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2012년7월15일, 요한일서1:8-2:6(죄를 자백하는 자에게 임하는 특별한 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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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 옆에 계신 지체들과 함께 이렇게 고백해 봅시다.
시험은 당신에게도, 나에게도, 우리 모두에게도 반드시 찾아옵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 가장 믿었던 사람들을 통해 오는 시험을 이겨내기가 가장 힘듭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와 인내로 어떤 시험도 이겨냅시다. 할렐루야 !
지금으로부터 105年 前인 1907년,
세계교회 역사상 가장 큰 부흥운동 중 하나인 '평양 대 부흥운동'이
당시 조선의 평양에서 일어났습니다.
그 부흥의 역사가 얼마나 컸던지,
'평양 대 부흥운동'은 18세기 중반 미국의 '대 각성운동',
같은 시기 영국 웨일즈 등에서 일어났던 '영국 웨일즈 대 부흥운동'과 더불어
세계교회 3대 부흥운동으로 명명되었습니다.
당시 평양에 있었던 조지 매큔 선교사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미국 북장로교 선교부 총무 브라운에게 다음과 같은 소식을 전했습니다.
"존경하는 브라운 박사님, 우리는 매우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성령께서 권능 가운데 임하셨습니다.
평양 장대현 교회에서 드린 지난 밤 예배는,
놀라운 성령의 권능과 임재의 현장이었습니다.
우리 중 누구도 지금까지 그와 같은 것을 경험해 보지 못했었으며,
우리가 웨일즈 등에서 일어난 부흥 운동에 대해서 읽었지만,
이번 평양 장대현 교회의 성령의 역사는
우리가 지금까지 읽었던 그 어떤 것도, 능가할 것입니다."
또한 당시 평양의 남산현 교회에서 성령의 역사를 직접 체험한 노블 선교사도
이렇게 당시 상황을 본국에 보고했습니다.
"한국(조선)교회에 내 자신이 지금까지 목격하지도 못했고, 듣지도 못했던
가장 놀라운 성령의 부어주심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사도시대 이후, 이보다 더 놀라운 하나님의 권능의 역사는 없었을 것입니다.
매 예배에서 주님의 권능이 교회전체와 교회 밖으로 임했습니다.
남녀노소가 회개하며 고꾸라졌고,
온 도시는 마치 사람들이 죽은 자를 위해 통곡하듯,
회개의 눈물과 통곡으로 가득했습니다."
이러한 선교사들의 보고를 통해 볼 때,
우리는 당시 '평양 대 부흥운동'이 얼마나 강력한 부흥운동이었는지를
충분히 느낄 수 있습니다.
더구나 '평양 대 부흥운동'은 당시 한국(조선)의 교회들은 물론,
한국(조선)사회 곳곳에도 놀라운 변화를 가져다주었습니다.
당시 소돔과 고모라의 도성으로 불렸던 평양은,
대 부흥 이후 동방의 예루살렘으로 불리기 시작했고,
대 부흥 이후 교파와 교단, 지역을 초월하여
한반도 전역에서 각각의 교회들이 놀랍게 성장하였으며,
복음전파가 급속하게 확산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대 부흥은 교육의 場에도 미쳐서
기독교학교가 곳곳에 설립되었으며,
금연, 금주, 우상숭배로부터의 해방, 여권신장, 윤리의식 증진,
진취적인 세계관 정립에 이르기까지 많은 변화를 가져다주었습니다.
특히 '평양 대 부흥운동'의 특징은,
개인의 각성이 교회의 각성으로, 교회의 각성이 사회와 민족의 각성으로
이어졌다는 데 있습니다.
한국교회와 사회는 1907년에 있었던, 이 대 부흥운동을 기점으로
세계 역사상 유래가 없는 놀라운 변화와 성장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저는 오늘 다음과 같은 간절한 소망을 가지고 이 말씀을 전합니다.
"105년 전 평양에 대 부흥의 복을 주신 하나님,
이 땅 일본에도 그와 같은 부흥을 허락해 주옵소서.
우리 본향교회와 본향의 성도들이 평양의 성도들처럼
일본 대 부흥의 기폭제가 되는 불소시게가 되게 하옵소서"
자 ! 그렇다면, 평양 대 부흥운동의 기폭제는 무엇이었을까요 ?
당시 '평양 대 부흥운동'이 일어나게 된 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1907년1월2일부터 15일까지 평안남도 전역에서 올라온 천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平安南道 道사경회가 열렸습니다.
평양시내의 일반성도들이 참석할 수 있는 예배는 1월6일 주일저녁예배부터였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사경회는,
첫날부터 성령의 은혜가 가득했고,
예배가 계속되면서 성령의 은혜는 학생들과 여성들을 통해 더욱 번져갔습니다.
1907년1월14일, 예정된 일정을 하루 남기고,
당시 사경회를 주도했던 선교사들과 교회의 지도자들은,
사경회가 성령으로 충만했지만,
이렇게 구체적인 열매 없이 끝나서는 안 된다는 것에 마음을 일치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1월14일 정오기도회에 모두가 함께 모여,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기도에 응답하셨습니다.
그 날 저녁, 헌트 선교사가 말씀을 전한 후
이길함(Graham Lee) 선교사가 나와 합심기도를 요청하자
성도들이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날의 합심기도는 이제까지와는 확연히 달랐습니다.
무엇보다도 엄청난 회개의 눈물이 온 예배당을 채웠습니다.
장대현교회에 모인 모든 성도들은 새벽2시까지 기도를 계속했고,
회개를 동반한 강력한 성령의 역사가 모인 모두에게 충만히 임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렇듯, 평양 대 부흥의 첫 기폭제는 합심기도였습니다.
사경회를 주도한 선교사들이 정오기도회 때 합심하여 기도했고,
또한 예배에 모인 모든 성도들이 합심하여 기도했습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자주 말씀드리는 것처럼, 합심기도는 성령충만을 보장합니다.
합심기도는 응답을 보장합니다.
합심기도는 교회가 능력을 가지게 합니다.
마태복음18:19-20,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また, はっきり言っておくが, どんな願い事であれ,
あなたがたのうち二人が地上で心を一つにして求めるなら,
わたしの天の父はそれをかなえてくださる.
二人または三人がわたしの名によって集まるところには,
わたしもその中にいるのである.)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는 지금 합심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대한민국과 일본 그리고 세계를 위해서 말입니다.
또한 교회를 위해, 섬기는 일터와 기업을 위해, 가정을 위해
그리고 본향에 속한 각 기관을 위해 합심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평양 대 부흥운동은, 모두가 합심하여 기도할 때 일어났습니다.
합심하여 기도함으로,
더욱 더 큰 부흥을 일으키게 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꼭 되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할렐루야 !
평양 대 부흥의 두 번째 기폭제는, 끝없이 이어지는 죄에 대한 고백이었습니다.
회개는 그들에게 성령의 충만함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1907년1월14일, 회개의 포문을 연 사람은 길선주장로였습니다.
그는 모두 앞에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는 아간과 같은 자입니다.
나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 모두를 축복하실 수 없었습니다.
약 1년 전 임종을 앞둔 제 친구가 나를 자신의 집에 불러 한 가지를 부탁했습니다."
"길 장로, 나는 곧 세상을 떠날 것 같네. 그런데 내 아내는 그만한 능력이 없으니,
자네가 내 재산을 정리해, 내 아내에게 주면 좋겠네."
"나는 친구에게 말했습니다. '걱정하지 말게, 내 그렇게 하겠네'"
"그런데 나는, 그 친구의 재산을 정리하던 중,
미망인의 돈 100달러를 사취하고 말았습니다.
나는 성령하나님을 훼방했습니다. 큰 악을 행했습니다.
그 100달러를 내일 아침 미망인에게 돌려드리겠습니다."
길 장로의 얼굴은 눈물과 회개의 울부짖음으로 불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길선주 장로의 회개는,
마치 마른 장작더미에 불을 붙인 것처럼,
그곳에 모인 온 성도들의 회개로 이어졌습니다.
예배에 참석한 성도들은, 하나 둘 하나님과 성도들 앞에서,
자신들 안에 은밀하게 숨겨진 온갖 죄악들을 쏟아 내기 시작했습니다.
장로회 신학대학교 임희국 교수는,
당시 장대현 교회에 모인 성도들이 죄에 대해 고백한 내용을 이렇게 소개했습니다.
"이 때(1907년1월14일 저녁) 그들이 고백한 죄의 종류는 아주 다양하였다.
마음에 담겨 있던 죄(미움, 시기, 질투, 증오심, 앙심, 심술, 교만),
밖으로 드러난 악한 행위(거짓말, 눈속임, 사기행각, 술, 담배, 도박, 마약),
그리고 신앙인으로 삼가 해야 할 직업(주막집)과 첩살이,
형사처벌을 받을 죄(절도, 강도, 간통, 방화, 살인)까지,
그곳에 모인 성도들은 낱낱이 자신들의 죄를 고백하였다."
다음 날인 1907년1월15일, 마침내 두 주간의 집회는 막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회개의 자리는 이제 장대현교회에서 각자의 삶의 자리로 옮겨졌습니다.
집에 돌아간 성도들은 훔친 물건을 들고 주인에게로 갔고,
자신의 죄로 고통 당했던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사과하고 변상하기 시작했습니다.
1907년 평양에 모였던 성도들은,
성령의 강권적인 역사 앞에 한 홀의 죄악도 숨길 수 없었고,
모든 죄들을 완전히 회개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평양 대 부흥운동은 거룩한 회개운동이었습니다.
무엇을 얻으려고 합심해서 기도한 것이 아니라,
오직 회개의 기도를 합심하여 드리며,
하나님 앞에 앞다투어 죄를 고백했다는 것입니다.
평양 대 부흥이 있던 때로부터 40년 전 제네럴셔먼호 사건 때(1866),
대동강에서 성경을 가지고 온, 토마스 선교사의 목을 쳤던 박춘권이라는 사람이
그 사실을 자복(自服)하고 회개한 것도 바로 이때였다고 합니다.
당시 평양 및 온 한반도의 교회들에 회개의 불길이 퍼져나갈 때,
미궁에 빠졌던 사건들도 많이 해결됐다고 합니다.
장대현교회에서의 부흥을 체험하고, 또 전해들은 교회와 성도들은,
이제는 각각의 섬기는 교회에서도 합심 회개운동을 펼쳤습니다.
이에 경찰들이 교회에 성도로 가장하고 들어와,
자복하고 회개하는 성도들의 신상을 파악해 두었다가 예배 후 체포했다고 합니다.
또 그런 목적으로 예배당 안에 들어왔다가
회개하고 성도가 된 경찰들도 많이 있었다고 합니다.
한반도에서 일어난 평양 대 부흥은 합심 기도와 회개가 하나님의 은혜의 통로이며,
부흥의 길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증거한 것입니다.
여러분 ! 우리는 모두 죄인입니다.
매일 악을 행하고 살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요한은 우리에게 분명히 말합니다.
본문8-10절,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우리말성경,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자신을 속이는 것이며, 진리가 우리 안에 없습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죄를 자백하면, 하나님은 신실하고 의로우신 분이시므로,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해 주실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죄를 짓지 않았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있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
우리들이 이 일본의 부흥의 기폭제가 되기 위해,
무엇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합심기도와 회개입니다.
합심기도는 응답을 보장합니다.
우리 본향교회가 지금의 모든 난국을 딛고,
새로운 부흥의 역사를 향해 나아가기 위해서도,
무엇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합심하여 회개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들의 가정, 기업, 학교생활, 일본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삶이 부흥되고 새로워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성령의 충만한 역사가 있어야 하고,
성령의 역사는 회개를 통해 시작됩니다.
사도 베드로는 이렇게 외쳤습니다.
사도행전2:38-39,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끝으로 한 사람을 소개하면서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1907년 평양 대 부흥운동은, 합심하여 기도하고 합심하여 회개한
초대교회적인 성령운동이었습니다.
그런데 1907년 이 대 부흥의 불길은,
실은 1903년8월부터 1906년12월까지 있었던 원산 부흥운동에서
이미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1903년8월, 女선교사 Mary Culler White와 Louise Hoard McCully는
조선에 대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게 해 달라고,
두 사람이 마음을 합심하여 기도했습니다.
이 기도회 소식이 주변에 알려지면서
다른 선교사들도 하나 둘씩 기도회에 합류하기 시작했습니다.
모여진 선교사들은 1903년8월24일부터 30일까지
조선의 부흥을 위해 특별기도회를 가졌습니다.
이들은 이 기도회 가운데,
어떻게 하면 조선을 위해 더욱 효과적으로 기도할 수 있을까 하여,
당시 의료 선교사로 입국해 있던 하디(Robert A. Hardie) 선교사에게
세 번의 강의를 부탁하였습니다.
그런데
강의를 부탁 받은 하디는 강의를 준비하던 중, 하나님과의 놀라운 만남을 경험합니다.
하디는 명문 토론토대학, 의학부를 졸업하고 조선에 의료선교사로 입국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비록 의료선교사로 조선에 입국하기는 했지만,
실은 그 모든 것은 자신을 사람들 앞에 드러내기 위한 자랑에 불과했었습니다.
그의 마음에는 자신의 학력, 출신, 의사라는 직업에 대한 교만함,
영국시민이라는 백인 우월주의,
조선인에 대한 편견과 인종차별 등 교만과 죄가 가득하였습니다.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던 하디는,
1901년부터 원산과 강원도 통천 지방에서 3년 간 선교활동을 했지만
별 결실이 없었습니다. 그는 당시 심한 패배감에 빠져있었습니다.
바로 그 때, 원산의 선교사들로부터 강의를 부탁 받은 것입니다.
하디는 강의를 준비하던 중 자신의 교만함과, 강퍅함을 깨달았습니다.
결국 그는, 강의 당일 가득 모인 선교사들 앞에서 자신의 죄를 고백하였습니다.
이후에는 조선사람들 앞에서, 낱낱이 자신의 교만함과 가식됨을 고백했습니다.
하디가 철저히 회개하고 교만을 벗기 전 그의 모습은,
마음에 들지 않는 환자들을 기피하는, 또한 선별하여 환자를 치료하는,
교만하고 쌀쌀맞은 의사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당시 "차라리 아픈 것이 더 났지"하며,
병이 들어도 하디에게 치료받기를 거부했던 환자들은,
하디가 은혜를 받은 후, 자신들의 손만 만져도 병이 나았다고 증언하였습니다.
이러한 하디의 회개는, 당시 조선에 있던 많은 선교사들에게 충격을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선교사로 조선에 들어 왔지만,
그들 중에는 진실로 겸손히 조선인을 사랑하지 못한 선교사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디의 이러한 회개의 눈물은 그들의 가슴을 적셨고,
그들 또한 회개의 자리에 서게 되었습니다.
1906년8월26일부터 9월2일까지 평양에서 선교사경회가 개최되었습니다.
바로 3개월 후 세계 교회역사 상 가장 큰 부흥이 있던 바로 그곳이었습니다.
당시 강사는 하디였습니다.
그는 요한일서를 본문으로 다음과 같이 설교했습니다.
"인간이 자기의 힘과 노력으로 잘되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만심과 믿음의 부족에서 연유한 것입니다.
아무리 높은 이상과 꿈도, 영적인 힘이 없다면 수행하기 어렵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이러한 영적인 힘은 계속적인 기도로만 얻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우리의 체력이 날마다 음식물을 섭취함으로써 유지되는 것 같이,
우리의 영적인 강건함도 날마다 기도를 통해서만이 유지될 수 있습니다.
바로 그 때 우리의 목적은,
나를 위한 영광으로부터 하나님의 영광으로 그 초점이 바뀌어 질 것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이렇듯 한 사람의 온전한 회개는 교회를, 민족을 변화시킵니다.
이번 한 주간 우리들 속에 있는 깊은 죄악들이 하디 선교사와 같이,
길선주 장로와 같이 깨달아지는 주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죄를 자백하는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은혜가 임합니다.
용서의 은총이 임합니다.
성령 충만이 임합니다.
놀라운 부흥이 임합니다.
우리들 모두, 온전한 회개를 통해,
이 특별한 은혜를 누리게 되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하여, 이 땅 일본과 지금 우리들이 속한 곳에,
부흥의 대 불길이 일어나게 만드는 불소시게가 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
시험은 당신에게도, 나에게도, 우리 모두에게도 반드시 찾아옵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 가장 믿었던 사람들을 통해 오는 시험을 이겨내기가 가장 힘듭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와 인내로 어떤 시험도 이겨냅시다. 할렐루야 !
지금으로부터 105年 前인 1907년,
세계교회 역사상 가장 큰 부흥운동 중 하나인 '평양 대 부흥운동'이
당시 조선의 평양에서 일어났습니다.
그 부흥의 역사가 얼마나 컸던지,
'평양 대 부흥운동'은 18세기 중반 미국의 '대 각성운동',
같은 시기 영국 웨일즈 등에서 일어났던 '영국 웨일즈 대 부흥운동'과 더불어
세계교회 3대 부흥운동으로 명명되었습니다.
당시 평양에 있었던 조지 매큔 선교사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미국 북장로교 선교부 총무 브라운에게 다음과 같은 소식을 전했습니다.
"존경하는 브라운 박사님, 우리는 매우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성령께서 권능 가운데 임하셨습니다.
평양 장대현 교회에서 드린 지난 밤 예배는,
놀라운 성령의 권능과 임재의 현장이었습니다.
우리 중 누구도 지금까지 그와 같은 것을 경험해 보지 못했었으며,
우리가 웨일즈 등에서 일어난 부흥 운동에 대해서 읽었지만,
이번 평양 장대현 교회의 성령의 역사는
우리가 지금까지 읽었던 그 어떤 것도, 능가할 것입니다."
또한 당시 평양의 남산현 교회에서 성령의 역사를 직접 체험한 노블 선교사도
이렇게 당시 상황을 본국에 보고했습니다.
"한국(조선)교회에 내 자신이 지금까지 목격하지도 못했고, 듣지도 못했던
가장 놀라운 성령의 부어주심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사도시대 이후, 이보다 더 놀라운 하나님의 권능의 역사는 없었을 것입니다.
매 예배에서 주님의 권능이 교회전체와 교회 밖으로 임했습니다.
남녀노소가 회개하며 고꾸라졌고,
온 도시는 마치 사람들이 죽은 자를 위해 통곡하듯,
회개의 눈물과 통곡으로 가득했습니다."
이러한 선교사들의 보고를 통해 볼 때,
우리는 당시 '평양 대 부흥운동'이 얼마나 강력한 부흥운동이었는지를
충분히 느낄 수 있습니다.
더구나 '평양 대 부흥운동'은 당시 한국(조선)의 교회들은 물론,
한국(조선)사회 곳곳에도 놀라운 변화를 가져다주었습니다.
당시 소돔과 고모라의 도성으로 불렸던 평양은,
대 부흥 이후 동방의 예루살렘으로 불리기 시작했고,
대 부흥 이후 교파와 교단, 지역을 초월하여
한반도 전역에서 각각의 교회들이 놀랍게 성장하였으며,
복음전파가 급속하게 확산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대 부흥은 교육의 場에도 미쳐서
기독교학교가 곳곳에 설립되었으며,
금연, 금주, 우상숭배로부터의 해방, 여권신장, 윤리의식 증진,
진취적인 세계관 정립에 이르기까지 많은 변화를 가져다주었습니다.
특히 '평양 대 부흥운동'의 특징은,
개인의 각성이 교회의 각성으로, 교회의 각성이 사회와 민족의 각성으로
이어졌다는 데 있습니다.
한국교회와 사회는 1907년에 있었던, 이 대 부흥운동을 기점으로
세계 역사상 유래가 없는 놀라운 변화와 성장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저는 오늘 다음과 같은 간절한 소망을 가지고 이 말씀을 전합니다.
"105년 전 평양에 대 부흥의 복을 주신 하나님,
이 땅 일본에도 그와 같은 부흥을 허락해 주옵소서.
우리 본향교회와 본향의 성도들이 평양의 성도들처럼
일본 대 부흥의 기폭제가 되는 불소시게가 되게 하옵소서"
자 ! 그렇다면, 평양 대 부흥운동의 기폭제는 무엇이었을까요 ?
당시 '평양 대 부흥운동'이 일어나게 된 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1907년1월2일부터 15일까지 평안남도 전역에서 올라온 천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平安南道 道사경회가 열렸습니다.
평양시내의 일반성도들이 참석할 수 있는 예배는 1월6일 주일저녁예배부터였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사경회는,
첫날부터 성령의 은혜가 가득했고,
예배가 계속되면서 성령의 은혜는 학생들과 여성들을 통해 더욱 번져갔습니다.
1907년1월14일, 예정된 일정을 하루 남기고,
당시 사경회를 주도했던 선교사들과 교회의 지도자들은,
사경회가 성령으로 충만했지만,
이렇게 구체적인 열매 없이 끝나서는 안 된다는 것에 마음을 일치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1월14일 정오기도회에 모두가 함께 모여,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기도에 응답하셨습니다.
그 날 저녁, 헌트 선교사가 말씀을 전한 후
이길함(Graham Lee) 선교사가 나와 합심기도를 요청하자
성도들이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날의 합심기도는 이제까지와는 확연히 달랐습니다.
무엇보다도 엄청난 회개의 눈물이 온 예배당을 채웠습니다.
장대현교회에 모인 모든 성도들은 새벽2시까지 기도를 계속했고,
회개를 동반한 강력한 성령의 역사가 모인 모두에게 충만히 임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렇듯, 평양 대 부흥의 첫 기폭제는 합심기도였습니다.
사경회를 주도한 선교사들이 정오기도회 때 합심하여 기도했고,
또한 예배에 모인 모든 성도들이 합심하여 기도했습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자주 말씀드리는 것처럼, 합심기도는 성령충만을 보장합니다.
합심기도는 응답을 보장합니다.
합심기도는 교회가 능력을 가지게 합니다.
마태복음18:19-20,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また, はっきり言っておくが, どんな願い事であれ,
あなたがたのうち二人が地上で心を一つにして求めるなら,
わたしの天の父はそれをかなえてくださる.
二人または三人がわたしの名によって集まるところには,
わたしもその中にいるのである.)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는 지금 합심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대한민국과 일본 그리고 세계를 위해서 말입니다.
또한 교회를 위해, 섬기는 일터와 기업을 위해, 가정을 위해
그리고 본향에 속한 각 기관을 위해 합심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평양 대 부흥운동은, 모두가 합심하여 기도할 때 일어났습니다.
합심하여 기도함으로,
더욱 더 큰 부흥을 일으키게 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꼭 되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할렐루야 !
평양 대 부흥의 두 번째 기폭제는, 끝없이 이어지는 죄에 대한 고백이었습니다.
회개는 그들에게 성령의 충만함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1907년1월14일, 회개의 포문을 연 사람은 길선주장로였습니다.
그는 모두 앞에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는 아간과 같은 자입니다.
나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 모두를 축복하실 수 없었습니다.
약 1년 전 임종을 앞둔 제 친구가 나를 자신의 집에 불러 한 가지를 부탁했습니다."
"길 장로, 나는 곧 세상을 떠날 것 같네. 그런데 내 아내는 그만한 능력이 없으니,
자네가 내 재산을 정리해, 내 아내에게 주면 좋겠네."
"나는 친구에게 말했습니다. '걱정하지 말게, 내 그렇게 하겠네'"
"그런데 나는, 그 친구의 재산을 정리하던 중,
미망인의 돈 100달러를 사취하고 말았습니다.
나는 성령하나님을 훼방했습니다. 큰 악을 행했습니다.
그 100달러를 내일 아침 미망인에게 돌려드리겠습니다."
길 장로의 얼굴은 눈물과 회개의 울부짖음으로 불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길선주 장로의 회개는,
마치 마른 장작더미에 불을 붙인 것처럼,
그곳에 모인 온 성도들의 회개로 이어졌습니다.
예배에 참석한 성도들은, 하나 둘 하나님과 성도들 앞에서,
자신들 안에 은밀하게 숨겨진 온갖 죄악들을 쏟아 내기 시작했습니다.
장로회 신학대학교 임희국 교수는,
당시 장대현 교회에 모인 성도들이 죄에 대해 고백한 내용을 이렇게 소개했습니다.
"이 때(1907년1월14일 저녁) 그들이 고백한 죄의 종류는 아주 다양하였다.
마음에 담겨 있던 죄(미움, 시기, 질투, 증오심, 앙심, 심술, 교만),
밖으로 드러난 악한 행위(거짓말, 눈속임, 사기행각, 술, 담배, 도박, 마약),
그리고 신앙인으로 삼가 해야 할 직업(주막집)과 첩살이,
형사처벌을 받을 죄(절도, 강도, 간통, 방화, 살인)까지,
그곳에 모인 성도들은 낱낱이 자신들의 죄를 고백하였다."
다음 날인 1907년1월15일, 마침내 두 주간의 집회는 막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회개의 자리는 이제 장대현교회에서 각자의 삶의 자리로 옮겨졌습니다.
집에 돌아간 성도들은 훔친 물건을 들고 주인에게로 갔고,
자신의 죄로 고통 당했던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사과하고 변상하기 시작했습니다.
1907년 평양에 모였던 성도들은,
성령의 강권적인 역사 앞에 한 홀의 죄악도 숨길 수 없었고,
모든 죄들을 완전히 회개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평양 대 부흥운동은 거룩한 회개운동이었습니다.
무엇을 얻으려고 합심해서 기도한 것이 아니라,
오직 회개의 기도를 합심하여 드리며,
하나님 앞에 앞다투어 죄를 고백했다는 것입니다.
평양 대 부흥이 있던 때로부터 40년 전 제네럴셔먼호 사건 때(1866),
대동강에서 성경을 가지고 온, 토마스 선교사의 목을 쳤던 박춘권이라는 사람이
그 사실을 자복(自服)하고 회개한 것도 바로 이때였다고 합니다.
당시 평양 및 온 한반도의 교회들에 회개의 불길이 퍼져나갈 때,
미궁에 빠졌던 사건들도 많이 해결됐다고 합니다.
장대현교회에서의 부흥을 체험하고, 또 전해들은 교회와 성도들은,
이제는 각각의 섬기는 교회에서도 합심 회개운동을 펼쳤습니다.
이에 경찰들이 교회에 성도로 가장하고 들어와,
자복하고 회개하는 성도들의 신상을 파악해 두었다가 예배 후 체포했다고 합니다.
또 그런 목적으로 예배당 안에 들어왔다가
회개하고 성도가 된 경찰들도 많이 있었다고 합니다.
한반도에서 일어난 평양 대 부흥은 합심 기도와 회개가 하나님의 은혜의 통로이며,
부흥의 길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증거한 것입니다.
여러분 ! 우리는 모두 죄인입니다.
매일 악을 행하고 살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요한은 우리에게 분명히 말합니다.
본문8-10절,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우리말성경,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자신을 속이는 것이며, 진리가 우리 안에 없습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죄를 자백하면, 하나님은 신실하고 의로우신 분이시므로,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해 주실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죄를 짓지 않았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있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
우리들이 이 일본의 부흥의 기폭제가 되기 위해,
무엇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합심기도와 회개입니다.
합심기도는 응답을 보장합니다.
우리 본향교회가 지금의 모든 난국을 딛고,
새로운 부흥의 역사를 향해 나아가기 위해서도,
무엇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합심하여 회개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들의 가정, 기업, 학교생활, 일본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삶이 부흥되고 새로워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성령의 충만한 역사가 있어야 하고,
성령의 역사는 회개를 통해 시작됩니다.
사도 베드로는 이렇게 외쳤습니다.
사도행전2:38-39,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끝으로 한 사람을 소개하면서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1907년 평양 대 부흥운동은, 합심하여 기도하고 합심하여 회개한
초대교회적인 성령운동이었습니다.
그런데 1907년 이 대 부흥의 불길은,
실은 1903년8월부터 1906년12월까지 있었던 원산 부흥운동에서
이미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1903년8월, 女선교사 Mary Culler White와 Louise Hoard McCully는
조선에 대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게 해 달라고,
두 사람이 마음을 합심하여 기도했습니다.
이 기도회 소식이 주변에 알려지면서
다른 선교사들도 하나 둘씩 기도회에 합류하기 시작했습니다.
모여진 선교사들은 1903년8월24일부터 30일까지
조선의 부흥을 위해 특별기도회를 가졌습니다.
이들은 이 기도회 가운데,
어떻게 하면 조선을 위해 더욱 효과적으로 기도할 수 있을까 하여,
당시 의료 선교사로 입국해 있던 하디(Robert A. Hardie) 선교사에게
세 번의 강의를 부탁하였습니다.
그런데
강의를 부탁 받은 하디는 강의를 준비하던 중, 하나님과의 놀라운 만남을 경험합니다.
하디는 명문 토론토대학, 의학부를 졸업하고 조선에 의료선교사로 입국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비록 의료선교사로 조선에 입국하기는 했지만,
실은 그 모든 것은 자신을 사람들 앞에 드러내기 위한 자랑에 불과했었습니다.
그의 마음에는 자신의 학력, 출신, 의사라는 직업에 대한 교만함,
영국시민이라는 백인 우월주의,
조선인에 대한 편견과 인종차별 등 교만과 죄가 가득하였습니다.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던 하디는,
1901년부터 원산과 강원도 통천 지방에서 3년 간 선교활동을 했지만
별 결실이 없었습니다. 그는 당시 심한 패배감에 빠져있었습니다.
바로 그 때, 원산의 선교사들로부터 강의를 부탁 받은 것입니다.
하디는 강의를 준비하던 중 자신의 교만함과, 강퍅함을 깨달았습니다.
결국 그는, 강의 당일 가득 모인 선교사들 앞에서 자신의 죄를 고백하였습니다.
이후에는 조선사람들 앞에서, 낱낱이 자신의 교만함과 가식됨을 고백했습니다.
하디가 철저히 회개하고 교만을 벗기 전 그의 모습은,
마음에 들지 않는 환자들을 기피하는, 또한 선별하여 환자를 치료하는,
교만하고 쌀쌀맞은 의사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당시 "차라리 아픈 것이 더 났지"하며,
병이 들어도 하디에게 치료받기를 거부했던 환자들은,
하디가 은혜를 받은 후, 자신들의 손만 만져도 병이 나았다고 증언하였습니다.
이러한 하디의 회개는, 당시 조선에 있던 많은 선교사들에게 충격을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선교사로 조선에 들어 왔지만,
그들 중에는 진실로 겸손히 조선인을 사랑하지 못한 선교사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디의 이러한 회개의 눈물은 그들의 가슴을 적셨고,
그들 또한 회개의 자리에 서게 되었습니다.
1906년8월26일부터 9월2일까지 평양에서 선교사경회가 개최되었습니다.
바로 3개월 후 세계 교회역사 상 가장 큰 부흥이 있던 바로 그곳이었습니다.
당시 강사는 하디였습니다.
그는 요한일서를 본문으로 다음과 같이 설교했습니다.
"인간이 자기의 힘과 노력으로 잘되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만심과 믿음의 부족에서 연유한 것입니다.
아무리 높은 이상과 꿈도, 영적인 힘이 없다면 수행하기 어렵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이러한 영적인 힘은 계속적인 기도로만 얻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우리의 체력이 날마다 음식물을 섭취함으로써 유지되는 것 같이,
우리의 영적인 강건함도 날마다 기도를 통해서만이 유지될 수 있습니다.
바로 그 때 우리의 목적은,
나를 위한 영광으로부터 하나님의 영광으로 그 초점이 바뀌어 질 것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이렇듯 한 사람의 온전한 회개는 교회를, 민족을 변화시킵니다.
이번 한 주간 우리들 속에 있는 깊은 죄악들이 하디 선교사와 같이,
길선주 장로와 같이 깨달아지는 주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죄를 자백하는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은혜가 임합니다.
용서의 은총이 임합니다.
성령 충만이 임합니다.
놀라운 부흥이 임합니다.
우리들 모두, 온전한 회개를 통해,
이 특별한 은혜를 누리게 되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하여, 이 땅 일본과 지금 우리들이 속한 곳에,
부흥의 대 불길이 일어나게 만드는 불소시게가 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