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2010년4월18일, 창세기25:27-34(무엇이 더 소중합니까)
ページ情報

本文
옆에 계신 복스러운 지체들을 이렇게 축복합시다.
우리가 사명을 위해 살면, 하나님은 우리의 생(一生)을 책임지십니다.
이 어두운 시대에, 등대가 되고 빛이 되는 당신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어떤 일을 하든 거기엔 꼭 위험이 함께 합니다.
등산을 하면 상쾌하긴 하지만 추락이나 조난할 위험이 있고,
수영을 하면 건강에는 좋지만 물에 빠질 위험이 있으며,
공부를 무척 열심히 하면 실력을 기를 수 있지만 자칫 건강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 인생살이의 모든 분야가 다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 신앙생활에는 위험한 부분이 없을까요 ?
물론 있습니다.
첫째는 이단(異端)의 위험이고, 둘째는 배교(背敎)의 위험입니다.
이단의 위험이란,
자칫 헛된 열심과 거짓된 가르침에 빠져 순수한 신앙을 잃어버리는 것을 말합니다.
지난주일, 우리들이 찬양하며 전도하는 錦絲公園 앞에서
어떤 사람들이 예수님의 얼굴이 표지에 그려진 책을 나눠주고 있었습니다.
놀랍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해서 책을 한 권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여호와증인이었습니다. 기독교 이단(異端)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異端들이 정통 기독교인들보다 더 열심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일본에는 많은 이단들이 들어와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증인, 통일교, 할렐루야기도원, 신천지, 구원파, 만민교회, 유광수의 다락방,
몰몬교, 이명범의 레마선교회 등등.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이들은 정통 기독교보다 더욱 열심 있는 것처럼 보이고, 더욱 경건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끝이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마땅히 받으실 영광을 인간이 가로챕니다.
또한 성경의 일부, 혹은 전체를 부정합니다.
혹은 성경을 인정하되 자신들 나름대로 해석하여, 경건한 그리스도인들을 미혹합니다.
여러분 !
우리들과 아주 가까운 곳에서 이단(異端)들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습니다.
그 유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깨어있기를 바랍니다.
혹 조금 이상한 것이 느껴지시거든 언제든지 저에게나
혹은 李목사님께 묻고 상담하시기를 바랍니다.
다음으로는 배도(背道)의 위험입니다.
사도 바울도 디모데에게 이 사실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디모데전서4:1,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으리라 하셨으니"
그렇습니다. 열심히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엉뚱한 가르침을 따라 배신하고 타락할 사람들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우리가 아는 이들 중에도 이런 이들이 있습니다.
데마라는 사람은 바울을 따라 로마까지 가서 감옥에도 함께 갇힐 만큼
열심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결국 세상을 사랑해 떠나버리고 말았습니다.
또한 주님의 제자였던 가룟 유다는 어떻습니까 ?
여러분 ! 그러니 연약한 우리들은 더더욱 어떻겠습니까 ?
그런데 이 위험을 가장 잘 알려주는 이가 오늘 본문의 에서입니다.
그는 아브라함과 이삭으로 이어지는,
특별히 선택된 가문에서 장자(長子)로 태어난 인물입니다.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만 해도 엄청난 은혜를 누릴 사람이었습니다.
특별한 사명과 큰복을 누릴 좋은 조건들을 다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망령된 사람, 버림받은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히브리서12:16, "한 그릇 식물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라"
더구나 그는 돌이킬 기회도 얻지 못했습니다.
히브리서12:17, "저가 그 후에 축복을 기업으로 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
결국 長子가 받을 특별한 복은 그의 동생 야곱에게 넘어갔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기록되게 되었습니다.
출애굽기3:6,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마태복음1:1-2,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를 낳고"
결국 에서는 버림받은 족속이 되었고, 축복의 땅을 얻지도 못했으며,
얼마 후 역사 속에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자 ! 그렇다면 여러분 ! 에서는 왜 그렇게 되고 말았을까요 ?
첫째, 그는 눈앞의 것만 보는 근시안적인 사람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냥을 나갔던 에서가 몹시 배고픈 가운데 집에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마침 동생 야곱이 팥죽을 쑤고 있었습니다.
이에 에서는 야곱에게 팥죽을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형 에서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본문31절, "형의 장자의 명분을 오늘날 내게 팔라"
물론, 말도 안 되는 참으로 황당한 말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에서는 형으로서 야곱을 꾸짖어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長子 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렇게 말했습니다.(본문32절)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내가 지금 배고파 죽을 지경인데 그까짓 장자의 권리가 무슨 대수냐 그 얘깁니다.
결국 에서는 동생에게 장자권을 넘겨줄 것을 간단히 맹세하고 팥죽을 먹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 에서가 몹시 배고픈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몇 일을 굶어서 죽을 지경의 상태는 아니었습니다.
단지 식사 때를 놓쳐 몹시 배고픈 것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걸 가지고 죽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물론 저도 한끼 굶으면 정말 힘이 없고 지칩니다.
그러나 아무리 배고프다 하더라도 본향을 내려놓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에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지금 배고픈 것이 인생의 가장 큰 문제인 양,
민생고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이라도 버릴 수 있다는 식으로 말합니다.
물론 에서가 꼭 이런 뜻으로 말한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혹은 농담으로, 혹은 그저 아무렇지 않게 가볍게 말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육신의 욕망을 가장 중시하는
자기 자신의 모습을 대변하는 말이 되고 말았습니다.
성경은 이런 사람을 가리켜서 육(肉)에 속한 자라고 말합니다.
사실 겉으로 드러나는 것으로만 보면 에서는 매력적인 사람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그의 모습을 보면 세상적으로는 통이 큰 사람입니다.
인정도 많고 솔직합니다.
남자답게 배짱 좋고 담도 큰 사나이였습니다.
친구들도 많았고, 무엇보다 꽁수를 부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에 비해, 야곱은 간교합니다. 쩨쩨합니다.
그러나 에서는 인간적으로는 정말 매력이 넘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에 대해서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습니다.
육신의 모습은 아름다웠지만, 영혼은 장님이요, 앉은뱅이요,
영적으로는 속이 텅 빈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믿음이 없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을 이렇게 말합니다.
히브리서11:1-2,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그렇습니다. 믿음은 비전입니다. 꿈입니다. 소망입니다.
눈앞에 있는 현실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다가 올 미래의 것들을 보고,
오늘 하루를 신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믿음이고 비전입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에서에게는 이 믿음의 눈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눈앞의 배고픔 때문에 장자의 축복을 버리고 말았습니다.
자, 그렇다면 여러분 !
아브라함, 이삭으로부터 시작해서 자손들로 이어지는 장자의 축복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할까요 ?
첫째, 그 가문을 대표하는 제사장의 사명을 감당하는 복이었습니다.
여러분 ! 제사장이 무엇입니까 ?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가장 가까이서 섬기는 직분입니다.
또한 제사장의 권리는, 가족을 축복하는 축복권이 있다는 것입니다.
둘째, 축복의 땅 가나안을 주시겠다는 축복입니다.
물론 현재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후손들에게 약속대로 가나안을 주셨습니다.
셋째, 이것이 가장 큰 축복인데, 바로 그 장자의 혈통에서
전 인류를 구원하실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나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에서는 이 놀라운 축복과 특권을 눈앞의 것에 마음을 빼앗겨
그만 던져버리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
우리들은 영적인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 영적 장자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겐 축복권이 있으며, 영적 가나안인 천국을 유업으로 받았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도 얻었습니다.
그런데 이토록 귀한 것을 우습게 여기고, 눈앞의 현실 때문에 장자권을 내팽개친다면
그것이야말로 망령된 행동이 아닐 수 없습니다.
믿음을 가지고 지금 바라는 것들을 하나님께로부터 구체적으로 응답 얻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 에서는 하나님의 축복과 사명을 경홀히 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본문34절, "야곱이 떡과 팥죽을 에서에게 주매 에서가 먹으며 마시고 일어나서 갔으니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경홀히 여김이었더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과 사명을 경홀히 여겼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
에서의 이러한 태도는 하루아침에 된 것이 아닙니다.
무슨 이야기냐 하면, 에서가 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판 것은
하루아침에 즉흥적으로 내려진 흥정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랜 세월을 거쳐 그렇게 결정할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영국의 소설가 죠지 엘리엇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간에게 냉혹한 법칙이 하나 있다. 평소에 반복하는 선악의 선택이 점점
그 사람의 개성을 형성하고, 나중에는 어떤 중요한 행동을 유발하는 준비작업이 된다"
그렇습니다.
이 말을 풀이하면, 평소에 내가 어느 것을 소중하게 여기면,
그것이 내 자신의 습관이 되고, 그 습관이 내 인격을 형성하고,
그것은 나중에 어떤 중요한 시점에서
내 행동을 결정하는 가장 큰 기준이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사실은 이것은 우리들에게 너무나 중요합니다.
단적인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여러분은 무릎 꿇고 10분 기도하는 것과 친구와 10분 동안 이야기하는 것 중,
어느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십니까 ?
또한 주일 예배 시간과 직장에서 일하는 시간 중,
어느 것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십니까 ?
부모님들과 예비 부모님들에게 묻습니다.
여러분들은 여러분의 자녀가 믿음 좋은 사람이 되는 것과
공부 잘 하는 사람이 되는 것 중, 어느 편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십니까 ?
아내들에게 묻습니다.
여러분의 남편이 돈을 좀 못 벌어도 예수 잘 믿는 것과,
예수는 좀 적당히 믿더라도 돈을 잘 벌어 오는 것 중에
어느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십니까 ?
우리는 이 모든 질문에 대해 어렵지 않게 대답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에 대한 우리의 답은 하루아침에 나타난 것이 아닙니다.
그 답은 바로 우리들의 평소 모습을 그대로 반영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우리들의 모습은, 앞으로 우리들의 인격과 신앙으로 나타날 것이고,
언젠가 인생의 중요한 결단의 시점에서,
그 생각한 것들이 구체적인 모습으로 결정되어져 나올 것입니다.
만약 우리들이 지금,
조그마한 것에서부터 에서처럼 세상적인 것들을 선택하기 시작하면
나중에 중요한 시점에선 두말없이 세상을 선택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
만약 우리들이 세상적인 것을 우선시 해서 선택하고 있다면,
지금 당장 우리의 습관을 바꿔야 합니다.
지금 바로 습관을 바꾸지 않으면, 그것은 우리들의 운명이 되고 맙니다.
일주일에 겨우 예배 한 두 번 드리는 것으로 만족해하시는 분들이 있습니까 ?
새벽예배 드리고, 수요예배 드리고, 금요예배 드리고,
또 중보기도회 참여하는 분들을 과소평가하지 마십시오.
그들은 하루아침에 그렇게 된 것이 결코 아닙니다.
나름대로 자기와의 싸움, 거룩한 욕심과 간절한 사모함이 하나 둘 쌓여
그렇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이러한 거룩한 싸움을 지금 당장 시작하기 바랍니다.
그저 현실을 귀중히 여기며, 내일보다 지금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분이 있습니까 ?
지금은 괜찮을지 모르지만 중요한 결단의 시기가 오면,
여러분은 믿음을 팥죽 한 그릇에 바꿀지도 모릅니다.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에서, 그는 겉으로 드러나는 것으로만 보면 매력적인 사람이었습니다.
남자답게 화끈하고 시원스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눈앞의 것만 보는 근시안적인 사람이었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과 너무 거리가 먼 사람이었습니다.
결국 그는 하나님이 주신 사명도, 장자의 축복권도, 천국도 내팽개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 앞에 망령된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에서가 이런 사람이 되고 만 것은, 그가 이미 그런 삶을 즐겨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여러분에게는 무엇이 더 중요합니까 ? 무엇이 더 소중합니까 ?
세상의 정욕보다, 하나님의 나라를 더욱 소망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야곱처럼 축복의 조상으로 참으로 귀중하게 쓰임 받는
모두가 되시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할렐루야 !
우리가 사명을 위해 살면, 하나님은 우리의 생(一生)을 책임지십니다.
이 어두운 시대에, 등대가 되고 빛이 되는 당신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어떤 일을 하든 거기엔 꼭 위험이 함께 합니다.
등산을 하면 상쾌하긴 하지만 추락이나 조난할 위험이 있고,
수영을 하면 건강에는 좋지만 물에 빠질 위험이 있으며,
공부를 무척 열심히 하면 실력을 기를 수 있지만 자칫 건강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 인생살이의 모든 분야가 다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 신앙생활에는 위험한 부분이 없을까요 ?
물론 있습니다.
첫째는 이단(異端)의 위험이고, 둘째는 배교(背敎)의 위험입니다.
이단의 위험이란,
자칫 헛된 열심과 거짓된 가르침에 빠져 순수한 신앙을 잃어버리는 것을 말합니다.
지난주일, 우리들이 찬양하며 전도하는 錦絲公園 앞에서
어떤 사람들이 예수님의 얼굴이 표지에 그려진 책을 나눠주고 있었습니다.
놀랍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해서 책을 한 권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여호와증인이었습니다. 기독교 이단(異端)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異端들이 정통 기독교인들보다 더 열심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일본에는 많은 이단들이 들어와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증인, 통일교, 할렐루야기도원, 신천지, 구원파, 만민교회, 유광수의 다락방,
몰몬교, 이명범의 레마선교회 등등.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이들은 정통 기독교보다 더욱 열심 있는 것처럼 보이고, 더욱 경건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끝이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마땅히 받으실 영광을 인간이 가로챕니다.
또한 성경의 일부, 혹은 전체를 부정합니다.
혹은 성경을 인정하되 자신들 나름대로 해석하여, 경건한 그리스도인들을 미혹합니다.
여러분 !
우리들과 아주 가까운 곳에서 이단(異端)들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습니다.
그 유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깨어있기를 바랍니다.
혹 조금 이상한 것이 느껴지시거든 언제든지 저에게나
혹은 李목사님께 묻고 상담하시기를 바랍니다.
다음으로는 배도(背道)의 위험입니다.
사도 바울도 디모데에게 이 사실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디모데전서4:1,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으리라 하셨으니"
그렇습니다. 열심히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엉뚱한 가르침을 따라 배신하고 타락할 사람들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우리가 아는 이들 중에도 이런 이들이 있습니다.
데마라는 사람은 바울을 따라 로마까지 가서 감옥에도 함께 갇힐 만큼
열심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결국 세상을 사랑해 떠나버리고 말았습니다.
또한 주님의 제자였던 가룟 유다는 어떻습니까 ?
여러분 ! 그러니 연약한 우리들은 더더욱 어떻겠습니까 ?
그런데 이 위험을 가장 잘 알려주는 이가 오늘 본문의 에서입니다.
그는 아브라함과 이삭으로 이어지는,
특별히 선택된 가문에서 장자(長子)로 태어난 인물입니다.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만 해도 엄청난 은혜를 누릴 사람이었습니다.
특별한 사명과 큰복을 누릴 좋은 조건들을 다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망령된 사람, 버림받은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히브리서12:16, "한 그릇 식물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라"
더구나 그는 돌이킬 기회도 얻지 못했습니다.
히브리서12:17, "저가 그 후에 축복을 기업으로 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
결국 長子가 받을 특별한 복은 그의 동생 야곱에게 넘어갔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기록되게 되었습니다.
출애굽기3:6,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마태복음1:1-2,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를 낳고"
결국 에서는 버림받은 족속이 되었고, 축복의 땅을 얻지도 못했으며,
얼마 후 역사 속에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자 ! 그렇다면 여러분 ! 에서는 왜 그렇게 되고 말았을까요 ?
첫째, 그는 눈앞의 것만 보는 근시안적인 사람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냥을 나갔던 에서가 몹시 배고픈 가운데 집에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마침 동생 야곱이 팥죽을 쑤고 있었습니다.
이에 에서는 야곱에게 팥죽을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형 에서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본문31절, "형의 장자의 명분을 오늘날 내게 팔라"
물론, 말도 안 되는 참으로 황당한 말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에서는 형으로서 야곱을 꾸짖어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長子 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렇게 말했습니다.(본문32절)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내가 지금 배고파 죽을 지경인데 그까짓 장자의 권리가 무슨 대수냐 그 얘깁니다.
결국 에서는 동생에게 장자권을 넘겨줄 것을 간단히 맹세하고 팥죽을 먹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 에서가 몹시 배고픈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몇 일을 굶어서 죽을 지경의 상태는 아니었습니다.
단지 식사 때를 놓쳐 몹시 배고픈 것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걸 가지고 죽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물론 저도 한끼 굶으면 정말 힘이 없고 지칩니다.
그러나 아무리 배고프다 하더라도 본향을 내려놓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에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지금 배고픈 것이 인생의 가장 큰 문제인 양,
민생고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이라도 버릴 수 있다는 식으로 말합니다.
물론 에서가 꼭 이런 뜻으로 말한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혹은 농담으로, 혹은 그저 아무렇지 않게 가볍게 말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육신의 욕망을 가장 중시하는
자기 자신의 모습을 대변하는 말이 되고 말았습니다.
성경은 이런 사람을 가리켜서 육(肉)에 속한 자라고 말합니다.
사실 겉으로 드러나는 것으로만 보면 에서는 매력적인 사람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그의 모습을 보면 세상적으로는 통이 큰 사람입니다.
인정도 많고 솔직합니다.
남자답게 배짱 좋고 담도 큰 사나이였습니다.
친구들도 많았고, 무엇보다 꽁수를 부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에 비해, 야곱은 간교합니다. 쩨쩨합니다.
그러나 에서는 인간적으로는 정말 매력이 넘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에 대해서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습니다.
육신의 모습은 아름다웠지만, 영혼은 장님이요, 앉은뱅이요,
영적으로는 속이 텅 빈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믿음이 없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을 이렇게 말합니다.
히브리서11:1-2,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그렇습니다. 믿음은 비전입니다. 꿈입니다. 소망입니다.
눈앞에 있는 현실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다가 올 미래의 것들을 보고,
오늘 하루를 신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믿음이고 비전입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에서에게는 이 믿음의 눈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눈앞의 배고픔 때문에 장자의 축복을 버리고 말았습니다.
자, 그렇다면 여러분 !
아브라함, 이삭으로부터 시작해서 자손들로 이어지는 장자의 축복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할까요 ?
첫째, 그 가문을 대표하는 제사장의 사명을 감당하는 복이었습니다.
여러분 ! 제사장이 무엇입니까 ?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가장 가까이서 섬기는 직분입니다.
또한 제사장의 권리는, 가족을 축복하는 축복권이 있다는 것입니다.
둘째, 축복의 땅 가나안을 주시겠다는 축복입니다.
물론 현재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후손들에게 약속대로 가나안을 주셨습니다.
셋째, 이것이 가장 큰 축복인데, 바로 그 장자의 혈통에서
전 인류를 구원하실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나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에서는 이 놀라운 축복과 특권을 눈앞의 것에 마음을 빼앗겨
그만 던져버리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
우리들은 영적인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 영적 장자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겐 축복권이 있으며, 영적 가나안인 천국을 유업으로 받았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도 얻었습니다.
그런데 이토록 귀한 것을 우습게 여기고, 눈앞의 현실 때문에 장자권을 내팽개친다면
그것이야말로 망령된 행동이 아닐 수 없습니다.
믿음을 가지고 지금 바라는 것들을 하나님께로부터 구체적으로 응답 얻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 에서는 하나님의 축복과 사명을 경홀히 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본문34절, "야곱이 떡과 팥죽을 에서에게 주매 에서가 먹으며 마시고 일어나서 갔으니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경홀히 여김이었더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복과 사명을 경홀히 여겼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
에서의 이러한 태도는 하루아침에 된 것이 아닙니다.
무슨 이야기냐 하면, 에서가 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판 것은
하루아침에 즉흥적으로 내려진 흥정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랜 세월을 거쳐 그렇게 결정할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영국의 소설가 죠지 엘리엇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간에게 냉혹한 법칙이 하나 있다. 평소에 반복하는 선악의 선택이 점점
그 사람의 개성을 형성하고, 나중에는 어떤 중요한 행동을 유발하는 준비작업이 된다"
그렇습니다.
이 말을 풀이하면, 평소에 내가 어느 것을 소중하게 여기면,
그것이 내 자신의 습관이 되고, 그 습관이 내 인격을 형성하고,
그것은 나중에 어떤 중요한 시점에서
내 행동을 결정하는 가장 큰 기준이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사실은 이것은 우리들에게 너무나 중요합니다.
단적인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여러분은 무릎 꿇고 10분 기도하는 것과 친구와 10분 동안 이야기하는 것 중,
어느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십니까 ?
또한 주일 예배 시간과 직장에서 일하는 시간 중,
어느 것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십니까 ?
부모님들과 예비 부모님들에게 묻습니다.
여러분들은 여러분의 자녀가 믿음 좋은 사람이 되는 것과
공부 잘 하는 사람이 되는 것 중, 어느 편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십니까 ?
아내들에게 묻습니다.
여러분의 남편이 돈을 좀 못 벌어도 예수 잘 믿는 것과,
예수는 좀 적당히 믿더라도 돈을 잘 벌어 오는 것 중에
어느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십니까 ?
우리는 이 모든 질문에 대해 어렵지 않게 대답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에 대한 우리의 답은 하루아침에 나타난 것이 아닙니다.
그 답은 바로 우리들의 평소 모습을 그대로 반영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우리들의 모습은, 앞으로 우리들의 인격과 신앙으로 나타날 것이고,
언젠가 인생의 중요한 결단의 시점에서,
그 생각한 것들이 구체적인 모습으로 결정되어져 나올 것입니다.
만약 우리들이 지금,
조그마한 것에서부터 에서처럼 세상적인 것들을 선택하기 시작하면
나중에 중요한 시점에선 두말없이 세상을 선택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
만약 우리들이 세상적인 것을 우선시 해서 선택하고 있다면,
지금 당장 우리의 습관을 바꿔야 합니다.
지금 바로 습관을 바꾸지 않으면, 그것은 우리들의 운명이 되고 맙니다.
일주일에 겨우 예배 한 두 번 드리는 것으로 만족해하시는 분들이 있습니까 ?
새벽예배 드리고, 수요예배 드리고, 금요예배 드리고,
또 중보기도회 참여하는 분들을 과소평가하지 마십시오.
그들은 하루아침에 그렇게 된 것이 결코 아닙니다.
나름대로 자기와의 싸움, 거룩한 욕심과 간절한 사모함이 하나 둘 쌓여
그렇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이러한 거룩한 싸움을 지금 당장 시작하기 바랍니다.
그저 현실을 귀중히 여기며, 내일보다 지금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분이 있습니까 ?
지금은 괜찮을지 모르지만 중요한 결단의 시기가 오면,
여러분은 믿음을 팥죽 한 그릇에 바꿀지도 모릅니다.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에서, 그는 겉으로 드러나는 것으로만 보면 매력적인 사람이었습니다.
남자답게 화끈하고 시원스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눈앞의 것만 보는 근시안적인 사람이었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과 너무 거리가 먼 사람이었습니다.
결국 그는 하나님이 주신 사명도, 장자의 축복권도, 천국도 내팽개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 앞에 망령된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에서가 이런 사람이 되고 만 것은, 그가 이미 그런 삶을 즐겨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여러분에게는 무엇이 더 중요합니까 ? 무엇이 더 소중합니까 ?
세상의 정욕보다, 하나님의 나라를 더욱 소망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야곱처럼 축복의 조상으로 참으로 귀중하게 쓰임 받는
모두가 되시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할렐루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