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2010년10월31일, 로마서1:17(종교개혁을 이어, 이 시대의 개혁자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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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 옆에 계신 복스러운 지체들을 이렇게 축복합시다.
당신의 삶은 사방(四方) 플러스 원(one)의 삶입니다.
主님의 은혜로, 당신의 모든 고난은 영광으로 열매 맺을 것입니다.
오늘은 493번째 맞는 종교개혁 기념주일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몇 해 전, 종교개혁 기념주일 때 나눴던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잘 아시는 안데르센 동화 중 한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어느 나라에 모양내기를 좋아하는 한 임금님이 살았습니다.
이 임금님은 특히 새 옷 입기를 좋아해서,
훌륭한 재단사가 있다고 하면 아무리 비싼 값을 치르고서라도 옷을 해 입었습니다.
어느 날 자칭 훌륭한 재단사라고 하는 이웃 나라의 형제가 임금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이들은 사기꾼으로, 재단사가 아니었습니다.
다만 임금님의 사치스런 마음을 이용하여, 한몫 잡으려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새로운 소재의 옷감을 임금님에게 소개한다 했습니다.
"임금님 ! 저희들이 개발한 신소재 옷감은 아주 특별한 것으로서,
마음씨 나쁜 사람 눈에는 보이지 않고, 착한 사람 눈에만 보입니다."
임금님은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신소재 옷감이라는 말에, 흔쾌히 새 옷감으로 옷을 만들 것을 지시했습니다.
몇 일이 지난 후, 임금님은 옷을 만들고 있는 형제들을 방문했습니다.
그런데 임금님의 눈에는 기계 외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임금님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할 수 없었습니다.
자신의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사기꾼 형제들은 임금님의 몸에 옷을 걸치는 시늉을 하고는,
너무나 잘 어울린다고 앞다투어 찬사를 쏟아놓았습니다.
이에 임금님은 최대한 빨리 신소재 옷감의 옷을 완성하라고 독촉하며
방을 나왔습니다. 그러나 왠지 찜찜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드디어 며칠 후, 옷이 다 만들어졌다는 소식이 왔습니다.
이에 임금님은 신하들이 모인 가운데 착복식을 했습니다.
신하들은 임금님을 향해 온갖 찬사를 늘어놓았습니다.
"왕이시여 ! 참으로 멋있습니다 !", "정말로 황홀합니다 !", "금처럼 빛이 나십니다 !",
"역시 임금님께서는 세계 최고의 베스트 드레서십니다"
하지만 신하들 역시 임금님처럼 찜찜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왕은 그저 옷을 벗은 벌거숭이 이상 아무 것도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이 사실을 말할 수는 없었습니다.
임금님은 백성들에게도 새 옷을 보여주길 원했습니다.
그래서 마차를 타고 큰길을 행차했습니다.
백성들 역시 새로운 옷감에 대해 미리 소문을 듣고 있던 터라,
임금님의 속옷차림을 보고 함부로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한 어린 아이가 마구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우리 임금님은 벌거숭이 임금님이네 ! 저기 봐 ! 다 벗었잖아 !"
이 동화는 우리에게 여러 가지 교훈을 줍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속의 나쁜 마음이 드러날까 두려워합니다.
또한 진실을 말하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여러 사람들이 그것을 옳다하면,
자신은 그렇게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옳다 동조하고 맙니다.
"아니오 !"라고 용기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용기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을 제493주년 종교개혁 기념주일입니다.
지금부터 493년 전인, 1517년10월31일, 마르틴 루터는,
비텐베르크 대학에 95개조의 논제를 붙이고 그것에 대해 토론할 것을 제안함으로서
종교개혁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물론 루터 자신이 처음부터 종교개혁을 작심하고 이 일을 시작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또한 자신이 행한 일이,
당시 부패할 대로 부패한 중세교회를 그토록 변화시키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다만 루터는 도저히 진리를 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종교개혁은 다수 앞에 굴복하지 않고 담대히 진리를 외친 용기의 결과라고 말을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저는 오늘 종교개혁 493주년을 맞이하여 종교개혁의 세 가지 핵심을 소개하며,
우리 또한 이 시대의 개혁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종교개혁의 첫 번째 핵심은, Sola Scriptura(오직 성경으로)입니다.
진리는 단순합니다.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것입니다.
당시의 중세 카톨릭 교회는 성경과 너무 멀어져 있었습니다.
참 놀랍게도 당시에 성경은 아무나 읽을 수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성경 해석은 오직 교황만 할 수 있다고 교회법으로 정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당시에는 교황과,
교황이 허락한 성직자들 외에는 아무도 성경을 읽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일반 성도들은 성경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고,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읽을 수도 없었습니다.
교회법으로도 금했고,
더구나 당시 성경은 일반이 읽기 어려운 라틴어로 기록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당시 성도들은 교회가 지켜온 교리나 제도가
성경의 어떤 근거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인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
당시 교회는 왜 성도들에게 성경을 보지 못하게 했을까요 ?
그것은 바로, 성경을 보면 진실이 드러나기 때문이었습니다.
성경을 조금만 읽어봐도 교회와 교황이 벌거숭이 임금님이라는 것을
금방 알게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성도의 눈을 가린 것입니다.
루터가 비텐베르크 대학 게시판에 붙인 95개조의 조항의 대부분은,
당시 시행되고 있던 카톨릭 교회의 여러 가지 사업과 주장이,
과연 하나님 앞에 옳은가 하는 것을 묻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진리를 벗어난 교회를 그냥 두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이 95개 조항이 공개된 지 2주만에,
전 독일에 영성회복을 위한 신앙의 불길이 일어나게 하셨고,
그리고 약 4주만에 이 문서는 전 유럽으로 퍼져 나가도록 하셨습니다.
특히 종교개혁을 통해 당시 카톨릭 교회가, 가장 크게 타격을 받은 것은,
면죄부 사업이었습니다.
교회는 더 이상 면죄부를 팔아먹을 수 없었습니다.
카톨릭 교회가 면죄부를 팔기 시작한 것은 1096년 십자군 전쟁 때부터입니다.
당시 교회는 면죄부에 대해 이렇게 주장을 했습니다.
"면죄부를 가진 사람은 죽어도 지옥으로 가지 않고,
또한 연옥에 머물러 있을 필요도 없으며, 곧장 천국으로 간다."
그런 일이 있은 지 약400년 후, 카톨릭 교회는 흔들리는 교회의 권위를 높일 목적으로
베드로 대성당을 건축하기 시작했습니다.
짓는데 100년이 걸렸고, 라파엘이나 미켈란젤로 등
유명한 건축가들이 설계하고 감독했습니다. 많은 재정이 필요했습니다.
결국 중세 카톨릭교회는 성당 건축에 들어가는 막대한 건축비를 충당하기 위해서,
다시 면죄부를 팔기 시작했습니다.
심지어 면죄부를 더 많이 팔기 위해 영업전문 신부를 둘 정도였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면죄부를 선전했습니다.
"(면죄부를 산) 당신의 돈이 헌금함에 떨어지는 순간,
연옥에 있는 당신의 부모님은 연옥에서 천국으로 뛰어 오를 것입니다."
우리들이 지금 들으면,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당시 성경을 알지 못했던 신자들은
이 황당한 내용을 그대로 믿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러분 ! 성경 어느 곳에, 연옥이 나오며 성경 어느 곳에 면죄부를 사는 순간
죽은 부모와 형제 자식이 천국으로 간다는 말이 있습니까 ?
그러나 당시 카톨릭 교회는 이런 방법으로 성도를 속이고 우롱했으며,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시켰습니다.
성도여러분 ! 우리는 지금 모두 다 성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들은 우리의 언어로 쉽게 성경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지난주간 성경을 얼마나 읽으셨습니까 ?
오늘 누가복음으로 성경퀴즈대회를 하는데, 많이 준비 하셨습니까 ?
현재 우리의 삶이 성경말씀대로 살기를 간절히 힘쓰고 있습니까 ?
우리들이 이 시대의 진정한 종교개혁, 교회개혁을 원한다면,
우리의 삶의 기준이 성경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더 이상 세상의 명예와 물질이 우리의 삶의 목표와 기준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오직 성경 말씀이 기준이어야 합니다.
루터가 주장한 95개 조항 중에는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제21조, 교황의 이름으로 된 면죄부를 사면,
죄의 형벌을 면죄 받게 되고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가르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제27조, 면죄부를 산 돈이 돈 궤짝에 딸랑 소리내며 떨어질 때,
연옥에 있던 영혼이 연옥 밖으로 뛰어 나온다는 것은 허황(虛荒)된 거짓말이다.
제28조, 면죄부를 산 돈이 돈 궤짝에 딸랑 소리내며 떨어질 때 (교회는)
돈에 대한 탐욕만 늘어난다.
제45조, 면죄부를 사는 사람은 교황의 면죄권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진노에 참여하는 것이다.
제86조, 엄청난 부를 소유한 교황은 (면죄부를 팔아) 가난한 크리스천의 돈으로
베드로 대성당을 건축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돈으로 해야 할 것이 아닌가 ?
제95조는 "크리스천은 많은 고난을 거쳐 천국에 가는 것이지
(면죄부를 샀다고) 안심하는 마음으로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다."
개혁자 루터의 주장은 모두가 다 성경에 근거한 주장이었습니다.
이처럼, 루터는 하나님 말씀대로 살려고 애썼고,
그러다 보니 생각지도 않았던 종교개혁의 주역이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들도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 이 시대의 주역이 되고,
또한 개혁자가 되시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종교개혁의 두 번째 핵심은, Sola Gratia(오직 은혜로만)입니다.
루터가 95개 조항을 통해서 주장한 가장 중요한 문제는 '구원'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루터가 깨달은 것은, 구원은 면죄부를 산다고 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얻을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루터는 당시 성서신학자로서 성경에 아주 정통해 있었습니다.
그 당시 시편과 로마서, 갈라디아서, 히브리서 주석을 썼을 정도였습니다.
그런 그에게, 구원이 면죄부를 삼으로서 얻어지는 것이라는 주장은,
참으로 황당한 말이었습니다. 성경 어디에도 그런 말씀은 없었습니다.
구원에 대한 루터의 믿음은 에베소서2:8-9절에 근거해 확고했습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라"
그렇습니다.
구원은 사람이 노력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에 관한 한 인간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전적으로 하나님 주권에 달린 것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전폭적인 은혜로 주어지는 것이요,
하나님의 일방적인 선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본문에서 본 것처럼,
은혜를 바탕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구원은 하나님의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구원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
구원이란 자유함을 말합니다. 무엇으로부터 풀려나는 것을 말합니다.
물에 빠진 사람은 건짐을 받는 것이 구원입니다.
병들었던 사람은 낫게 되는 것이 구원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무엇보다도 큰 구원은, 죄로부터의 구원입니다.
우리는 날 때부터 죄성(罪性)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죄를 짓습니다. 나도 모르게 죄를 반복합니다.
죄는 속성상 또 다른 죄를 낳게 되고,
우리는 그 죄의 가책에 끊임없이 시달리게 됩니다.
이 죄의 문제 역시, 우리 인간이 해결할 길은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로마서5: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和睦)되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그렇습니다.
오직 우리의 죄를 위해 대신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구원을 얻을 수 있지,
천하 어떤 것으로도 죄로부터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면죄부를 산다고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당시 유행했던 남몰래 하는 선행으로도 구원은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들에게 일방적으로 주시는 선물,
그 십자가의 은혜만이 영원히 멸망 받을 죄에서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는 오늘도 은혜로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가장 바랄 것도 은혜요,
우리에게 가장 큰 힘이 되는 것 역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오늘도 이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은혜로우신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들의 기도에 귀 기울여 주시고,
이 땅 일본에서 넉넉히 살아갈 더욱 큰 은혜로 채워주실 줄 믿습니다.
끝으로 몇 번 소개한 루터의 청년시절 이야기를 소개하겠습니다.
루터는 원래 법학도였습니다.
장성해서 변호사가 되기 위해 공부하던 그는, 어느 비 오는 날 끔직한 일을 당합니다.
자기와 함께 비를 피하기 위해 큰 나무 아래 서 있던 친구가 벼락에 맞아 죽는 것을
바로 옆에서 본 것입니다.
루터는 그 사건을 통해
자신 역시 벼락에 맞아 죽을 엄청난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때로부터 루터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고,
결국 수도사가 될 결심을 하고 수도원에 들어가게 됩니다.
루터는 1505년 신부로 서품을 받고,
엄격하게 규율을 지키고 금식하면서 자기 죄에 대한 두려움을 씻기 위해
온갖 고행을 행합니다.
죄를 용서받기 위해 하루에도 몇 번씩 고해성사를 했습니다.
얼마나 자주 고해소를 찾아갔는지 짜증이 난 담당신부는
루터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루터 ! 제발 죄를 좀 모아 가지고 와 !"
그러나 루터는 그 무슨 행위로도, 죄책감으로부터 벗어 날 수 없었습니다.
그 후 루터는 로마에 있는 '스칼라 산타'라고 하는 성당에 가게 됩니다.
이 성당에는 예수님께서 빌라도 앞에서 재판 받으실 때에 오르셨다고 하는 계단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28계단으로 되어 있는데, 약 2천 년이 지난 지금도 남아 있다고 합니다.
루터 당시에도 사람들은 이 계단을 아주 소중히 여겼습니다.
왜냐하면 이 계단을 무릎으로 기어 오르내리면 죄 사함을 받는다고
당시 교회가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심지어는 연옥에 가 있는 죄인도
여기서 기도하면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루터는 이 계단을 무릎으로 기어오르면서 계단마다 입을 맞추었습니다.
주기도문을 외우면서 오르고 또 올랐습니다. 수없이 반복했습니다.
무릎은 완전히 벗겨졌고, 피가 줄줄 흘러내렸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아무리 반복해도
루터는 자기의 죄가 여전히 자신 속에 남아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참으로 답답했습니다.
그 후 루터는 성경을 읽던 중 마음이 크게 열려짐을 체험했습니다.
비로소 오랫동안 고통하던 죄의 허물을 벗는 느낌을 체험했습니다.
그 말씀이 바로 오늘 본문인 로마서1:17절,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씀입니다.
구원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바탕으로 한, 믿음으로 얻는 것이지
고통의 수행을 하고, 순례를 하고, 선행을 함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종교개혁의 가장 중요한 세 번째 핵심인, Sola Fide(오직 믿음으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원에 있어서 인간의 노력과 공로를 요구하시지 않습니다.
다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죽으시고 다시 살아 나셨다는 사실을
믿기만 하라는 것입니다.
더구나 그 믿음도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설득하사 고백하게 하십니다.
만약 우리가 구원받기 위해 어떤 행위가 필요하다면,
우리 중에 구원받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너무나 연약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갇혔던 빌립보 감옥의 간수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가 구원받기 위해 한 일이 무엇이 있습니까 ?
옥문 하나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졸다가 지진을 만난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어떻게 해야 구원을 얻을 수 있느냐"고 바울에게 물었을 때,
바울이 어떤 행위를 요구했습니까 ?
그렇지 않습니다. 다만 한 가지, "주 예수를 믿으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종교개혁 493주년을 맞아 함께 외쳐 보십시다.
Sola Scriptura !(오직 성경으로)
Sola Gratia !(오직 은혜로)
Sola Fide !(오직 믿음으로)
우리의 신앙을 오직 성경으로 돌아가게 하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오직 믿음으로 만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되새깁시다.
중세 교회가 성경을 버릴 때, 교회는 마귀와 타협하고,
성직자들은 세속화되었으며, 성도들은 갈 길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로부터 493년이 지난 지금, 오늘날의 교회와 성도들 역시, 큰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교회는 종교개혁 당시보다 더 심하게 세속화되었고,
교회 지도자들은 바른 길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으며,
성도들은 성경을 자유롭게 보고 말씀의 홍수 속에 살면서도
세상의 욕망만을 좇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 개혁되어져야 합니다.
우리의 벗은 몸을 뒤늦게 발견하고 부끄러워하기보다,
이제 말씀으로 거듭나고 은혜로 감사하며
믿음으로 구원의 도리를 전하는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성경을 사랑합시다. 읽읍시다.
그리고 깨달은 그 말씀을 내 삶의 기준으로 삼읍시다.
약삭빠른 삶을 버리고, 우둔한 삶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삶을 삽시다.
그리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主로 믿고 따르며, 세상을 향해 나갑시다.
이 세 가지를 통해 이 땅에 바른 교회상(敎會像)과 신앙상(信仰像)을 세우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부탁합니다.
또한 그것을 바탕으로 이 시대의 참된 개혁자가 되는 모두가 되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
당신의 삶은 사방(四方) 플러스 원(one)의 삶입니다.
主님의 은혜로, 당신의 모든 고난은 영광으로 열매 맺을 것입니다.
오늘은 493번째 맞는 종교개혁 기념주일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몇 해 전, 종교개혁 기념주일 때 나눴던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잘 아시는 안데르센 동화 중 한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어느 나라에 모양내기를 좋아하는 한 임금님이 살았습니다.
이 임금님은 특히 새 옷 입기를 좋아해서,
훌륭한 재단사가 있다고 하면 아무리 비싼 값을 치르고서라도 옷을 해 입었습니다.
어느 날 자칭 훌륭한 재단사라고 하는 이웃 나라의 형제가 임금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이들은 사기꾼으로, 재단사가 아니었습니다.
다만 임금님의 사치스런 마음을 이용하여, 한몫 잡으려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새로운 소재의 옷감을 임금님에게 소개한다 했습니다.
"임금님 ! 저희들이 개발한 신소재 옷감은 아주 특별한 것으로서,
마음씨 나쁜 사람 눈에는 보이지 않고, 착한 사람 눈에만 보입니다."
임금님은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신소재 옷감이라는 말에, 흔쾌히 새 옷감으로 옷을 만들 것을 지시했습니다.
몇 일이 지난 후, 임금님은 옷을 만들고 있는 형제들을 방문했습니다.
그런데 임금님의 눈에는 기계 외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임금님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할 수 없었습니다.
자신의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사기꾼 형제들은 임금님의 몸에 옷을 걸치는 시늉을 하고는,
너무나 잘 어울린다고 앞다투어 찬사를 쏟아놓았습니다.
이에 임금님은 최대한 빨리 신소재 옷감의 옷을 완성하라고 독촉하며
방을 나왔습니다. 그러나 왠지 찜찜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드디어 며칠 후, 옷이 다 만들어졌다는 소식이 왔습니다.
이에 임금님은 신하들이 모인 가운데 착복식을 했습니다.
신하들은 임금님을 향해 온갖 찬사를 늘어놓았습니다.
"왕이시여 ! 참으로 멋있습니다 !", "정말로 황홀합니다 !", "금처럼 빛이 나십니다 !",
"역시 임금님께서는 세계 최고의 베스트 드레서십니다"
하지만 신하들 역시 임금님처럼 찜찜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왕은 그저 옷을 벗은 벌거숭이 이상 아무 것도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이 사실을 말할 수는 없었습니다.
임금님은 백성들에게도 새 옷을 보여주길 원했습니다.
그래서 마차를 타고 큰길을 행차했습니다.
백성들 역시 새로운 옷감에 대해 미리 소문을 듣고 있던 터라,
임금님의 속옷차림을 보고 함부로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한 어린 아이가 마구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우리 임금님은 벌거숭이 임금님이네 ! 저기 봐 ! 다 벗었잖아 !"
이 동화는 우리에게 여러 가지 교훈을 줍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속의 나쁜 마음이 드러날까 두려워합니다.
또한 진실을 말하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여러 사람들이 그것을 옳다하면,
자신은 그렇게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옳다 동조하고 맙니다.
"아니오 !"라고 용기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용기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을 제493주년 종교개혁 기념주일입니다.
지금부터 493년 전인, 1517년10월31일, 마르틴 루터는,
비텐베르크 대학에 95개조의 논제를 붙이고 그것에 대해 토론할 것을 제안함으로서
종교개혁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물론 루터 자신이 처음부터 종교개혁을 작심하고 이 일을 시작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또한 자신이 행한 일이,
당시 부패할 대로 부패한 중세교회를 그토록 변화시키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다만 루터는 도저히 진리를 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종교개혁은 다수 앞에 굴복하지 않고 담대히 진리를 외친 용기의 결과라고 말을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저는 오늘 종교개혁 493주년을 맞이하여 종교개혁의 세 가지 핵심을 소개하며,
우리 또한 이 시대의 개혁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종교개혁의 첫 번째 핵심은, Sola Scriptura(오직 성경으로)입니다.
진리는 단순합니다.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것입니다.
당시의 중세 카톨릭 교회는 성경과 너무 멀어져 있었습니다.
참 놀랍게도 당시에 성경은 아무나 읽을 수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성경 해석은 오직 교황만 할 수 있다고 교회법으로 정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당시에는 교황과,
교황이 허락한 성직자들 외에는 아무도 성경을 읽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일반 성도들은 성경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고,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읽을 수도 없었습니다.
교회법으로도 금했고,
더구나 당시 성경은 일반이 읽기 어려운 라틴어로 기록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당시 성도들은 교회가 지켜온 교리나 제도가
성경의 어떤 근거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인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
당시 교회는 왜 성도들에게 성경을 보지 못하게 했을까요 ?
그것은 바로, 성경을 보면 진실이 드러나기 때문이었습니다.
성경을 조금만 읽어봐도 교회와 교황이 벌거숭이 임금님이라는 것을
금방 알게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성도의 눈을 가린 것입니다.
루터가 비텐베르크 대학 게시판에 붙인 95개조의 조항의 대부분은,
당시 시행되고 있던 카톨릭 교회의 여러 가지 사업과 주장이,
과연 하나님 앞에 옳은가 하는 것을 묻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진리를 벗어난 교회를 그냥 두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이 95개 조항이 공개된 지 2주만에,
전 독일에 영성회복을 위한 신앙의 불길이 일어나게 하셨고,
그리고 약 4주만에 이 문서는 전 유럽으로 퍼져 나가도록 하셨습니다.
특히 종교개혁을 통해 당시 카톨릭 교회가, 가장 크게 타격을 받은 것은,
면죄부 사업이었습니다.
교회는 더 이상 면죄부를 팔아먹을 수 없었습니다.
카톨릭 교회가 면죄부를 팔기 시작한 것은 1096년 십자군 전쟁 때부터입니다.
당시 교회는 면죄부에 대해 이렇게 주장을 했습니다.
"면죄부를 가진 사람은 죽어도 지옥으로 가지 않고,
또한 연옥에 머물러 있을 필요도 없으며, 곧장 천국으로 간다."
그런 일이 있은 지 약400년 후, 카톨릭 교회는 흔들리는 교회의 권위를 높일 목적으로
베드로 대성당을 건축하기 시작했습니다.
짓는데 100년이 걸렸고, 라파엘이나 미켈란젤로 등
유명한 건축가들이 설계하고 감독했습니다. 많은 재정이 필요했습니다.
결국 중세 카톨릭교회는 성당 건축에 들어가는 막대한 건축비를 충당하기 위해서,
다시 면죄부를 팔기 시작했습니다.
심지어 면죄부를 더 많이 팔기 위해 영업전문 신부를 둘 정도였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면죄부를 선전했습니다.
"(면죄부를 산) 당신의 돈이 헌금함에 떨어지는 순간,
연옥에 있는 당신의 부모님은 연옥에서 천국으로 뛰어 오를 것입니다."
우리들이 지금 들으면,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당시 성경을 알지 못했던 신자들은
이 황당한 내용을 그대로 믿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러분 ! 성경 어느 곳에, 연옥이 나오며 성경 어느 곳에 면죄부를 사는 순간
죽은 부모와 형제 자식이 천국으로 간다는 말이 있습니까 ?
그러나 당시 카톨릭 교회는 이런 방법으로 성도를 속이고 우롱했으며,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시켰습니다.
성도여러분 ! 우리는 지금 모두 다 성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들은 우리의 언어로 쉽게 성경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지난주간 성경을 얼마나 읽으셨습니까 ?
오늘 누가복음으로 성경퀴즈대회를 하는데, 많이 준비 하셨습니까 ?
현재 우리의 삶이 성경말씀대로 살기를 간절히 힘쓰고 있습니까 ?
우리들이 이 시대의 진정한 종교개혁, 교회개혁을 원한다면,
우리의 삶의 기준이 성경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더 이상 세상의 명예와 물질이 우리의 삶의 목표와 기준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오직 성경 말씀이 기준이어야 합니다.
루터가 주장한 95개 조항 중에는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제21조, 교황의 이름으로 된 면죄부를 사면,
죄의 형벌을 면죄 받게 되고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가르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제27조, 면죄부를 산 돈이 돈 궤짝에 딸랑 소리내며 떨어질 때,
연옥에 있던 영혼이 연옥 밖으로 뛰어 나온다는 것은 허황(虛荒)된 거짓말이다.
제28조, 면죄부를 산 돈이 돈 궤짝에 딸랑 소리내며 떨어질 때 (교회는)
돈에 대한 탐욕만 늘어난다.
제45조, 면죄부를 사는 사람은 교황의 면죄권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진노에 참여하는 것이다.
제86조, 엄청난 부를 소유한 교황은 (면죄부를 팔아) 가난한 크리스천의 돈으로
베드로 대성당을 건축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돈으로 해야 할 것이 아닌가 ?
제95조는 "크리스천은 많은 고난을 거쳐 천국에 가는 것이지
(면죄부를 샀다고) 안심하는 마음으로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다."
개혁자 루터의 주장은 모두가 다 성경에 근거한 주장이었습니다.
이처럼, 루터는 하나님 말씀대로 살려고 애썼고,
그러다 보니 생각지도 않았던 종교개혁의 주역이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들도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 이 시대의 주역이 되고,
또한 개혁자가 되시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종교개혁의 두 번째 핵심은, Sola Gratia(오직 은혜로만)입니다.
루터가 95개 조항을 통해서 주장한 가장 중요한 문제는 '구원'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루터가 깨달은 것은, 구원은 면죄부를 산다고 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얻을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루터는 당시 성서신학자로서 성경에 아주 정통해 있었습니다.
그 당시 시편과 로마서, 갈라디아서, 히브리서 주석을 썼을 정도였습니다.
그런 그에게, 구원이 면죄부를 삼으로서 얻어지는 것이라는 주장은,
참으로 황당한 말이었습니다. 성경 어디에도 그런 말씀은 없었습니다.
구원에 대한 루터의 믿음은 에베소서2:8-9절에 근거해 확고했습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라"
그렇습니다.
구원은 사람이 노력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에 관한 한 인간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전적으로 하나님 주권에 달린 것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전폭적인 은혜로 주어지는 것이요,
하나님의 일방적인 선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본문에서 본 것처럼,
은혜를 바탕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구원은 하나님의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구원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
구원이란 자유함을 말합니다. 무엇으로부터 풀려나는 것을 말합니다.
물에 빠진 사람은 건짐을 받는 것이 구원입니다.
병들었던 사람은 낫게 되는 것이 구원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무엇보다도 큰 구원은, 죄로부터의 구원입니다.
우리는 날 때부터 죄성(罪性)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죄를 짓습니다. 나도 모르게 죄를 반복합니다.
죄는 속성상 또 다른 죄를 낳게 되고,
우리는 그 죄의 가책에 끊임없이 시달리게 됩니다.
이 죄의 문제 역시, 우리 인간이 해결할 길은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로마서5: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和睦)되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그렇습니다.
오직 우리의 죄를 위해 대신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구원을 얻을 수 있지,
천하 어떤 것으로도 죄로부터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면죄부를 산다고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당시 유행했던 남몰래 하는 선행으로도 구원은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들에게 일방적으로 주시는 선물,
그 십자가의 은혜만이 영원히 멸망 받을 죄에서 우리를 구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는 오늘도 은혜로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가장 바랄 것도 은혜요,
우리에게 가장 큰 힘이 되는 것 역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오늘도 이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은혜로우신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들의 기도에 귀 기울여 주시고,
이 땅 일본에서 넉넉히 살아갈 더욱 큰 은혜로 채워주실 줄 믿습니다.
끝으로 몇 번 소개한 루터의 청년시절 이야기를 소개하겠습니다.
루터는 원래 법학도였습니다.
장성해서 변호사가 되기 위해 공부하던 그는, 어느 비 오는 날 끔직한 일을 당합니다.
자기와 함께 비를 피하기 위해 큰 나무 아래 서 있던 친구가 벼락에 맞아 죽는 것을
바로 옆에서 본 것입니다.
루터는 그 사건을 통해
자신 역시 벼락에 맞아 죽을 엄청난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때로부터 루터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고,
결국 수도사가 될 결심을 하고 수도원에 들어가게 됩니다.
루터는 1505년 신부로 서품을 받고,
엄격하게 규율을 지키고 금식하면서 자기 죄에 대한 두려움을 씻기 위해
온갖 고행을 행합니다.
죄를 용서받기 위해 하루에도 몇 번씩 고해성사를 했습니다.
얼마나 자주 고해소를 찾아갔는지 짜증이 난 담당신부는
루터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루터 ! 제발 죄를 좀 모아 가지고 와 !"
그러나 루터는 그 무슨 행위로도, 죄책감으로부터 벗어 날 수 없었습니다.
그 후 루터는 로마에 있는 '스칼라 산타'라고 하는 성당에 가게 됩니다.
이 성당에는 예수님께서 빌라도 앞에서 재판 받으실 때에 오르셨다고 하는 계단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28계단으로 되어 있는데, 약 2천 년이 지난 지금도 남아 있다고 합니다.
루터 당시에도 사람들은 이 계단을 아주 소중히 여겼습니다.
왜냐하면 이 계단을 무릎으로 기어 오르내리면 죄 사함을 받는다고
당시 교회가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심지어는 연옥에 가 있는 죄인도
여기서 기도하면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루터는 이 계단을 무릎으로 기어오르면서 계단마다 입을 맞추었습니다.
주기도문을 외우면서 오르고 또 올랐습니다. 수없이 반복했습니다.
무릎은 완전히 벗겨졌고, 피가 줄줄 흘러내렸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아무리 반복해도
루터는 자기의 죄가 여전히 자신 속에 남아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참으로 답답했습니다.
그 후 루터는 성경을 읽던 중 마음이 크게 열려짐을 체험했습니다.
비로소 오랫동안 고통하던 죄의 허물을 벗는 느낌을 체험했습니다.
그 말씀이 바로 오늘 본문인 로마서1:17절,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씀입니다.
구원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바탕으로 한, 믿음으로 얻는 것이지
고통의 수행을 하고, 순례를 하고, 선행을 함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종교개혁의 가장 중요한 세 번째 핵심인, Sola Fide(오직 믿음으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원에 있어서 인간의 노력과 공로를 요구하시지 않습니다.
다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죽으시고 다시 살아 나셨다는 사실을
믿기만 하라는 것입니다.
더구나 그 믿음도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설득하사 고백하게 하십니다.
만약 우리가 구원받기 위해 어떤 행위가 필요하다면,
우리 중에 구원받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너무나 연약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갇혔던 빌립보 감옥의 간수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가 구원받기 위해 한 일이 무엇이 있습니까 ?
옥문 하나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졸다가 지진을 만난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어떻게 해야 구원을 얻을 수 있느냐"고 바울에게 물었을 때,
바울이 어떤 행위를 요구했습니까 ?
그렇지 않습니다. 다만 한 가지, "주 예수를 믿으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종교개혁 493주년을 맞아 함께 외쳐 보십시다.
Sola Scriptura !(오직 성경으로)
Sola Gratia !(오직 은혜로)
Sola Fide !(오직 믿음으로)
우리의 신앙을 오직 성경으로 돌아가게 하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오직 믿음으로 만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되새깁시다.
중세 교회가 성경을 버릴 때, 교회는 마귀와 타협하고,
성직자들은 세속화되었으며, 성도들은 갈 길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로부터 493년이 지난 지금, 오늘날의 교회와 성도들 역시, 큰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교회는 종교개혁 당시보다 더 심하게 세속화되었고,
교회 지도자들은 바른 길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으며,
성도들은 성경을 자유롭게 보고 말씀의 홍수 속에 살면서도
세상의 욕망만을 좇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 개혁되어져야 합니다.
우리의 벗은 몸을 뒤늦게 발견하고 부끄러워하기보다,
이제 말씀으로 거듭나고 은혜로 감사하며
믿음으로 구원의 도리를 전하는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성경을 사랑합시다. 읽읍시다.
그리고 깨달은 그 말씀을 내 삶의 기준으로 삼읍시다.
약삭빠른 삶을 버리고, 우둔한 삶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삶을 삽시다.
그리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主로 믿고 따르며, 세상을 향해 나갑시다.
이 세 가지를 통해 이 땅에 바른 교회상(敎會像)과 신앙상(信仰像)을 세우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부탁합니다.
또한 그것을 바탕으로 이 시대의 참된 개혁자가 되는 모두가 되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