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2011년5월8일, 디모데후서1:1-5(거짓 없는 믿음을 유산으로 물려준 할머니와 어머니)
ページ情報

本文
옆에 계신 복스러운 지체들을 함께 축복합시다.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당신의 가정과 부모 형제자매들에게,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이 가득하기를 축복합니다.
당신의 기도들이, 하나님 은혜 안에서, 완전히 응답되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은 복음 전도자 사도 바울이 자신의 인생을 마감하면서,
특별히 사랑하던 제자 디모데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입니다.
디모데는 훌륭한 목회자로서, 바울에게는 가장 기쁨이 되고, 감사가 된 제자였으며,
바울은 이런 디모데를 항상 아들같이 사랑했습니다.
본문2절,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특히 바울이 디모데를 기뻐했던 가장 큰 이유는,
디모데의 믿음이, 참으로 귀하고 특별한 믿음이었기 때문입니다.
본문4-5절, "....... 너 보기를 원함은 내 기쁨이 가득하게 하려 함이니,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을 생각함이라"
그렇습니다. 디모데가 가진 믿음은 '거짓 없는 믿음'이었습니다.
여기에서 '거짓 없는 믿음'은 헬라어로 '아뉘포크리투'인데,
그 뜻은 '위선이나 겉치레가 없는 믿음'을 의미합니다.
일본어성경에서는, '純眞な信仰', '純粹な信仰'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純粹는 일본어 사전에, '邪念や私欲のないこと.
氣持ちに打算や掛け引きのないこと.'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이런 순수한 믿음을 우리들도 가집시다.
그래서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바울은 여기에서 한 가지 중요한 말을 합니다.
그것은, 디모데가 가진 이 '거짓 없는 믿음'은
디모데가 할머니와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본문5절, "이 (거짓 없는)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그렇습니다.
디모데가 이토록 좋은 믿음의 사람이 된 것은,
그의 할머니가 어머니가 참으로 훌륭한 분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들도 이런 부모, 이런 조상이 됩시다.
저는 오늘 2011년도 어버이주일을 맞이하여,
우리 본향의 성도들에게 몇 명의 어머니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그 어머니들의 믿음과 자녀교육을 본받아,
우리도 우리 자녀들을 이 시대에 위대한 인물로,
하나님이 쓰실 만한 큰그릇으로 만들기 원합니다.
첫 번째로 소개할 어머니는, 조선(朝鮮)선교사 메리 스크랜톤입니다.
한국의 서울 양화대교에서 가까운 선교사 묘지에는
스크랜톤 선교사의 가족 묘비가 있습니다.
의료선교사로서 조선을 위해 헌신한 윌리엄 스크랜톤 부부와
이화여자대학교를 설립한 그의 어머니 메리 스크랜톤 여사의 묘입니다.
1866년, 조선에 복음을 전하러 왔던 토마스(Robert Thomas) 선교사는
평양 대동강에서 순교하였고,
같은 해 서울에서는 병인양요 사건으로,
수많은 사람이 잠두봉(절두산)에서 목이 잘라져 한강으로 내던져졌습니다.
이러한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미국, 캐나다 등의 선교사들은 조선을 향해 달려왔고,
그들은 자신들의 피와 생명을 조선에 뿌렸습니다.
마침내, 선교사들의 기도가 응답되어 1882년 한미 수호조약이 체결되었고,
그때로부터 조선 선교의 문이 열려지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일본 땅에서 사역하고 있었던 맥크레이 선교사는 1884년6월, 조선을 방문하여
고종황제로부터 소수의 의사와 언어교사 등을 조선으로 보내도 좋다는
허락을 받습니다.
그런데 이 소식이 미국 예일대학과 뉴욕 의과대를 졸업하고,
오하이오주에서 병원을 막 개업한 윌리암 스크랜톤(William Scranton)에게
들려지게 되었습니다.
당시 윌리암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기는 했지만,
어머니와 그리고 부인과 더불어 행복하고 안정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부족함이 없었던 윌리암이었지만,
조선에 의사로 들어가 복음을 전할 수 있다는 소식을 듣자
그는 사명으로 인해 가슴이 떨렸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정리하고 조선에 선교사로 가기로 결심합니다.
윌리암의 아내도 남편의 뜻에 적극 동조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는 해결해야 할 한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윌리암의 어머니 메리 스크랜톤이었습니다.
나이 50이 넘은 어머니를 선교지로 모시고 갈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어머니를 홀로 두고 갈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아들 부부가 이런 문제로 고심하는 것을 알게된 메리 스크랜톤 여사는,
하나님 앞에 무릎꿇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 저도 조선 땅에 가서 복음을 전하게 해 주세요 !"
그렇습니다.
메리 스크랜톤 여사는 단지 아들 가족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도 선교사로 가게 해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메리 여사는 직접 여성 선교부를 찾아가 자기를 조선 선교사로 파송해 달라고
요청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사실 정식 목회자도 아니고, 또한 선교훈련도 받지 않은 그녀가
선교사로 파송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불가능을 가능하게 한 것은 그녀의 간절한 기도였습니다.
마침내, 윌리암은 1885년5월3일에, 그리고 어머니와 부인은 그 해 6월20일에
각각 한 달의 긴 항해 끝에 인천에 도착하였습니다.
당시 조선정부는 의료와 학교 외에, 아직까지는 복음 전도를
철저히 금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우선 9월10일 서울 정동에 병원을 개원합니다.
아들 내외의 선교와는 다르게, 어머니 메리 스크랜톤은 1년 동안 한국말을 배우면서
매일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 복음전도의 길을 열어주세요"
결국 하나님께서는 메리 선교사의 간절한 기도에 응답해 주셨습니다.
아들 윌리암 스크랜톤의 병원에 찾아 온 환자 중,
자기는 병들고 가난해서 자신의 딸을 도저히 돌볼 수가 없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에 메리 선교사는 그 아이를 집에 데려다가 돌보면서 가르치기 시작하였는데,
그 학생이 바로 이화의 첫 학생이 되었습니다.(1886년5월31일)
메리 선교사님은 후에 정동에 집을 얻어 학교를 시작하게 되었고,
고종 황제로부터 이화학당이라는 학교이름을 하사 받습니다.(1887년2월)
그렇게 시작된 이화여자대학교,
지금은 한국의 가장 유명한 여자대학교로 수많은 인재를 배출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메리 선교사님은 인생의 황혼기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자식의 사명을 막지 않아야겠다는 소극적인 자세를 버리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하나님 ! 저도 선교사가 되게 해 주세요 !"라고 기도하여,
아들 부부보다 더욱 큰 일을 하는 일꾼이 되었습니다.
우리들도 메리 스크랜톤 선교사님과 같은 그런 부모가 됩시다.
자식의 사명을 굴절된 사랑으로 막아서지 말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사명을 향하여 앞장서 나아갑시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 땅 복음화의 초석으로 삼으셔서,
많은 생명을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게 하실 것입니다.
둘째로 소개할 분은,
18C 썩어져 가는 유럽과 영국을 살린 요한 웨슬리의 어머니 수잔나입니다.
웨슬리가 하나님이 쓰신 큰 인물이 된 배후에는, 그의 어머니 수잔나가 있었습니다.
웨슬리는 인생의 황혼에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 인생의 영원한 스승은 主 성령님이었고,
나를 나되게 만든 분은 그 성령님의 지시를 따른 나의 어머니였다"
웨슬리의 어머니인 수잔나 여사는 탄광촌에서 가난한 광부들을 돌보는
가난한 목사의 아내 즉 사모님이었습니다.
수잔나는 열 아홉의 자녀를 낳아 열 세 명을 키웠는데,
탄광촌에서의 생활이 어찌나 어려웠든지 아이들을 학교에 보낼 능력이 없어,
그녀 자신이 직접 교사가 되어 엄격한 가정교육, 신앙교육을 시켰습니다.
수잔나의 교육의 일부 내용을 보면,
1) 주일날은 절대적으로 신앙서적과 성경 이외의 어떤 책도 못 읽도록 하고
그 규칙을 철저하게 생활화하였으며,
2) 월요일, 화요일은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가르쳤으며,
3) 수요일은 논리학과 윤리학을,
4) 목요일은 히브리어, 아랍어를,
5) 금요일은 철학을
6) 토요일은 웅변과 시를 가르쳤으며,
이 날은 또 일주일간 쓴 일기를 가지고 간증을 하면서 일기발표를 하게 하였습니다.
이외에도 매일 [가족성결기도회]를 저녁6시부터 9시까지 가졌고,
어린 자녀가 걷기를 시작할 때면
매주 한번씩 그들의 손을 잡고 감옥과 병원, 양로원을 심방하여
이웃 사랑의 정신을 깨우쳐 주었습니다.
또한 한 주에 한끼 이상 금식하게 했고, 하루에 세 번씩 소리내어 기도하게 하는 등,
경건한 삶을 몸에 베도록 교육하였습니다.
그리고 잠자리에 들 때는 꼭 이렇게 묻고 답하게 했다 합니다.
수잔나, "애들아 ! 너희가 누구냐 ?"
자녀들, "우리는 위대한 어린아이들입니다."
수잔나, "누가 너희를 위대하다 했느냐 ?"
자녀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대한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
수잔나, "그렇다면, 너희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느냐 ?"
자녀들, "예, 우리는 지금 새 역사를 창조하고 있습니다."
수잔나, "그 일을 누가 너희들에게 시켰느냐 ?"
자녀들, "우리를 위대하게 쓰시기를 원하는 하나님이 시키셨습니다."
어머니 수잔나와 자녀들의 이런 질문과 대답이 끝나면,
어머니는 자녀들을 일일이 축복 기도해 주고 잠자리에 들게 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본향의 부모여러분 !
오늘날 우리들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
혹시 이렇지 않습니까 ? "빨리 안자 ! 눈 안 감으면 혼난다 !"
특히 웨슬리의 가정에는 몇 가지 엄격한 규율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 두 가지를 소개하겠습니다.
첫째, 정해진 시간에 온 가족이 모두 모여서, 다 함께 성경을 읽고 찬송을 부르며
가정예배를 드리는 일이었습니다.
둘째, 열 세 아이들을 두 명씩 짝지어, 서로 돌보도록 하고,
이것을 두 주일마다 짝을 바꿔주었다고 합니다.
수잔나는 그것을 통해, 사람은 또 다른 사람을 돌보는 존재임을 깨닫게 함과 동시에,
자기보다 약하고 어렵고 고통 하는 사람을 섬기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일인지를
자녀들에게 깊이 깨닫게 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수잔나와 같은 신앙과 영성교육으로
우리의 자녀들을 이 시대의 어둠을 밝히는 위대한 빛의 자녀로 만듭시다.
어느 어머니의 글을 소개하면서 오늘 말씀을 마칩니다.
아들아 !
결혼할 때 부모 모시는 여자 택하지 말아라.
너는 엄마랑 살고 싶겠지만,
엄마는 이제 너를 벗어나 엄마가 아닌 인간으로 살고 싶단다.
엄마한테 효도하는 며느리를 택하지 말아라. 네 효도는 너 잘사는 걸로 족하니까 .......
너의 아내가 엄마 흉을 보거든, 너 속상한 거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그걸 엄마한테 옮기지는 말아라.
엄마도 사람인데 알고 나면, 내 기분 좋겠느냐 !
모르는 게 약이란 걸 백 번 곱씹고 엄마한테 옮기지 말아라.
아들아 ! 내 사랑하는 아들아 !
나는 널 배고 낳고 키우느라 평생을 보냈으므로
널 위해 당장 죽어도 서운한 게 없겠지만,
너의 아내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조금은 이해하거라.
너도 너의 장모를 위해서, 엄마에게만큼은 안 하지 않잖니 !
아들아 !
혹시 어미가 가난하고 약해지거든 조금은 보태주거라.
널 위해 평생 바친 엄마이지 않느냐
그것은 아들의 도리가 아니라, 사람의 도리가 아니겠느냐
어미가 가난하고 약해지는데 자식인 네가 돌보지 않는다면 어미가 얼마나 서럽겠느냐.
아들아 !
명절이나 어미 애비 생일은 좀 챙겨주면 안되겠니 ?
네 생일 여태까지 한번도 잊은 적 없이 그 날 되면 배 아파 낳은 그대로
그 때 그 느낌 그대로 꿈엔들 잊은 적 없는데 !
네 아내에게 떠밀려서 하지말고, 네가 챙겨주면 안되겠니 ?
받고 싶은 욕심이 아니라, 잊혀지고 싶지 않은 어미의 욕심이란다.
아들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
이름만 불러도 눈물 아릿한 아들아
네 아내가 이 어미에게 효도하길 바란다면 네가 먼저 네 장모에게 잘하려므나
네가 고른 아내라면 너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내게도 잘하지 않겠니 ?
내 아들아 내 피눈물 같은 내 아들아 !
내가 행복한 것이 너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네가 행복한 것이 나를 행복하게 하므로,
혹여 나 때문에 너희 가정에 해가 되거든 나를 잊어다오.
그건 에미의 모정이란다.
너를 위해 목숨도 아깝지 않은 어미인데, 너의 행복을 위해 무엇인들 아깝지 않으리.
그러나 아들아 !
네가 가정을 이룬 후 에미 애비를 이용하지는 말아다오
평생 너희 행복을 위해 바쳐 온 부모다.
이제는 에미 애비가 좀 편안히 살아도 되지 않겠니 ?
너희 힘든 건 너희들이 알아서 살아다오
늙은 어미 애비 이제 좀 쉬면서 삶을 마감하게 해다오.
너의 에미 애비도 부족하게 살면서 힘들게 산 인생이다.
그러니 너희 힘든 거 너희들이 헤쳐 가다오 !
아들아 !
우리가 원하는 건 너희의 행복이란다.
그러나 너희도 늙은 어미 아비의 행복을 빼앗지는 말아다오.
손자 길러 달라는 말, 절대로 하지 말아라.
너 보다 더 귀하고 이쁜 손자지만, 매일 보고 싶은 손주들이지만,
늙어 가는 나는, 내 인생도 중요하더구나.
강요하거나 은근히 말하지 말아라.
날 나쁜 시에미로 몰지 말아라.
내가 널 온전히 길러 목숨마저 아깝지 않듯이,
너도 네 자식 온전히 길러 사랑을 느끼거라.
아들아 사랑한다 목숨보다 더 사랑한다.
그러나 목숨을 바치지 않을 정도에서는, 내 인생도 중요하구나.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당신의 가정과 부모 형제자매들에게,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이 가득하기를 축복합니다.
당신의 기도들이, 하나님 은혜 안에서, 완전히 응답되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은 복음 전도자 사도 바울이 자신의 인생을 마감하면서,
특별히 사랑하던 제자 디모데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입니다.
디모데는 훌륭한 목회자로서, 바울에게는 가장 기쁨이 되고, 감사가 된 제자였으며,
바울은 이런 디모데를 항상 아들같이 사랑했습니다.
본문2절,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특히 바울이 디모데를 기뻐했던 가장 큰 이유는,
디모데의 믿음이, 참으로 귀하고 특별한 믿음이었기 때문입니다.
본문4-5절, "....... 너 보기를 원함은 내 기쁨이 가득하게 하려 함이니,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을 생각함이라"
그렇습니다. 디모데가 가진 믿음은 '거짓 없는 믿음'이었습니다.
여기에서 '거짓 없는 믿음'은 헬라어로 '아뉘포크리투'인데,
그 뜻은 '위선이나 겉치레가 없는 믿음'을 의미합니다.
일본어성경에서는, '純眞な信仰', '純粹な信仰'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純粹는 일본어 사전에, '邪念や私欲のないこと.
氣持ちに打算や掛け引きのないこと.'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이런 순수한 믿음을 우리들도 가집시다.
그래서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바울은 여기에서 한 가지 중요한 말을 합니다.
그것은, 디모데가 가진 이 '거짓 없는 믿음'은
디모데가 할머니와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본문5절, "이 (거짓 없는)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그렇습니다.
디모데가 이토록 좋은 믿음의 사람이 된 것은,
그의 할머니가 어머니가 참으로 훌륭한 분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들도 이런 부모, 이런 조상이 됩시다.
저는 오늘 2011년도 어버이주일을 맞이하여,
우리 본향의 성도들에게 몇 명의 어머니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그 어머니들의 믿음과 자녀교육을 본받아,
우리도 우리 자녀들을 이 시대에 위대한 인물로,
하나님이 쓰실 만한 큰그릇으로 만들기 원합니다.
첫 번째로 소개할 어머니는, 조선(朝鮮)선교사 메리 스크랜톤입니다.
한국의 서울 양화대교에서 가까운 선교사 묘지에는
스크랜톤 선교사의 가족 묘비가 있습니다.
의료선교사로서 조선을 위해 헌신한 윌리엄 스크랜톤 부부와
이화여자대학교를 설립한 그의 어머니 메리 스크랜톤 여사의 묘입니다.
1866년, 조선에 복음을 전하러 왔던 토마스(Robert Thomas) 선교사는
평양 대동강에서 순교하였고,
같은 해 서울에서는 병인양요 사건으로,
수많은 사람이 잠두봉(절두산)에서 목이 잘라져 한강으로 내던져졌습니다.
이러한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미국, 캐나다 등의 선교사들은 조선을 향해 달려왔고,
그들은 자신들의 피와 생명을 조선에 뿌렸습니다.
마침내, 선교사들의 기도가 응답되어 1882년 한미 수호조약이 체결되었고,
그때로부터 조선 선교의 문이 열려지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일본 땅에서 사역하고 있었던 맥크레이 선교사는 1884년6월, 조선을 방문하여
고종황제로부터 소수의 의사와 언어교사 등을 조선으로 보내도 좋다는
허락을 받습니다.
그런데 이 소식이 미국 예일대학과 뉴욕 의과대를 졸업하고,
오하이오주에서 병원을 막 개업한 윌리암 스크랜톤(William Scranton)에게
들려지게 되었습니다.
당시 윌리암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기는 했지만,
어머니와 그리고 부인과 더불어 행복하고 안정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부족함이 없었던 윌리암이었지만,
조선에 의사로 들어가 복음을 전할 수 있다는 소식을 듣자
그는 사명으로 인해 가슴이 떨렸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정리하고 조선에 선교사로 가기로 결심합니다.
윌리암의 아내도 남편의 뜻에 적극 동조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는 해결해야 할 한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윌리암의 어머니 메리 스크랜톤이었습니다.
나이 50이 넘은 어머니를 선교지로 모시고 갈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어머니를 홀로 두고 갈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아들 부부가 이런 문제로 고심하는 것을 알게된 메리 스크랜톤 여사는,
하나님 앞에 무릎꿇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 저도 조선 땅에 가서 복음을 전하게 해 주세요 !"
그렇습니다.
메리 스크랜톤 여사는 단지 아들 가족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도 선교사로 가게 해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메리 여사는 직접 여성 선교부를 찾아가 자기를 조선 선교사로 파송해 달라고
요청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사실 정식 목회자도 아니고, 또한 선교훈련도 받지 않은 그녀가
선교사로 파송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불가능을 가능하게 한 것은 그녀의 간절한 기도였습니다.
마침내, 윌리암은 1885년5월3일에, 그리고 어머니와 부인은 그 해 6월20일에
각각 한 달의 긴 항해 끝에 인천에 도착하였습니다.
당시 조선정부는 의료와 학교 외에, 아직까지는 복음 전도를
철저히 금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우선 9월10일 서울 정동에 병원을 개원합니다.
아들 내외의 선교와는 다르게, 어머니 메리 스크랜톤은 1년 동안 한국말을 배우면서
매일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 복음전도의 길을 열어주세요"
결국 하나님께서는 메리 선교사의 간절한 기도에 응답해 주셨습니다.
아들 윌리암 스크랜톤의 병원에 찾아 온 환자 중,
자기는 병들고 가난해서 자신의 딸을 도저히 돌볼 수가 없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에 메리 선교사는 그 아이를 집에 데려다가 돌보면서 가르치기 시작하였는데,
그 학생이 바로 이화의 첫 학생이 되었습니다.(1886년5월31일)
메리 선교사님은 후에 정동에 집을 얻어 학교를 시작하게 되었고,
고종 황제로부터 이화학당이라는 학교이름을 하사 받습니다.(1887년2월)
그렇게 시작된 이화여자대학교,
지금은 한국의 가장 유명한 여자대학교로 수많은 인재를 배출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메리 선교사님은 인생의 황혼기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자식의 사명을 막지 않아야겠다는 소극적인 자세를 버리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하나님 ! 저도 선교사가 되게 해 주세요 !"라고 기도하여,
아들 부부보다 더욱 큰 일을 하는 일꾼이 되었습니다.
우리들도 메리 스크랜톤 선교사님과 같은 그런 부모가 됩시다.
자식의 사명을 굴절된 사랑으로 막아서지 말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사명을 향하여 앞장서 나아갑시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 땅 복음화의 초석으로 삼으셔서,
많은 생명을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게 하실 것입니다.
둘째로 소개할 분은,
18C 썩어져 가는 유럽과 영국을 살린 요한 웨슬리의 어머니 수잔나입니다.
웨슬리가 하나님이 쓰신 큰 인물이 된 배후에는, 그의 어머니 수잔나가 있었습니다.
웨슬리는 인생의 황혼에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 인생의 영원한 스승은 主 성령님이었고,
나를 나되게 만든 분은 그 성령님의 지시를 따른 나의 어머니였다"
웨슬리의 어머니인 수잔나 여사는 탄광촌에서 가난한 광부들을 돌보는
가난한 목사의 아내 즉 사모님이었습니다.
수잔나는 열 아홉의 자녀를 낳아 열 세 명을 키웠는데,
탄광촌에서의 생활이 어찌나 어려웠든지 아이들을 학교에 보낼 능력이 없어,
그녀 자신이 직접 교사가 되어 엄격한 가정교육, 신앙교육을 시켰습니다.
수잔나의 교육의 일부 내용을 보면,
1) 주일날은 절대적으로 신앙서적과 성경 이외의 어떤 책도 못 읽도록 하고
그 규칙을 철저하게 생활화하였으며,
2) 월요일, 화요일은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가르쳤으며,
3) 수요일은 논리학과 윤리학을,
4) 목요일은 히브리어, 아랍어를,
5) 금요일은 철학을
6) 토요일은 웅변과 시를 가르쳤으며,
이 날은 또 일주일간 쓴 일기를 가지고 간증을 하면서 일기발표를 하게 하였습니다.
이외에도 매일 [가족성결기도회]를 저녁6시부터 9시까지 가졌고,
어린 자녀가 걷기를 시작할 때면
매주 한번씩 그들의 손을 잡고 감옥과 병원, 양로원을 심방하여
이웃 사랑의 정신을 깨우쳐 주었습니다.
또한 한 주에 한끼 이상 금식하게 했고, 하루에 세 번씩 소리내어 기도하게 하는 등,
경건한 삶을 몸에 베도록 교육하였습니다.
그리고 잠자리에 들 때는 꼭 이렇게 묻고 답하게 했다 합니다.
수잔나, "애들아 ! 너희가 누구냐 ?"
자녀들, "우리는 위대한 어린아이들입니다."
수잔나, "누가 너희를 위대하다 했느냐 ?"
자녀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대한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
수잔나, "그렇다면, 너희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느냐 ?"
자녀들, "예, 우리는 지금 새 역사를 창조하고 있습니다."
수잔나, "그 일을 누가 너희들에게 시켰느냐 ?"
자녀들, "우리를 위대하게 쓰시기를 원하는 하나님이 시키셨습니다."
어머니 수잔나와 자녀들의 이런 질문과 대답이 끝나면,
어머니는 자녀들을 일일이 축복 기도해 주고 잠자리에 들게 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본향의 부모여러분 !
오늘날 우리들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
혹시 이렇지 않습니까 ? "빨리 안자 ! 눈 안 감으면 혼난다 !"
특히 웨슬리의 가정에는 몇 가지 엄격한 규율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 두 가지를 소개하겠습니다.
첫째, 정해진 시간에 온 가족이 모두 모여서, 다 함께 성경을 읽고 찬송을 부르며
가정예배를 드리는 일이었습니다.
둘째, 열 세 아이들을 두 명씩 짝지어, 서로 돌보도록 하고,
이것을 두 주일마다 짝을 바꿔주었다고 합니다.
수잔나는 그것을 통해, 사람은 또 다른 사람을 돌보는 존재임을 깨닫게 함과 동시에,
자기보다 약하고 어렵고 고통 하는 사람을 섬기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일인지를
자녀들에게 깊이 깨닫게 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수잔나와 같은 신앙과 영성교육으로
우리의 자녀들을 이 시대의 어둠을 밝히는 위대한 빛의 자녀로 만듭시다.
어느 어머니의 글을 소개하면서 오늘 말씀을 마칩니다.
아들아 !
결혼할 때 부모 모시는 여자 택하지 말아라.
너는 엄마랑 살고 싶겠지만,
엄마는 이제 너를 벗어나 엄마가 아닌 인간으로 살고 싶단다.
엄마한테 효도하는 며느리를 택하지 말아라. 네 효도는 너 잘사는 걸로 족하니까 .......
너의 아내가 엄마 흉을 보거든, 너 속상한 거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그걸 엄마한테 옮기지는 말아라.
엄마도 사람인데 알고 나면, 내 기분 좋겠느냐 !
모르는 게 약이란 걸 백 번 곱씹고 엄마한테 옮기지 말아라.
아들아 ! 내 사랑하는 아들아 !
나는 널 배고 낳고 키우느라 평생을 보냈으므로
널 위해 당장 죽어도 서운한 게 없겠지만,
너의 아내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조금은 이해하거라.
너도 너의 장모를 위해서, 엄마에게만큼은 안 하지 않잖니 !
아들아 !
혹시 어미가 가난하고 약해지거든 조금은 보태주거라.
널 위해 평생 바친 엄마이지 않느냐
그것은 아들의 도리가 아니라, 사람의 도리가 아니겠느냐
어미가 가난하고 약해지는데 자식인 네가 돌보지 않는다면 어미가 얼마나 서럽겠느냐.
아들아 !
명절이나 어미 애비 생일은 좀 챙겨주면 안되겠니 ?
네 생일 여태까지 한번도 잊은 적 없이 그 날 되면 배 아파 낳은 그대로
그 때 그 느낌 그대로 꿈엔들 잊은 적 없는데 !
네 아내에게 떠밀려서 하지말고, 네가 챙겨주면 안되겠니 ?
받고 싶은 욕심이 아니라, 잊혀지고 싶지 않은 어미의 욕심이란다.
아들아 내 사랑하는 아들아 !
이름만 불러도 눈물 아릿한 아들아
네 아내가 이 어미에게 효도하길 바란다면 네가 먼저 네 장모에게 잘하려므나
네가 고른 아내라면 너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내게도 잘하지 않겠니 ?
내 아들아 내 피눈물 같은 내 아들아 !
내가 행복한 것이 너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네가 행복한 것이 나를 행복하게 하므로,
혹여 나 때문에 너희 가정에 해가 되거든 나를 잊어다오.
그건 에미의 모정이란다.
너를 위해 목숨도 아깝지 않은 어미인데, 너의 행복을 위해 무엇인들 아깝지 않으리.
그러나 아들아 !
네가 가정을 이룬 후 에미 애비를 이용하지는 말아다오
평생 너희 행복을 위해 바쳐 온 부모다.
이제는 에미 애비가 좀 편안히 살아도 되지 않겠니 ?
너희 힘든 건 너희들이 알아서 살아다오
늙은 어미 애비 이제 좀 쉬면서 삶을 마감하게 해다오.
너의 에미 애비도 부족하게 살면서 힘들게 산 인생이다.
그러니 너희 힘든 거 너희들이 헤쳐 가다오 !
아들아 !
우리가 원하는 건 너희의 행복이란다.
그러나 너희도 늙은 어미 아비의 행복을 빼앗지는 말아다오.
손자 길러 달라는 말, 절대로 하지 말아라.
너 보다 더 귀하고 이쁜 손자지만, 매일 보고 싶은 손주들이지만,
늙어 가는 나는, 내 인생도 중요하더구나.
강요하거나 은근히 말하지 말아라.
날 나쁜 시에미로 몰지 말아라.
내가 널 온전히 길러 목숨마저 아깝지 않듯이,
너도 네 자식 온전히 길러 사랑을 느끼거라.
아들아 사랑한다 목숨보다 더 사랑한다.
그러나 목숨을 바치지 않을 정도에서는, 내 인생도 중요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