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2011년5월1일, 룻기1:15-18(회복된 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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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 계신 복스러운 지체들을 함께 축복합시다.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당신의 가정과 부모 형제 자매들에게,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이 가득하기를 축복합니다.
당신의 기도들이, 하나님 은혜 안에서, 완전히 응답되기를 축복합니다.
가정의 달에 꼭 부르는 찬송 중에 찬송가305(559)장이 있습니다.
그 가사 내용이 이렇습니다.
1절, "사철에 봄바람 불어 잇고,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셨으니,
믿음의 반석도 든든하다, 우리 집 즐거운 동산이라"
그런데 여러분 !
요즘 이런 가정이 얼마나 있을까요 ?
사시사철 봄처럼 따뜻한 가정, 하나님을 진정한 아버지로 모신 가정,
어떤 어려움이 오더라도 믿음으로 이겨내는 바로 그런 가정 말입니다.
2절, "어버이 우리를 고이시고 동기들 사랑에 뭉쳐있고,
기쁨과 설움도 같이하니 한간의 초가도 천국이라"
부모가 자녀를 지극 정성으로 돌보고, 형제들끼리는 사랑으로 뭉쳐있고,
온 가정이 기쁨과 설움도 같이 하는 가정,
그래서 방 한 칸 짜리 집에 살더라도 거기가 천국으로 느껴지는 그런 가정.
얼마나 있을까요 ?
3절은 또 이렇습니다.
"아침과 저녁에 수고하여 다같이 일하는 온 식구가 한 상에 둘러서 먹고 마셔,
여기가 우리의 낙원이라"
여러분 ! 모든 가족원들이 각각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가정,
더구나 식사는 꼭 함께 하는 가정, 우리 주위에 얼마나 있을까요 ?
정말 이 찬송의 가사처럼 사는 가정이라면,
분명 그 가정에는 이런 감사의 찬송이 넘치게 될 것입니다.
"고마워라 임마누엘, 예수만 섬기는 우리 집 !
고마워라 임마누엘, 복되고 즐거운 하루하루 !"
여러분들의 가정이 이런 가정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가정 ! 얼마나 정답고 따뜻하고 푸근하고 그리운 말입니까 ?
생각만 해도 달려가고 싶고, 생각만 해도 행복해지는 곳입니다.
그러나 가장 따뜻하고 포근해야 할, 정말 편히 깃들 둥지 같아야 할 가정이
오히려 가장 가슴아픈 곳으로 바뀌어지고 있습니다.
몇 일전, 한국 mbc방송국에서는 현재 한국의 가출 청소년이 20만 명을 넘어섰다고
보도했습니다.
그래서 '가출팸'이라는 말도 생겨났는데,
그것은 가출한 청소년들이 방을 구해 함께 동거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일본, 한국 등의 이혼율은 30%대로 세계 톱 클래스입니다.
한국도 일본도 초등학생 3명 중 1명이 양친 부모 중,
어느 한 쪽이 친부모가 아니라고 합니다.
이혼이나 별거, 사별 등의 이유 때문입니다.
이래서는 안됩니다.
이 땅의 가정들이 본래의 가정의 모습을 회복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회복의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소개할 가정 역시 상처투성이의 가정이었습니다.
유대 베들레헴에 엘리멜렉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아내와 두 아들이 있었는데 오순도순 행복하게 잘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해, 그들의 고향에 아주 심한 흉년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온 가족과 함께 이웃나라인 모압으로 이민을 갔습니다.
처음 얼마동안은 그럭저럭 편안한 삶을 살았는데,
몇 해가 지난 어느 날 家長 엘리멜렉이 갑자기 병들어 죽고 맙니다.
남편을 잃고 낙심한 아내 나오미는 두 아들을 결혼시킵니다.
며느리들은 이민 간 나라인 모압의 여인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몇 해가 지나지 않아, 그만 두 아들마저 병으로 죽고 맙니다.
졸지에 그 집안의 남자들이 다 죽고, 여인들만 남게 된 것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약3천 년 전인 그 시대에 집안 남자들이 다 죽고,
여인들만 남았다는 것은 모든 소망이 끊어졌음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엘리멜렉과 나오미의 가정은 가장 불행한 가정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
이 가정은 다시 행복한 가정으로 회복이 됩니다.
더구나 하나님 앞에 크게 쓰임 받는 참으로 복된 가정이 됩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
오늘 그 과정을 보면서, 우리들의 가정도, 이 땅의 가정들도
가장 복된 가정으로 변화되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첫째, 남겨진 가장(家長) 나오미가 진실로 회개했습니다.
본문20-21절, "나오미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나오미라고 칭하지 말고 마라라 칭하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나로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거늘,
너희가 어찌 나를 나오미라 칭하느뇨"
나오미란 이름의 뜻은 '기쁨'이란 뜻입니다.
그런데 나오미는 지금 자기를 나오미라는 이름으로 부르지 말라고 합니다.
오히려 '마라'라고 부르라고 합니다. 마라는 '쓰다'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나오미는 지금 하나님 앞과 사람 앞에서
자기의 어리석음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룻기1장에만 '돌아가다'라는 단어가 8번이나 나옵니다.
나오미는 입을 열 때마다 "돌아가야 된다, 돌아가야 된다"고 말합니다.
그 까닭이 무엇이겠습니까 ?
그렇습니다. 나오미는 자기 인생과 가정에 불어닥친 어려움의 원인이,
자기 땅에서 떠났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가나안 땅은 약속의 땅이었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그 땅은 하나님 백성이,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하며
살라고 주신 땅이었습니다.
그러나 나오미의 가정은 하나님의 주신 훈련을 견디지 못하고,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축복의 땅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좀 더 편해보려고, 좀 더 행복해 보려고 유대 땅을 떠났던 것입니다.
지금 나오미는 바로 이것을 회개한 것입니다.
또한 나오미는 자기 자녀들을 믿음의 자녀로 기르는 것에는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들들을 이방 여인과 결혼시키고 말았던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나오미의 이 잘못을 오히려 선한 것으로 바꾸어 주셨지만,
분명 나오미가 행한 것을 큰 죄악이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나오미는 어려움을 통해 이렇게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사명보다는,
내 삶과 유익을 좇아서 선택했던 내 죄가, 이런 불행과 어려움을 불렀구나 !"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결단한 것입니다.
"하나님 앞으로 돌아가자 ! 믿음으로 다시금 새 인생을 살자 !"
나오미는 사명의 땅으로 돌아가기를 결심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더 이상 사람을 의지하는 삶을 살지 않고,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살기로 결심합니다.
그래서 며느리들을 남겨두고 떠나기로 작심합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사람은 믿고 의지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사랑하고 섬겨야 할 대상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사람을 의지하려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때때로 우리에게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도록 만드십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
나오미의 가정처럼 하나님만을 의뢰하는 믿음을 회복하시고,
사명을 회복하셔서, 복된 가정을 세우시기를 축복합니다.
둘째, 이 가정이 회복된 데는,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서로가 함께 하는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남겨진 세 여인은 얼마든지 더 더욱 불행해 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 자신보다 상대를 더욱 사랑함으로,
불행을 오히려 행복으로 바꿔버렸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함께'라는 단어가 무려 다섯 번이나 나옵니다.
여러분 ! 우리 인간들은 말입니다, 고통이나 환란이 닥치면 그 탓을 대개의 경우
다른 사람에게로 돌리고 맙니다.
나오미의 입장에서 보면, 며느리들이 매우 미울 수도 있었습니다.
그 며느리들이 자식을 죽게 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후손하나 낳지 못한 며느리들을 원망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또한 며느리들의 입장에서 보세요.
남편들이 죽은 것은, 사고가 아닙니다. 병입니다.
그러니 이런 약한 남자로 양육한 시어머니가 미울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남편을 잃은 이들의 마음은 모두가 멍들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세 여인은 함께 일어납니다.
그리고 함께 같은 방향으로 걸어갑니다.
시어머니의 고향 땅을 자기들의 고향으로 여기며 살겠다고 말합니다.
성경은 이 장면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룻기1:8-14, "나오미가 두 자부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각 어미의 집으로 돌아가라.
너희가 죽은 자와 나를 선대한 것 같이 여호와께서 너희를 선대하시기를 원하며,
여호와께서 너희로 각각 남편의 집에서 평안함을 얻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고
그들에게 입맞추매, 그들이 소리를 높여 울며 나오미에게 이르되,
아니니이다 우리는 어머니와 함께 어머니의 백성에게로 돌아가겠나이다.
나오미가 가로되 내 딸들아 돌아가라 너희가 어찌 나와 함께 하려느냐,
나의 태 중에 너희 남편 될 아들들이 오히려 있느냐.
내 딸들아 돌이켜 너희 길로 가라. 나는 늙었으니 남편을 두지 못할지라.
가령 소망이 있다고 말한다든지, 오늘밤에 남편을 두어서 아들을 생산한다 하자.
너희가 어찌 그것을 인하여 그들이 자라기를 기다리겠느냐.
어찌 그것을 인하여 남편 두기를 멈추겠느냐.
내 딸들아 그렇지 아니하니라.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으므로, 나는 너희로 인하여 더욱 마음이 아프다.
그들이 소리를 높여 다시 울더니,
오르바는 그 시모에게 입맞추되 룻은 그를 붙좇았더라"
여러분 ! 자신보다 상대를 아끼는 이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입니까 ?
젊은 며느리들에게도 그 자신을 위한 삶이 있어야 하는 것을 이해하는 시어머니입니다.
그 어머니를 붙잡고 우는 두 며느리의 모습이 정말 너무 아름답지 않습니까 ?
이 눈물은 진정한 사랑의 눈물입니다.
서로의 처지와 형편을 이해하는 가정을, 하나님은 축복하십니다.
이해와 사랑이 있는 가정, 절대로 망하지 않습니다. 회복됩니다.
고린도전서13장 말씀처럼, 사랑은 모든 것을 참게하고, 모든 것을 믿게 하고,
모든 것을 바라게 하며, 모든 것을 견디게 합니다.
나오미의 가정이 회복된 것은 바로 그 넘치는 사랑이었습니다.
그 사랑이 여러분의 가정에도 넘쳐흘러서
회복되고 따뜻한 가정이 되시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 나오미의 가정이 회복된 데는, 신앙고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 신앙고백이 무엇입니까 ?
하나님을 자기의 주인으로 인정하며, 고백하는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
삶이 어렵고 복잡할수록, 우리는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신앙을 확인하고,
또한 그 신앙을 고백해야 합니다.
본문14절, "그들이 소리를 높여 다시 울더니
오르바는 그 시모에게 입 맞추되 룻은 그를 붙좇았더라"
여기서 '붙좇았더라'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다브카'라는 단어입니다.
그 뜻은, '굳게 결합하다. 붙들고 늘어지다.'입니다.
이 단어가 창세기에서는 이렇게 사용되었습니다.
창세기2:24,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여기에서 '연합'이 '다브카'입니다.
그렇습니다. 룻은 그러한 마음으로 시어머니를 따른 것입니다.
룻의 시어머니를 향한 사랑, 하나님을 향한 신앙고백을 본문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본문16-17절, "룻이 가로되
나로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서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장사될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와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여호와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받아들이는 이 룻의 고백 속에는,
이미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 룻은 어떻게 이런 신앙을 가지게 되었을까요 ?
이것을 성경은 직접적으로 설명해 주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나오미는 자부들에게 이야기할 때,
여호와 혹은 전능자라는 단어를 1장 속에 무려 7번이나 사용합니다.
누군가와 대화를 하면서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단어를
일 곱번이나 사용한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모든 절망을 버리고, 하나님만 따르겠다는 것입니다.
룻은 시어머니의 그 믿음의 결심에서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 역시 나오미처럼,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이 닥쳐도,
하나님을 의뢰하고 툭툭 털고 일어날 수 있어야,
그것이 우리들 후손에게 믿음의 유산으로 남겨지게 됩니다.
우리 가정에 고난과 어려움이 올 때,
오히려 그때가 바로 하나님을 증거하고 나타낼 중요한 때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도우시는 하나님을 최악의 상태에서도 신실하게 믿고
오히려, 다른 가족들에게 힘과 용기를 줄 수 있는 부모들, 또는 자녀라면
우리들 가정은 분명히 회복되고 행복한 가정이 될 것입니다.
오늘 나오미의 가정이 바로 이런 가정이었습니다.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것처럼, 고향으로 돌아온 나오미는
같은 가문의 보아스에게 며느리 룻을 재가(再嫁)시키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 룻에게 아들을 주십니다.
그 아들이 오벳이고 그는 다윗의 할아버지가 됩니다.
그리고 그 혈통을 통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셨습니다.
우리 모두 참으로 어려운 상황에서도
나오미와 룻처럼, 위대한 한 가문을 일으키는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기 위해,
첫째, 우리의 가정들에서 진정으로 회개할 것들을 회개합시다.
둘째,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함께 하는 사랑을 구합시다.
, 특히 나보다 서로를 더욱 사랑합시다.
셋째, 삶이 어렵고 복잡할수록, 하나님을 향한 나의 신앙을 확인하고, 또한 고백합시다.
우리들의 가정이 행복한 가정, 위대한 가정, 최고의 가정되기를 축복합니다.
할렐루야 !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당신의 가정과 부모 형제 자매들에게,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이 가득하기를 축복합니다.
당신의 기도들이, 하나님 은혜 안에서, 완전히 응답되기를 축복합니다.
가정의 달에 꼭 부르는 찬송 중에 찬송가305(559)장이 있습니다.
그 가사 내용이 이렇습니다.
1절, "사철에 봄바람 불어 잇고,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셨으니,
믿음의 반석도 든든하다, 우리 집 즐거운 동산이라"
그런데 여러분 !
요즘 이런 가정이 얼마나 있을까요 ?
사시사철 봄처럼 따뜻한 가정, 하나님을 진정한 아버지로 모신 가정,
어떤 어려움이 오더라도 믿음으로 이겨내는 바로 그런 가정 말입니다.
2절, "어버이 우리를 고이시고 동기들 사랑에 뭉쳐있고,
기쁨과 설움도 같이하니 한간의 초가도 천국이라"
부모가 자녀를 지극 정성으로 돌보고, 형제들끼리는 사랑으로 뭉쳐있고,
온 가정이 기쁨과 설움도 같이 하는 가정,
그래서 방 한 칸 짜리 집에 살더라도 거기가 천국으로 느껴지는 그런 가정.
얼마나 있을까요 ?
3절은 또 이렇습니다.
"아침과 저녁에 수고하여 다같이 일하는 온 식구가 한 상에 둘러서 먹고 마셔,
여기가 우리의 낙원이라"
여러분 ! 모든 가족원들이 각각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가정,
더구나 식사는 꼭 함께 하는 가정, 우리 주위에 얼마나 있을까요 ?
정말 이 찬송의 가사처럼 사는 가정이라면,
분명 그 가정에는 이런 감사의 찬송이 넘치게 될 것입니다.
"고마워라 임마누엘, 예수만 섬기는 우리 집 !
고마워라 임마누엘, 복되고 즐거운 하루하루 !"
여러분들의 가정이 이런 가정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가정 ! 얼마나 정답고 따뜻하고 푸근하고 그리운 말입니까 ?
생각만 해도 달려가고 싶고, 생각만 해도 행복해지는 곳입니다.
그러나 가장 따뜻하고 포근해야 할, 정말 편히 깃들 둥지 같아야 할 가정이
오히려 가장 가슴아픈 곳으로 바뀌어지고 있습니다.
몇 일전, 한국 mbc방송국에서는 현재 한국의 가출 청소년이 20만 명을 넘어섰다고
보도했습니다.
그래서 '가출팸'이라는 말도 생겨났는데,
그것은 가출한 청소년들이 방을 구해 함께 동거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일본, 한국 등의 이혼율은 30%대로 세계 톱 클래스입니다.
한국도 일본도 초등학생 3명 중 1명이 양친 부모 중,
어느 한 쪽이 친부모가 아니라고 합니다.
이혼이나 별거, 사별 등의 이유 때문입니다.
이래서는 안됩니다.
이 땅의 가정들이 본래의 가정의 모습을 회복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회복의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소개할 가정 역시 상처투성이의 가정이었습니다.
유대 베들레헴에 엘리멜렉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아내와 두 아들이 있었는데 오순도순 행복하게 잘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해, 그들의 고향에 아주 심한 흉년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온 가족과 함께 이웃나라인 모압으로 이민을 갔습니다.
처음 얼마동안은 그럭저럭 편안한 삶을 살았는데,
몇 해가 지난 어느 날 家長 엘리멜렉이 갑자기 병들어 죽고 맙니다.
남편을 잃고 낙심한 아내 나오미는 두 아들을 결혼시킵니다.
며느리들은 이민 간 나라인 모압의 여인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몇 해가 지나지 않아, 그만 두 아들마저 병으로 죽고 맙니다.
졸지에 그 집안의 남자들이 다 죽고, 여인들만 남게 된 것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약3천 년 전인 그 시대에 집안 남자들이 다 죽고,
여인들만 남았다는 것은 모든 소망이 끊어졌음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엘리멜렉과 나오미의 가정은 가장 불행한 가정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
이 가정은 다시 행복한 가정으로 회복이 됩니다.
더구나 하나님 앞에 크게 쓰임 받는 참으로 복된 가정이 됩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
오늘 그 과정을 보면서, 우리들의 가정도, 이 땅의 가정들도
가장 복된 가정으로 변화되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첫째, 남겨진 가장(家長) 나오미가 진실로 회개했습니다.
본문20-21절, "나오미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나오미라고 칭하지 말고 마라라 칭하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나로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거늘,
너희가 어찌 나를 나오미라 칭하느뇨"
나오미란 이름의 뜻은 '기쁨'이란 뜻입니다.
그런데 나오미는 지금 자기를 나오미라는 이름으로 부르지 말라고 합니다.
오히려 '마라'라고 부르라고 합니다. 마라는 '쓰다'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나오미는 지금 하나님 앞과 사람 앞에서
자기의 어리석음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룻기1장에만 '돌아가다'라는 단어가 8번이나 나옵니다.
나오미는 입을 열 때마다 "돌아가야 된다, 돌아가야 된다"고 말합니다.
그 까닭이 무엇이겠습니까 ?
그렇습니다. 나오미는 자기 인생과 가정에 불어닥친 어려움의 원인이,
자기 땅에서 떠났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가나안 땅은 약속의 땅이었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그 땅은 하나님 백성이,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하며
살라고 주신 땅이었습니다.
그러나 나오미의 가정은 하나님의 주신 훈련을 견디지 못하고,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축복의 땅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좀 더 편해보려고, 좀 더 행복해 보려고 유대 땅을 떠났던 것입니다.
지금 나오미는 바로 이것을 회개한 것입니다.
또한 나오미는 자기 자녀들을 믿음의 자녀로 기르는 것에는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들들을 이방 여인과 결혼시키고 말았던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나오미의 이 잘못을 오히려 선한 것으로 바꾸어 주셨지만,
분명 나오미가 행한 것을 큰 죄악이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나오미는 어려움을 통해 이렇게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사명보다는,
내 삶과 유익을 좇아서 선택했던 내 죄가, 이런 불행과 어려움을 불렀구나 !"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결단한 것입니다.
"하나님 앞으로 돌아가자 ! 믿음으로 다시금 새 인생을 살자 !"
나오미는 사명의 땅으로 돌아가기를 결심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더 이상 사람을 의지하는 삶을 살지 않고,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살기로 결심합니다.
그래서 며느리들을 남겨두고 떠나기로 작심합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사람은 믿고 의지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사랑하고 섬겨야 할 대상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사람을 의지하려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때때로 우리에게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도록 만드십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
나오미의 가정처럼 하나님만을 의뢰하는 믿음을 회복하시고,
사명을 회복하셔서, 복된 가정을 세우시기를 축복합니다.
둘째, 이 가정이 회복된 데는,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서로가 함께 하는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남겨진 세 여인은 얼마든지 더 더욱 불행해 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 자신보다 상대를 더욱 사랑함으로,
불행을 오히려 행복으로 바꿔버렸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함께'라는 단어가 무려 다섯 번이나 나옵니다.
여러분 ! 우리 인간들은 말입니다, 고통이나 환란이 닥치면 그 탓을 대개의 경우
다른 사람에게로 돌리고 맙니다.
나오미의 입장에서 보면, 며느리들이 매우 미울 수도 있었습니다.
그 며느리들이 자식을 죽게 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후손하나 낳지 못한 며느리들을 원망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또한 며느리들의 입장에서 보세요.
남편들이 죽은 것은, 사고가 아닙니다. 병입니다.
그러니 이런 약한 남자로 양육한 시어머니가 미울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남편을 잃은 이들의 마음은 모두가 멍들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세 여인은 함께 일어납니다.
그리고 함께 같은 방향으로 걸어갑니다.
시어머니의 고향 땅을 자기들의 고향으로 여기며 살겠다고 말합니다.
성경은 이 장면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룻기1:8-14, "나오미가 두 자부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각 어미의 집으로 돌아가라.
너희가 죽은 자와 나를 선대한 것 같이 여호와께서 너희를 선대하시기를 원하며,
여호와께서 너희로 각각 남편의 집에서 평안함을 얻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고
그들에게 입맞추매, 그들이 소리를 높여 울며 나오미에게 이르되,
아니니이다 우리는 어머니와 함께 어머니의 백성에게로 돌아가겠나이다.
나오미가 가로되 내 딸들아 돌아가라 너희가 어찌 나와 함께 하려느냐,
나의 태 중에 너희 남편 될 아들들이 오히려 있느냐.
내 딸들아 돌이켜 너희 길로 가라. 나는 늙었으니 남편을 두지 못할지라.
가령 소망이 있다고 말한다든지, 오늘밤에 남편을 두어서 아들을 생산한다 하자.
너희가 어찌 그것을 인하여 그들이 자라기를 기다리겠느냐.
어찌 그것을 인하여 남편 두기를 멈추겠느냐.
내 딸들아 그렇지 아니하니라.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으므로, 나는 너희로 인하여 더욱 마음이 아프다.
그들이 소리를 높여 다시 울더니,
오르바는 그 시모에게 입맞추되 룻은 그를 붙좇았더라"
여러분 ! 자신보다 상대를 아끼는 이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입니까 ?
젊은 며느리들에게도 그 자신을 위한 삶이 있어야 하는 것을 이해하는 시어머니입니다.
그 어머니를 붙잡고 우는 두 며느리의 모습이 정말 너무 아름답지 않습니까 ?
이 눈물은 진정한 사랑의 눈물입니다.
서로의 처지와 형편을 이해하는 가정을, 하나님은 축복하십니다.
이해와 사랑이 있는 가정, 절대로 망하지 않습니다. 회복됩니다.
고린도전서13장 말씀처럼, 사랑은 모든 것을 참게하고, 모든 것을 믿게 하고,
모든 것을 바라게 하며, 모든 것을 견디게 합니다.
나오미의 가정이 회복된 것은 바로 그 넘치는 사랑이었습니다.
그 사랑이 여러분의 가정에도 넘쳐흘러서
회복되고 따뜻한 가정이 되시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 나오미의 가정이 회복된 데는, 신앙고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 신앙고백이 무엇입니까 ?
하나님을 자기의 주인으로 인정하며, 고백하는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
삶이 어렵고 복잡할수록, 우리는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신앙을 확인하고,
또한 그 신앙을 고백해야 합니다.
본문14절, "그들이 소리를 높여 다시 울더니
오르바는 그 시모에게 입 맞추되 룻은 그를 붙좇았더라"
여기서 '붙좇았더라'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다브카'라는 단어입니다.
그 뜻은, '굳게 결합하다. 붙들고 늘어지다.'입니다.
이 단어가 창세기에서는 이렇게 사용되었습니다.
창세기2:24,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여기에서 '연합'이 '다브카'입니다.
그렇습니다. 룻은 그러한 마음으로 시어머니를 따른 것입니다.
룻의 시어머니를 향한 사랑, 하나님을 향한 신앙고백을 본문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본문16-17절, "룻이 가로되
나로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서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장사될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와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여호와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받아들이는 이 룻의 고백 속에는,
이미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 룻은 어떻게 이런 신앙을 가지게 되었을까요 ?
이것을 성경은 직접적으로 설명해 주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나오미는 자부들에게 이야기할 때,
여호와 혹은 전능자라는 단어를 1장 속에 무려 7번이나 사용합니다.
누군가와 대화를 하면서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단어를
일 곱번이나 사용한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모든 절망을 버리고, 하나님만 따르겠다는 것입니다.
룻은 시어머니의 그 믿음의 결심에서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 역시 나오미처럼,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이 닥쳐도,
하나님을 의뢰하고 툭툭 털고 일어날 수 있어야,
그것이 우리들 후손에게 믿음의 유산으로 남겨지게 됩니다.
우리 가정에 고난과 어려움이 올 때,
오히려 그때가 바로 하나님을 증거하고 나타낼 중요한 때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도우시는 하나님을 최악의 상태에서도 신실하게 믿고
오히려, 다른 가족들에게 힘과 용기를 줄 수 있는 부모들, 또는 자녀라면
우리들 가정은 분명히 회복되고 행복한 가정이 될 것입니다.
오늘 나오미의 가정이 바로 이런 가정이었습니다.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것처럼, 고향으로 돌아온 나오미는
같은 가문의 보아스에게 며느리 룻을 재가(再嫁)시키게 됩니다.
하나님은 그 룻에게 아들을 주십니다.
그 아들이 오벳이고 그는 다윗의 할아버지가 됩니다.
그리고 그 혈통을 통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셨습니다.
우리 모두 참으로 어려운 상황에서도
나오미와 룻처럼, 위대한 한 가문을 일으키는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기 위해,
첫째, 우리의 가정들에서 진정으로 회개할 것들을 회개합시다.
둘째,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함께 하는 사랑을 구합시다.
, 특히 나보다 서로를 더욱 사랑합시다.
셋째, 삶이 어렵고 복잡할수록, 하나님을 향한 나의 신앙을 확인하고, 또한 고백합시다.
우리들의 가정이 행복한 가정, 위대한 가정, 최고의 가정되기를 축복합니다.
할렐루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