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2010년1월1일, 열왕기하6:14-19(우리 눈을 열어 보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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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 새해를 맞은 복된 지체들을 이렇게 축복합시다.
새해 ! 복 많이 받으세요.
당신은 금년 한해 동안,
하나님께서 당신을 위해 가득 준비해 놓으신 놀라운 복들을 하나 하나 누릴 것입니다.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시절 매년 신체검사를 한 기억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혹 신체검사와 관련한 재미있는 추억을 가지고 계시지 않습니까 ?
저는 신체검사 항목 중 가장 싱거운 것 하나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책에 얼룩덜룩한 모자이크가 같은 것이 있고
그 안에 숨겨져 있는 숫자를 읽는 것입니다.
이른 바 색맹, 색약을 검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언제인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남들 다 읽는 숫자를 못 읽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훗날 알았지만 그러한 사람들 중 일부는,
대부분의 사람들과 다른 또 다른 숫자를 읽을 수 있다고 합니다.
더구나 얼마 전 텔레비전을 통해 알았는데 많은 사람들이 한 색깔을 볼 때,
완전히 똑같은 색깔로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매우 많다고 합니다.
즉, 많은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학습된 색을 그것을 알고 있는 것이지
실제로는 각자가 약간 다르게 색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눈은 비단 색깔을 다르게 인식하는 것을 지나,
어떤 사건에 대해서도 각각 다른 눈으로 바라봅니다.
더구나 우리 사람의 눈은 분명히 존재하는 것을 볼 줄 아는 눈이 있기도 하고,
반대로 분명 눈앞에 존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도저히 보지 못하는 눈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는 분명히 인정해야 합니다.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아니다"
"내가 비록 지금 보지 못하지만 분명 내 앞에 존재하는 것이 있다"
우선 오늘 본문의 상황을 설명하겠습니다.
때는 엘리사가 북 이스라엘의 선지자로 사역하던 시절,
이스라엘의 북쪽에 있던 아람나라의 군대가 이스라엘을 침공해 왔습니다.
아람의 제1차 목표는 선지자 엘리사를 잡는 것이었습니다.
그 까닭은 이전에도 아람이 이스라엘을 몇 번 공격하였으나 그때마다 실패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이유가 엘리사선지자가 아람의 작전을 미리 간파하여
이스라엘이 대비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에 아람 왕은 많은 군사를 보내어,
엘리사가 머물고 있던 도단 성을 완전히 포위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이 위기를 기회로 바꾸셔서
아람 군대와 왕에게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세 가지 종류의 눈이 나타납니다.
첫째, 엘리사 선지자를 옆에서 돕는 한 수종하는 자의 눈입니다.
이른 아침, 잠에서 깬 그에게 보인 광경은 참으로 두려운 것이었습니다.
항상 이스라엘의 위협이 되었던 아람의 엄청난 군대가
자신들을 포위한 광경이었습니다.
그의 입에서는 한 숨이 저절로 나왔습니다.
본문15절, "아아 내 주(엘리사)여, 우리가 어찌하리이까"
그의 눈은 자신 앞에 펼쳐진 세상의 위협만을 볼 줄 아는 눈이었습니다.
이 눈은 자신 앞에 펼쳐진 현실에 민감하게 대처하는 눈입니다.
성경 속에서 이러한 눈을 가졌던 사람은 베드로입니다.
예수님만을 바라보았을 때는 바다 위를 걸을 수 있었지만,
눈을 돌려 자신 앞에 펼쳐진 현실을 보는 순간 물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죽음 외에는 예수님과 자기를 가를 것이 없을 것이라고 큰 소리쳤던 그였지만,
눈앞에 펼쳐진 대제사장과 그 권속들에 의한 강한 권력 앞에,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고 말았습니다.
이렇듯 베드로는 눈앞의 현실만을 바라보는 눈을 가졌던 대표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눈은 훗날 성령 충만한 눈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사도행전3:6,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눈앞의 현실 밖에 보지 못했던 또 한 제자들 소개합니다.
벳세다 광야에 오천 명이 모였습니다. 그들은 매우 배고팠습니다.
예수께서 빌립에게 물으셨습니다.
요한복음6:5,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느냐"
성경은 예수께서 빌립에게 이렇게 물으신 것은 그를 시험하고자 함이었다고 말합니다.
본문의 엘리사 선지자를 보좌했던 사람과 같이,
눈앞의 현실 밖에 볼 수 없었던 빌립은 이렇게 말합니다.
요한복음6:7.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성도여러분 !
이 빌립의 대답은 예수님이 기대하시던 대답이었나요 ?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저 매우 현실적인 대답이었습니다.
성도여러분 ! 지난 2009년 여러분의 눈은 어떠했습니까 ?
매일 눈앞에 펼쳐지는 많은 시험과 무거운 짐,
장벽들 때문에 낙망하지는 않으셨습니까 ? 만약 그렇다면 이제 눈을 떠야합니다.
오늘 2010년의 첫 날 아침, 성령 충만한 눈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현실 뒤에 숨어 있는 하나님의 손을 볼 수 있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둘째, 엘리사 선지자의 눈입니다.
제자의 호들갑에 엘리사 선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본문16절,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저와 함께 한 자보다 많으니라"
그렇습니다. 엘리사의 눈은 영적 세계를 볼 줄 아는 눈이었습니다.
위대한 순교자, 초대교회의 일곱 집사 중의 한 사람 스데반이 복음을 전하다
많은 무리들에게 고통을 당할 때, 그는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그 눈앞에 무엇이 펼쳐 보였습니까 ?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또한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우편에 서서 계신 것을 보았습니다.
그 순간 스데반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사도행전7:56,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人子,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시편기자는 이렇게 간구합니다.
시편119:18, "내 눈을 열어서 주의 법의 기이한 것을 보게 하소서"
이것이 새해를 맞은 우리들의 기도이어야 합니다.
자 ! 함께 외쳐봅시다.(간절한 소망을 담아)
"나의 하나님 ! 내 눈을 열어, 주의 법의 기이한 것을 보게 하소서 !"
오늘 본문에서 엘리사선지자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본문17절, "여호와여 원컨대 저의 눈을 열어 보게 하옵소서"
사랑하는 여러분 !
엘리사 선지자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하는 간절한 간구는
먼저는 우리들을 향한 선지자의 간구요,
둘째는 이 땅과 이 땅의 백성들을 위한 우리들의 간구로 한층 확산되어야 합니다.
실제로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는 엘리사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사환의 눈을 여시므로,
그 사환은 자신의 눈으로 자신과 엘리를 둘러싼 불말과 별병거를 보았습니다.
즉, 하나님이 역사(役事)하시는 세계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들이 소경을 인도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로 하여금 보게 할 수는 없습니다.
또한 우리는 이 땅의 사람들에게 진리를 제시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눈을 뜨게 할 수는 없습니다.
그 나머지는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인간의 눈을 뜨게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 사람들의 눈을 뜨게 해달라고 기도할 수는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마땅히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아버지 하나님이여 ! 원컨대 저의 눈을 열어 보게 하옵소서"
우리는 비록 연약하지만 이 땅의 사람들보다는 많은 것을 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조금은 보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 하나님께서 엘리사의 기도를 들으신 것처럼,
분명 우리의 기도에도 응답하실 것입니다.
새해에 "눈을 열어 보게 하옵소서"하는 우리들의 기도가,
첫째는 우리들의 눈을,
둘째는 이 땅 사람들의 눈을 여는 능력의 기도가 될 줄 믿습니다.
셋째, 현실조차도 온전히 보지 못하는 편협(偏狹)한 눈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사환의 육안(肉眼)과 엘리사의 영안(靈眼과)는 또 달리
아람 군사들의 눈은 어두워져 버렸습니다.
본래 아람 군사들의 눈은 사환의 눈과 똑같이 육안이었습니다.
그런데, 사환의 눈이 하나님의 은혜로 영안으로 밝아졌던 것에 반하여
아람 군사들의 눈은 오히려 더욱 어두워져버렸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실제로 소경이 되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눈은 뜨고 있으되 완전히 편협 된 것만 보는 눈뜬장님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땅의 모든 인간들은 태어날 때 육안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영적인 세계까지 바라볼 수 있는 눈으로
그 눈이 밝아지기도 하고,
반대로 어떤 사람은 욕심의 세계밖에 보지 못하는 작은 눈으로
그 눈이 어두워지기도 합니다.
신학자 디안 골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피조물 된 인간의 가장 슬픈 상태 중의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양심을 가리운 채 읽으며,
성경이 나타내고 있는 구속의 사랑과 은혜에 대한 모든 놀라운 증거들을
눈가림한 채 지나쳐 버리는 일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역들을 모르는 채 지나쳐 버리는 것이며,
끝으로 하나님의 지으신 꽃들과 별들과 태양의 일몰,
그리고 수 천 수 만 가지의 자연의 영광스러운 사물들 속에서 살면서
그것들을 통해 주시는 놀라운 복을 결코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예수님께서 라오디게아 교회를 책망하셨습니다.
즉, 눈앞의 것만 바라보고,
그것으로 인해 쩔쩔매며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들을 책망한 것입니다.
그 책망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요한계시록3: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요한계시록3:18-19,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는 잠시 전, 새해 2010년을 맞이했습니다.
이번 한 해, 어떤 눈을 가지고 무엇을 보면서 살아가시렵니까 ?
눈앞의 것밖에 못 보던 선지자의 사환의 육신의 눈입니까 ?
아니면, 세상의 유혹과 욕망에 빠져, 진리를 보지 못하는 편협된 눈입니까 ?
우리 하나님의 역사를 바라볼 줄 아는 영안을 가지고 살아갑시다.
열려진 우리의 눈을 통해 이 땅을 아름답게 변화시키며 삽시다.
그러기 위해 다시 한 번 이렇게 기도합시다.
"나의 하나님 ! 내 눈을 열어, 주의 법의 기이한 것을 보게 하소서 !"
오늘 우리 하나님은 우리들의 소망을 열어 주실 줄 확실히 믿습니다.
할렐루야 !
새해 ! 복 많이 받으세요.
당신은 금년 한해 동안,
하나님께서 당신을 위해 가득 준비해 놓으신 놀라운 복들을 하나 하나 누릴 것입니다.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시절 매년 신체검사를 한 기억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혹 신체검사와 관련한 재미있는 추억을 가지고 계시지 않습니까 ?
저는 신체검사 항목 중 가장 싱거운 것 하나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책에 얼룩덜룩한 모자이크가 같은 것이 있고
그 안에 숨겨져 있는 숫자를 읽는 것입니다.
이른 바 색맹, 색약을 검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언제인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남들 다 읽는 숫자를 못 읽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훗날 알았지만 그러한 사람들 중 일부는,
대부분의 사람들과 다른 또 다른 숫자를 읽을 수 있다고 합니다.
더구나 얼마 전 텔레비전을 통해 알았는데 많은 사람들이 한 색깔을 볼 때,
완전히 똑같은 색깔로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매우 많다고 합니다.
즉, 많은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학습된 색을 그것을 알고 있는 것이지
실제로는 각자가 약간 다르게 색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눈은 비단 색깔을 다르게 인식하는 것을 지나,
어떤 사건에 대해서도 각각 다른 눈으로 바라봅니다.
더구나 우리 사람의 눈은 분명히 존재하는 것을 볼 줄 아는 눈이 있기도 하고,
반대로 분명 눈앞에 존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도저히 보지 못하는 눈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는 분명히 인정해야 합니다.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아니다"
"내가 비록 지금 보지 못하지만 분명 내 앞에 존재하는 것이 있다"
우선 오늘 본문의 상황을 설명하겠습니다.
때는 엘리사가 북 이스라엘의 선지자로 사역하던 시절,
이스라엘의 북쪽에 있던 아람나라의 군대가 이스라엘을 침공해 왔습니다.
아람의 제1차 목표는 선지자 엘리사를 잡는 것이었습니다.
그 까닭은 이전에도 아람이 이스라엘을 몇 번 공격하였으나 그때마다 실패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이유가 엘리사선지자가 아람의 작전을 미리 간파하여
이스라엘이 대비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에 아람 왕은 많은 군사를 보내어,
엘리사가 머물고 있던 도단 성을 완전히 포위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이 위기를 기회로 바꾸셔서
아람 군대와 왕에게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세 가지 종류의 눈이 나타납니다.
첫째, 엘리사 선지자를 옆에서 돕는 한 수종하는 자의 눈입니다.
이른 아침, 잠에서 깬 그에게 보인 광경은 참으로 두려운 것이었습니다.
항상 이스라엘의 위협이 되었던 아람의 엄청난 군대가
자신들을 포위한 광경이었습니다.
그의 입에서는 한 숨이 저절로 나왔습니다.
본문15절, "아아 내 주(엘리사)여, 우리가 어찌하리이까"
그의 눈은 자신 앞에 펼쳐진 세상의 위협만을 볼 줄 아는 눈이었습니다.
이 눈은 자신 앞에 펼쳐진 현실에 민감하게 대처하는 눈입니다.
성경 속에서 이러한 눈을 가졌던 사람은 베드로입니다.
예수님만을 바라보았을 때는 바다 위를 걸을 수 있었지만,
눈을 돌려 자신 앞에 펼쳐진 현실을 보는 순간 물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죽음 외에는 예수님과 자기를 가를 것이 없을 것이라고 큰 소리쳤던 그였지만,
눈앞에 펼쳐진 대제사장과 그 권속들에 의한 강한 권력 앞에,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고 말았습니다.
이렇듯 베드로는 눈앞의 현실만을 바라보는 눈을 가졌던 대표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눈은 훗날 성령 충만한 눈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사도행전3:6,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눈앞의 현실 밖에 보지 못했던 또 한 제자들 소개합니다.
벳세다 광야에 오천 명이 모였습니다. 그들은 매우 배고팠습니다.
예수께서 빌립에게 물으셨습니다.
요한복음6:5,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느냐"
성경은 예수께서 빌립에게 이렇게 물으신 것은 그를 시험하고자 함이었다고 말합니다.
본문의 엘리사 선지자를 보좌했던 사람과 같이,
눈앞의 현실 밖에 볼 수 없었던 빌립은 이렇게 말합니다.
요한복음6:7.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성도여러분 !
이 빌립의 대답은 예수님이 기대하시던 대답이었나요 ?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저 매우 현실적인 대답이었습니다.
성도여러분 ! 지난 2009년 여러분의 눈은 어떠했습니까 ?
매일 눈앞에 펼쳐지는 많은 시험과 무거운 짐,
장벽들 때문에 낙망하지는 않으셨습니까 ? 만약 그렇다면 이제 눈을 떠야합니다.
오늘 2010년의 첫 날 아침, 성령 충만한 눈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현실 뒤에 숨어 있는 하나님의 손을 볼 수 있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둘째, 엘리사 선지자의 눈입니다.
제자의 호들갑에 엘리사 선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본문16절,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저와 함께 한 자보다 많으니라"
그렇습니다. 엘리사의 눈은 영적 세계를 볼 줄 아는 눈이었습니다.
위대한 순교자, 초대교회의 일곱 집사 중의 한 사람 스데반이 복음을 전하다
많은 무리들에게 고통을 당할 때, 그는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그 눈앞에 무엇이 펼쳐 보였습니까 ?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또한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우편에 서서 계신 것을 보았습니다.
그 순간 스데반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사도행전7:56,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人子,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시편기자는 이렇게 간구합니다.
시편119:18, "내 눈을 열어서 주의 법의 기이한 것을 보게 하소서"
이것이 새해를 맞은 우리들의 기도이어야 합니다.
자 ! 함께 외쳐봅시다.(간절한 소망을 담아)
"나의 하나님 ! 내 눈을 열어, 주의 법의 기이한 것을 보게 하소서 !"
오늘 본문에서 엘리사선지자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본문17절, "여호와여 원컨대 저의 눈을 열어 보게 하옵소서"
사랑하는 여러분 !
엘리사 선지자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하는 간절한 간구는
먼저는 우리들을 향한 선지자의 간구요,
둘째는 이 땅과 이 땅의 백성들을 위한 우리들의 간구로 한층 확산되어야 합니다.
실제로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는 엘리사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사환의 눈을 여시므로,
그 사환은 자신의 눈으로 자신과 엘리를 둘러싼 불말과 별병거를 보았습니다.
즉, 하나님이 역사(役事)하시는 세계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들이 소경을 인도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로 하여금 보게 할 수는 없습니다.
또한 우리는 이 땅의 사람들에게 진리를 제시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눈을 뜨게 할 수는 없습니다.
그 나머지는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인간의 눈을 뜨게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 사람들의 눈을 뜨게 해달라고 기도할 수는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마땅히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아버지 하나님이여 ! 원컨대 저의 눈을 열어 보게 하옵소서"
우리는 비록 연약하지만 이 땅의 사람들보다는 많은 것을 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조금은 보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 하나님께서 엘리사의 기도를 들으신 것처럼,
분명 우리의 기도에도 응답하실 것입니다.
새해에 "눈을 열어 보게 하옵소서"하는 우리들의 기도가,
첫째는 우리들의 눈을,
둘째는 이 땅 사람들의 눈을 여는 능력의 기도가 될 줄 믿습니다.
셋째, 현실조차도 온전히 보지 못하는 편협(偏狹)한 눈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사환의 육안(肉眼)과 엘리사의 영안(靈眼과)는 또 달리
아람 군사들의 눈은 어두워져 버렸습니다.
본래 아람 군사들의 눈은 사환의 눈과 똑같이 육안이었습니다.
그런데, 사환의 눈이 하나님의 은혜로 영안으로 밝아졌던 것에 반하여
아람 군사들의 눈은 오히려 더욱 어두워져버렸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실제로 소경이 되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눈은 뜨고 있으되 완전히 편협 된 것만 보는 눈뜬장님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땅의 모든 인간들은 태어날 때 육안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영적인 세계까지 바라볼 수 있는 눈으로
그 눈이 밝아지기도 하고,
반대로 어떤 사람은 욕심의 세계밖에 보지 못하는 작은 눈으로
그 눈이 어두워지기도 합니다.
신학자 디안 골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피조물 된 인간의 가장 슬픈 상태 중의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양심을 가리운 채 읽으며,
성경이 나타내고 있는 구속의 사랑과 은혜에 대한 모든 놀라운 증거들을
눈가림한 채 지나쳐 버리는 일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역들을 모르는 채 지나쳐 버리는 것이며,
끝으로 하나님의 지으신 꽃들과 별들과 태양의 일몰,
그리고 수 천 수 만 가지의 자연의 영광스러운 사물들 속에서 살면서
그것들을 통해 주시는 놀라운 복을 결코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예수님께서 라오디게아 교회를 책망하셨습니다.
즉, 눈앞의 것만 바라보고,
그것으로 인해 쩔쩔매며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들을 책망한 것입니다.
그 책망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요한계시록3: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요한계시록3:18-19,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는 잠시 전, 새해 2010년을 맞이했습니다.
이번 한 해, 어떤 눈을 가지고 무엇을 보면서 살아가시렵니까 ?
눈앞의 것밖에 못 보던 선지자의 사환의 육신의 눈입니까 ?
아니면, 세상의 유혹과 욕망에 빠져, 진리를 보지 못하는 편협된 눈입니까 ?
우리 하나님의 역사를 바라볼 줄 아는 영안을 가지고 살아갑시다.
열려진 우리의 눈을 통해 이 땅을 아름답게 변화시키며 삽시다.
그러기 위해 다시 한 번 이렇게 기도합시다.
"나의 하나님 ! 내 눈을 열어, 주의 법의 기이한 것을 보게 하소서 !"
오늘 우리 하나님은 우리들의 소망을 열어 주실 줄 확실히 믿습니다.
할렐루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