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主日説教原稿

2009 2009년7월12일, 사무엘상 22:1-2(교회는 의인들이 모여드는 공동체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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投稿者 박성철
コメント 0件 照会 13,169回 日時 09-07-13 17:29

本文

  자 ! 옆에 있는 귀한 지체들을 이렇게 축복합시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당신을 향한 놀라운 축복의 원천입니다.
  오늘도 그 놀라운 은혜와 사랑, 복을 풍성히 누리시기를 축복합니다.

  지난 주일은 맥추감사 주일이었으므로 감사에 대한 말씀을 전했지만,
  저는 지난5월24일부터 여러분들에게 기독교의 본질,
  그리고 우리는 무엇을 믿는지,
  또한 성경은 무엇을 말하는지에 대해서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 일곱 번째 시간으로, 교회에 대한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제가 두 주 전 말씀을 전할 때, 교회는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
  그렇습니다.
 "세상에서 부름 받은 성도가 교회이며,
  그 성도들의 모임이 또한 교회"(엨클레시아)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
  이러한 교회(엨클레시아)는 누가 세울까요 ?
  성도들이 세울까요 ?
  아니면 목사가 세울까요 ?
  아니면 교회가 또 다른 교회를 세울까요 ?

  마태복음16:18절을 함께 보겠습니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わたしはこの岩の上にわたしの敎會を建てる. 陰府の力もこれに對抗できない.)
  그렇습니다.
  여기에서 '내'는 물론 예수님이십니다.
  그리고 '반석'은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신 것과 하나님의 아들임을 인정하는 신앙고백과
  그것을 고백한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금방 읽은 마태복음16:18절의 말씀의 의미는,
  예수께서 참된 신앙고백을 한 사람들 위에 자신의 교회로 세우신다는 것입니다.

  또한 음부의 권세가 이길 수 없다는 의미는,
  주님이 한 번 세우신 교회는 주님에 의하지 않고서는 어떤 경우에도,
  그리고 그 누구를 통해서도 쓰러지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여러분은 예수님이 친히 세우신 교회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한 우리들이 모인 이 본향교회도 결코 쓰러지지 않는 줄 믿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
  여기서 잠깐 깊이 주목해야 할 말씀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2:4-5,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あなたに言うべきことがある. あなたは初めのころの愛から離れてしまった.
  だから, どこから落ちたかを思い出し, 悔い改めて初めのころの行いに立ち戾れ.
  もし悔い改めなければ, わたしはあなたのところへ行って,
  あなたの燭台をその場所から取りのけてしまおう.)

  정말 무서운 말씀입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교회가 교회답지 않으면
  주님은 언제든지 그 교회에서 제단의 촛대를 옮기신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교회의 간판을 내리고 문을 닫아 버리시겠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지금 이 땅에는 많은 교회들이 세워지고 있지만,
  또한 교회들이 하나 둘 사라져가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예수께서 제단의 촛대를 옮겨버린 교회들이 있습니다.
  즉, 주님이 계시지 않는 교회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교회가 아닙니다.
  자 ! 그렇다면, 여러분 !
  우리 교회는 어떤 교회일까요 ?
  교회다운 교회일까요 ?
  그리스도께서 계시는 교회일까요 ?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 교회를 진단해 보기를 원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성경에 나타난 참된 교회의 중요한 모델 중 하나인
  아둘람 공동체(교회)가 등장합니다.
  이 아둘람 교회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에 대해 잠깐 설명하겠습니다.

  다윗이 블레셋의 골리앗을 죽이자 일약 스타덤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백성들이 이러한 노래를 지어 부를 정도였습니다.
  사무엘상18:7, "사울의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サウルは千を討ち, ダビデは万を討った.)
  당시 이스라엘의 왕이었던 사울보다 다윗을 더 높이는 노래입니다.
  언젠가 말씀드렸지만, 사울 왕은 이 노래를 통해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습니다.
  매우 불쾌했습니다.
  사무엘상18:8, "사울이 ..... 불쾌하여 심히 노하여 가로되
  다윗에게는 만만을 돌리고 내게는 千千만 돌리니
  그의 더 얻을 것이 나라밖에 무엇이냐"
 (サウルはこれを聞いて激怒し, 悔しがって言った.
  "ダビデには万, わたしには千. あとは, 王位を與えるだけか.")

  그때부터 사울은 다윗을 죽이기 위해 자기의 온 힘을 다 소비합니다.
  자신의 생명이 다할 때까지 다윗을 죽이겠다고 쫓아다닙니다.
  국정(國政)도 전혀 살피지 않습니다.

  한편 다윗도 이때부터 10년 이상을 도망 다니느라 정말 힘든 날들을 보냅니다.
  매일의 삶이 사울을 피해 달아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도망하던 다윗이 은신처로 삼은 곳이 바로 아둘람이었습니다.
  아둘람은 블레셋과 국경을 이루고 있는 이스라엘의 변방으로서
  석회암 동굴지대였습니다.
  아둘람이란 말의 의미 자체가 '피난처', '보호처'입니다.
  실제로 이 지역에는 동굴이 수백 개가 널려 있어서
  여기에 숨으면 좀처럼 찾기 어려운 지역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다윗이 이곳에 숨어 있다는 소문이 온 이스라엘에 퍼지니까,
  그곳으로 다윗의 가족 뿐 아니라 별별 사람들이 다 모여들었습니다.
  대부분은 사울 왕의 정권 아래서 이래 저래 실패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기득권자들의 착취에 시달려 빚쟁이 된 사람들,
  억울한 처지에 빠져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는 사람들이 몰려 왔습니다.

  본문2절,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困窮している者, 負債のある者, 不滿を持つ者も皆彼のもとに集まり,)
  이들은 당시 기득권자들이 볼 때는 구제불능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의 숫자가 사백 명쯤이나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
  마음이 편하고, 속상한 일이 없는 사람들도 400명 정도가 모여서 같이 살자면
  보통문제가 아닌데 지금 이곳은 거의 난민촌 수준입니다.
  더구나 누구하나 마음 편한 사람이 없는 이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모두가 몇 가지씩의 기막힌 사정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어떻게 됐냐하면 이 아둘람 동굴이 이스라엘 역사의 중심이 되었고,
  이곳에 있던 사람들이 거의 위대한 다윗 왕 시대의 특별한 인재가 되었습니다.
  물론 성경은 이 아둘람 사람들이 어떤 과정을 통해서
  이스라엘 역사의 중심에 서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히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들은 혼자가 아닌,
  서로가 함께 하는 것에 대해 배웠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세상에서 제일 힘든 일 중에 하나가 뭐냐하면 사람이 같이 생활하는 것입니다.
  이곳 일본에서도 한국사람들끼리 사이가 나빠지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왜 그렇습니까 ?
  대부분 양보하고 이해하는 훈련 없이, 너무 가까이, 너무 오래 붙어 있어 그렇습니다.
  그래서 결국, 아무리 家賃을 더 내도, 혼자 살고 싶어합니다.
  이렇듯, 누군가와 같이 사는 것은 분명히 어렵습니다.

  하지만 누구와 함께하는 그것은 그만큼 가치 있는 훈련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혼자 있을 때는 자신을 바로 보지 못하지만,
  힘들게 하는 사람과 같이 살다보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기적이고, 사랑 없고, 참을성 없고, 교만했던 것을 깨닫게 됩니다.

  앞에서도 소개했지만,
  아둘람에 모인 사람들은 하나 같이 나름대로의 큰 상처를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여러분이 세상에서, 혹은 다른 공동체에서
  여러 가지 큰 상처를 입었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래서 우리 본향공동체를 찾아왔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들이 이곳에서 가장 소망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
  그렇습니다. 여기서만큼은 상처를 입지 않기를 바랄 것입니다.
  아둘람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도 이와 똑 같았습니다.
  수많은 상처를 가졌기에 이곳에서만큼은 상처받지 않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그 작은 소망은 결코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처음에는 서로 서로 조심조심 했을 것입니다.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오래 가지 못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여러 부분에 있어 풍족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먹을 것, 입을 것, 마실 것, 잘 것, 마음, 신앙 等等
  예를 들면, 식사당번이 다른 사람에게는 밥을 두 주걱 주고,
  나에게는 한 주걱만 줬다면 당장에 팔을 걷어 부치고 싸웠을 겁니다.
  밤에 코고는 것 때문에도 다투었을 것입니다.
  매일 매일 이런 사소한 것들로 다툼이 이어졌을 것입니다.
  더구나 모인 대부분의 사람들이 피해망상증(被害妄想症)에 사로잡힌
  사람들이기 때문에, 혹 자신이 상대로부터 작은 피해를 당하는 기미만 보여도
  참지 못하고 폭발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그런데 이러한 모습은 현대 교회도 동일합니다.
  많은 성도들은 교회에서만큼은 상처받지 않기를 바랍니다.
  세상에서는 몰라도, 일단 교회에 오면 평안하기를 바랍니다.
  교회 안에서는 항상 웃음만 있고, 용서만 있고, 이해만 있고, 위로만 있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그게 어디 그렇게 됩니까 ?
  오히려 더 큰 상처를 받은 경우가 많습니다.
  더구나 상처받은 사람들이 같이 있다보면 서로를 통해 또 상처를 받습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여러분들은 우리 본향교회에 와서 얼마나 상처를 받고 계십니까 ?
  아마도 나름대로는 이런 저런 상처를 입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혹 여기 앉아 계신 분 가운데는, 지금도 그 상처 때문에 찢긴 마음과 고통을
  아직도 회복하지 못한 분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여러분 !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이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오늘날의 교회는 아둘람 공동체와 같이 의인들이 모인 곳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상처를 입고, 고통을 입고, 배반을 당한 사람들이
  바로 아둘람 공동체의 일원들이었던 것처럼,
  오늘날의 교회에도 세상에서의 큰 상처를 안고 온 사람들이 정말로 많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에 속한 사람들은 서로의 상처와 모난 마음을 서로에게 비비면서,
  때로는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때로는 상대를 통해 상처를 입으면서
  둥글게, 더욱 둥글게 되어져 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함께 한 다른 지체들로부터 상처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또한 여러분들로부터 다른 지체가 상처받는 것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교회는 서로 상처를 주고, 또 상처를 받는 곳입니다.
  그러나 그런 과정을 통해 반드시 둥글둥글해집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교회에 주신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것이 바로 교회의 중요한 사명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씀을 아둘람 동굴로 돌아가겠습니다.
  이제 까지 말씀드린 것처럼, 아둘람에는 상처와 다툼이 일어났습니다.

  자 ! 그렇다면, 아둘람에서 일어나지 않은 일은 무엇일까요 ?
  아둘람은 무엇을 하지 않았을까요 ?

  첫째, 아둘람 공동체는 단순한 지식만을 배우지 않았습니다.
  다시 말하면, 학교라기보다는 훈련장이었습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지체들의 머리와 귀만 키웁니다.
  듣는 것이 너무나 많아, 머리에 들어있는 것은 정말 많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행함이 없습니다. 희생함도 없습니다. 섬김도 없습니다.
  다만 지식적으로 알고만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교회는 그저 지식을 배우는 데가 아닙니다.
  초대교회 교인들이나 핍박받는 지역의 성도들처럼,
  단 몇 절을 알더라도 그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거기에 헌신하고 순종하는 것이 훨씬 중요합니다.
  저는 우리 본향교회가 머리와 귀 뿐 아니라, 손과 발이 튼튼한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둘째, 아둘람 공동체는 친교를 위한 그룹이 아니었습니다.
  아둘람 교회의 성도들이 자신의 집을 떠나 아둘람 동굴을 찾아 온 것은,
  단순히 마음 맞는 사람들과 사귀고, 말하고, 쉬고자 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아둘람 동굴을 찾은 것은, 새 왕국 이스라엘의 주역이 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 주역의 자리에 서기 위해 자신을 수없이 깎아내었습니다.

  물론 교회에서 지체간의 친교는 아주 중요합니다.
  그러나 교회는 단순히 친교를 위해 존재하는 기관은 아닙니다.
  일본의 한인교회는 그런 경우가 많지 않지만,
  미국의 한인교회에는 친교를 위해,
  교회를 찾는 사람들이 꽤 있다고 합니다.
  언어가 통하지 않아 답답하고, 친구가 없어 심심하고,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살아갈 방법이 없어 교회를 찾는 사람들이 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물론 지체들이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일을 무척이나 귀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결코 교회의 가장 중요한 존재 목적일 수는 없습니다.
  참된 교회는 사람과의 친교보다 우선 하나님과의 화목을 회복하는 교회입니다.

  셋째, 아둘람 공동체는 모두가 머리인 그룹이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이 모인 곳에는 반드시 서로 높아지고, 대접받으려는 사람들이 생겨납니다.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알아주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아둘람 공동체에는 오직 우두머리 다윗뿐이었습니다.
  본문2절, "그(다윗)는 그 장관이 되었는데"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각자가 자기의 주장을 강조한다면, 결국 온전한 목적지에 도달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오늘날의 교회가 지나치게 민주주의를 강조합니다.
  여러분 민주주의(民主主義, democracy)가 무엇입니까 ?
  사전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스어의 '데모스'(demos)와 '크라토스'(kratos)의 합성어로서
  '인민에 의한 지배'를 의미한다."
  그렇습니다. 모든 의사 결정의 기준이 인간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민주주의 하면, '다수결'(多數決)이 생각납니다.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이 요구하는 쪽으로 의사를 결정하는 것이
  민주주의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
  교회는 민주적이어야 합니까 ?
  교회에 속한 성도인 각 지체들의 의사(意思)가 가장 중요하게 존중되어야 합니까 ?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교회는 신본주의(神本主義)입니다.
  사람의 생각보다 앞서는 것은, 하나님의 생각입니다.
  사람의 결정보다 우선 되는 것은, 하나님의 결정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우리들의 삶의, 행동의, 미래의 기준입니다.
  우리 본향교회가 오직 예수님만이 머리가 되시는 그런 교회가 되어야할 줄 믿습니다.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오늘 우리는 아둘람 공동체를 통해 우리 본향교회를 진단해 보았습니다.
  우리 본향 교회는 어떤 교회입니까 ?

  첫째, 각자의 상처와 모난 마음을 서로에게 비비면서,
  때로는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때로는 상대를 통해 상처를 입으면서
  둥글게, 더욱 둥글게 되어져 가는 교회입니까 ?

  둘째, 단순한 지식만이 아닌, 희생과, 섬김과 사랑의 눈물이 있는 교회입니까 ?

  셋째, 사람과의 친교보다, 하나님과의 화목을 더 중시하는 교회입니까 ?
  넷째, 인간이 머리되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머리가 되는 그런 교회입니까 ?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이 네 가지 중에 충분한 것도 있고, 그렇지 못한 것도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본향교회는 반드시 이러한 교회가 될 것입니다.
  이러한 교회로 성장해 나아갈 것입니다.
  그리하여, 머지 않은 장래에 이보다 더 많은 일을 감당하는
  복된 교회가 될 줄 믿습니다.
  그 중심에서 온전히 섬기며, 헌신하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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