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2013년7월28일, 호세아6:1-3(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 힘써 여호와를 알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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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 계신 복스러운 지체들을 이렇게 축복합시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오래 전, 미국 캘리포니아 해안에서 매우 호화스러운 요트 한 척이, 바다 속의 무엇인가에 부딪혀
그만 침몰되고 말았습니다.
침몰해 가고 있는 그 배에서, 해안 구조대에 구조신호를 보냈습니다.
"SOS ! SOS ! 배가 침몰하고 있습니다. 빨리 도와 주세요 !"
구조대로부터 곧바로 회신이 왔습니다.
침몰해 가고 있는 그 배에서, 해안 구조대에 구조신호를 보냈습니다.
"SOS ! SOS ! 배가 침몰하고 있습니다. 빨리 도와 주세요 !"
구조대로부터 곧바로 회신이 왔습니다.
"알았다. 곧 구하러 가겠다. 현재 당신의 위치를 알리라." 이런 내용의 회신이었습니다.
그때 침몰되고 있는 배에 있던 사람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한국에 있는 모 은행의 은행장이다."
놀란 구조대의 통신원이 다시 한 번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What is your position ?"(현재 당신의 위치는 ?)
배에서 외쳤습니다. "나는 한국에 있는 은행의 은행장이다."
그리고 잠시 후, 둘 사이의 통신은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나는 한국에 있는 모 은행의 은행장이다."
놀란 구조대의 통신원이 다시 한 번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What is your position ?"(현재 당신의 위치는 ?)
배에서 외쳤습니다. "나는 한국에 있는 은행의 은행장이다."
그리고 잠시 후, 둘 사이의 통신은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결국 구조대는, 침몰되고 있는 요트를 향해 출발하지 못했고,
안타깝게도 그 배 안에 있던 사람은 구조되지 못한 채 죽고 말았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
왜, 구조대는 그 배를 향해 출발하지 못했을까요 ?
물론입니다. 구조대 통신원이 몇 번이나 배의 위치를 물었지만,
물론입니다. 구조대 통신원이 몇 번이나 배의 위치를 물었지만,
침몰하는 배 쪽에서 정확한 자기위치를 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밝혀진 일이지만, 침몰한 배에 타고 있던 사람은
나중에 밝혀진 일이지만, 침몰한 배에 타고 있던 사람은
"What is your position ?"의 의미를 바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 분명합니다.
"(현재 있는 곳의) 당신의 위치는 ?"이라고 물었는데,
"(현재 있는 곳의) 당신의 위치는 ?"이라고 물었는데,
"(근무하는 직장에서) 당신의 직위(혹은 지위)는 ?"으로 오해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침몰해 가는 배 위에서,
그 사람에게 중요했던 것은 '어디 있느냐'하는 것이지, '어떤 지위에 있느냐'가 아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질문 받은 내용의 의미를, 잘못 이해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질문과는 전혀 다른 엉뚱한 답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이러한 경향은, 실은 첫 사람 아담 때부터였습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죄를 범하고 만 아담이 에덴동산 나무 사이에 숨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물으셨습니다. "아담아 ! 네가 어디 있느냐 ?"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물으셨습니다. "아담아 ! 네가 어디 있느냐 ?"
그렇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나무 사이에 숨어 있는 아담과 하와를 못 보실 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이렇게 물으신 것은, 그들에게 죄를 自服할 기회를 주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아담이 대답했습니다.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여러분 ! 지금 아담의 대답에 자복(自服)과 회개(悔改)가 있습니까 ?
그렇습니다. 아담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회개의 기회를 선용하지 못하고,
여러분 ! 지금 아담의 대답에 자복(自服)과 회개(悔改)가 있습니까 ?
그렇습니다. 아담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회개의 기회를 선용하지 못하고,
오히려 하나님을 꾸짖는 분으로 여기고 말았으며,
나중에 가서는 서로가 변명하기에 급급한 상태에 빠지고 맙니다.
왜 ! 그렇게 되었습니까 ?
그렇습니다. 앞의 은행장처럼 질문의 뜻을 잘못 알아들은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앞의 은행장처럼 질문의 뜻을 잘못 알아들은 것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잠언20:12에 "듣는 귀와 보는 눈은 다 여호와께서 지으신 것이니라"고 하셨으니,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셔서, 바로 듣는 귀를 소유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정신과 의사들의 말에 의하면,
이상하게도 중증 정신병자들은, 하나같이 그들 나름대로는 다 잘났고, 다 똑똑하다고 합니다.
이런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런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세계의 중증 정신병자들이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몽고에서 온 병자가 "내가 징기스칸이다"라고 외쳤습니다.
몽고에서 온 병자가 "내가 징기스칸이다"라고 외쳤습니다.
그 때 옆에 있던 프랑스 병자가 "나는 나폴레옹이다"라고 소리질렀습니다.
그러자 미국 병자는 어깨에 힘을 주며 "나는 링컨이다"고 외쳤습니다.
처음부터 조용히 이것을 지켜보던 한국 병자가 근엄한 얼굴로 목에 힘을 주고,
처음부터 조용히 이것을 지켜보던 한국 병자가 근엄한 얼굴로 목에 힘을 주고,
낮은 목소리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너희를 나폴레옹으로, 또 징기스칸으로, 또 링컨으로 임명한 적이 없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상태에 대해서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남들 앞에서는 은근히 자기를 높이려 합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가 이런 말을 했는지도 모릅니다. "너 자신을 알라"
그래서 소크라테스가 이런 말을 했는지도 모릅니다. "너 자신을 알라"
그런데 여러분 ?
성경은 인간들의 이런 경향(즉, 자신도 똑바로 모르면서, 스스로 높아지려는 경향)에 대해서
어떻게 말할까요 ?
철학자 소크라테스처럼 "너 자신을 알라"고 할까요 ?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철학자 소크라테스처럼 "너 자신을 알라"고 할까요 ?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은 오히려 이렇게 말합니다.
호세아4:6, "내 백성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 도다"
호세아4:6, "내 백성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 도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우리 자신 보다 먼저 하나님을 알라고 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자녀들이 망하는 것은,
또한, 하나님의 자녀들이 망하는 것은,
자신을 똑바로 몰라서도 아니고, 또한 자본이 없어서도 아니고, 기술이 없어서도 아니고,
운이 없어서도 아니고, 하나님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라고 말한, 유명한 철학자 파스칼은
그의 저서 '팡세'에서 인간을 세 종류로 분류했습니다.
첫째, 하나님이 있어나 없거나 상관없이 무관심하게 사는 인간입니다.
이들의 삶의 방식은, '자신들이 주인되어 사는 것'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뜻과 섭리, 계획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습니다.
이들의 삶의 방식은, '자신들이 주인되어 사는 것'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뜻과 섭리, 계획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습니다.
오직 자기자신의 꿈과 욕망이, 자신의 삶을 지배하도록 내버려둡니다.
둘째, 아직 하나님을 발견하지는 못했지만,
어떻게 하든 하나님을 만나보려고 무진 애를 쓰는 인간입니다.
이들은 무지개를 따라가는 어린아이처럼 '언젠가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겠지'하며,
이들은 무지개를 따라가는 어린아이처럼 '언젠가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겠지'하며,
하나님을 찾아다닙니다.
그러나 그들이 의지하는 것은 철학과 신비입니다.
결국 그들의 삶은 그렇게 찾아 헤매는 인생으로 끝이 나고 맙니다.
그러나 그들이 의지하는 것은 철학과 신비입니다.
결국 그들의 삶은 그렇게 찾아 헤매는 인생으로 끝이 나고 맙니다.
셋째, 하나님 안에서 사는 인간입니다.
이들은 이러한 고백을 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찾은 줄 알았는데, 깨닫고 보니 벌써부터 하나님이 내 속에 계셨습니다."
이들은 이러한 고백을 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찾은 줄 알았는데, 깨닫고 보니 벌써부터 하나님이 내 속에 계셨습니다."
또한, "내가 하나님을 사랑한 줄 알았는데,
깨닫고 보니 이미 오래 전부터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고 계셨습니다."
파스칼은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가난한 사람들을 사랑하셨습니다. 이것이 내가 가난한 사람들을 사랑하는 이유입니다.
"예수님은 가난한 사람들을 사랑하셨습니다. 이것이 내가 가난한 사람들을 사랑하는 이유입니다.
내가 돈을 벌고자 하는 것은, 그것이 궁핍한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방편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의 마차와 말, 좋은 가구와 은장식, 개인 도서관까지 팔아 가난한 이웃을 도왔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나기 몇 달 전, 그에게 남은 것은 성경과 어거스틴의 책,
그리고 몇 권의 경건 서적뿐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파스칼은 하나님을 바로 알았습니다.
그렇습니다. 파스칼은 하나님을 바로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이, 어떤 일을 기뻐하시는 지도 분명히 깨닫고 있었습니다.
본문3절을 큰 소리로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 힘써 여호와를 알자 !"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 힘써 여호와를 알자 !"
여기 '여호와를 알자'에서, 안다는 것은 체험해서 아는 것을 말합니다.
즉 단순한 지식적 의미의 앎이 아닙니다.
즉 단순한 지식적 의미의 앎이 아닙니다.
이곳의 앎의 의미는 신혼부부가 첫 날 밤을 보낸 후, 서로 아는 그 앎을 말하는 것입니다.
자 ! 그렇다면 여러분 !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 모든 것을 알기는 어렵고, 우선 하나님의 어떤 부분들을 체험해 알아야 할까요 ?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 모든 것을 알기는 어렵고, 우선 하나님의 어떤 부분들을 체험해 알아야 할까요 ?
즉, 하나님의 뭐부터 느껴야 할까요 ?
이에 대해,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확실히 말합니다.
이에 대해,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확실히 말합니다.
본문1절,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그렇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진노를 알아야 합니다.
본문1절 말씀 그대로 보면, 하나님은 우리를 찢고, 우리를 치시기도 하시는 분입니다.
즉, 하나님은 심판하시고 징계하시는 분이십니다.
1654년, 앞에서 소개한 파스칼이 네 마리의 말이 끄는 마차를 타고, 빠르게 달리고 있었는데,
그만 말의 고삐가 풀리고 말았습니다.
요새로 말하면, 달리는 자동차의 브레이크가 고장난 것과 같습니다.
결국 흥분한 말들이 속도를 줄이지 못하고, 뉘일르의 다리 난간으로 돌진하고 말았습니다.
결국 흥분한 말들이 속도를 줄이지 못하고, 뉘일르의 다리 난간으로 돌진하고 말았습니다.
곧 마차도 다리 밑으로 떨어질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참으로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 말과 마차가 연결되는 가죽끈이 끊어지는 바람에,
그런데, 그 순간 참으로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 말과 마차가 연결되는 가죽끈이 끊어지는 바람에,
파스칼은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졌습니다.
파스칼은 이 사건을,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경고로 받아 들였습니다.
그로부터 그는 양피지 조각에 신앙 고백을 기록하여 항상 몸에 지녔고,
晩年에는 못을 박은 벨트를 허리를 감고,
자신의 신앙이 충분히 경건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팔꿈치로 벨트를 때렸습니다.
우리는 뉴스를 통해, 수많은 사건과 사고들을 접하고 있습니다.
지진, 전쟁, 가뭄, 기근, 홍수, 인프렌자 .......
우리도 이런 소식을 들을 때마다, 그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지진, 전쟁, 가뭄, 기근, 홍수, 인프렌자 .......
우리도 이런 소식을 들을 때마다, 그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13:4-5,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다른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그렇습니다.
세상에 내려지는 여러 가지의 심판은,
때로는 우리를 향해, 회개를 촉구하시는 主님의 무서운 경고일 수 있습니다.
이렇듯 우리가 첫째로 알아야 할 하나님은, 바로 진노의 하나님, 공의의 하나님입니다.
둘째, 우리가 다음으로 알아야 할 하나님은, 도로 낫게 해주시고 싸매어 주시는,
치료의 하나님, 회복의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우리의 죄로 인한 고난과 환란으로 완전히 죽은 것 같더라도,
본문1절의 말씀과 같이, 도로 낫게 해 주시고, 또 싸매어 주십니다.
또한 본문2절의 말씀과 같이,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본문1절의 말씀과 같이, 도로 낫게 해 주시고, 또 싸매어 주십니다.
또한 본문2절의 말씀과 같이,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제 삼일에 우리를 일으키셔서, 하나님 안에서 살게 하시는 분이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본문2절,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우리는 하나님의 이러한 모습을, 우리는 우리의 부모를 통해서 발견합니다.
우리의 부모님은 부득이 자녀를 때려놓고, 자녀가 잠들었을 때에 그 상처를 어루만지며
우리의 부모님은 부득이 자녀를 때려놓고, 자녀가 잠들었을 때에 그 상처를 어루만지며
안타까워하며 자녀를 위해 울며 기도합니다.
이것이 부모님의 사랑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 이런 아이들이 있습니다.
어떤 아이는 회초리로 종아리를 때리는 시늉만 해도, 벌써 잘못했다고 싹싹 빕니다.
그런데 어떤 아이는 고집이 세 가지고, 끝까지 잘못했다고 하지 않습니다.
어떤 아이는 회초리로 종아리를 때리는 시늉만 해도, 벌써 잘못했다고 싹싹 빕니다.
그런데 어떤 아이는 고집이 세 가지고, 끝까지 잘못했다고 하지 않습니다.
이사야1:5-6을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패역을 거듭하느냐,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이거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부드럽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
부모에게 야단을 맞아, 온 몸이 상처투성입니다.
그런데 그 부모로부터 사랑의 치료를 받지 못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
그런데 그 부모로부터 사랑의 치료를 받지 못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
예 ! 잘못했다고 하며, 용서를 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맞아도 회개하지 않습니다. 돌이키지 않습니다. 여전히 악을 행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사야1:16-17,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한 행실을 버리며
악행을 그치고, 선행을 배우며, 정의를 구하며, 학대받는 자를 도와 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사랑하는 여러분 !
하나님은 돌이키는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또한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어떠한 악행을 행하였다 하더라도,
또한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어떠한 악행을 행하였다 하더라도,
회개만 하면, 용서와 자비의 손길을 베푸시는 자비로우신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을 깊이 체험하여 아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하나님을 깊이 체험하여 아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위대한 과학자 아이삭 뉴턴은 그의 유명한 발명품을 두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세상 사람에게 어떤 사람으로 보여지고 있는지 모르겠으나,
"내가 세상 사람에게 어떤 사람으로 보여지고 있는지 모르겠으나,
나 자신은 해변에서 예쁜 조개 껍질을 들고 즐거워하는 어린아이로 비칠 뿐이다."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겸손한 과학자였습니다.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뉴턴이, 말년에 기억상실증에 빠져 자신의 생애의 모든 것을
다 망각해 버렸습니다.
심지어 자기 이름도 나이마저도 기억해 내지 못했습니다.
그때 그의 제자들이 그에게 물었습니다.
"선생님 ! 자기 이름도 모르면, 그렇다면 선생님이 아는 것이 무엇입니까 ?"
그때 그의 제자들이 그에게 물었습니다.
"선생님 ! 자기 이름도 모르면, 그렇다면 선생님이 아는 것이 무엇입니까 ?"
뉴턴이 대답했습니다.
"내가 아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내가 죄인이라는 것이고,
또 하나는 예수님께서 내 구주라는 것입니다. 나는 오직 그것만 알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도 이 두 가지면 충분합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괜찮습니다.
이사야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온전히 아는 순간, 자기가 죄인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외쳤습니다. 이사야6:5,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그리고 바로 그때, 이사야에게 하나님의 용서의 은혜가 임했습니다.
이사야6:7,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그래서 그는 이렇게 외쳤습니다. 이사야6:5,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그리고 바로 그때, 이사야에게 하나님의 용서의 은혜가 임했습니다.
이사야6:7,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그리고 바로 그때 이사야는 위기에 빠진 민족을 건지는, 위대한 사명자가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힘써 하나님을 압시다. 그리고 죄인 된 나 자신을 압시다. 그리고 회개합시다.
그리하여, 회개한 이사야처럼, 이 시대의 위대한 사명자가 됩시다.
힘써 하나님을 압시다. 그리고 죄인 된 나 자신을 압시다. 그리고 회개합시다.
그리하여, 회개한 이사야처럼, 이 시대의 위대한 사명자가 됩시다.
하나님을 온전히 알아, 이 험한 시대에 하나님께 크게 쓰임 받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