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2010년7월18일, 고린도후서5:17-21(새로운 피조물이 된 우리가, 특별히 감당할 사명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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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 계신 지체들을 이렇게 축복합시다.
깊이 잘 듣는 당신,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큰 용사가 되시길 축복합니다.
하나님은 헤세드(인자)의 복을 이번 週에도 당신에게 채워주실 것입니다.
지금으로부터 7年 前인 2003년5월, 일본 가고시마에서
하야부사(매)라는 이름을 가진 작은 인공위성이 우주를 향해 발사되었습니다.
인공위성 하야부사에게는 한 가지 매우 중요한 사명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지구와 화성 사이에 있는 작은 혹성 이토카와에 착륙하여,
이토카와에 있는 물질을 지구로 가지고 오는 것이었습니다.
이토카와는 제일 긴 곳이 540m밖에 되지 않는 아주 작은 소혹성이지만,
그 혹성의 물질을 채취하면 우주의 신비를 어느 정도 밝혀낼 수 있을 것이라 해서,
지금도 많은 과학자들이 큰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야부사는 발사로부터 2년6개월이 지난 2005년11월,
20억km의 운항 끝에 드디어 이토카와에 도착했습니다.
그러나 그 기쁨도 잠시, 두 번에 걸친 착륙을 통해 기체(機體)에 심한 타격을 입었고,
그로 인해서,
자세 제어장치의 고장, 엔진고장, 통신두절 등이 발생해 사명 감당은 물론
지구에로의 귀환(歸還)도 극히 어렵게 되고 말았습니다.
우주 미아가 되고 만 것입니다.
사실 지구와 전혀 다른 중력(重力), 공전 속도, 혹성 지표면의 굴곡 등은
순조로운 착륙에 큰 어려움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2006년1월, 통신두절 50일 만에 하야부사의 태양 전지가 태양 빛을 받으면서
기적적으로 지구와의 통신이 부활했습니다.
그로부터 1년3개월이 지난, 2007년4월
드디어 하야부사는 이토카와 혹성을 이륙하는데 성공합니다.
그러나, 반복되는 엔진고장, 중요부위의 수명완료(壽命完了) 등으로
다시 우주 공간을 표류하게 되고 말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상관측소의 헌신적인 노력과 반복되는 기적의 연속으로 지난6월13일,
비록 만신창이의 몸이었지만 드디어 지구귀환에 성공했습니다.
실로 7년에 걸친, 60억km의 길고 긴 여행이었습니다.
(60억km = 지구와 달을 8천 번 왕복한 거리)
하야부사가 지구의 대기권에 돌입할 당시,
유성처럼 긴 꼬리를 늘이며 불타버리는 장면을 보았을 때, 제 가슴도 뭉클했습니다.
망망대해를 유영하다가 자기가 태어난 강으로 돌아와 알을 낳고
일생을 마치는 연어처럼, 하야부사도 자신의 사명을 감당하고,
그렇게 연소되어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하야부사는 대기권에 들어오기 직전,
이토카와 혹성의 물질이 담겨있을 가능성이 있는 캡슐을 자신의 몸에 분리해서,
무사히 호주의 우메라 사막에 떨어뜨렸습니다.
지금 그 캡슐은 일본으로 가져와 과학자들이 연구 중에 있습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저는 이번 하야부사의 마지막을 보면서,
구약성경 사무엘상에 등장하는 벧세메스를 향하는
두 마리의 암소가 머리에 떠올랐습니다.
자신들에게 맡겨진 사명을, 최선을 다해 감당하다가,
끝내는 자신들의 몸조차도 제물로 드렸던 그 소들 말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 암소들이 사명의 자리에 설 그 당시,
그 암소들에게는 아직 젖떼지 않은 어린 아기송아지들이 있었습니다.
그 송아지들은 어미 암소를 향해 "메 - 메 -"하고 울었습니다.
어린 그 송아지들은 아마 이렇게 말했는지도 모릅니다.
"엄마 배고파요 ! 나를 두고 어디 가시는 거예요 ! 돌아오세요 !"
그러나 이 두 암소는 돌이켜 아기 송아지들을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좌(左)로나 우(右)로나 치우치지도 않았습니다.(사무엘상6장)
오히려 눈물을 흘리며 한 걸음, 한 걸음 앞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너무나 큰 사명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들도 이러한 충직한 사명자가 됩시다.
그래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사람들에게도 큰 감동 주는 그러한 삶을 삽시다.
민수기32장의 사건을 소개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조상들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그 땅,
가나안을 향해 출발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40여 년의 긴 여정 끝에,
드디어 가나안 땅이 눈앞에 보이는 모압 평지에 도착했습니다.
이제 그들은 다시 한번 마음을 모아,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해, 약속된 축복을 향해,
사명을 향해 새롭게 나아가야 했습니다.
가나안 땅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약속의 땅이었지만,
하나님을 의지하며 목숨을 걸고 싸워 정복해 나가야 할 사명의 땅이었습니다.
찬양 제목 -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주님이 주신 땅으로 한 걸음씩 나아갈 때에,
수많은 적들과 견고한 성이 나를 두렵게 하지만,
주님을 신뢰함으로 주님을 의지함으로,
주님이 주시는 담대함으로 큰 소리 외치며 나아가네.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그 날에 주께서 말씀하신,
이제 내가 주님의 이름으로 이 땅을 취하리니.
그런데 바로 그때, 온 백성들이 하나되어 큰 싸움을 준비할 그때에,
이스라엘 12지파 중에서 용맹하기로 이름난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 사람들이
모세와 제사장 그리고 백성의 족장들 앞에 나아왔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민수기32:4-5,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회중 앞에서 쳐서 멸하신 땅(야셀과 길르앗)은
가축에 적당한 곳이요, 당신의 종들(즉, 우리들)에게는 가축이 있나이다.......
이 땅을 당신의 종들(즉, 우리들)에게 산업으로 주시고
우리는 요단을 건너지 않게 하소서"
여러분 ! 이것이 무슨 말입니까 ?
그렇습니다. 지금 자신들이 서 있는 모압 평지와 야셀, 길르앗 평지가
너무나 살기 좋은 곳이니, 자신들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않고
이곳에서 살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허락해 달라는 것입니다.
사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 정복 직전에 점령한 야셀과 길르앗 땅은 당시뿐만 아니라
지금도 훌륭한 목초지와 곡창지대로 유명합니다.
더구나 그들에게는 많은 가축이 있었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그 땅이 탐이 났을 것입니다.
민수기32:1,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은 심히 많은 가축의 떼가 있었더라
그들이 야셀 땅과 길르앗 땅을 본즉 그 곳은 가축에 적당한 곳인지라"
그런데 문제는 그곳이 아무리 풍요로운 땅임에도 불구하고,
택한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약속의 땅 밖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더구나 가축이 많은 것은 비단 자신들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다른 지파들도 하나님의 은총 가운데, 많은 재산과 가축을 가지고 있었고,
더구나 이들 지파보다 훨씬 더 많은 가족과 자녀들이 있었습니다.
실제로 이들은 인구수에서도 12지파 중 9위와 10위였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
이 두 지파는 왜 약속의 땅도 아닌 이곳을 요구했을까요 ?
그렇습니다. 이들이 그 땅을 요구한 가장 큰 이유는 욕심이었습니다.
야고보서1:14-15,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저는 지난주일 '그리스도의 용사'에 대해 말씀을 나눌 때,
무엇보다도 잘 듣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 잘 듣는 것 못지 않게 잘 보는 것도 중요합니다.
왜 사람들이 잘 보지 못합니까 ?
왜 헛것을 봅니까 ?
왜 멸망의 길이 오히려 성공의 길로 잘 못 보입니까 ?
그것은 욕심으로 인해 눈이 어두워지고, 가리어졌기 때문입니다.
거짓 선지자 발람은 물질과 권세에 눈이 어두워져,
나귀도 보는 것을 자칭 선지자인 자신은 보지를 못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똑 같은 상황과 똑 같은 현실도, 보는 사람들의 마음가짐에 따라
전혀 틀리게 보이는 것입니다.
즉 다른 지파의 사람들은 가나안 동편의 땅이 우상 숭배와 죄악이 가득한 땅으로
보였지만 그들의 눈에는 좋은 목초지로만 보였습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이번 한 주간, 지금 여러분들의 눈에 참 좋게 보이는 것이,
혹 자신을 유혹하여 멸망시킬 것이 아닌가를 꼭 살펴보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좁은 길을 선택하시기를 바랍니다.
마태복음7:!3-14,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狹窄)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우리는 아브라함의 조카 롯을 잘 압니다.
그는 자신의 땅과 자신의 거처를 고를 때, 오로지 경제적인 이유,
생활의 편안함이 최우선되었습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
자신이 선택한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할 때,
롯은 아내가 소금기둥이 되는 비참한 결과를 맛보고 말았습니다.
더구나 자기가 그토록 아끼던 모든 재산과 종들을
모두 하늘의 재앙을 통해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결국 자신의 것을 지키려고, 욕심을 채우려고 선택한 것이,
오히려 자신이 가장 귀히 여기는 것을 빼앗아 가는 도구가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지금도 아라비아인들은 사해(즉 소돔과 고모라로 추정됨)를 '바할롯'이라고 부릅니다.
그 의미는 롯의 바다라는 뜻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그 어떤 것을 선택할 때도, 경제적인 이유, 내 삶의 편안함,
세상적 욕심 때문에 선택하지 마십시오.
오직 하나님의 영광, 主의 사명, 영적 성장을 위해 하시기 바랍니다.
고린도전서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사랑하는 본향성도 여러분 !
특히, 눈앞에 다가오는 모든 것들을 욕심과 단순한 나의 삶으로 보지말고
사명(使命)의 눈으로 봅시다.
앞에서 소개한 하야부사(はやぶさ)가 많은 이들의 마음에 깊은 여운을 남기는 것은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끝까지 사명을 지켰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 여러분은 지금 이 땅 일본에서 무엇이 보이십니까 ?
성공과 좋은 대우와 돈과 명예와 편안함만이 보이십니까 ?
좋은 학교, 좋은 직장, 좋은 배우자, 좋은 차, 좋은 집만 보이십니까 ?
그렇다면, 우리들은 르우벤과 갓과 전혀 다를 것이 없습니다.
이 땅 일본에서 우리들이 볼 것은 그러한 것들이 전부가 아닙니다.
더욱 중요한 것들을 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을 지금 우리 주 예수님께서 보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지친 사람들이 보여야 합니다.
인생의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사람들이 보여야 합니다.
사명에 지쳐 도움을 구하는 사명자의 손짓을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예수님이 그러하셨던 것처럼, 그들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손을 내어 밀어야 합니다.
보고도 못 본채 하지말고, 용기 내어 나아가야 합니다.
자 ! 오늘 본문17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여러분, 이 말씀은 우리를 향해 무엇을 선포합니까 ?
그렇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순간,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고 선포합니다.
우리들이 새것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자 ! 그렇다면, 여러분들에게 중요한 것을 묻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무슨 이유 때문에 새로운 피조물로 만드실까요 ?
예수를 영접한 우리들을 왜 새롭게 하실까요 ?
천국에 살기에 합당한 사람되게 하려고 새롭게 하실까요 ?
아니면, 하나님의 자녀답게 하려고 새롭게 하실까요 ?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사명을 주시려고 새롭게 하신 것입니다.
자 ! 그렇다면, 무슨 사명을 주시기 위해 우리를 새롭게 하실까요 ?
본문18절과 19절에 그 답이 있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본문18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본문19절, "....... 화목하게 하시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그렇습니다.
화목하게 하는 직책입니다. 또한 화목하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들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자신들의 욕망과 의지를 따라
세상에 푹 빠져 살아가는 사람들을 권면하여, 하나님과의 화목을 이루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이렇게 외쳐야 합니다.
요한복음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사도행전16:31,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본문21절,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
여러분은 사명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
(복음성가 - 사명)
주님이 홀로 가신 그 길, 나도 따라가오,
모든 물과 피를 흘리신, 그 길을 나도 가오,
험한 산도 나는 괜찮소, 바다 끝이라도 나는 괜찮소,
죽어 가는 저들을 위해, 나를 버리길 바라오.
아버지 나를 보내주오, 나는 달려가겠소,
목숨도 아끼지 않겠소, 나를 보내주오
그렇습니다. 주님이 홀로 가신 그 길을 나도 함께 가는 것이 사명(使命)입니다.
험한 산에도, 바다 끝에도, 주님과 함께 가는 것이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는 것입니다.
다시 민수기 말씀을 봅니다.
모세는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를 향해 이렇게 진노합니다.
민수기32:6, "너희 형제들은 싸우러 가거늘 너희는 여기 앉아 있고자 하느냐"
민수기32:7, "너희가 어찌하여 이스라엘 자손으로 낙심케 하여서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주신 땅으로 건너갈 수 없게 하려느냐"
지금 모세가 지적하는,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의 가장 큰 잘못은,
모든 이스라엘 자손들을 낙심케 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지난 40년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 생활을 통해서 볼 때,
이스라엘은 낙심하거나 실망하면, 하나님께 불평했습니다.
큰 범죄를 행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두려웠습니다.
이번에도 두 지파의 행위로 말미암아, 온 이스라엘 자손이 낙심하여,
다시금 하나님 앞에 범죄하지 않을까 말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지금부터 이스라엘은 힘겨운 정복전쟁을 펼쳐야 합니다.
그런데, 약 40년 전에 정탐했던 가나안 땅과 그 땅의 거민들은
결코 호락호락한 존재들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열 명의 정탐꾼들의 보고에 의하면,
이스라엘을 그들과 비교할 때 메뚜기 정도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용맹하기로 알려진 르우벤, 갓 지파가
이 전쟁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분명 나머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큰 실망과 낙심될 것이 분명했습니다.
여러분, 사실 그렇습니다.
어떤 큰 일이 닥쳐왔을 때, 그것을 감당할 만한 사람이 뒤로 쏙 빠져버리면,
그것은 그와 함께 한 모든 지체들에게 커다란 실망, 낙심을 주고 맙니다.
그러므로 맡은 자들, 앞서는 자들에게는 물러서지 않는 충성이 필요한 것입니다.
끝까지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것이, 온전한 사명자의 제일 조건입니다.
특별히 본향에서는 저와 제직들(집사님, 권찰님)에게 이러한 사명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제직여러분 ! 물러서지 마십시오. 뒤로 빼지 마십시오.
어떤 상황 속에서도 여러분의 자리만큼은 생명을 걸고 지키십시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감당해야 할, 십자가의 잔을 결코 남에게 넘기지 않으셨습니다.
직접 감당하셨습니다. 당신께서 지키셔야 할 자리에 반드시 예수님은 서 계셨습니다.
저도 본향의 12년 역사 동안, 절대로 뒤로 빼거나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반드시 제가 지켜야 할 자리는 지켜 서 있었습니다.
함께 하는 지체에게 여러분의 분투를 통해 용기를 줄지언정, 낙심케 하지는 마십시오.
교회에서 행하는 어떤 행사든, 어떤 일이든, 어떤 고난이든, 뒤로 빼지 말고
힘껏 참여하십시오.
그것이 함께 하는 동역자들에게 용기를 주는 일입니다.
자기 개인적인 일을 우선하여, 낙심과 실망을 끼치는 어리석음을 이제는 그치십시오.
왜냐하면, 한 두 제직과 한 두 청지기들의 이러한 태도는
그 청지기는 물론 우리들이 속한 그 모임 자체가 심각한 타격을 받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르우벤과 갓 지파의 사람들에게 이렇게 경고합니다.
민수기32:15, "너희가 만일 돌이켜 여호와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또 이 백성을 광야에 버리시리니
그리하면 너희가 이 모든 백성을 멸망시키리라"
그렇습니다. 르우벤과 갓의 지금 행위는 그들뿐만이 아니라,
온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에서 멸망시키는 것이 된다고 모세는 경고합니다.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모세의 강력한 경고 앞에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는 이렇게 협상을 제시합니다.
민수기32:16-19, "그들이 모세에게 가까이 나아와 가로되 우리가
이 곳에 우리 가축을 위하여 우리를 짓고 우리 유아들을 위하여 성읍을 건축하고"
"이 땅 거민의 연고로 우리 유아들로 그 견고한 성읍에 거하게 한 후에
우리는 무장하고 이스라엘 자손을 그 곳으로 인도하기까지 그들의 앞에 행하고"
"이스라엘 자손이 각기 기업을 얻기까지 우리 집으로 돌아오지 아니하겠사오며"
"우리는 요단 이편 곧 동편에서 산업을 얻었사오니
그들과 함께 요단 저편에서는 기업을 얻지 아니하겠나이다"
결국 그들은 약속의 땅의 기업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가나안 정복전쟁 때, 그들이 앞서서 전쟁을 수행했지만,
결국 그들은 역사 속에서 서서히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새로운 피조물로 만드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사명으로 주셨습니다.
이 땅 일본은 하나님과 화목하지 못하고,
오히려 하나님과 원수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들의 삶은 이 땅에서도 허무하게 끝나고 말 것이며,
또 결국에는 영원한 지옥 불에 던져지고 말 것입니다.
그들을 향해 나아갑시다.
복음 전파를 최고의 사명으로 여기며 감당합시다.
노방찬양 전도, 코리안 파티, 한글 강좌, 전도지 만들기, 일본어 홈페이지 구축 등,
이 땅의 영혼들을 건지기 위한 일에 더 더욱 힘을 기울입시다.
무엇보다도 제직과 청지기 여러분 ! 함께 하는 동역자들을 낙심하게 하지 맙시다.
우리의 인생이 다 하는 날 우리 모두에게 이런 고백이 꼭 있기를 축복합니다.
디모데후서4:7-8,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할렐루야 ! 아멘.
깊이 잘 듣는 당신,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큰 용사가 되시길 축복합니다.
하나님은 헤세드(인자)의 복을 이번 週에도 당신에게 채워주실 것입니다.
지금으로부터 7年 前인 2003년5월, 일본 가고시마에서
하야부사(매)라는 이름을 가진 작은 인공위성이 우주를 향해 발사되었습니다.
인공위성 하야부사에게는 한 가지 매우 중요한 사명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지구와 화성 사이에 있는 작은 혹성 이토카와에 착륙하여,
이토카와에 있는 물질을 지구로 가지고 오는 것이었습니다.
이토카와는 제일 긴 곳이 540m밖에 되지 않는 아주 작은 소혹성이지만,
그 혹성의 물질을 채취하면 우주의 신비를 어느 정도 밝혀낼 수 있을 것이라 해서,
지금도 많은 과학자들이 큰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야부사는 발사로부터 2년6개월이 지난 2005년11월,
20억km의 운항 끝에 드디어 이토카와에 도착했습니다.
그러나 그 기쁨도 잠시, 두 번에 걸친 착륙을 통해 기체(機體)에 심한 타격을 입었고,
그로 인해서,
자세 제어장치의 고장, 엔진고장, 통신두절 등이 발생해 사명 감당은 물론
지구에로의 귀환(歸還)도 극히 어렵게 되고 말았습니다.
우주 미아가 되고 만 것입니다.
사실 지구와 전혀 다른 중력(重力), 공전 속도, 혹성 지표면의 굴곡 등은
순조로운 착륙에 큰 어려움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2006년1월, 통신두절 50일 만에 하야부사의 태양 전지가 태양 빛을 받으면서
기적적으로 지구와의 통신이 부활했습니다.
그로부터 1년3개월이 지난, 2007년4월
드디어 하야부사는 이토카와 혹성을 이륙하는데 성공합니다.
그러나, 반복되는 엔진고장, 중요부위의 수명완료(壽命完了) 등으로
다시 우주 공간을 표류하게 되고 말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상관측소의 헌신적인 노력과 반복되는 기적의 연속으로 지난6월13일,
비록 만신창이의 몸이었지만 드디어 지구귀환에 성공했습니다.
실로 7년에 걸친, 60억km의 길고 긴 여행이었습니다.
(60억km = 지구와 달을 8천 번 왕복한 거리)
하야부사가 지구의 대기권에 돌입할 당시,
유성처럼 긴 꼬리를 늘이며 불타버리는 장면을 보았을 때, 제 가슴도 뭉클했습니다.
망망대해를 유영하다가 자기가 태어난 강으로 돌아와 알을 낳고
일생을 마치는 연어처럼, 하야부사도 자신의 사명을 감당하고,
그렇게 연소되어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하야부사는 대기권에 들어오기 직전,
이토카와 혹성의 물질이 담겨있을 가능성이 있는 캡슐을 자신의 몸에 분리해서,
무사히 호주의 우메라 사막에 떨어뜨렸습니다.
지금 그 캡슐은 일본으로 가져와 과학자들이 연구 중에 있습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저는 이번 하야부사의 마지막을 보면서,
구약성경 사무엘상에 등장하는 벧세메스를 향하는
두 마리의 암소가 머리에 떠올랐습니다.
자신들에게 맡겨진 사명을, 최선을 다해 감당하다가,
끝내는 자신들의 몸조차도 제물로 드렸던 그 소들 말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 암소들이 사명의 자리에 설 그 당시,
그 암소들에게는 아직 젖떼지 않은 어린 아기송아지들이 있었습니다.
그 송아지들은 어미 암소를 향해 "메 - 메 -"하고 울었습니다.
어린 그 송아지들은 아마 이렇게 말했는지도 모릅니다.
"엄마 배고파요 ! 나를 두고 어디 가시는 거예요 ! 돌아오세요 !"
그러나 이 두 암소는 돌이켜 아기 송아지들을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좌(左)로나 우(右)로나 치우치지도 않았습니다.(사무엘상6장)
오히려 눈물을 흘리며 한 걸음, 한 걸음 앞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너무나 큰 사명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들도 이러한 충직한 사명자가 됩시다.
그래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사람들에게도 큰 감동 주는 그러한 삶을 삽시다.
민수기32장의 사건을 소개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조상들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그 땅,
가나안을 향해 출발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40여 년의 긴 여정 끝에,
드디어 가나안 땅이 눈앞에 보이는 모압 평지에 도착했습니다.
이제 그들은 다시 한번 마음을 모아,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해, 약속된 축복을 향해,
사명을 향해 새롭게 나아가야 했습니다.
가나안 땅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약속의 땅이었지만,
하나님을 의지하며 목숨을 걸고 싸워 정복해 나가야 할 사명의 땅이었습니다.
찬양 제목 -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주님이 주신 땅으로 한 걸음씩 나아갈 때에,
수많은 적들과 견고한 성이 나를 두렵게 하지만,
주님을 신뢰함으로 주님을 의지함으로,
주님이 주시는 담대함으로 큰 소리 외치며 나아가네.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그 날에 주께서 말씀하신,
이제 내가 주님의 이름으로 이 땅을 취하리니.
그런데 바로 그때, 온 백성들이 하나되어 큰 싸움을 준비할 그때에,
이스라엘 12지파 중에서 용맹하기로 이름난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 사람들이
모세와 제사장 그리고 백성의 족장들 앞에 나아왔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민수기32:4-5,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회중 앞에서 쳐서 멸하신 땅(야셀과 길르앗)은
가축에 적당한 곳이요, 당신의 종들(즉, 우리들)에게는 가축이 있나이다.......
이 땅을 당신의 종들(즉, 우리들)에게 산업으로 주시고
우리는 요단을 건너지 않게 하소서"
여러분 ! 이것이 무슨 말입니까 ?
그렇습니다. 지금 자신들이 서 있는 모압 평지와 야셀, 길르앗 평지가
너무나 살기 좋은 곳이니, 자신들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않고
이곳에서 살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허락해 달라는 것입니다.
사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 정복 직전에 점령한 야셀과 길르앗 땅은 당시뿐만 아니라
지금도 훌륭한 목초지와 곡창지대로 유명합니다.
더구나 그들에게는 많은 가축이 있었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그 땅이 탐이 났을 것입니다.
민수기32:1,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은 심히 많은 가축의 떼가 있었더라
그들이 야셀 땅과 길르앗 땅을 본즉 그 곳은 가축에 적당한 곳인지라"
그런데 문제는 그곳이 아무리 풍요로운 땅임에도 불구하고,
택한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약속의 땅 밖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더구나 가축이 많은 것은 비단 자신들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다른 지파들도 하나님의 은총 가운데, 많은 재산과 가축을 가지고 있었고,
더구나 이들 지파보다 훨씬 더 많은 가족과 자녀들이 있었습니다.
실제로 이들은 인구수에서도 12지파 중 9위와 10위였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
이 두 지파는 왜 약속의 땅도 아닌 이곳을 요구했을까요 ?
그렇습니다. 이들이 그 땅을 요구한 가장 큰 이유는 욕심이었습니다.
야고보서1:14-15,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저는 지난주일 '그리스도의 용사'에 대해 말씀을 나눌 때,
무엇보다도 잘 듣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 잘 듣는 것 못지 않게 잘 보는 것도 중요합니다.
왜 사람들이 잘 보지 못합니까 ?
왜 헛것을 봅니까 ?
왜 멸망의 길이 오히려 성공의 길로 잘 못 보입니까 ?
그것은 욕심으로 인해 눈이 어두워지고, 가리어졌기 때문입니다.
거짓 선지자 발람은 물질과 권세에 눈이 어두워져,
나귀도 보는 것을 자칭 선지자인 자신은 보지를 못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똑 같은 상황과 똑 같은 현실도, 보는 사람들의 마음가짐에 따라
전혀 틀리게 보이는 것입니다.
즉 다른 지파의 사람들은 가나안 동편의 땅이 우상 숭배와 죄악이 가득한 땅으로
보였지만 그들의 눈에는 좋은 목초지로만 보였습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이번 한 주간, 지금 여러분들의 눈에 참 좋게 보이는 것이,
혹 자신을 유혹하여 멸망시킬 것이 아닌가를 꼭 살펴보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좁은 길을 선택하시기를 바랍니다.
마태복음7:!3-14,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狹窄)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우리는 아브라함의 조카 롯을 잘 압니다.
그는 자신의 땅과 자신의 거처를 고를 때, 오로지 경제적인 이유,
생활의 편안함이 최우선되었습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
자신이 선택한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할 때,
롯은 아내가 소금기둥이 되는 비참한 결과를 맛보고 말았습니다.
더구나 자기가 그토록 아끼던 모든 재산과 종들을
모두 하늘의 재앙을 통해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결국 자신의 것을 지키려고, 욕심을 채우려고 선택한 것이,
오히려 자신이 가장 귀히 여기는 것을 빼앗아 가는 도구가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지금도 아라비아인들은 사해(즉 소돔과 고모라로 추정됨)를 '바할롯'이라고 부릅니다.
그 의미는 롯의 바다라는 뜻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그 어떤 것을 선택할 때도, 경제적인 이유, 내 삶의 편안함,
세상적 욕심 때문에 선택하지 마십시오.
오직 하나님의 영광, 主의 사명, 영적 성장을 위해 하시기 바랍니다.
고린도전서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사랑하는 본향성도 여러분 !
특히, 눈앞에 다가오는 모든 것들을 욕심과 단순한 나의 삶으로 보지말고
사명(使命)의 눈으로 봅시다.
앞에서 소개한 하야부사(はやぶさ)가 많은 이들의 마음에 깊은 여운을 남기는 것은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끝까지 사명을 지켰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 여러분은 지금 이 땅 일본에서 무엇이 보이십니까 ?
성공과 좋은 대우와 돈과 명예와 편안함만이 보이십니까 ?
좋은 학교, 좋은 직장, 좋은 배우자, 좋은 차, 좋은 집만 보이십니까 ?
그렇다면, 우리들은 르우벤과 갓과 전혀 다를 것이 없습니다.
이 땅 일본에서 우리들이 볼 것은 그러한 것들이 전부가 아닙니다.
더욱 중요한 것들을 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을 지금 우리 주 예수님께서 보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지친 사람들이 보여야 합니다.
인생의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사람들이 보여야 합니다.
사명에 지쳐 도움을 구하는 사명자의 손짓을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예수님이 그러하셨던 것처럼, 그들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손을 내어 밀어야 합니다.
보고도 못 본채 하지말고, 용기 내어 나아가야 합니다.
자 ! 오늘 본문17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여러분, 이 말씀은 우리를 향해 무엇을 선포합니까 ?
그렇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순간,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고 선포합니다.
우리들이 새것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자 ! 그렇다면, 여러분들에게 중요한 것을 묻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무슨 이유 때문에 새로운 피조물로 만드실까요 ?
예수를 영접한 우리들을 왜 새롭게 하실까요 ?
천국에 살기에 합당한 사람되게 하려고 새롭게 하실까요 ?
아니면, 하나님의 자녀답게 하려고 새롭게 하실까요 ?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사명을 주시려고 새롭게 하신 것입니다.
자 ! 그렇다면, 무슨 사명을 주시기 위해 우리를 새롭게 하실까요 ?
본문18절과 19절에 그 답이 있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본문18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본문19절, "....... 화목하게 하시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그렇습니다.
화목하게 하는 직책입니다. 또한 화목하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들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자신들의 욕망과 의지를 따라
세상에 푹 빠져 살아가는 사람들을 권면하여, 하나님과의 화목을 이루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이렇게 외쳐야 합니다.
요한복음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사도행전16:31,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본문21절,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
여러분은 사명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
(복음성가 - 사명)
주님이 홀로 가신 그 길, 나도 따라가오,
모든 물과 피를 흘리신, 그 길을 나도 가오,
험한 산도 나는 괜찮소, 바다 끝이라도 나는 괜찮소,
죽어 가는 저들을 위해, 나를 버리길 바라오.
아버지 나를 보내주오, 나는 달려가겠소,
목숨도 아끼지 않겠소, 나를 보내주오
그렇습니다. 주님이 홀로 가신 그 길을 나도 함께 가는 것이 사명(使命)입니다.
험한 산에도, 바다 끝에도, 주님과 함께 가는 것이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는 것입니다.
다시 민수기 말씀을 봅니다.
모세는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를 향해 이렇게 진노합니다.
민수기32:6, "너희 형제들은 싸우러 가거늘 너희는 여기 앉아 있고자 하느냐"
민수기32:7, "너희가 어찌하여 이스라엘 자손으로 낙심케 하여서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주신 땅으로 건너갈 수 없게 하려느냐"
지금 모세가 지적하는,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의 가장 큰 잘못은,
모든 이스라엘 자손들을 낙심케 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지난 40년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 생활을 통해서 볼 때,
이스라엘은 낙심하거나 실망하면, 하나님께 불평했습니다.
큰 범죄를 행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두려웠습니다.
이번에도 두 지파의 행위로 말미암아, 온 이스라엘 자손이 낙심하여,
다시금 하나님 앞에 범죄하지 않을까 말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지금부터 이스라엘은 힘겨운 정복전쟁을 펼쳐야 합니다.
그런데, 약 40년 전에 정탐했던 가나안 땅과 그 땅의 거민들은
결코 호락호락한 존재들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열 명의 정탐꾼들의 보고에 의하면,
이스라엘을 그들과 비교할 때 메뚜기 정도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용맹하기로 알려진 르우벤, 갓 지파가
이 전쟁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분명 나머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큰 실망과 낙심될 것이 분명했습니다.
여러분, 사실 그렇습니다.
어떤 큰 일이 닥쳐왔을 때, 그것을 감당할 만한 사람이 뒤로 쏙 빠져버리면,
그것은 그와 함께 한 모든 지체들에게 커다란 실망, 낙심을 주고 맙니다.
그러므로 맡은 자들, 앞서는 자들에게는 물러서지 않는 충성이 필요한 것입니다.
끝까지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것이, 온전한 사명자의 제일 조건입니다.
특별히 본향에서는 저와 제직들(집사님, 권찰님)에게 이러한 사명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제직여러분 ! 물러서지 마십시오. 뒤로 빼지 마십시오.
어떤 상황 속에서도 여러분의 자리만큼은 생명을 걸고 지키십시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감당해야 할, 십자가의 잔을 결코 남에게 넘기지 않으셨습니다.
직접 감당하셨습니다. 당신께서 지키셔야 할 자리에 반드시 예수님은 서 계셨습니다.
저도 본향의 12년 역사 동안, 절대로 뒤로 빼거나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반드시 제가 지켜야 할 자리는 지켜 서 있었습니다.
함께 하는 지체에게 여러분의 분투를 통해 용기를 줄지언정, 낙심케 하지는 마십시오.
교회에서 행하는 어떤 행사든, 어떤 일이든, 어떤 고난이든, 뒤로 빼지 말고
힘껏 참여하십시오.
그것이 함께 하는 동역자들에게 용기를 주는 일입니다.
자기 개인적인 일을 우선하여, 낙심과 실망을 끼치는 어리석음을 이제는 그치십시오.
왜냐하면, 한 두 제직과 한 두 청지기들의 이러한 태도는
그 청지기는 물론 우리들이 속한 그 모임 자체가 심각한 타격을 받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르우벤과 갓 지파의 사람들에게 이렇게 경고합니다.
민수기32:15, "너희가 만일 돌이켜 여호와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또 이 백성을 광야에 버리시리니
그리하면 너희가 이 모든 백성을 멸망시키리라"
그렇습니다. 르우벤과 갓의 지금 행위는 그들뿐만이 아니라,
온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에서 멸망시키는 것이 된다고 모세는 경고합니다.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모세의 강력한 경고 앞에 르우벤 지파와 갓 지파는 이렇게 협상을 제시합니다.
민수기32:16-19, "그들이 모세에게 가까이 나아와 가로되 우리가
이 곳에 우리 가축을 위하여 우리를 짓고 우리 유아들을 위하여 성읍을 건축하고"
"이 땅 거민의 연고로 우리 유아들로 그 견고한 성읍에 거하게 한 후에
우리는 무장하고 이스라엘 자손을 그 곳으로 인도하기까지 그들의 앞에 행하고"
"이스라엘 자손이 각기 기업을 얻기까지 우리 집으로 돌아오지 아니하겠사오며"
"우리는 요단 이편 곧 동편에서 산업을 얻었사오니
그들과 함께 요단 저편에서는 기업을 얻지 아니하겠나이다"
결국 그들은 약속의 땅의 기업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가나안 정복전쟁 때, 그들이 앞서서 전쟁을 수행했지만,
결국 그들은 역사 속에서 서서히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새로운 피조물로 만드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사명으로 주셨습니다.
이 땅 일본은 하나님과 화목하지 못하고,
오히려 하나님과 원수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들의 삶은 이 땅에서도 허무하게 끝나고 말 것이며,
또 결국에는 영원한 지옥 불에 던져지고 말 것입니다.
그들을 향해 나아갑시다.
복음 전파를 최고의 사명으로 여기며 감당합시다.
노방찬양 전도, 코리안 파티, 한글 강좌, 전도지 만들기, 일본어 홈페이지 구축 등,
이 땅의 영혼들을 건지기 위한 일에 더 더욱 힘을 기울입시다.
무엇보다도 제직과 청지기 여러분 ! 함께 하는 동역자들을 낙심하게 하지 맙시다.
우리의 인생이 다 하는 날 우리 모두에게 이런 고백이 꼭 있기를 축복합니다.
디모데후서4:7-8,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할렐루야 !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