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4월3일, 로마서7:18-25(신령한 그리스도人의 모습은 과연 무엇 ?) > 主日説教原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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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2011년4월3일, 로마서7:18-25(신령한 그리스도人의 모습은 과연 무엇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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投稿者 박성철
コメント 0件 照会 11,942回 日時 11-04-05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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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 ! 옆에 계신 복스러운 지체들과 함께 이렇게 축복합시다.

  썩어 없어질 세상 것만을 따르다가, 허무하게 인생을 마치지 맙시다.
  당신은 반드시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의의 면류관, 생명의 면류관, 영광의 면류관,
  썩지 않는 면류관을 상급(賞給)으로 받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
  여러분은 어떤 신앙인의 영성(靈性)이 신령한가 혹은 그렇지 않은가의 여부를
  무엇을 기준으로 판단하십니까 ?

  어떤 분들은, 믿음에 대해, 교회생활에 대해, 성경에 대해 유창하게 말하는 사람을
  신령한 사람으로 간주합니다.
  또 어떤 분들은, 봉사 잘하는 사람을 신령한 사람으로 간주합니다.
  또 어떤 분들은, 가장 오랜 시간, 가장 큰 소리로 기도하는 사람을
  가장 영성이 풍부한 사람으로 간주합니다.
  또 어떤 분들은, 눈물을 흘리며, 손을 높이 들고 찬송하는 사람을
  영성이 충만한 사람으로 간주합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 영성이 충만하다고 생각하십니까 ?
  또한, 여러분은 자기 자신의 영적 수준이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십니까 ?

  저는 이 시간 분명하게 말씀드립니다.
  신앙에 대한 설득력 있는 말들, 잘 짜여진 유창한 기도, 은혜가 넘쳐 보이는 찬양,
  여러 곳에서의 분주한 봉사와 헌신 등이
  영성(靈性)과 관계가 없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그러한 것들이 반드시 신령한 영성을 소유한 증거라고는 절대 말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 무엇이 참된 영성의 기준일까요 ?

  첫째, 참된 영성의 척도, 참된 영성의 가장 분명한 기준은
 '지금 우리 속에서는 넘쳐나는 욕구들이 무엇이냐 ?'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 속에 있는 욕구들은, 대개의 경우 우리의 삶에 동기를 부여하고,
  우리의 삶을 통제할 만큼 강력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은, 우리 속에 있는 욕구에 의해,
  거의 모든 부분이 좌지우지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또한, 그 욕구들의 내용을 면면히 살펴보면,
  자기 자신이 얼마나 영성이 충만한 사람인지는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지금 여러분 속에는 어떤 욕구들이 솟아나고 있습니까 ?
  그저 좋은 것 먹고 싶고, 푹 자고 싶고, 편히 쉬고 싶습니까 ?
  그렇다면 말 못하는 짐승들의 본능과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사업에 성공해서 돈을 많이 벌고 싶고, 좋은 직장에 취직하여 안정된 삶을 살고 싶고,
  아름다운 여인, 준수한 남자를 만나 가정을 이루고 싶고,
  예쁜 자녀들을 갖고 싶고, 죽기 전까지 건강하게 살고 싶습니까 ?
  만약 이러한 것들로만 우리들의 마음이 꽉 차여져 있다면,
  우리의 영성은 결코 신령한 것일 수 없습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이라고 절대 말할 수 없습니다.

  20세기의 선지자 A. W. Tozer목사가 말합니다.
 "자신이 남보다 더 거룩하다고 말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세상)행복에 대한 (간절한)갈망'은 실상 그들이 거룩하지 않다는 충분한 증거이다"

  그렇습니다.
  참된 그리스도인, 즉 영성이 충만한 사람은
  세상의 행복에 대한 욕망보다, 거룩해지려는 욕망을 자기 속에 채우는 사람입니다.

  베드로전서1:16을 보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레위기20:26에서는, "너희는 내게 거룩할지어다
  이는 나 여호와가 거룩하고 내가 또 너희로 나의 소유를 삼으려고
  너희를 만민 중에서 구별하였음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영국교회의 개혁에 헌신했고 감리교의 창시자였던 존 웨슬리는
  어느 영국교회 성도들에게 이렇게 교훈했습니다.
 "내가 보기에 여러분은 사랑 안에서 온전해진 것 같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면 거룩해질 수 있는가를 배우기 위해서
  교회에 오는 것이 아니라, 종교를 즐기기 위해 교회에 오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거룩하여지기를 열망합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거룩해지기를 원하시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거룩해질 수 있을까요 ?
  예수님께서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7:17-19,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 저희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

  그렇습니다.
  우리를 거룩하게 하는 것은 진리 즉, '하나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우리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여
  모든 것이 하나님 앞에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게 합니다(히브리서4:12-13).

  사랑하는 여러분 !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이번 4월에는 더욱 거룩함에 이르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둘째, 영성이 충만한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심령 속에서 거룩한 싸움을 계속적으로 행하는 사람입니다.

  믿음의 선배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본문18절-25절,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 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바울은 자신의 육신의 욕심을 제어하고자 수없이 고통 하였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고 탄식했습니다.

  베드로 사도 역시 우리들에게 이렇고 권고합니다.
  베드로전서2:11,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그런데 여러분, 욕심을 제어하는 일은 우리 힘으로 되어지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
  어떻게 우리 속에 있는 잘못된 욕망들을 제어할 수 있을까요 ?

  그렇습니다.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할 때, 성령께서 제어해 가십니다.
  고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로마서8:1-2,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이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본문의 바울의 고백처럼,
  지금 여러분 속에서, 하나님의 법과 육신의 법이
  처절하게 다투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까 ?
  그렇다면 감사하십시오. 여러분의 영성은 살아있습니다.

  더구나 살아 있는 여러분의 그 영성은,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통해 신령한 영성으로 더더욱 변화되고 성장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와 반대로 지금 아무런 갈등도 없습니까 ?
  세상 속에서 세상 욕망에 빠져 살아감에도 불구하고 고통이 없습니까 ?

  하나님 말씀은 그저 주일에 한 번 듣고 위로 받는 것으로 만족하고,
  나머지 6일 간은 세상과 타협하며 살면서도, 아무런 양심의 가책이 없습니까 ?
  만약 그렇다면, 지금 우리의 영성은 혼수상태인 것이 분명합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이번 4월 달은 고난주간과 부활주일이 있는 달입니다.
  생명을 걸고 결단하여, 영혼과 영성의 부활이 있기를 축복합니다.

  셋째, 영성이 충만한 그리스도인은, 예배가 다릅니다.

  1720년, 당시 영국은 신앙의 암흑기였습니다.
  당시에는 구원은 도덕적 행위로부터 얻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사회적 신분이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사회규범을 지키는 것으로
  구원에 대한 확신을 얻었습니다.
  반대로 하류층에 있는 사람들은 생활과 삶의 고달픔으로
  영혼의 구원에 대해 관심을 가질 여유가 전혀 없었습니다.
  즉, 그 당시에는 부자들만 천국에 갈 여유가 있었습니다.(참으로 잘못된 생각임)

  이런 상황에서
  1729년 영국 옥스포드 대학의 20대 중반의 몇몇 학생들이 한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그 이름은 'The Holy Club'(神聖 클럽, 거룩한 동호회)이었습니다.

  이들은 매일 저녁6시부터 9시까지 기도, 헬라어 성경공부, 교부들의 글을 읽었으며,
  일주일에 한 번은 성찬식을 그리고 이틀은 금식을 하였습니다.
  활발한 자선활동, 감옥 방문, 병자 위문 등 수 많은 선행도 행하였습니다.
  이 젊은이들은 이러한 자신들의 행위로 영국이 변화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1년이 지나지 못해 이들은 지치기 시작했습니다.
  스스로에 대해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럴수록 서로를 질책하고 격려하고 온 힘을 다하면서
  자신들의 모임을 지켜나가기 위해 몸부림을 쳤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은 서로를 한없이 피곤하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말을 차마 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신앙이 없는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이 신성 클럽의 리더는 존 웨슬리였습니다.
  웨슬리는 신성 클럽을 이끌어 가며 깊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왜냐하면 확신도 기쁨도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웨슬리는 이 클럽을 중도 하차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이 모임도 중단되고 말았습니다.

  웨슬리는 선교사가 되기로 마음을 정했습니다.
  그것이야말로 자신의 구원을 이루는 최선의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선교지인 아메리카의 조지아에 3년도 머물지 못했습니다.
  아메리카 남부의 인디언들에게 효과적인 복음도 전하지 못했고,
  오히려 마을 처녀와 연애 사건에 말려들었습니다.
  그는 더욱 깊은 실망에 빠졌고 결국 영국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인간의 노력,
  그리고 자신의 구원을 위한 인간의 노력은
  자신의 힘이 다함과 동시에 그쳐지고 만 것입니다.

  웨슬리가 런던에 돌아온 후 몇 달이 지난 1738년5월24일, 그 날은 수요일이었습니다.
  당시 목사였던 그는 교회에 별로 가고 싶지 않았지만,
  마지못해 수요일 저녁예배에 참석했었노라고 당시의 상황을
  자신의 일기에 기록했습니다.
  그는 그 날 밤, 웨슬리는 올더스게이트란 거리에 있는 한 교회에서
  어떤 평신도가 읽던 루터의 로마서 강해 서문을 듣고 큰 변화를 체험하였습니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자기의 노력이나 공로로 되는 것이 아니다"
  오후 9시15분쯤, 계속해서 또 다른 말씀이 웨슬리의 마음을 때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서 사람의 심령에 변화를 일으키신다"

  웨슬리는 훗날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그 순간 나는 확신을 얻었다.
  그리스도께서 정말 내 죄를 사하셨고 나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구원하셨음을 ......."

  웨슬리는 자신의 노력으로 선해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선하다고 인정받는 것이라는 하늘의 계시를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가 바로 거듭된 실패자가 위대한 종교개혁자로 바뀌는 순간이었습니다.

  성도여러분 ! 하나님의 전은 하나님이 계시는 곳입니다.
  하나님은 예배 가운데서 우리와 깊이 있는 교제를 나누십니다.
  웨슬리는 예배 중, 말씀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과의 깊은 영적 만남을 가졌습니다.
  즉 영성이 죽었던 그가, 예배를 통해 개혁자로 변화된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 예배를 회복합시다.

  그런데 여러분 !
  웨슬리에게 있어서 1738년5월24일의 그 예배가 그가 드린 첫 예배는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때까지 드렸던 웨슬리의 예배는 과연 무엇입니까 ?
  또한 우리 하나님은 왜 그 수요예배 때 웨슬리에게 특별한 은혜를 주셨을까요 ?

  그렇습니다.
  그 예배야말로 웨슬리가 모든 것을 내려놓았던 예배였기 때문입니다.
  그때까지의 웨슬리의 예배는, 자기 자신의 의를 나타내기 위한 예배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주님의 원하시는 것은 상한 마음 통회하는 심령입니다.
  시편34:18,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시편51:17,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

  존 웨슬리 목사는 88세의 삶을 마감하면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 평생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셨던 것이 나에게는 최고의 행복이었다"
  웨슬리의 그 행복은 예배를 통해, 말씀을 통해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이 행복이 오늘 여러분들에게도 동일하게 체험되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들 ! 우리 신령한 하나님의 사람이 됩시다.

  그러기 위해,
  첫째, 거룩한 욕망을 우리 속에 채웁시다.
  썩어 없질 것만을 소망하는 우리 마음에, 거룩한 욕망들을 힘껏 던져 넣읍시다.
  둘째, 내 마음 속에서, 거룩한 욕망과 세상 욕심의 욕망이 서로 싸울 때,
  기도와 말씀으로 거룩한 욕망을 응원합시다.
  셋째, 상한 심령으로 드리는 예배, 자신을 철저히 내려놓는 예배를 회복합시다.
  예배의 성공자가 되어, 신앙과 인생의 성공자가 됩시다.

  이렇게 우리들이 살아갈 때,
  하나님 은혜가운데 우리 본향교회는
  신실한 성도들이 가득한 교회로 더욱 성장할 것입니다. 할렐루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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