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2009년11월22일, 누가복음8:16-18, 11:33-36(등불을 높이 들어 밝힙시다)
ページ情報

本文
자 ! 옆에 있는 귀한 지체들을 이렇게 축복합시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늦은 비의 福이 오늘 당신에게 임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통해 천하보다 귀한 생명을 건지실 것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 전,
아직 마차가 많이 이용되던 시절 미국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시골의 기찻길 건널목에서 비극적인 교통사고가 일어났습니다.
어두움에 둘러싸인 가을 밤,
온 가족이 탄 마차가 달려오는 기차에 치여서 마차에 탄 모두가 죽고 말았습니다.
그 건널목의 건널목지기가 소환되어 심문을 받게 되었습니다.
"당신은 기차가 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까 ?"
"예, 기차는 항상 오는 그 시간에 왔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마땅히 해야 할 의무를 다 하였습니까 ?"
"등불을 들고 기차를 맞으려 나갔습니까 ?"
"예 !"
"당신은 기차가 온다는 것을 경고하기 위해,
달려오는 마차를 향해 등을 좌우로 흔들었습니까 ?"
"예 !"
이 부분이 심문의 핵심이었으며,
그 뒤에는 몇 가지 의례적인 질문이 이어지고 심문은 끝이 났습니다.
결론은 죽은 마차의 가족이 등불을 무시하여 일어난 불행한 사고였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후 여러 해가 지났습니다.
그러나 건널목지기의 뇌리에서 그 사건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건널목지기는 늙어 병이 들었고, 계속 자리에 누워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건널목지기는 가끔씩 이런 헛소리를 하였습니다.
"오 ! 불쌍한 사람들, 오 ! 오 ! 불쌍한 사람들, 오, 나는 어떻게 하나 ?"
그의 친구가 이 소리를 전해 듣고 그를 안심시키려고 왔습니다.
"여보게 친구 ! 자네는 이미 세밀한 조사를 받았지 않았나 !"
"그 사건이 자네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이 분명히 밝혀지지 않았나"
그러자 건널목지기가 눈물을 흘리면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물론 그랬지, 그러나 그들이 나에게 묻지 않은 것이 있어.
그 사람들은 나에게 당시에 등불이 켜져 있었는지 꺼져 있었는지 묻지 않았다네 !"
"당시, 나는 분명 불이 켜진 등불을 들고 마차를 향해 흔들었고,
기차가 곧 지나감을 알렸네 ! 그런데 갑자기 불어온 바람에 등불이 꺼지고 말았어 !
결국 그 마차의 가족들은 참변을 당하고 만 거야 !"
그렇습니다.
빛을 발하지 않는 등(燈)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빛을 발하지 못하는 등대(燈臺)도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5: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또한 바울에게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도행전10:47, "내가 너를 이방의 빛을 삼아 너로 땅 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
그렇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빛으로서 빛을 발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성경 여러 곳에서 등불과 빛에 대한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자 ! 본문의 등불을 비유를 통해 우리는 무엇을 기억해야 할까요 ?
첫째, 세상이 어둠에 싸여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더구나 대다수의 세상사람들은 빛보다 어둠을 더 좋아한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합니다.
오래 전, 아프리카의 한 노인이 선교사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당신들은 우리에게 빛을 가져다 주었지만, 우리는 그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우리 부족들은 여전히 어두움 속에서 살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사실 오늘날의 세상이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12:46,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로 어두움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로라"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 많은 사람들이 빛에 관심이 있습니까 ?
아니요. 거의 관심이 없습니다.
지난주간, 제가 읽는 朝日新聞의 1면 기사들의 제목을 소개해 보지요.
[大學4學年 終りなき就活],
[子ども手當 所得制限なし],
[鳩山總理, オバマ大統領に "普天間問題, 私を信賴して"],
[內閣支持 微感62%],
[日本人技師 拉致],
[仕分け 果 まず1兆円], [新型インフル 豫防接種前倒し].......
이것이 신문의 1면이니까 그렇지,
텔레비전 뉴스를 보면, 매일 같이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습니다.
부산의 사격장에서 불이 났다.
어느 유명한 사람이 마약을 했다.
누가 사람을 죽이고 그 시신을 조각 내어 버렸다....
사랑하는 여러분 !
세상 사람들이 빛에 대해 관심이 있습니까 ?
아니요. 살아갈 것들에, 어두움에 대한 것들에 대한 관심뿐입니다.
왜, 사람들은 어두운 것에 더 큰 관심이 있을까요 ?
그것은 바로 세상이 어둡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요한복음1:5,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요한복음3:19-21,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진리를 쫓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는 오늘부터 이 어두운 세상을 향해,
빛보다 어두움을 더 좋아하는 세상을 향해, 빛을 밝히고자 합니다.
저들은 분명 빛에 관심이 없습니다. 좋아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그 가운데 빛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우리들이 비취는 빛을 보고
빛을 찾아올 수 있게 인도해 주실 줄 믿습니다.
둘째, 예수님만이 유일한 빛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앞에서도 잠깐 언급을 했지만, 이 세상의 참 빛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마태복음4:16,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취었도다 하였느니라"
물론 여기에서 '큰 빛'과 '빛'은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요한복음1:9-10, "참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찬송가96장.
1절, 온 세상이 캄캄하여서 참 빛이 없었더니,
그 빛나는 영광 나타나 온 세계 비치었네
3절, 죄 가운데 사는 사람은 그 눈이 어두워도,
그 죄악을 씻는 날에는 그 눈이 밝아지네
후렴> 영광 영광의 주, 영광 영광의 주, 밝은 그 빛 내게 비치었네.
영광 영광의 주, 영광 영광의 주, 이 세상의 빛은 오직 주 예수라.
이 참 빛을 전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셋째,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들이 빛인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나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셨고,
예수님을 따르는 자는 생명의 빛을 얻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요한복음8:12,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그렇습니다. 우리들은 예수님을 통해 빛을 얻었습니다.
이 어두운 세상에서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빛을 환하게 밝혀야 하는 그러한 사람들이 된 것입니다.
서론에서 소개한 말씀과 같이 우리는 이 세상의 빛입니다.
예수님은 참된 빛을 우리에게 맡겨 놓고 가셨습니다.
우리는 이 빛을 높이 들어 어두운 세상을 환하게 밝혀야 합니다.
본문16절, "누구든지 등불을 켜서 그릇으로 덮거나 평상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는 들어가는 자들로 그 빛을 보게 하려 함이라"
누가복음11:33절, "누구든지 등불을 켜서 움 속에나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는 들어가는 자로 그 빛을 보게 하려 함이니라"
우리 주님은 세상이 너무 어두워서 갈 바를 모를 때,
"너희가 세상의 빛이 되라"고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여기 등불을 가리는데 등장하는 그릇이나 평상은 조금 풍유적인 해석이긴 합니다만
상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본문의 그릇은 일반 음식 그릇이 아니라 곡식을 사고 팔 때 쓰는 측량 그릇으로
나중에 읽은 누가복음11장에는 '말'이라 나와 있습니다.
그리고 평상은 오늘날의 침대를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복음의 등불을 밝히지 못하게 하는 두 가지 방해거리를
적절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릇 즉 말(부피 단위)은 재리(財利)의 유혹과 염려입니다.
마음이 돈에만 가 있고, 세상 영달에만 가 있으면
복음의 등불을 밝히면서 살기는 불가능입니다.
또한 평상은 게으름과 안일함을 의미합니다.
땀 흘림과 희생 없이 어떻게 복음의 등불을 밝히며 살겠습니까 ?
오늘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런 방해물들을 모두 치워버리고 등불을 밝혀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빛 되신 예수님을 향해 올 수 있도록 빛을 발하라 명하십니다.
이 예수님의 명령을 묵묵히 순종하여,
지난 몇 달 동안 여러 가지로 준비한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또한 여러분들을 통해 천하보다 귀한 생명이 건져지기를 축원합니다.
자 ! 그렇다면, 끝으로
우리가 어떻게 해야, 이 어두운 세상에 빛을 환하게 밝힐 수 있을까요 ?
첫째, 참 빛 되신 예수님의 빛을 듬뿍 받아야 합니다.
고린도후서4:6, "어두운 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
그렇습니다.
어두움에 빠져 살아가는 우리에게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빛을 비춰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계실 때는 마치 태양과 같아서 세상은 낮이었습니다.
그런데 태양이 지자 달이 떠올랐습니다.
달은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달은 스스로 빛을 내는 것이 아니라,
태양 빛을 반사함으로 빛의 역할을 감당합니다.
세상에 있는 참된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어떤 때는 보름달과 같이 부흥의 빛을 밝히기도 합니다.
또 어떤 때는 초승달과 같이 되어
거의 빛을 보지 못할 지경이 되도록 침체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보름달이건 초승달이건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예수님 때문에 빛을 발합니다.
곧 주 예수님의 진정한 빛을 반사할 때만이 빛을 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배를 통해 예수님을 똑바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말씀을 통해 예수님을 똑바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에게는 예수님의 그 빛이 가득하게 스며들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빛을 비로소 세상을 향해 보름달처럼 비추게 되는 줄 믿습니다.
둘째, 燈된 우리들이 깨끗해야 합니다.
누가복음11:35-36, "그러므로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아니한가 보라
네 온 몸이 밝아 조금도 어두운 데가 없으면
등불의 광선이 너를 비출 때와 같이 온전히 밝으리라"
여러분 !
여러분들의 집이 몇 달 전에는 밝았는데 좀 어두워졌고 느껴지지 않습니까 ?
만약 그렇다면, 집의 등에 먼지가 쌓였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빛이 좋아도 그것을 싸고 있는 등(燈)이 그을음으로
혹은 먼지로 싸여있으면 밝은 등불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우리의 영혼의 등을 깨끗하게 해야합니다.
죄로 얼룩진 것을 청소해야 합니다.
물론 매일 살면서 짓는 죄를 씻어야 하겠지만
그보다도 더 시급한 것은 우리 각자에게 있는 특이한 문제들입니다.
곧 우리 각자를 어둡게 싸고 있는 것들이 한두 가지씩 있습니다.
어떤 분은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일 수도 있고, 어떤 분은 염려와 걱정일 수 있습니다.
어떤 분은 버리지 못한 악한 습관일 수 있고,
어떤 분은 포기하지 못한 욕심일 수 있습니다.
어떤 분은 믿지 않으려는 고집일 수 있고,
어떤 분은 쉽게 비방하려는 교만일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이것을 해결을 해야, 이것을 닦아 내야 우리는 비로소 환한 빛을 밝힐 수 있습니다.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는 지금 세상을 향해 등불을 밝히 들어야 합니다.
꺼져버린 등불을 들고는 아무리 흔들어도 세상이 빛을 보지 못합니다.
꺼져버린 등불을 들고 아무리 흔들어도
나의 이웃이 나의 가족이 나의 부모형제들이 빛을 얻지 못합니다.
등불이 꺼지면 내 자신도 구덩이에 빠지고 맙니다.
등불을 밝힙시다.
그리스도의 빛으로 등불을 밝힙시다.
그리스도를 바라봅시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항상 들읍시다.
하나님 말씀을 열심을 다해 듣고 전심을 다해 들읍시다.
온 맘을 다해 예배합시다.
그러면 우리가 생명의 빛을 얻을 것입니다.
내게 있는 영혼의 더러움과 삶의 그을음을 닦아 냅시다.
그래서 내 영혼도 밝아지고, 삶도 밝아져서 어두운 세상에 등불이 됩시다.
이런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
하나님께서 주시는 늦은 비의 福이 오늘 당신에게 임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통해 천하보다 귀한 생명을 건지실 것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 전,
아직 마차가 많이 이용되던 시절 미국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시골의 기찻길 건널목에서 비극적인 교통사고가 일어났습니다.
어두움에 둘러싸인 가을 밤,
온 가족이 탄 마차가 달려오는 기차에 치여서 마차에 탄 모두가 죽고 말았습니다.
그 건널목의 건널목지기가 소환되어 심문을 받게 되었습니다.
"당신은 기차가 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까 ?"
"예, 기차는 항상 오는 그 시간에 왔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마땅히 해야 할 의무를 다 하였습니까 ?"
"등불을 들고 기차를 맞으려 나갔습니까 ?"
"예 !"
"당신은 기차가 온다는 것을 경고하기 위해,
달려오는 마차를 향해 등을 좌우로 흔들었습니까 ?"
"예 !"
이 부분이 심문의 핵심이었으며,
그 뒤에는 몇 가지 의례적인 질문이 이어지고 심문은 끝이 났습니다.
결론은 죽은 마차의 가족이 등불을 무시하여 일어난 불행한 사고였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후 여러 해가 지났습니다.
그러나 건널목지기의 뇌리에서 그 사건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건널목지기는 늙어 병이 들었고, 계속 자리에 누워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건널목지기는 가끔씩 이런 헛소리를 하였습니다.
"오 ! 불쌍한 사람들, 오 ! 오 ! 불쌍한 사람들, 오, 나는 어떻게 하나 ?"
그의 친구가 이 소리를 전해 듣고 그를 안심시키려고 왔습니다.
"여보게 친구 ! 자네는 이미 세밀한 조사를 받았지 않았나 !"
"그 사건이 자네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이 분명히 밝혀지지 않았나"
그러자 건널목지기가 눈물을 흘리면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물론 그랬지, 그러나 그들이 나에게 묻지 않은 것이 있어.
그 사람들은 나에게 당시에 등불이 켜져 있었는지 꺼져 있었는지 묻지 않았다네 !"
"당시, 나는 분명 불이 켜진 등불을 들고 마차를 향해 흔들었고,
기차가 곧 지나감을 알렸네 ! 그런데 갑자기 불어온 바람에 등불이 꺼지고 말았어 !
결국 그 마차의 가족들은 참변을 당하고 만 거야 !"
그렇습니다.
빛을 발하지 않는 등(燈)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빛을 발하지 못하는 등대(燈臺)도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5: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또한 바울에게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도행전10:47, "내가 너를 이방의 빛을 삼아 너로 땅 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
그렇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빛으로서 빛을 발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성경 여러 곳에서 등불과 빛에 대한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자 ! 본문의 등불을 비유를 통해 우리는 무엇을 기억해야 할까요 ?
첫째, 세상이 어둠에 싸여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더구나 대다수의 세상사람들은 빛보다 어둠을 더 좋아한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합니다.
오래 전, 아프리카의 한 노인이 선교사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당신들은 우리에게 빛을 가져다 주었지만, 우리는 그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우리 부족들은 여전히 어두움 속에서 살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사실 오늘날의 세상이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12:46,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로 어두움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로라"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 많은 사람들이 빛에 관심이 있습니까 ?
아니요. 거의 관심이 없습니다.
지난주간, 제가 읽는 朝日新聞의 1면 기사들의 제목을 소개해 보지요.
[大學4學年 終りなき就活],
[子ども手當 所得制限なし],
[鳩山總理, オバマ大統領に "普天間問題, 私を信賴して"],
[內閣支持 微感62%],
[日本人技師 拉致],
[仕分け 果 まず1兆円], [新型インフル 豫防接種前倒し].......
이것이 신문의 1면이니까 그렇지,
텔레비전 뉴스를 보면, 매일 같이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습니다.
부산의 사격장에서 불이 났다.
어느 유명한 사람이 마약을 했다.
누가 사람을 죽이고 그 시신을 조각 내어 버렸다....
사랑하는 여러분 !
세상 사람들이 빛에 대해 관심이 있습니까 ?
아니요. 살아갈 것들에, 어두움에 대한 것들에 대한 관심뿐입니다.
왜, 사람들은 어두운 것에 더 큰 관심이 있을까요 ?
그것은 바로 세상이 어둡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요한복음1:5,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요한복음3:19-21,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진리를 쫓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는 오늘부터 이 어두운 세상을 향해,
빛보다 어두움을 더 좋아하는 세상을 향해, 빛을 밝히고자 합니다.
저들은 분명 빛에 관심이 없습니다. 좋아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그 가운데 빛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우리들이 비취는 빛을 보고
빛을 찾아올 수 있게 인도해 주실 줄 믿습니다.
둘째, 예수님만이 유일한 빛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앞에서도 잠깐 언급을 했지만, 이 세상의 참 빛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마태복음4:16,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취었도다 하였느니라"
물론 여기에서 '큰 빛'과 '빛'은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요한복음1:9-10, "참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찬송가96장.
1절, 온 세상이 캄캄하여서 참 빛이 없었더니,
그 빛나는 영광 나타나 온 세계 비치었네
3절, 죄 가운데 사는 사람은 그 눈이 어두워도,
그 죄악을 씻는 날에는 그 눈이 밝아지네
후렴> 영광 영광의 주, 영광 영광의 주, 밝은 그 빛 내게 비치었네.
영광 영광의 주, 영광 영광의 주, 이 세상의 빛은 오직 주 예수라.
이 참 빛을 전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셋째,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들이 빛인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나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셨고,
예수님을 따르는 자는 생명의 빛을 얻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요한복음8:12,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그렇습니다. 우리들은 예수님을 통해 빛을 얻었습니다.
이 어두운 세상에서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빛을 환하게 밝혀야 하는 그러한 사람들이 된 것입니다.
서론에서 소개한 말씀과 같이 우리는 이 세상의 빛입니다.
예수님은 참된 빛을 우리에게 맡겨 놓고 가셨습니다.
우리는 이 빛을 높이 들어 어두운 세상을 환하게 밝혀야 합니다.
본문16절, "누구든지 등불을 켜서 그릇으로 덮거나 평상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는 들어가는 자들로 그 빛을 보게 하려 함이라"
누가복음11:33절, "누구든지 등불을 켜서 움 속에나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는 들어가는 자로 그 빛을 보게 하려 함이니라"
우리 주님은 세상이 너무 어두워서 갈 바를 모를 때,
"너희가 세상의 빛이 되라"고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여기 등불을 가리는데 등장하는 그릇이나 평상은 조금 풍유적인 해석이긴 합니다만
상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본문의 그릇은 일반 음식 그릇이 아니라 곡식을 사고 팔 때 쓰는 측량 그릇으로
나중에 읽은 누가복음11장에는 '말'이라 나와 있습니다.
그리고 평상은 오늘날의 침대를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복음의 등불을 밝히지 못하게 하는 두 가지 방해거리를
적절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릇 즉 말(부피 단위)은 재리(財利)의 유혹과 염려입니다.
마음이 돈에만 가 있고, 세상 영달에만 가 있으면
복음의 등불을 밝히면서 살기는 불가능입니다.
또한 평상은 게으름과 안일함을 의미합니다.
땀 흘림과 희생 없이 어떻게 복음의 등불을 밝히며 살겠습니까 ?
오늘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런 방해물들을 모두 치워버리고 등불을 밝혀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빛 되신 예수님을 향해 올 수 있도록 빛을 발하라 명하십니다.
이 예수님의 명령을 묵묵히 순종하여,
지난 몇 달 동안 여러 가지로 준비한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또한 여러분들을 통해 천하보다 귀한 생명이 건져지기를 축원합니다.
자 ! 그렇다면, 끝으로
우리가 어떻게 해야, 이 어두운 세상에 빛을 환하게 밝힐 수 있을까요 ?
첫째, 참 빛 되신 예수님의 빛을 듬뿍 받아야 합니다.
고린도후서4:6, "어두운 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
그렇습니다.
어두움에 빠져 살아가는 우리에게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빛을 비춰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계실 때는 마치 태양과 같아서 세상은 낮이었습니다.
그런데 태양이 지자 달이 떠올랐습니다.
달은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달은 스스로 빛을 내는 것이 아니라,
태양 빛을 반사함으로 빛의 역할을 감당합니다.
세상에 있는 참된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어떤 때는 보름달과 같이 부흥의 빛을 밝히기도 합니다.
또 어떤 때는 초승달과 같이 되어
거의 빛을 보지 못할 지경이 되도록 침체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보름달이건 초승달이건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예수님 때문에 빛을 발합니다.
곧 주 예수님의 진정한 빛을 반사할 때만이 빛을 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배를 통해 예수님을 똑바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말씀을 통해 예수님을 똑바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에게는 예수님의 그 빛이 가득하게 스며들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빛을 비로소 세상을 향해 보름달처럼 비추게 되는 줄 믿습니다.
둘째, 燈된 우리들이 깨끗해야 합니다.
누가복음11:35-36, "그러므로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아니한가 보라
네 온 몸이 밝아 조금도 어두운 데가 없으면
등불의 광선이 너를 비출 때와 같이 온전히 밝으리라"
여러분 !
여러분들의 집이 몇 달 전에는 밝았는데 좀 어두워졌고 느껴지지 않습니까 ?
만약 그렇다면, 집의 등에 먼지가 쌓였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빛이 좋아도 그것을 싸고 있는 등(燈)이 그을음으로
혹은 먼지로 싸여있으면 밝은 등불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우리의 영혼의 등을 깨끗하게 해야합니다.
죄로 얼룩진 것을 청소해야 합니다.
물론 매일 살면서 짓는 죄를 씻어야 하겠지만
그보다도 더 시급한 것은 우리 각자에게 있는 특이한 문제들입니다.
곧 우리 각자를 어둡게 싸고 있는 것들이 한두 가지씩 있습니다.
어떤 분은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일 수도 있고, 어떤 분은 염려와 걱정일 수 있습니다.
어떤 분은 버리지 못한 악한 습관일 수 있고,
어떤 분은 포기하지 못한 욕심일 수 있습니다.
어떤 분은 믿지 않으려는 고집일 수 있고,
어떤 분은 쉽게 비방하려는 교만일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이것을 해결을 해야, 이것을 닦아 내야 우리는 비로소 환한 빛을 밝힐 수 있습니다.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는 지금 세상을 향해 등불을 밝히 들어야 합니다.
꺼져버린 등불을 들고는 아무리 흔들어도 세상이 빛을 보지 못합니다.
꺼져버린 등불을 들고 아무리 흔들어도
나의 이웃이 나의 가족이 나의 부모형제들이 빛을 얻지 못합니다.
등불이 꺼지면 내 자신도 구덩이에 빠지고 맙니다.
등불을 밝힙시다.
그리스도의 빛으로 등불을 밝힙시다.
그리스도를 바라봅시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항상 들읍시다.
하나님 말씀을 열심을 다해 듣고 전심을 다해 들읍시다.
온 맘을 다해 예배합시다.
그러면 우리가 생명의 빛을 얻을 것입니다.
내게 있는 영혼의 더러움과 삶의 그을음을 닦아 냅시다.
그래서 내 영혼도 밝아지고, 삶도 밝아져서 어두운 세상에 등불이 됩시다.
이런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