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7월25일, 마태복음7:1-12(먼저 내 눈 속의 들보를 빼냅시다) > 主日説教原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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主日説教原稿

2010 2010년7월25일, 마태복음7:1-12(먼저 내 눈 속의 들보를 빼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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投稿者 박성철
コメント 0件 照会 11,790回 日時 10-08-02 11:37

本文

  옆에 계신 지체들을 이렇게 축복합시다.
  당신은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맡은, 하나님의 특별한 피조물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통하여, 이 땅 일본의 수많은 사람들과 화목을 회복하실 것입니다.

  켄 블렌차드라는 분이 쓴, 비전이란 책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느 시테크(시간절약) 전문가가 사람들 앞에서 강연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아귀가 넓은, 중간 크기의 항아리를 탁자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그리고 권투선수의 큰 주먹만 한 돌멩이를 하나씩 조심스럽게 항아리 속에 넣었습니다.
  돌이 항아리 아귀까지 채워져 더 이상 들어가지 않게 되자
  그는 청중들에게 물었습니다.
 "이 항아리가 가득 찼습니까 ?" 모두들 "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항아리에 작은 자갈을 쏟아 넣고 좌우로 흔들었습니다.
  자갈 조각들이 돌멩이 틈 사이로 비집고 들어갔습니다.
  그는 청중들에게 다시 물었습니다. "항아리가 가득 찼습니까 ?"
  처음과는 다르게, 이번에는 선뜩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좋습니다"하면서 이번에는 준비해온 모래를 쏟아 부었습니다.
  그는 또 다시 질문했습니다. "항아리가 가득 찼나요 ?"
  역시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이에 그 시테크 전문가는
  마지막으로 물주전자를 쥐고 항아리가 넘칠 만큼 물을 부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청중들을 바라보면서 이렇게 물었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한 행동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무엇일까요 ?"

  그러자 참 똑똑해 보이는 한 청년이 대답했습니다.
 "하루 그리고 일주일의 스케줄이 아무리 꽉 차있더라도,
  잘 궁리하면 얼마든지 더 끼워 넣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강사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물론 그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진짜 핵심이 아닙니다.
  이 이야기에서 진짜 배워야 할 교훈은,
  그릇에 큰돌을 가장 먼저 넣지 않는다면,
  절대로 이 모든 것을 다 집어넣을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많은 사람들은 온갖 잡동사니부터 먼저 채워놓고 나중에 큰돌을 넣으려고 하니
  큰돌이 들어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먼저 큰돌을 넣고, 다음은 자갈, 모래, 물의 순으로 넣어야,
  그 모든 것이 충실히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비단 시간뿐만이 아닙니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삶의 그릇에 가장 큰돌, 중요한 돌을 먼저 넣어야 합니다.

  여러분 !
  세상사람들은 인생의 가장 큰돌을 무엇이라고 생각할까요 ?
  건강, 자식, 물질, 집, 자동차, 권력, 명예, 공부....... 
  자 ! 그렇다면 여러분 ! 우리 인생의 가장 큰돌은 무엇입니까 ?
  우리 인생의 가장 큰돌은,
  바로 우리의 생명 되시고 소망되신 예수 그리스도인줄 믿습니다.

  베드로전서2:4,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
  에베소서2: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여러분들의 인생의 중심에 가장 먼저 예수 그리스도로 가득 채우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다른 것은 나중에 채우시기를 바랍니다.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사람에게,
  나머지 모든 것도 채워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여러분들 인생에 넘칠 줄 믿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중심에 가득 채울 때,
  그 예수님과 더불어 어떤 것들이 함께 채워질까요 ?

  첫째, 영생(永生)이 함께 채워집니다.
  즉 영원한 생명을 가지게 됩니다.

  요한복음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지금 우리 속에는 영원한 생명이 담겨져 있음을 결코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영생이란 천국에서 영원히 사는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삶의 진정한 의미와 기쁨을 가지게 된 것도 의미합니다.
  영생 속에 진정한 삶의 기쁨이 있고, 평안이 있습니다.
  영생 속에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이 있습니다.

  고대 로마에서는 전쟁에서 여러 노예를 잡아오면,
  잡아온 노예 가운데 한 명을 선택해서,
  3일 동안 왕으로 대접하며 온갖 좋은 의복, 음식, 여인과 3일 동안 마음껏
  즐기게 하고는 3일 후에, 그를 처참히 죽이는 악습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면 노예는 3일 후에 죽을 목숨, '에라 모르겠다 먹고 마시고 즐기자'하며
  정신 없이 논다고 합니다.
  그런데 3일 후에는 실컷 즐겼으니 죽어도 한이 없겠다가 아니라,
  사시나무 떨듯이 떨면서 두려워하며 죽어간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모르는 인생의 모습입니다.
  아무리 호화롭게 누리며 즐기는 삶을 살았다 할지라도,
  죽음 앞에서는 벌벌 떠는 것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불쌍한 모습입니다.

  그러나 성도된 우리는 때로는 세상에서 종과 같은 삶을 사는 것 같을지 모르지만,
  종과 같은 왕, 이것이 성도의 참다운 모습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들, 우리들은 이 세상의 7, 80년의 삶을 먹고 마시고 즐기다가
  죽음이 두려워 벌벌 떨며 죽어 가는 인생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영원한 생명을 얻은 존재입니다. 할렐루야 !

  둘째, 예수님을 우리 속에 채우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요한복음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갈라디아서4:6, "너희가 아들인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그렇습니다. 우리는 큰돌이신 예수님을 우리 중심에 모심과 동시에,
  온 우주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줄로 믿습니다.

  셋째, 예수님을 우리 속에 채우면, 기도의 능력이 채워지게 됩니다.

  요한일서5:14,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본문8-11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사랑하는 여러분 !
  산 돌이신, 보배로운 머릿돌이신 예수님을 여러분의 중심에 가장 먼저 모셔,
  영생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그리고 기도의 능력을 채움 받는
  여러분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자, 그렇다면, 예수님을 중심에 모신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요 ?
  오늘 본문인 마태복음7장을 통해 그것을 발견코자 합니다.

  첫째, 형제와 이웃을 비판하지 않아야 합니다.
  본문1절,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여기서 비판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크리노'인데
  그것은 '사랑 없는 심판이나 정죄(定罪)'를 의미합니다.

  성도여러분 !
  하나님께서는 우주만물에 한 가지 법칙을 세우셨는데,
  그것은 무엇이든지 심는 대로 거둔다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6:7,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그렇습니다.
  우리가 사랑을 심으면 사랑을 거두고, 감사를 심으면 감사를,
  그리고 비판을 심으면 비판을 거두게 됩니다.

  로마서2:1,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 네가 ......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定罪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여러분, 남을 비판하는 것은 자기를 비판하는 것과 같습니다.
  즉, 누워서 하늘을 향해 침 뱉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결국 그 침은 자기 얼굴에 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러시아의 문호, 전쟁과 평화의 저자인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가
  자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이렇게 교훈 했습니다.
 "누구를 비판하고자 할 때, 정면으로 비판하지 말라.
  그것은 그에게 창피를 주는 일이다.
  비판받는 사람은 비판하는 사람 앞에서 자기의 낮아짐을 인정해야하는데,
  그것은 그 사람의 마음을 더 없이 아프게 한다.
  그런고로 정면으로 비판하는 일은 좋지 않다.
  또 안 보는데서, 뒤에서 비판하는 것은 더 나쁘다. 이것은 불성실한 일이다."

  이런 말을 들은 사람들이 톨스토이에게 물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 잘 못된 것을 그냥 둡니까 ?"
  그러자 톨스토이는 이런 재미있는 대답을 했습니다.
 "모른 척해라. 더 중요한 것은 아예 허물이 될 이야기는 듣지도 말고,
  비판해야 될 이야기는 기억하지도 말아라. 그것이 더 아름다운 일이다."

  여러분, 함부로 형제를 비판해서는 안 되는 것은,
  우리가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완전히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톨스토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인으로 인정해
  신약성경의 교훈을 귀히 여겼지만, 예수님을 主로 모시지는 못했습니다.

  유명한 랍비 힐렐은 "네가 그 사람의 환경이나 그 사람의 입장이 되기 전에는
  그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자주 말씀드리지만, 상대의 입장에서 서서 상대의 삶을 온전하게 바라보기 전에는
  우리의 판단은 항상 잘못될 수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옛 날 페르시아의 한 왕이 네 아들들을 불러 이렇게 명령했습니다.
 "지금부터 내 말을 잘 들어라. 첫째 아들은 겨울, 둘째 아들은 봄, 셋째 아들은 여름,
  넷째 아들은 가을에 정원 뒤편의 망고나무를 관찰하라.
  다른 계절에는 망고나무를 보아서는 안 된다."
  네 아들은 왕의 명령에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1년 후 왕은 네 아들을 불러 놓고 물었습니다.
 "자 이제부터 너희가 본 망고나무를 내게 설명해다오"

  네 아들의 대답은 각양각색이었습니다.
 "불에 타고 남은 폐허와 같습니다. 잎이 푸르고 싱그럽습니다.
  꽃은 장미처럼 아름답습니다. 주렁주렁 열린 열매가 탐스럽습니다."

  왕은 네 아들의 손을 잡고 교훈을 주었습니다.
 "너희들의 대답은 모두 옳다. 망고나무는 계절마다 각각 다른 모습을 보인다.
  한 가지 모습만 보고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생각해선 안 된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유의해야 할 것은,
  제 멋대로의 믿음을 가진 사람은 종종 이 말씀을 이상한 방향으로 적용합니다.

  자신이 저지른 끔직한 죄악으로 인해 권면과 책망을 받을 때에도,
 "비판을 받지 않으려거든 비판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교회는 어떤 중대한 범죄가 발생했을 경우,
  그 죄를 판단하고 범죄한 자를 마땅히 정죄(定罪)해야 합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의 범죄를 강하게 비판하며 책망합니다.
  고린도전서5:1-2, "너희 중에 심지어 음행이 있다 함을 들으니 이런 음행은
  이방인 중에라도 없는 것이라 .......
  그리하고도 너희가 오히려 교만하여져서 어찌하여 통한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일 행한 자를 너희 중에서 물리치지 아니하였느냐"
  고린도전서5:3, "내가 실로 몸으로는 떠나 있으나 영으로는 함께 있어서
  거기 있는 것 같이 이 일 행한 자를 이미 판단하였노라"

  교회의 모든 성도들은 때로는 누가 장로와 집사의 자격을 갖추었는지를
  판단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우리 스스로가 판단 기능을 제거해 버리거나,
  혹은 모든 도덕적, 영적 표준을 포기하기를 바라시지 않습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판단이 금지된 영역은 판단을 피하고,
  판단을 허락하신 영역은 올바르게 판단하는 것입니다.

  그럼 진정한 비판 혹은 판단이란 어떤 것일까요 ?
  그것은 문제를 수면위로 끄집어내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것을 해결하고자 하는 사랑의 마음이 있는 비판이 참 비판이며 판단입니다.
  어떤 것을 판단(비판)해야 할 때는,
  반드시 긍정적인 대안을 먼저 생각한 뒤 사랑 안에서 행해야 합니다.
  만약 긍정적인 대안이 떠오르지 않으면 일단은 가만히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이러한 사랑의 판단은 상대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습니다.

  비판은 쉽지만 꿰매기는 어렵습니다.
  비판은 쉽게 할 수 있지만 수습은 힘든 것입니다.
  말만 하는 사람보다는 책임지는 사람, 비판하는 편보다는 꿰매는 편에 서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부탁합니다.

  둘째, 상대의 허물이 보이면, 그것을 통해 자신의 큰 죄를 보아야 합니다.
  본문3절,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혹시 함께 하는 지체들 속에서, 여러 가지 약점과 허물이 보이십니까 ?
  함께 하는 가족, 함께 하는 직장동료들 속에서도 여러 허물이 보이십니까 ?
  그렇다면, 우리들은 형제의 그 허물 속에 비치는, 나의 커다란 허물을 보아야 합니다.

  이탈리아에는 유명한 피사의 사탑이 있습니다.
  조금 기울어져 있는 탑으로 유명합니다.
  그런데 이 삐뚤어 져 있는 피사의 사탑이 스스로 생각하기를,
  자신은 바로 서 있다고 생각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
  그렇습니다. 세상은 온통 삐뚤어져 있는 것입니다.
  사실 삐뚤어져 있는 것은 피사의 사탑이지, 세상의 모든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남을 판단하기 앞서서 네 눈 속의 들보를 빼어내어야 합니다.
  본문5절,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헬라어 성경의 본래의 뜻은, "네 눈 속에 통나무를 두고
  남의 눈에 톱밥을 빼려고 하느냐 ?"입니다.

  어느 대학의 미생물학 실험실에서 재미있는 실험을 실시하였습니다.
  미생물배양 배지를 만들어 놓고 예쁜 여학생들의 고운 손으로 배지 위에
  손도장을 찍게 한 다음 그것을 인큐베이터에 넣고 배양을 시도하였습니다.
  배양한 결과, 손 모양을 따라 엄청난 양의 미생물 집단이 형성되었습니다.
  그냥 눈으로 보기에는 정말로 깨끗이 보였던 예쁜 여학생의 손에도,
  각종 잡균이 무수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해 준 실험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겉으로는 깨끗하게 보이는 우리 손을, 정말로 깨끗이 씻지 않고서,
  상대의 눈의 티를 빼려 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내 손에 있는 죄악들이 상대의 눈에 치명적 아픔을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의 인생의 항아리 속에, 별로 중요하지 않은 작은 것들로 가득 채워,
  진정으로 중요한 것을 받아들이지는 못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맙시다.
  우리 인생의 가장 큰돌, 가장 복된 돌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가장 중심에, 가장 우선적으로 모십시다.
  그리하면, 다른 모든 것들이 차곡 차곡 우리에게 복으로 채워질 것입니다.
  영생을 채움 받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습니다.
  주님의 뜻대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이룸을 받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에 모신 자로서 그에 합당한 삶을 삽시다.
  형제와 이웃과 동료를 비판하지 맙시다.
  그러나, 악한 죄에 대해서는 분명히 권면하여, 회개할 기회를 줍시다.
  혹, 상대의 허물이 나에게 보이거들랑,
  그 허물 속에 비춰진 나 자신의 더욱 더 큰 허물을 볼 줄 아는 눈을 가집시다.
  하나님은 그러한 우리들의 인생을,
  점점 더 예수님의 향기로 가득한 채워 주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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