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2011년3월13일, 시편46:1-11(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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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 옆에 계신 복스러운 지체들과 함께, 하나님께 이렇게 감사합시다.
큰 지진 중에서도, 지켜 주신 특별한 은혜에 감사를 드립니다.
심히 어려운 중에도, 이렇게 예배드릴 수 있는 것을 감사 드립니다.
죠디 포스터라는 미국의 여배우가 있습니다.
두 번이나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은 훌륭한 배우인데,
그녀가 출연한 영화 중에 '패닉 룸'이란 영화가 있습니다.
남편과 이혼한 맥은 딸 사라와 함께 뉴욕 맨하턴의 한 고급 주택으로 이사를 옵니다.
그런데 그 집엔
외부의 어떤 침입으로부터도 집 주인을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는 방이 있었습니다.
그 방은, 어떤 충격에도 견딜 수 있을 만큼 견고했고,
그 방안에서 집안의 어떤 상황이라도 알 수 있도록 기계장비로 시스템화되어있었으며,
또 경찰과도 바로 연결되는 전화도 구비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모녀가 이사 들어온 날 밤, 세 명의 괴한이 침입합니다.
물론 괴한들은 그 집에 새로운 주인이 이사 온 것을 몰랐습니다.
그 집의 前 주인은 어떤 부유한 노인이었는데,
그의 손자 되는 청년이 할아버지가 남긴 막대한 유산을 혼자 차지하려고
그 방을 설계했던 사람과 특수 절도범을 데리고 숨어들어 온 것이었습니다.
맥과 사라는 그들을 피해 안전지대인 그 방으로 들어가지만
괴한들이 찾는 유산이 바로 그 패닉 룸 안에 숨겨져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가장 안전하다는 방이 오히려 두려움과 공포의 방이 된 것입니다.
이때부터 모녀와 세 명의 괴한이 벌이는 공포와 스릴 넘치는 한 판 승부가 벌어집니다.
그렇습니다. 이 영화가 전하려고 하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가장 안전하다는 방이 공포의 방으로 변해 버렸다는 역설을 통해서
이 땅에 인간들이 꿈꾸는 안전지대란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난 금요일 오후3시경, 메이지 시대 이후로 가장 큰 지진을 경험했습니다.
이미 1,000여명의 죽음이 확인되었고, 행방불명된 사람들을 합하면,
이번 지진의 희생자는 수천 명에 달할지도 모릅니다.
사실 일본 정부는, 이제까지 東海지역에 강력한 지진(東海地震) 일어날 것을 예상하고,
그곳에 모든 준비를 집중했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지진은, 그나마 안전한 지역으로 여겨졌던 곳에서,
매우 크게 발생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더욱 큰 피해가 나고 말았습니다.
한때 세계에서 가장 안전하다고 하는 나라는 미국이었습니다.
그러나 9.11테러 이후, 미국은 가장 위험한 나라 중의 하나가 되고 말았습니다.
더구나 지금도 미국에서는 총기 사고가 끊이질 않습니다.
또한 뉴질랜드, 호주는 또한 어떻습니까 ? 지진, 산불 .......
성도여러분 ! 세상 어디에도 참으로 안전한 곳은 없습니다.
자 ! 그렇다면 우리는 늘 불안하고 위험에 빠진 채로
하루 하루를 전전긍긍하며 살아야 할까요 ?
정말 이 세상에는 참된 평안을 누릴 안전지대는 없을까요 ?
아니요. 분명히 있습니다. 참된 안전지대는 존재합니다.
오늘 본문인 시편46편은 많은 믿음의 선진들이 특별한 은혜를 체험한 말씀입니다.
칼빈이 성경을 처음으로 프랑스어로 번역할 때,
제일 먼저 번역한 말씀이 바로 이 시편46편이었고,
마르틴 루터 역시 이 46편을 통해 큰 영감을 받아,
유명한 찬송가 '내 주는 강한 성이요'(384장)를 만들었습니다.
칼빈도 루터도 종교개혁가로서, 당시 카톨릭의 칼을 피해
간신히 목숨을 이어가고 있었고, 그들에게는 안전지대가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발견한 참된 안전지대는,
오늘 본문 시편46편을 통해 발견한, '하나님의 품'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상 어느 곳에도 참으로 안전한 곳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품 안 만이 우리의 참된 안전지대입니다.
본문1-3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 빠지든지
바닷물이 흉용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요동할지라도
우리는 두려워 아니하리로다"
사실 이 말씀을 반복해 읽어보면,
당시 상황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땅이 뒤틀려 변하고, 산이 무너져 바다에 빠지고,
바닷물이 솟아나고 넘쳐 산을 흔듭니다. 이번 지진과 같습니다.
오늘 본문이 쓰여진 배경은 이렇습니다.
主前701년 앗수르의 군대가 예루살렘을 완전히 포위합니다.
인구 8만 밖에 안 되는 도시를 18만5천명의 대군이 둘러쌌습니다.
예루살렘 성의 운명은 큰 광풍 앞의 작은 등불과도 같았습니다.
성안의 백성들은, 이 위기를 벗어날 방법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날밤 엄청난 기적으로 이 위기를 극복합니다.
성안의 백성들은 아침이 되어서야 그 기적을 직접 목격합니다.
열왕기하19:35, "이 밤에 여호와의 사자가 나와서 앗수르 진영에서
군사 18만5천 명을 친지라 아침에 일어나 보니 다 송장이 되었더라"
하나님의 사자가 적들을 쳐서 몰살시켰다는 것입니다.
이 사건을 두고 역사가인 헤로도투스는
그 당시 페스트가 그들의 진영에 창궐하는 바람에 그런 일이 일어났다고 주장합니다.
바로 이 사건 후에 쓰여진 찬양시가 본문 시편46편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약2700년 전에 있었던 그 엄청난 위기가, 지금 우리들 앞에 놓여져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확신합니다. 하나님이 이 위기를 지나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 중 한 사람도, 이 재앙 앞에 넘어질 자 결코 없을 것입니다.
자 ! 또한 어떤 곳이, 우리의 참된 안전지대일까요 ?
야곱이 하란으로 가는 여정 가운데 일어난 일을 우리는 잘 압니다.
그는 정말 큰 두려움으로 집을 떠났습니다.
그런 야곱이 길에서 돌 베개를 베고 잘 때,
꿈에 하늘에 닿은 사닥다리가 보이고
거기를 하나님의 사자들이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이삭과 할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신 여호와께서 나타나셔서,
평생 자기와 함께 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래서 일어나서 그곳에다 장차 하나님의 전을 세울 것을 서원하고는 길을 떠납니다.
그런데 여러분, 바로 그때까지 야곱이 모르고 있었던 일이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야곱은 이제까지 여호와 하나님께서 늘 자기와 동행하고 있었던 것을
몰랐던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이 사실을 비로소 깨닫고,
그때부터 20년 간 하란에서의 모든 삶을, 담대함과 확신 속에서 살았습니다.
당시 야곱의 마음 속에는 바로 이 마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본문11절,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니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라"
그렇습니다. 우리가 있는 곳이 안전지대입니다.
그런데 우리만 있어서는 안전지대가 아닙니다.
바로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그곳이 바로 안전지대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제 아무리 견고하고 완벽한 장소를 마련해 두었더라도
인간이 있는 곳은 항상 패닉 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그곳에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면,
바로 그곳은 가장 안전한 안전지대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바로 여러분이 발 딛고 서 있는 그곳 !
우리 본향성도들이 거하는 그곳이 안전지대인 줄 믿습니다.
바다를 건너가던 사도들의 배에 갑자기 풍랑이 불어닥쳤습니다.
사도들이 이리 저리 손을 써 봤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황망한 중에 예수님은 배에서 쿨쿨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결국 배가 좌초되기 직전이 되자, 제자들은 비로소 예수님을 깨웁니다.
그 짧은 시간에 제자들이 겪었던 공포와 두려움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예수님의 마음은 분명 상하셨을 것입니다.
물론, 여기에서 예수님이 속상하셨던 것은,
당신을 늦게 깨우거나, 자기를 최후수단으로 사용하신 것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자기와 함께 있는데도, 두려워하는 것이 서운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그곳은, 그곳이 어디든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든지,
가장 안전한 안전지대입니다.
초대교회 시절 크리소스 톰이라는 감독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분이 로마 황후 유독시아의 모함을 받고 귀양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때 유배지로 떠나면서 이 분이 남긴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여러분, 저는 지금 예수님의 이름으로 고난의 길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주님과 함께 가는 길인데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
죽음이 두려울까요 ? 아닙니다. 그리스도가 내 생명인 걸요.
이 땅 어디에서 쫓겨나는 것이 두렵겠습니까 ?
아닙니다. 땅과 그 가운데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요,
이 땅에서 쫓겨나면 하늘땅이 나를 기다리는데 뭐가 두렵겠습니까 ?
나의 소유를 빼앗기는 것이 두렵겠습니까 ?
아니요. 내가 가져본 것이 무엇이 있었을까요 ?
빼앗겨봐야 모두 하늘에 쌓일 뿐입니다.
저들이 나를 산으로 몰아내면, 나는 엘리야가 될 것입니다.
저들이 나를 구덩이에 던지면, 나는 예레미야가 될 것입니다.
저들이 나를 바다로 던지면, 나는 요나가 될 것입니다.
저들이 나를 돌로 치면, 나는 스데반이 될 것이고,
저들이 나를 매로 치면, 나는 사도 바울의 영광을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지금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안전한 곳을 찾아다니는 분주함보다,
늘 우리와 동행하시는 예수님을 믿는 믿음입니다. 할렐루야 !
우리의 마지막 안전지대는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입니다.
본문4-5절, "한 시내가 있어 나뉘어 흘러 하나님의 성
곧 지극히 높으신 자의 장막의 성소를 기쁘게 하도다
하나님이 그 성중에 거하시매 성이 요동치 아니할 것이라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집이 안전지대입니다.
더구나 우리 하나님은 새벽에 도와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해야 될 일은,
새벽에 도우시는 하나님을 끊임없이 찾고 구해야 합니다.
그런데, 새벽은 꼭 시간적인 의미만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새벽이란 동트기 직전입니다. 즉, 가장 깜깜할 때라는 것입니다.
고난과 두려움이 가장 깊어질 때, 그때가 바로 하나님이 도우시는 때입니다.
바로 그때, 우리는 새벽에 도우시는 하나님의 집을 향해야 합니다.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이 세상엔 참된 안전지대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참된 안전지대가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품이 안전지대입니다.
그 분을 끊임없이 찾고 대화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그곳은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가장 편하고 안락한 곳이 될 것입니다.
둘째, 우리들이 지금 서있는 그곳이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안전지대입니다.
다른 곳을 찾지 마시고, 있는 그 자리에 그냥 머무르시기 바랍니다.
바로 그곳에서 변함 없이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 하나님을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셋째, 하나님의 집이 안전지대입니다.
특히 새벽에 도우시는 하나님을 만나시기를 바랍니다.
이번 한 주간, 하나님이 주시는 놀라운 평강이 여러분과 함께 하실 것입니다.
큰 지진 중에서도, 지켜 주신 특별한 은혜에 감사를 드립니다.
심히 어려운 중에도, 이렇게 예배드릴 수 있는 것을 감사 드립니다.
죠디 포스터라는 미국의 여배우가 있습니다.
두 번이나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은 훌륭한 배우인데,
그녀가 출연한 영화 중에 '패닉 룸'이란 영화가 있습니다.
남편과 이혼한 맥은 딸 사라와 함께 뉴욕 맨하턴의 한 고급 주택으로 이사를 옵니다.
그런데 그 집엔
외부의 어떤 침입으로부터도 집 주인을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는 방이 있었습니다.
그 방은, 어떤 충격에도 견딜 수 있을 만큼 견고했고,
그 방안에서 집안의 어떤 상황이라도 알 수 있도록 기계장비로 시스템화되어있었으며,
또 경찰과도 바로 연결되는 전화도 구비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모녀가 이사 들어온 날 밤, 세 명의 괴한이 침입합니다.
물론 괴한들은 그 집에 새로운 주인이 이사 온 것을 몰랐습니다.
그 집의 前 주인은 어떤 부유한 노인이었는데,
그의 손자 되는 청년이 할아버지가 남긴 막대한 유산을 혼자 차지하려고
그 방을 설계했던 사람과 특수 절도범을 데리고 숨어들어 온 것이었습니다.
맥과 사라는 그들을 피해 안전지대인 그 방으로 들어가지만
괴한들이 찾는 유산이 바로 그 패닉 룸 안에 숨겨져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가장 안전하다는 방이 오히려 두려움과 공포의 방이 된 것입니다.
이때부터 모녀와 세 명의 괴한이 벌이는 공포와 스릴 넘치는 한 판 승부가 벌어집니다.
그렇습니다. 이 영화가 전하려고 하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가장 안전하다는 방이 공포의 방으로 변해 버렸다는 역설을 통해서
이 땅에 인간들이 꿈꾸는 안전지대란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난 금요일 오후3시경, 메이지 시대 이후로 가장 큰 지진을 경험했습니다.
이미 1,000여명의 죽음이 확인되었고, 행방불명된 사람들을 합하면,
이번 지진의 희생자는 수천 명에 달할지도 모릅니다.
사실 일본 정부는, 이제까지 東海지역에 강력한 지진(東海地震) 일어날 것을 예상하고,
그곳에 모든 준비를 집중했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지진은, 그나마 안전한 지역으로 여겨졌던 곳에서,
매우 크게 발생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더욱 큰 피해가 나고 말았습니다.
한때 세계에서 가장 안전하다고 하는 나라는 미국이었습니다.
그러나 9.11테러 이후, 미국은 가장 위험한 나라 중의 하나가 되고 말았습니다.
더구나 지금도 미국에서는 총기 사고가 끊이질 않습니다.
또한 뉴질랜드, 호주는 또한 어떻습니까 ? 지진, 산불 .......
성도여러분 ! 세상 어디에도 참으로 안전한 곳은 없습니다.
자 ! 그렇다면 우리는 늘 불안하고 위험에 빠진 채로
하루 하루를 전전긍긍하며 살아야 할까요 ?
정말 이 세상에는 참된 평안을 누릴 안전지대는 없을까요 ?
아니요. 분명히 있습니다. 참된 안전지대는 존재합니다.
오늘 본문인 시편46편은 많은 믿음의 선진들이 특별한 은혜를 체험한 말씀입니다.
칼빈이 성경을 처음으로 프랑스어로 번역할 때,
제일 먼저 번역한 말씀이 바로 이 시편46편이었고,
마르틴 루터 역시 이 46편을 통해 큰 영감을 받아,
유명한 찬송가 '내 주는 강한 성이요'(384장)를 만들었습니다.
칼빈도 루터도 종교개혁가로서, 당시 카톨릭의 칼을 피해
간신히 목숨을 이어가고 있었고, 그들에게는 안전지대가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발견한 참된 안전지대는,
오늘 본문 시편46편을 통해 발견한, '하나님의 품'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상 어느 곳에도 참으로 안전한 곳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품 안 만이 우리의 참된 안전지대입니다.
본문1-3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 빠지든지
바닷물이 흉용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요동할지라도
우리는 두려워 아니하리로다"
사실 이 말씀을 반복해 읽어보면,
당시 상황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땅이 뒤틀려 변하고, 산이 무너져 바다에 빠지고,
바닷물이 솟아나고 넘쳐 산을 흔듭니다. 이번 지진과 같습니다.
오늘 본문이 쓰여진 배경은 이렇습니다.
主前701년 앗수르의 군대가 예루살렘을 완전히 포위합니다.
인구 8만 밖에 안 되는 도시를 18만5천명의 대군이 둘러쌌습니다.
예루살렘 성의 운명은 큰 광풍 앞의 작은 등불과도 같았습니다.
성안의 백성들은, 이 위기를 벗어날 방법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날밤 엄청난 기적으로 이 위기를 극복합니다.
성안의 백성들은 아침이 되어서야 그 기적을 직접 목격합니다.
열왕기하19:35, "이 밤에 여호와의 사자가 나와서 앗수르 진영에서
군사 18만5천 명을 친지라 아침에 일어나 보니 다 송장이 되었더라"
하나님의 사자가 적들을 쳐서 몰살시켰다는 것입니다.
이 사건을 두고 역사가인 헤로도투스는
그 당시 페스트가 그들의 진영에 창궐하는 바람에 그런 일이 일어났다고 주장합니다.
바로 이 사건 후에 쓰여진 찬양시가 본문 시편46편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약2700년 전에 있었던 그 엄청난 위기가, 지금 우리들 앞에 놓여져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확신합니다. 하나님이 이 위기를 지나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 중 한 사람도, 이 재앙 앞에 넘어질 자 결코 없을 것입니다.
자 ! 또한 어떤 곳이, 우리의 참된 안전지대일까요 ?
야곱이 하란으로 가는 여정 가운데 일어난 일을 우리는 잘 압니다.
그는 정말 큰 두려움으로 집을 떠났습니다.
그런 야곱이 길에서 돌 베개를 베고 잘 때,
꿈에 하늘에 닿은 사닥다리가 보이고
거기를 하나님의 사자들이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이삭과 할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신 여호와께서 나타나셔서,
평생 자기와 함께 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래서 일어나서 그곳에다 장차 하나님의 전을 세울 것을 서원하고는 길을 떠납니다.
그런데 여러분, 바로 그때까지 야곱이 모르고 있었던 일이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야곱은 이제까지 여호와 하나님께서 늘 자기와 동행하고 있었던 것을
몰랐던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이 사실을 비로소 깨닫고,
그때부터 20년 간 하란에서의 모든 삶을, 담대함과 확신 속에서 살았습니다.
당시 야곱의 마음 속에는 바로 이 마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본문11절,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니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라"
그렇습니다. 우리가 있는 곳이 안전지대입니다.
그런데 우리만 있어서는 안전지대가 아닙니다.
바로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그곳이 바로 안전지대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제 아무리 견고하고 완벽한 장소를 마련해 두었더라도
인간이 있는 곳은 항상 패닉 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그곳에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면,
바로 그곳은 가장 안전한 안전지대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바로 여러분이 발 딛고 서 있는 그곳 !
우리 본향성도들이 거하는 그곳이 안전지대인 줄 믿습니다.
바다를 건너가던 사도들의 배에 갑자기 풍랑이 불어닥쳤습니다.
사도들이 이리 저리 손을 써 봤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황망한 중에 예수님은 배에서 쿨쿨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결국 배가 좌초되기 직전이 되자, 제자들은 비로소 예수님을 깨웁니다.
그 짧은 시간에 제자들이 겪었던 공포와 두려움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예수님의 마음은 분명 상하셨을 것입니다.
물론, 여기에서 예수님이 속상하셨던 것은,
당신을 늦게 깨우거나, 자기를 최후수단으로 사용하신 것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자기와 함께 있는데도, 두려워하는 것이 서운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그곳은, 그곳이 어디든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든지,
가장 안전한 안전지대입니다.
초대교회 시절 크리소스 톰이라는 감독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분이 로마 황후 유독시아의 모함을 받고 귀양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때 유배지로 떠나면서 이 분이 남긴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여러분, 저는 지금 예수님의 이름으로 고난의 길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주님과 함께 가는 길인데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
죽음이 두려울까요 ? 아닙니다. 그리스도가 내 생명인 걸요.
이 땅 어디에서 쫓겨나는 것이 두렵겠습니까 ?
아닙니다. 땅과 그 가운데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요,
이 땅에서 쫓겨나면 하늘땅이 나를 기다리는데 뭐가 두렵겠습니까 ?
나의 소유를 빼앗기는 것이 두렵겠습니까 ?
아니요. 내가 가져본 것이 무엇이 있었을까요 ?
빼앗겨봐야 모두 하늘에 쌓일 뿐입니다.
저들이 나를 산으로 몰아내면, 나는 엘리야가 될 것입니다.
저들이 나를 구덩이에 던지면, 나는 예레미야가 될 것입니다.
저들이 나를 바다로 던지면, 나는 요나가 될 것입니다.
저들이 나를 돌로 치면, 나는 스데반이 될 것이고,
저들이 나를 매로 치면, 나는 사도 바울의 영광을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지금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안전한 곳을 찾아다니는 분주함보다,
늘 우리와 동행하시는 예수님을 믿는 믿음입니다. 할렐루야 !
우리의 마지막 안전지대는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입니다.
본문4-5절, "한 시내가 있어 나뉘어 흘러 하나님의 성
곧 지극히 높으신 자의 장막의 성소를 기쁘게 하도다
하나님이 그 성중에 거하시매 성이 요동치 아니할 것이라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집이 안전지대입니다.
더구나 우리 하나님은 새벽에 도와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해야 될 일은,
새벽에 도우시는 하나님을 끊임없이 찾고 구해야 합니다.
그런데, 새벽은 꼭 시간적인 의미만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새벽이란 동트기 직전입니다. 즉, 가장 깜깜할 때라는 것입니다.
고난과 두려움이 가장 깊어질 때, 그때가 바로 하나님이 도우시는 때입니다.
바로 그때, 우리는 새벽에 도우시는 하나님의 집을 향해야 합니다.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이 세상엔 참된 안전지대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참된 안전지대가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품이 안전지대입니다.
그 분을 끊임없이 찾고 대화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그곳은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가장 편하고 안락한 곳이 될 것입니다.
둘째, 우리들이 지금 서있는 그곳이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안전지대입니다.
다른 곳을 찾지 마시고, 있는 그 자리에 그냥 머무르시기 바랍니다.
바로 그곳에서 변함 없이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 하나님을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셋째, 하나님의 집이 안전지대입니다.
특히 새벽에 도우시는 하나님을 만나시기를 바랍니다.
이번 한 주간, 하나님이 주시는 놀라운 평강이 여러분과 함께 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