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2008년5월25일, 열왕기하7:3-9(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본향성도)
ページ情報

本文
옆에 계신 복스러운 지체들을 축복합시다.
당신에게 진정한 친구 있나요 ? 예수께서 당신의 진정한 친구입니다.
나 또한 당신의 진정한 친구가 되고 싶습니다.
오늘 본문은 성경에 기록된 많은 사건들 중 가장 비참한 내용이 포함된 부분입니다.
B. C. 850년경, 북 이스라엘의 首都인 사마리아에 지독한 흉년이 들었습니다.
모든 백성이 심한 고통을 겪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람의 벤하닷 왕이 군대를 이끌고 쳐들어옵니다.
아람의 작전은 싸움을 거는 대신 성 전체를 포위하는 것이었습니다.
성안에 갇힌 사람들은 더 이상 먹고 살 길이 없었습니다.
굶주림에 지친 사람들은 급기야,
"오늘은 내 아들, 내일은 네 아들"하면서 자기 자녀들까지 잡아먹고 말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성문 밖에 있던 문둥병자 네 사람이 서로 의논을 합니다.
"우리가 성안에 들어가도 먹을 것이 없고, 여기 있어도 죽을 테니
차라리 아람 군대를 찾아가자.
여기서 죽으나 아람 군대의 칼에 맞아 죽으나 마찬가지니까"
그런데 가보니까 아람 군대는 도망가 버리고 없는 겁니다.
대신 그들이 남겨놓은 음식과 양식 그리고 금은 보화가 널려 있었습니다.
그들은 아람 군대가 남긴 음식을 마음껏 먹고 보화를 이곳저곳에 감춥니다.
그러던 중 문득 한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사마리아 성에는 오늘밤에도 굶어 죽는 사람이 많을 텐데
우리가 이 일을 알리지 않으면 큰 죄가 되지"
결국 네 명의 문둥병자들은 성으로 달려갑니다.
그렇게 해서 사마리아 성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구원을 받게 됩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에 기록된 이야기입니다.
오늘의 주인공은 네 명의 문둥병자들입니다.
이들은 가장 아름다운 소식을 성안 사람들에게 전해 준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굶주려 죽어 가는 사람들에게 먹을 것이 있다는 소식은 가장 최고의 소식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
네 명의 문둥병자들이 음식을 먹다 말고,
성안의 사람들에게 가장 귀한 소식을 전하게 된 계기가 무엇이었습니까 ?
왜 그들은 자신들 앞에 펼쳐진 상황을 성안에 알렸습니까 ?
그렇습니다.
그들은 당장 자기들이 이 소식을 알리지 않으면 그것은 범죄 행위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세계2차 대전 당시 프랑스의 레지스탕스를 배경으로 한 영화에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레지스탕스들이 감옥에서 끌려 나와 사형을 당하게 됐습니다.
한 사람씩 기둥에 묶이는 급박한 상황에서 한 젊은이가 독일 병사를 향해 외칩니다.
"나는 장사나 하고 돈이나 벌며 살다가 잘못 잡혀온 사람입니다.
난 레지스탕스하고는 아무 관계도 없고 관심도 없습니다.
나는 무죄입니다. 죽을 이유가 없습니다. 나를 살려주세요."
그러나 독일군들은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 사람을 기둥에 묶습니다.
그때 한 레지스탕스가 그 젊은이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 그것이 당신의 죄입니다."
"지금까지 5년 동안 전쟁이 계속되었고 수백만 명이 피를 흘리며 죽어갔습니다.
우리 조국과 민족이 멸망 직전인데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면
그것이야말로 오늘 당신이 죽어야 하는 가장 큰 이유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면서 꼭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일입니다.
지금 성안에 포위되어 굶주림에 죽어 가는 사람들,
그들은 자기들 힘으로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습니다.
밖에 있는 사람들이 구원의 손길을 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지금 이 땅 일본에는 1억2천6백만 명의 사람들이 영원한 지옥 불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저들이 인생에 종착역에서 맞이할 것은 저들의 착각처럼 천국이 아닌, 영원한 고통입니다.
영원한 멸망입니다.
우리들은 저들을 향해,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당신들은 죽게 될 것이고,
죽지 않는 길은 주님께 나아와 복음을 듣는 것"이라고 소리쳐야 합니다.
제가 40년 넘게 신앙생활을 하면서 만나 본 여러 교인들 중에, 제일 안타까운 것은,
일평생 자기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예배도, 기도도, 봉사도, 헌금도, 전부다 자기 의와 자존심 때문에,
자기 부요(富饒)와 자기 지식 때문에, 또는 자기 권세, 자기 자식, 자기 욕심 때문에 행하는 분들입니다.
자기 … 때문에, 자기 … 때문에, 자기 때문에 살다가 결국 자기 때문에 죽고 맙니다.
일평생 그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어쩌다 한 번, 남을 위한 일을 해도 결국은 자기를 높이기 위한 것입니다.
자기 필요만 채울 줄 알았지, 남에게 신경 쓰지 않습니다.
물론 자식의 필요에 좀더 관심을 갖긴 하지만 결국은 그 한계,
즉 자기만을 위한 삶의 본 모습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신 풍요와 기쁨을 진짜 누렸다면, 우리의 관심은 더 넓어져야 합니다.
작년 한 해, 일본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자살자 수가 3만 명이 넘었습니다.
하루 평균 100여명이 스스로 목숨을 버린 것입니다.
더구나 충격적인 것은,
일본정부가 일본인의 자살을 줄여보기 위해 처음 전국규모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本氣で自殺を考えたことがある ?]라는 질문에 대해,
30代의 사람들 중 28%가, 그리고 20代의 사람들 중 25%가 "ある"라고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朝日新聞, 2008년5월17일字 夕刊12면)
참으로 놀라운 내용입니다.
지금 우리들 주위에 있는 20대, 30대 일본 젊은이들의
약 4분의 1의 지체들이 자살을 마음에 품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많은 일본의 젊은이들이, 가장 진취적이고 미래에 대한 꿈으로 가득할
20, 30대의 이 나라의 기둥 될 일꾼들이 낙망과 좌절의 성안에 지금 갇혀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을 향해 우리는 외쳐야 합니다.
"여기에 생명의 길이 있다." "여기에 참된 자유함과 평안함이 있다."
사랑하는 여러분 !
하나님께서 문둥병자들을 통해서 기쁜 소식을 증거 하게 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
그렇습니다. 당시 문둥병자는 절망적인 사람입니다.
오늘날의 에이즈 환자보다도 더하면 더 했지 못하지 않습니다.
그들에겐 희망도 없고, 또 그들은 쓸모도 없습니다.
그들은 모든 사람들로부터, 심지어 가족들에게까지 철저히 외면당했습니다.
가능한 빨리 죽어 가족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소망이었습니다.
그런 그들을 하나님은 사용하셔서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그 숨은 뜻이 무엇이겠습니까 ?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문둥병자들과 같이 연약한 우리들을 들어 사용하기를 원하신다는 뜻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지금까지 우리들의 발은 어떻게 사용되었습니까 ?
우리들의 발이 가는 곳마다 아름다운 소식이 증거 되었습니까 ?
혹시, 우리들의 이제까지의 발걸음이 우리들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부끄러운 발걸음이 아니었습니까 ?
여러분 !
문둥병자들의 입장이 되어서 그들이 일평생 걷던 그 걸음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 걸음, 걸음은 낙심과 절망의 걸음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걷는 발걸음 속에 아무런 희망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
하나님께서 그들을 붙들어 쓰시니, 그들의 걸음이 희망의 발걸음이 되었습니다.
생명과 소망을 전하는 발걸음이 되었습니다.
그 문둥병자들은 이제까지 어떤 말들을 했겠습니까 ?
아마도 이런 말들이었을 것입니다.
"나는 왜 살아야 하나 ? 인생이 참 더럽다. 이제 그만 죽자."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을 붙들어 쓰시자 그들의 입에 이런 말이 담깁니다.
"내 한 마디 때문에 죽어 가는 이웃이 살아날 수 있어"
"그 동안에는 세상이 내 말에 귀를 기울여 주지 않았지만 이제는 달라"
"이제까지 원망과 불평과 세상을 비난했던 내 입술에, 생명의 언어가 담겨져서,
이 아름다운 소식 전할 때 죽어 가는 사람들이 살아날 거야."
사랑하는 여러분 !
성경은 우리가 입을 열면 어떤 말이 나온다고 말씀합니까 ?
그렇습니다. 남을 모함하고 저주하는, 각종 더러운 말이 나온다고 말합니다.
우리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우리를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것이 더럽게 한다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이 입술이 변해서 이웃을 깨워주는, 죽어 가는 생명을 건져주는 언어를 담는다면,
우리 인생은 얼마나 아름다워지겠습니까 ?
1885년4월5일, 미국의 언더우드 선교사님이 인천항에 도착했습니다.
당시 그의 나이는 25살이었습니다.
청년 언더우드는 당시 조선을 돌아본 후, 이러한 기도문을 작성했습니다.
제목 : 보이지 않는 조선의 마음
주여 ! 지금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주님, 메마르고 가난한 땅, 나무 한 그루 시원하게 자라 오르지 못하는 땅에
저희들을 옮겨와 심으셨습니다.
그 넓고 넓은 태평양을 어떻게 건너왔는지 그 사실이 기적입니다.
주께서 붙잡아 뚝 떨어뜨려 놓으신 듯한 이곳 지금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는 것은 고집스럽게 얼룩진 어둠뿐입니다.
어둠과 가난과 인습에 묶여 있는 조선 사람들뿐입니다.
그들은 왜 묶여 있는지도, 고통이라는 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고통을 고통인줄 모르는 자에게 고통을 벗겨주겠다고 하면 의심부터 하고 화부터 냅니다.
조선 남자들의 속셈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 나라 조정의 내심도 보이질 않습니다.
가마를 타고 다니는 여자들을 영영 볼 기회가 없으면 어쩌나 합니다.
조선의 마음이 보이질 않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해야 할 일이 보이질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 순종하겠습니다.
겸손하게 순종할 때 주께서 일을 시작하시고
그 하시는 일을 우리들의 영적인 눈이 볼 수 있는 날이 있을 줄을 믿나이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라고 하신 말씀을 따라
조선의 믿음의 앞날을 볼 수 있게 될 것을 믿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황무지 위에 맨손으로 서 있는 것 같사오나,
저희들이 우리 영혼과 하나인 것을 깨닫고,
한 백성, 한 자녀임을 알고 눈물로 기뻐할 날이 있음을 믿나이다.
지금은 예배드릴 예배당도 없고 학교도 없고
그저 경계와 의심과 멸시와 천대함이 가득한 이곳이지만
이곳이 머지않아 은총의 땅이 되리라는 것을 믿습니다.
주여 ! 오직 제 믿음을 붙잡아 주소서 ! 아멘.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언더우드를 비롯한 선교사님들의 발과 입술은 어떤 발이며 어떤 입술이었습니까 ?
자기들의 뜻을 알아주지 않는 그 황폐한 마음을 보면서도 조금도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너무나 힘들었지만 다시 용기 내서 아름다운 소식을 전했던 발이었고,
복음을 담았던 입술이었습니다.
그렇게 어두운 곳을 향해 외쳤던 그 아름다운 소식은 지금 어떻게 되었습니까 ?
언더우드의 기도로부터 백 년이 지나지 않아 한국 땅은 복음으로 가득 찬 땅이 되었습니다.
그가 세운 연세대학교는 한국 사립대학의 최고 명문이 되어서,
수많은 일꾼을 배출하는 학교로 우뚝 섰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가 찾아갈 이 땅 일본, 그 성안 사람들의 가슴은 어떻습니까 ?
분명, 지금은 미래가 보이지 않는 어두운 불모지처럼 보일 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전하는 아름다운 소식,
그 한 마디 한 마디가 그들의 가슴속에 심어지면,
머지 않아 그들의 가슴속엔 찬양이 솟아 나오게 될 줄 믿습니다.
머지 않아 주님을 향한 감사와 기쁨이 저들에게 넘치게 될 것을 믿습니다.
분명히, 머지 않은 장래에 그들의 삶은 놀랍게 변화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아름다운 소식을 전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이제 우리는 우리의 운명을 알았습니다.
풍성한 하나님의 은혜도 알았습니다.
이 은혜를 기억하면서,
이제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 땅의 지체들에게 관심을 돌리십시다.
"나만 ! 나만 !"하다가 죽지말고, 내게 주신 이 땅의 사람들을 사랑하십시다.
하나님의 눈길과 발길과 손길이 머무는 곳에 내 삶이 머물도록 헌신하십시다.
주님이 바라보시고 눈물 흘리시는 그곳에 우리의 손과 발이 머물도록 합시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그렇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며 살 때,
우리에겐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쁨과 풍요가 넘치게 될 거라는 사실입니다.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 모두, 아름다운 본향을 전합시다.
우리의 삶을 통해, 아름다운 소식이 전해지게 합시다.
오늘 코리안 파티를 통해 우리가 전하고자 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통해 천하 보다 귀한 생명들을 오늘부터 수없이 건지실 줄 믿습니다.
할렐루야 !
당신에게 진정한 친구 있나요 ? 예수께서 당신의 진정한 친구입니다.
나 또한 당신의 진정한 친구가 되고 싶습니다.
오늘 본문은 성경에 기록된 많은 사건들 중 가장 비참한 내용이 포함된 부분입니다.
B. C. 850년경, 북 이스라엘의 首都인 사마리아에 지독한 흉년이 들었습니다.
모든 백성이 심한 고통을 겪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람의 벤하닷 왕이 군대를 이끌고 쳐들어옵니다.
아람의 작전은 싸움을 거는 대신 성 전체를 포위하는 것이었습니다.
성안에 갇힌 사람들은 더 이상 먹고 살 길이 없었습니다.
굶주림에 지친 사람들은 급기야,
"오늘은 내 아들, 내일은 네 아들"하면서 자기 자녀들까지 잡아먹고 말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성문 밖에 있던 문둥병자 네 사람이 서로 의논을 합니다.
"우리가 성안에 들어가도 먹을 것이 없고, 여기 있어도 죽을 테니
차라리 아람 군대를 찾아가자.
여기서 죽으나 아람 군대의 칼에 맞아 죽으나 마찬가지니까"
그런데 가보니까 아람 군대는 도망가 버리고 없는 겁니다.
대신 그들이 남겨놓은 음식과 양식 그리고 금은 보화가 널려 있었습니다.
그들은 아람 군대가 남긴 음식을 마음껏 먹고 보화를 이곳저곳에 감춥니다.
그러던 중 문득 한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사마리아 성에는 오늘밤에도 굶어 죽는 사람이 많을 텐데
우리가 이 일을 알리지 않으면 큰 죄가 되지"
결국 네 명의 문둥병자들은 성으로 달려갑니다.
그렇게 해서 사마리아 성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구원을 받게 됩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에 기록된 이야기입니다.
오늘의 주인공은 네 명의 문둥병자들입니다.
이들은 가장 아름다운 소식을 성안 사람들에게 전해 준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굶주려 죽어 가는 사람들에게 먹을 것이 있다는 소식은 가장 최고의 소식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
네 명의 문둥병자들이 음식을 먹다 말고,
성안의 사람들에게 가장 귀한 소식을 전하게 된 계기가 무엇이었습니까 ?
왜 그들은 자신들 앞에 펼쳐진 상황을 성안에 알렸습니까 ?
그렇습니다.
그들은 당장 자기들이 이 소식을 알리지 않으면 그것은 범죄 행위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세계2차 대전 당시 프랑스의 레지스탕스를 배경으로 한 영화에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레지스탕스들이 감옥에서 끌려 나와 사형을 당하게 됐습니다.
한 사람씩 기둥에 묶이는 급박한 상황에서 한 젊은이가 독일 병사를 향해 외칩니다.
"나는 장사나 하고 돈이나 벌며 살다가 잘못 잡혀온 사람입니다.
난 레지스탕스하고는 아무 관계도 없고 관심도 없습니다.
나는 무죄입니다. 죽을 이유가 없습니다. 나를 살려주세요."
그러나 독일군들은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 사람을 기둥에 묶습니다.
그때 한 레지스탕스가 그 젊은이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 그것이 당신의 죄입니다."
"지금까지 5년 동안 전쟁이 계속되었고 수백만 명이 피를 흘리며 죽어갔습니다.
우리 조국과 민족이 멸망 직전인데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면
그것이야말로 오늘 당신이 죽어야 하는 가장 큰 이유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면서 꼭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일입니다.
지금 성안에 포위되어 굶주림에 죽어 가는 사람들,
그들은 자기들 힘으로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습니다.
밖에 있는 사람들이 구원의 손길을 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지금 이 땅 일본에는 1억2천6백만 명의 사람들이 영원한 지옥 불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저들이 인생에 종착역에서 맞이할 것은 저들의 착각처럼 천국이 아닌, 영원한 고통입니다.
영원한 멸망입니다.
우리들은 저들을 향해,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당신들은 죽게 될 것이고,
죽지 않는 길은 주님께 나아와 복음을 듣는 것"이라고 소리쳐야 합니다.
제가 40년 넘게 신앙생활을 하면서 만나 본 여러 교인들 중에, 제일 안타까운 것은,
일평생 자기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예배도, 기도도, 봉사도, 헌금도, 전부다 자기 의와 자존심 때문에,
자기 부요(富饒)와 자기 지식 때문에, 또는 자기 권세, 자기 자식, 자기 욕심 때문에 행하는 분들입니다.
자기 … 때문에, 자기 … 때문에, 자기 때문에 살다가 결국 자기 때문에 죽고 맙니다.
일평생 그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어쩌다 한 번, 남을 위한 일을 해도 결국은 자기를 높이기 위한 것입니다.
자기 필요만 채울 줄 알았지, 남에게 신경 쓰지 않습니다.
물론 자식의 필요에 좀더 관심을 갖긴 하지만 결국은 그 한계,
즉 자기만을 위한 삶의 본 모습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신 풍요와 기쁨을 진짜 누렸다면, 우리의 관심은 더 넓어져야 합니다.
작년 한 해, 일본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자살자 수가 3만 명이 넘었습니다.
하루 평균 100여명이 스스로 목숨을 버린 것입니다.
더구나 충격적인 것은,
일본정부가 일본인의 자살을 줄여보기 위해 처음 전국규모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本氣で自殺を考えたことがある ?]라는 질문에 대해,
30代의 사람들 중 28%가, 그리고 20代의 사람들 중 25%가 "ある"라고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朝日新聞, 2008년5월17일字 夕刊12면)
참으로 놀라운 내용입니다.
지금 우리들 주위에 있는 20대, 30대 일본 젊은이들의
약 4분의 1의 지체들이 자살을 마음에 품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많은 일본의 젊은이들이, 가장 진취적이고 미래에 대한 꿈으로 가득할
20, 30대의 이 나라의 기둥 될 일꾼들이 낙망과 좌절의 성안에 지금 갇혀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을 향해 우리는 외쳐야 합니다.
"여기에 생명의 길이 있다." "여기에 참된 자유함과 평안함이 있다."
사랑하는 여러분 !
하나님께서 문둥병자들을 통해서 기쁜 소식을 증거 하게 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
그렇습니다. 당시 문둥병자는 절망적인 사람입니다.
오늘날의 에이즈 환자보다도 더하면 더 했지 못하지 않습니다.
그들에겐 희망도 없고, 또 그들은 쓸모도 없습니다.
그들은 모든 사람들로부터, 심지어 가족들에게까지 철저히 외면당했습니다.
가능한 빨리 죽어 가족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소망이었습니다.
그런 그들을 하나님은 사용하셔서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그 숨은 뜻이 무엇이겠습니까 ?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문둥병자들과 같이 연약한 우리들을 들어 사용하기를 원하신다는 뜻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지금까지 우리들의 발은 어떻게 사용되었습니까 ?
우리들의 발이 가는 곳마다 아름다운 소식이 증거 되었습니까 ?
혹시, 우리들의 이제까지의 발걸음이 우리들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부끄러운 발걸음이 아니었습니까 ?
여러분 !
문둥병자들의 입장이 되어서 그들이 일평생 걷던 그 걸음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 걸음, 걸음은 낙심과 절망의 걸음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걷는 발걸음 속에 아무런 희망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
하나님께서 그들을 붙들어 쓰시니, 그들의 걸음이 희망의 발걸음이 되었습니다.
생명과 소망을 전하는 발걸음이 되었습니다.
그 문둥병자들은 이제까지 어떤 말들을 했겠습니까 ?
아마도 이런 말들이었을 것입니다.
"나는 왜 살아야 하나 ? 인생이 참 더럽다. 이제 그만 죽자."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을 붙들어 쓰시자 그들의 입에 이런 말이 담깁니다.
"내 한 마디 때문에 죽어 가는 이웃이 살아날 수 있어"
"그 동안에는 세상이 내 말에 귀를 기울여 주지 않았지만 이제는 달라"
"이제까지 원망과 불평과 세상을 비난했던 내 입술에, 생명의 언어가 담겨져서,
이 아름다운 소식 전할 때 죽어 가는 사람들이 살아날 거야."
사랑하는 여러분 !
성경은 우리가 입을 열면 어떤 말이 나온다고 말씀합니까 ?
그렇습니다. 남을 모함하고 저주하는, 각종 더러운 말이 나온다고 말합니다.
우리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우리를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것이 더럽게 한다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이 입술이 변해서 이웃을 깨워주는, 죽어 가는 생명을 건져주는 언어를 담는다면,
우리 인생은 얼마나 아름다워지겠습니까 ?
1885년4월5일, 미국의 언더우드 선교사님이 인천항에 도착했습니다.
당시 그의 나이는 25살이었습니다.
청년 언더우드는 당시 조선을 돌아본 후, 이러한 기도문을 작성했습니다.
제목 : 보이지 않는 조선의 마음
주여 ! 지금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주님, 메마르고 가난한 땅, 나무 한 그루 시원하게 자라 오르지 못하는 땅에
저희들을 옮겨와 심으셨습니다.
그 넓고 넓은 태평양을 어떻게 건너왔는지 그 사실이 기적입니다.
주께서 붙잡아 뚝 떨어뜨려 놓으신 듯한 이곳 지금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는 것은 고집스럽게 얼룩진 어둠뿐입니다.
어둠과 가난과 인습에 묶여 있는 조선 사람들뿐입니다.
그들은 왜 묶여 있는지도, 고통이라는 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고통을 고통인줄 모르는 자에게 고통을 벗겨주겠다고 하면 의심부터 하고 화부터 냅니다.
조선 남자들의 속셈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 나라 조정의 내심도 보이질 않습니다.
가마를 타고 다니는 여자들을 영영 볼 기회가 없으면 어쩌나 합니다.
조선의 마음이 보이질 않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해야 할 일이 보이질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 순종하겠습니다.
겸손하게 순종할 때 주께서 일을 시작하시고
그 하시는 일을 우리들의 영적인 눈이 볼 수 있는 날이 있을 줄을 믿나이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라고 하신 말씀을 따라
조선의 믿음의 앞날을 볼 수 있게 될 것을 믿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황무지 위에 맨손으로 서 있는 것 같사오나,
저희들이 우리 영혼과 하나인 것을 깨닫고,
한 백성, 한 자녀임을 알고 눈물로 기뻐할 날이 있음을 믿나이다.
지금은 예배드릴 예배당도 없고 학교도 없고
그저 경계와 의심과 멸시와 천대함이 가득한 이곳이지만
이곳이 머지않아 은총의 땅이 되리라는 것을 믿습니다.
주여 ! 오직 제 믿음을 붙잡아 주소서 ! 아멘.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언더우드를 비롯한 선교사님들의 발과 입술은 어떤 발이며 어떤 입술이었습니까 ?
자기들의 뜻을 알아주지 않는 그 황폐한 마음을 보면서도 조금도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너무나 힘들었지만 다시 용기 내서 아름다운 소식을 전했던 발이었고,
복음을 담았던 입술이었습니다.
그렇게 어두운 곳을 향해 외쳤던 그 아름다운 소식은 지금 어떻게 되었습니까 ?
언더우드의 기도로부터 백 년이 지나지 않아 한국 땅은 복음으로 가득 찬 땅이 되었습니다.
그가 세운 연세대학교는 한국 사립대학의 최고 명문이 되어서,
수많은 일꾼을 배출하는 학교로 우뚝 섰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가 찾아갈 이 땅 일본, 그 성안 사람들의 가슴은 어떻습니까 ?
분명, 지금은 미래가 보이지 않는 어두운 불모지처럼 보일 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전하는 아름다운 소식,
그 한 마디 한 마디가 그들의 가슴속에 심어지면,
머지 않아 그들의 가슴속엔 찬양이 솟아 나오게 될 줄 믿습니다.
머지 않아 주님을 향한 감사와 기쁨이 저들에게 넘치게 될 것을 믿습니다.
분명히, 머지 않은 장래에 그들의 삶은 놀랍게 변화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아름다운 소식을 전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이제 우리는 우리의 운명을 알았습니다.
풍성한 하나님의 은혜도 알았습니다.
이 은혜를 기억하면서,
이제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 땅의 지체들에게 관심을 돌리십시다.
"나만 ! 나만 !"하다가 죽지말고, 내게 주신 이 땅의 사람들을 사랑하십시다.
하나님의 눈길과 발길과 손길이 머무는 곳에 내 삶이 머물도록 헌신하십시다.
주님이 바라보시고 눈물 흘리시는 그곳에 우리의 손과 발이 머물도록 합시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그렇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며 살 때,
우리에겐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쁨과 풍요가 넘치게 될 거라는 사실입니다.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 모두, 아름다운 본향을 전합시다.
우리의 삶을 통해, 아름다운 소식이 전해지게 합시다.
오늘 코리안 파티를 통해 우리가 전하고자 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통해 천하 보다 귀한 생명들을 오늘부터 수없이 건지실 줄 믿습니다.
할렐루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