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主日説教原稿

2008 2008년7월27일, 사도행전20:7-12(졸음을 이기지 못한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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投稿者 박성철
コメント 0件 照会 13,701回 日時 08-07-28 23:07

本文

  옆에 계신 복스러운 지체들을 축복합시다.
  한 주간의 모든 상처를, 지금 예배 중에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아버지의 은혜로
  치유(治癒) 받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위해 오늘 준비하신 모든 것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빛과 소금이라는 한국의 기독교 잡지에서 얼마 전,
 '설교에 대한 크리스천의 의식조사'라는 제목으로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그 설문 내용 중, "지난 주일의 설교 내용을 기억하십니까 ?"라는 질문에
 "잘 기억하고 있다", "일부를 기억하고 있다"고 답한 사람이 89.4%에 달했습니다.
  또한, "주일 예배 설교에 은혜와 감동을 받으십니까 ?"라는 질문에는
  73.4%의 성도들이 "항상 그렇다", "종종 그렇다"라고 답했습니다.
 "가끔 그렇다"라는 답은 22.9%였고, "그저 그렇다"고 답한 사람은 3.9% 뿐이었습니다.

  한 가지만 더 소개하면, "교회를 선택할 때 설교는 얼마나 중요한가 ?"라는 질문에,
 "중요하다", "가장 중요하다"라고 답한 성도가 91%에 달했습니다.
  이상에서 볼 때, 현대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설교는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에도 많은 설교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예수님의 설교 중에는 마태복음5-8장의 산상수훈 설교,
  마태복음24-25장의 감람산 설교, 요한복음13-17장의 다락방 설교 등이 있습니다.
  또한 사도행전에도 여러 설교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도행전2장의 베드로의 첫 설교와 3장의 베드로의 두 번째 설교,
  7장의 스데반의 설교, 22장의 바울의 설교 등입니다.

  이러한 설교들 가운데는 길어야 5분을 넘기지 않을 짧은 설교(사도행전2:14-40,
  베드로 설교)가 있는가 하면, 아주 아주 긴 설교도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이 한 설교는 성경 전체를 통해 가장 긴 설교로 알려져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그 설교 내용이 남아있지는 않지만 말입니다.
  본문7절, "바울이 강론할 새, 말(설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
  본문9절, "바울이 강론(설교)하기를 더 오래 하매"
  본문11절, "떡을 떼먹고 오랫동안 곧 날이 새기까지 이야기(설교)하고"
  대충 따져봐도 이 설교는 짧아도 8시간 정도 길이의 설교입니다.

  하지만 여러분 !
  바울이 오늘 본문에서 한 설교는 어떤 설교였습니까 ?
  그렇습니다. 보통 설교가 아니라 고별 설교였습니다.
  언제 다시 이곳 드로아에 올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본문이 있는 사도행전20장은 바울이 교인들과 목을 안고 우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전하는 바울이나 듣는 드로아 교인들이나 다같이 간절했습니다.
  그래서 등불을 켜 놓고 초저녁부터 새벽녘까지 설교를 계속했던 것입니다.
  분명,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고, 성령이 충만한 자리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딱 한 사람, 그 역시 은혜의 자리에는 있었지만,
  은혜로부터 떨어져 있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청년 유두고였습니다.
  당시 예배가 드려졌던 곳은 3층 다락방이었습니다.
  유두고는 3층 창가에 걸터앉아 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그가 왜 창가에 걸터앉았는가에 대해서는 두 가지 의견이 있습니다.
  첫째는 다락방이 좁아 앉을 자리가 없었다는 것이고,
  둘째는 졸음을 이기기 위해 일부로 신선한 공기를 마실 수 있는
  시원한 창가를 선택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유가 어떻든 간에 유두고는 그 창가에서 깊이 졸았고,
  그만 창 밖으로 떨어져 죽고 말았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사는 기적을 맛보았지만,
  당시 예배에 참석한 모두에게는 분명 큰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오늘 저는 유두고의 사건을 통해 두 가지만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특별히 우리교회는 성도 중 60% 정도가 유두고와 같은 2, 30대의 젊은이들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이 더욱 우리에게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 유두고는 창문에 걸터앉았다가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유두고의 직업이 무엇이었는지는 그의 이름을 통해 유추할 수 있습니다.
  당시 유두고라는 이름은 노예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이름이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학자들은 유두고가 노예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유두고가 귀중한 예배 시간에 졸았던 것에 대해 이해하는 입장입니다.
  당시 노예들은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을 했습니다.
  아마 유두고도 그렇게 일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밤늦게 야 시간을 얻어서 예배의 자리에 나온 것입니다.
  그러나 나오긴 했는데 늦게 왔으니,
  좋은 자리를 얻지 못하고 창문에 걸터앉을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가 젊은 청년이었기 때문에 그 자리에 앉을 수 있었지,
  보통 사람 같으면 위험한 창가에 앉는 것은 생각도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
  언제나 그렇지만, 위험한 자리는 항상 큰 위험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가 앉아있던 다락방의 창문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 곳은 바깥 풍경과 집안을 함께 볼 수 있는 자리입니다.
  즉 마음만 내키면 언제든지 고개를 다른 방향으로 돌릴 수 있는 곳이라는 것입니다.
  설교를 듣다가 지루하면 밖을 보면서 누가 오고 누가 가나, 날씨는 어떠나 등,
  온갖 잡생각을 할 수 있는 자리였습니다.
  말씀과 세상, 즉 양다리를 걸칠 수 있는 자리였습니다.

  여러분 !
  양다리의 경우 대체로 어떤 결과가 나오지요 ?
  그렇습니다. 아무 것도 얻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사람은 지금 어느 곳에 있는가가 중요합니다.
  옛말에 "말은 키워서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키워서 서울로 보내라"는 말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이든 말이든 주위의 영향을 받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
  지금 우리가 자주 찾는 곳과, 지금 우리의 삶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심지어 내가 자주 찾는 자리, 지금 내가 처한 곳이 내 삶의 방향을 결정합니다.
  지금 함께 한 여러분들은, 요즘 주로 어느 자리에 있습니까 ?
  여러분이 요즘 가장 많이 찾는 자리는 어디입니까 ?
  컴퓨터 앞입니까 ? 책 앞입니까 ? 아니면 오락실 앞입니까 ?
  기도하는 자리입니까 ? 아니면 그저 즐기는 자리입니까 ?
  일터입니까 ? 아니면 쾌락의 장소입니까 ?
  집중하는 할 수 있는 곳입니까 ? 아니면 양다리 걸치는 곳입니까 ?
  기도의 자리, 열심히 일하는 자리, 집중하는 자리에 서기를 바랍니다.

  유두고가 존 것은 물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유가 어떻든 자기의 실수로 일어난 일은 자기가 책임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런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온전한 자리에 서야합니다.
  위험이 있고 유혹이 있는 자리는 피해야 합니다.
  특히 이곳 일본 동경은 유혹이 많은 곳입니다.

  목욕하는 여자가 보이는 다윗의 자리나, 보디발 아내가 유혹했던 은밀한 실내는
  무조건 피해야 합니다.
  그런 자리는 당당히 맞설 자리가 아닙니다.
  피해야 할 자리입니다.
  분명 유두고가 앉았던 자리는 시원하고 전망이 좋은 자리였습니다.

  또 젊고 용기 있는 사람들만이 오를 수 있는 자리라고 생각할 수 있는 자리였습니다.
  그러나 그 자리는 분명 자만과 우월감의 자리입니다.
  나는 똑똑하고 젊기 때문에 다소 위험이 있어도 괜찮다 생각하는 자리입니다.
  그러나 그 자리는 분명히 죽음의 자리였습니다.
  복스러운 본향의 성도여러분 !
 "나는 괜찮아 ! 어떤 상황 속에서도 나는 나를 지킬 수 있어 !"
  혹시 이렇게 생각하지 않습니까 ?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은 분명 자만과 교만입니다.
  허세와 자기과시입니다.
  그것의 끝은 죽음입니다.

  한 주간의 대부분을 믿음 없는 친구와 보내고 있습니까 ?
  그곳은 창가입니다.
  위험한 창가입니다.
  믿음의 친구와의 교제를 회복하기를 바랍니다.

  둘째, 오늘 유두고는 졸아서는 안 될 현장에서 졸았습니다.
  물론 졸음은 생리적인 현상입니다.
  사람은 누구든 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미 말씀드린 대로 이 자리는 보통 자리가 아닙니다.
  오늘 말씀을 들으면 언제 또 말씀을 들을 수 있을지 기약이 없는 자리입니다.

  사막을 여행하던 사람이 오아시스에 도착해,
  몇 일을 휴식하고 이제 다시 사막을 향해 떠나는 것과 같은 상황이었습니다.
  갈급한 마음으로 충분히 물을 마시고, 또 길러야 할 상황입니다.
  아마도 본문의 드로아 성도들 중, 한 사람도 존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모두들 귀한 말씀을 들으려고 정신을 바짝 차리고 마음을 가다듬었을 것입니다.
  主께서 바울을 통해 주시는 말씀을 맛있게 받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때에,
  더구나 절대로 졸아서는 안 될 자리에서 유두고는 졸았던 것입니다.

  여러분 ! 졸음은 항상 커다란 후유증을 몰고 옵니다.
  한국의 교통사고의 원인 중에 가장 으뜸은 졸음 운전이라고 합니다.
  운전하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사실 조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습니다.
  고작 2, 3초입니다. 그러나 그 2, 3초 사이에 모든 것이 바뀌고 맙니다.

  지난 7월9일, 한국 법원에서 중요한 판결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 내용은, "법원으로부터 개인의 파산 및 면책결정을 받았더라도
  졸음 운전사고로 발생한 손해배상채무는 면책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한국의 교통경찰들에게 "음주 운전과 졸음 운전 중 어느 것이 더 위험한가 ?"라는
  질문을 했더니,
  대부분의 경찰들이 졸음 운전이 훨씬 위험하다고 답을 했다 합니다.
  그 이유는,
  졸음 운전의 경우는 일단 사고가 나면 대형 사고가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가 몸이 피곤해서 조는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운전할 때, 예배할 때는 절대로 졸아서는 안됩니다.
  사고가 나고, 사단이 틈을 타기 때문입니다.(마태복음13:1-30)
  사랑하는 여러분 !
  육신의 졸음도 피해야겠지만, 우리 영혼도 졸아서는 안 될 때가 있습니다.
  바로 청년의 때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대부분의 믿음의 선배들이 가장 왕성하게 활동했던 때는 2, 30대였습니다.
  예수님도 다윗도 사무엘도 다니엘도 요셉도 그랬습니다.
  그 뿐 아니라 인류의 대부분의 위인들도 2, 30대 때에 큰 일을 이루었습니다.
  베토벤, 모차르트가 그러했습니다.
  종교개혁자 칼빈은 27세 때, 불후의 명저라고 하는 기독교 강요를 썼습니다.
  대 수학자나 과학자들의 정리는 거의가 20대, 30대 때의 업적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여러분 청년의 때에 깨어 있어야 합니다. 졸면 안됩니다.
  청년의 때는 너무나 빨리 지나갑니다. 깨어서 할 일을 해야 합니다.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합니다. 더 열심히 기도해야 삽니다.
  더 집중해야 여러분의 미래는 열리고,
  더 세밀하게 준비해야 여러분은 밝은 30대 40대 50대를 누릴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더 열심히 깨어서 주님을 섬겨야 합니다.
  요나가 배 밑창에서 깊은 잠에 들었다가 당했던 일을 기억하십시오.
  삼손은 여인의 무릎에서 졸다가 망했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의 제자들 역시 졸다가 결국 주님을 버렸습니다.

  지난7개월을 돌아보면서, "내가 뭘 했지 ?"라고 생각이 든다면, 우리들은 분명 존 것입니다.
  남은 5개월을 또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됩니다.
  몸과 마음을 다해 더욱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여러분 ! 만약 유두고가 다시 살아나지 못했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
  우선 죽었으니, 그토록 간절함으로 전하고 받던 설교가 중단되었지요.
  또한 살아나지 못했다면 하나님의 영광은 고사하고
  복음 선교에 막대한 악영향을 끼쳤을 것입니다.
  이 사건을 통해 우리가 기억할 것은,
  하나님의 교회의 한 사람은 그 한 사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그것은 모두의 일이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 우리는 한 지체이기 때문입니다.
  나의 졸음이 다른 지체들과 심지어 교회 전체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예배당이 있는 처소에 함께 하신 여러분 !
  저는 여러분들에게 이런 고백이 넘쳐 나기를 바랍니다.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 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더 좋사오니"(시편84:10)
  여러분이 평생을 살면서 예배당에서 살 수 있는 날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

  초등학교 4학년 때,
  저와 온 가족이 시골 교회의 사찰 집사님을 위한 집에 산 적이 있습니다.
  사업에 실패한 제 가정을 교회가 배려해 준 덕분이었습니다.
  저는 거기에서 새벽마다 울리는 교회 종소리와 함께 잠을 깼습니다.
  훗날 저를 목사로 세우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였음을 분명 믿습니다.

  성도여러분 !
  양다리 걸치는 곳에는 서지도 말고 앉지도 맙시다.
  둘 다 못 이룹니다.
  지금은 자다가도 깰 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소개하고 설교를 마칩니다.

  마가복음13:35-37,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집 주인이 언제 올는지 혹 저물 때 엘는지
  밤중 엘는지 닭 울 때 엘는지 새벽 엘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라
  그가 홀연히 와서 너희의 자는 것을 보지 않도록 하라 깨어 있으라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이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니라 하시니라" 아멘.

※ 설교시간에 졸음을 이기는 방법.
 1. 신앙적 방법
  1> 기도를 많이 하고 말씀을 듣는다.
  2> 평소에 성경공부를 많이 한다.
    말씀에 해박하면 무슨 말씀인지 알게 되고 잘 알아듣게 된다.
  3> 설교말씀을 요약하여 노트에 필기를 한다.
 2.  졸음을 이기는 일반적인 요령
  1> 숨을 깊이 들이쉬고 후,,, 하고 내쉽니다.
    그리고 숨을 딱 멈춰버립니다. 얼굴이 빨개질 때까지 숨을 참으세요.
    정말 눈물이 나올 때까지 참다가 숨을 쉬시고 심호흡을 깊이 합니다.
    그러면 30분은 참을 수 있어요.
  2> 혀끝을 이빨로 살살 깨무세요. 장난치듯이
    그럼 혀끝에 신경이 자극이 되어서 잠이 확 달아나지요..^^
  3> 항문에 힘을 줬다 뺐다 하면 잠 깹니다. ^^
  4> 손맛사지를 합니다. 손톱으로 지압을 합니다.
  5> 창피하다고 방법을 회피할 게 아니라 조용히 밖에 나가 세수한 후 들어오시는 것이
      양심에 떳떳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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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2008 박성철 12634 08-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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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2008 박성철 13203 08-10-07
20 2008 박성철 13548 08-10-07
19 2008 박성철 13683 08-09-20
18 2008 박성철 13348 08-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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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2008 박성철 13759 08-09-02
15 2008 박성철 13621 08-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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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2008 박성철 12263 08-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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