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3월6일, 요한복음19:28-30(예수께서 느끼신 갈증은 어떤 갈증이었을까요 ?) > 主日説教原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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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2011년3월6일, 요한복음19:28-30(예수께서 느끼신 갈증은 어떤 갈증이었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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投稿者 박성철
コメント 0件 照会 11,190回 日時 11-03-09 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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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 ! 옆에 계신 복스러운 지체들을 이렇게 축복합시다.

  예수님처럼 삽시다. 공부해서 남 줍시다. 돈 벌어서 남 줍시다.
  섬기는 사람이 됩시다. 예수님처럼, 내가 손해를 봅시다.

  뉴질랜드에서 일어난 지진이 벌써 2주간을 맞이합니다.
  2백 명 이상이 죽거나 실종된 이번 지진은, 한국, 일본, 중국 등의
  많은 젊은 유학생들이 희생을 당해, 특히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몇 일 전, 뉴질랜드 정부는 이제까지의 구조활동을 마치고,
  이제는 시신을 수습하는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행한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동안 작은 희망을 끄지 않고 지펴왔던 실종자의 가족들에게는,
  그나마 가졌던 희망의 등불을 꺼야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사실 우리 인간들은 음식을 먹지 않고는 한 달 이상도 생명을 이어갈 수 있지만,
  물을 먹지 않고서는 불과 7일도 견디지 못한다고 합니다.
  아마도 뉴질랜드 정부가 구조활동을 중지하게 된 것은,
  이러한 이유도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몇 년 전, 神奈川縣의 大山라는 산을 오른 적이 있습니다.
  그리 험한 산은 아니었는데, 중턱 위로는 물을 구하기 힘든 마른 산이었습니다.
  그 산에 대한 사전 지식이 부족해, 물을 넉넉히 준비하지 못했고,
  결국 산을 오르는 내내 얼마나 목이 말랐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산 정상에 올랐더니, 정상에는 물이 있었습니다.
  정상에 있는 店(みせ)에서 판매하는 500ml의 물이었습니다.
  산 아래서는 100엔이면 살 수 있는 물이었지만, 자그마치 300엔을 받았습니다.
  그런데도 얼마나 갈증이 났던지 몇 병을 사 먹었습니다.
  여러분들도 이런 갈증을 경험했던 적이 분명 있으시지요.

  현대사회를 한 마디로 표현하는 말이 있는데, '아노미'(Anomie)입니다.
  이 말은 사회학에서는, 인간의 행위를 규제하는 공통 가치나 도덕 기준이 없는 혼돈,
  무질서를 의미하고,
  심리학에서는, 현대의 사회 구조 속에서 인간이 느끼는 고독감, 고립감,
  그리고 그에 따른 갈증을 말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런 갈증을 해결해 보려고 많은 노력을 합니다.

  신체적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서, 사람들은 건강의 샘을 팝니다.
  앎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서, 지식과 과학의 샘을 팝니다.
  더 오래 살기 위해서, 의학의 샘을 팝니다. 그리고 실제로 잘 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얻은 물을 마시면 마실수록 사람들은 더 큰 갈증을 느낍니다.
  더 살고 싶고, 더 알고 싶고, 더 벌고 싶습니다.
  지금 우리가 파서 얻은 것들이, 우리 인간들이 가진 기갈(飢渴)과 갈증을
  근본적으로 해결하여 주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인 1991년,
  한국 탐험대가 지구의 최북단인 북극점(北極點)에 태극기를 꽂았습니다.
  1827년 영국의 윌리엄 페리가 처음으로 북극 도전에 나섰다가 실패한 이래로,
  약200년 동안 수많은 팀이 도전했지만 성공한 예는 그때까지 17개 팀에 불과했습니다.
  그래서 한국팀은 북극 도전에 성공한 열여덟 번째 팀이었고,
  국가별로는 열 한번 째였습니다.
  그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위업이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한국 탐험대 대장이었던 최종열씨가,
  자신이 북극점을 정복하던 순간의 느낌을 어느 신문에서 이렇게 밝혔습니다.
 "1991년5월7일 새벽1시 정각, 지구촌 제1의 극지(極地)인 북극점(北極點)에 서는 순간,
  나에게는 커다란 허무함과 허탈감뿐이었다.
  내가 무엇 때문에, 무엇을 얻기 위해 그 숱한 어려움을 겪으며
  목숨까지 내던질 각오로 지구의 꼭지점을 향해 3년이란 긴 세월을 허비했던가 ?"

  사랑하는 여러분 !
  그가 북극점에 서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겠습니까 ?
  북극점 정복을 위해 기울인 그의 모든 땀과 노력 그리고 경험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참으로 값진 것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종열씨가 북극점을 정복하는 순간,
  커다란 허탈감에 빠졌었다는 것은, 우리들에게 여러 가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여러분 ! 인간의 갈증은 채워도 또 채워도 채워지지 않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돈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지식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살기가 편해지면 편해질수록,
  과학이 발달하면 발달할수록,
  권력과 힘을 행사하면 행사할수록,
  인간은 더 큰 갈증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
  왜 대다수 사람들의 마음에는 완전한 만족과 채움이 없을까요 ?

  이 질문에 대해 파스칼은 자신의 책 「팡세」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사람의 마음 속에는 하나님이 만드신 하나의 공백이 있다.
  이것은 어떠한 피조물로도 채워질 수 없는 것이다.
  오직 그 공백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에 의해서만이 채워질 수 있다"

  그렇습니다.
  많은 인간들이 영혼과 육신의 갈증을 느끼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생수의 원천(源泉)이신 하나님과의 연결이 끊어졌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들이 하나님과 연결되지 않은 이상, 아무리 깊은 웅덩이를 파도 소용이 없습니다.
  세상의 샘이 아무리 크고 아름다워 보여도,
  우리는 그곳에서 참된 시원함을 결단코 얻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현대인은 갈증을 느끼는 것입니다. 목마른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는 크게 목말라 하는 분이 또 한 분 계십니다.
  얼마나 목이 마르셨는지 그 분은 이렇게 외칩니다.
  본문28절, "내가 목마르다"
  이 분이 누구십니까 ? 그렇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예수께서는 지금 죽어가면서 자신의 목마름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왜 이토록 목말라 하실까요 ?

  물론 예수님은 지금, 죽음을 눈앞에 두고, 피 한 방울 물 한 방울까지 다 흘리셔서,
  몸에 수분이 너무나 부족한 상태셨습니다.
  그러니까 탈수증이 일어나면서 갈증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진정으로 목말라 하셨던 것이 이것뿐이었을까요 ?

  예수님께서 어느 날 우물가에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4:10,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줄 알았더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요한복음4:13-14, ".......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이렇듯,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말씀하시던 예수님께서
  지금 깊은 갈증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내가 목마르다"라고 말입니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요 ? 도대체 무슨 일일까요 ?

  그렇습니다. 예수님께는 육신의 목마름뿐이 아닌,
  더욱 더 큰 목마름, 더욱 더 큰 갈증이 있었습니다.
  이 의문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마가복음5장과 누가복음8장에 똑같이 기록된, 한 사건을 소개하겠습니다.

  이스라엘의 거라사 땅에 귀신들린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에게 얼마나 많은 귀신이 들어갔던지,
  그 사람 속에 있는 귀신의 이름이 군대였습니다. 즉 떼 귀신이 든 겁니다.
  더구나 얼마나 강한 귀신들이 들어갔는지 아무도 그 주변에 접근을 못합니다.
  그 사람을 쇠사슬로 묶어도 당해낼 수가 없었습니다.
  마가복음5:3-4, "그 사람은 무덤 사이에 거처하는데
  이제는 아무나 쇠사슬로도 맬 수 없게 되었으니,
  이는 여러 번 고랑과 쇠사슬에 매였어도 쇠사슬을 끊고 고랑을 깨뜨렸음이러라 ......."

  그런 그였지만 동네 사람들이 너무나 싫어하니까,
  그는 동네 밖 무덤 가에서 홀로 지냈습니다.
  바로 그를 예수님이 찾아가셨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건, 예수님이 그 미친 인간을 고치신 방법입니다.
  예수님이 어떻게 하셨습니까 ?
  그렇습니다. 그 군대 귀신을 돼지 떼에게로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마가복음5장의 기록을 보면,
  약 이천 마리나 되는 돼지 떼가 이 미친 사람 하나 때문에 바다에 빠져 몰사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혹 이런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
 "아니 ! 그 돼지 떼 주인은 어떻게 하라고 ......."
  예수님 당시에도 돼지 2천 마리라면, 엄청난 재산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한 사람 속에 있는 귀신을 쫓아내자고,
  그렇게 애매한 사람의 재산을 함부로 하실까'는 생각이 들고 맙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이야기가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 실려있는데,
  돼지의 주인이 돼지 값을 배상하라고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다만 자기들 동네에서 떠나달라고만 이야기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
  이 기사를 읽은 우리들은, 주인도 요구하지 않은 돼지 값 변상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생각이 얼마나 많이 이기적이고 뒤틀려진지 모릅니다.
  현대에 들어와서 대다수 사람들의 가치관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경제적인 성공만을 진정한 성공이라고 생각합니다.
  연수(年收)가 얼마냐에 따라서 인간의 등급이 매겨지고, 성공의 척도가 결정됩니다.
  우리는 지금 그런 사회에서 살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은 창조된 때의 본질적인 가치를 거의 잃어버렸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의 이런 생각들을, 바로 잡아 주십니다.
  우리 예수님은 돼지 2천 마리를 희생시켜가며,
  귀신들려 미친 인간 하나를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우리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미친 인간 하나를 살리기 위해 그렇게 큰 희생을 치를 필요가 있을까 ?"
  그러나 이 사건을 통해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될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죄 때문에 저주받아야 할 존재들이라는 사실입니다.
  바로 그러한 우리들을 살리시려고, 예수께서 십자가로 나아가셨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완전히 버려서 희생하셨습니다.
  비록 남들이 보기에는 보잘것없는 미친 인간이라 하더라도,
  우리 주님이 보시기에는 이천 마리 아니라 이만 마리의 돼지를 희생시키고라도
  살려야 하는 고귀한 자녀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는 어떻습니까 ?
  천하보다도 귀한 목숨이라고 하지만 천하는커녕 돈 몇 푼과 바꾸는 그런 세상입니다.
  사람 죽이는 것을 예사로 여기는 무섭고 슬픈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가치관에 병이 들고 만 것입니다.
  무엇이 귀한 것이고, 무엇이 참된 것인지를 모릅니다.
  오직 인간의 관심은 돼지에 있습니다.
  셈에 밝고, 이익에 민감하며, 내가 직장에 얼마나 충실했느냐 보다는,
  월급 명세서에 더욱 관심을 가진 것이 우리들입니다.
  미친 사람 하나를 위해 우리 주님은 돼지 이천 마리를 희생시켰지만,
  돼지 몇 마리를 위해서도 사람을 희생시키는 것이 오늘의 세상입니다.

  현대인에게 귀한 것은 인간이 아니라 돼지이고, 돈이고, 쾌락입니다.
  현대인간에게 왜 사느냐 물어 본다면, 가장 솔직한 대답은
 "돼지 치는 재미에 산다" "돈 버는 재미에 산다"일지도 모릅니다.

  바로 이런 세상에서 우리가 살기에, 우리는 목마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예수님께서도 목마르다고 호소하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목마름은 어떤 목마름일까요 ?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목마름은 우리의 목마름과는 다른 것입니다.
  우리는 나의 목마름 때문에 몸부림치고 있지만, 그 분은 자기 자신이 아닌,
  자신이 사랑하는 우리들의 갈증 때문에 목말라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갈증은 뭔가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아니라,
  우리들의 목마름을 너무나 채워 주시고 싶어하시는 그 목마름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이 자리에 함께 하신 여러분 !
  우리 예수님은, 우리 인간들의 모든 갈증을 근본적으로 해결해 줄,
  생명수 샘물을 주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래서 그 분은 자기 피로 이 일을 감당하셨습니다.
  자기 자신을 처참히 십자가에 매달았습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의 피 한 방울, 물 한 방울을 하나도 남기시지 않고
  모두 쥐어짜셨습니다. 그리고 끝내는 죽으셨습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들의 갈증을 해결해 주시기 위한 놀라운 사랑이었습니다.
  참 생명의 물줄기를 터뜨리기 위해, 자기를 쥐어짜신 것입니다.

  그 분의 머리와 얼굴과 옆구리와 온 몸에서 피가 흘려 내렸습니다.
  그는 속이 탔습니다. 목이 말랐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 몸을 찢으시고, 깨뜨리셔서,
  스스로 목마름을 자처하시고,
  그를 통해 영원한 생명의 물줄기를 우리를 향해 열어 놓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러한 목마름, 이러한 희생이 있었기에,
  그 십자가 사건 이후로,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를 찾아 나오는 모든 사람에게,
  다시는 목마르지 않는 영원한 생명을 주실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곳에 함께 한 여러분 ! 이 예수님을 향해 나아갑시다.
  예수께로 나아가, 우리의 모든 갈증을 완전히 없애 버립시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우리 모두는 오늘 샘을 파야 합니다.
  이제까지 파왔던 엉뚱한 샘은 잠깐 멈추고, 생명수가 나오는 샘을 파야 합니다.
  여태까지 돼지를 치는 재미에 살았다면,
  이제부터는 생명수가 나올 샘을 파는 재미에 살아야 합니다.
  세상의 샘은 파면 팔수록 더 갈증이 나지만,
  예수님의 샘은 파면 팔수록 더 맑고 시원하고 영원한 물이 터져 나옵니다.

  이사야는 예수님이 세상에 오시기 약700년 전, 이렇게 예수님에 대해 예언했습니다.
  이사야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예수님은 이 예언대로 죽으셨습니다.
  우리를 세상의 모든 갈증으로부터 건지시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 예수님께서 지금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7:37-38,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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