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主日説教原稿

2009 2009년11월8일,사도행전3:12-16(힘있는 사명자가 되기 위해 먼저 改革을 이룹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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投稿者 박성철
コメント 0件 照会 13,846回 日時 09-11-11 19:44

本文

  자 ! 옆에 있는 귀한 지체들을 이렇게 축복합시다.
  하나님은 당신을 통해 놀라운 일을 행하시려고 당신을 부르셨습니다.
  모세의 지팡이처럼, 당신이 가진 작은 재능이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통해
  당신의 큰 능력이 될 것입니다.

  지난11월4일, 朝日新聞 사설에 이런 제목의 글이 실렸습니다.
 "15.7%の衝擊-貧困率が映す日本の危機"
  이 사설의 내용에 의하면,
  지난 2007년 일본의 빈곤률(貧困率)은 15.7%에 달한다는 것입니다.

  사설에서는 동경도내 일용 파견직에서 일하는 30대의 한 대졸 남성을 소개했습니다.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宅配便の配達や倉庫の仕分け作業で一日中くたくたになるまではたらいて,
  手取りは6,7千円.
  結婚して子供も欲しいが, この收入では想像すらできない…….
 「明日の仕事もわからないのに, 將來がわかるはずがない」

  그런데, 여러분 !
  이 땅에는 이런 사람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더구나 같은 기간, 즉 2007년도 한국의 빈곤률은 17.5%로 OECD국가 중,
  멕시코에 이어 최악입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한국을 떠나 세계를 향합니다.
  이유 중 하나는 자신들의 꿈을 지금의 자리에서 펼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뭔가 변화가 일어나야 하고, 개혁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1517년, 당시 유럽은 참으로 어두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가 오늘날과 같이 불안했습니다.
  그런데 이 어두움을 주도했던 것은 당시의 교회였습니다.
  당시 교회는 타락했고,
  썩어져 가는 세상을 돌려세울 만한 아무런 영향력도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바로 그때, 종교개혁가 루터는 개혁을 부르짖었고,
  그 부르짖음은 교회와 유럽, 세계를 한순간에 바꾸어 버렸습니다.

  저는 여러분께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이 시점에서 이 땅 일본과 한국, 세계를 구할 수 있는 사람은 개혁된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오늘 우리들은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어디를 향해 갈 것인가, 순전히 우리들의 선택 여하에 달려 있습니다.
  그냥 납작하게 엎드려 있다가 사람들이 많은 쪽에 적당히 묻혀 살던가,
  아니면 자기를 변화시키던가 둘 중에 하나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개혁된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이 어두운 시대에 영적, 사회적 대변화를 일으키게 하는
  주역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자 ! 오늘 본문말씀을 통해,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먼저 우리에게 어떤 개혁이 있어야 하는 지를
  찾아보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을 설명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의 배경은 A. D. 30년경의 이스라엘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식민통치를 받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주권을 로마에 빼앗겼다는 것입니다.
  경제적 상황은 부익부 빈익빈이 지속되었습니다.
  사두개인, 바리새인, 대제사장, 헤롯왕의 측근들은 부를 누렸지만,
  그들 외의 대부분의 백성들은 빈곤에 시달렸습니다.
  바로 그때 강림하신 예수님은 가난하고, 헐벗은 백성들에 편에 서셔서,
  그들의 힘과 위로가 되어 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잘 아는 것처럼,
  당시의 기득권자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습니다.
  순전히 자신들이 가진 기득권을 지키기 위함이었습니다.
 (물론 그 배후에는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 섭리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 부활, 승천 이후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사분 오열하고 말았습니다.
  특히 가난한 자, 연약한 자들의 상심은 더욱 컸습니다.
  빈곤 문제와 예수님을 잃은 상실감의 문제였습니다.
  바로 그때,
  그 이스라엘 사회를 변화시켜 소망이 넘치게 하고,
  또한 인류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초대교회를 세운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그들은 우선 자신들이 변화를 체험했고, 그리고 개혁되었습니다.
  누구입니까 ?
  바로 베드로와 요한 등 제자들이었습니다.
  자 ! 그들은 어떤 변화를 체험했기에,
  자신들의 변화를 통해, 이스라엘을 그리고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었을까요 ?

  첫째, 그들은 자신이 누구인가를 깨닫는 변화를 체험했습니다.
  이른바 믿음의 아이덴티티(identity)를 가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5:8절에 보면, 주님 은혜로 베드로가 엄청난 수의 고기를 잡은 직후
  예수님을 향해 이렇게 외쳤습니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죄인입니다.
  본래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할 수 없는 참으로 악한 자들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우리들을 위해 예수님은 세상에 오셨습니다.

  고린도후서5:17절의 말씀처럼,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된 피조물입니다.
  질적으로 완전히 변화되고, 신분 자체가 달라진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악한 우리들이 예수님과 함께 영광을 받을 존재들로 변화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들이 이러한 놀라운 복을 누리게 하시기 위해,
  엄청나고 대단한 값을 지불하셨습니다.
  바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처참히 죽이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대신 죄를 뒤집어쓰시고 저주의 자리까지 내려가셨기 때문에,
  우리는 의롭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서,
  아무도 우리를 얕보지 못할, 하나님의 자녀로 신분이 변화된 것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입니까 ?
  이 얼마나 큰복입니까 ?
  그런데 교회를 다니는 어떤 이들은 이러한 아이덴티티를 가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태초로부터 선택되고, 영적으로 구별되어 새로운 피조물이 된 자신의 귀중함을
  깨닫지 못하고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잘난 세상 사람들 앞에 서서 자신의 초라함만을 느낍니다.

  여러분 !
  우리가 정말 그리스도의 후사로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면,
  우리 속에는 건강한 자존심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자존심, 빛의 자녀로서의 자존심,
  구별된 자로서의 자존심을 예수님의 이름 의지하여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자존심이 바로 우리의 아이덴티티이어야 합니다.

  사실, 우리들은 세상적 시각으로 보면, 부족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특별한 자녀입니다.
  사도행전 26장에 보면 사도 바울이 재판 받는 장면이 나옵니다.
  바울은 쇠사슬에 묶여 있고,
  그러한 바울 앞에는 아그립바 왕과 그의 누나인 버니게가 서 있습니다.

  아그립바 왕은 20대의 혈기왕성한 청년이었습니다.
  누구든지 자신을 거역하면 가차없이 죽이는 사나운 사람이었습니다.
  버니게는 또 어떤 여자냐 하면,
  결혼을 몇 번이나 했는데 다 실패하고 이제는 자기 남동생한테 와서
  빌붙어 살고 있으면서, 자신이 왕비인양 온 궁을 휘젓고 사는 그런 여인이었습니다.
  그러한 아그립바와 버니게가 최고로 좋은 옷을 입고,
  온갖 것으로 몸을 치장하고 바울 앞에 섰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
  이러한 그들의 모습이 바울에게는 어떻게 보였겠습니까 ?
  그렇습니다. 불쌍하고 처량하게 보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아그립바를 향해 이렇게 말합니다.
  사도행전26:29, "당신 뿐 아니라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나이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사도 바울의 자존심이었습니다.
  이것이 사도 바울의 힘의 원천이었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왕 앞에서도, 권세 앞에서도, 죽음 앞에서도 조금도 꿀림이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도 이런 자존심을 가지고 세상에서 사랑가야 합니다.
  자주 말씀드리지만,
  비굴한 사람이 되어 약간의 이익을 위해 굽실거리는 삶을 살아서는 절대로 안됩니다.

 "나는 창세로부터 하나님께로부터 선택받는 특별한 존재이다."
 "이러한 나를 위해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이셨어."
 "독생자까지 나를 위해 아낌없이 주신 하나님은,
  나를 위해 이 우주에 존재하는 그 무엇도 주실 거야."
  이것이 바로 우리가 가져야할 아이덴티티입니다.
  하나님은 바로 이런 사람을 통해 이 시대를 새롭게 하실 것입니다.

  둘째, 그들(제자들)의 시각, 관점에 개혁이 일어났습니다.
  21세기에 들어와서, 아마도 가장 인기 있는 말 중의 하나가
  '관점, 시각'을 뜻하는 '패러다임'이라는 말일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본문의 제자들은 패러다임이 바뀌었습니다.

  이제까지의 그들의 관점에서 예수님은 자신들을 성공으로 인도할 분이었습니다.
  로마의 압제에서 자신들을 건져줄 정치적 메시야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그러한 시각은 십자가와 부활 사건으로 완전히 바뀌게 되었습니다.
  본문15절. "(너희가)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여기에서 생명의 주는 곧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제자들이 개혁의 중심에 서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었던 것은 관점,
 즉 패러다임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뉴욕에 사는 앤더슨이란 사람이 주일 아침 지하철을 탔습니다.
  주일이 되어서 그런지 지하철 안에는 사람도 별로 없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창 밖을 물끄러미 내다보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자는지 명상을 하는지 고개를 푹 숙이고 있고,
  또 어떤 사람은 책을 보거나 신문을 읽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지하철이 어느 역에 정차를 했는데,
  거기에서 어떤 남자가 아이 둘을 데리고 탔습니다.
  지하철이 출발하자마자,
  그 두 아이들이 차안을 왔다갔다하면서,
  괜히 자는 사람을 툭 건드리기도 하고,
  모자 쓴 사람의 모자를 벗기기도 하고,
  또 신문 보는 사람 옆에 가서 신문을 끌어당기기도 했습니다.

  정말 모든 손님들이 '어떻게 저런 애들이 있나'하며 불쾌하게 생각하며,
  아이들 아빠를 보니까
  그 남자는 그런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눈을 지그시 감고 있었습니다.
  참다못한 이 앤더슨이라는 사람은 그 남자에게 가서 말을 했습니다.
 "선생님 ! 댁의 아이들이 소란하게 하니, 애들을 진정시켜 주시지요 !"
  그랬더니 그제야 그 남자가 눈을 뜨고 겸연쩍게 말을 합니다.
 "아 ! 정말 죄송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그랬군요. 미안합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사실 잠시 전에 제 아내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정말 어떻게 해야할 지 아무 생각이 나질 않았습니다. 미안합니다"

  그 얘기를 듣자마자 이 앤더슨의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죽은 아내를 향해 아이들을 데리고 가는 그 남자의 형편을 생각하니
  모든 시각이 달라졌습니다.
  그때부터 그 아이들이 그렇게 왔다갔다하고 떠들어도
  더 이상 밉거나 싫지가 않았습니다.
  오히려 어떻게 하면 저 남자와 아이들을 도울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마음에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바로 이것이 패러다임의 변화입니다.
  겉으로 나타나는 현상은 달라진 게 없는데,
  사정을 알고 나니 보는 관점이 완전히 달라진 것입니다.
  우리들이 성령으로 거듭나기 전까지는
  예수는 비천한 나사렛 출신이요, 목수요, 요셉의 아들로 보입니다.
  사도 바울도 거듭나기 전에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거듭난 사람은, 예수님은 구세주로 봅니다.
  이른바 패러다임의 변화입니다.

  패러다임, 즉 관점의 변화는 여기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거듭나기 전에는 현실이 중요하고, 세상적인 것이 중요하지만,
  거듭난 후 패러다임의 변화가 이루어지면,
  이제는 내세적인 것, 영원한 것이 더 가치 있는 것으로 볼 수 있게 됩니다.

  20세기에서부터 시작된 뉴 에이지 사상, 포스트 모더니즘 사상은
  21세기에 들어와 더욱 그 힘을 발휘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 그들의 주된 사상이 무엇입니까 ?
  그렇습니다. 그 사상의 중심에는 '나'가 있습니다.
 "나는 나요 ! 나는 곧 나야 !"하는 사상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
  이 말은 누가 한 말인 줄 아십니까 ?
  그렇습니다. 우리 하나님이 자신을 가리키면서 하신 말씀입니다.
  출애굽기3:14,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
  그런데, 이것을 지금 사람들이 흉내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인간들이 하나님을 밀어내고 그 자리에 자신이 서려 합니다.

  이런 세상을 누가 바꾸겠습니까 ?
  사람이 중심 되어 세상을 이끌어 가겠다는 이 세상을 누가 바꿀 수 있냐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이것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만이 바꿀 수 있습니다.
  비슷하거나 똑같은 사람은 절대 못 바꿉니다.
  달라야 대적할 수 있습니다.
  달라야 바꿀 수 있고, 달라야 감동을 주는 겁니다.
  달라야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지적할 수 있습니다.
  바로 우리들이 변화되고 개혁될 때 이 일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거듭난 신앙인이 되어,
  온전한 관점(패러다임)을 가져
  이 위기의 세상을 개혁하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 사도들은 비전이 개혁되었습니다.
  앞에서 소개했던 누가복음5장에서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이 부름 받는 장면에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5:10, "무서워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즉, 고기를 낚는 어부에서 사람을 낚는 어부로 변화시키겠다는
  예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
  이러한 사명을 인해 부름 받았던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했던 3년 간,
  자기들 스스로 사람 낚는 어부가 되어야 한다는 자의식을 가지고 있었을까요 ?
  아니요. 별로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하나도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오히려 높아지는 것에 더욱 관심이 있었습니다.
  마태복음20:20, "그 때에 세베대의 아들의 어미가 그 아들들을 데리고
  예수께 와서 절하며 무엇을 구하니"

  그런 그들이 오늘 본문12절에 보면, 이렇게 고백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기이히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그렇습니다.
  주님이 자신들을 부르신 본래의 사명을 인식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성전 앞 미문에 앉아 있었던 앉은뱅이를
  베드로와 요한이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일어나 걷게 한 후 있었던 상황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와 요한은 충분히 자신들의 이름을 높일 수 있었습니다.
  그 기적을 이용해 자신들의 사욕을 채울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제 개혁된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던 눈이 개혁되었으며,
  자신들이 무엇을 위해 부름 받았는지도 아는 존재로 개혁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기적을 자신들의 영광으로 채우지 않고,
  오직 주님을 높이는 데 사용했습니다.

  사도행전3:16, "그(예수)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 보고 아는
  이 사람(앉은뱅이)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 기억하십시오 !
  우리는 이제 우리 자신을 위해 살아서는 안됩니다.
  오직 우리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위해 우리의 한평생을 바쳐야 합니다.
  바로 그것이 우리 속에 기억되고 각인되고 가슴이 패일 만큼 깊이 심겨져야 합니다.
 "나를 위해 사는 게 아니라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 사노라 !"
  바로 이것이 우리가 가져야 할, 비전의 혁명입니다.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하나님은 지금 이 위기의 시대에 놀라운 개혁의 사명을 감당할 일꾼을 찾고 계십니다.
  그 사명은 성령으로 거듭난 개혁의 사람만이 감당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들이 이 시대의 위기를 건져낼 개혁의 사람이 됩시다.

  첫째, "나 자신이 누구인가 ?"를 묻고 분명히 깨달아,
  온전한 아이덴티티를 가진 그리스도의 자녀가 됩시다.

  둘째, 세상 모든 것을 바라보는 관점(패러다임)의 변화를 통해,
  진정한 그리스도의 군사로 거듭납시다.
  우리의 인간적인 눈이 아닌, 그리스도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교회를 바라보고, 함께 한 지체들을 바라봅시다.

  셋째, 우리의 비전을 개혁합시다.
  더 이상 욕망에 사로잡힌 인생을 살지 말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삽시다.

  하나님은 이렇게 변화된 우리들을 통해,
  이 땅 일본을 변화시키며, 세계를 변화시켜,
  그리스도의 향기가 가득한 성도들로 세상을 채워 가실 줄 믿습니다.
  이 복된 일의 선봉(先鋒)에 서서 귀하게 쓰임 받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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