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7월1일, 로마서14:7-9(아 아 ! 사명 !) > 主日説教原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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主日説教原稿

2012 2012년7월1일, 로마서14:7-9(아 아 ! 사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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投稿者 박성철
コメント 0件 照会 10,388回 日時 12-07-09 22:52

本文

  자 ! 옆에 계신 지체들과 함께 이렇게 고백해 봅시다.

  모든 인간들이 절대로 피할 수 없는 두 가지는, 죽음과 심판입니다.
  영원한 천국에서의 복된 삶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믿음을 가집시다.
  또한 썩을 것을 심지말고 영원한 것을 심는 삶을 삽시다.

  지난 몇 주 동안,
  저는 여러분들에게 지난 몇 년 동안 본향에서 전했던 말씀 중에
  특히 강조했던 말씀들을 정리하여 전했습니다.
  오늘은 그 마지막 시간으로,
  그동안 우리 본향의 성도들에게, 가장 힘주어 강조했던 한 가지를 전하려고 합니다.
  자 ! 무엇일까요 ?

  우리 본향교회의 홈페이지가 만들어진 이후로,
  지난 주 현재 총232편의 설교가 '본향말씀'의 '설교읽기'라는 곳에 실리게 되었습니다.
  그 설교를 대상으로 단어 검색을 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재미있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은 232편 중, 232편 전부에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사랑이란 단어는 232편 중 226편의 설교에 실려 있었으며,
  믿음은 172편의 설교에, 그리고 소망은 108편의 설교에 실려있었습니다.
  감사라는 말은 129편의 설교에,
  그리고 '성경'이란 단어는 174편의 설교에 등장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드리고자 하는 바로 그것은,
  232편 중 114편의 설교에 실려있었습니다.

  자 ! 여러분 ! 어떤 단어일까요 ?
  지난 4년 간의 주일 설교 중,
  최소한 2주에 한 번씩은 말씀드린 그 단어는 과연 무엇일까요 ?

  그렇습니다.
  그 단어는 바로 사명(使命)입니다.
  오늘은 그 사명에 대해 설교한 몇 년 전의 말씀을 바탕으로,
  다시 한 번 우리들의 사명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사명(使命)이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
  그렇습니다. 사명은 여러 면에 있어서 사랑(愛)과 매우 비슷합니다.

  참된 사랑은 무슨 불순한 의도나 목적을 가지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사랑하는 사람은 잊으려고 해도 좀처럼 잊혀지지 않습니다.
 '잊으려고 했더니 잊혀졌다' 그러면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헤어지고 나니까 시원했다' 그것 역시 사랑이 아닙니다.
  그런데, 사명도 이와 똑같습니다.
  불순한 의도가 없습니다. 또한 좀처럼 잊혀지지도 않습니다.
  그 사명에서, 손(手)과 마음을 완전히 놓기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명은 어떤 방해나 난관이 있어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붙잡고 나갑니다.
  마치 진정한 사랑이 그런 것처럼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여러분들은 지금 이런 사명을 가지고 계십니까 ?

  분명한 사실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에서 그 사명을 빨리 깨닫는 것은, 사실 너무 중요합니다.

  2001년 봄, 본향교회가 세워진 후, 세 번째 맞는 봄이었습니다.
  1998년 교회가 세워질 당시, 3년 정도가 지나면 교회가 어느 정도 성장되어,
  여러 부분에서 힘찬 선교사역을 감당할 수 있기를 기대했지만,
  세 번째 봄을 맞는 그때에도 어려움은 여전했습니다.
  매주일 간절한 마음으로 예배를 드렸지만, 성도들의 삶은 힘듦의 연속이었고,
  무엇보다도 기대했던 두 명의 권사님들은 실망만을 주었습니다.

  2001년2월, 본향 역사상 최초로 두 명의 권사님이 취임했었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한 분은 빚을 해결하기 위해
  본향을 떠나 먼 시골로 가고 말았습니다. 본향의 권사로서 헌신을 다짐했건만 .......
  그리고 또 한 분도 헌신의 기간을 1년도 채우지 못하고 귀국하고 말았습니다.
  참으로 속상하고, 허전하고, 또 허탈할 수가 없었습니다.

  바로 그런 시점에, 한국에서 전화 한 통이 걸려 왔습니다.
  신학교 때의 스승 목사님으로부터의 전화였습니다.
  경기도에 있는 교단 소속 교회 목사님이 갑자기 所天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더구나 지금 그 후임자를 찾고 있는데, 교단 어른들이 저를 추천했다는 것입니다.
  거의 확실한 것이니, 제 대답을 원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소천하신 목사님은 저도 잘 아는 목사님이었고,
  또 몇 번 방문했던 교회였기에 갑자기 소천(所天)하셨다는 소식은 큰 충격이었습니다.

  더구나 갑작스러운 사역지 변경에 대한 권고는 저를 깊은 고민에 빠뜨렸습니다.
  왜냐하면, 일본에 처음 오게 된 것도 교단 어른들의 강한 권고 때문이었고,
  이제 그들이 돌아오라고 권하는 상황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당시의 모든 상황과 조건으로 볼 때,
  분명 한국으로의 귀환은 저와 가족에게는 많은 좋은 점도 있었던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그렇게 그 일은 진행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전화를 받은 그 날 밤, 그리고 다음 날 밤, 결코 쉽게 잠들지 못했습니다.
  본향지체들의 얼굴이 하나 하나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때만 해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 어느 곳에서든 무슨 헌신을 하고 있다고 한다면,
  그것이 바로 제 사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어느 곳에서든지 하나님의 일을 위해 충성하고 있다면,
  그것은 사명에 충실하고 있는 것이다'라는 것이 제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결코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고민의 날들을 몇 일을 보내면서 분명히 깨달은 것은,
  당시 저에게는 일본이 사명이었고, 이 본향교회가 사명이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본향에 속한 영혼들을 섬기는 것이 제 사명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당시 하나님은 그 사실을 저에게 깊이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저는 여러분 가운데도 저와 같은 경험을 가진 분들이 있는 것을 압니다.
  여러분 어떻던가요 ? 너무나 가슴아프시지 않던가요 !

  무슨 일이 있어도,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어떤 좋은 조건으로 유혹해도,
  절대 놓을 수 없는 그 특별한 사명은, 우리의 가슴을 저리게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명은 비단 교회를 향한, 그리고 한 사람을 향한 것뿐만이 아닙니다.
  한 민족을 향한 것일 수도 있고, 한 모임을 향한 것일 수도 있으며,
  한 기업을 향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죄에 빠져 죽어 가는 우리들을 보실 때 가슴이 저리셨습니다.
  죠지 뮬러는 고아들을 볼 때 가슴이 저렸습니다.
  아브라함 링컨은 노예들을 볼 때 가슴이 저렸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한센병자들을 볼 때 가슴이 저렸습니다.
  다윗은 성전을 생각하면 가슴이 저렸습니다.

  왜 ! 이분들이 그러한 것들을 보면 가슴이 저려왔습니까 ?
  물론입니다. 바로 그것이 그들의 평생을 지고 가야 할 사명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그것을 바라보면, 가슴이 미어지고 또 애절해지는 그런 사명을
  이제는 가지시기를 간절히 부탁합니다.

  그런데, 어떤 한 사람에게 사명을 빨리 깨닫게 하려면 그 주변 사람들이
  좀 방해를 해 줄 필요가 있습니다.
  무슨 이야기인가 하면 이렇습니다.

  어느 교회에서 있었던 일을 소개하겠습니다.
  그 교회에 한 형제가 있었습니다.
  누가 보더라도 목회자로는 어울리지 않는데, 갑자기 신학교를 가겠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어릴 때 자기 어머니가 서원을 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자기는 누가 뭐라 해도 목사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예배를 잘 빠지는 것은 물론이고,
  그 형제가 있는 곳엔 언제나 분열이 있고 갈등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지체들이 그에게 강한 충고를 했습니다.

 "당신은 신학교 가면 금방 제적당할 겁니다.
  더구나 신학교를 졸업한다 해도 당신 같은 사람을 누가 전도사로 초청하겠습니까 ?
  당신이 만약 목사님이라면 당신 같은 사람을 복음의 동역자로 부르겠습니까 ?"

  결국 그 형제는 신학교에 가지 않았고, 얼마 후 생맥주 집에 취직했습니다.
  여러분 목회자가 되는 것이 이 형제의 참 사명이었습니까 ?
  아니지요. 이런 것은 사명이 아닙니다.
  조그만 엄포와 회유에도 설득 당하면 그것은 사명이 아닙니다.
  진짜 사명이면 어떠한 방해가 있어도 다 뚫고 나가는 법입니다.
  여러분들, 바로 이러한 사명을 가지고 사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
  세상을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이러한 특별한 사명이 있을까요 ?
  또한 그 사명을 감당하며 살고 있을까요 ?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사명을 가지고 사명을 위해 사는 사람은 사실 많지 않습니다.
  오히려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살아갑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걱정하며 살아갑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사단은 우리로 하여금 평생동안 생존에만 매달려 살도록 유혹합니다.
  먹는 것, 입는 것, 좋은 집, 건강, 행복 등등에만 마음을 두게 합니다.
  그래서 삶의 대부분을 그것 (즉 사는 것)만을 생각하며 살게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
  우리가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생존에 관한 것은, 하나님이 책임져 주신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6:26, "공중의 새를 보라 .......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마태복음6:28,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렇습니다. 우리들의 생존은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십니다.
  먹고, 살고, 죽는 것은 하나님의 영역이지 우리가 책임져야 할 부분이 아닙니다.
  귀하신 여러분 ! 이 사실을 꼭 믿으시기 바랍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들이 사명의 사람이 되기 위한 첫 번째 관문입니다.

  자 ! 옆의 지체들에게 이렇게 권면합시다.
 "먹는 것, 입는 것, 좋은 집, 건강, 행복 등에만 마음을 두고 사는 것은,
  가장 낮은 수준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당신의 생사화복(生死禍福)은 하나님이 책임지십니다."

  여러분 ! 지금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들은, 대부분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귀한 것일수록, 아무 수고도 안 하고 공짜로 받은 것이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공짜로 받은 것이, 우리가 수고해서 얻은 것보다 백 배 천 배 더 낫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치아(齒牙)는 아무리 금이나 임플란트로 해도
  원래 하나님이 주신 이(齒)보다 좋지 않습니다.
  돈을 주고 산 의수(義手)나 의족(義足)보다
  공짜로 주신 우리들의 손발이 훨씬 더 좋습니다.

  제 눈의 수정체는 양쪽모두가 인공수정체입니다.
  약20년 전, 눈이 보이지 않아 수술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가장 불편한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
  첫째는 눈부심이고, 둘째는 조리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눈이 건강한 분들이 참 부럽습니다.

  여러분 ! 공짜로 얻은 목숨, 공짜로 얻은 건강, 공짜로 얻은 몸, 공짜로 얻은 공기,
  이런 것들이 돈을 주고 산 것보다 훨씬 더 귀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반드시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참으로 좋은 것들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신 것이지,
  결코 우리의 노력과 물질로 얻어 낸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러므로, 더 좋은 것을 가지겠다고 허탄한 곳에 힘쓰는 인생을 살지 말고,
  이제는 사명을 위해 삽시다.

  누가복음12장에는, 한 어리석은 부자가 나타납니다.
  부자는 자신의 삶이, 자기의 손에 달린 줄 알고 열심히 부(富)를 쌓았습니다.
  얼마나 쌓아뒀는지 더 이상 쌓을 곳이 없게 되었습니다.
  이에 만족한 부자는 자기 자신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누가복음12:19, "내 영혼아 !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여러분, 이때 하나님께서 이 부자를 향해 어떻게 말씀하신 지 아십니까 ?
  예 !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12:20, "어리석은 자여 ! 오늘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여러분 ! 기억하십시오.
  생존은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우리들이 예수님을 온전히 믿는다는 것은, 먹고 자고 입고 누리는 것을 뛰어 넘어,
  사명을 위해 살아가는 것입니다.

  자 ! 그렇다면 사명이란 무엇일까요 ?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16:24,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그렇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좇아가는 것이 사명입니다.

  여러분 ! 무엇이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삶입니까 ?
  그렇습니다.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뜻을 위해, 하나님이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사는 것이
  바로 십자가를 지는 삶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과 다른 사람을 위해, 헌신의 삶을 사는 것이 곧 사명'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자기를 위해 살면 거기엔 절대로 만족이 없습니다.
  그것은 가장 불행한 인생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면, 거기엔 참된 만족이 있게 됩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이렇게 고백합니다.
  고린도후서12:15, "내가 너희 영혼을 위하여 크게 기뻐함으로
  재물을 허비하고 또 내 자신까지 허비하리니"

  사랑하는 여러분 !
  바울처럼, 지금 자신의 재물을 허비하고, 자신까지 허비하면서
  감당하고 계신 사명이 있습니까 ?
  그렇게 감당하고 계신 분들, 하늘 면류관을 소망하기 바랍니다.
  만약 그런 사명이 없습니까 ? 속히 찾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로마의 성도들에게 이렇게 고백합니다.
  본문7-8절,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

  여러분 ! 이 얼마나 놀라운 고백입니까 ?
  이 얼마나 힘찬 외침입니까 ?
  우리도 함께 고백해 봅시다.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

  여러분 ! 그냥 뛰기만 하면 되는 인생은 아무 의미 없는 인생입니다.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운동장을 뛰라고 시켰습니다.
  해서 학생들이 뛰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좀 뛰다가 똑똑한 학생 하나가 선생님에게 와서 묻습니다.
 "선생님 ! 왜 우리가 뛰어야 하지요 ?"
  그러자 선생님이 "기왕 뛰는 것 남들보다는 앞장서야 되지 않겠니 ?
  그러니 힘껏 뛰어"라고 말합니다.

  학생은 다시 뛰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한참 뛰다 보니까 또 의아한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다시 선생님에게 묻습니다. "우리가 언제까지 뛰어야 하지요 ?"
  그러자 선생님 이렇게 대답합니다. "물론, 죽을 때까지지 !"

  그렇습니다.
  많은 신앙인들이, 그리고 사람들이 이런 무의미한 인생을 삽니다.
  남보다 앞서기 위해서 뛰고, 뛰고 또 뛰는데, 왜 뛰는지 그 이유를 자신도 모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그냥 열심히 사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무엇을 위해 열심히 사느냐, 그것이 중요합니다.

  '죽음의 수용소'라는 책을 쓴 빅터 프랭클은 이런 말을 합니다.
 "존재의 목적과 의미를 모를수록, 사람은 가속(加速)을 한다"
  정말 그렇습니다.
  우리들 주위에 별 의미 없이 그저 바쁘기만 하는 사람들을 보십시오.
  생각이 없고 헌신의 대상이 누군지 모르니까 엄청나게 바쁘기는 한데,
  사실은 아무 내용이 없습니다.
  영원한 나라에 필요한 것들은 아무 것도 준비하지 못합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들의 삶을, 사명을 중심으로 해서, 깔끔하게 정리해 봅시다.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셰익스피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명을 가지지 못한 사람은, 무대에서 잠시 거들먹거리다가 퇴장하는 배우와 같다."
  그렇습니다. 시시한 인생, 별 볼일 없는 인생이 되고 맙니다.
  그러나 사명을 깨닫고, 그 사명을 감당키 위해 사는 인생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인생, 많은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주는,
  거인의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 생존을 위해 살지 말고, 사명을 위해 삽시다.
  우리의 먹고사는 문제는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십니다.
  나에게 주신 십자가를 온전히 깨달아, 그 십자가를 지는 사명의 삶을 삽시다.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 영혼을 섬기기 위해, 나의 가장 귀한 것들을 내려놓읍시다.
  필요 없이 바쁘게 살지 말고, 정리된 삶을 통해 능력이 넘치는 삶을 삽시다.

  그리하여 이 어둡고 힘든 시대에, 지쳐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용기와 소망을 주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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