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主日説教原稿

2024 2024년3월24일, 마태복음 20:20-23 (너희가 분명히 내 잔을 마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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投稿者 박성철
コメント 0件 照会 3,779回 日時 24-03-29 17:44

本文

  지난 주일 말씀을 생각하며, 함께 한 지체들과 이렇게 고백합시다.


  성도님 !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 세상에 있는 모든 가정,

  세상에 있는 모든 교회, 모두 다 아픔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아픔들을, 같이 아파하고, 같이 애통할 때, 주님이 치유해 주십니다.

  그 아픔들을 안고, 하나님께 함께 기도할 때, 주께서 치유해 주십니다.


  한국(6․25)전쟁을 배경으로 한, 인간의 고난과 구원을 다룬

  영문소설 [순교자 The Martyred]를 발표하여,

  한국계 작가로는 처음으로 노벨문학상 후보에 올랐던 분이 있습니다.

  독립운동가 김찬도 선생의 아들 김은국(金恩国, 1932~2009)입니다.

  그는 1947년 목포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50년 서울대학교에 입학했으나,

  6․25전쟁이 발발하여 군에 입대했고 4년간 복무하였습니다.

  1954년 제대한 뒤 이듬해 2월, 군 복무 중 알게 된

  아서 트르소 장군의 도움으로 미국으로 건너갔습니다.

  김은국 작가는 미국에 가서도 공부를 계속하여,

  1960년 존스홉킨스대학교에서 문학 석사학위,

  1962년 아이오와대학교에서 창작 석사학위,

  그리고 1963년 하버드대학교에서 문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한국 최초로 노벨상 후보에 오른 [순교자]는 6․25전쟁이 배경입니다.

  소설 [순교자]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국제연합(UN) 軍이 인천 상륙작전에 성공하고,

  그 여세로 평양까지 탈환할 즈음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북한 치하(治下)에 있던 목사 14명 중 12명이

  북한군에 의해서 처형당하고, 둘만 살아남습니다.


  두 목사만 어떻게 살아남았는가를, 정보국 사람들이 조사합니다.

  그런데 그에 대한 조사가 진행되면서, 그 사건에는

  여러 가지 의문(疑問)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정신병자가 된 한 목사는 제외하더라도,

  주인공인 신 목사는 처형 현장에 있었다는 사실을 부인하다가,

  나중에야 그 자리에 있었다는 것을 시인합니다.

  당연히 수사관들은 의혹을 품었고, 조사 결과

  결국, 신 목사는 신앙을 버린 배교자(背教者)로 낙인찍히게 됩니다.

  물론 신 목사 자신도, 그 열두 명의 목사들이 장렬히 순교했음을 증언했고,

  자신은 구차하게 사는 길을 선택했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결론에 대 반전(反転)이 일어나는데, 사실은 사건의 내막

  전체가, 정반대였다는 것이 북한군 포로에 의해서 밝혀집니다.

  이 사건의 진상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처형당한 열두 명의 목사들은, 살아남기 위해 하나님을 부인하고,

  또한, 서로를 비난하는 추태를 보이다가 결국에는 처형되었고,

  신 목사와 또 다른 목사는 끝까지 신앙의 절개를 지켰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살아남은 신 목사는,

  남겨진 교회와 신도들이 상처받을 것을 염려했고,

  그래서 결국 자기가 배교자(背教者)가 되기로 하고, 오히려

  하나님을 부인한 12명의 목사를 순교자로 만들었다는 내용입니다.


  이 [순교자]는 1964년 발표된 이후,

  미국에서 20주 동안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한국어․독일어 등 20여 개의 언어로 번역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와 비슷한 성격의 작품이 일본에도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몇 번 소개한, 遠藤周作(1923~1996)의 [沈黙(침묵)]입니다.

  이 작품의 배경은 17세기입니다.

  어느 날 로마 교황청에 한 가지 보고가 들어옵니다.

  포르투갈 예수회가 일본으로 파견한 페레이라 신부가,

  하나님을 부인하고 배교(背教)했다는 보고였습니다.

  이에 교황청은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페레이라 신부의 제자 로드리고 신부 등을 일본에 보냅니다.


  그렇게 해서 로드리고 신부 등이 일본에 오게 되고, 얼마 후

  정말로 배교자(背教者)가 되고만, 스승 페레이라 신부를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그때부터 로드리고 신부는,

  스승 페레이라 신부가 당했던 모든 박해를 자기 또한 당하게 됩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로드리고 신부도 구리판으로 만든

  예수님의 얼굴을 밟고 지나가면서 배교자가 되고 맙니다.

  그리고 마침내 두 신부는 일본의 박해자들이 지명해준 여인과 결혼하여,

  일본 땅에서 일본인으로 살아간다는 내용입니다.


  김은국 씨와 遠藤周作(えんどう しゅうさく) 씨의 작품은 둘 다 실화가

  바탕이 되었다는 것과 함께, 중요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기독교인들이 가진 일반적인 생각에 의문을 제기했다는 것입니다.

  즉 우리들 생각은, 크리스천은 어떤 상황에서도 믿음을 지켜야 하고,

  그럴 수 없을 때는 장렬하게 순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두 소설의 결론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 두 소설에 대해, 많은 논란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도, 이 두 소설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많습니다.


  첫째, 세상에서 신앙을 지키는 것이, 절대 만만치 않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탄은 우리를 무너뜨리는 방법을 너무나 잘 압니다.

  사탄은 정말 야비합니다. 우리의 가장 약한 부분을 공격합니다.


  둘째, 배교자를 향해, 무조건 손가락질만을 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셋째, 어떤 신앙인이 한 번 넘어졌다 해서, 그가 완전히 버림받아

  영원한 지옥 불에 던져졌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信者가 주일을 몇 번이나 못 지켰다,

  혹은 세상 사람들이 하는 나쁜 방법으로 돈을 벌었다,

  혹은 직장 생활을 하면서 동료들과 어울려

  신앙인으로서 부끄러운 일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信者들을 향해, 타락했다 혹은

  배교(背教)했다고 단정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리 단순한 문제가 아닙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이런 미묘하고도 간단치 않은 상황에서,

  과연 우리 본향의 지체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

  어떻게 하면 이런 어려운 상황을 돌파해 나갈 수 있을까요 ?

  이것이 오늘 우리가 나누려고 하는 말씀입니다.

  말씀을 통해 분명한 응답 받으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는 한 여인이 등장합니다.

  세베대의 아내 살로메입니다. 그녀는 예수님의 이모입니다.

  살로메가 예수님을 찾아와, 자기 아들들을 위해 主님께 부탁을 합니다.

  예수님이 이스라엘을 로마의 압제에서 해방시키는 날, 자기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을 예수님의 좌우 자리에 앉게 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장관 자리를 하나씩 달라는 인사청탁(人事請託)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

  사실 살로메는, 자기가 하는 청탁의 의미를 잘 모르고 청탁한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잘 알듯이

  예수님이 세우시려 한 나라는 이 세상의 나라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잠시 후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살로메의 청탁은, "제 두 아들을 예수님과 함께 죽게 해 주세요."

  라는, 자기 뜻과는 전혀 다른 청탁을 하고 만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의 본문을 보면, 살로메의 이런 청탁을 받고,

  예수님은 야고보와 요한 형제에게 되물으셨습니다.

  본문22절.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あなたがたは自分が何を求めているのか分かっていません。

  わたしが飲もうとしている杯を飲むことができますか。)

  그때 야고보와 요한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본문22절. 할 수 있나이다 (できます。)


  이에 예수님은 야고보와 요한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본문23절. 너희가 과연 내 잔을 마시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내가 주는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あなたがたはわたしの杯を飲むことになります。しかし、

  わたしの右と左に座ることは、わたしが許すことではありません。

  わたしの父によって備えられた人たちに与えられるのです。)


  그렇습니다. 여러분 !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골고다 예수님의 십자가 좌우편은 두 강도에게 주어졌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

  본문23절의 말씀에 더욱 중요한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 부분입니다.

  본문23절, 너희가 과연 내 잔을 마시려니와

 (あなたがたはわたしの杯を飲むことになります。)


  KJV(킹제임스버전) 등의 권위 있는 영어 성경에는, 이 말씀에

  [indeed (실제로, 참으로, 확실히, 분명히)]라는 단어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야고보와 요한은 자신들이 생각했던 것과는 달랐지만,

  머지않은 훗날 분명 예수님의 잔을 마셨습니다.

  성경은 그들이 마신 잔에 대해, 분명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먼저 야고보가 마신 잔은, 사도 중에 첫 순교자가 되는 잔이었습니다.


  사도행전12:1-2.

  1. 그 때에 헤롯 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에서 몇 사람을 해하려 하여

    (そのころ、ヘロデ王は、教会の中のある人たちを苦しめようとしてその手を伸ばし、)

  2.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 (ヨハネの兄弟ヤコブを剣で殺した。)


  그렇습니다. 야고보는 헤롯에 의해 순교를 당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

  이 야고보의 순교가 중요한 이유는, 야고보의 순교와 스데반의 순교를 통해,

  예루살렘 안에만 머물러 있었던 십자가 복음의 소식과 능력이,

  온 이스라엘과 먼 나라에까지 퍼져 나가는 시발점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야고보는 그렇게 초대교회의 성도들에게,

  자신의 몸과 생명으로 복음의 능력을 보여 주었습니다.

  야고보 그는, 장렬한 죽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가 만방에 퍼져 나가는 시발점의 잔(杯)을 마신 것입니다.

  예 ! 그의 생애는 짧았지만, 뜨겁고 열정적이었습니다.

  그야말로 굵고 짧은 생으로서, 하나님 나라의 확장에 귀히 쓰임 받은 것입니다.

  어찌 보면 좀 더 살아서, 좀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었을 텐데,

  그는 자기에게 주어진 잔을 마시고, 복음을 위해 장렬히 순교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

  동생 요한이 마신 잔(杯)은, 이러한 형 야고보와는 전혀 달랐습니다.

  그는 90세가 넘도록 장수했습니다.

  말년에는 밧모섬에 유배됐고, 거기서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신약성경 요한계시록을 기록했습니다.


  요즘은 건강하게 장수(長寿)하는 것이 축복이지만,

  사실 당시 요한의 입장에서 보면,

  오래 사는 것이 결코 마음 편하지만은 않았을 것입니다.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요한은 제자 중에 가장 어렸는데, 형님들은 다 순교했습니다.

  야고보, 베드로, 바울은 물론,

  그토록 의심 많던 도마까지도 인도에 가서 순교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자기만 홀로 100년을 가까이 살았다는 것은,

  당시로 볼 때 결코 자랑할 만한 일은 못 되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혼자만 오래오래 산 것이, 요한에게는 커다란 짐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에게 주어진 잔(杯)을, 충실히 마시는 삶을 살았습니다.


  사실 요한도 마음만 먹었다면, 그 역시 순교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야곱이 순교할 때, “나도 죽이시오 !”했더라면, 어쩌면 그렇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쪽이 아닌, 평생 교회를 지키면서 복음을 전파하는 잔을 선택했습니다.

  매일 매일 순교의 각오로 살면서, 주님 나라를 확장해 나갔던 것입니다.

  그리고 말년에는 우리 믿음의 후배들을 위해, 성경들도 기록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요한복음, 요한일서, 요한이서, 요한삼서, 요한계시록]입니다.

  그렇습니다.

  두 형제가 마신 잔, 두 형제가 걸어갔던 십자가의 길은 서로 달랐지만,

  둘 다 복음을 견고케 하고, 主님의 나라를 확장시켰다는 점에서는,

  전혀 다를 것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

  오늘 우리가 마음에 새기고자 하는 부분도 바로 이것입니다.

  굵고 짧고 열정적인 순교의 삶도 주님을 향한 헌신의 삶이지만,

  반대로 하루하루 주어진 일을 해 나가면서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도,

  주님을 향한 헌신의 삶입니다.


  사실 우리는 이런 문제 때문에 괴로워합니다.

  먹고사는 것이 힘들어서, 자녀들 때문에,

  또는 당장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될 세상일 때문에,

  주님을 위해 더욱 열정적으로 살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죄책감을 느낍니다.

  그래서 우리들의 기도를 보면, 그런 후회와 죄송한 마음의 기도가 많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

  주님이 우리에게 제시하시는 길은, 딱 한 가지만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주님은 우리에게 주어진,

  매일 매일의 잔을 마시기를 원하십니다.

  예 ! 어떤 형편에 처하든지, 예수님의 십자가를 잊지 않고, 말씀에 순종하는 삶,

  그것 또한, 주님께서 우리에게 제시하신, 또 다른 잔이라는 것입니다.


  야고보와 요한 형제, 또 서두에 말씀드린 신 목사나 페레이라, 로드리고,

  그들 모두, 자신들이 마실 잔은 만만치 않았습니다.

  저는 페레이라나 로드리고 그리고

  처형당한 12명의 목사를 변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다만, 그들을 무작정 비판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역시 다 그런 어려움을 품에 안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라고,

  순교자들처럼 우리 앞에 주어진 잔을 단숨에 마시고 싶지 않겠습니까 ?

  우리라고 세상 모든 것 버리고, 왜 십자가의 길을 가고 싶지 않겠습니까 ?

  하지만 우리는 우리를 잘 압니다.

  맨 날 결심해도 맨 날 쓰러지고 마는 우리들을 요.

  헌신과 충성을 위한 계획을 세워도, 작심삼일 될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그러한 우릴 자신을 바라보면서, 한두 번 실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런데도, 우리는 또다시 결심합니다.\

 “다시 한번 시작해 보자 !”라고요.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그런데 왜 (다시 결심하는) 이것이 가능합니까 ?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들의 연약함을 다 알고 계시니까요 !

  우리 하나님은,

  쉽사리 (우리의) 중간평가 및 최종평가를 하시는 분이 아니시니까요 !!!

  그렇습니다. 여러분 !

  우리 주님은 우리가 연약하다는 것을 너무 잘 아십니다.


  이 사실을 깨달은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시편103:8. 여호와는 긍휼이 많으시고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

 (主は、あわれみ深く、情け深い。怒るのに遅く、恵み豊かである。)


  시편103:10-11.

  10. 우리의 죄를 따라 우리를 처벌하지는 아니하시며,

      우리의 죄악을 따라 우리에게 그대로 갚지는 아니하셨으니

     (私たちの罪にしたがって、私たちを扱うことをせず、

      私たちの咎にしたがって、私たちに報いをされることもない。)

  11. 이는 하늘이 땅에서 높음같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그의 인자하심이 크심이로다

     (天が地上はるかに高いように、御恵みは、主を恐れる者の上に大きい。)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들이 주님의 잔을 마시는 것이, 절대 쉽지 않은 것을, 주님이 아십니다.

  그러므로, 主님은 우리에게 성령의 은혜를 채워주시며,

  묵묵히 기다려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점에서 우리가 할 일은,

  실패와 낙심 가운데도 또다시 시도해 보는 겁니다.

  또 쓰러지더라도 일어나고 또 나아가는 겁니다.

  주님은 바로 그것을 원하십니다.


  때로는 우리의 마음이 지쳐, 기도도 못 할 때가 있는 것도 주님은 아십니다.

  그래도 여러분 !

  성령께서, 우리를 위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하고

  계시다는 것을 기억하시고, 다시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바로 그 모습이야말로, 지금 우리가 마셔야 할 잔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믿는 자로서 살아가는 바른 모습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 모두에게 한 가지 부탁합니다.

  자주, 자기 자신을 격려하시기 바랍니다.

  자주 자기에게 용기를 주기 바랍니다.

 “그래, 괜찮아 다시 일어나자, 이번에도 실패할지 모르지만,

  그래도 다시 시작해 보자 !”

 “인자하신 주님께서 응원하시면서 지켜보시잖아 !

  마침내 주님의 은혜 안에서, 너는 승리할 거야 !”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여러분 !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 얼마나 힘드십니까 ?!

  사업하는 것, 직장생활하는 것,

  외롭게 공부하는 것, 정말 힘든 것 많습니다.

  하지만 다시 한번 기억하세요.

  우리 주님이 우리들의 상황을 다 알고 계십니다.

  주님은 그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에, 우리의 눈에서 눈물을 닦아주시고,

  우리의 가슴속에 뭉쳐진 모든 근심을 거둬 가 주십니다.


  그러니 다시 한번 일어나서, 용기 있게 믿음의 길을 걸어가십시오.

  그러면 우리도 야고보처럼, 요한처럼,

  또한. 예수님처럼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우리의 잔을 마실 수 있게 되고,

  결국 주님이 주신 우리의 십자가를 지게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까지 하루하루 조금 조금씩 성장해 나가는 것 !

  그것이 바로,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고,

  우리가 지금 마실 主님의 잔인 것입니다.

  이런 은혜 가운데, 하루하루 성장해 가는 우리들의 삶이 되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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