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2011년10월30일, 요한복음4:19-24(예배의 개혁을 이룬 종교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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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 계신 복스러운 지체들을 함께 축복합시다.
전문가들의 말, 다수의 의견, 환경, 이 모든 것보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과 사명을 더욱 귀중히 여기는 우리들이 됩시다.
우리의 눈을 기도의 눈물로 채울 때,
하나님께서는 크고 놀라운 것들을 볼 수 있도록, 우리의 눈을 열어 주실 것입니다.
오늘은 제494주년 종교개혁 기념주일입니다.
1517년10월31일, 마르틴 루터는 95개 조항의 질문을,
당시 카톨릭 교회를 향해 던졌고, 그것이 종교개혁의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몇 번 소개했던 것처럼, 95개 조항 중에는 이런 것들이 있었습니다.
제27조, 면죄부를 산 돈이 돈 궤짝에 딸랑 소리내며 떨어질 때,
연옥에 있던 영혼이 연옥 밖으로 뛰어 나온다는 것은 허황(虛荒)된 거짓말이다.
제45조, 면죄부를 사는 사람은 교황의 면죄권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진노에 참여하는 것이다.
제95조는 "크리스천은 많은 고난을 거쳐 천국에 가는 것이지
(면죄부를 샀다고) 안심하는 마음으로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다."
그렇습니다.
루터를 포함한 종교개혁가들이 가장 많이 지적한 당시 카톨릭 교회의 폐단은,
면죄부를 통한 구원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구원은 예수님께서 흘리신 보혈의 은혜로 되는 것이지,
면죄부로 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성경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믿음으로,
구원이 이루어짐을 분명히 말합니다.
그래서 종교개혁자들은 이렇게 외쳤습니다.
Sola Scriptura !(오직 성경으로)
Sola Gratia !(오직 은혜로)
Sola Fide !(오직 믿음으로)
이렇게 종교개혁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진 후,
교회 내에서 가장 많이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것은 예배의 모습이었습니다.
종교개혁 전까지 카톨릭 교회의 미사는 겉으로는 화려하고 장엄하기는 했으나,
지나치게 의식주의적이었으며 외형적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 말씀이 바르게 설교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종교개혁은 의식적, 외형적인 예배를,
하나님 말씀 중심의 예배로 완전히 바꾸었습니다.
초대교회의 예배를 회복시킨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사실 때문에, 종교개혁은 어떤 의미에서는 예배의 개혁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종교개혁은 바른 예배를 회복시켰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예배 없는 교회가 교회일 수 없는 것처럼,
예배가 없는 신앙은 절대로 참 신앙일 수 없습니다.
오늘 종교개혁 494주년을 맞이하여, 초대교회 성도들의 감격의 예배,
종교개혁자들의 뜨거운 예배를, 우리도 드릴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자 ! 어떤 예배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참된 예배일까요 ?
오늘 본문은,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입니다.
본문에서, 사마리아 여인은 예배에 대해 예수님께 질문을 합니다.
그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에서,
우리는 어떤 예배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참된 예배인가를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의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어디에서 예배드려야 참된 예배입니까 ?" 즉 장소에 대한 질문입니다.
북 이스라엘의 여로보암 왕 이후로 사마리아 사람들은, 예루살렘 성전이 아닌
다른 곳(벧엘, 단)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主前930년 경)
그것은 여로보암 왕이 행한 여러 죄악들 중 가장 악한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중앙 성소(예루살렘 성전)가 아닌 곳에서의 예배는,
북 이스라엘이 멸망할 때까지 200여 년 간 계속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께 이렇게 물었던 것입니다.
본문20절,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이에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셨습니다.
본문21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예수님의 첫 번째 대답, "더 이상 예배는 장소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로 말미암아 예루살렘 성전에서의 예배는
더 이상 큰 의미가 없어졌습니다.
예배의 중심은 예루살렘 성전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어느 장소이든, 어떤 나라에서든,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이 되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바로 '복음'인 것입니다.
더구나 본래 우리는, 감히 하나님께 예배할 수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유대인도 이방인도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보좌 앞에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떤 인종, 어떤 계층, 어떤 죄인이라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의지하고,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
우리 인간이 존재하는 가장 큰 이유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예배하는 자들을 통해 가장 큰 영광을 받으십니다.
복스러운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들은 지금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인 되시는 본향에 나아와,
정성을 다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들의 이 모습은,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예배하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모습을,
매우 큰사랑으로 지켜보시며, 큰 기쁨으로 영광 받으실 것을 믿습니다.
오늘 귀한 모습으로 예배하는 여러분 모두에게,
예배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의 특별한 복과 은총이
충만하게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의 두 번째 대답, "알고 예배하라"
사마리아 여인을 향한 예수님의 대답은 이어집니다.
본문22절,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
예수님은, 당시 사마리아인들의 잘못된 예배를 이렇게 지적하십니다.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당시 사마리아 사람들은 성경을 믿되 모세 오경만 믿고,
다른 성경 즉, 선지서, 역사서, 시가서 등은 믿지를 않았습니다.
분명 그들의 믿음은 '오직 성경으로'(Sola Scriptura)가 아니었습니다.
구약성경 대부분을 제외한 모세 오경만으로는,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충분한 깨우침(계시)을 가질 수 없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
그렇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충분한 깨우침과 지식 없이 드리는 예배는,
분명 온전한 예배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호세아 선지자는 이렇게 외쳤습니다.
호세아6:3,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여러분은 하나님을 얼마나 아십니까 ?
하나님은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 하나님이심을 아십니까 ?
하나님이 우주만물을 지으셨음을 아십니까 ?
하나님이 죄인 된 우리를 위해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시고,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신 것을 아십니까 ?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것을 아십니까 ?
예수님이 우리를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해 가시기 위해,
세상에 다시 오실 것도 아십니까 ?
성령 하나님이 우리를 붙들고 계심도 확실히 아십니까 ?
이 모든 것을, 우리가 알고 또 믿고 또 감사로 고백하며 예배한다면,
그 예배는 참으로 온전한 예배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도 함께 고백합시다.
모든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성부 성자 성령의 하나님을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을 믿습니다.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하나님의 우편에 계신 예수님께서,
우리들을 위해 세상에 다시 오실 것을 믿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믿습니다.
이 모든 것을 깨닫게 하시고, 은혜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오늘 우리가 드리는 이 예배는 하나님께 큰 영광이 되는 줄 믿습니다.
예수님의 세 번째 대답,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라"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본문23-24절,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그렇습니다. 예배는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야 합니다.
여기에서 '신령과 진정으로'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엔 프뉴마티 카이 알레데이아'인데, 이것을 직역하면, '영과 진리로'라는 뜻입니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본 구절의 '프뉴마'가 '성령 하나님'이 아니라,
영이신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인간의 가장 높고 깊은 부분이라 말합니다.
진리에 해당되는 '알레데이아'역시 '성실'이나 '정직'의 의미가 아니라,
예수님 안에 계시된 진리를 의미합니다.
결국, '신령과 진정으로'의 의미는, 영적인 하나님을 알고,
그 분과 최고의 교제를 나누며 예배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하나님께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최상의 최고의 예배를 드리고 계십니까 ?
혹, 사단의 유혹에 빠져, 드리기는 드리되,
하나님께 상달되지 못하는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
우리 온 맘과 온 몸으로 하나님을 예배하여, 종교개혁자들이 회복한 그 예배를
온전히 후세에 전해줄 수 있는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예수님을 중심에 모시고, 예배드립시다.
하나님을 알고, 그 알게 된 하나님 높이며 예배드립시다.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과 최고의 교제를 나누며 예배드립시다.
예배는 우리들의 삶의 중심입니다.
예배는 우리가 영적으로 살아있음의 확인입니다.
예배는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우리들의 응답이며, 기쁨이며, 환희입니다.
예배는 하나님의 은혜의 통로이며, 구원의 축제입니다.
예배는 감사와 찬송입니다.
이 예배를 통하여 하늘의 생수가 강같이 흘러 넘칠 줄 믿습니다.
할렐루야 !
전문가들의 말, 다수의 의견, 환경, 이 모든 것보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과 사명을 더욱 귀중히 여기는 우리들이 됩시다.
우리의 눈을 기도의 눈물로 채울 때,
하나님께서는 크고 놀라운 것들을 볼 수 있도록, 우리의 눈을 열어 주실 것입니다.
오늘은 제494주년 종교개혁 기념주일입니다.
1517년10월31일, 마르틴 루터는 95개 조항의 질문을,
당시 카톨릭 교회를 향해 던졌고, 그것이 종교개혁의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몇 번 소개했던 것처럼, 95개 조항 중에는 이런 것들이 있었습니다.
제27조, 면죄부를 산 돈이 돈 궤짝에 딸랑 소리내며 떨어질 때,
연옥에 있던 영혼이 연옥 밖으로 뛰어 나온다는 것은 허황(虛荒)된 거짓말이다.
제45조, 면죄부를 사는 사람은 교황의 면죄권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진노에 참여하는 것이다.
제95조는 "크리스천은 많은 고난을 거쳐 천국에 가는 것이지
(면죄부를 샀다고) 안심하는 마음으로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다."
그렇습니다.
루터를 포함한 종교개혁가들이 가장 많이 지적한 당시 카톨릭 교회의 폐단은,
면죄부를 통한 구원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구원은 예수님께서 흘리신 보혈의 은혜로 되는 것이지,
면죄부로 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성경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믿음으로,
구원이 이루어짐을 분명히 말합니다.
그래서 종교개혁자들은 이렇게 외쳤습니다.
Sola Scriptura !(오직 성경으로)
Sola Gratia !(오직 은혜로)
Sola Fide !(오직 믿음으로)
이렇게 종교개혁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진 후,
교회 내에서 가장 많이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것은 예배의 모습이었습니다.
종교개혁 전까지 카톨릭 교회의 미사는 겉으로는 화려하고 장엄하기는 했으나,
지나치게 의식주의적이었으며 외형적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 말씀이 바르게 설교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종교개혁은 의식적, 외형적인 예배를,
하나님 말씀 중심의 예배로 완전히 바꾸었습니다.
초대교회의 예배를 회복시킨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사실 때문에, 종교개혁은 어떤 의미에서는 예배의 개혁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종교개혁은 바른 예배를 회복시켰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예배 없는 교회가 교회일 수 없는 것처럼,
예배가 없는 신앙은 절대로 참 신앙일 수 없습니다.
오늘 종교개혁 494주년을 맞이하여, 초대교회 성도들의 감격의 예배,
종교개혁자들의 뜨거운 예배를, 우리도 드릴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자 ! 어떤 예배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참된 예배일까요 ?
오늘 본문은,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입니다.
본문에서, 사마리아 여인은 예배에 대해 예수님께 질문을 합니다.
그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에서,
우리는 어떤 예배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참된 예배인가를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의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어디에서 예배드려야 참된 예배입니까 ?" 즉 장소에 대한 질문입니다.
북 이스라엘의 여로보암 왕 이후로 사마리아 사람들은, 예루살렘 성전이 아닌
다른 곳(벧엘, 단)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主前930년 경)
그것은 여로보암 왕이 행한 여러 죄악들 중 가장 악한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중앙 성소(예루살렘 성전)가 아닌 곳에서의 예배는,
북 이스라엘이 멸망할 때까지 200여 년 간 계속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께 이렇게 물었던 것입니다.
본문20절,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이에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셨습니다.
본문21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예수님의 첫 번째 대답, "더 이상 예배는 장소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로 말미암아 예루살렘 성전에서의 예배는
더 이상 큰 의미가 없어졌습니다.
예배의 중심은 예루살렘 성전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어느 장소이든, 어떤 나라에서든,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이 되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바로 '복음'인 것입니다.
더구나 본래 우리는, 감히 하나님께 예배할 수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유대인도 이방인도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보좌 앞에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떤 인종, 어떤 계층, 어떤 죄인이라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의지하고,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
우리 인간이 존재하는 가장 큰 이유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예배하는 자들을 통해 가장 큰 영광을 받으십니다.
복스러운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들은 지금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인 되시는 본향에 나아와,
정성을 다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들의 이 모습은,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예배하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모습을,
매우 큰사랑으로 지켜보시며, 큰 기쁨으로 영광 받으실 것을 믿습니다.
오늘 귀한 모습으로 예배하는 여러분 모두에게,
예배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의 특별한 복과 은총이
충만하게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의 두 번째 대답, "알고 예배하라"
사마리아 여인을 향한 예수님의 대답은 이어집니다.
본문22절,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
예수님은, 당시 사마리아인들의 잘못된 예배를 이렇게 지적하십니다.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당시 사마리아 사람들은 성경을 믿되 모세 오경만 믿고,
다른 성경 즉, 선지서, 역사서, 시가서 등은 믿지를 않았습니다.
분명 그들의 믿음은 '오직 성경으로'(Sola Scriptura)가 아니었습니다.
구약성경 대부분을 제외한 모세 오경만으로는,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충분한 깨우침(계시)을 가질 수 없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
그렇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충분한 깨우침과 지식 없이 드리는 예배는,
분명 온전한 예배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호세아 선지자는 이렇게 외쳤습니다.
호세아6:3,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여러분은 하나님을 얼마나 아십니까 ?
하나님은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 하나님이심을 아십니까 ?
하나님이 우주만물을 지으셨음을 아십니까 ?
하나님이 죄인 된 우리를 위해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시고,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신 것을 아십니까 ?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것을 아십니까 ?
예수님이 우리를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해 가시기 위해,
세상에 다시 오실 것도 아십니까 ?
성령 하나님이 우리를 붙들고 계심도 확실히 아십니까 ?
이 모든 것을, 우리가 알고 또 믿고 또 감사로 고백하며 예배한다면,
그 예배는 참으로 온전한 예배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도 함께 고백합시다.
모든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성부 성자 성령의 하나님을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을 믿습니다.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하나님의 우편에 계신 예수님께서,
우리들을 위해 세상에 다시 오실 것을 믿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믿습니다.
이 모든 것을 깨닫게 하시고, 은혜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오늘 우리가 드리는 이 예배는 하나님께 큰 영광이 되는 줄 믿습니다.
예수님의 세 번째 대답,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라"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본문23-24절,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그렇습니다. 예배는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야 합니다.
여기에서 '신령과 진정으로'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엔 프뉴마티 카이 알레데이아'인데, 이것을 직역하면, '영과 진리로'라는 뜻입니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본 구절의 '프뉴마'가 '성령 하나님'이 아니라,
영이신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인간의 가장 높고 깊은 부분이라 말합니다.
진리에 해당되는 '알레데이아'역시 '성실'이나 '정직'의 의미가 아니라,
예수님 안에 계시된 진리를 의미합니다.
결국, '신령과 진정으로'의 의미는, 영적인 하나님을 알고,
그 분과 최고의 교제를 나누며 예배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하나님께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최상의 최고의 예배를 드리고 계십니까 ?
혹, 사단의 유혹에 빠져, 드리기는 드리되,
하나님께 상달되지 못하는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
우리 온 맘과 온 몸으로 하나님을 예배하여, 종교개혁자들이 회복한 그 예배를
온전히 후세에 전해줄 수 있는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예수님을 중심에 모시고, 예배드립시다.
하나님을 알고, 그 알게 된 하나님 높이며 예배드립시다.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과 최고의 교제를 나누며 예배드립시다.
예배는 우리들의 삶의 중심입니다.
예배는 우리가 영적으로 살아있음의 확인입니다.
예배는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우리들의 응답이며, 기쁨이며, 환희입니다.
예배는 하나님의 은혜의 통로이며, 구원의 축제입니다.
예배는 감사와 찬송입니다.
이 예배를 통하여 하늘의 생수가 강같이 흘러 넘칠 줄 믿습니다.
할렐루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