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10월10일, 로마서12:1-2(하나님께 드리는 삶)-교회설립12주년 남선교회 헌신예배 박창대목사 > 主日説教原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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主日説教原稿

2010 2010년10월10일, 로마서12:1-2(하나님께 드리는 삶)-교회설립12주년 남선교회 헌신예배 박창대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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投稿者 박성철
コメント 0件 照会 12,917回 日時 10-10-19 18:05

本文

  오늘 헌신 예배를 드리는 남선교회 여러분 !
  헌신 예배란 ?
  모든 것에 있어서 나의 이해관계를 떠나, 몸과 마음을 다하여,
  최상의 가치를, 예배의 대상인 하나님께 돌리는 것이 헌신예배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라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라면,
  나의 이해관계를 떠나 최상의 가치를 드리기 위해서
  몸과 마음을 다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바른 헌신을 위해서는 나의 이해관계를 떠나야합니다.
  나의 이해관계(즉, 명예, 체면, 자손심, 돈, 기분, 자기중심적인 생각, 자기 생명...)를
  벗어나지 못하면 바른 헌신을 할 수 없습니다.
  우리들의 주님,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은
  철저하게 헌신 된 자로 사셨습니다.
  주님은 자신을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오셨고,
  우리를 위하여 몸과 마음을 다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처음에는 자기의 이해관계를 떠나지 못해,
  시기하고 자리다툼도 하였지만,
  성령의 충만을 입고 난 후 참 제자가 되어,
  자기의 이해관계를 떠나 헌신의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는 다 복음의 빚진 자들입니다.

  자 ! 그렇다면, 하나님 우리 아버지의 사랑과 은혜를 듬뿍 받고 사는 우리들은
  어떠한 삶을 살아야 될까요 ?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보답하는 마음으로 살아야합니다.
  시편116:12,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
  바로 이런 심정으로 우리가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족한 줄 알고, 보답하는 심정으로,
  우리의 것들을 하나님께 드리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
  하나님께 드리는 삶은 살지 않고,
  아직도 계속해서 무엇인가 받고자 하는 마음으로 살지는 않습니까 ?
  이제는 바뀌어져야 합니다.
  받고자 하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리면서 사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쁘게 해 주시기를 바라기에 앞서,
 "우리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 우리 아버지를 더욱 기쁘시게 해 드릴까 ?"
  그렇게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높여주시기를 바라기에 앞서,
  우리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이 우리에게 일깨워 주시는 교훈입니다.

  로마서12:1절의 전반부에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사도 바울은 지금까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교회를 몹시 핍박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과 원수 되었던 사람이,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우리도 죄와 허물로 말미암아 죽었던 사람들이었지만,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제는 영원한 생명이 주어졌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전반부인 1∼11장에서,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의 결과로 구원받은 성도가 되었다는 사실과,
  후반부인 12∼16장에서,
  구원받은 성도들이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할 것인가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성도의 삶은,
  한 마디로 말해서 하나님께 드리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어떤 교회에 있었던 일입니다.
  갑자기 그 교회 목사님께서 병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병원에 오랫동안 입원해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교인들은 목사님의 건강회복을 위해서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목사님께서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에는,
  어떤 신학교 교수님께서 임시로 강단을 맡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설교가 다 끝난 뒤에 그 교수님이 심각한 모습으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 본 교회 목사님께서는 빠른 시일 내에 신장(腎臟) 이식 수술을 받으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생명이 위태롭다고 합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목사님을 지극히 사랑하고 존경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목사님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자신의 신장 하나 정도는
  기증할 수 있으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저는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서
  한가지 좋은 방법을 생각해 내었습니다.
  여기에 제가 가벼운 오리 털 하나를 가지고 왔습니다.
  이제 제가 강단에서 여러분들을 향해서 이 오리 털을 힘껏 날리겠습니다.
  그러면 이 오리 털이 날아가다가 내려앉은 곳의 그 사람이,
  자기의 신장 한 쪽을 목사님께 기증하도록 하겠습니다.
  부디 하나님의 뜻 인줄 알고
  여러분 모두가 기쁜 마음으로 이 일에 순종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습니다.
  드디어 그 목사님은 오리 털을 손에 들고서 입으로 세차게 불었습니다.
  오리 털은 공중으로 높이 떠올랐습니다.
  모든 교인들은 고개를 들고서 과연 그 오리 털이 누구에게 떨어질까
  주의 깊게 바라보았습니다.
  오리 털은 공중에서 빙글빙글 돌더니,
  어떤 장로님의 얼굴에 서서히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순간 그 장로님은 바짝 긴장을 했습니다.
  그러더니 갑자기 그 오리 털을 향해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할렐루야 !"

  장로님의 입김에 그 오리 털은 다시금 다른 곳으로 날아갔습니다.
  공중에 빙글빙글 맴돌던 그 오리 털은
  이번에는 어떤 권사님의 얼굴에 서서히 내려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그 권사님도 깜짝 놀란 모습으로 크게 외쳤습니다.
 "아멘 !"

  그러자 그 오리 털은 또 다시 다른 곳으로 날아가 버렸습니다.
  그 날 그 교회는 모처럼 은혜가 충만했습니다.
 "할렐루야 ! 아멘 !"의 소리가 끊이지 않고 계속해서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물론 누군가가 지어낸 이야기겠지요.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이러한 삶을 살아가고 있지는 않는지
  한번 반성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섬길 수 있는 기회가 항상 오는 것은 아닙니다. 지나가면 그만입니다.
  우리를, 언제까지나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아쉽게도 그런 기회가 다시 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세 가지를 우리에게 말씀해 주었습니다.

  첫째, 우리의 몸을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본문1절 하반부)
  둘째,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본문2절 상반부)
  셋째, 우리의 뜻을 하나님께 드려야합니다.(본문2절 하반부)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영적인 침체에 빠지는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의 족한 은혜를 깨닫지 못하고
  계속해서 무언가 받기만 바라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불만족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제는 달라져야 합니다.
  우리의 몸도, 마음도, 뜻도 하나님께 드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헌신은 "기독교인으로서 구원받은 사람의 삶의 기초요 출발점"입니다.
  그래서 구원받은 사람의 삶과 헌신의 삶이 중요하지만,
  그 삶을 지속하는 것은 더 중요한 일입니다.
  이 문제를 이루기 위해서, 본문을 보면 한 가지 주의를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2절의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이 세대는 자기위주의 삶을 중시하는 세상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자기 자신이 곧 신입니다.
  모두 다 자기를 가꾸고 섬깁니다.
  오늘날의 세상은 모두 자기 자신을 우상처럼 믿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본문은 오늘의 세대를 따르지 말라고 강조합니다.
  오늘 이 세대의 풍조는 헌신하고 경건 생활하는 생활을 흐트러트리기 쉽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부단히 애쓰고 노력 없이는 헌신의 삶을 살기 힘듭니다.

  사도 바울은 구원받은 성도들의 삶의 목표로,
  하나님 앞에서 온전하게 헌신하는 삶을 강조하면서, "몸을 제물로 드리라"고 했습니다.

  공산주의를 신봉하는 한 청년이,
  그의 여자 친구에게 헤어지자고 보낸 편지의 일부를 소개합니다.

 "내가 죽도록 갈망하는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공산주의 운동이다.
  그것은 내 삶이요, 내 사업이요, 내 종교요, 취미요, 내 연인이요, 아내요, 애인이요,
  빵이요 고기다.
  나는 낮에 그 일을 하고 밤에 그것을 꿈꾼다.
  나를 사로잡고 있는 그것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성장한다.
  그러므로 나는 내 삶을 움직이고 인도하는 이 힘을 떠나서는 우정이나 사랑이나
  혹은 대화조차도 할 수 없다 ……
  나는 이미 내 理想 때문에 감옥에 갇혀 있고,
  필요하다면 사형대에 갈 준비가 되어 있다."

  이 공산주의자가 여자 친구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은,
  자신은 공산주의에 더 많은 열정을 바쳐야 하기 때문에 헤어지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공산주의를 위하여 자신의 목숨까지도 헌신할 각오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시대 그리스도의 제자라고 하는 우리들의, 주님을 향한 헌신은
  어떤 수준에 있습니까 ?
  로마서6:13, "너희 자신을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구원받은 그리스도의 삶은 "온전한 헌신"입니다.
  신하는 임금을 위해서 충성을 다해야 하며,
  군인은 나라를 위해서 충성을 해야 하며,
  경제인은 경제 발전을 위해서, 정치인은 국민을 섬겨야 하며,
  그리고 기독교인은 주님을 위해서 헌신을 해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

  첫째, 우리는 우리의 몸을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본문1절 하반부에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구약의 성도들은 짐승을 잡아서, 죽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몸을 산 제사로 하나님께 드리면서 살아갑니다.
  이제는 우리의 몸이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우리 자신들이 제사 드리는 제사장들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더 이상 기계적이고 의식적인 제사를 드리지 않아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삶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영적인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삶 자체가 예배의 연속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 자체가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예배가 될 수 있도록
  신령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생각, 우리의 말, 우리의 행동, 우리의 몸가짐,
  심지어는 우리의 얼굴 표정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삶 전체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의 연속입니다.

  예컨대 우리가 찡그리고, 화를 낸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겠습니까 ?
  천사의 얼굴처럼 은혜로운 모습을 할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우리의 삶이 예배의 연속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서 살아갈 때,
  우리는 비로소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이
  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이렇듯, 산 제사란 우리의 삶을 통해서, 생활을 통해서 드리는 제사를 가리킵니다.

  어떤 가정의 이야기입니다.
  연로하신 부모님을 모시고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먼저 아들 내외가 교회를 다니면서 예수님을 믿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러자 하루는 부모님이 아들 내외를 불러서 언짢은 듯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얘들아,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조상에게 제사를 드리지 않는다고 하더라.
  그러니 너희들이 교회를 다니겠다고 하는 것은,
  곧 우리가 죽더라도 제사 밥을 올리지 않겠다는 뜻이 아니냐 ?
  우리는 죽어서 굶기 싫다.
  그러니 우리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너희들이 교회에 다닐 생각을 하지 말아라."

  아들 내외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에 성령님께서 그들에게 지혜를 주셨습니다.
  아들은 아버님께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아버님이 말씀하시는 제사는 죽은 제사입니다.
  저희들이 그것보다도 훨씬 더 좋은 산 제사를 보여드리겠습니다."
  그 후로부터 아들 내외는 더욱 정성을 다해서 부모님을 잘 모셨습니다.
  끼니때마다 늘 부모님이 좋아하시는 음식을 차려 드렸습니다.
  철마다 보약도 지어서 드렸습니다. 용돈도 넉넉하게 드렸습니다.
  얼마가지 않아서 부모님은 아들 내외를 다시 불러놓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래, 너희들의 말이 맞다. 산 제사가 죽은 제사보다 훨씬 더 낫구나.
  걱정하지 말고 이제는 마음껏 교회에 다녀라.
  이제 우리도 너희들을 따라서 교회 다녀야겠다."

  그렇습니다.
  산 제사는 우리의 생활로서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의미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몸을 산 제사로 하나님께 드리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께 드려지는 제물은 흠이 없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시골 교회에 어떤 할머니 한 분이 계셨습니다.
  이 할머니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새벽기도에 빠지는 법이 없었습니다.
  대단한 열심이었습니다.
  그 날도 새벽기도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새벽공기가 신선했습니다.
  할머니는 찬송을 부르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어느 집 담장 곁을 지나갈 때였습니다.
  호박넝쿨이 담 위를 가득 메우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할머니의 눈에 번쩍 들어오는 것이 있었습니다.
  탐스러운 호박 하나가 담장 밖으로 나와, 열려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가던 걸음을 멈추고 부르던 찬송가도 멈추었습니다.
  할머니는 숨을 죽이고서 두리번두리번 주변을 살펴보았습니다.
  다행히 아무도 보지 않았습니다.
  할머니는 누가 볼까봐 냉큼 그 호박을 따서 얼른 자기 치마 속에 감추었습니다.
  그리고는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이 다시금 찬송을 부르면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 날 그 할머니는 자기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지 못했습니다.
  자기의 몸을 불의의 병기로 쓰임 받게 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남선교회 회원여러분 !
  우리는 우리의 몸, 우리의 모든 지체가 언제나 의의 병기로 쓰임 받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거룩한 산 제사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구약의 성도들은 레위기에 기록된 절차와 의식에 따라서,
  기계적이고 반복적인 제사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단번에 우리를 위해서 자신을 속죄 제물로 드려 주셨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20:28,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함이라"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자기 목숨을 버려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입니다.

  둘째,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본문2절 상반부 말씀에,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우리의 몸을 하나님께 바치기 위해서
  먼저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몸은 언제나 마음이 지시하는 대로 움직이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사람은 외모를 보지만 하나님은 마음을 보십니다.
  때때로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달아보십니다.

  창세기22장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독자 이삭을 하나님께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왜 그러하셨을까요 ?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마음을 시험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아브라함은 100세에 낳은 아들이삭을 너무나 사랑하였습니다.
  온통 아브라함의 마음이 전과 달라서 아들 이삭에게만 마음이 가있습니다.
  전에는 마음이 하나님만 사랑하고 하나님에게만 가있었는데
  늦둥이 이삭을 얻은 후에는 마음이 달라졌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마음을 시험하셨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속마음을 모르셨을까요 ?
  아닙니다. 우리들의 머리카락까지 세신 바 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까지도 다 아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것을 모른다면 신이 아니지요.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마음을 다 아셨지만,
  아브라함의 마음을 밖으로 끄집어 내보이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고백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요한복음21:15-17절에 보면,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 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이에 베드로가 대답하기를, "내가 주를 사랑하시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주님은 베드로의 마음을 다 알고 있었지만,
  베드로의 마음이 밖으로 표출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베드로의 속마음을 밖으로 끄집어내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고백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연인끼리는 사랑을 고백합니다.
  당신을 사랑하는 내 마음을 받아 달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주님도 우리의 고백을 기뻐하십니다.
 "주님 !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하고 눈을 감고 고백해 보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모릅니다.

  마태복음26:6-13절에, 마리아가 매우 값비싼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나와서
  식사하시는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습니다.
  마리아가 부은 향유는 매우 값비싼 것이었습니다.
  마리아가 드린 헌신은 힘에 지나도록 드리는 귀한 헌신입니다.
  이것을 화폐가치로 따지면 300데나리온,
  즉 노동자 한 명의 일년 연봉에 해당하는 엄청난 액수였습니다.
  노동자가 안식일과 절기를 제외한 1년 동안 쉬지 않고 일해야 벌 수 있는 액수입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자신의 힘에 지나도록 헌신했습니다.

  사실 베다니라는 촌에 살고 있던 3남매로서는 300데나리온이라는 돈은
  엄청나게 큰 것입니다.
  그러나 마리아에게는 돈의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녀에게는 주님을 향한 너무나도 귀한 사랑과 감사가 있었기에
  이처럼 값비싼 것을 드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문제는, 재물의 많고 적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 대한 넘치는 사랑이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이 여인의 마음과 행동은 주위 사람들의 질시와 책망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기뻐 받으신 아름다운 헌신이었습니다.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이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보셨던 것입니다.

  마태복음6:21, "네 보물이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주님은 물질보다도 여인의 마음을 보셨던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헌금을 드리면,
  사용은 사람들이 하고 주님은 마음만 받으시는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들이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물질을 드릴 수가 있습니다.
  시간을 드릴 수도 있습니다.
  봉사로, 전도로. 드릴 수도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주일학교 유치원에 다니는 꼬마 아이가 있었습니다.
  어느 주일 날 그는 교회에 갔다 오더니 얼른 저울 위에 올라섰습니다.
  몸무게를 달기 위함이었습니다.
  어머니가 그 모습을 보면서 물어 봅니다.
 "얘야 ! 교회 가기 전에 몸무게를 달아 보았잖니, 왜 또 달아보니 ?"
  그러자 꼬마 아이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예, 주일학교 선생님이 내 마음을 하나님께 드려야 된대요.
  그래서 기도하면서 내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말씀을 드렸거든요.
  그래서 내 몸무게가 얼마나 줄었는지 알아보고 싶어서 저울에 올라갔어요."
 "그런데 엄마 ! 이상해요. 하나도 안 줄었네요"
  얼마나 귀여운 말입니까 ?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받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하면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습니까 ?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땅엣 것만 생각합니다.
  그들은 썩어질 것, 덧없는 것, 일시적인 것만 추구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새로운 마음, 변화를 받은 마음은 다릅니다.
  우리는 위엣 것을 생각하면서 살아갑니다.
  영원한 것을 바라보면서 살아갑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의 나라에 소망을 두면서 살아갑니다.

  셋째, 우리는 우리의 뜻을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본문2절 하반부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하나님께 우리의 몸을 드리고 우리의 마음을 드리면
  절로 깨닫게 되는 사실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우리 아버지의 뜻은 언제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라는 사실입니다.

  반면에 우리의 인간적인 뜻은 어떻습니다.
  악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아니하실 수도 있습니다.
  아무래도 불완전하기 마련입니다.
  하나님의 뜻만이 언제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뜻을 하나님께 드리고,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뜻만이 이루어지기를 바라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최선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남선교회 회원여러분 !
  하나님의 뜻을 우리의 삶 속에 이루기 위해서,
  우리의 뜻을 꺾어 버리고,
  우리의 뜻을 포기하는 것을 주저하거나 두려워하지 마십시다.
  하나님의 뜻은 언제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기 때문입니다.
  나의 포기는 주님의 시작입니다.

  어떤 사람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우리의 여러 소원들 가운데서 단 한 가지를 이루어
  주시겠다고 말한다면 당신은 하나님께 무엇을 요구하시겠습니까 ?"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그것을 하나님의 뜻에 맡겨버리겠습니다.
  왜냐하면 내게 있어서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이 제일 좋은지 가장 잘 아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각이 부족합니다.
  우리는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할 정도로 연약합니다.
  때로는 돌이 떡인 줄 알고 돌을 구할 때도 있습니다.
  뱀이 생선인줄 알고 뱀을 구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십니다.
  모든 지각에 뛰어나신 분이십니다.
  무엇이 우리에게 필요하고,
  무엇이 가장 좋은지 환하게 아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뜻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뜻이 우리의 삶 속에 이루어지기를 바라야 합니다.
  그것이 언제나 최선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남선교회 회원여러분 !
  오늘 말씀을 비추어서 우리의 삶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면서 어떠한 삶의 자세로 살아왔습니까 ?
  하나님 중심으로 살지 못하고 우리 중심으로 살지는 않았습니까 ?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기 보다는
  하나님이 우리를 기쁘게 해 주시기를 바라지 않았습니까 ?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기보다는
  하나님께서 나를 잘 되게 해 주시고,
  하나님께서 나를 높여 주시는 것에만 관심을 두지는 않았습니까 ?

  이제는 바뀌어져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족한 은혜를 깨닫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몸, 우리의 마음, 우리의 뜻을 하나님께 드리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 때 우리는 절로 성령으로 충만할 수 있습니다.
  영적으로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그만큼 성숙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삶 자체가 예배의 연속이라는 사실을 명심합시다.
  우리의 마음가짐, 얼굴 표정 하나하나 등, 사소한 일까지라도 소홀히 하지 않고,
  모든 면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우리들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저의 선친 박원섭 목사님의 설교 예화 중, 하나를 소개합니다.
  일본 동경에 19세 소녀가 홀 아버지를 모시고 살았습니다.
  딸은 독실한 그리스도인인데 아버지는 강도였습니다.
  딸은 아버지께 수 차례 전도했으나 아버지는 끝내 듣지 아니했습니다.
  그래서 최후 수단으로 유서를 써서 가방에 넣고,
  아버지가 칼을 품고 나가자 돈 많은 부인처럼 변장하고
  아버지를 부지런히 뒤따라갔습니다.

  아버지가 시부야 공원 숲 속에 숨는 것을 본 딸은 태연하게 그 앞을 지나갔습니다.
  아버지는 재빨리 소녀를 찌르고 가방을 낚아채 가지고 도망을 쳤습니다.
  집에 가서 가방을 열어보니 편지가 있었습니다.

 "아빠, 이 불효 여식의 잘못을 용서하세요.
  오늘 밤 아빠가 죽인 사람은 바로 아빠의 사랑하는 딸이에요.
  아무리 생각해도 아빠의 영혼을 구원하여 천국으로 모시는 길이
  이 길 밖에 없는 것 같아요.
  남의 자식을 죽이면 그 부모의 마음이 얼마나 아픈지 생각해 보셨나요 ?
  나는 지금 죽더라도 천국에 갈 준비가 되어 있기에 최후로 이 길을 선택했어요.
  저를 자식으로 여기시거든 불쌍타 마시고 회개하셔서
  예수님 믿으시고 천국에서 기쁜 낯으로 뵙게 되기를 바랍니다. 아빠 사랑해요."

  아버지는 통곡하며 회개했습니다.
  경찰에 자수하여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으나,
  20년 간 모범수로 복역한 후 석방되어 신앙생활 잘 하는 성도가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구원을 위해 딸은 문자 그대로 자기 몸을 제물로 드렸고,
  남은 삶을 최대한 선용한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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