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2012년6월10일, 사도행전1:12-26(모든 사람의 마음을, 전부 아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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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 옆에 계신 지체들과 함께 이렇게 고백해 봅시다.
지금 혹 위기에 처해있습니까 ? 그렇다면,
금식하며 예배당에 나아와,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여 기도합시다.
유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하여,
하나님께서 특별히 주목하셨던 야하시엘과 같이,
우리가 속한 곳의 응답의 통로 됩시다.
저는 저 자신을 잘 알지도 보지도 못합니다.
제 눈에 빠진 저의 눈썹도 스스로 뺄 수 없을 정도입니다.
보이지 않는 속은 또 어떻고요 !?
그런데 가끔은 착각에 빠집니다.
나를 내가 가장 잘 안다고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여러분은 자기 자신을 얼마나 잘 아십니까 ?
우리는 누구보다도 내가 나 자신을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의외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잘 못 볼 수 있습니다.
오히려 가족 중의 하나가 나를 더 잘 볼 수 있고,
아니면 가장 가까운 친구가 나를 더 잘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해도 우리를 가장 잘 알고, 우리를 가장 바르게 보고,
우리의 마음을 가장 잘 아는 분은 따로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본문은 사도행전의 초대 교회가 시작된 마가의 다락방입니다.
지금 마가의 다락방에는 열 한 명의 사도들을 포함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승천을 목격한 120명의 성도들이 모여 있습니다.
이들은 지금, 악한 무리들에게 예수님을 팔아 넘기고, 끝내는 죽음의 길을 간
가룟 유다를 대신할, 사도를 세우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우선 이들은, 사도로 세워질 사람의 자격을 정했습니다.
본문21-22절, "요한의 세례로부터 우리 가운데서 올리 워 가신 날까지,
주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출입하실 때에,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
(主イエスがわたしたちと共に生活されていた間, つまり,
ヨハネの洗禮のときから始まって, わたしたちを離れて天に上げられた日まで,
いつも一緖にいた者の中からだれか一人)
그렇습니다.
새롭게 사도가 될 사람의 자격은, 예수님이 세례를 받을 때부터 승천하실 때까지
3년 간, 줄곧 예수님과 함께 해야했습니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3년 간 함께 했던 사람 중에 두 사람을 추천했습니다.
추천 받은 두 사람의 이름은 요셉과 맛디아였습니다.
자 ! 그렇다면 여러분 !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120명의 성도들은, 과연 어떤 방법으로
추천 받은 두 사람 중 한 사람을, 사도로 세웠을까요 ?
그렇습니다. 제비뽑기였습니다.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제비뽑기가 우연(偶然)이라고 생각하십니까 ?
아니면,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시는 결과라고 생각하십니까 ?
사실, 제비뽑기는 구약시대 및 특별한 경우에
하나님의 뜻을 묻는 한 가지 방법 중 하나였습니다.
예를 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땅을 제비뽑아 분배했습니다.
또한, 제물을 드릴 때도 제비뽑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잠언에는 이러한 말씀이 있습니다.
잠언16:33, "사람이 제비는 뽑으나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
그렇기 때문에 오늘 본문에 모인 성도들도,
제비뽑기를 통해서 한 사람을 사도로 결정하고자 한 것입니다.
자 ! 그렇다면, 여러분 !
오늘날에도 이 제비뽑기가,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는,
중요한 계시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을까요 ?
한 번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주일에 예배를 드리러 가야 할까 아니면, 일하러 가야 할까'를 제비 뽑아 결정한다,
이것이 옳습니까 ? 아니면 옳지 않습니까 ?
'서울에 살아야 할까 아니면, 동경에 살아야 할까'를 제비 뽑아 결정한다.
이것 또한 옳습니까 ? 아니면 옳지 않습니까 ?
그렇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뜻을 묻는 다는 것은, 말도 안 됩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제비뽑기 제도가 모든 세대에 걸쳐 적용될 수 있는 하나님의 계시 방법은
절대로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제사장의 흉패, 혹은 우림과 둠밈, 혹은 꿈처럼,
어느 한 시대에 제한적으로 제비뽑기를 계시의 방편으로 사용하신 것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이 선지자를 통해서 전달되던 선지자 시대에는,
제비뽑기가 사용된 적이 없고,
사도 시대에 와서도 (오늘 본문에서) 딱 한 번 사용되었을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하나님의 분명한 뜻이 기록된 성경을 가진 우리들에게는,
제비뽑기가 아닌, 성경 말씀이 하나님의 뜻인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알 수 있습니다.
자 !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120명의 성도들은,
성경 역사 속에서 마지막 등장하는 제비뽑기로
요한과 맛디아 중 한 사람을 사도로 뽑습니다.
자 ! 이들은 제비를 뽑기 전에, 우선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합니다.
본문24-25절, "뭇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여 !
이 두 사람 중에 누가 주의 택하신 바 되어,
봉사와 및 사도의 직무를 대신 할 자를 보이시옵소서,
유다는 이를 버리옵고 제 곳으로 갔나이다"
여기에서 특히 중요한 것은, "뭇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여"입니다.
물론, 여기에서 뭇 사람이란 '모든 사람'을 뜻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십니다.
그런데 사람들 중에는,
하나님이 창조주임을 믿는다 하면서도,
그 하나님께서 자기의 온 마음을 아신 다는 것을 믿지 못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서 나를 가장 정확하게, 가장 세밀하게,
가장 구체적으로 아신다는 것을 믿기 전까지,
사실은 하나님께서 나의 창조주 되심을 믿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진정으로 하나님이 나의 창조주 되심을 믿는다면,
그 믿음은 하나님께서 나를 가장 잘 알고 계신다는 믿음으로까지
이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 ! 그렇다면 여러분,
오늘 본문의 초대교회 성도들은,
왜 "모든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여"하며 기도하면서 제비뽑기를 했을까요 ?
자 ! 지금부터 우리들은, 온늘 본문에서
사도의 재목으로 추천된 두 사람의 입장이 되어봅시다.
즉, 요셉과 맛디아 말입니다.
이들은 지난3년 간, 예수님과 함께 했던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눈물, 예수님의 웃음, 예수님의 말씀, 예수님의 고통을 함께 지켜보고,
함께 나누었던 바로 그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제비를 뽑아 한 사람은 뽑혔고, 한 사람은 탈락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탈락한 요셉의 입장이 되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과연 어떤 마음이었겠습니까 ?
먼저 기도드릴 때, "내 마음을 아시는 주여 !" 그렇게 고백을 했는데,
그 고백대로 응답이 되었다고 믿을 수 있겠습니까 ?
여기에 대해 우리는 쉽게 이렇다 저렇다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오늘 제비뽑기에서 탈락한 요셉은,
제 갈 길로 가 버린 가룟 유다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 역시 지난3년 간, 예수님과 함께 했고, 끝까지 예수님을 따른 분으로서,
사도로 선출되기에 조금도 손색이 없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요셉은 선출 받지 못했을까요 ?
몇 해 전, 설교시간을 통해 한 번 소개한 분이 있는데,
그 이름은 캠벨 몰간(Campbell Morgan, 1863-1945)입니다.
이 분은 목사님으로서 20세기 상반기에 '강해설교의 제왕'으로 평가받은
설교의 거장(巨匠)입니다.
이 캠벨 몰간 목사님이 쓴 여러 작품 중에,
[이미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주님이 너에게 말씀하신다]라는 책이 있습니다.
몰간 목사님은 이 책에서 다음과 같은 주장을 말합니다.
"예수님이 복음 사역을 감당하시던 중 특히 중요한 상황이 있을 때
(예를 들면, 야이로의 딸을 살리실 때, 변화산에서 당신의 변한 모습을 보이실 때,
혹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최후의 기도를 드리실 때)는
언제나 베드로, 야고보, 요한 세 제자를 대동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세 제자를 일컬어 'Big 3'라고 부릅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바탕으로,
이 세 사람이 제자들 중 가장 뛰어났기 때문이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유독 베드로, 야고보, 요한 세 제자에게 특별한 관심을 보이셨던 것은,
그들이 제자들 중 가장 뛰어나서가 아니라,
오히려 다른 제자들보다 연약한 자들임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그들을 그렇게 해 주시지 않으셨다면,
그들은 사단의 유혹에 앞장서 넘어지고 말았을 것입니다."
캠벨 몰간의 이 주장이 상당한 설득력을 갖는 것은,
그 세 제자의 평소 모습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베드로는 성미가 급해 매사가 실수 투성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그토록 고통 당하실 때, 자신의 약속과 달리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부인하고 저주했던 비겁한 인간이었습니다.
또 요한과 야고보 형제는 어떠했습니까 ?
자기들의 반대자들이 나타나자 '하늘에서 떨어지는 불로 확 태워버리자' 그럽니다.
엄청나게 과격하고 엉뚱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어머니는 예수님이 세상 권력을 장악하시는 줄 알고,
예수님께 자기 아들들을 중용해 줄 것을 청탁했습니다.
매우 세속적이었습니다.
게다가 그 세 제자는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처절하게 기도를 드리시는 동안,
함께 기도하자고 그토록 부탁을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잠에 골아 떨어졌을 만큼 한심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오늘의 본문을 캠벨 몰간 목사님의 관점에서 본다면,
선택된 맛디아 보다 탈락한 요셉이 더 굳건한 신앙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요셉은 제비뽑기에서 탈락해, 사도라는 명예를 얻지 못해도,
일평생 평신도로 살아가기에 부족함이 없는 분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맛디아는 탈락되는 것을 받아들이기에는,
그의 심성이 너무나 연약한 것을 아셨기에, 주님은 그를 사도로 선택하셨을 것입니다.
이후로 두 사람 다 성경에서 그들의 이름이 다시는 언급되고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 두 사람 모두 사도로서, 또는 평신도로서
그들의 삶을 훌륭하게 살아갔음을 반증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세상에 계실 때 어떤 삶을 사셨습니까 ?
그렇습니다.
그 분은 언제나 낮은 곳을 향해 가셨습니다.
약자와 병자와 그리고 죄인과 억눌린 자를 향해 가셨습니다.
연약한 자를 더 불쌍히 여기셔서 그들의 마음을 위로해 주셨습니다.
모든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님의 마음은, 그렇게 항상 낮은 데로 흘러가셨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고린도전서12:23, "우리가 몸의 덜 귀히 여기는 그것들을 더욱 귀한 것들로 입혀 주며
우리의 아름답지 못한 지체는 더욱 아름다운 것을 얻고"
사랑하는 여러분 !
오늘 저와 여러분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여러분은 성도로서 앉아 계시고, 저는 목사로서 이렇게 서 있습니다.
저보다 저를 더 잘 아시는 우리 하나님께서는,
제가 그나마 목사가 아니고 여러분처럼 일반 성도였다면,
구원받기도 어려운 사람이 되고 말 것이라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나마 목사가 되었으니,
성경도 읽고, 기도도 하고, 주일도 지키고 하게 된 것입니다.
그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저는, 주님이 저를 아시는 것만큼은 아니지만, 저 자신을 잘 압니다.
점점 저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고 악한 존재라는 것을 느낍니다.
지금 당장에라도, 이 무거운 짐을 벗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생길 적도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상황에 있든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기에 부족함이 없는 분들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여러분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신뢰할만한 귀한 그릇인 것입니다.
귀하신 여러분 !
자부심과 자긍심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 속에 있는 그 거룩한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세 주간만 지나면, 2012년도 절반이 지나갑니다.
그런데도 지금 이 순간까지도,
작년부터 끌어오는 해결되지 못한 일들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분이 있습니다.
또한 우리들 가운데는,
아무도 알지 못하는 시련과 주체할 수 없는 슬픔을 가지고 계신 분도 있습니다.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지 않아, 아직도 괴로움 속에서 살아가시는 분도 있습니다.
겉 얼굴은 웃고 있지만, 마음 깊은 곳은 온통 아픔으로 얼룩져서,
상처투성이인 분도 우리 가운데는 있습니다.
비록 입으로는 주님을 찬양하지만,
다른 마음의 하늘에서는 끊임없이 비가 내리고 있는 분도 있습니다.
옆을 봐도 괴롭고, 위를 봐도 답답하고,
더구나 자기 안을 들여다보면 죄와 추한 것들뿐이고,
과거는 후회 뿐이요, 미래는 안개처럼 불확실하여 항상 불안한 분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이러한 우리의 마음을 모두 아십니다.
그리고 그 분은 결코 우리를 이대로 그냥 내버려두시는 매정한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알고 계십니다.
우리가 이 과정을 겪음으로서만
비로소, 신실하고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 하나님은 나 보다 더 나를 잘 아시는 주님이십니다.
또한 우리 하나님은 나 보다 더 나를 사랑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제가 얼마나 연약한지, 그리고 여러분들이 얼마나 사랑스러운 그리스도인인지
너무나 잘 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 !
답답해하지 마십시오. 실망해 하지 마십시오.
모든 것은 머지 않아 아름다운 열매들로 드러날 것입니다.
여러분을 너무나 잘 아시는 하나님은,
가장 귀한 것들을 여러분들을 위해 넉넉히 준비해 놓고 계십니다.
현재의 고난을 이겨내고,
자기를 위해 준비된 하늘과 땅의 은총을 얻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할렐루야 !
지금 혹 위기에 처해있습니까 ? 그렇다면,
금식하며 예배당에 나아와,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여 기도합시다.
유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하여,
하나님께서 특별히 주목하셨던 야하시엘과 같이,
우리가 속한 곳의 응답의 통로 됩시다.
저는 저 자신을 잘 알지도 보지도 못합니다.
제 눈에 빠진 저의 눈썹도 스스로 뺄 수 없을 정도입니다.
보이지 않는 속은 또 어떻고요 !?
그런데 가끔은 착각에 빠집니다.
나를 내가 가장 잘 안다고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여러분은 자기 자신을 얼마나 잘 아십니까 ?
우리는 누구보다도 내가 나 자신을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의외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잘 못 볼 수 있습니다.
오히려 가족 중의 하나가 나를 더 잘 볼 수 있고,
아니면 가장 가까운 친구가 나를 더 잘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해도 우리를 가장 잘 알고, 우리를 가장 바르게 보고,
우리의 마음을 가장 잘 아는 분은 따로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본문은 사도행전의 초대 교회가 시작된 마가의 다락방입니다.
지금 마가의 다락방에는 열 한 명의 사도들을 포함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승천을 목격한 120명의 성도들이 모여 있습니다.
이들은 지금, 악한 무리들에게 예수님을 팔아 넘기고, 끝내는 죽음의 길을 간
가룟 유다를 대신할, 사도를 세우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우선 이들은, 사도로 세워질 사람의 자격을 정했습니다.
본문21-22절, "요한의 세례로부터 우리 가운데서 올리 워 가신 날까지,
주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출입하실 때에,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
(主イエスがわたしたちと共に生活されていた間, つまり,
ヨハネの洗禮のときから始まって, わたしたちを離れて天に上げられた日まで,
いつも一緖にいた者の中からだれか一人)
그렇습니다.
새롭게 사도가 될 사람의 자격은, 예수님이 세례를 받을 때부터 승천하실 때까지
3년 간, 줄곧 예수님과 함께 해야했습니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3년 간 함께 했던 사람 중에 두 사람을 추천했습니다.
추천 받은 두 사람의 이름은 요셉과 맛디아였습니다.
자 ! 그렇다면 여러분 !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120명의 성도들은, 과연 어떤 방법으로
추천 받은 두 사람 중 한 사람을, 사도로 세웠을까요 ?
그렇습니다. 제비뽑기였습니다.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제비뽑기가 우연(偶然)이라고 생각하십니까 ?
아니면,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시는 결과라고 생각하십니까 ?
사실, 제비뽑기는 구약시대 및 특별한 경우에
하나님의 뜻을 묻는 한 가지 방법 중 하나였습니다.
예를 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땅을 제비뽑아 분배했습니다.
또한, 제물을 드릴 때도 제비뽑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잠언에는 이러한 말씀이 있습니다.
잠언16:33, "사람이 제비는 뽑으나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
그렇기 때문에 오늘 본문에 모인 성도들도,
제비뽑기를 통해서 한 사람을 사도로 결정하고자 한 것입니다.
자 ! 그렇다면, 여러분 !
오늘날에도 이 제비뽑기가,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는,
중요한 계시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을까요 ?
한 번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주일에 예배를 드리러 가야 할까 아니면, 일하러 가야 할까'를 제비 뽑아 결정한다,
이것이 옳습니까 ? 아니면 옳지 않습니까 ?
'서울에 살아야 할까 아니면, 동경에 살아야 할까'를 제비 뽑아 결정한다.
이것 또한 옳습니까 ? 아니면 옳지 않습니까 ?
그렇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뜻을 묻는 다는 것은, 말도 안 됩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제비뽑기 제도가 모든 세대에 걸쳐 적용될 수 있는 하나님의 계시 방법은
절대로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제사장의 흉패, 혹은 우림과 둠밈, 혹은 꿈처럼,
어느 한 시대에 제한적으로 제비뽑기를 계시의 방편으로 사용하신 것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이 선지자를 통해서 전달되던 선지자 시대에는,
제비뽑기가 사용된 적이 없고,
사도 시대에 와서도 (오늘 본문에서) 딱 한 번 사용되었을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하나님의 분명한 뜻이 기록된 성경을 가진 우리들에게는,
제비뽑기가 아닌, 성경 말씀이 하나님의 뜻인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알 수 있습니다.
자 !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120명의 성도들은,
성경 역사 속에서 마지막 등장하는 제비뽑기로
요한과 맛디아 중 한 사람을 사도로 뽑습니다.
자 ! 이들은 제비를 뽑기 전에, 우선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합니다.
본문24-25절, "뭇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여 !
이 두 사람 중에 누가 주의 택하신 바 되어,
봉사와 및 사도의 직무를 대신 할 자를 보이시옵소서,
유다는 이를 버리옵고 제 곳으로 갔나이다"
여기에서 특히 중요한 것은, "뭇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여"입니다.
물론, 여기에서 뭇 사람이란 '모든 사람'을 뜻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십니다.
그런데 사람들 중에는,
하나님이 창조주임을 믿는다 하면서도,
그 하나님께서 자기의 온 마음을 아신 다는 것을 믿지 못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서 나를 가장 정확하게, 가장 세밀하게,
가장 구체적으로 아신다는 것을 믿기 전까지,
사실은 하나님께서 나의 창조주 되심을 믿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진정으로 하나님이 나의 창조주 되심을 믿는다면,
그 믿음은 하나님께서 나를 가장 잘 알고 계신다는 믿음으로까지
이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 ! 그렇다면 여러분,
오늘 본문의 초대교회 성도들은,
왜 "모든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여"하며 기도하면서 제비뽑기를 했을까요 ?
자 ! 지금부터 우리들은, 온늘 본문에서
사도의 재목으로 추천된 두 사람의 입장이 되어봅시다.
즉, 요셉과 맛디아 말입니다.
이들은 지난3년 간, 예수님과 함께 했던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눈물, 예수님의 웃음, 예수님의 말씀, 예수님의 고통을 함께 지켜보고,
함께 나누었던 바로 그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제비를 뽑아 한 사람은 뽑혔고, 한 사람은 탈락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탈락한 요셉의 입장이 되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과연 어떤 마음이었겠습니까 ?
먼저 기도드릴 때, "내 마음을 아시는 주여 !" 그렇게 고백을 했는데,
그 고백대로 응답이 되었다고 믿을 수 있겠습니까 ?
여기에 대해 우리는 쉽게 이렇다 저렇다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오늘 제비뽑기에서 탈락한 요셉은,
제 갈 길로 가 버린 가룟 유다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 역시 지난3년 간, 예수님과 함께 했고, 끝까지 예수님을 따른 분으로서,
사도로 선출되기에 조금도 손색이 없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요셉은 선출 받지 못했을까요 ?
몇 해 전, 설교시간을 통해 한 번 소개한 분이 있는데,
그 이름은 캠벨 몰간(Campbell Morgan, 1863-1945)입니다.
이 분은 목사님으로서 20세기 상반기에 '강해설교의 제왕'으로 평가받은
설교의 거장(巨匠)입니다.
이 캠벨 몰간 목사님이 쓴 여러 작품 중에,
[이미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주님이 너에게 말씀하신다]라는 책이 있습니다.
몰간 목사님은 이 책에서 다음과 같은 주장을 말합니다.
"예수님이 복음 사역을 감당하시던 중 특히 중요한 상황이 있을 때
(예를 들면, 야이로의 딸을 살리실 때, 변화산에서 당신의 변한 모습을 보이실 때,
혹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최후의 기도를 드리실 때)는
언제나 베드로, 야고보, 요한 세 제자를 대동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세 제자를 일컬어 'Big 3'라고 부릅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바탕으로,
이 세 사람이 제자들 중 가장 뛰어났기 때문이라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유독 베드로, 야고보, 요한 세 제자에게 특별한 관심을 보이셨던 것은,
그들이 제자들 중 가장 뛰어나서가 아니라,
오히려 다른 제자들보다 연약한 자들임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그들을 그렇게 해 주시지 않으셨다면,
그들은 사단의 유혹에 앞장서 넘어지고 말았을 것입니다."
캠벨 몰간의 이 주장이 상당한 설득력을 갖는 것은,
그 세 제자의 평소 모습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베드로는 성미가 급해 매사가 실수 투성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그토록 고통 당하실 때, 자신의 약속과 달리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부인하고 저주했던 비겁한 인간이었습니다.
또 요한과 야고보 형제는 어떠했습니까 ?
자기들의 반대자들이 나타나자 '하늘에서 떨어지는 불로 확 태워버리자' 그럽니다.
엄청나게 과격하고 엉뚱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어머니는 예수님이 세상 권력을 장악하시는 줄 알고,
예수님께 자기 아들들을 중용해 줄 것을 청탁했습니다.
매우 세속적이었습니다.
게다가 그 세 제자는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처절하게 기도를 드리시는 동안,
함께 기도하자고 그토록 부탁을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잠에 골아 떨어졌을 만큼 한심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오늘의 본문을 캠벨 몰간 목사님의 관점에서 본다면,
선택된 맛디아 보다 탈락한 요셉이 더 굳건한 신앙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요셉은 제비뽑기에서 탈락해, 사도라는 명예를 얻지 못해도,
일평생 평신도로 살아가기에 부족함이 없는 분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맛디아는 탈락되는 것을 받아들이기에는,
그의 심성이 너무나 연약한 것을 아셨기에, 주님은 그를 사도로 선택하셨을 것입니다.
이후로 두 사람 다 성경에서 그들의 이름이 다시는 언급되고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 두 사람 모두 사도로서, 또는 평신도로서
그들의 삶을 훌륭하게 살아갔음을 반증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세상에 계실 때 어떤 삶을 사셨습니까 ?
그렇습니다.
그 분은 언제나 낮은 곳을 향해 가셨습니다.
약자와 병자와 그리고 죄인과 억눌린 자를 향해 가셨습니다.
연약한 자를 더 불쌍히 여기셔서 그들의 마음을 위로해 주셨습니다.
모든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님의 마음은, 그렇게 항상 낮은 데로 흘러가셨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고린도전서12:23, "우리가 몸의 덜 귀히 여기는 그것들을 더욱 귀한 것들로 입혀 주며
우리의 아름답지 못한 지체는 더욱 아름다운 것을 얻고"
사랑하는 여러분 !
오늘 저와 여러분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여러분은 성도로서 앉아 계시고, 저는 목사로서 이렇게 서 있습니다.
저보다 저를 더 잘 아시는 우리 하나님께서는,
제가 그나마 목사가 아니고 여러분처럼 일반 성도였다면,
구원받기도 어려운 사람이 되고 말 것이라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나마 목사가 되었으니,
성경도 읽고, 기도도 하고, 주일도 지키고 하게 된 것입니다.
그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저는, 주님이 저를 아시는 것만큼은 아니지만, 저 자신을 잘 압니다.
점점 저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고 악한 존재라는 것을 느낍니다.
지금 당장에라도, 이 무거운 짐을 벗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생길 적도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상황에 있든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기에 부족함이 없는 분들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여러분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신뢰할만한 귀한 그릇인 것입니다.
귀하신 여러분 !
자부심과 자긍심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 속에 있는 그 거룩한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세 주간만 지나면, 2012년도 절반이 지나갑니다.
그런데도 지금 이 순간까지도,
작년부터 끌어오는 해결되지 못한 일들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분이 있습니다.
또한 우리들 가운데는,
아무도 알지 못하는 시련과 주체할 수 없는 슬픔을 가지고 계신 분도 있습니다.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지 않아, 아직도 괴로움 속에서 살아가시는 분도 있습니다.
겉 얼굴은 웃고 있지만, 마음 깊은 곳은 온통 아픔으로 얼룩져서,
상처투성이인 분도 우리 가운데는 있습니다.
비록 입으로는 주님을 찬양하지만,
다른 마음의 하늘에서는 끊임없이 비가 내리고 있는 분도 있습니다.
옆을 봐도 괴롭고, 위를 봐도 답답하고,
더구나 자기 안을 들여다보면 죄와 추한 것들뿐이고,
과거는 후회 뿐이요, 미래는 안개처럼 불확실하여 항상 불안한 분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이러한 우리의 마음을 모두 아십니다.
그리고 그 분은 결코 우리를 이대로 그냥 내버려두시는 매정한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알고 계십니다.
우리가 이 과정을 겪음으로서만
비로소, 신실하고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 하나님은 나 보다 더 나를 잘 아시는 주님이십니다.
또한 우리 하나님은 나 보다 더 나를 사랑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제가 얼마나 연약한지, 그리고 여러분들이 얼마나 사랑스러운 그리스도인인지
너무나 잘 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 !
답답해하지 마십시오. 실망해 하지 마십시오.
모든 것은 머지 않아 아름다운 열매들로 드러날 것입니다.
여러분을 너무나 잘 아시는 하나님은,
가장 귀한 것들을 여러분들을 위해 넉넉히 준비해 놓고 계십니다.
현재의 고난을 이겨내고,
자기를 위해 준비된 하늘과 땅의 은총을 얻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할렐루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