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10월25일, 마태복음 11:25-30(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 主日説教原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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主日説教原稿

2009 2009년10월25일, 마태복음 11:25-30(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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投稿者 박성철
コメント 0件 照会 13,384回 日時 09-11-02 21:30

本文

  자 ! 옆에 있는 귀한 지체들을 이렇게 축복합시다.
  당신은 우리 본향교회에 새 바람을 일으킬,
  초대교회의 헬라파 유대인과 같은 큰 능력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통해 이 땅의 복음화를 크게 이루실 것입니다.

  저는 자동차 운전을 하지는 못하지만,
  1년에 몇 번 정도, 자동차를 타고 3시간 이상의 장거리 여행을 할 때가 있습니다.
  수양회, 혹은 타 지역의 목사님들과 만남, 한국 교회에서의 회의 등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
  여러분은 다른 사람이 운전하는 차에 탔을 때,
  운전하는 분의 말동무가 되어주는 편입니까, 아니면, 잠을 즐기는 편입니까 ?

  자 ! 반대로, 자동차 운전을 즐겨하시는 여러분 !
  여러분은 함께 차에 탄 사람이 말동무가 되어주는 편이 좋습니까 ?
  아니면 조용히 잠자고 있는 것이 좋습니까 ?

  제가 아는 어느 목사님은, 자신이 운전하는 차에 탄 분들이 깊은 잠에 빠지면
  그렇게 기분이 좋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자신을 믿고 평안히 잠을 자주는 것이 고맙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실제 그렇지요. 믿을 수 없는 차에 타면, 기도가 절로 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최근 여러분들의 삶 속에서 무겁게 지고 있는 짐이 혹 있습니까 ?
  그 가운데 지금 여러분을 가장 힘들게 하는 짐은 어떤 것입니까 ?
  그렇습니다.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작든 크든 짐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짐이란 것이, 시간이 갈수록 가벼워져야 되는데,
  점점 더 무거워지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알게 모르게 우리를 짓누르고,
  그런 생활이 계속 되다 보니까 어디서든 참 안식을 누리기가 참 힘이 듭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들에게 그대로 스트레스로 쌓여집니다.

  몇 해전, 뉴욕 타임즈가 미국 직장인들이
  자신들의 스트레스를 푸는 비용에 얼마나 투자하는가를 보도한 적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약을 복용한다든가, 운동을 한다든가,
  좀 심하면 정신과 치료를 받는다든가 등등입니다.
  그런데 그 비용이 자그마치 1년에 30兆엔이 넘었습니다.
  한국의 2009년도 예산이 20兆엔 정도이니까 그 규모가 대단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
  무거운 짐을 지고 인생을 살아가는 이 땅의 모든 인생들에게 오늘 예수님의 말씀은
  놀라운 위로와 힘이 됩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본문28절,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지금 우리 주님께서 당신 앞에서 편히 쉬라고 우리를 초청하십니다.
  이 귀한 시간, 주님의 초청에 응답하여 평안을 얻기를 축복합니다.
  믿을 만한 분이 운전하는 차에 탔을 때, 평안히 잠을 청하는 것처럼,
  모든 무거운 짐을 예수께 맡기고 평안을 얻기 바랍니다.

  그런데 오늘 이 말씀을 보면서, 참 안타까운 일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이 은혜의 말씀을 통해,
  참 평안과 안식을 누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예수님의 초청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말씀이 자기의 심령에 꽂히질 않아서 초대에 응하지 않는 사람이 많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은 말 할 것도 없고,
  심지어 오랫동안 교회를 다닌 사람 중에도 이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늘 염려 근심가운데 살며, 매사에 안절부절하고,
  심지어 예배드리는 자리에까지 나와서도 편안하지 못합니다.
  그런 사람은 무엇인가에 짓눌려있는 듯이 늘 표정이 어둡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
  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초청에 응하지 않을까요 ?
  왜 다른 사람한테는 다 들리는 그 음성이 유독 자기에게만은 들리지 않을까요 ?
  그 답이 본문에 있습니다.

  본문25절, "그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겐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그렇습니다.
  자칭 지혜롭고 슬기로운 자들입니다.
  이들의 특징은, 교만합니다. 모든 것을 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방법과 생각대로만 살면 결코 어려움이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같은 말씀을 들어도 겸손한 이들은 은혜 받고 눈물로 반응하지만,
  이들의 마음은 바위처럼 움직이지 않습니다.
  예배는 대부분 구경하다가 시간을 다 보냅니다.
  그들의 마음 밭에 수많은 말씀들이 뿌려지지만, 그 말씀은 금방 말라죽고 맙니다.
  이런 분들에게 나타나는 현상 중 하나가 위선적인 이중생활입니다.
  교회에서는 거룩한 것 같은데,
  세상에 나가서는 온갖 잘못된 방법을 습득하고 그것을 이용하며 살아갑니다.
  이들의 특징은, 교회 밖에서 성도를 만나면 매우 부담스러워 합니다.
  또 이런 사람들은 교회와 성도들에 대해서 비판하고 원망합니다.

  사도행전9장에 보면, 사울의 변화되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특히 사도행전9:18절을 보면,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의 눈에서도 이 비늘이 벗어져야 합니다.
  믿음이 뭔지, 교회생활이 어떤 건지 그 분위기는 알고 있지만,
  그것이 전혀 나에게 의미가 없는 그런 생활은 이제 그쳐야 합니다.
  경건의 모양만을 말하지 말고, 경건의 능력을 체험해야 합니다.
  오늘 이 예배 가운데 그 은혜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자 ! 본론으로 들어가서,
  그렇다면, 오늘 주님께서 우리를 초청하시면서 주님 앞에 내려놓으라고 하신
  그 짐들은 무엇일까요 ?

  첫째, 종교생활 가운데 생겨난 비본질적인 짐입니다.
  자동차로 비유하면, 연비를 나쁘게 하는 불필요한 장식들을 잘라내 버리라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 이런 일들이 있었습니다.
  당시 바리새인, 서기관들은 율법을 가지고 일반 백성들을 짓눌렀습니다.

  마태복음23:2절에 보면, 예수님이 이렇게 진노하십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즉, 서기관과 모세가 율법을 마음대로 주물럭거린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계속해서 말씀합니다.
  마태복음4:24,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
  그렇습니다.
  힘든 율법을 만들어 일반백성을 억압하되,
  자신들은 그 법을 하나도 지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당시에 있었던 전해 내려오는 한 이야기를 소개하겠습니다.
  유대의 어느 지방에 한 과부가 두 딸을 데리고 약간의 밭을 경작하면서
  어렵게 살고 있었습니다.
  이른 봄날, 그 과부는 착한 이웃에게 소와 나귀를 빌려,
  들에 나가 밭을 갈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모세가 나타나 과부에게 말합니다.
  신명기22:10, "너는 소와 나귀를 한 멍에에 메워 밭을 갈지 말라"

  또 씨 뿌릴 때가 되니까, 다시 나타나 이렇게 말합니다.
  레위기19:19, "네 밭에 두 종자를 섞어 뿌리지 말라"

  또 추수할 때가 되니까, 다시 나타나 이렇게 말합니다.
  신명기24:19, "잊어버리고 온 곡식더미를 다시 가서 취하지 말라"
  레위기19:9, "곡물을 벨 때에 밭 모퉁이 것은 남겨두고, 또 이삭도 모두 줍지 말고
 (가난한 자들을 위해) 남겨 두라"

  마지막으로 타작을 하게 되자, 다시 나타나 이렇게 말합니다.
 "번제와 처음의 십분의 일, 또 그 다음의 십분의 일을 드려야 한다"

  결국, 가난한 과부는 율법에 순종하기 위해,
  소득의 대부분을 모세에게 바치고 말았습니다.
  그 후, 이 과부의 가정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
  겨울이 시작되기도 전에 먹을 것이 떨어져,
  과부는 할 수 없이 밭을 팔아서 양 두 마리를 사 가지고 그 털로 옷을 마련하고
  사ㅣ끼를 낳아서 생활을 하기로 했습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아론이 나타나서 말을 합니다.(레위기27:26)
 "양들이 사ㅣ끼를 낳게 되면, 처음 난 것을 나에게 바치라"

  이번에는 털을 깎을 때가 되니까 아론이 다시 나타납니다.
  신명기18:4, "너의 처음 깎은 양털은 나에게 줄 것이니"

  가난한 과부는 생각했습니다.
 "아 ! 수많은 율법들 때문에 도저히 견딜 수 없구나 !"
  그래서 그냥 그 양들을 잡아먹기로 결정합니다.
  그랬더니 그때도 아론이 와서 이렇게 말합니다.
  신명기18:3, "나에게 그 앞 넓적다리와 두 볼과 위를 달라"

  그러자 그 과부는 다시 생각합니다.
 "내가 이 양들을 잡아먹어도 저 제사장에게 빼앗기는 구나 !"
 "이럴 바에는 차라리 하나님께 다 헌물로 드리자 !"

  그랬더니, 아론이 이렇게 말합니다.
  민수기18:14, "이스라엘 중에서 특별히 드린 모든 것은 내 것이다"하면서
  모두 가져가 버렸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이야기는 하나님의 율법을 자기들 마음대로 해석해서,
  연약한 사람들의 것을 도적질한
  당시 종교지도자들의 비행(非行)을 고발한 이야기입니다.
  실제로, 예수님 당시에 많은 종교지도자들이
  율법을 빙자하여 연약한 신자들의 것을 빼앗았습니다.
  본질(本質), 즉 하나님 사랑은 어디로 가버리고,
  오직 인간의 이익만을 취한 참으로 악한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러한 짐을 벗겨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들이 꼭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교회는 좋은 곳입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공동체입니다.
  그러나 또 하나 반드시 기억하실 것은, 교회는 상하기 쉬운 음식과 같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영양가 높은 음식이 상하면 더 악취를 풍기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교회는 변질되기 쉬운 죄인 된 인간들의 모임입니다.
  가장 상하기 쉬운 곳이 교회입니다. 상하게 되면, 냄새가 대단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앙의 본질을 잃지 않고 지켜나가야 합니다.
  신앙의 본질은 우리가 구원받는 것이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며, 또 지체가 서로 사랑하며 섬기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행하여지는 여러 가지 중에서 구원,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과 관계가 없으면
  그것은 비 본질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보혈로 구원을 받았으니,
  그 구원을 전하기 힘쓰는 것이 우리가 담당해야 할 본질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므로 드리는 예배(찬송, 기도, 말씀, 헌물, 헌화)는
  우리가 감당할 중요한 본질입니다.
  이웃 사랑을 위해 행하는 구제, 봉사, 섬김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에 비 본질들이 존재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여 예배드릴 곳이, 남녀간의 사랑의 장소로 전락합니다.
  애인간의 관계가 온전히 못하다하여 예배와 헌신을 게을리 합니다.
  사업상 관계, 돈 거래 등으로 인해, 상대의 얼굴이 보기 싫다고, 얼굴을 돌립니다.
  심지어는 교회, 성도들을 비판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이 모든 것은 비 본질입니다. 만약 이런 것 때문에, 교회를 떠났고,
  이런 것 때문에 교회생활이 힘들다면, 이 모든 것을 예수님 앞에 내려놓아야 합니다.
  주객(主客)이 전도(顚倒)되어서는 안 됩니다.

  자 ! 이 시간 함께 기도합시다.
 "주님 ! 이 시간 교회생활로 인한 비본질적인 것에 대해 목매지 말게 하옵소서.
  본질(하나님 사랑, 이웃 섬김, 예배, 복음전파)에 내 마음과 정성을
  모두 쏟게 하옵소서 !"
  이 시간 주님께서 그 모든 짐을 완전히 제거해 주실 줄 믿습니다.

  둘째, 세상 생활 가운데 지게 된 무거운 짐입니다.
  사실 현대인들이 지고 가는 짐은 참으로 무겁습니다.
  더구나 그 짐들은 피할 수 없는 필연적인 짐입니다.
  창세기3:17, "너는 종신(終身)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창세기3:19,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직장생활 가운데 지게 된 짐들이 있습니다.
  상사와 선배들의 눈초리의 짐, 동료들과의 경쟁과 비교의 짐,
  더구나 가끔씩 찾아오는 좌절감은 참 무거운 짐입니다.
  학교생활 가운데 지게 되는 짐들도 있습니다.
  직장생활도 마찬가지이지만, 언어의 짐, 나이 차이의 짐, 등록금의 짐,
  생활비의 짐 등 만만치 않은 짐들을 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통해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본문29-30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여기에서 '나의 멍에를 메고'라는 말은, 유대인들이 쓰는 관용적 표현으로서,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표현한 말입니다.
  특히 유대인들의 멍에는 항상 둘이 같이 메므로,
  여기서는 예수님께서 함께 우리의 멍에를 메어 주신다는 의미입니다.

  사실, 철이 많이 든 사람일수록 삶이 힘듭니다.
  대부분의 장남, 장녀는 철이 빨리 들어, 부모님, 가족, 친척 등
  이곳 저곳을 살피느라 많이 힘듭니다.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철든 성도들이 철들지 않은 성도들의 짐까지 함께 져 주느라고 참 힘이 듭니다.
  그런데 철든 성도들이 주의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지실 것까지, 자기가 지려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예수님이 붙들어 주고 계신 것까지, 자기가 책임지려 몸부림치지 않기 바랍니다.

  여러분 !
  무엇이 성공적인 직장생활이며, 무엇이 성공적인 학교생활입니까 ?
  그렇습니다. 나의 가진 재능 가운데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결과는 맡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결과까지 자기가 책임을 지려합니다.
  회사, 가정, 교회, 나의 성공, 자녀들의 삶,
  이 모든 것 우리가 끝까지 책임질 수 없습니다.
  그저 우리는 나의 재능에 따라 최선을 다하는 것뿐입니다.
  나머지는 우리 주님께서 함께 져 주십니다. 이루어 가십니다.

  왜, 많은 사람들이 자녀교육을 어렵다고 합니까 ?
  그것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부모 자신이 책임을 지려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부모가 그렇게 한다고 자식이 부모의 뜻대로 책임져 집니까 ?
  아닙니다.
  우리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자녀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지금 우리들이 세상 생활 속에서 지고 있는 짐을 예수님이 함께 지시기를 원하십니다.
  더구나 그 가운데는 우리들이 감당하지 않아도 될 짐들이 많습니다.
  그것을 과감히 주님 앞에 내려놓으십시오.
  놀라운 주님의 평강이 우리에게 임하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지금 우리들에게는 여러 종류의 짐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습니다.

  첫째, 종교적으로 잘못된 비 본질의 짐들이 있습니다.
  교회에서 행하여지는 여러 가지 중에서 구원,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과 관계가 없으면 그것은 비 본질이라 했습니다.
  만약 이것 외의 것들로 지쳐있다면, 과감히 그것들을 버려야 합니다.
  그래서 본질을 회복하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둘째, 세상 삶 속에서 져야할 무거운 짐들이 있습니다.
  그중 많은 것들이 우리가 감당하지 않아도 될 것들입니다.
  주님이 감당하실 것을 우리가 감당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주님은 우리가 지고 있는 그 짐을 넘겨달라며 기다리십니다.

  오래 전 시골마을에서 어떤 할머니가 무거운 짐을 머리에 이고 길을 가는데,
  그 할머니 앞에 자동차가 섰습니다.
 "할머니 어디까지 가세요. 타세요. 모셔다 드릴게요"
  할머니는 감사한 마음으로 차에 올랐습니다.
  이제 차가 출발하는데 할머니가 머리 위의 짐을 바닥에 내려놓지 않습니다.
  고마운 자동차 주인이 말합니다. "할머니 짐을 의자 밑에 내려놓으세요."
  할머니가 말합니다.
 "이런 미안해서, 차를 태워주신 것도 고마운데, 짐까지 어떻게 맡겨요 ?!

  우리들은 혹 어떻습니까 ?
 "십자가에 달려 피 흘려 구원해 주신 것 고마운데, 어떻게 내 짐까지 맡겨요 ?!"

  성도여러분 !
  이렇게 마음을 바꾸면, 그 짐이 무겁지 않습니다.

  성공을 위해 일하지 말고, 하나님 영광 위해 일하십시오.
  승리를 위해 일하지 말고, 섬김을 위해 일하십시오.
  내 자존심을 위해 일하지 말고, 주님의 이름을 위해 일하십시오.

  그리할 때,
  우리들은 정직을 지킬 수 있고,
  신의를 지킬 수 있으며,
  비로소 세상에서 온전히 그리스도의 향기를 품을 수 있습니다.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주님은 다시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오늘, 그리고 이번 한 주간, 주님의 이 간절한 초청에 모두 응답하셔서,
  어느 해보다 따뜻하고, 풍성하고, 평안한 가을을 맞는 모든 본향성도 되시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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