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2010년8월8일, 마가복음10:46-52(예수님을 길에서부터 즉시 따른 바디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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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 계신 지체들을 이렇게 축복합시다.
하나님께 감사하는 당신, 하나님께서 다윗의 복으로 채우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이름을 존귀하게 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위해, 크고 놀라운 집을 지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을 크게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대학을 다닐 때, 매년 봄 학기 중반쯤이 되면, 일부러 자신의 눈을 가리고,
대학 캠퍼스 이곳 저곳을 거니는 학생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들이 왜 자신들의 눈을 가리고 캠퍼스 곳곳을 걸었을까요 ?
그들은 사범대학 특수교육과 학생들로서,
앞을 보지 못하는 시각장애인들의 입장을 자신들이 직접 체험해 봄으로
이해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저도 약15년 전,
그리고 10년 전에 각각 왼쪽 눈과 오른 쪽의 백내장 수술을 했었습니다.
저의 경우에는 양 쪽 눈 모두 백내장이 상당히 진행되어,
바로 눈앞에 물체가 있어도 전혀 느끼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수술 후, 맑은 눈으로 세상을 보고, 사람들을 보았을 때,
너무나 깨끗하고 밝게 보여서 크게 기뻐했던 그 기쁨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도 그처럼 큰 기쁨을 얻는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의 이름은 바디매오입니다. 그는 본래 소경이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에서는 소경이 죄인으로 취급되었고,
그에 따라 바디매오는 차별과 배척을 당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그는 남에게 구걸하는, 거지 밖에 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별로 살아갈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바디매오 그에게 참으로 놀라운 날이 되었던 바로 그 날도,
그는 길에서 지나는 사람들에게 구걸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주위가 매우 소란스러워졌습니다.
바디매오가 주위 사람들에게 물었습니다. "이 무슨 일이냐"(누가복음18:36)
사람들이 대답합니다.
"나사렛 예수께서 지나신다"(누가복음18:37)
바디매오는 이전부터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있었습니다.
그분이 나사렛 출신이라는 것,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의 어려움과 병을
고쳐 주셨다는 것, 특히 소경을 밝히 보게 해 주신 것 등.
그때 바디매오는 확신했었습니다.
예수님이야말로 기다리던 메시아다.
그런데 그 예수님께서 자신이 있는 곳을 지금 지나가신다는 것입니다.
이에 바디매오는 예수님을 향해 온 힘을 다해 이렇게 외쳤습니다.
본문47절,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여러분들이 아시는 것처럼, '다윗의 자손'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토록 기다리던
메시아(그리스도, 기름부음 받은 자)를 의미합니다.
소경이며 거지인 바디매오가 그처럼 큰 소리로 외치니
주위의 사람들이 그를 꾸짖었습니다.
본문48절,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그러나 바디매오는 이에 굴하지 않고 더욱 크게 외쳤습니다.
본문48절,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예수님께서 가시는 길을 멈추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본문49절, "저를 부르라"(あの男を呼んで來なさい.)
바디매오는 이에 겉옷을 던져 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님께 나아갔습니다.
그가 겉옷을 버렸다는 것은 자신의 이제까지 모든 삶을 버린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즉, 바디매오는 자신의 치유를 확신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나아온 바디매오에게 主님께서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본문51절,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사랑하는 여러분 ! 바디매오의 소망은 분명했습니다.
본문51절, "보기를 원하나이다"(目が見えるようになりたいのです.)
다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본문52절,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行きなさい. あなたの信仰があなたを救った.)
성경은 말합니다. "저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좇으니라"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여러분들에게도 오늘, 이런 놀라운 치유함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들 ! 여러분의 소망은 무엇입니까 ?
이 시간 함께 하시는 예수님을 향해 외치십시오. 큰 소리로 외치십시오.
"병든 몸과 마음을 치유 받기를 원하나이다"
"결혼하기를 원하나이다"
"취직하기를 원하나이다"
"큰 전도자가 되기를 원하나이다".......
오늘 여러분들에게도 반드시 놀라운 응답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자 ! 그렇다면, 보게 된 바디매오가 곧바로 어디를 향했을까요 ?
그렇습니다. 본문52절 말씀처럼, 예수님을 길에서부터 좇아갔습니다.
즉, 집에 돌아가지 않고, 곧바로 고침 받은 그곳에서부터
예수님을 따라 나섰다는 것입니다.
물론 自意에 의해서입니다.
본문52절에서 예수님은 "가라"(行きなさい.)고 분명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보게 된 바디매오는 하고 싶은 일들이 너무도 많았을 것입니다.
우선 일가친척과 친지들을 만나, 보게 된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말로만 듣던 곳으로 다니면서 아름다운 세상 구경도 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눈 때문에 못했던 일들을 다 해 보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 모든 것들을 뒤로 미루었습니다.
그가 선택한 일은 예수님을 따르는 일이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내게 예수님을 따르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
이 분이 아니었다면 난 평생 소경으로 구걸하면서 살아야 했을 것이다.
이제 내 남은 인생은 오직 나를 고쳐주신 예수님과 함께 할 것이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은혜를 받은 사람이 최우선적으로 할 일은 예수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보혈을 통해 죄로부터 구원을 받으셨습니까 ?
그렇다면, 주님을 섬기는 신앙생활에 힘쓰시기를 바랍니다.
질병에서 나음을 얻으셨습니까 ?
그 건강을 다른 데 사용하지 말고,
예수님을 섬기고 이웃을 섬기는 데 사용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은혜로 어려운 문제에서 벗어나셨습니까 ?
세상 욕망에 따라 살지 말고, 복음전파를 위해 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축복으로 물질의 복을 받으셨습니까 ?
그 물질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귀하게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받은 은혜를 가지고 욕망을 추구하는 것은, 은혜 받은 사람이 할 일이 아닙니다.
바디매오처럼 예수님을 따르시길 축원합니다.
한편, 예수님은 바디매오의 마을이었던 여리고를 지나
곧 바로 예루살렘을 향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기 시작한 보게 된 바디매오는 그로부터 몇 일 후,
예수님께서 겪으시는 세 가지 큰 사건을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보게됩니다.
어떤 사건들을 보게 되었을까요 ?
첫째,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눈을 뜬 바디매오 앞에는 수많은 군중들이 보였습니다.
그들은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서시는 예수님을 향해 이렇게 외쳤습니다.
마가복음11:9-10,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송하리로다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
엄청난 함성이었습니다.
바디매오가 볼 때, 군중들은 확신에 차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곧 왕이 되셔서 로마의 압제에서 구해줄 것을.
바디매오의 가슴도 뛰었습니다. '드디어 主께서 王이 되시는구나 !'
그러나 그로부터 몇 일이 지났을 때,
예수님이 왕이 될 것을 기대하면서 흥분되었던 바디매오의 가슴은
싸늘하게 식었습니다.
오히려 슬픔과 비통함으로 가득 찼습니다.
그는 자신이 눈을 뜬 것을 후회했습니다.
그는 앞을 보지 못하던 예전이 차라리 그리웠습니다.
왜입니까 ?
그것은 그가 차마 두 눈으로 볼 수 없는 참상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그가 본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
둘째, 바디매오가 본 두 번째 사건은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왕이 되시기는커녕,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으셨습니다.
높은 자리에 앉으시기는커녕, 오히려 침 뱉음을 당하시고,
주먹으로 머리를 맞았으며, 채찍으로 맞으셨습니다.
악한 사람들을 심판하시기는커녕,
빌라도 총독과 분봉왕 헤롯,
그리고 거만한 대제사장들에게 오히려 재판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처참히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그리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엄청난 고통의 시간을 보낸 후,
主님은 끝내 숨을 거두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바디매오가 본 것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기서 우리는 너무도 중요한 한 가지 질문을 하게 됩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까 ?
바디매오의 눈을 뜨게 해 주신, 큰 능력의 예수님이 왜 그렇게 죽으셨습니까 ?
바로 이곳에 우리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이유는,
바디매오에게 진정으로 큰 은총, 큰 축복을 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바디매오에게 주시려는 은총이 무엇입니까 ?
사람들은 소경에게 있어서, 보게 되는 것보다 더 큰 은총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바디매오 자신도 이미 최고의 은총을 받았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잘못된 생각입니다.
여러분 ! 눈을 뜨는 것보다 더 놀라운 은총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 그것은 '영원히 사는 생명의 은총'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소경 바디매오는 이제는 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두 눈으로 세상을 보면서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두 눈이 다시 감기는 날이 올 것입니다.
눈꺼풀을 들 수도 없는 순간이 올 것입니다.
두 눈으로 보는 세상만사가 귀찮아지는 순간이 올 것입니다.
그 순간은 다름 아닌 죽음의 순간입니다.
죽음이 오면 눈을 떴던 것도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마찬가지입니다.
가난한 사람에게 많은 돈은 큰 선물이지만,
죽음의 순간이 오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실패로 눈물 흘리던 사람에게 성공은 큰 축복이지만,
죽음의 순간이 오면 의미가 없습니다.
두 눈을 떴다해도 언젠가는 죽고 맙니다.
암에서 고침을 받았다 해도 언젠가는 죽을 것입니다.
자녀가 잘 되고, 돈을 많이 벌고, 성공을 해도 언젠가는 죽을 것입니다.
모든 기도가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언젠가는 죽게 됩니다.
죽음은 최후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최악의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죽음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인생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본래부터 인간에게 이 죽음이라는
도저히 넘을 수 없는 커다란 장벽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본래 인간은 하나님처럼 영생할 수 있는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죽는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 이 죽음이, 이 사망이 어디서부터 왔습니까 ?
그렇습니다. 죽음은 죄로부터 왔습니다. 죽음의 원인은 죄입니다.
일찍이 모든 인류의 조상인 아담과 하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어
죄를 지은 그 순간부터, 모든 인간에게 죽음이 찾아왔습니다.
첫 사람 아담과 하와 속에 있었던 죄의 기질과 성향은 오늘 우리 속에도 가득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죄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매일 같이 죄를 지으며 삽니다.
이 세상에 죄가 없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따라서 죽지 않는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죄로 인해 죽을 존재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 죄의 문제를,
또한 죽음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 세상에 오셨습니다.
참으로 귀한 여러분 !
저는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으로부터 많은 은혜를 받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이왕 은혜와 축복을 받으시려면, 가장 큰 은혜를 얻으시길 축원합니다.
부스러기 은혜가 아니라, 가장 큰 덩어리의 은혜, 최고의 은혜를 받으십시오.
그렇다면, 무엇이 가장 큰 은혜일까요 ? 무엇이 최고의 은혜일까요 ?
그것은 바로 '완전한 죄의 용서'와 '영원히 사는 은혜'입니다.
저는 몇 주 전, 시(時)테크 전문가의 강의를 소개했습니다.
그 강의의 핵심은, 항아리에 넣는 순서라고 했습니다.
큰 돌, 작은 자갈, 모래, 물 順으로 넣어야 모두 넣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 받을 여러 가지 은총과 福들 中에서,
가장 먼저 받을 福은 바로 '죄의 용서'의 복입니다. 그래야 '영생의 복'도 얻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물질의 복, 마음의 복, 자녀의 복, 건강의 복, 합격의 복,
취업의 복 ...... 이 모든 것보다 우선 받을 복은 '영생의 복'이어야 합니다.
십자가를 통해 얻는 죄의 용서와 구원이, 우리가 받을 모든 복의 기초입니다.
먼저 이것부터 얻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福 위에 여러 가지 은혜를 쌓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먼저 십자가를 통하여 영원한 생명의 은총을 얻으십시오.
당장의 질병을 고침 받는 것보다, 먼저 영생을 얻으십시오.
당장의 성공 보다, 근본적 구원을 얻으시길 소망하십시오.
그리고 그 위에 다른 여러 가지 은혜를 얻으시길 바라십시오.
우리는 어려운 병으로 투병하는 분들에게 분명히 말해 주어야 합니다.
"형제님, 형제님께서 주님의 능력으로 고침 받으시길 원합니다.
그러나 그 이전에 먼저 회개하여 죄를 용서받으십시오.
그리고 영원한 생명을 얻으십시오. 천국을 얻으십시오.
오늘 당장 죽어도 천국에 갈 수 있는 믿음을 먼저 가지십시오"
아무리 당장 질병에서 나음을 얻어도 천국에 갈 믿음이 없다면,
그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
그러므로 힘든 병을 얻은 분들에게는 분명히 말씀해 드림으로써
그 분으로 하여금 천국을 위해 믿음을 준비할 시간을 드려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바디매오는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운명하시는 것을 보면서
눈을 뜬 것을 후회했을 것입니다.
도저히 못 볼 것을 보았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생각은 잘못이었습니다.
그는 못 볼 것을 본 것이 아니라, 당연히 보아야 할 것,
자신이 어떻게 구원을 얻게 되었는가를 자신의 눈으로 똑똑히 본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십자가를 보는 사람만이 삽니다.
십자가의 예수님을 보는 사람만이 삽니다.
여러분 ! 우리도 두 눈을 들어 십자가에 달리신 구주 예수님을 보아야 합니다.
그 분의 찢긴 몸과 흘리신 피를 보며,
진정으로 그 큰 은혜에 감사하는 우리가 되기 바랍니다.
셋째, 바디매오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는 순간, 바디매오에게서는 슬퍼하던 마음이 다 사라졌습니다.
슬픔은 사라지고 기쁨이 충만했습니다.
바디매오는 분명히 알았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으로 끝나는 분이 아니었습니다.
그 분은 죄도 이기시고, 죽음도 이기시는 분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온 인류에게 가장 치명적이던 무서운 적인 죽음을 물리치신 분이었습니다.
바디매오는 비로소 예수님께서 자신의 눈을 뜨게 해 주신 이유를 분명히 알았습니다.
눈을 뜨게 해 주신 이유는 두 눈을 가지고
세상의 더러운 것들을 보게 하시려는 게 아니었습니다.
두 눈을 가지고 욕망의 대상을 바라보게 하시려는 게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두 눈으로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보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또 부활하신 영광스러운 예수님을 보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십자가의 예수님과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지 못한다면,
두 눈으로 아무리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을 많이 보아도
죽음과 함께 그 두 눈은 썩어버리고 말 것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아름다운 명승지를 많이 가보지 못했다고 안타까워하지 마십시오.
해외 여행 한 번 변변히 못했다고 슬퍼하지 마십시오.
아무리 경치 좋은 곳을 많이 구경하고, 아무리 멋진 여행을 즐겼다 하더라도,
십자가의 예수님과 부활의 예수님을 보지 못한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눈을 들어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이미 주님은 우리를 보고 계십니다.
주님과 눈을 마주하여 바라보십시오. 그 분의 사랑의 눈을 보십시오.
눈 뜬 바디매오가 보았던 십자가의 예수님과 부활의 예수님을
우리 모두도 보면서 살게 되길 기원합니다.
바로 그때, 이러한 주님의 음성을 가슴과 영혼에 확실히 듣기를 축원합니다.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내 것이라, 너의 하나님이라"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노라, 너를 사랑하는 네 여호와라"
함께 다시 찬양을 드리겠습니다.
제목 - 나의 안에 거하라
나의 안에 거하라 나는 네 하나님이니, 모든 환난 가운데 너를 지키는 자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널 도와 주리니, 놀라지 말라 네 손 잡아 주리라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내 것이라, 너의 하나님이라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노라, 너를 사랑하는 네 여호와라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 우리는 몇 십 년이 지나지 않아 예수님 앞에 설 것입니다.
우리보다 앞서 천국에 도달한 우리의 부모님들, 가족들, 친구들, 선배들을 볼 것입니다.
바로 그 날, 오늘 본문의 바디매오도 우리들을 반길 것입니다.
베드로가 바울이 에스더가 요셉이 우리를 맞을 것입니다.
그 복된 자리에 모두 함께 하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
하나님께 감사하는 당신, 하나님께서 다윗의 복으로 채우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이름을 존귀하게 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위해, 크고 놀라운 집을 지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을 크게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대학을 다닐 때, 매년 봄 학기 중반쯤이 되면, 일부러 자신의 눈을 가리고,
대학 캠퍼스 이곳 저곳을 거니는 학생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들이 왜 자신들의 눈을 가리고 캠퍼스 곳곳을 걸었을까요 ?
그들은 사범대학 특수교육과 학생들로서,
앞을 보지 못하는 시각장애인들의 입장을 자신들이 직접 체험해 봄으로
이해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저도 약15년 전,
그리고 10년 전에 각각 왼쪽 눈과 오른 쪽의 백내장 수술을 했었습니다.
저의 경우에는 양 쪽 눈 모두 백내장이 상당히 진행되어,
바로 눈앞에 물체가 있어도 전혀 느끼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수술 후, 맑은 눈으로 세상을 보고, 사람들을 보았을 때,
너무나 깨끗하고 밝게 보여서 크게 기뻐했던 그 기쁨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도 그처럼 큰 기쁨을 얻는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의 이름은 바디매오입니다. 그는 본래 소경이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에서는 소경이 죄인으로 취급되었고,
그에 따라 바디매오는 차별과 배척을 당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그는 남에게 구걸하는, 거지 밖에 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별로 살아갈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바디매오 그에게 참으로 놀라운 날이 되었던 바로 그 날도,
그는 길에서 지나는 사람들에게 구걸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주위가 매우 소란스러워졌습니다.
바디매오가 주위 사람들에게 물었습니다. "이 무슨 일이냐"(누가복음18:36)
사람들이 대답합니다.
"나사렛 예수께서 지나신다"(누가복음18:37)
바디매오는 이전부터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있었습니다.
그분이 나사렛 출신이라는 것,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의 어려움과 병을
고쳐 주셨다는 것, 특히 소경을 밝히 보게 해 주신 것 등.
그때 바디매오는 확신했었습니다.
예수님이야말로 기다리던 메시아다.
그런데 그 예수님께서 자신이 있는 곳을 지금 지나가신다는 것입니다.
이에 바디매오는 예수님을 향해 온 힘을 다해 이렇게 외쳤습니다.
본문47절,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여러분들이 아시는 것처럼, '다윗의 자손'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토록 기다리던
메시아(그리스도, 기름부음 받은 자)를 의미합니다.
소경이며 거지인 바디매오가 그처럼 큰 소리로 외치니
주위의 사람들이 그를 꾸짖었습니다.
본문48절,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그러나 바디매오는 이에 굴하지 않고 더욱 크게 외쳤습니다.
본문48절,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예수님께서 가시는 길을 멈추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본문49절, "저를 부르라"(あの男を呼んで來なさい.)
바디매오는 이에 겉옷을 던져 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님께 나아갔습니다.
그가 겉옷을 버렸다는 것은 자신의 이제까지 모든 삶을 버린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즉, 바디매오는 자신의 치유를 확신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나아온 바디매오에게 主님께서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본문51절,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사랑하는 여러분 ! 바디매오의 소망은 분명했습니다.
본문51절, "보기를 원하나이다"(目が見えるようになりたいのです.)
다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본문52절,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行きなさい. あなたの信仰があなたを救った.)
성경은 말합니다. "저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좇으니라"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여러분들에게도 오늘, 이런 놀라운 치유함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들 ! 여러분의 소망은 무엇입니까 ?
이 시간 함께 하시는 예수님을 향해 외치십시오. 큰 소리로 외치십시오.
"병든 몸과 마음을 치유 받기를 원하나이다"
"결혼하기를 원하나이다"
"취직하기를 원하나이다"
"큰 전도자가 되기를 원하나이다".......
오늘 여러분들에게도 반드시 놀라운 응답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자 ! 그렇다면, 보게 된 바디매오가 곧바로 어디를 향했을까요 ?
그렇습니다. 본문52절 말씀처럼, 예수님을 길에서부터 좇아갔습니다.
즉, 집에 돌아가지 않고, 곧바로 고침 받은 그곳에서부터
예수님을 따라 나섰다는 것입니다.
물론 自意에 의해서입니다.
본문52절에서 예수님은 "가라"(行きなさい.)고 분명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보게 된 바디매오는 하고 싶은 일들이 너무도 많았을 것입니다.
우선 일가친척과 친지들을 만나, 보게 된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말로만 듣던 곳으로 다니면서 아름다운 세상 구경도 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눈 때문에 못했던 일들을 다 해 보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 모든 것들을 뒤로 미루었습니다.
그가 선택한 일은 예수님을 따르는 일이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내게 예수님을 따르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
이 분이 아니었다면 난 평생 소경으로 구걸하면서 살아야 했을 것이다.
이제 내 남은 인생은 오직 나를 고쳐주신 예수님과 함께 할 것이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은혜를 받은 사람이 최우선적으로 할 일은 예수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보혈을 통해 죄로부터 구원을 받으셨습니까 ?
그렇다면, 주님을 섬기는 신앙생활에 힘쓰시기를 바랍니다.
질병에서 나음을 얻으셨습니까 ?
그 건강을 다른 데 사용하지 말고,
예수님을 섬기고 이웃을 섬기는 데 사용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은혜로 어려운 문제에서 벗어나셨습니까 ?
세상 욕망에 따라 살지 말고, 복음전파를 위해 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축복으로 물질의 복을 받으셨습니까 ?
그 물질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귀하게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받은 은혜를 가지고 욕망을 추구하는 것은, 은혜 받은 사람이 할 일이 아닙니다.
바디매오처럼 예수님을 따르시길 축원합니다.
한편, 예수님은 바디매오의 마을이었던 여리고를 지나
곧 바로 예루살렘을 향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기 시작한 보게 된 바디매오는 그로부터 몇 일 후,
예수님께서 겪으시는 세 가지 큰 사건을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보게됩니다.
어떤 사건들을 보게 되었을까요 ?
첫째,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눈을 뜬 바디매오 앞에는 수많은 군중들이 보였습니다.
그들은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서시는 예수님을 향해 이렇게 외쳤습니다.
마가복음11:9-10,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송하리로다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
엄청난 함성이었습니다.
바디매오가 볼 때, 군중들은 확신에 차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곧 왕이 되셔서 로마의 압제에서 구해줄 것을.
바디매오의 가슴도 뛰었습니다. '드디어 主께서 王이 되시는구나 !'
그러나 그로부터 몇 일이 지났을 때,
예수님이 왕이 될 것을 기대하면서 흥분되었던 바디매오의 가슴은
싸늘하게 식었습니다.
오히려 슬픔과 비통함으로 가득 찼습니다.
그는 자신이 눈을 뜬 것을 후회했습니다.
그는 앞을 보지 못하던 예전이 차라리 그리웠습니다.
왜입니까 ?
그것은 그가 차마 두 눈으로 볼 수 없는 참상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그가 본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
둘째, 바디매오가 본 두 번째 사건은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왕이 되시기는커녕,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으셨습니다.
높은 자리에 앉으시기는커녕, 오히려 침 뱉음을 당하시고,
주먹으로 머리를 맞았으며, 채찍으로 맞으셨습니다.
악한 사람들을 심판하시기는커녕,
빌라도 총독과 분봉왕 헤롯,
그리고 거만한 대제사장들에게 오히려 재판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처참히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그리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엄청난 고통의 시간을 보낸 후,
主님은 끝내 숨을 거두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바디매오가 본 것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기서 우리는 너무도 중요한 한 가지 질문을 하게 됩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까 ?
바디매오의 눈을 뜨게 해 주신, 큰 능력의 예수님이 왜 그렇게 죽으셨습니까 ?
바로 이곳에 우리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이유는,
바디매오에게 진정으로 큰 은총, 큰 축복을 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바디매오에게 주시려는 은총이 무엇입니까 ?
사람들은 소경에게 있어서, 보게 되는 것보다 더 큰 은총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바디매오 자신도 이미 최고의 은총을 받았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잘못된 생각입니다.
여러분 ! 눈을 뜨는 것보다 더 놀라운 은총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 그것은 '영원히 사는 생명의 은총'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소경 바디매오는 이제는 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두 눈으로 세상을 보면서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두 눈이 다시 감기는 날이 올 것입니다.
눈꺼풀을 들 수도 없는 순간이 올 것입니다.
두 눈으로 보는 세상만사가 귀찮아지는 순간이 올 것입니다.
그 순간은 다름 아닌 죽음의 순간입니다.
죽음이 오면 눈을 떴던 것도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마찬가지입니다.
가난한 사람에게 많은 돈은 큰 선물이지만,
죽음의 순간이 오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실패로 눈물 흘리던 사람에게 성공은 큰 축복이지만,
죽음의 순간이 오면 의미가 없습니다.
두 눈을 떴다해도 언젠가는 죽고 맙니다.
암에서 고침을 받았다 해도 언젠가는 죽을 것입니다.
자녀가 잘 되고, 돈을 많이 벌고, 성공을 해도 언젠가는 죽을 것입니다.
모든 기도가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언젠가는 죽게 됩니다.
죽음은 최후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최악의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죽음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인생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본래부터 인간에게 이 죽음이라는
도저히 넘을 수 없는 커다란 장벽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본래 인간은 하나님처럼 영생할 수 있는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죽는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 이 죽음이, 이 사망이 어디서부터 왔습니까 ?
그렇습니다. 죽음은 죄로부터 왔습니다. 죽음의 원인은 죄입니다.
일찍이 모든 인류의 조상인 아담과 하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어
죄를 지은 그 순간부터, 모든 인간에게 죽음이 찾아왔습니다.
첫 사람 아담과 하와 속에 있었던 죄의 기질과 성향은 오늘 우리 속에도 가득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죄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매일 같이 죄를 지으며 삽니다.
이 세상에 죄가 없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따라서 죽지 않는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죄로 인해 죽을 존재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 죄의 문제를,
또한 죽음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 세상에 오셨습니다.
참으로 귀한 여러분 !
저는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으로부터 많은 은혜를 받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이왕 은혜와 축복을 받으시려면, 가장 큰 은혜를 얻으시길 축원합니다.
부스러기 은혜가 아니라, 가장 큰 덩어리의 은혜, 최고의 은혜를 받으십시오.
그렇다면, 무엇이 가장 큰 은혜일까요 ? 무엇이 최고의 은혜일까요 ?
그것은 바로 '완전한 죄의 용서'와 '영원히 사는 은혜'입니다.
저는 몇 주 전, 시(時)테크 전문가의 강의를 소개했습니다.
그 강의의 핵심은, 항아리에 넣는 순서라고 했습니다.
큰 돌, 작은 자갈, 모래, 물 順으로 넣어야 모두 넣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 받을 여러 가지 은총과 福들 中에서,
가장 먼저 받을 福은 바로 '죄의 용서'의 복입니다. 그래야 '영생의 복'도 얻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물질의 복, 마음의 복, 자녀의 복, 건강의 복, 합격의 복,
취업의 복 ...... 이 모든 것보다 우선 받을 복은 '영생의 복'이어야 합니다.
십자가를 통해 얻는 죄의 용서와 구원이, 우리가 받을 모든 복의 기초입니다.
먼저 이것부터 얻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福 위에 여러 가지 은혜를 쌓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먼저 십자가를 통하여 영원한 생명의 은총을 얻으십시오.
당장의 질병을 고침 받는 것보다, 먼저 영생을 얻으십시오.
당장의 성공 보다, 근본적 구원을 얻으시길 소망하십시오.
그리고 그 위에 다른 여러 가지 은혜를 얻으시길 바라십시오.
우리는 어려운 병으로 투병하는 분들에게 분명히 말해 주어야 합니다.
"형제님, 형제님께서 주님의 능력으로 고침 받으시길 원합니다.
그러나 그 이전에 먼저 회개하여 죄를 용서받으십시오.
그리고 영원한 생명을 얻으십시오. 천국을 얻으십시오.
오늘 당장 죽어도 천국에 갈 수 있는 믿음을 먼저 가지십시오"
아무리 당장 질병에서 나음을 얻어도 천국에 갈 믿음이 없다면,
그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
그러므로 힘든 병을 얻은 분들에게는 분명히 말씀해 드림으로써
그 분으로 하여금 천국을 위해 믿음을 준비할 시간을 드려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바디매오는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운명하시는 것을 보면서
눈을 뜬 것을 후회했을 것입니다.
도저히 못 볼 것을 보았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생각은 잘못이었습니다.
그는 못 볼 것을 본 것이 아니라, 당연히 보아야 할 것,
자신이 어떻게 구원을 얻게 되었는가를 자신의 눈으로 똑똑히 본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십자가를 보는 사람만이 삽니다.
십자가의 예수님을 보는 사람만이 삽니다.
여러분 ! 우리도 두 눈을 들어 십자가에 달리신 구주 예수님을 보아야 합니다.
그 분의 찢긴 몸과 흘리신 피를 보며,
진정으로 그 큰 은혜에 감사하는 우리가 되기 바랍니다.
셋째, 바디매오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는 순간, 바디매오에게서는 슬퍼하던 마음이 다 사라졌습니다.
슬픔은 사라지고 기쁨이 충만했습니다.
바디매오는 분명히 알았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으로 끝나는 분이 아니었습니다.
그 분은 죄도 이기시고, 죽음도 이기시는 분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온 인류에게 가장 치명적이던 무서운 적인 죽음을 물리치신 분이었습니다.
바디매오는 비로소 예수님께서 자신의 눈을 뜨게 해 주신 이유를 분명히 알았습니다.
눈을 뜨게 해 주신 이유는 두 눈을 가지고
세상의 더러운 것들을 보게 하시려는 게 아니었습니다.
두 눈을 가지고 욕망의 대상을 바라보게 하시려는 게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두 눈으로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보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또 부활하신 영광스러운 예수님을 보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십자가의 예수님과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지 못한다면,
두 눈으로 아무리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을 많이 보아도
죽음과 함께 그 두 눈은 썩어버리고 말 것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아름다운 명승지를 많이 가보지 못했다고 안타까워하지 마십시오.
해외 여행 한 번 변변히 못했다고 슬퍼하지 마십시오.
아무리 경치 좋은 곳을 많이 구경하고, 아무리 멋진 여행을 즐겼다 하더라도,
십자가의 예수님과 부활의 예수님을 보지 못한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눈을 들어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이미 주님은 우리를 보고 계십니다.
주님과 눈을 마주하여 바라보십시오. 그 분의 사랑의 눈을 보십시오.
눈 뜬 바디매오가 보았던 십자가의 예수님과 부활의 예수님을
우리 모두도 보면서 살게 되길 기원합니다.
바로 그때, 이러한 주님의 음성을 가슴과 영혼에 확실히 듣기를 축원합니다.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내 것이라, 너의 하나님이라"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노라, 너를 사랑하는 네 여호와라"
함께 다시 찬양을 드리겠습니다.
제목 - 나의 안에 거하라
나의 안에 거하라 나는 네 하나님이니, 모든 환난 가운데 너를 지키는 자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널 도와 주리니, 놀라지 말라 네 손 잡아 주리라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내 것이라, 너의 하나님이라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노라, 너를 사랑하는 네 여호와라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 우리는 몇 십 년이 지나지 않아 예수님 앞에 설 것입니다.
우리보다 앞서 천국에 도달한 우리의 부모님들, 가족들, 친구들, 선배들을 볼 것입니다.
바로 그 날, 오늘 본문의 바디매오도 우리들을 반길 것입니다.
베드로가 바울이 에스더가 요셉이 우리를 맞을 것입니다.
그 복된 자리에 모두 함께 하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