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2012년7월29일, 마태복음7:13-14(좁은 문으로 들어가 좁은 길을 걸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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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 옆에 계신 지체들과 함께 이렇게 고백해 봅시다.
우리도, 윌리스 존슨처럼 역전의 승리를 차지하는 큰 승리자가 됩시다.
그러기 위해,
하나님 안에서 들려오는 승리의 소식이, 우리에게도 이루어짐을 확신합시다.
그를 위해 기도합시다.
남은 것에 초점을 맞춥시다.
저는 설교말씀을 전할 때마다, 한 가지 간절한 소망이 있습니다.
그 소망은 '오늘 예배하는 우리 모든 성도들이,
전해지는 말씀 중에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꼭 만나야 할텐데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오늘 말씀 중에 함께 하시는 하나님과, 깊이 있는 영적 교제를 꼭 나눌 수 있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우리 모두에게 전하고자 하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산상수훈 중에 설교하신, 두 문과 두 길에 대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인생 길에는 두 문(門)과 두 길(道)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는 좁은 문이요, 다른 하나는 넓은 문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하는 좁은 길이요, 또 다른 하나는 넓은 길입니다.
자 ! 오늘 본문 말씀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본문13-14절,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狹窄)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新共同譯, "狹い門から入りなさい.
滅びに通じる門は廣く, その道も廣 として, そこから入る者が多い.
しかし, 命に通じる門はなんと狹く,
その道も細いことか. それを見いだす者は少ない."
우리말성경,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은 넓어 그곳으로 들어가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그 길은 험해 그곳을 찾는 사람은 적다"
그렇습니다. 분명히 두 문(門)과 두 길(道)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여기에서, 넓은 문, 넓은 길은
멸망을 향하는 문이며, 멸망을 향하는 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우리에게 좁은 문으로 들어가고, 좁은 길을 걸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넒은 문은 어떤 문일까요 ? 또한 넓은 길은 또 어떤 길일까요 ?
반대로, 좁은 문, 좁은 길은 또 어떤 문이며, 또 어떤 길일까요 ?
누가복음에는, '좁은 문'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이 한 번 더 등장합니다.
어떤 사람이 와서 예수님께 이렇게 묻습니다.
누가복음13:23, "주여 ! 구원을 받는 자가 적으니이까 ?"
쉽게 말하면 이렇습니다.
"예수님 ! 앞으로 구원받을 사람들이 많을 것 같습니까 ? 아니면 적을 것 같습니까 ?
아마 적지 않겠습니까 ?"
이 사람은 구원받는 사람들의 수에 대해, 상당히 관심이 많았나 봅니다.
그 질문을 받으시자 예수님께서 유명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누가복음13:24,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예수님의 말씀은 계속 이어집니다.
누가복음13:25, "집 주인이 일어나 문을 한 번 닫은 후에,
너희가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며 주여 열어 주소서 하면,
그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온 자인지 알지 못하노라 하리니"
누가복음13:26-27, "그 때에 너희가 말하되, 우리는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는 또한 우리를 길거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 하나, 그가 너희에게 말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행악(行惡)하는 모든 자들아, 나를 떠나가라 하리라"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 몇 가지 중요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하나는 좁은 문도 언젠가는 닫힌다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과 함께 먹고 마시며,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았던 사람이라 할지라도,
좁은 문으로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직접 말씀하신 성경 한 구절을 더 보겠습니다.
요한복음10:7-9,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그렇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또 한 가지 알 수 있는 것은,
예수님께서는 자기 자신을 문이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또한, 문이신 예수님을 통해 들어가야만 구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또한 자신이 길이라는 것도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그렇습니다.
좁은 문도 그리고 길도, 곧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또한 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준비된, 구원의 길을 향해 가는 것이
곧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이고, 좁은 길을 걷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좁은 문으로 들어가, 좁은 길을 걷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두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예수께서 열어 놓으신 구원을 소망하는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둘째, 영원한 나라 즉 천국을 바라보는 삶을 살며,
이 세상에서보다는 천국에서 받을 상급과 면류관을 바라보며 산다는 것입니다.
자 ! 그렇다면, 반대로 넓은 문과 넓은 길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통한 구원을 믿지도 않고, 또한 영원한 생명과 구원에는
아무 관심도 없이 사는 삶이, 넓은 길을 걷는 삶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넓은 길을 걷는 사람들은, 이 땅에서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에
대부분의 시간을 투자합니다.
이들 대부분은 돈과 권력을 추구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지금 이 지구 안에는, 좁은 문 좁은 길을 걷는 사람과, 넓은 문 넓은 길을 걷는 사람 중
어느 쪽이 더 많다고 생각하십니까 ?
물론입니다.
넓은 문, 넓은 길을 걷는 사람이 훨씬 많습니다.
예수님께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신다는 이 놀라운 복음은,
지난 2천년 동안 끊임없이 이 세상 사람들에게 전해져 왔습니다.
그런데 대다수 사람들에게 그것은 너무 고지식한 주장이며, 독선으로 보입니다.
'오직 예수'라고 하는 말 자체에 대해서 거부반응을 일으킵니다.
"그런 획일화된 진리를 우리는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오히려 이러한 말과 주장을 좋아합니다.
"모든 종교에 진리가 있다. 어떤 종교를 믿던지 그 종교에도 구원이 있다"
그렇습니다. 인간들은 자신이 주체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종교도 골라잡으려 합니다.
내 입맛에 맞게 종교도 선택하고, 또 그렇게 선택했다 해도 구원에는 관심이 없으니
그저 부담 없이 종교 생활하는 것을 원합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넓은 문, 넓은 길을 걷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이런 형편에서 오늘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고,
그 분을 믿고 따르는 좁은 문, 좁은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은,
얼마나 감사하고 또 얼마나 기적적인 일인지 모릅니다.
항상 감사하며 사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
오늘날 교회들을, 한 가지 놀라운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구원을 소망하고, 천국을 소망하여, 좁은 문으로 들어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생활을 시작하기는 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넓은 길을 걸으려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을 믿기는 하는데, 그 예수님을 따르지 않고,
예수님의 뜻을 좇아 살지 않는 사람들이 교회에 참으로 가득하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한다면,
우리들의 삶도 예수님을 믿는 사람답게 변화되어져야 합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오셨다면, 좁은 길을 걸어야 마땅한 것입니다.
여러분 !
저는 지금부터 우리 모두에게, 두 가지 질문을 하고자 합니다.
이 두 가지 질문에, "예 !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할 수 있다면,
우리들은 지금 좁은 문으로 들어와, 좁은 길을 걷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아니요 ! 그렇지 않습니다" 혹은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라는 대답이
나온다고 한다면, 우리는 급히 돌이켜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길은 멸망을 향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첫째 질문, 신앙생활이 정말 힘들다고 생각될 때가 많습니까 ?
우리들 가운데, 혹 이렇게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까 ?
'아 ! 신앙생활하기 정말 힘드네. 예수 믿기만 하면 천국 갈 수 있다고 해서,
너무 쉽게 생각하고 덥석 믿었는데, 믿고 나니까 정말 어렵네 !'
'일요일에는 모처럼 쉬는 날인데, 예배드리러 교회가야 하고, 성경도 읽어야 하고,
기도도 해야 하고, 쓸 곳도 많은데 헌금까지 해야 하고'
'더구나, 원해서 맡은 직분도 아닌데, 교회에서 맡은 직분도 감당해야 하고,
더구나 직장의 일도, 가정의 일도, 아르바이트도 사명이라니 !'
여러분 ! 우리들이 이런 것들로 인해, 힘들어하고 또 고민하고 있다면,
분명 우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 좁은 길을 걷고 있는 것입니다.
가끔 보면, 신앙 생활하는 것을 너무 즐거운 것으로만 생각하는 분이 있습니다.
마치 초등학교에 막 입학한 어린아이와 같습니다.
생전 처음 책가방을 매고, 가슴에 꽃을 달고, 성대한 입학식을 합니다.
온 가족 친척들에게 축하를 받습니다.
그래서 마냥 좋습니다.
그러나 학교생활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학교가야지요,
규칙들을 지켜야지요, 숙제도 해야지요,
봉사(청소, 급식, 칠판, 화장실)도 담당해야 지요, 참 많은 섬김이 따릅니다.
물론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정말 기쁩니다. 행복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마냥 좋아하고 기뻐하는 것만이 신앙생활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금방 소개한, 초등학교 입학생과 같은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갈수록 어렵습니다. 힘듭니다.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감당하고, 헌신할 일들이 정말 많아집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16:24,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여기에서,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이것이 바로 좁은 길을 걸어가는
신앙생활입니다. 예수님을 따라가는 삶이 신앙생활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
그것은 예수님을 몰랐을 때 가졌던 욕망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예수님을 믿고 나서, 세상의 것들을 하나 둘 내려놓기 시작하니,
우리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
물론입니다.
세상을 함께 즐기던 세상 친구들이 멀어지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재미있던 세상의 일들이, 별로 재미가 없어집니다.
때로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이유로 고독해질 때도 있습니다.
어떤 때는 불이익도 감수해야 합니다. 핍박을 당할 때도 있습니다.
세상에서 너무나 중요한 일을, 신앙 때문에 못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 이것이 바로 좁은 길을 걷는 삶인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가 왜 위기에 빠져있습니까 ? 능력이 없습니까 ?
그것은 교회와 그 속에 속한 성도들이, 좁은 길을 걷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의 많은 교회 안에는, 기복신앙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오로지 "예수 믿으면, 잘 먹고, 잘 살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이래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가 아닙니다.
자기를 부인하면서 신앙 생활하느라고, 스트레스 받고, 그래서 신앙을 포기하고 싶고,
울고 싶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럴 때마다 십자가 앞에서 기도하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 도와 주세요. 은혜 주세요. 제 믿음을 지켜 주세요 !"
그렇게 부르짖고, 울부짖으며, 믿음을 지켜보려고 애쓰는 것이 정상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믿음을 지키기 위해, 지금 이런 고통과 어려움을 느끼십니까 ?
눈물 마를 날이 없습니까 ? 그렇다면, 우리는 좁은 길을 걷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 이 길 끝에는 우리 주님이 계십니다.
우리를 덥석 안아 주실 것입니다.
칭찬하실 것입니다. 면류관을 씌어 주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
그때까지 잘 견뎌내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 질문, 가끔씩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기뻐하십니까 ?
베드로는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베드로후서3:12-13,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이 땅의 삶이 아무리 힘들어도, 하나님 나라만 생각하면
문득문득 기쁨이 차 오르는 그런 삶을, 우리는 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땅은 나그네길이며, 우리의 소망은 하늘에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 전, 미국에서 음악목사로 널리 알려진,
찰스 H. 가브리엘 목사님이 쓴 기도문이 있습니다. 그 일부 내용은 이렇습니다.
"오늘 만약 제가 어떤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했다면,
만약 제가 어느 누구의 발자국 하나라도 빗나가게 했다면,
만약 제가 저의 고집대로만 살아왔다면 ....... 선하신 주님, 용서하소서"
이 가브리엘 목사님은 많은 찬송가를 작사하고 또 작곡했는데,
우리에게 잘 알려진 찬송 중에는 이러한 것들이 있습니다.
샤론의 꽃 예수 나의 마음에, 거룩하고 아름답게 피소서 (새찬송가89장)
그 어린 주 예수 눌 자리 없어, 그 귀하신 몸이 구유에 있네 (새찬송가108장)
주 예수 내 맘에 들어와 계신 후, 변하여 새 사람되고 (새찬송가289장)
주님의 마음을 본 받는 자, 그 맘에 평강이 찾아옴은 (새찬송가455장)
주여 지난 밤 내 꿈에 뵈었으니 그 꿈 이루어 주옵소서 (새찬송가490장)
특히, 가브리엘 목사님이 자기의 아들을 세계 제1차 대전의 전쟁터로 보내면서,
아들의 말을 듣고 지은 찬송이 찬송가492장입니다.
1절, 잠시 세상에 내가 살면서 항상 찬송 부르다가,
, 날이 저물어 오라 하시면 영광 중에 나아가리,
4절, 한숨 가지고 죽음 없는 날 사모하며 기다리니,
, 내가 그리던 주를 뵈올 때 나의 기쁨 넘치리라,
후렴, 열린 천국 문 내가 들어가 세상 짐을 내려놓고,
, 빛난 면류관 받아쓰고서 주와 함께 길이 살리.
아들은 뉴욕의 항구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아버지 만약 제가 돌아오지 못하게 되면,
저는 영원한 집에서 아버지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가브리엘 목사님의 아들은 두려움 속에서 천국을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가 사는 세상은 전쟁터와 같습니다.
사단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 좁은 길을 가고자 하는 우리들을 가만 두지 않습니다.
여러분 ! 그러므로 우리는 어렵고 힘들 때다 천국을 바라보며 용기를 회복해야 합니다.
가브리엘 목사님은 이 곡도 작곡했습니다.
찬송가491장,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날마다 나아갑니다.
내 뜻과 정성 모아서 날마다 기도합니다.
내 주여 내 마음 붙드사 그곳에 있게 하소서,
그곳은 빛과 사랑이 언제나 넘치옵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좁은 길과 넓은 길, 두 길을 놓고
선택하시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여러분은 어느 길로 가시렵니까 ?
주님의 뜻은 우리 모두가 다 좁은 문을 택하고 좁은 길을 걷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그 길은 곧 자기부인의 길이요, 자기 희생의 길입니다.
하지만 그 길을 가는 사람은 영생을 선물로 받습니다. 면류관의 상급도 있습니다.
비록 힘들지만 여러분의 십자가를 지고,
그 영광의 날이 오기까지 절대로 포기하지 말고,
이 좁은 길을 함께 걸어갈 수 있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언젠가 한 번 소개했지만, 경남 거창에 가면 거창고등학교가 있습니다.
1953년 세워진 학교로,
그 학교의 교육이념은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한 민주시민 양성'입니다.
그 학교 학생들에게는 '직업 선택의 십계명'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첫째, 월급이 적은 쪽을 택하라.
둘째,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택하라.
셋째, 승진의 기회가 거의 없는 곳을 택하라.
넷째, 모든 것이 갖추어진 곳을 피하고,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황무지를 택하라.
다섯째, 앞을 다투어 모여드는 곳은 절대 가지 마라. 아무도 가지 않는 곳으로 가라.
여섯째, 장래성이 전혀 없다고 생각되는 곳으로 가라.
일곱째, 사회적 존경 같은 건 바라볼 수 없는 곳으로 가라.
여덟째, 한 가운데가 아니라 가장자리로 가라.
아홉째, 부모나 아내나 약혼자가 결사반대를 하는 곳이면 틀림없다. 의심치 말고 가라.
열째, 왕관이 아니라 단두대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가라.
여러분 ! 이것이야말로 좁은 길을 걷는 삶이 아니겠습니까 ?
우리는 생명의 길을 가고 있으며,
이 길 끝에 영광의 주님이 기다리고 계시는 그 길을 걷고 있습니다.
영광의 주님을 바라보면서,
남들이 가기 싫어하는 곳을 선택하고,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들을 선택하며,
우리의 몸과 소유로 섬기며 살아갑시다.
자 ! 우리 함께 찬양합시다.(제목 -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나는 이 길을 가리라. 좁은 문, 좁은 길, 나의 십자가 지고,
나의 가는 이길 끝에서 나는 주님을 보리라. 영광의 내 주님 나를 맞아 주시리.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나는 일어나 달려가리라.
주의 영광 온 땅 덮을 때, 나는 일어나 노래하리
내 사모하는 주님 온 세상 구주시라. 내 사모하는 주님 영광의 왕이시라
우리도, 윌리스 존슨처럼 역전의 승리를 차지하는 큰 승리자가 됩시다.
그러기 위해,
하나님 안에서 들려오는 승리의 소식이, 우리에게도 이루어짐을 확신합시다.
그를 위해 기도합시다.
남은 것에 초점을 맞춥시다.
저는 설교말씀을 전할 때마다, 한 가지 간절한 소망이 있습니다.
그 소망은 '오늘 예배하는 우리 모든 성도들이,
전해지는 말씀 중에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꼭 만나야 할텐데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오늘 말씀 중에 함께 하시는 하나님과, 깊이 있는 영적 교제를 꼭 나눌 수 있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우리 모두에게 전하고자 하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산상수훈 중에 설교하신, 두 문과 두 길에 대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인생 길에는 두 문(門)과 두 길(道)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는 좁은 문이요, 다른 하나는 넓은 문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하는 좁은 길이요, 또 다른 하나는 넓은 길입니다.
자 ! 오늘 본문 말씀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본문13-14절,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狹窄)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新共同譯, "狹い門から入りなさい.
滅びに通じる門は廣く, その道も廣 として, そこから入る者が多い.
しかし, 命に通じる門はなんと狹く,
その道も細いことか. それを見いだす者は少ない."
우리말성경,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은 넓어 그곳으로 들어가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그 길은 험해 그곳을 찾는 사람은 적다"
그렇습니다. 분명히 두 문(門)과 두 길(道)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여기에서, 넓은 문, 넓은 길은
멸망을 향하는 문이며, 멸망을 향하는 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우리에게 좁은 문으로 들어가고, 좁은 길을 걸으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넒은 문은 어떤 문일까요 ? 또한 넓은 길은 또 어떤 길일까요 ?
반대로, 좁은 문, 좁은 길은 또 어떤 문이며, 또 어떤 길일까요 ?
누가복음에는, '좁은 문'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이 한 번 더 등장합니다.
어떤 사람이 와서 예수님께 이렇게 묻습니다.
누가복음13:23, "주여 ! 구원을 받는 자가 적으니이까 ?"
쉽게 말하면 이렇습니다.
"예수님 ! 앞으로 구원받을 사람들이 많을 것 같습니까 ? 아니면 적을 것 같습니까 ?
아마 적지 않겠습니까 ?"
이 사람은 구원받는 사람들의 수에 대해, 상당히 관심이 많았나 봅니다.
그 질문을 받으시자 예수님께서 유명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누가복음13:24,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예수님의 말씀은 계속 이어집니다.
누가복음13:25, "집 주인이 일어나 문을 한 번 닫은 후에,
너희가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며 주여 열어 주소서 하면,
그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온 자인지 알지 못하노라 하리니"
누가복음13:26-27, "그 때에 너희가 말하되, 우리는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는 또한 우리를 길거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 하나, 그가 너희에게 말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행악(行惡)하는 모든 자들아, 나를 떠나가라 하리라"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 몇 가지 중요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하나는 좁은 문도 언젠가는 닫힌다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과 함께 먹고 마시며,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았던 사람이라 할지라도,
좁은 문으로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직접 말씀하신 성경 한 구절을 더 보겠습니다.
요한복음10:7-9,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그렇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또 한 가지 알 수 있는 것은,
예수님께서는 자기 자신을 문이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또한, 문이신 예수님을 통해 들어가야만 구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또한 자신이 길이라는 것도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그렇습니다.
좁은 문도 그리고 길도, 곧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또한 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준비된, 구원의 길을 향해 가는 것이
곧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이고, 좁은 길을 걷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좁은 문으로 들어가, 좁은 길을 걷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두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예수께서 열어 놓으신 구원을 소망하는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둘째, 영원한 나라 즉 천국을 바라보는 삶을 살며,
이 세상에서보다는 천국에서 받을 상급과 면류관을 바라보며 산다는 것입니다.
자 ! 그렇다면, 반대로 넓은 문과 넓은 길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통한 구원을 믿지도 않고, 또한 영원한 생명과 구원에는
아무 관심도 없이 사는 삶이, 넓은 길을 걷는 삶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넓은 길을 걷는 사람들은, 이 땅에서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에
대부분의 시간을 투자합니다.
이들 대부분은 돈과 권력을 추구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지금 이 지구 안에는, 좁은 문 좁은 길을 걷는 사람과, 넓은 문 넓은 길을 걷는 사람 중
어느 쪽이 더 많다고 생각하십니까 ?
물론입니다.
넓은 문, 넓은 길을 걷는 사람이 훨씬 많습니다.
예수님께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신다는 이 놀라운 복음은,
지난 2천년 동안 끊임없이 이 세상 사람들에게 전해져 왔습니다.
그런데 대다수 사람들에게 그것은 너무 고지식한 주장이며, 독선으로 보입니다.
'오직 예수'라고 하는 말 자체에 대해서 거부반응을 일으킵니다.
"그런 획일화된 진리를 우리는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오히려 이러한 말과 주장을 좋아합니다.
"모든 종교에 진리가 있다. 어떤 종교를 믿던지 그 종교에도 구원이 있다"
그렇습니다. 인간들은 자신이 주체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종교도 골라잡으려 합니다.
내 입맛에 맞게 종교도 선택하고, 또 그렇게 선택했다 해도 구원에는 관심이 없으니
그저 부담 없이 종교 생활하는 것을 원합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넓은 문, 넓은 길을 걷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이런 형편에서 오늘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고,
그 분을 믿고 따르는 좁은 문, 좁은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은,
얼마나 감사하고 또 얼마나 기적적인 일인지 모릅니다.
항상 감사하며 사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
오늘날 교회들을, 한 가지 놀라운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구원을 소망하고, 천국을 소망하여, 좁은 문으로 들어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생활을 시작하기는 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넓은 길을 걸으려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을 믿기는 하는데, 그 예수님을 따르지 않고,
예수님의 뜻을 좇아 살지 않는 사람들이 교회에 참으로 가득하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한다면,
우리들의 삶도 예수님을 믿는 사람답게 변화되어져야 합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오셨다면, 좁은 길을 걸어야 마땅한 것입니다.
여러분 !
저는 지금부터 우리 모두에게, 두 가지 질문을 하고자 합니다.
이 두 가지 질문에, "예 !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할 수 있다면,
우리들은 지금 좁은 문으로 들어와, 좁은 길을 걷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아니요 ! 그렇지 않습니다" 혹은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라는 대답이
나온다고 한다면, 우리는 급히 돌이켜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길은 멸망을 향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첫째 질문, 신앙생활이 정말 힘들다고 생각될 때가 많습니까 ?
우리들 가운데, 혹 이렇게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까 ?
'아 ! 신앙생활하기 정말 힘드네. 예수 믿기만 하면 천국 갈 수 있다고 해서,
너무 쉽게 생각하고 덥석 믿었는데, 믿고 나니까 정말 어렵네 !'
'일요일에는 모처럼 쉬는 날인데, 예배드리러 교회가야 하고, 성경도 읽어야 하고,
기도도 해야 하고, 쓸 곳도 많은데 헌금까지 해야 하고'
'더구나, 원해서 맡은 직분도 아닌데, 교회에서 맡은 직분도 감당해야 하고,
더구나 직장의 일도, 가정의 일도, 아르바이트도 사명이라니 !'
여러분 ! 우리들이 이런 것들로 인해, 힘들어하고 또 고민하고 있다면,
분명 우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 좁은 길을 걷고 있는 것입니다.
가끔 보면, 신앙 생활하는 것을 너무 즐거운 것으로만 생각하는 분이 있습니다.
마치 초등학교에 막 입학한 어린아이와 같습니다.
생전 처음 책가방을 매고, 가슴에 꽃을 달고, 성대한 입학식을 합니다.
온 가족 친척들에게 축하를 받습니다.
그래서 마냥 좋습니다.
그러나 학교생활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학교가야지요,
규칙들을 지켜야지요, 숙제도 해야지요,
봉사(청소, 급식, 칠판, 화장실)도 담당해야 지요, 참 많은 섬김이 따릅니다.
물론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정말 기쁩니다. 행복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마냥 좋아하고 기뻐하는 것만이 신앙생활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금방 소개한, 초등학교 입학생과 같은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갈수록 어렵습니다. 힘듭니다.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감당하고, 헌신할 일들이 정말 많아집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16:24,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여기에서,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이것이 바로 좁은 길을 걸어가는
신앙생활입니다. 예수님을 따라가는 삶이 신앙생활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
그것은 예수님을 몰랐을 때 가졌던 욕망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예수님을 믿고 나서, 세상의 것들을 하나 둘 내려놓기 시작하니,
우리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
물론입니다.
세상을 함께 즐기던 세상 친구들이 멀어지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재미있던 세상의 일들이, 별로 재미가 없어집니다.
때로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이유로 고독해질 때도 있습니다.
어떤 때는 불이익도 감수해야 합니다. 핍박을 당할 때도 있습니다.
세상에서 너무나 중요한 일을, 신앙 때문에 못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 이것이 바로 좁은 길을 걷는 삶인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가 왜 위기에 빠져있습니까 ? 능력이 없습니까 ?
그것은 교회와 그 속에 속한 성도들이, 좁은 길을 걷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의 많은 교회 안에는, 기복신앙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오로지 "예수 믿으면, 잘 먹고, 잘 살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이래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가 아닙니다.
자기를 부인하면서 신앙 생활하느라고, 스트레스 받고, 그래서 신앙을 포기하고 싶고,
울고 싶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럴 때마다 십자가 앞에서 기도하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 도와 주세요. 은혜 주세요. 제 믿음을 지켜 주세요 !"
그렇게 부르짖고, 울부짖으며, 믿음을 지켜보려고 애쓰는 것이 정상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믿음을 지키기 위해, 지금 이런 고통과 어려움을 느끼십니까 ?
눈물 마를 날이 없습니까 ? 그렇다면, 우리는 좁은 길을 걷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 이 길 끝에는 우리 주님이 계십니다.
우리를 덥석 안아 주실 것입니다.
칭찬하실 것입니다. 면류관을 씌어 주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
그때까지 잘 견뎌내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 질문, 가끔씩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기뻐하십니까 ?
베드로는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베드로후서3:12-13,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이 땅의 삶이 아무리 힘들어도, 하나님 나라만 생각하면
문득문득 기쁨이 차 오르는 그런 삶을, 우리는 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땅은 나그네길이며, 우리의 소망은 하늘에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 전, 미국에서 음악목사로 널리 알려진,
찰스 H. 가브리엘 목사님이 쓴 기도문이 있습니다. 그 일부 내용은 이렇습니다.
"오늘 만약 제가 어떤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했다면,
만약 제가 어느 누구의 발자국 하나라도 빗나가게 했다면,
만약 제가 저의 고집대로만 살아왔다면 ....... 선하신 주님, 용서하소서"
이 가브리엘 목사님은 많은 찬송가를 작사하고 또 작곡했는데,
우리에게 잘 알려진 찬송 중에는 이러한 것들이 있습니다.
샤론의 꽃 예수 나의 마음에, 거룩하고 아름답게 피소서 (새찬송가89장)
그 어린 주 예수 눌 자리 없어, 그 귀하신 몸이 구유에 있네 (새찬송가108장)
주 예수 내 맘에 들어와 계신 후, 변하여 새 사람되고 (새찬송가289장)
주님의 마음을 본 받는 자, 그 맘에 평강이 찾아옴은 (새찬송가455장)
주여 지난 밤 내 꿈에 뵈었으니 그 꿈 이루어 주옵소서 (새찬송가490장)
특히, 가브리엘 목사님이 자기의 아들을 세계 제1차 대전의 전쟁터로 보내면서,
아들의 말을 듣고 지은 찬송이 찬송가492장입니다.
1절, 잠시 세상에 내가 살면서 항상 찬송 부르다가,
, 날이 저물어 오라 하시면 영광 중에 나아가리,
4절, 한숨 가지고 죽음 없는 날 사모하며 기다리니,
, 내가 그리던 주를 뵈올 때 나의 기쁨 넘치리라,
후렴, 열린 천국 문 내가 들어가 세상 짐을 내려놓고,
, 빛난 면류관 받아쓰고서 주와 함께 길이 살리.
아들은 뉴욕의 항구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아버지 만약 제가 돌아오지 못하게 되면,
저는 영원한 집에서 아버지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가브리엘 목사님의 아들은 두려움 속에서 천국을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가 사는 세상은 전쟁터와 같습니다.
사단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 좁은 길을 가고자 하는 우리들을 가만 두지 않습니다.
여러분 ! 그러므로 우리는 어렵고 힘들 때다 천국을 바라보며 용기를 회복해야 합니다.
가브리엘 목사님은 이 곡도 작곡했습니다.
찬송가491장,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날마다 나아갑니다.
내 뜻과 정성 모아서 날마다 기도합니다.
내 주여 내 마음 붙드사 그곳에 있게 하소서,
그곳은 빛과 사랑이 언제나 넘치옵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좁은 길과 넓은 길, 두 길을 놓고
선택하시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여러분은 어느 길로 가시렵니까 ?
주님의 뜻은 우리 모두가 다 좁은 문을 택하고 좁은 길을 걷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그 길은 곧 자기부인의 길이요, 자기 희생의 길입니다.
하지만 그 길을 가는 사람은 영생을 선물로 받습니다. 면류관의 상급도 있습니다.
비록 힘들지만 여러분의 십자가를 지고,
그 영광의 날이 오기까지 절대로 포기하지 말고,
이 좁은 길을 함께 걸어갈 수 있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언젠가 한 번 소개했지만, 경남 거창에 가면 거창고등학교가 있습니다.
1953년 세워진 학교로,
그 학교의 교육이념은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한 민주시민 양성'입니다.
그 학교 학생들에게는 '직업 선택의 십계명'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첫째, 월급이 적은 쪽을 택하라.
둘째,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택하라.
셋째, 승진의 기회가 거의 없는 곳을 택하라.
넷째, 모든 것이 갖추어진 곳을 피하고,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황무지를 택하라.
다섯째, 앞을 다투어 모여드는 곳은 절대 가지 마라. 아무도 가지 않는 곳으로 가라.
여섯째, 장래성이 전혀 없다고 생각되는 곳으로 가라.
일곱째, 사회적 존경 같은 건 바라볼 수 없는 곳으로 가라.
여덟째, 한 가운데가 아니라 가장자리로 가라.
아홉째, 부모나 아내나 약혼자가 결사반대를 하는 곳이면 틀림없다. 의심치 말고 가라.
열째, 왕관이 아니라 단두대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가라.
여러분 ! 이것이야말로 좁은 길을 걷는 삶이 아니겠습니까 ?
우리는 생명의 길을 가고 있으며,
이 길 끝에 영광의 주님이 기다리고 계시는 그 길을 걷고 있습니다.
영광의 주님을 바라보면서,
남들이 가기 싫어하는 곳을 선택하고,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들을 선택하며,
우리의 몸과 소유로 섬기며 살아갑시다.
자 ! 우리 함께 찬양합시다.(제목 -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나는 이 길을 가리라. 좁은 문, 좁은 길, 나의 십자가 지고,
나의 가는 이길 끝에서 나는 주님을 보리라. 영광의 내 주님 나를 맞아 주시리.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나는 일어나 달려가리라.
주의 영광 온 땅 덮을 때, 나는 일어나 노래하리
내 사모하는 주님 온 세상 구주시라. 내 사모하는 주님 영광의 왕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