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2008년7월20일, 사무엘상18:6-16(마음의 상처는 빨리 치료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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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 계신 복스러운 지체들을 축복합시다.
하나님은 당신을 통해 크고 놀라운 일을 이루시기 위해, 이곳으로 당신을 부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위해 이곳에 준비하신 모든 것들을 이제부터 누리시기 바랍니다.
지난 16일(수요일), 愛知縣 東名高速道路에서 バスジャック事件이 있었습니다.
이 사건의 범인은 山口縣에 사는 中學2年의 소년(14세)으로 현장에서 붙잡혔습니다.
왜 14세의 소년이 이런 황당한 일을 하고 말았는가에 대해서는
아직 조사가 진행 중에 있지만, 분명한 것은 그는 여자 친구의 문제 등으로 인해
학교 선생님과 자신의 부모로부터 매우 큰 상처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상처는 소년으로 하여금 칼을 들고 고속버스에 올라
그 나이 소년으로서는 하기 어려운 실수를 저지르고 마는 원동력이 되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는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 사울을 잘 압니다.
그는 겸손한 사람이었고, 부모를 공경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더구나 이스라엘의 초대 왕에 오를 정도로 멋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울이 10년이란 긴 세월을 왜 그토록 다윗 쫓는데 몰두했을까요 ?
왜 사울 왕은 자기 가진 대부분의 힘을, 오직 한 사람 죽이는데 온통 쏟아 부었을까요 ?
죽이지도 못했으면서 말입니다.
도대체 무엇이 사울을 그렇게 만들었을까요 ?
그렇습니다. 나름대로 다윗에게서 큰 상처를 받았던 것입니다.
또한 더욱 중요한 것은 그 받은 상처를 온전히 치료받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위의 소년이나, 그리고 사울이나 상처의 면에서 보면 동일합니다.
자 ! 사울 왕의 이야기를 좀더 구체적으로 접근해 보겠습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본래 사울 왕은 나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인격적이고 예의바른 사람이었습니다.
전쟁터에서도 지략과 용맹을 갖춘 훌륭한 사령관이었습니다.
승승장구하는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대적 國 블레셋에 한 거인 장수가 나타났습니다.
그 이름은 골리앗이었습니다.
그런데 골리앗의 나타난 때부터 사울은 더 이상 블레셋을 이길 수 없었습니다.
적이 너무 강했기 때문입니다.(물론 믿음의 문제였지만 말입니다)
두려움에 떨던 모든 백성들과 사기가 떨어진 군인들은, 무언가 대책을 기대하면서
왕 사울을 바라보았지만, 왕에게는 특별한 방법이 없었습니다.
사울은 왕으로서 참 난감했습니다. 창피했습니다. 두려웠습니다.
바로 그때, 갑자기 나타난 어린 목동 다윗이 골리앗을 쓰러뜨립니다.
골리앗의 죽음과 동시에 이스라엘은 큰 승리를 거두게 됩니다.
개선하는 왕과 군사들을 백성들이 큰 환호와 함께 맞이했습니다.
사실 사울 왕은 약간 자존심이 상했지만,
결국 자신의 백성인 다윗이 적장을 무찔렀으므로 기쁨과 아량으로 궁(宮)을 향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문제의 노랫소리가 사울 왕의 귀에 들려왔습니다.
"사울이 죽인 사람은 千千이요, 다윗이 죽인 사람은 萬萬이라"(본문7절)
사울 왕은 이 노래로 큰 상처를 받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점점 이상한 사람으로 변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여러분들도 이런 저런 상처를 받은 적이 많이 있지 않습니까 ?
자 ! 우리의 경험을 바탕으로 상처를 입은 사람에게는 어떤 증상이 나타나나요 ?
첫째, 불쾌합니다.(본문8절) 감정이 상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 누군가가 내 감정을 상하게 하면, 그 사람이 괜히 밉습니다.
또 무슨 이야기를 하든 꼭 꼬투리를 잡게 됩니다.
그것이 좀더 심해지면, 그 사람이 나를 향해 웃는 것도 싫고,
나를 칭찬하는 것도 싫게 됩니다.
결국에는 그 사람이 내 주위에 있다는 것이 불쾌하고,
결국 그 사람을 보는 것만으로도 내 감정이 상합니다.
나아가서 그 사람만 싫은 게 아니라
그 사람을 좋아하고 그 사람을 가까이 하는 사람까지 다 싫어집니다.
그에 대한 감정이 좋을 때는 큰 소리로 찬송을 하면, "은혜 풍성하다"고 하면서,
감정이 나쁘면 "목소리 큰 것 자랑한다"고 합니다.
여러분 ! 혹시 지금 여러분이 그렇지 않습니까 ?
둘째, 상처를 입으면 괜히 화가 납니다.(본문8절, '심히 노하였다)
우리 주위에 아무렇지 않다가 갑자기 화를 잘 내는 사람이 있습니까 ?
그에게는 분명 지금 상처가 있습니다.
직장에 출근해 일 잘하다가도,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생각하면 갑자기 화가 납니다.
분노가 치밀어 오릅니다.
바로 그때 옆에서 누군가 말을 시키면, 버럭 화를 내고 마는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 ! 지금 누굴 생각하면 화가 치밀어 오릅니까 ?
그렇다면, 여러분의 마음 속에 깊은 상처가 있는 것입니다.
셋째, 상처를 입으면, 자칫 왜곡된 눈을 가지게 됩니다.
본문9절, "그 날 후로 사울이 다윗을 주목하였더라"고 되어있습니다.
여기서 '주목'했다는 것은 의심의 찬 눈으로 관찰했다는 뜻입니다.
영어성경에서는 'jealous eye'(질투심 가득한 눈)로 표현합니다.
일본어 성경은 "ねたみの目(시샘의 눈)で見るようになった."입니다.
그렇습니다.
상처를 받게 되면, 질투와 의심의 눈으로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밤낮 관찰하게 됩니다.
그 사람이 어디 있든지 상관없이,
그 사람이 하는 모든 일이 나의 최대의 관심사가 되고 맙니다.
시간도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그 사람과 관련시켜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자유 함이 없고, 피곤해지고, 각종 삼류 소설을 쓰고,
그것이 과도해져서 결국 신경쇠약에 빠지게 됩니다.
넷째, 상처를 입으면, 자칫 사단에게 붙잡히게 됩니다.
본문10절을 보면, "악신(惡神)이 사울에게 임해"라고 나옵니다.
그렇습니다.
마음에 상처가 있는 사람에게는 악한 영들이 그 상처를 교두보로 삼아
그 사람의 마음 속에 들어가 아예 자리 잡고 살려고 합니다.
그래서 섭섭한 것만 생각나게 만들고,
서운했던 것만 떠오르게 만들고, 힘들었던 것만 생각나게 만듭니다.
그리고 결국 자신 외에 모두를 원망하게 만듭니다.
오늘 본문의 사울 역시 惡神에 사로잡히니까,
나라를 구하고 자기를 지켜줬던 다윗을 죽여야만이
오히려 자기가 살 수 있다는 생각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는 자기의 남은 일생을 오직 다윗 죽이는 데만 투자합니다.
이쯤 되면, 상처받은 자기의 마음에 독화살을 만들어
가까운 사람부터 닥치는 대로 화살을 쏘아댑니다.
자기가 받은 상처만큼 다른 사람에게 독한 상처를 주며 삽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지금 우리들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
우리들에게도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이런 상처가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
아무리 작은 상처라 하더라도 그것을 치료하지 않으면,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사람이 미워지고, 화를 잘 내게 되며, 질투와 시기의 눈을 갖게 되고,
심지어 사단의 밥이 될 수 있습니다.
독화살을 쏘는 인생이 될 수 있습니다.
만약 그런 상태로 자신을 그냥 둔다면,
나는 가족들에게, 지체들에게 기쁨이 되는 것이 아니라
고통과 괴로움의 대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제 자신과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상처 있습니까 ?
아픕니까 ? 혹시 독화살 만들었습니까 ?
그 상처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
치유해야겠지요.
그렇습니다. 우리들 속에 있는 상처 반드시 치유해야 합니다.
자 ! 그렇다면, 내 마음의 상처는 어떻게 치유할 수 있을까요 ?
그 물건을 만든 사람이 그 물건의 고장난 부분을 가장 잘 고치듯,
우리의 마음을 만드신 분이 상처받은 우리 마음을 가장 잘 고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의 마음의 상처를 치유 받기 위해서는
우리의 마음을 지으신 하나님께로 나아가야 합니다.
저는 지금부터 사울 왕보다 더 큰 상처를 받았던 한 사람을 소개합니다.
누구일까요 ?
그렇습니다. 사울에게 10년 이상을 쫓겨다닌 다윗입니다.
진짜 상처로 얘기하면 다윗만큼 상처를 많이 받은 사람이 있을까요 ?
아버지 심부름으로 전쟁터에 갔다가,
나라를 위해 목숨걸고 골리앗과 싸운 것 밖에 없습니다.
사울 왕의 병 때문에, 명령에 따라 수금과 비파를 연주했으나,
오히려 사울 왕으로부터 날라 온 것은 칭찬이 아니라 왕의 창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후로는 10년 이상의 도피생활이었습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 위해, 나라 위해, 왕 위해, 백성 위해 행한 것뿐인데
왕은 자기를 죽이려고 수천의 군사들로 쫓아옵니다.
상처요 ?
그 누구도 다윗 앞에서는 상처받았다는 말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그는 그 상처를 멋지게 극복했습니다.
어떻게 극복했을까요 ?
첫째, 다윗은 항상 하나님께 묻는 삶을 살았습니다.
구약성경 사무엘서 등에서 다윗의 이야기가 나올 때,
가장 많이 등장하는 말이 "여호와께 (묻자와) 가로되"입니다.
이것이 무슨 말입니까 ?
그렇습니다.
다윗은 끊임없이 기도하고 끊임없이 말씀을 묵상했다는 것입니다.
누구보다 상처를 많이 받았지만 그 상처가 시키는 대로 살지를 않았습니다.
내가 판단한 대로, 내가 상처 입은 대로, 내가 느끼는 대로, 내가 경험한 대로 행하지 않고
매 순간 순간 하나님의 뜻에 내 생각을 검증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니다 싶을 때는 과감히 자기를 쳐서 복종시키고 던져버렸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혹 상처받고 있습니까, 또는 상처 주고 있습니까 ?
둘 다 원인은 하나님과의 교제를 떠난 데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삶에 흐르게 하십시오.
성경의 법이 내 삶에 구체적으로 적용되도록 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이 내 인생 속에, 내 손과 발에, 내 가슴과 머리 속에 나타나게 하십시오.
내 속에서 아무리 옳고 경험적으로 확신하는 결론이 나온다 할지라도,
성경 말씀이 아니라고 할 때에는 과감하게 포기하십시오.
바로 이것이 상처를 극복하는, 상처를 치유하는 최고의 방법입니다.
상처는 내게 상처를 준 사람과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문제가 시작되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사울이 하나님과 관계가 좋았을 때는 별 이야기를 다 들어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그냥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 만큼 마음의 평안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가 처음에 왕에 선택되었을 때, 일부 사람들이
"저 사람이 어떻게 왕감이냐 ? 안 된다"다 했을 때,
사울은 마음상해 하지 않았습니다(삼상11:12-13).
왜 그러했습니까 ? 성령에 붙들려 있었기 때문입니다(삼상11:6).
그러나, 왕위에 올라 승리를 거듭했던 사울은 하나님을 떠납니다.
하나님 없이도 될 것 같아, 자신의 의지로만 전쟁에 나갑니다.
제사장만이 주재할 수 있는 제사도 맘대로 드립니다.
결국 사울은 하나님을 떠났고, 자신을 신뢰했으며,
작은 상처에도 무너지는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내 판단한 대로, 내 상처 입은 대로, 내가 느끼는 대로, 내 경험대로 하지말고
매 순간 순간 하나님의 뜻에 생각을 검증하여
여러분의 상처를 치유함 받기를 축원합니다.
둘째, 다윗은 모든 것이 主께로부터 온 것임을 잊지 않았습니다.
역대상29:10-14절을 보겠습니다.
"다윗이 온 회중 앞에서 여호와를 송축하여 가로되
우리 조상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영원히 송축을 받으시옵소서
여호와여 광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이김과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유의 머리심이니이다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유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자를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우리 하나님이여 이제 우리가 주께 감사하오며 주의 영화로운 이름을 찬양하나이다
나와 나의 백성이 무엇이관대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
이 장면은 다윗이 성전 건축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드리며,
하나님께 기도하는 장면입니다.
이 기도에는 다윗의 마음이 들어 있습니다. 다윗의 고백이 있습니다.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 모든 자를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 주께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
여러분 ! 사울이 왜 상처를 받았습니까 ?
왕의 자리를 빼앗길 것 같아서였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나라입니다.
하나님이 선택한 나라요, 그분이 통치하시는 나라입니다.
그러니 하나님만 앞세우면 오히려 어려울 게 하나 없는 나라입니다.
그런데 사울이 중요하게 여긴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
하나님의 뜻보다, 우습게도 자기 자리에 더 관심이 있었습니다.
본문8절을 '표준 새 번역'성경으로 보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이 말에 사울은 몹시 언짢았다. 생각할수록 화가 치밀어 올랐다.
'사람들이 다윗에게는 수만 명을 돌리고, 나에게는 수천 명만을 돌렸으니,
이제 그에게 더 돌아갈 것은 이 왕의 자리밖에 없겠군'하고 투덜거렸다."
지금 사울은 중요한 것을 잊고 있습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우리들은 자리에 참 관심이 많습니다.
그래서 누구든 어떤 자리를 차지하게 되면, 그 자리를 지키려는 마음이 생깁니다.
바로 그때, 누군가가 내 자리를 노리고, 주변 사람들로부터 무언의 압력을 받을 때,
분노가 생기고, 괘씸하게 생각하고
심지어는 그 사람이 없어져 줬으면 하는 마음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상처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자리에 연연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때로 가난한 자리에 처할 수도 있고 남이 짓밟는 자리에 있을 수도 있습니다.
내가 연약할 때도 있고 병중에 있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자리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어떤 자리에 있더라도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뜻이 내게 이뤄지는 것에 관심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어떤 경우에도 그것이 상처가 되지 않습니다.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여러분 ! 반드시 기억하십시오.
누가 뭐라 해도 우리는 하나님의 소중한 존재입니다.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이사야43:1)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가치는 사람의 말에 있지 않습니다.
오직 우리 한 사람을 천하보다도 귀하게 여기시는 하나님의 그 엄청난 사랑에
감싸져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고로 나를 두고 뭐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평가는 저 너머로 차 버리십시오.
누가 뭐라 해도 우리는 예수님의 생명과 맞바꾼 고귀한 존재들입니다.
이것을 믿으시고 말의 상처를 극복하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호세아6:1,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할렐루야 !
하나님은 당신을 통해 크고 놀라운 일을 이루시기 위해, 이곳으로 당신을 부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위해 이곳에 준비하신 모든 것들을 이제부터 누리시기 바랍니다.
지난 16일(수요일), 愛知縣 東名高速道路에서 バスジャック事件이 있었습니다.
이 사건의 범인은 山口縣에 사는 中學2年의 소년(14세)으로 현장에서 붙잡혔습니다.
왜 14세의 소년이 이런 황당한 일을 하고 말았는가에 대해서는
아직 조사가 진행 중에 있지만, 분명한 것은 그는 여자 친구의 문제 등으로 인해
학교 선생님과 자신의 부모로부터 매우 큰 상처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상처는 소년으로 하여금 칼을 들고 고속버스에 올라
그 나이 소년으로서는 하기 어려운 실수를 저지르고 마는 원동력이 되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는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 사울을 잘 압니다.
그는 겸손한 사람이었고, 부모를 공경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더구나 이스라엘의 초대 왕에 오를 정도로 멋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울이 10년이란 긴 세월을 왜 그토록 다윗 쫓는데 몰두했을까요 ?
왜 사울 왕은 자기 가진 대부분의 힘을, 오직 한 사람 죽이는데 온통 쏟아 부었을까요 ?
죽이지도 못했으면서 말입니다.
도대체 무엇이 사울을 그렇게 만들었을까요 ?
그렇습니다. 나름대로 다윗에게서 큰 상처를 받았던 것입니다.
또한 더욱 중요한 것은 그 받은 상처를 온전히 치료받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위의 소년이나, 그리고 사울이나 상처의 면에서 보면 동일합니다.
자 ! 사울 왕의 이야기를 좀더 구체적으로 접근해 보겠습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본래 사울 왕은 나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인격적이고 예의바른 사람이었습니다.
전쟁터에서도 지략과 용맹을 갖춘 훌륭한 사령관이었습니다.
승승장구하는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대적 國 블레셋에 한 거인 장수가 나타났습니다.
그 이름은 골리앗이었습니다.
그런데 골리앗의 나타난 때부터 사울은 더 이상 블레셋을 이길 수 없었습니다.
적이 너무 강했기 때문입니다.(물론 믿음의 문제였지만 말입니다)
두려움에 떨던 모든 백성들과 사기가 떨어진 군인들은, 무언가 대책을 기대하면서
왕 사울을 바라보았지만, 왕에게는 특별한 방법이 없었습니다.
사울은 왕으로서 참 난감했습니다. 창피했습니다. 두려웠습니다.
바로 그때, 갑자기 나타난 어린 목동 다윗이 골리앗을 쓰러뜨립니다.
골리앗의 죽음과 동시에 이스라엘은 큰 승리를 거두게 됩니다.
개선하는 왕과 군사들을 백성들이 큰 환호와 함께 맞이했습니다.
사실 사울 왕은 약간 자존심이 상했지만,
결국 자신의 백성인 다윗이 적장을 무찔렀으므로 기쁨과 아량으로 궁(宮)을 향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문제의 노랫소리가 사울 왕의 귀에 들려왔습니다.
"사울이 죽인 사람은 千千이요, 다윗이 죽인 사람은 萬萬이라"(본문7절)
사울 왕은 이 노래로 큰 상처를 받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점점 이상한 사람으로 변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여러분들도 이런 저런 상처를 받은 적이 많이 있지 않습니까 ?
자 ! 우리의 경험을 바탕으로 상처를 입은 사람에게는 어떤 증상이 나타나나요 ?
첫째, 불쾌합니다.(본문8절) 감정이 상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 누군가가 내 감정을 상하게 하면, 그 사람이 괜히 밉습니다.
또 무슨 이야기를 하든 꼭 꼬투리를 잡게 됩니다.
그것이 좀더 심해지면, 그 사람이 나를 향해 웃는 것도 싫고,
나를 칭찬하는 것도 싫게 됩니다.
결국에는 그 사람이 내 주위에 있다는 것이 불쾌하고,
결국 그 사람을 보는 것만으로도 내 감정이 상합니다.
나아가서 그 사람만 싫은 게 아니라
그 사람을 좋아하고 그 사람을 가까이 하는 사람까지 다 싫어집니다.
그에 대한 감정이 좋을 때는 큰 소리로 찬송을 하면, "은혜 풍성하다"고 하면서,
감정이 나쁘면 "목소리 큰 것 자랑한다"고 합니다.
여러분 ! 혹시 지금 여러분이 그렇지 않습니까 ?
둘째, 상처를 입으면 괜히 화가 납니다.(본문8절, '심히 노하였다)
우리 주위에 아무렇지 않다가 갑자기 화를 잘 내는 사람이 있습니까 ?
그에게는 분명 지금 상처가 있습니다.
직장에 출근해 일 잘하다가도,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생각하면 갑자기 화가 납니다.
분노가 치밀어 오릅니다.
바로 그때 옆에서 누군가 말을 시키면, 버럭 화를 내고 마는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 ! 지금 누굴 생각하면 화가 치밀어 오릅니까 ?
그렇다면, 여러분의 마음 속에 깊은 상처가 있는 것입니다.
셋째, 상처를 입으면, 자칫 왜곡된 눈을 가지게 됩니다.
본문9절, "그 날 후로 사울이 다윗을 주목하였더라"고 되어있습니다.
여기서 '주목'했다는 것은 의심의 찬 눈으로 관찰했다는 뜻입니다.
영어성경에서는 'jealous eye'(질투심 가득한 눈)로 표현합니다.
일본어 성경은 "ねたみの目(시샘의 눈)で見るようになった."입니다.
그렇습니다.
상처를 받게 되면, 질투와 의심의 눈으로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밤낮 관찰하게 됩니다.
그 사람이 어디 있든지 상관없이,
그 사람이 하는 모든 일이 나의 최대의 관심사가 되고 맙니다.
시간도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그 사람과 관련시켜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자유 함이 없고, 피곤해지고, 각종 삼류 소설을 쓰고,
그것이 과도해져서 결국 신경쇠약에 빠지게 됩니다.
넷째, 상처를 입으면, 자칫 사단에게 붙잡히게 됩니다.
본문10절을 보면, "악신(惡神)이 사울에게 임해"라고 나옵니다.
그렇습니다.
마음에 상처가 있는 사람에게는 악한 영들이 그 상처를 교두보로 삼아
그 사람의 마음 속에 들어가 아예 자리 잡고 살려고 합니다.
그래서 섭섭한 것만 생각나게 만들고,
서운했던 것만 떠오르게 만들고, 힘들었던 것만 생각나게 만듭니다.
그리고 결국 자신 외에 모두를 원망하게 만듭니다.
오늘 본문의 사울 역시 惡神에 사로잡히니까,
나라를 구하고 자기를 지켜줬던 다윗을 죽여야만이
오히려 자기가 살 수 있다는 생각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는 자기의 남은 일생을 오직 다윗 죽이는 데만 투자합니다.
이쯤 되면, 상처받은 자기의 마음에 독화살을 만들어
가까운 사람부터 닥치는 대로 화살을 쏘아댑니다.
자기가 받은 상처만큼 다른 사람에게 독한 상처를 주며 삽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지금 우리들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
우리들에게도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이런 상처가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
아무리 작은 상처라 하더라도 그것을 치료하지 않으면,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사람이 미워지고, 화를 잘 내게 되며, 질투와 시기의 눈을 갖게 되고,
심지어 사단의 밥이 될 수 있습니다.
독화살을 쏘는 인생이 될 수 있습니다.
만약 그런 상태로 자신을 그냥 둔다면,
나는 가족들에게, 지체들에게 기쁨이 되는 것이 아니라
고통과 괴로움의 대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제 자신과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상처 있습니까 ?
아픕니까 ? 혹시 독화살 만들었습니까 ?
그 상처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
치유해야겠지요.
그렇습니다. 우리들 속에 있는 상처 반드시 치유해야 합니다.
자 ! 그렇다면, 내 마음의 상처는 어떻게 치유할 수 있을까요 ?
그 물건을 만든 사람이 그 물건의 고장난 부분을 가장 잘 고치듯,
우리의 마음을 만드신 분이 상처받은 우리 마음을 가장 잘 고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의 마음의 상처를 치유 받기 위해서는
우리의 마음을 지으신 하나님께로 나아가야 합니다.
저는 지금부터 사울 왕보다 더 큰 상처를 받았던 한 사람을 소개합니다.
누구일까요 ?
그렇습니다. 사울에게 10년 이상을 쫓겨다닌 다윗입니다.
진짜 상처로 얘기하면 다윗만큼 상처를 많이 받은 사람이 있을까요 ?
아버지 심부름으로 전쟁터에 갔다가,
나라를 위해 목숨걸고 골리앗과 싸운 것 밖에 없습니다.
사울 왕의 병 때문에, 명령에 따라 수금과 비파를 연주했으나,
오히려 사울 왕으로부터 날라 온 것은 칭찬이 아니라 왕의 창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후로는 10년 이상의 도피생활이었습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 위해, 나라 위해, 왕 위해, 백성 위해 행한 것뿐인데
왕은 자기를 죽이려고 수천의 군사들로 쫓아옵니다.
상처요 ?
그 누구도 다윗 앞에서는 상처받았다는 말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그는 그 상처를 멋지게 극복했습니다.
어떻게 극복했을까요 ?
첫째, 다윗은 항상 하나님께 묻는 삶을 살았습니다.
구약성경 사무엘서 등에서 다윗의 이야기가 나올 때,
가장 많이 등장하는 말이 "여호와께 (묻자와) 가로되"입니다.
이것이 무슨 말입니까 ?
그렇습니다.
다윗은 끊임없이 기도하고 끊임없이 말씀을 묵상했다는 것입니다.
누구보다 상처를 많이 받았지만 그 상처가 시키는 대로 살지를 않았습니다.
내가 판단한 대로, 내가 상처 입은 대로, 내가 느끼는 대로, 내가 경험한 대로 행하지 않고
매 순간 순간 하나님의 뜻에 내 생각을 검증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니다 싶을 때는 과감히 자기를 쳐서 복종시키고 던져버렸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혹 상처받고 있습니까, 또는 상처 주고 있습니까 ?
둘 다 원인은 하나님과의 교제를 떠난 데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삶에 흐르게 하십시오.
성경의 법이 내 삶에 구체적으로 적용되도록 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이 내 인생 속에, 내 손과 발에, 내 가슴과 머리 속에 나타나게 하십시오.
내 속에서 아무리 옳고 경험적으로 확신하는 결론이 나온다 할지라도,
성경 말씀이 아니라고 할 때에는 과감하게 포기하십시오.
바로 이것이 상처를 극복하는, 상처를 치유하는 최고의 방법입니다.
상처는 내게 상처를 준 사람과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문제가 시작되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사울이 하나님과 관계가 좋았을 때는 별 이야기를 다 들어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그냥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 만큼 마음의 평안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가 처음에 왕에 선택되었을 때, 일부 사람들이
"저 사람이 어떻게 왕감이냐 ? 안 된다"다 했을 때,
사울은 마음상해 하지 않았습니다(삼상11:12-13).
왜 그러했습니까 ? 성령에 붙들려 있었기 때문입니다(삼상11:6).
그러나, 왕위에 올라 승리를 거듭했던 사울은 하나님을 떠납니다.
하나님 없이도 될 것 같아, 자신의 의지로만 전쟁에 나갑니다.
제사장만이 주재할 수 있는 제사도 맘대로 드립니다.
결국 사울은 하나님을 떠났고, 자신을 신뢰했으며,
작은 상처에도 무너지는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내 판단한 대로, 내 상처 입은 대로, 내가 느끼는 대로, 내 경험대로 하지말고
매 순간 순간 하나님의 뜻에 생각을 검증하여
여러분의 상처를 치유함 받기를 축원합니다.
둘째, 다윗은 모든 것이 主께로부터 온 것임을 잊지 않았습니다.
역대상29:10-14절을 보겠습니다.
"다윗이 온 회중 앞에서 여호와를 송축하여 가로되
우리 조상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영원히 송축을 받으시옵소서
여호와여 광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이김과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유의 머리심이니이다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유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자를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우리 하나님이여 이제 우리가 주께 감사하오며 주의 영화로운 이름을 찬양하나이다
나와 나의 백성이 무엇이관대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
이 장면은 다윗이 성전 건축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드리며,
하나님께 기도하는 장면입니다.
이 기도에는 다윗의 마음이 들어 있습니다. 다윗의 고백이 있습니다.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 모든 자를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 주께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
여러분 ! 사울이 왜 상처를 받았습니까 ?
왕의 자리를 빼앗길 것 같아서였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나라입니다.
하나님이 선택한 나라요, 그분이 통치하시는 나라입니다.
그러니 하나님만 앞세우면 오히려 어려울 게 하나 없는 나라입니다.
그런데 사울이 중요하게 여긴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
하나님의 뜻보다, 우습게도 자기 자리에 더 관심이 있었습니다.
본문8절을 '표준 새 번역'성경으로 보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이 말에 사울은 몹시 언짢았다. 생각할수록 화가 치밀어 올랐다.
'사람들이 다윗에게는 수만 명을 돌리고, 나에게는 수천 명만을 돌렸으니,
이제 그에게 더 돌아갈 것은 이 왕의 자리밖에 없겠군'하고 투덜거렸다."
지금 사울은 중요한 것을 잊고 있습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우리들은 자리에 참 관심이 많습니다.
그래서 누구든 어떤 자리를 차지하게 되면, 그 자리를 지키려는 마음이 생깁니다.
바로 그때, 누군가가 내 자리를 노리고, 주변 사람들로부터 무언의 압력을 받을 때,
분노가 생기고, 괘씸하게 생각하고
심지어는 그 사람이 없어져 줬으면 하는 마음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상처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자리에 연연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때로 가난한 자리에 처할 수도 있고 남이 짓밟는 자리에 있을 수도 있습니다.
내가 연약할 때도 있고 병중에 있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자리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어떤 자리에 있더라도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뜻이 내게 이뤄지는 것에 관심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어떤 경우에도 그것이 상처가 되지 않습니다.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여러분 ! 반드시 기억하십시오.
누가 뭐라 해도 우리는 하나님의 소중한 존재입니다.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이사야43:1)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가치는 사람의 말에 있지 않습니다.
오직 우리 한 사람을 천하보다도 귀하게 여기시는 하나님의 그 엄청난 사랑에
감싸져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고로 나를 두고 뭐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평가는 저 너머로 차 버리십시오.
누가 뭐라 해도 우리는 예수님의 생명과 맞바꾼 고귀한 존재들입니다.
이것을 믿으시고 말의 상처를 극복하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호세아6:1,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할렐루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