 신기고, 가락지를 끼우고
  살찐 송아지를 잡아 잔치까지 해 주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우리가 잘못했을 때 하나님은 아파하십니다.
  우리가 회개하고 돌아왔을 때 하나님은 기쁨으로 용서하십니다.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행한 죄악들로 주저앉아있으면 안됩니다.
  다시 일어서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이 할 행동입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 정말 뻔뻔스럽지요.
  우리는 자주자주 참회기도를 드립니다.
  죄를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
  회개기도의 내용을 보면 변화가 없습니다. 매일 거의 같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
  실컷 회개하고 가서 또 그 죄 짓고,
  또 다시 회개하고 가서 또 다시 그 죄를 행한다는 것입니다.
  죄짓고 회개하고 죄짓고 회개하고를 매일 반복합니다.
  아마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 보면, 참 예수 믿는 사람들 뻔뻔하다고 할 것입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주님을 믿는 우리의 믿음입니다.

  마태복음18:21-22, "주여 !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

  한 가지 일로 490번까지 용서하라는 것입니까 ?
  아닙니다. 끝까지 용서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런 용서와 은혜를 받고 있으니 말입니다.

  미국에 케시라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한 남자와 사랑에 빠졌습니다.
  매일 삶이 기쁨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만 그 남자로부터 배신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너무나 깊은 마음의 상처를 받았기에 도저히 견딜 수 없었습니다.
  견디다 못해 가출을 했습니다. 그리고 10년 간 떠돌이가 되었습니다.
  그는 그동안 알콜과 마약 중독자가 되었고, 또한 몸을 파는 여인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녀의 나이 35세가 된 어느 날,
  몸과 영혼까지 심각한 병에 빠진 이 여인은 스스로 죽음을 결심했습니다.
 "나는 아무에게도 사랑 받지 못하는 인생이야 !"
  강둑에 서서 흘러가는 물을 바라보고 있는 데
  물 속에서 어떤 사람의 형체가 어른거렸습니다. 바로 어머니의 얼굴이었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어머니의 얼굴이 얼마나 많이 늙으셨을까 ?'
 '그래 죽는 것은 언제든지 할 수 있으니까 죽기 전에 먼발치에서라도
  어머니의 얼굴 한 번 보고 죽자.'

  몇 일이 걸려 드디어 고향집에 도착했습니다.
  시간은 한 밤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집 안팎에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습니다.
  집안에 무슨 일을 하고 있는가 하고 둘러보았지만 사람의 인기척은 없었습니다.
  이상하다 생각하고 문을 살짝 밀어봤더니만 문이 열려있었습니다.
  조금 더 미니까 '삐익'하고 소리가 났습니다.
  그 순간에 '케시냐 ?'하면서 어머니가 맨 발로 뛰어나오셨습니다.
  미처 피할 새도 없이 어머니에게 붙잡히고 말았습니다.
  껴안고 우는 어머니에게 케시가 묻습니다.

 "어머니 왜 이렇게 환하게 집 안팎으로 불을 켜놓았습니까 ?
  그리고 밤중에 주무시면서 문도 안 잠그고 주무셨습니까 ?
  그리고 문을 연 것이 저인 줄 어떻게 아셨습니까 ?"
  그랬더니 어머니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네가 집을 떠나간 지난 10년 간,
  단 하루도 불을 켜놓지 않은 밤이 없었고,
  단 한번도 문을 잠근 적이 없었단다.
  그리고 단 한 순간도 너를 기다리지 않은 적이 없었단다."

  여러분 ! 이것이 우리를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내가 범죄 했을 때,
  나 자신을 바라보지 말고,
  나를 스스로 정죄(定罪)하지도 말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봅시다.
  바로 이 연약한 나를 위해, 우리 구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우리의 모든 죄를 지고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연약함과 죄 때문에 고민하지 말고,
  십자가를 보고 십자가를 의지하여 다시 일어납시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결국 실패로 인도하는 우리 스스로의 힘을 의지하지 말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합시다.

  그리하여 나의 영광이 아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는 삶,
  나의 행복을 위해서 사는 삶이 아니라,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사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그러한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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