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2010년8월29일, 골로새서3:22-4:1(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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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 계신 지체들을 이렇게 축복합시다.
당신은 온전한 믿음의 사람이며, 기도의 큰 능력을 가진 사람입니다.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기대, 당신을 향한 여러 사람들의 기대가
모두다 이루어지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여러분들은 직장이나 일터에서 여러분들이 그리스도인인 것을 밝히는 쪽입니까 ?
아니면 밝히지 않는 쪽입니까 ?
만약 밝히신다면, 왜 여러분들은 자신의 영적 신분을 밝히십니까 ?
밝히는 분들은 아마도 이런 뜻이 있어서 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것이 자랑스러워서,
혹은 전도를 위하여,
혹은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살도록 자신에게 자극을 주기 위해,
혹은 그냥 .......
반대의 분들은, 왜 여러분들은 영적 신분을 밝히지 않으십니까 ?
밝히지 않는 분들은 아마도 이런 뜻이 있어서 일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제한 받는 것(말과 행동)들 때문에 일하기에 불편하니까,
혹은 내 부족함이 하나님 영광을 가리게 될까봐,
혹은 그냥 .......
사실 나 자신이 그리스도인임을 밝히고 일을 하면,
나 한 사람의 언행을 통하여 교회 전체에 대한 평판이 좌우될 수 있습니다.
심지어 내 자신의 부족한 삶 때문에 자칫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리스도인임을 밝혀야 하는 것은,
우리는 세상의 소금이며 빛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들은 세상의 후미진 곳에 숨어살아서는 안 됩니다.
당당하게 그리스도인임을 밝히고, 자신이 바른 삶의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직장생활에서 지켜야 할 중요한 원칙들을,
그 당시 대표적 노사관계라 할 수 있는 '주인과 종'의 관계를 통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 직장과 일터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가질 자세에 대해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당시 로마의 사회 구조를 미루어 볼 때,
초대 교회 안에 있는 신자들 중에 가장 많은 직업은 역시 하인과 노예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하인과 노예라는 것은,
사실 오늘날 우리가 볼 때는 도무지 직업이라고 부를 수조차 없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월급은 고사하고 겨우 먹고 살 것만 제공받았으며,
주인의 마음을 상하게 하면 자칫 목숨을 잃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초대교회의 많은 성도들은 從과 노예였습니다.
그런데 초대교회 지도자들은 종의 위치에 있던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성도답게 자신의 주인을 온전히 섬길 것을 가르쳤습니다.
이와는 반대로, 비록 숫자는 많지 않았지만,
초대교회 안에는 종들을 거느리고 있던 주인들도 있었습니다.
초대교회 지도자들은 그들에게도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당시 주인이 종을 대하는 세상의 풍조와는 다른, 섬김의 삶을 가르쳤습니다.
자 ! 이제부터 구체적으로,
우리들은 오늘 본문의 교훈을 통해 어떤 직장관(職場觀) 가져야 할까요 ?
첫째, 성도의 직장은, 주님을 향하는 깨끗한 양심을 드러내는 곳이어야 합니다.
본문22-23절,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그렇습니다. 종들은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물론 본문의 앞뒤 문맥에서 볼 때, 이 순종은 신앙과 관련된 것은 제외된 것입니다.
즉 이 말씀은 내 자신이 종(직원)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모든 일에 대하여,
상전에게 순종해야 함을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더구나 그 순종하는 자세는, '눈가림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한국어 사전에 눈가림은 "겉만 꾸며 남의 눈을 속이는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즉, 눈가림이라는 것은, 그저 상사에게 야단맞지 않을 정도로,
그저 고객의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적당히 하는 것을 말합니다.
상사가 있으면 무척 열심히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윗사람이 없으면 적당히 시간만을 보내고 맙니다.
그리고 이들은 이렇게 주장합니다.
"주인이 보지 않는 데서 더 열심히 일한다고 월급이 늘어나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시간만 보내면 되는데 뭘 그렇게 열심히 해요 !"
"나 하나 적당히 한다고 해서, 우리 회사 망하지 않아요 !"
"내 몸 내가 아껴야지요 ! 평생 써먹어야 할 몸인데 !"
이러한 잘못된 생각에 대해 오늘 본문은 강력히 경고합니다.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그렇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예수님께 하듯 정성을 다해야 합니다.
이 말씀은, 아무리 열악한 직장생활이라 하더라도,
바로 그곳에서 성도로서의 깨끗한 양심과 성실한 자세를 나타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여러분들은 지난 한 주간 동안,
각각의 직장과 일터에서 신자로서의 양심을 지키셨습니까 ?
우리가 만약 직장이나 일터에서,
사람의 눈을 속이고, 꾀를 부리고, 성실하게 섬기지 않는 다면,
그것은 상사나 사장 고객의 눈만 속이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바로 우리 주님을 속이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오래 전, 우리 본향에 속한 성도 중 이런 분이 있었습니다.
이 분은 식당에서 일을 했는데, 자신의 구역이 식사당번이든지
혹은 무슨 행사가 있으면, 그 식당에서 음식을 해왔습니다.
또한 자신이 집에서 먹을 음식들도 일터에서 만들어왔습니다.
물론 이것을 그 사장이 허락했다면 큰 문제일 수 없습니다.
수고하는 직원을 위해서, 나눔과 베품과 섬김을 하는 것이니까요 !
그러나 사장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면 정말로 큰 문제입니다.
자신의 직장(식당)의 재산을 자기 맘대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가스, 전기, 수도, 양념, 기타 재료 ......, 무엇보다도
자신이 직장을 위해 일해야할 매우 중요한 시간을 다른 곳에 쓰고 만 것입니다.
정직하지 못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한 마디로 도적입니다.
여러분 ! 이러한 모습을 주님이 기뻐하실 까요 ?
우리 생각에는 직장에서의 모든 문제들이,
사원을 막 대하는 못된 사장과 나 사이의 문제이고,
신앙과 아무 관계없는 불신자와 나 사이만의 문제인 것으로 여길지 모르지만,
사실은 그 모든 것이 다 예수님 앞에서의 내 양심과 직결되는 문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직장, 내 일터가 '성도의 양심'의 부분을 면제받은,
범죄 특별구역이라는 착각을 완전히 버려야 합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그곳, 신앙의 양심과 정절을 지키기 어려운 그곳에서,
어떻게 하면 신앙의 정절을 지킴과 동시에,
그곳을 기도의 자리, 찬양의 자리, 예배의 자리로 바꿀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간구(懇求)해야 합니다.
직장과 일터는 우리의 양심을 지키는 가장 최전선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하나님은 그곳에 크고 놀라운 뜻이 있어 우리를 그곳에 보내신 것입니다.
마치 요셉을 보디발의 집과 감옥과 바로의 왕궁에,
다니엘을 바벨론 왕궁에 보내신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간절히 기도합시다.
우리 본향의 성도들을 통해 그곳이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한 자리가 되도록 말입니다.
요셉을 통해서 애굽 왕 바로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창세기41:38-39)
"바로가 그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와 같이 하나님의 신에 감동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얻을 수 있으리요 하고
요셉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네게 보이셨으니
너와 같이 명철하고 지혜있는 자가 없도다"
다니엘을 통해서 느부갓네살 왕도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다니엘2:47, "왕이 대답하여 다니엘에게 이르되
너희 하나님은 참으로 모든 신의 신이시요 모든 왕의 주재시로다
네가 능히 이 은밀한 것을 나타내었으니
네 하나님은 또 은밀한 것을 나타내시는 자시로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
여러분들의 깨끗한 양심을 통해,
여러분이 속한 직장과 일터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또한 요셉과 다니엘을 통해 왕들이 놀라운 고백을 했던 것처럼,
여러분들 때문에 여러분과 함께 한 분들이 큰 고백을 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둘째, 성도의 직장은, 주님께로부터 받는 '물질 축복'이 장(場)입니다.
본문24절, "이는 유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앎이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
이 말씀을 풀어서 말하면 이와 같습니다.
"너희가 직장과 일터의 상전을 마치 주님을 섬기듯 성실한 양심으로 섬기면,
그 상급은 바로 주님께로부터 직접 받게 될 것이다."
여기에서 '유업의 상'이라 함은 바로 성도가 주님께로부터 받게 될
이 땅의 축복은 물론 천국의 상급까지 가리키는 말입니다.
사실 이 말씀이 우리에게 합당한 것은, 직장은 궁극적으로 사람을 섬기는 곳이 아니라
바로 주 그리스도를 섬기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앞의 말씀에서도 직장과 일터에서,
"주님을 두려워하는 양심과 성실함으로 일하라"고 명하셨으니,
그에 대해 상(賞)을 내리시는 분도 당연히 주님이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가 교회 안에서 직분을 받아 하나님의 일에 봉사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놀라운 상급입니다.
또한 가정에서 자녀를 낳고 그들과 함께 화목하고 평화스럽게 살 수 있는 것 역시
하나님이 주신 상급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직장에서 승진하고 사업의 이익이 늘어나는 역시
주님께서 내려 주시는 상급임에 분명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하나님의 교회에서 늦은 시각까지 예배하고 봉사하고 섬기고 충성하는 것,
하나님의 주신 은혜인 것을 인정하십니까 ?
부족하고 연약하여 아무 것도 온전히 할 수 없는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케 하는 것이 특별한 은총인 것을 인정하십니까 ?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맡긴 사명을 충실히 감당하는 우리에게
이 땅과 내세에서 큰 상급을 허락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
직장에서 잔업(殘業)하고,
이런 저런 많은 일들을 맡김 받는 것도
큰 축복이며 큰 은총인 것을 인정하십니까 ?
더구나 그 일들은, 단순히 회사에 혹은 사장에게 혹은 상사에게 충성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 예수님을 향한 것임도 인정하십니까 ?
그렇다면, 여러분 !
직장(일터)의 많은 일들에 불평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여러분의 그 수고와 그 땀과 그 눈물을 주님께서 아시고,
여러분들에게 축복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분명합니다.
우리 주님은 지금 내 직장을 통하여 물질 축복을 누리게 하십니다.
지금은 그 통로를 통해 우리에게 재물의 복을 주십니다.
그러나 정직하지 못하고 불의를 행하면, 그 대가를 치르게 됩니다.
본문25절, "불의를 행하는 자는 불의의 보응을 받으리니
주는 외모로 사람을 취하심이 없느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
직장과 일터의 일을 성실히 감당해, 하나님의 주시는 물질 축복을 크게 받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 성도의 직장은, 예수님만이 나의 참 주인이심을 항상 인정하는 곳이어야 합니다.
본문4:1절, "상전들아 의와 공평을 종들에게 베풀찌니
너희에게도 하늘에 상전이 계심을 알찌어다"
서론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초대교회에는 종을 거느리고 있는 주인들도 있었습니다.
초대 교회는 당시의 사회 구조 자체를 변화시킬 의도는 전혀 없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물론 노예 제도가 잘못된 것임은 두말할 필요조차 없지만,
성도의 참된 의무는 이 세상의 모순된 사회제도 자체를 개조시켜
완벽한 유토피아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악한 세상 속에서도 천국 소망을 보여주는 빛이 되고,
천국 행복의 맛을 내어 주는 소금이 되는 것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그 당시 성도로서 세상의 상전의 위치에 있던 지체들이 해야하는 가장 중요한 일은
'의와 공평'을 종들에게 베푸는 일이었습니다.
사실, 당시 사회는 자기 종이나 노예들에게 '의나 공평'을 베푼다는 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당시의 가장 현명하다고 이름난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철학자까지도
"노예는 말할 수 있는 도구다"라고 정의했을 정도이니 말입니다.
당시 '의와 공평'은, 자유민이나 로마 시민에게만 적용되는 고차원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성도(聖徒)인 상전들은 의와 공평을 종들에게 행해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들의 상전이 하늘에 계심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본문22절에는 '육신의 상전'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 말은 '육신의 상전'뿐이 아닌 '하늘의 상전'이 계심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하늘의 상전은, 바로 우리의 참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본문24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
여러분들이 직장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 혹은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습니까 ?
여러분들의 육신의 상전은 직장의 상사이며 사장입니다.
또한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그 상사와 사장을 섬길 때는, 주님을 섬기는 것처럼 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그 육신의 상전보다 더 높으신 하늘의 상전이 계십니다.
하늘의 상전이신 그 예수님만이 우리의 참 상전이시며, 참 주인이십니다.
이 땅의 상전들은 잠시 우리들의 삶을 제어하고 있지만,
하늘의 상전이신 우리 주님은 우리들의 금세(今世)와 내세를 주장하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나의 참 주인은 오직 한 분 예수 그리스도이시다'라는 이 사실을
가장 잊어버리기 쉬운 곳이 우리들의 일터입니다.
그러나 그 사실을 가장 똑똑히 기억하고 살아야 할 곳이
바로 우리의 직장이며 일터인 것입니다.
사장이 내 밥줄을 거머쥐고 있는 진짜 주인처럼 보이는 곳이 바로 직장입니다.
그러나 나의 모든 것을 진정으로 주관하시는 분은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눈물 젖은 빵을 먹어 보지 않고는 인생을 논할 자격이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저는 이 말의 뜻을 고등학교 때부터 알았지만,
비로소 가슴으로 이 말을 알게 된 것은 그로부터 훨씬 후의 일이었습니다.
비가 오는 것을 보면서,
"우리의 심령에도 은혜의 단비를 부어 주옵소서"라고만 기도하다가,
"주님, 비 가운데서 일터를 향하는 성도들의 걸음을 지켜 주시고,
사업하는 성도들의 영업장에 비 때문에 손님이 줄어들지 않게 하소서"라고
기도할 줄 알게 될 때까지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성도들에게 바른 헌금 생활을 말하고
스스로 본을 보이고자 하는 것은 비교적 일찍 시작했지만,
성도들이 주일마다 십일조와 감사헌금과 작정헌금을 드리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고생하는지는 그보다 훨씬 뒤에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하지만 우리 주님께서는 처음부터 전부 다 알고 계십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이 신앙생활을 바르게 하기 위해서 정말로 애쓰는 것,
교회 및 가정에서 뿐 아니라,
엿새 동안의 일터에서 우리들이 얼마나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우리 주님은 너무도 잘 알고 계십니다.
바로 그런 주님께서 여러운 환경 속에서 매일 고되게 일하고 있는 우리들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들은 직장과 일터의 일들을 바로 내게 하듯 하라"
한 주간 동안 직장에서 상사의 눈치를 살피며,
손님들의 비위를 맞추어 주며 한 푼을 더 벌기 위해서
악전고투하는 여러분의 모습을 너무도 잘 아시는 우리 주님께서,
"너희들의 그 생활 역시 나를 대하듯이 해 보아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직장과 일터와 사업장을 그저 비정한 곳이라고,
지겹고 짜증나는 곳이라고만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바로 그곳이야말로,
여러분께서 엿새 동안 우리 주님을 가장 자주, 가장 가까이 만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곳이야말로 여러분께서 선한 양심을 발휘해야 하는 곳이며,
바로 그곳이야말로 주님께서 주시는 금세와 내세의 상급을 받아 누리는 곳이며,
바로 그 곳이야말로 여러분이 예수님만을 진짜 내 주인으로 모시고 있는지 아닌지가
완전히 판가름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한 번 따라해 봅시다.
"무슨 일을 하든지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고 주께 하듯 하라"
바로 이 말씀에 순종하여,
일터에서 각자의 양심과 성실성을 깨끗하게 발휘하여,
각자가 세상에서 받을 물질 축복의 문을 활짝 열리게 하며,
각자가 정말 예수님만을 유일한 주님으로 믿고 있음을 진실하게 증명함으로써,
여러분의 직장과 사업을 통해 주님께 큰 영광을 돌리며,
그 내려 주시는 은총을 풍성하게 누리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당신은 온전한 믿음의 사람이며, 기도의 큰 능력을 가진 사람입니다.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기대, 당신을 향한 여러 사람들의 기대가
모두다 이루어지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여러분들은 직장이나 일터에서 여러분들이 그리스도인인 것을 밝히는 쪽입니까 ?
아니면 밝히지 않는 쪽입니까 ?
만약 밝히신다면, 왜 여러분들은 자신의 영적 신분을 밝히십니까 ?
밝히는 분들은 아마도 이런 뜻이 있어서 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것이 자랑스러워서,
혹은 전도를 위하여,
혹은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살도록 자신에게 자극을 주기 위해,
혹은 그냥 .......
반대의 분들은, 왜 여러분들은 영적 신분을 밝히지 않으십니까 ?
밝히지 않는 분들은 아마도 이런 뜻이 있어서 일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제한 받는 것(말과 행동)들 때문에 일하기에 불편하니까,
혹은 내 부족함이 하나님 영광을 가리게 될까봐,
혹은 그냥 .......
사실 나 자신이 그리스도인임을 밝히고 일을 하면,
나 한 사람의 언행을 통하여 교회 전체에 대한 평판이 좌우될 수 있습니다.
심지어 내 자신의 부족한 삶 때문에 자칫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리스도인임을 밝혀야 하는 것은,
우리는 세상의 소금이며 빛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들은 세상의 후미진 곳에 숨어살아서는 안 됩니다.
당당하게 그리스도인임을 밝히고, 자신이 바른 삶의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직장생활에서 지켜야 할 중요한 원칙들을,
그 당시 대표적 노사관계라 할 수 있는 '주인과 종'의 관계를 통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 직장과 일터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가질 자세에 대해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당시 로마의 사회 구조를 미루어 볼 때,
초대 교회 안에 있는 신자들 중에 가장 많은 직업은 역시 하인과 노예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하인과 노예라는 것은,
사실 오늘날 우리가 볼 때는 도무지 직업이라고 부를 수조차 없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월급은 고사하고 겨우 먹고 살 것만 제공받았으며,
주인의 마음을 상하게 하면 자칫 목숨을 잃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초대교회의 많은 성도들은 從과 노예였습니다.
그런데 초대교회 지도자들은 종의 위치에 있던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성도답게 자신의 주인을 온전히 섬길 것을 가르쳤습니다.
이와는 반대로, 비록 숫자는 많지 않았지만,
초대교회 안에는 종들을 거느리고 있던 주인들도 있었습니다.
초대교회 지도자들은 그들에게도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당시 주인이 종을 대하는 세상의 풍조와는 다른, 섬김의 삶을 가르쳤습니다.
자 ! 이제부터 구체적으로,
우리들은 오늘 본문의 교훈을 통해 어떤 직장관(職場觀) 가져야 할까요 ?
첫째, 성도의 직장은, 주님을 향하는 깨끗한 양심을 드러내는 곳이어야 합니다.
본문22-23절,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그렇습니다. 종들은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물론 본문의 앞뒤 문맥에서 볼 때, 이 순종은 신앙과 관련된 것은 제외된 것입니다.
즉 이 말씀은 내 자신이 종(직원)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모든 일에 대하여,
상전에게 순종해야 함을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더구나 그 순종하는 자세는, '눈가림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한국어 사전에 눈가림은 "겉만 꾸며 남의 눈을 속이는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즉, 눈가림이라는 것은, 그저 상사에게 야단맞지 않을 정도로,
그저 고객의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적당히 하는 것을 말합니다.
상사가 있으면 무척 열심히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윗사람이 없으면 적당히 시간만을 보내고 맙니다.
그리고 이들은 이렇게 주장합니다.
"주인이 보지 않는 데서 더 열심히 일한다고 월급이 늘어나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시간만 보내면 되는데 뭘 그렇게 열심히 해요 !"
"나 하나 적당히 한다고 해서, 우리 회사 망하지 않아요 !"
"내 몸 내가 아껴야지요 ! 평생 써먹어야 할 몸인데 !"
이러한 잘못된 생각에 대해 오늘 본문은 강력히 경고합니다.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그렇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예수님께 하듯 정성을 다해야 합니다.
이 말씀은, 아무리 열악한 직장생활이라 하더라도,
바로 그곳에서 성도로서의 깨끗한 양심과 성실한 자세를 나타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여러분들은 지난 한 주간 동안,
각각의 직장과 일터에서 신자로서의 양심을 지키셨습니까 ?
우리가 만약 직장이나 일터에서,
사람의 눈을 속이고, 꾀를 부리고, 성실하게 섬기지 않는 다면,
그것은 상사나 사장 고객의 눈만 속이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바로 우리 주님을 속이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오래 전, 우리 본향에 속한 성도 중 이런 분이 있었습니다.
이 분은 식당에서 일을 했는데, 자신의 구역이 식사당번이든지
혹은 무슨 행사가 있으면, 그 식당에서 음식을 해왔습니다.
또한 자신이 집에서 먹을 음식들도 일터에서 만들어왔습니다.
물론 이것을 그 사장이 허락했다면 큰 문제일 수 없습니다.
수고하는 직원을 위해서, 나눔과 베품과 섬김을 하는 것이니까요 !
그러나 사장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면 정말로 큰 문제입니다.
자신의 직장(식당)의 재산을 자기 맘대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가스, 전기, 수도, 양념, 기타 재료 ......, 무엇보다도
자신이 직장을 위해 일해야할 매우 중요한 시간을 다른 곳에 쓰고 만 것입니다.
정직하지 못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한 마디로 도적입니다.
여러분 ! 이러한 모습을 주님이 기뻐하실 까요 ?
우리 생각에는 직장에서의 모든 문제들이,
사원을 막 대하는 못된 사장과 나 사이의 문제이고,
신앙과 아무 관계없는 불신자와 나 사이만의 문제인 것으로 여길지 모르지만,
사실은 그 모든 것이 다 예수님 앞에서의 내 양심과 직결되는 문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직장, 내 일터가 '성도의 양심'의 부분을 면제받은,
범죄 특별구역이라는 착각을 완전히 버려야 합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그곳, 신앙의 양심과 정절을 지키기 어려운 그곳에서,
어떻게 하면 신앙의 정절을 지킴과 동시에,
그곳을 기도의 자리, 찬양의 자리, 예배의 자리로 바꿀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간구(懇求)해야 합니다.
직장과 일터는 우리의 양심을 지키는 가장 최전선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하나님은 그곳에 크고 놀라운 뜻이 있어 우리를 그곳에 보내신 것입니다.
마치 요셉을 보디발의 집과 감옥과 바로의 왕궁에,
다니엘을 바벨론 왕궁에 보내신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간절히 기도합시다.
우리 본향의 성도들을 통해 그곳이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한 자리가 되도록 말입니다.
요셉을 통해서 애굽 왕 바로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창세기41:38-39)
"바로가 그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와 같이 하나님의 신에 감동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얻을 수 있으리요 하고
요셉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네게 보이셨으니
너와 같이 명철하고 지혜있는 자가 없도다"
다니엘을 통해서 느부갓네살 왕도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다니엘2:47, "왕이 대답하여 다니엘에게 이르되
너희 하나님은 참으로 모든 신의 신이시요 모든 왕의 주재시로다
네가 능히 이 은밀한 것을 나타내었으니
네 하나님은 또 은밀한 것을 나타내시는 자시로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
여러분들의 깨끗한 양심을 통해,
여러분이 속한 직장과 일터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또한 요셉과 다니엘을 통해 왕들이 놀라운 고백을 했던 것처럼,
여러분들 때문에 여러분과 함께 한 분들이 큰 고백을 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둘째, 성도의 직장은, 주님께로부터 받는 '물질 축복'이 장(場)입니다.
본문24절, "이는 유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앎이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
이 말씀을 풀어서 말하면 이와 같습니다.
"너희가 직장과 일터의 상전을 마치 주님을 섬기듯 성실한 양심으로 섬기면,
그 상급은 바로 주님께로부터 직접 받게 될 것이다."
여기에서 '유업의 상'이라 함은 바로 성도가 주님께로부터 받게 될
이 땅의 축복은 물론 천국의 상급까지 가리키는 말입니다.
사실 이 말씀이 우리에게 합당한 것은, 직장은 궁극적으로 사람을 섬기는 곳이 아니라
바로 주 그리스도를 섬기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앞의 말씀에서도 직장과 일터에서,
"주님을 두려워하는 양심과 성실함으로 일하라"고 명하셨으니,
그에 대해 상(賞)을 내리시는 분도 당연히 주님이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가 교회 안에서 직분을 받아 하나님의 일에 봉사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놀라운 상급입니다.
또한 가정에서 자녀를 낳고 그들과 함께 화목하고 평화스럽게 살 수 있는 것 역시
하나님이 주신 상급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직장에서 승진하고 사업의 이익이 늘어나는 역시
주님께서 내려 주시는 상급임에 분명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하나님의 교회에서 늦은 시각까지 예배하고 봉사하고 섬기고 충성하는 것,
하나님의 주신 은혜인 것을 인정하십니까 ?
부족하고 연약하여 아무 것도 온전히 할 수 없는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케 하는 것이 특별한 은총인 것을 인정하십니까 ?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맡긴 사명을 충실히 감당하는 우리에게
이 땅과 내세에서 큰 상급을 허락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
직장에서 잔업(殘業)하고,
이런 저런 많은 일들을 맡김 받는 것도
큰 축복이며 큰 은총인 것을 인정하십니까 ?
더구나 그 일들은, 단순히 회사에 혹은 사장에게 혹은 상사에게 충성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 예수님을 향한 것임도 인정하십니까 ?
그렇다면, 여러분 !
직장(일터)의 많은 일들에 불평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여러분의 그 수고와 그 땀과 그 눈물을 주님께서 아시고,
여러분들에게 축복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분명합니다.
우리 주님은 지금 내 직장을 통하여 물질 축복을 누리게 하십니다.
지금은 그 통로를 통해 우리에게 재물의 복을 주십니다.
그러나 정직하지 못하고 불의를 행하면, 그 대가를 치르게 됩니다.
본문25절, "불의를 행하는 자는 불의의 보응을 받으리니
주는 외모로 사람을 취하심이 없느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
직장과 일터의 일을 성실히 감당해, 하나님의 주시는 물질 축복을 크게 받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 성도의 직장은, 예수님만이 나의 참 주인이심을 항상 인정하는 곳이어야 합니다.
본문4:1절, "상전들아 의와 공평을 종들에게 베풀찌니
너희에게도 하늘에 상전이 계심을 알찌어다"
서론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초대교회에는 종을 거느리고 있는 주인들도 있었습니다.
초대 교회는 당시의 사회 구조 자체를 변화시킬 의도는 전혀 없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물론 노예 제도가 잘못된 것임은 두말할 필요조차 없지만,
성도의 참된 의무는 이 세상의 모순된 사회제도 자체를 개조시켜
완벽한 유토피아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악한 세상 속에서도 천국 소망을 보여주는 빛이 되고,
천국 행복의 맛을 내어 주는 소금이 되는 것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그 당시 성도로서 세상의 상전의 위치에 있던 지체들이 해야하는 가장 중요한 일은
'의와 공평'을 종들에게 베푸는 일이었습니다.
사실, 당시 사회는 자기 종이나 노예들에게 '의나 공평'을 베푼다는 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당시의 가장 현명하다고 이름난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철학자까지도
"노예는 말할 수 있는 도구다"라고 정의했을 정도이니 말입니다.
당시 '의와 공평'은, 자유민이나 로마 시민에게만 적용되는 고차원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성도(聖徒)인 상전들은 의와 공평을 종들에게 행해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들의 상전이 하늘에 계심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본문22절에는 '육신의 상전'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 말은 '육신의 상전'뿐이 아닌 '하늘의 상전'이 계심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하늘의 상전은, 바로 우리의 참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본문24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
여러분들이 직장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 혹은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습니까 ?
여러분들의 육신의 상전은 직장의 상사이며 사장입니다.
또한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그 상사와 사장을 섬길 때는, 주님을 섬기는 것처럼 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그 육신의 상전보다 더 높으신 하늘의 상전이 계십니다.
하늘의 상전이신 그 예수님만이 우리의 참 상전이시며, 참 주인이십니다.
이 땅의 상전들은 잠시 우리들의 삶을 제어하고 있지만,
하늘의 상전이신 우리 주님은 우리들의 금세(今世)와 내세를 주장하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나의 참 주인은 오직 한 분 예수 그리스도이시다'라는 이 사실을
가장 잊어버리기 쉬운 곳이 우리들의 일터입니다.
그러나 그 사실을 가장 똑똑히 기억하고 살아야 할 곳이
바로 우리의 직장이며 일터인 것입니다.
사장이 내 밥줄을 거머쥐고 있는 진짜 주인처럼 보이는 곳이 바로 직장입니다.
그러나 나의 모든 것을 진정으로 주관하시는 분은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눈물 젖은 빵을 먹어 보지 않고는 인생을 논할 자격이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저는 이 말의 뜻을 고등학교 때부터 알았지만,
비로소 가슴으로 이 말을 알게 된 것은 그로부터 훨씬 후의 일이었습니다.
비가 오는 것을 보면서,
"우리의 심령에도 은혜의 단비를 부어 주옵소서"라고만 기도하다가,
"주님, 비 가운데서 일터를 향하는 성도들의 걸음을 지켜 주시고,
사업하는 성도들의 영업장에 비 때문에 손님이 줄어들지 않게 하소서"라고
기도할 줄 알게 될 때까지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성도들에게 바른 헌금 생활을 말하고
스스로 본을 보이고자 하는 것은 비교적 일찍 시작했지만,
성도들이 주일마다 십일조와 감사헌금과 작정헌금을 드리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고생하는지는 그보다 훨씬 뒤에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하지만 우리 주님께서는 처음부터 전부 다 알고 계십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이 신앙생활을 바르게 하기 위해서 정말로 애쓰는 것,
교회 및 가정에서 뿐 아니라,
엿새 동안의 일터에서 우리들이 얼마나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우리 주님은 너무도 잘 알고 계십니다.
바로 그런 주님께서 여러운 환경 속에서 매일 고되게 일하고 있는 우리들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들은 직장과 일터의 일들을 바로 내게 하듯 하라"
한 주간 동안 직장에서 상사의 눈치를 살피며,
손님들의 비위를 맞추어 주며 한 푼을 더 벌기 위해서
악전고투하는 여러분의 모습을 너무도 잘 아시는 우리 주님께서,
"너희들의 그 생활 역시 나를 대하듯이 해 보아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직장과 일터와 사업장을 그저 비정한 곳이라고,
지겹고 짜증나는 곳이라고만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바로 그곳이야말로,
여러분께서 엿새 동안 우리 주님을 가장 자주, 가장 가까이 만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곳이야말로 여러분께서 선한 양심을 발휘해야 하는 곳이며,
바로 그곳이야말로 주님께서 주시는 금세와 내세의 상급을 받아 누리는 곳이며,
바로 그 곳이야말로 여러분이 예수님만을 진짜 내 주인으로 모시고 있는지 아닌지가
완전히 판가름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한 번 따라해 봅시다.
"무슨 일을 하든지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고 주께 하듯 하라"
바로 이 말씀에 순종하여,
일터에서 각자의 양심과 성실성을 깨끗하게 발휘하여,
각자가 세상에서 받을 물질 축복의 문을 활짝 열리게 하며,
각자가 정말 예수님만을 유일한 주님으로 믿고 있음을 진실하게 증명함으로써,
여러분의 직장과 사업을 통해 주님께 큰 영광을 돌리며,
그 내려 주시는 은총을 풍성하게 누리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