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主日説教原稿

2011 2011년7월17일, 마태복음6:14-15(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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投稿者 박성철
コメント 0件 照会 13,263回 日時 11-07-21 14:34

本文

  옆에 계신 복스러운 지체들을 함께 축복합시다.

  당신은 이 시대와 이 땅, 교회, 당신의 일터와 가정의 남은 자입니다.
  남은 자의 사명을 감당하는 당신을 통해서,
  하나님은 이 땅 일본에, 본향교회에,
  당신의 기업과 가정에, 크고 놀라운 은혜를 내리실 것입니다.

  한국에서 공부 잘하는 사람, 머리 좋은 사람, 똑똑한 사람들이 큰 목표로 삼는 것 중
  대표적인 것이 고시(考試)입니다.
  한국의 고시는 세 가지인데, 司法考試와 外務考試와 行政考試입니다.
  사법고시는 검사, 판사, 변호사, 대기업의 법률 고문 등의 길이,
  外務考試는 외교관 등의 길이, 行政考試는 고급 공무원의 길이 열립니다.
  실제로 한국에서는 이 세 고시 중 한 가지만 합격해도, 정말로 놀라운 일이고,
  그 집안 모두의 큰 경사인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공부 좀 한다는 사람들은 考試에 젊음을 불태우기도 했습니다.
  물론 합격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대단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사법고시를 고시 사상 최연소로 합격했고,
  다음 해 외무고시를 차석으로 합격했으며,
  그 다음 해 행정고시를 수석으로 합격했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가 대학 2학년, 3학년, 4학년 때 차례대로 3년에 걸쳐
  모든 고시에 합격했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그 후 이 사람은 미국의 하버드, 예일, 서울대의 법학석사를 거쳐,
  콜롬비아大 법학박사(Juris Doctor)를 취득했습니다.
  특히 3년 과정인 콜롬비아大 법학박사 학위를 2년으로 단축한 기록은,
  그 학교에서도 쉽게 예를 찾기 어려웠다고 합니다.

  이 사람은 현재는 변호사로 그리고 증권전문가로 한국의 국회의원으로
  그 직무에 충실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의 이름은 고승덕입니다.

  사람들이 고승덕변호사를 대할 때, 당신 같은 사람은 예수를 믿지 않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당신처럼 논리적인 사람이......"
  그러나 고승덕변호사는 하나님을 순전히 믿으며,
  교회와 하나님의 직분에 충성스럽게 봉사하는 하나님의 일꾼입니다.

  그는 30여 년 전, "전 국민의 1/4이 기독교인이라고 하는데
  나도 기독교에 대해서 알아야겠다"고 마음먹고 성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랬더니 성경말씀이 그렇게 재미있더랍니다.
  그래서 성경말씀을 구체적으로 배워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말씀이 그렇게 맛있게 느껴지더랍니다.

  그렇습니다. 고승덕변호사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된 데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우리들 가운데도, 아직 하나님을 향한 신앙의 확신이 부족한 분들이 있다면,
  올 하반기에는 꼭 성경을 읽고 배우시기를 바랍니다.

  어느 날 한 信仰인이 고 집사님께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왜 어떤 사람들은 기도하면 응답을 받는데,
  또 어떤 사람은 아무리 기도해도 좀처럼 응답을 받지 못할까요 ?"
  평소 논리적인 사고를 즐기는 고 집사님은
  물리학의 '파동의 원리'를 통해 그 질문에 이렇게 답을 했다고 합니다.
 "파동은 같은 것끼리 만나면 2배로 커지고, 다른 것이 만나면 소멸되고 맙니다.
  이를 통해 볼 때, 하나님의 파동과 우리의 파동이 같으면 기도의 능력이 커지고,
  하나님의 파동과 우리의 파동이 틀리면 소멸되고 말지요.
  결국 하나님의 뜻과 우리의 뜻이 하나되어 기도할 때,
  그 기도는 능력이 있고 응답이 있는 것입니다."

  참 재미있는 설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성도여러분 !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도 이 원리와 같습니다.
  어떤 사람은 신앙생활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며 기쁨과 감사의 삶을 사는데,
  어떤 사람은 전혀 은혜를 누리지 못합니다.
  함께 한 자리에서 예배를 드리는데, 한쪽은 평안과 기쁨과 은혜를 누리고,
  다른 한쪽은 답답하고 괴로워하며, 예배를 참으며 드립니다.

  왜 그럴까요 ?
  그것은 하나님과 그 사람의 파동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메리 카르라고 하는 여인이 쓴 '거짓말쟁이의 클럽'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메리는 그 책에서 원만하지 못한 가정을 소개했습니다.

  미국 텍사스 주에 행복하지 못한 한 가정이 있었습니다.
  이 가정은 남편과 아내가 40년 간 대화를 나누지 않고 살았습니다.
  그 이유는 아내가 살림을 너무 헤프게 한다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통나무를 자르다가 이런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이렇게 사는 것보다 집을 반으로 나누자"
  결국 그 남편은 법적인 가정은 유지한 채,
  실제로는 집의 중간을 큰 판자로 막아버렸습니다.
  반쪽 난 집이 되고 만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
  혹시 가정에서 가족 중 누구와 담을 쌓고 있지는 않습니까 ?
  혹은 친척 중에서, 혹은 교회 중에서 어떤 지체와,
  혹은 직장에서 어떤 동료와 담을 쌓고 용서하지 못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
  만약 그렇다면, 우리의 파동은 하나님의 파동과 일치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파동은 막힌 담을 허무는 것이지,
  없던 담을 쌓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지금 우리는 한 주간 중, 가장 중요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주일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창세로부터 이 날을 복 주셔서,
  이 날을 구별하여 예배하는 사람들에게 크고 놀라운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사야58:13-14,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히 여기고 네 길로 행치 아니하면 .......
  네가 여호와의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네 조상 야곱의 업으로 기르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이니라"

  오늘 이 날, 하나님의 날(主日)을 구별한 사람들에게는,
  하나님 주시는 풍성한 복들로 인해 즐거움이 넘칩니다.
  세상의 높은 곳에 올라, 명예와 복을 얻게 됩니다.
  야곱의 기업처럼, 크고 놀라운 물질의 복을 받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약속된 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우선 하나님 앞에 온전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온전한 예배일까요 ?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5:23-24,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그렇습니다.
  화목한 가운데 드리는 예배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온전한 예배입니다.
  우리들이 사람들과의 관계를 화목하게 가질 때,
  비로소 하나님과 우리의 파동이 일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들을 향해 이렇게 권면합니다.

  로마서12:17-18,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

  오늘 본문에서도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본문14-15절,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더구나 오늘 본문의 바로 앞에는 주기도문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즉, 예수님께서 기도를 가르쳐 주신 뒤 바로 이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기도를 알려주신 후,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왜 그러하셨을까요 ?
  그렇습니다. 그것은 인간관계에 담을 쌓은 상태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는 절대로 응답 받을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 이웃과의 관계가 막혀있으면 은혜의 통로가 막힙니다.
  그렇기 때문에, 화목은 해도 되고, 하지 않아도 되는 선택사항이 아닙니다.
  반드시 화목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이 시간 간절히 부탁합니다.
  지금 누구와 막힌 것이 있다면, 꼭 풀기를 바랍니다.
  먼저 이 시간 하나님 앞에서 푸십시오.
  그리고 이번 주간 내로 꼭 찾아가셔서 막힌 담을 허십시오.
  그래야 은혜의 통로가 열립니다.

  다시 한 번 본문의 말씀을 읽습니다.
  본문14-15절,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독일의 히틀러 등 나찌에게 엄청난 고통을 당한 폴란드와 폴란드 교회에
  독일인 신자들이 찾아왔습니다.
  독일 신자들이 말합니다. "우리 조상들을 대신해서 용서를 빕니다."
  한참 동안의 침묵이 있은 후 한 폴란드 신자가 대답했습니다.
 "수도 바르샤바의 돌들은 아직도 검붉은 피로 얼룩져있습니다.
  어떻게 당신들과 당신들의 나라를 용서하는 것이 가능하겠습니까 ?"
  결국 용서의 악수 없이 만남이 마무리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곳이 교회였으므로 주기도문으로 모임을 폐하였습니다.
  주기도문을 함께 암송하던 중,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라는 부분에서
  모두가 기도를 멈추고 말았습니다.

  그때 한 폴란드신자가 말했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우리아버지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
  그는 말을 이어갔습니다. "나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실 것을 믿습니다."
  결국 그로부터 18개월 후 폴란드 교회는 독일을 온전히 용서했습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가 만일 남을 용서하지 못하고 담을 쌓고 있으면,
  하나님을 향해 올라가는 우리의 기도가 막힙니다.

  여러분들에게 이런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남편과 아내와 싸우고 예배를 드리고 기도를 드린 경험이 있지요.
  다른 지체들과 불편한 마음으로 예배를 드린 적 있지요.
  예배가 은혜 가운데 드려지던가요 ? 기도가 응답되던 가요 ? 그렇지 않습니다.

  용서에 대한 말씀을 들을 때 우리는 종종 이렇게 말합니다.
 "목사님. 모르셔서 그럽니다. 그 사람 한번 만나보십시오.
  용서해 줄만한 사람이 있고, 도저히 용서가 안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 주님께서 이 용서에 대한 말씀을 주실 때,
  우리의 사정과 형편을 모르고 말씀하셨겠습니까 ?
  아니요, 우리 인간들에게 용서가 얼마나 힘든지 아시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대에게 받은 대로 갚아 줍니다.
  나에게 잘해 주면, 나도 잘 해주고, 나에게 못하면, 나도 못합니다.
  사실이 이런데, 온갖 못된 짓을 다하고, 얼굴색 바꾸고 와서 용서해 달라고 하면,
  용서가 가능합니까 ?
  물론 어렵지요.

  특히 배신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배신한 사람을 용서할 수 있습니까 ?
  어렵습니다. 용서 못하는 이유를 말하라고 하면, 밤을 새가며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용서받기에 합당한 사람만 용서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은 끝까지 용서하라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18:21-22, "베드로가 나아와 가로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 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 곱번이라도 할지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는, 이웃의 어떤 잘못이라도 무조건 용서해야 합니다.
  왜 입니까 ? 그것은 우리가 무조건적으로 용서받았기 때문입니다.
  마땅히 지옥에 던져져야 할 우리 위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그 고난의 십자가 위에서 외치신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는 예수님의 절규는,
  우리의 용서를 위한 외침이었습니다.

  우리에게 용서받을 아무런 자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 사랑 안에서 무조건적인 용서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태산과 같은 죄를 용서받는 우리가,
  겨우 한 움큼밖에 안 되는 이웃의 허물을 용서하지 못한다면,
  어찌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자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

  신학자 루이스는 "그리스도인이 된다고 하는 것은 변명할 수 없는 사람을
  용서해 주는 것이다"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누가복음6:36, "너희 아버지의 자비하심과 같이 너희도 자비하라"
  또한 예수님은 우리에게 용서의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누가복음23:34,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신학자 본 훼퍼는 독일의 나치에게 엄청난 고통을 받았습니다.
  그는 특히 히틀러를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다른 사람을 용서하라는 것은 참으로 어렵고 힘든 교훈이다.
  결국 이것은 비기독교인과 기독교인을 구분하는 선(線)이다"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성도여러분 ! 사랑하며 삽시다. 또한 용서하며 삽시다.
  그때부터 우리들의 삶에 하나님의 은혜의 물결이 밀려 올 것입니다.
  여러분 ! 아직도 혹 누군가를 생각하면 속에서 불길이 타올라옵니까 ?
  그렇다면, 여러분의 기도는 능력이 있을 수 없습니다.
  아침이슬 같이 내리는 하나님의 은혜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 예배를 통해 임하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받을 수도 없습니다.
  주일을 지키는 자들이 받는 그 놀라운 복을 누릴 수도 없습니다.

  여러분 ! 용서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응답이 그곳에 임합니다.
  길지 않는 인생, 사랑하고 살아도 짧은데, 왜 증오하며 미워하며 삽니까 ?
  용서합시다. 털어 버립시다. 사과를 기다리지 말고 내가 먼저 기꺼이 용서합시다.
  용서의 은혜가 오늘 모인 우리 모두에게 풍성하기를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

  다시 한 번 오늘 본문 말씀을 읽겠습니다.
  본문14-15절,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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