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2024년4월7일, 창세기 3:1-6 (조금 부족한 것이 도리어 은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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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일 말씀을 생각하며, 함께 한 지체들과 이렇게 고백합시다.
성도님 ! 우리는 먼 훗날, 우리가 죽은 후에도 부활할 것이지만,
현재(지금) 우리의 생활 속에서도, 부활을 체험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믿음의 선배 바울처럼, [날마다 죽는 우리]가 됩시다.
특히, 우리 속에 남아 있는
[육신의 정욕(肉の欲)],
[안목의 정욕(目の欲)],
[이생의 자랑(暮らし向きの自慢)]을 죽입시다.
노환(老患)에 걸려,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는 한 노인이 있었습니다.
병세를 보면, 금방이라도 세상을 떠날 것 같은데, 생명의 빛은 꺼지지 않았고,
하루 그리고 또 하루, 연약한 빛을 계속 발하고 있었습니다.
그 노인에게도 가끔 찾아오는 문병객들이 있었습니다.
물론 노인은 그들을 잘 알아보지 못했고, 말도 전혀 못 했습니다.
그런데, 병상에 누워있는 그 노인이, 자기를 찾아오는 모든 문병객에게,
한 가지 똑같은 행동을 보이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 노인이 누워있는 맞은편 벽에,
오래된 그림 한 점이 약간 비뚤게 걸려 있었는데,
노인은 문병객들이 올 때마다, 손으로 그 그림을 가리키면서,
'비뚤어진 그림을 똑바로 걸어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문병을 온 누구도, 노인의 그 마음을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그저 문병 온 자신들을 향해, 고맙다고 손을 들어주는지 알았지요 !!!
그런데 어느 날, 그 노인에게 큰 도움을 받았던 한 사람이 문병을 왔습니다.
노인은 그 날도 변함없이 그 그림을 가리켰습니다.
그런데 그 신사는 매우 사려 깊은 사람이었고,
마침내 노인의 의도를 알아차렸습니다.
물론 그 그림은 곧바로 바르게 걸려지게 되었지요 !
그런데, 이상한 일은 그 신사가 돌아간 그 날 밤에 일어났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날 밤, 그 노인은 조용히 세상을 떠났습니다.
여러분 ! 이 짧은 이야기 속에서, 무엇을 느끼십니까 ?
그렇습니다.
우리의 삶은 가득 채워짐으로부터 오는 힘도 있지만,
때에 따라서는 부족함에서 오는 힘도 있음을, 이 이야기는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모든 것이 채워졌을 때, 삶이 기쁘고 행복할 수 있지만,
반대로 한두 가지 부족할 때, 더욱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의 제목이 [조금 부족한 것이 도리어 은혜입니다.]
오늘 우리가 나누고자 하는 말씀도, 바로 이 부분에 관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들이 잘 아는 창세기 3장의 말씀입니다.
인류 최초의 여인인 하와를, 사탄이 찾아와 유혹합니다.
두 가지 유혹이었습니다.
첫 번째 유혹은, 탐심(貪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을 찾아온 첫 유혹은, 전부 다 가지고, 전부 다 채워야,
비로소 행복이 찾아올 것이라는 유혹이었습니다.
인간을 지으신 하나님께서, 첫 사람들에게
에덴동산의 모든 과일과 식물 등을 마음껏 먹게 하셨습니다.
전혀 모자람이 없이 풍부했습니다.
그런데 딱 한 가지만큼은, 먹지 말라고 명하셨습니다.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였지요.
성도여러분 !
만약, 먹을 것이 부족한 상태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면,
그것은 조금 서운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에덴동산에는 그 나무의 열매 말고도, 너무나 먹을 것이 많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하나님께서는 지으신 우리들이,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에게 채울 수 없는 한 부분을 남겨 두셨고,
우리 인간이 그것을 받아들이길 원하십니다.
그런데 여러분 ! 사탄은 우리 인간을 이렇게 유혹합니다.
“인간들아 ! 뭐 하러 그것을 남겨 두니 ?
너희는 참으로 위대하니까, 모든 것을 가져도 돼 !
괜찮아 ! 전부 다 가져 버려 !!!”
“더구나, 네가 그것을 가지는 순간, 너는 하나님과 같이 될거야 !!!”
그렇습니다. 여러분 ! 바로 이것이 첫 번째 유혹의 핵심입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유혹이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그 유혹은 다른 말로 표현하면, 모든 것을 다 채우고,
모든 것을 다 누리고, 모든 것을 다 잘할 수 있다는 유혹입니다.
즉, 인간은 못 해서 그렇지, 할 수만 있다면
전지전능의 능력자가 되고 싶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가, 우리가 원하는 모든 것을 다 가질 수 있습니까 ?
우리가 원하는 것을 다 할 수 있는 힘이, 우리에게 있습니까 ?
없지요 ! 확실히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시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
예 ! 인간은 전부 가지는 순간, 즉시 교만해지니까요 !!!
그리고 그 끝은, 타락과 파멸이니까요 !!!
믿음의 선배들 중에서, 원하는 모든 것을 다 가진 분이 있습니까 ?!
네 ! 아무도 없습니다.
예를 들면,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 건강을 구했습니다.
그것도 세 번이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
예 !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고린도후서12:9.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그렇습니다. 여러분 !
우리 가진 것이 부족하고, 우리가 약할 때, 오히려 주님의 능력은 온전해 집니다.
반대로, 우리가 가진 것이 많고, 부족한 것이 없으면, 교만하여 타락하고 맙니다.
예수님이 비유로 말씀하신 누가복음 15장의 예도 보십시오.
아버지로부터 자신이 받을 재산을 전부 받아 챙긴 둘째 아들은,
그 후 어떻게 되었습니까 ?!
예 ! 허랑방탕하며 타락하고 말았습니다.
누가복음15:13-14.
13. 그 후 며칠이 안 되어, 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낭비하더니
(それから何日もしないうちに、弟息子は、すべてのものをまとめて遠い国に
旅立った。そして、そこで放蕩して、財産を湯水のように使ってしまった。)
14. 다 없앤 후, 그가 비로소 궁핍한지라
(何もかも使い果たした後、彼は食べることにも困り始めた。)
그런데도 여러분 ! 우리 인간들은, 모든 것을 다 가지려 합니다.
또한, 모든 것을 다 하려 합니다. ALL A를 받으려 하지요.
여러분 ! 이것이 바로,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유혹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
우리 인간이란 존재는요, 다 가지고 다 이루면,
마냥 행복한 것이 아니라, 도리어 삶의 의욕을 잃어버리는 존재입니다.
마치 앞서 소개한 노인처럼
‘저 그림이 바로 걸려야 되는데, 바로 걸려야 되는데.......’하며,
그 소원이 너무 간절하다 보니까 그것이 남은 삶의 유일한 목표가 되었고,
그리고 그 삶의 목표가 어느 순간 이루어지니까,
갑자기 살 의미를 잃어버리게 된 것과 마찬가지로요 !
그렇습니다. 여러분 !
그래서 하나님은 다 주시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혹, 열 가지 중 다섯 여섯 가지를 잘하고, 나머지는 잘 못 하십니까 ?
그러면 그건, ‘아 ! 하나님이 겸손하라고 그러시는구나 !’하며,
받아들이시기를 바랍니다.
모두 다 채우려 하면, 유혹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 다 가지려고 하지 않게 하소서 !
다 차지하려 하지 않게 하소서 !
주신 것에 감사하게 하시되, 그렇다고 게으르지는 않게 하소서 !”
일본 오기 전까지 살았던 서울 자양동에, 아는 목사님이 있습니다.
그분은 그 동네에서만, 40년 이상 목회를 하셨고, 교회도 크게 성장하여
그 지역에서 손꼽을 만한 교회가 되었고, 목사님도 큰 교단의
교단장 일을 감당하는 등, 누가 보기에도 훌륭한 목사님입니다.
그 교회의 성도들도 모두 그 목사님을 존경하고, 또 하나가 되어,
지금도 그 교회는 아름답게 교회로서의 사명을 잘 감당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냥 그분을 보면, 모든 것을 다 가진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 그 목사님에게도 채워지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그 목사님의 아버지가, 그 동네에서 매우 유명한 술주정뱅이였습니다.
술 먹고 싸우고 시끄러우면 그 목사님 아버지였지요.
또한, 그 목사님의 아들은, 예배시간에 교회 앞에 당구장에서 당구를 즐겼지요.
여러분 ! 그 목사님이 얼마나 힘드셨을까요 !?
사랑하는 여러분 !
교회도, 우리 한 사람 한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교회(혹 목사)가 열에 열 가지 일을 다 잘 할 수 있으며,
어떤 성도가 무슨 일이든 다 잘 할 수 있겠습니까 ?
내가 부족한 것은 다른 지체의 도움을 받고,
다른 지체의 부족한 것은 내가 채워주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
소설 ‘상도’의 주인공인 임상옥이, 어디를 가든지 늘 몸에 지니고 다니던
물건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계영배(戒盈杯)였습니다.
‘계’는 조심한다는 뜻이고, ‘영’은 가득 차다는 뜻이며, ‘배’는 잔이지요.
그렇습니다. [계영배]는, [가득 차는 것을 경계하는 잔]이었습니다.
여러분 ! 임상옥이 그 잔을 항상 보면서 무엇을 생각했겠습니까 ?
그렇습니다.
‘나는 가득 채우지 않겠다. 혹 가득 채울 기회가 오더라도,
나는 다 채우는 것을 조심하고 또 조심하겠다.’였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그는 모든 것을 가진 자의 최후를 알았습니다.
또한, 모든 것을 가지려 하는 자의 어리석음도 알았던 것입니다.
여러분 ! 좀 모자라고 좀 부족하게 살면서,
자기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는 가운데,
하나님을 의지하며 사는 것이, 하나님 자녀다운 모습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
오늘날 세상의 모습은, 점점 승자가 모든 것을 독식하는(차지하는)
사탄의 방식이 점점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한국의 어떤 재벌은, 소상공인이 하는 사업까지 손을 댑니다.
사람이든 기업이든 해야 할 것이 있고, 해서는 안 될 것이 있습니다.
그중에 싹쓸이는, 정말 천박한 행동이고, 용서받지 못할 일입니다.
아무리 승자라도, 패자를 위해 남겨 주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도 레위기를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추수할 때 주인은, 밭 구석구석까지 다 거두지는 말라고요.
레위기23:22. 너희 땅의 곡물을 벨 때에 밭 모퉁이까지 다 베지 말며,
떨어진 것을 줍지 말고, 그것을 가난한 자와 거류민을 위하여 남겨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あなたがたの土地の収穫を刈り入れるときは、刈るときに畑の隅まで
刈り尽くしてはならない。あなたの収穫の落ち穂も集めてはならない。
貧しい人と寄留者のために、それらを残しておかなければならない。
わたしはあなたがたの神、主である。)
그렇습니다.
모퉁이의 이삭과 떨어진 이삭, 그리고 떨어진 열매는,
가난한 사람들과 타향 사람들의 몫이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 냉장고도 70~80%정도 채워야 냉장효과가 가장 좋고,
위(胃)도 3/4쯤 채웠을 때 가장 좋으며,
우리 생활도 뭔가 부족해야 힘이 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그리고 우리 인간은 선악과를 안 먹어도 충분히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탐심 때문에, 선악과마저 따먹고 말았고,
그 결과 인간은 타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고 말았지요 !!!
사랑하는 여러분 !
이 시간, 다 채우고, 다 가지려는 마음들을 내려놓읍시다.
전부 다 가지려는 탐심을 버립시다.
에덴동산에서 첫 사람 아담과 하와를 유혹한 사단은, 지금도 우리를 유혹합니다.
“다 가져라 ! 모두 다 차지해라 ! 너에게는 그럴 힘이 있어, 그럴 권리도 있어 !”
이 유혹을 이겨내고,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이렇게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 다 가지려고 하지 말게 하소서 !
다 차지하려 하지 않게 하소서 !
주신 것에 감사하게 하시되, 그렇다고 게으르지는 않게 하소서 !”
두 번째 유혹은, 과시욕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탄이 우리 인간을 유혹한 두 번째는,
우리들이 ‘주위 사람들의 눈’을 지나치게 의식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른바 과시욕(自己顕示欲)이지요.
<참고> 과시욕(自己顕示欲) -> 자랑하거나 뽐내어 보이고 싶은 욕심.
(周囲から注目を集めたい、自分をアピールしたいという欲求)
그렇습니다.
지난 주일에 말씀드린 [이생의 자랑(暮らし向きの自慢)]도 여기에 속합니다.
예 ! 하와는, 본질이 아닌, ‘보암직도 하고’ 즉, ‘보이는 것’에 가치를 두었습니다.
사실 지금 온 세상은, 보이는 것에 승부를 거는 풍토에 깊이 빠져 있습니다.
그저 겉보기 괜찮으면 모든 것이 용서되고,
거기서 모든 행복이 다 나오는 줄 압니다.
크고 화려하면 좋은 것이고, 보기에 좋으면 그것이 선(善)이고,
예쁘면 그것이 진짜 아름다움인 줄 압니다.
그래서 세상은 보이는 것에 올인(집중)하고,
치장하는 데 온갖 열정을 쏟아붓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
우리의 내면을 냉정히 바라보면,
우리들 역시 과시하려는 욕망이 가득함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출세하고, 성공하고, 이름을 알리려는 것 등은
사람들에게 자신을 드러내 보고 싶은 마음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사역을 시작하시면서, 이 부분의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사탄 마귀가 예수님에게,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 보라고 유혹했지요 !!!
여러분 !
그것은, 기적으로 큰 화제를 일으키라는 말이었고,
기적으로 사람을 끌어모으라는 유혹이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이렇게 유혹을 이기셨습니다.
마태복음4:7.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あなたの神である主を試みてはならない。)
어느 동네 분들은, 봉사를 하며, 섬김을 하면서도, 사람들의 눈을 의식합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묻습니다.
누가 보면 하는 척하고, 아무도 안 보면 안 할 겁니까 ?
혹시 봉사와 섬김을 하면서도, 누군가의 칭찬이나 인정을 받고 싶어 합니까 ?
기억하십시오 ! 칭찬과 격려 없이도 하는 것이 진짜입니다.
그래야 만이 하늘의 상급이 있습니다.
주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6:1, 4.
1.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
(人に見せるために人前で善行をしないように気をつけなさい。
そうでないと、天におられるあなたがたの父から報いを受けられません。)
4.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あなたの施しが、隠れたところにあるようにするためです。そうすれば、
隠れたところで見ておられるあなたの父が、あなたに報いてくださいます。)
사랑하는 여러분 !
사탄은 예수님에게, 보이는 것으로,
또한 기적으로 세상을 구원하라고 유혹했지만,
예수님의 방법은 십자가였습니다.
섬기고, 정말 별 소득도 없어 보이는,
봉사와 순종과 수고로 일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고통의 십자가에서 피 한 방울 물 한 방까지 다 쏟으시고,
우리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버리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은혜로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서 예배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
우리 역시 예수님처럼 그런 삶을 살아야 합니다.
열심히 애쓰면서 수고하고 준비하고,
더 많이 손해 보고 희생하는 가운데, 주님의 일을 해야 합니다.
누가 인정해 주지 않아도, 누가 칭찬하지 않아도,
조금씩 조금씩 해 나가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주님의 일은 욕망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로 하는 것입니다.
또한, 주님의 일은,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묵묵히 행하는 것입니다.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첫 사람과 아담과 하와를 찾아가, 그들을 넘어뜨렸던 사탄은,
지금 우리를 찾아와 유혹합니다.
“네 인생의 목표를, ‘모든 것을 다 가지는 것’으로 삼으라 !”
“너는 모든 것을 가질 자격이 있어 !
너는 모든 것을 가져도 돼, 너는 할 수 있어 !”라고 말입니다.
그때 우리는 이렇게 외칩시다.
“내가 약할 때, 주님은 내 속에서 나를 강하게 하시며,
내가 부족할 때, 주님은 내 속에서 나를 지혜롭게 하신다 !”
“사탄아 ! 물러가라 ! 조금 부족한 것이 도리어 은혜이니라”
또한, 사탄은 이렇게 우리를 유혹합니다.
“보이는 것이 전부다. 네 눈앞에 보이는 것을 위해 살아라 !”
그때 우리는 이렇게 외칩시다.
고린도후서4:18.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私たちは見えるものにではなく、見えないものに目を留めます。
見えるものは一時的であり、見えないものは永遠に続くからです。)
사탄의 모든 유혹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물리치고,
하나님의 은혜를 자랑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할렐루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