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2012년4월29일, 누가복음5:1-11(빈 배<船>에 일어난 놀라운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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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 옆에 계신 지체들과 함께 이렇게 고백해 봅시다.
바울이 악한 것이 가득한 그레데에 디도를 남겨두었듯이,
하나님께서는 디도처럼 귀히 여기는 우리들을 이 험악한 세상에 남겨 두셨습니다.
우리는 이 땅 사람들을 인해 안타까워하시는,
우리 하나님의 아픈 마음을 함께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 인간들은 언제 가장 큰 보람을 느낄까요 ?
의사들은 말합니다. "내가 치료한 환자가 건강을 회복했을 때요 !"
선생님은 말합니다. "문제 많던 제자가 훌륭한 사람이 되었을 때요 !"
청소부는 말합니다. "내가 청소한 깨끗한 길을 사람들이 걸을 때요 !"
요리사는 말합니다. "내가 만든 음식을 손님들이 맛있게 먹을 때요 !"
그렇습니다. 우리 인간들은 자신이 무엇인가에 귀중히 쓰임 받고 있다고 생각할 때,
자신과 자신이 한 일에 대해 큰 보람을 느낀다고 합니다.
또한, 그 속에서 자신이 사는 이유와 목적을 발견한다고 합니다.
사실 우리 본향의 젊은 지체들을 포함하여,
이 땅에 와서 공부하는 많은 분들의 소망은,
'훗날 자기 자신이 귀한 곳에 쓰임 받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학생들이 가장 걱정하는 것 또한,
'공부를 마치고 난 뒤, 만약 쓰임을 받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여러분 모두는, 이 시대에 크게 쓰임 받는 큰 사람이 되시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은, '어떻게 해야 크게 쓰임 받는 사람이 되는가 ?'에 대해서,
본문인 누가복음5장 말씀을 바탕으로 그 답을 전하고자 합니다.
특별히 우리들은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아야 할 믿음의 자녀들입니다.
먼저 여러분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세상에서 쓰임 받는 것보다 하나님께 쓰임 받는 것을 더 기뻐할 수 있는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배 위에 앉아 계신 예수님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 !
이 배는 본래 누구의 배입니까 ?
그렇습니다. 아직 예수님께 부름 받기 前의 시몬 베드로의 배입니다.
그런데 본문을 보면, 지금까지 베드로의 배는 고기를 잡는데 만 쓰였지만,
지금은 예수님이 설교하시는 강단(講壇)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본문3절, "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육지에서 조금 띄기를 청하시고 앉으사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더니"
그런데 여러분 !
갈릴리 호수에 이 베드로의 배만 있었겠습니까 ?
아니지요. 많은 배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많은 배들 중에서,
바로 베드로의 배를 택하셔서 그 배에서 말씀을 전하십니다.
그냥 지나쳐 버릴 수도 있는 것이지만,
여러분 ! 호숫가의 하고많은 배(船)들 중에서
왜 그 배(船)가 예수님께 쓰임 받게 되었을까요 ?
그렇습니다.
오늘 말씀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그 배(船)입니다.
자 ! 그렇다면, 여러분 !
예수님은 어떤 과정 속에서 지금 이 배에 오르시게 된 것일까요 ?
그 앞의 상황을 먼저 설명하겠습니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어느 날 늦은 오후,
어부 베드로는 어느 때처럼 고기를 잡기 위해, 갈릴리 호숫가에서 배를 띄웠습니다.
당시 갈릴리 호수에서 고기잡이를 하는 어부들은, 초저녁에 나가서 밤을 꼬박 세우고
새벽녘에 일을 마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리고 배를 띄우는 날은, 비록 밤에 잠을 잘 수는 없었지만,
대신 배에 가득히 고기를 싣고 새벽을 맞는, 가슴 뿌듯함은 맛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날밤, 베드로는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 못했습니다.
밤새 몇 번이고 그물을 '내리고 끌어올리고'를 반복했지만, 빈 그물뿐이었습니다.
"한 번만 더, 한 번만 더 !"하며 밤새 반복했지만, 허탕뿐이었습니다.
그렇게 밤새 씨름하다보니, 어느새 동이 터 오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 당시 베드로가 얼마나 피곤했겠습니까 ?
사실, 사람은 결과가 좋으면 피로도 잘 못 느낍니다.
하지만 결과가 나쁘면, 그 피곤함이 몇 배로 몰려오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베드로는 너무나 피곤했습니다. 몸도 마음도 지칠 대로 지쳤습니다.
그러나, 꼬인 그물을 그대로 두고 집에 돌아갈 수는 없었습니다.
동터오는 아침, 베드로는 지친 몸으로 그물을 손질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 때, 예수님이 허락도 없이 베드로의 그 배에 오르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만약 여러분이 베드로의 입장이라면,
자신의 배에 갑자기 오른 예수님을 어떻게 생각했겠습니까 ?
그렇지요. 결코 좋은 마음일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더구나 밤새 고기 한 마리 못 잡고 빈 그물만을 손질하고 있었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
여기서 놀라운 것은, 베드로가 평소와는 다르게
(혹은 자신도 모르게, 혹은 뭔가에 끌려서) 예수님을 맞이했다는 것입니다.
나중에 밝혀진 일이지만, 예수님은 의도적으로 그 배에 가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많은 사람들은 생각합니다. 자기가 예수님을 선택했다고요 !
혹은 자기가 신앙을 (혹은 교회를) 선택했다고요 !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찾아오신 것입니다. 또한 예수께서 그곳으로 인도해 주신 것입니다.
이 사실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베드로는 자신의 배로 예수님을 맞아 들였습니다.
분명 평소의 자신을 볼 때,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 날 만큼은 뭔가 달랐습니다. 배에 오르신 그분을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여러분 ! 우리의 삶 속에서 평소와 다른 나 자신을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내가 이렇게 할 리가 없는 데 !'라고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혹은, '오늘 내가 왜 이러는 거야'라고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바로 그때 이렇게 믿으십시오.
'하나님께서 지금 나를 통해, 무엇인가 큰 일을 시작하셨다(혹은, 이루어 가신다).'라고
말입니다.
베드로는 이렇게 예수님의 특별한 초청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 초청을 통해, 고기 낚는 어부에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베드로는 예수님의 1등 제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들에게도 이런 특별한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할렐루야 !
그렇다면, 여러분 ! 예수님은 어떻게 그 배에 오르실 수 있었을까요 ?
다시 말해서 그 배는 왜 그토록 귀한 일에 쓰임 받을 수 있었을까요 ?
그렇습니다. 여러분 !
그 배가 이토록 귀한 일에 쓰임 받게 된 것은,
그 배가 텅텅 비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만약 그 배 안이 평소대로 이런저런 것들로 가득 차 있었다면,
그 배 위에는 예수님께서 오르셔서 말씀을 가르치실 자리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배는 그 때 비어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무엇이든지 비어 있어야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주방의 그릇도 바다의 배도 그리고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았던 사람들은 모두 비워 내는 기간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공생애를 앞두고 40일 동안 광야에서 자신을 비우셨습니다.
다윗도 약13년 동안 사울에게 쫓기며 자신을 비워 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사도 바울도 아라비아 사막에서 3년을 비웠으며,
요셉도 보디발의 집과 감옥에서 10년 이상 비워 내는 시간을 가졌고,
모세는 광야에서 무려 40년 동안이나 자신 속에 있는 모든 것을 비워 내야 했습니다.
귀하신 여러분, 크게 쓰임 받기를 원하십니까 ?
그렇다면, 비우십시오.
언제든지 주께서 내 속에 임하셔서, 나를 주장하실 수 있도록,
내 속에 있는 모든 것들을 철저히 비워내십시오. 그래야 크게 쓰임 받습니다.
자 ! 그렇다면,
베드로의 배는 어떤 것들을 비웠을까요 ?
첫째, 그물을 비웠습니다.
물고기를 잡는 어선(漁船)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물입니다.
무엇보다도 그물이 물고기로 가득 채워져야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
하나님께 쓰임 받기 위해서는 빈 그물이어야 합니다.
어떤 분들은 권력을 가지고 하나님 일을 하려고 합니다.
한국 역사상 기독교인이었던 대통령이 몇 분 있었습니다.
김영삼씨, 이명박씨 등입니다.
특히 김영삼씨가 대통령이 되자, 당시 많은 기독교인들이 큰 기대를 걸었었습니다.
그가 교회의 장로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재임 내내 단 한 번도 믿는 사람다운 모습을 보여주질 못했습니다.
오히려 커다란 실망만을 거듭 거듭 안겨주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권력의 그물은 하나님께 쓰임 받는 데 방해가 됩니다.
또, 어떤 분들은 돈과 물질로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합니다.
물론 돈이 있으면 하나님 일 하기가 좋습니다.
쉽기도 하고, 또 효과도 금방 나타나기도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돈으로 하나님 일을 하려고 하다가 시험에 빠지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 하나님은 가난하시지 않습니다.
또, 어떤 분들은 재능이나 전문지식으로 主님의 일을 하려고 합니다.
음악을 잘 하는 사람은 음악으로, 컴퓨터를 잘 하는 사람은 컴퓨터로,
경영을 잘 하는 사람은 경영으로, 음식을 잘 하는 사람은 음식으로
主의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자기가 가진 달란트를 사용하면 효과 만점입니다.
엄청나게 능률적으로 일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꼭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가진 재능이나 지식은 영적인 힘과 결합할 때만이
온전해 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이 가진 수단이나 방법은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야곱은 20년 동안 열심히 일해서 드디어 거부가 됐습니다.
거기까지는 자기 힘으로 된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거기가 한계였습니다.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 형 에서의 마음을 바꾸는 것이나,
뒤틀린 아들들을 바로잡는 것은 자기의 능력 밖에 있었습니다. 할 수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꼭 기억하십시오.
우리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재능과 지식 이전에 주님께서 주시는 영적 파워입니다.
권력보다, 돈보다, 실력보다, 재능보다 주님이 더 원하시는 것은,
주님께 꿇어 엎드린 무릎입니다.
또한 주 앞에 가지런히 모은 손(手)입니다.
새벽에 주님의 殿을 향해 달려나오는 발길이요,
그 입을 통해 고백하는 "나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주님 도와주세요 !"하는
中心인 것입니다.
안식 후 첫 날 새벽,'
아무런 대책 없이 예수님의 무덤까지 달려 온 세 여인의 막무가내의 사랑,
그것을 우리 主님은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지난20세기의, 最高 강해 설교가는 마틴 로이드 죤스 목사님입니다.
그런데 그 분이 목사님이 되기 전에 어떤 분이셨는가 하면 의사였습니다.
의사도 보통 의사가 아니라 왕립(Royal)의사였습니다.
영국에서는 국립(National)보다 더 위에 있는 것이 왕립(Royal)입니다.
왕립의사라고 하면 명예, 배경, 실력 等 모든 것을 갖췄다는 것입니다.
그런 특별한 실력을 갖춘 분이었기에, 이 분이 목사님이 되기로 작정했을 때는,
왕립의사라는 것을 최대한 살려서 목회하기를 원했습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주일에 예배드리러 와서, 왕립의사에게 진찰까지 받고 갈 수 있다고 한다면
얼마나 전도가 잘되겠습니까 ?
그러나 하나님은 로이드 죤스 목사님이 가진,
그 재능과 실력의 그물을 비워 내게 하셨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게 하셨습니다.
아무리 전도하고, 아무리 설교해도, 좀처럼 성장하지 않았습니다.
로이드 죤스 목사님은 주저 없이, 의사의 직분을 내려놓았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놀라운 설교의 능력을 주셨습니다.
결국 그 분은, 하나님의 은혜로 20세기 최고의 강해 설교가가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혹 자신이 가진 재능으로 우쭐해 있지는 않습니까 ?
그것은 큰일나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사모하십시오. 주님 앞에 무릎꿇으십시오.
손에 들려진 모든 것을 내려놓으십시오. 그리고 두 손을 모으십시오.
하나님은 그렇게 비워진 우리를 크고 놀랍게 세워 쓰시는 것입니다.
둘째, 오늘 베드로의 배에는 고기가 없었습니다.
여러분 ! 만약 베드로의 배에 고기가 가득했다면, 예수님이 오르실 수 있었을까요 ?
아니요 !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고기를 크기 별로 분류해야 지요. 먹이와 물도 넣어주어야 하지요.
물고기를 사줄 사람과 흥정도 해야 하지요.
그 후에는 배 위를 정리도 해야 지요. 너무도 바빴을 것입니다.
사실 베드로와 그 배에 있어서, 고기는 가장 중요한 목적이었습니다.
고기를 팔면 돈이 생기고, 그 돈으로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고기는 베드로의 야망이요, 삶의 목표이고 목적이었습니다.
베드로가 가진 그 배의 가장 큰 존재 이유는, 바로 고기를 많이 잡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베드로는 한 마리라도 잡아보려고 밤새 몸부림을 쳤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들은 지금 무엇을 추구하며 삽니까 ?
말로는 먹든지 마시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라는 보자기 안에 우리의 야망을 살짝 싸서 감추어둡니다.
겉으로는 주님을 위해서 산다고 하지만, 실은 돈 벌기 위해 삽니다.
베드로의 배가 그랬던 것처럼,
오직 내 몸, 내 시간, 내 노력, 내 열심, 이 모든 것을 전부,
고기 잡는데(다시 말하면, 돈 많이 버는데) 사용하려고 합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제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제자들은 3년 간 예수님을 열심히 따라다녔습니다.
하늘의 가르침과 아버지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에 대해서 많은 말씀을 들었습니다.
복음의 핵심이 무엇인지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 모두가 마음 한쪽에는 자신들의 야망을 감추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회복되면, 자신들이 예수님과 함께 특별한 대우를 받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
정작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원하셨던 것은,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제자들의 야망은 출세요 권력이었지만, 예수님이 그들에게 바라신 것은 순교였습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인도에서, 로마에서, 이름 모를 곳에서 끓는 가마솥에 던져지거나
톱으로 켜져서 순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그들을 향한 예수님의 참 바램이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의 야망과 예수님의 소원은 이렇게 다를 수 있습니다.
귀하신 여러분 !
우리 속에 우리만을 위한 야망이 있다면 그것을 버리고 비우십시다.
그래서 정말 주님을 향한 거룩한 목적, 거룩한 야망을 갖도록 하십시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고기(야망, 돈)를 버린 우리들을, 분명 크고 놀랍게 쓰실 것입니다.
셋째, 오늘 베드로의 배에서는, 배 주인이 그 주인의 자리에서 내려왔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배는 고기잡이 베드로의 배였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 배를 잠시, 온 인류를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께 드렸습니다.
분명 그 배는 베드로의 배였지만, 그는 그 소유권을 포기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베드로의 배는 고기 잡는 배가 아니었습니다.
천국의 말씀이 선포되는 강단이었고,
하나님이 계신 천국이었으며, 복음의 최전선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지금 내가 주인이라고 생각하는 그 모든 것들을, 하나님께 겸손히 드릴 때,
그곳에서는 반드시 놀라운 기적이 일어납니다.
내가 가진 그것, 그것의 주인의 자리에서 조용히 내려와,
우리 하나님을 그것의 주인으로 삼을 때, 더 이상 그것은 작은 배가 아닙니다.
놀라운 기적의 현장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 함께 이렇게 고백해 봅시다.
갈라디아서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사랑하는 여러분 !
텅 빈 베드로의 배를 보십시오. 거기에 누가 계십니까 ?
그렇습니다. 존귀하신 우리 주님이 계십니다.
베드로는 그 배 주인임을 포기하고, 낮은 자리에서 예수님의 말씀에 귀기울였습니다.
순간 베드로의 마음 속에, 생전 경험해 보지 못한 놀라운 평강이 밀려왔습니다.
그 후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
그렇습니다. 베드로의 배는 다시 원래의 목적대로 쓰여졌습니다.
하지만 그 배는 더 이상 이전의 베드로가 주인이었을 때의, 그 배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이 주인이 되신 특별한 배였습니다.
이제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배를 몰고 나가서 깊은 곳에 그물을 내렸습니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
그렇습니다.
고기가 얼마나 많이 잡혔던지 그물이 찢어질 정도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내가 주인 되지 맙시다.
내 가정도, 내 직장도, 내 인생도, 내 몸도 오직 예수님께서 주인 되게 합시다.
그러면, 내가 주인이었던 그곳이, 엄청난 고기를 잡는 기적의 자리로 바꿔집니다.
그것을 체험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할렐루야 !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가 우리의 것을 비울 때, 그때부터는 주님이 일하십니다.
우리 스스로가 主人되어 할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습니다.
여러분 !
엄청난 고기들 앞에 입을 벌리지 못하는 베드로의 환희가 보이지 않습니까 ?
저는 우리 본향의 모든 성도들도, 베드로의 환희를 꼭 느끼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의 수단을 포기하십시다. 우리만을 위한 야망도 접읍시다.
나 자신까지 십자가에 못 박읍시다.
그래서 이제부터 주님이 일하시는 것을 보십시다.
우리의 모든 것을 비워서,
우리가 얼마나 귀하게 쓰임 받는가를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며 지켜보십시다.
그물도 비우고, 고기도 비우고, 나 자신까지 비우고서 말입니다.
우리가 많이 비우면 많이 비울수록, 주님은 우리를 더 크게 쓰실 것입니다.
우리의 최종목표는 99%비우는 것이 아닙니다.
100%를 비우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비우고, 주님께 크게 쓰임 받으면서 가는 여러분의 앞길에,
우리 주님의 은혜와 축복이 가득 넘치시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바울이 악한 것이 가득한 그레데에 디도를 남겨두었듯이,
하나님께서는 디도처럼 귀히 여기는 우리들을 이 험악한 세상에 남겨 두셨습니다.
우리는 이 땅 사람들을 인해 안타까워하시는,
우리 하나님의 아픈 마음을 함께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 인간들은 언제 가장 큰 보람을 느낄까요 ?
의사들은 말합니다. "내가 치료한 환자가 건강을 회복했을 때요 !"
선생님은 말합니다. "문제 많던 제자가 훌륭한 사람이 되었을 때요 !"
청소부는 말합니다. "내가 청소한 깨끗한 길을 사람들이 걸을 때요 !"
요리사는 말합니다. "내가 만든 음식을 손님들이 맛있게 먹을 때요 !"
그렇습니다. 우리 인간들은 자신이 무엇인가에 귀중히 쓰임 받고 있다고 생각할 때,
자신과 자신이 한 일에 대해 큰 보람을 느낀다고 합니다.
또한, 그 속에서 자신이 사는 이유와 목적을 발견한다고 합니다.
사실 우리 본향의 젊은 지체들을 포함하여,
이 땅에 와서 공부하는 많은 분들의 소망은,
'훗날 자기 자신이 귀한 곳에 쓰임 받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학생들이 가장 걱정하는 것 또한,
'공부를 마치고 난 뒤, 만약 쓰임을 받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여러분 모두는, 이 시대에 크게 쓰임 받는 큰 사람이 되시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은, '어떻게 해야 크게 쓰임 받는 사람이 되는가 ?'에 대해서,
본문인 누가복음5장 말씀을 바탕으로 그 답을 전하고자 합니다.
특별히 우리들은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아야 할 믿음의 자녀들입니다.
먼저 여러분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세상에서 쓰임 받는 것보다 하나님께 쓰임 받는 것을 더 기뻐할 수 있는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배 위에 앉아 계신 예수님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 !
이 배는 본래 누구의 배입니까 ?
그렇습니다. 아직 예수님께 부름 받기 前의 시몬 베드로의 배입니다.
그런데 본문을 보면, 지금까지 베드로의 배는 고기를 잡는데 만 쓰였지만,
지금은 예수님이 설교하시는 강단(講壇)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본문3절, "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육지에서 조금 띄기를 청하시고 앉으사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더니"
그런데 여러분 !
갈릴리 호수에 이 베드로의 배만 있었겠습니까 ?
아니지요. 많은 배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많은 배들 중에서,
바로 베드로의 배를 택하셔서 그 배에서 말씀을 전하십니다.
그냥 지나쳐 버릴 수도 있는 것이지만,
여러분 ! 호숫가의 하고많은 배(船)들 중에서
왜 그 배(船)가 예수님께 쓰임 받게 되었을까요 ?
그렇습니다.
오늘 말씀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그 배(船)입니다.
자 ! 그렇다면, 여러분 !
예수님은 어떤 과정 속에서 지금 이 배에 오르시게 된 것일까요 ?
그 앞의 상황을 먼저 설명하겠습니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어느 날 늦은 오후,
어부 베드로는 어느 때처럼 고기를 잡기 위해, 갈릴리 호숫가에서 배를 띄웠습니다.
당시 갈릴리 호수에서 고기잡이를 하는 어부들은, 초저녁에 나가서 밤을 꼬박 세우고
새벽녘에 일을 마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리고 배를 띄우는 날은, 비록 밤에 잠을 잘 수는 없었지만,
대신 배에 가득히 고기를 싣고 새벽을 맞는, 가슴 뿌듯함은 맛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날밤, 베드로는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 못했습니다.
밤새 몇 번이고 그물을 '내리고 끌어올리고'를 반복했지만, 빈 그물뿐이었습니다.
"한 번만 더, 한 번만 더 !"하며 밤새 반복했지만, 허탕뿐이었습니다.
그렇게 밤새 씨름하다보니, 어느새 동이 터 오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 당시 베드로가 얼마나 피곤했겠습니까 ?
사실, 사람은 결과가 좋으면 피로도 잘 못 느낍니다.
하지만 결과가 나쁘면, 그 피곤함이 몇 배로 몰려오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베드로는 너무나 피곤했습니다. 몸도 마음도 지칠 대로 지쳤습니다.
그러나, 꼬인 그물을 그대로 두고 집에 돌아갈 수는 없었습니다.
동터오는 아침, 베드로는 지친 몸으로 그물을 손질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 때, 예수님이 허락도 없이 베드로의 그 배에 오르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만약 여러분이 베드로의 입장이라면,
자신의 배에 갑자기 오른 예수님을 어떻게 생각했겠습니까 ?
그렇지요. 결코 좋은 마음일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더구나 밤새 고기 한 마리 못 잡고 빈 그물만을 손질하고 있었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
여기서 놀라운 것은, 베드로가 평소와는 다르게
(혹은 자신도 모르게, 혹은 뭔가에 끌려서) 예수님을 맞이했다는 것입니다.
나중에 밝혀진 일이지만, 예수님은 의도적으로 그 배에 가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많은 사람들은 생각합니다. 자기가 예수님을 선택했다고요 !
혹은 자기가 신앙을 (혹은 교회를) 선택했다고요 !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찾아오신 것입니다. 또한 예수께서 그곳으로 인도해 주신 것입니다.
이 사실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베드로는 자신의 배로 예수님을 맞아 들였습니다.
분명 평소의 자신을 볼 때,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 날 만큼은 뭔가 달랐습니다. 배에 오르신 그분을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여러분 ! 우리의 삶 속에서 평소와 다른 나 자신을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내가 이렇게 할 리가 없는 데 !'라고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혹은, '오늘 내가 왜 이러는 거야'라고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바로 그때 이렇게 믿으십시오.
'하나님께서 지금 나를 통해, 무엇인가 큰 일을 시작하셨다(혹은, 이루어 가신다).'라고
말입니다.
베드로는 이렇게 예수님의 특별한 초청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 초청을 통해, 고기 낚는 어부에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베드로는 예수님의 1등 제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들에게도 이런 특별한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할렐루야 !
그렇다면, 여러분 ! 예수님은 어떻게 그 배에 오르실 수 있었을까요 ?
다시 말해서 그 배는 왜 그토록 귀한 일에 쓰임 받을 수 있었을까요 ?
그렇습니다. 여러분 !
그 배가 이토록 귀한 일에 쓰임 받게 된 것은,
그 배가 텅텅 비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만약 그 배 안이 평소대로 이런저런 것들로 가득 차 있었다면,
그 배 위에는 예수님께서 오르셔서 말씀을 가르치실 자리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배는 그 때 비어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무엇이든지 비어 있어야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주방의 그릇도 바다의 배도 그리고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았던 사람들은 모두 비워 내는 기간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공생애를 앞두고 40일 동안 광야에서 자신을 비우셨습니다.
다윗도 약13년 동안 사울에게 쫓기며 자신을 비워 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사도 바울도 아라비아 사막에서 3년을 비웠으며,
요셉도 보디발의 집과 감옥에서 10년 이상 비워 내는 시간을 가졌고,
모세는 광야에서 무려 40년 동안이나 자신 속에 있는 모든 것을 비워 내야 했습니다.
귀하신 여러분, 크게 쓰임 받기를 원하십니까 ?
그렇다면, 비우십시오.
언제든지 주께서 내 속에 임하셔서, 나를 주장하실 수 있도록,
내 속에 있는 모든 것들을 철저히 비워내십시오. 그래야 크게 쓰임 받습니다.
자 ! 그렇다면,
베드로의 배는 어떤 것들을 비웠을까요 ?
첫째, 그물을 비웠습니다.
물고기를 잡는 어선(漁船)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물입니다.
무엇보다도 그물이 물고기로 가득 채워져야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
하나님께 쓰임 받기 위해서는 빈 그물이어야 합니다.
어떤 분들은 권력을 가지고 하나님 일을 하려고 합니다.
한국 역사상 기독교인이었던 대통령이 몇 분 있었습니다.
김영삼씨, 이명박씨 등입니다.
특히 김영삼씨가 대통령이 되자, 당시 많은 기독교인들이 큰 기대를 걸었었습니다.
그가 교회의 장로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재임 내내 단 한 번도 믿는 사람다운 모습을 보여주질 못했습니다.
오히려 커다란 실망만을 거듭 거듭 안겨주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권력의 그물은 하나님께 쓰임 받는 데 방해가 됩니다.
또, 어떤 분들은 돈과 물질로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합니다.
물론 돈이 있으면 하나님 일 하기가 좋습니다.
쉽기도 하고, 또 효과도 금방 나타나기도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돈으로 하나님 일을 하려고 하다가 시험에 빠지는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 하나님은 가난하시지 않습니다.
또, 어떤 분들은 재능이나 전문지식으로 主님의 일을 하려고 합니다.
음악을 잘 하는 사람은 음악으로, 컴퓨터를 잘 하는 사람은 컴퓨터로,
경영을 잘 하는 사람은 경영으로, 음식을 잘 하는 사람은 음식으로
主의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자기가 가진 달란트를 사용하면 효과 만점입니다.
엄청나게 능률적으로 일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꼭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가진 재능이나 지식은 영적인 힘과 결합할 때만이
온전해 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이 가진 수단이나 방법은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야곱은 20년 동안 열심히 일해서 드디어 거부가 됐습니다.
거기까지는 자기 힘으로 된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거기가 한계였습니다.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 형 에서의 마음을 바꾸는 것이나,
뒤틀린 아들들을 바로잡는 것은 자기의 능력 밖에 있었습니다. 할 수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꼭 기억하십시오.
우리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재능과 지식 이전에 주님께서 주시는 영적 파워입니다.
권력보다, 돈보다, 실력보다, 재능보다 주님이 더 원하시는 것은,
주님께 꿇어 엎드린 무릎입니다.
또한 주 앞에 가지런히 모은 손(手)입니다.
새벽에 주님의 殿을 향해 달려나오는 발길이요,
그 입을 통해 고백하는 "나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주님 도와주세요 !"하는
中心인 것입니다.
안식 후 첫 날 새벽,'
아무런 대책 없이 예수님의 무덤까지 달려 온 세 여인의 막무가내의 사랑,
그것을 우리 主님은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지난20세기의, 最高 강해 설교가는 마틴 로이드 죤스 목사님입니다.
그런데 그 분이 목사님이 되기 전에 어떤 분이셨는가 하면 의사였습니다.
의사도 보통 의사가 아니라 왕립(Royal)의사였습니다.
영국에서는 국립(National)보다 더 위에 있는 것이 왕립(Royal)입니다.
왕립의사라고 하면 명예, 배경, 실력 等 모든 것을 갖췄다는 것입니다.
그런 특별한 실력을 갖춘 분이었기에, 이 분이 목사님이 되기로 작정했을 때는,
왕립의사라는 것을 최대한 살려서 목회하기를 원했습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주일에 예배드리러 와서, 왕립의사에게 진찰까지 받고 갈 수 있다고 한다면
얼마나 전도가 잘되겠습니까 ?
그러나 하나님은 로이드 죤스 목사님이 가진,
그 재능과 실력의 그물을 비워 내게 하셨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게 하셨습니다.
아무리 전도하고, 아무리 설교해도, 좀처럼 성장하지 않았습니다.
로이드 죤스 목사님은 주저 없이, 의사의 직분을 내려놓았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놀라운 설교의 능력을 주셨습니다.
결국 그 분은, 하나님의 은혜로 20세기 최고의 강해 설교가가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혹 자신이 가진 재능으로 우쭐해 있지는 않습니까 ?
그것은 큰일나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사모하십시오. 주님 앞에 무릎꿇으십시오.
손에 들려진 모든 것을 내려놓으십시오. 그리고 두 손을 모으십시오.
하나님은 그렇게 비워진 우리를 크고 놀랍게 세워 쓰시는 것입니다.
둘째, 오늘 베드로의 배에는 고기가 없었습니다.
여러분 ! 만약 베드로의 배에 고기가 가득했다면, 예수님이 오르실 수 있었을까요 ?
아니요 !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고기를 크기 별로 분류해야 지요. 먹이와 물도 넣어주어야 하지요.
물고기를 사줄 사람과 흥정도 해야 하지요.
그 후에는 배 위를 정리도 해야 지요. 너무도 바빴을 것입니다.
사실 베드로와 그 배에 있어서, 고기는 가장 중요한 목적이었습니다.
고기를 팔면 돈이 생기고, 그 돈으로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고기는 베드로의 야망이요, 삶의 목표이고 목적이었습니다.
베드로가 가진 그 배의 가장 큰 존재 이유는, 바로 고기를 많이 잡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베드로는 한 마리라도 잡아보려고 밤새 몸부림을 쳤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들은 지금 무엇을 추구하며 삽니까 ?
말로는 먹든지 마시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라는 보자기 안에 우리의 야망을 살짝 싸서 감추어둡니다.
겉으로는 주님을 위해서 산다고 하지만, 실은 돈 벌기 위해 삽니다.
베드로의 배가 그랬던 것처럼,
오직 내 몸, 내 시간, 내 노력, 내 열심, 이 모든 것을 전부,
고기 잡는데(다시 말하면, 돈 많이 버는데) 사용하려고 합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제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제자들은 3년 간 예수님을 열심히 따라다녔습니다.
하늘의 가르침과 아버지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에 대해서 많은 말씀을 들었습니다.
복음의 핵심이 무엇인지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 모두가 마음 한쪽에는 자신들의 야망을 감추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회복되면, 자신들이 예수님과 함께 특별한 대우를 받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
정작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원하셨던 것은,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제자들의 야망은 출세요 권력이었지만, 예수님이 그들에게 바라신 것은 순교였습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인도에서, 로마에서, 이름 모를 곳에서 끓는 가마솥에 던져지거나
톱으로 켜져서 순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그들을 향한 예수님의 참 바램이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의 야망과 예수님의 소원은 이렇게 다를 수 있습니다.
귀하신 여러분 !
우리 속에 우리만을 위한 야망이 있다면 그것을 버리고 비우십시다.
그래서 정말 주님을 향한 거룩한 목적, 거룩한 야망을 갖도록 하십시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고기(야망, 돈)를 버린 우리들을, 분명 크고 놀랍게 쓰실 것입니다.
셋째, 오늘 베드로의 배에서는, 배 주인이 그 주인의 자리에서 내려왔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배는 고기잡이 베드로의 배였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 배를 잠시, 온 인류를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께 드렸습니다.
분명 그 배는 베드로의 배였지만, 그는 그 소유권을 포기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베드로의 배는 고기 잡는 배가 아니었습니다.
천국의 말씀이 선포되는 강단이었고,
하나님이 계신 천국이었으며, 복음의 최전선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지금 내가 주인이라고 생각하는 그 모든 것들을, 하나님께 겸손히 드릴 때,
그곳에서는 반드시 놀라운 기적이 일어납니다.
내가 가진 그것, 그것의 주인의 자리에서 조용히 내려와,
우리 하나님을 그것의 주인으로 삼을 때, 더 이상 그것은 작은 배가 아닙니다.
놀라운 기적의 현장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 함께 이렇게 고백해 봅시다.
갈라디아서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사랑하는 여러분 !
텅 빈 베드로의 배를 보십시오. 거기에 누가 계십니까 ?
그렇습니다. 존귀하신 우리 주님이 계십니다.
베드로는 그 배 주인임을 포기하고, 낮은 자리에서 예수님의 말씀에 귀기울였습니다.
순간 베드로의 마음 속에, 생전 경험해 보지 못한 놀라운 평강이 밀려왔습니다.
그 후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
그렇습니다. 베드로의 배는 다시 원래의 목적대로 쓰여졌습니다.
하지만 그 배는 더 이상 이전의 베드로가 주인이었을 때의, 그 배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이 주인이 되신 특별한 배였습니다.
이제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배를 몰고 나가서 깊은 곳에 그물을 내렸습니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
그렇습니다.
고기가 얼마나 많이 잡혔던지 그물이 찢어질 정도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내가 주인 되지 맙시다.
내 가정도, 내 직장도, 내 인생도, 내 몸도 오직 예수님께서 주인 되게 합시다.
그러면, 내가 주인이었던 그곳이, 엄청난 고기를 잡는 기적의 자리로 바꿔집니다.
그것을 체험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할렐루야 !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가 우리의 것을 비울 때, 그때부터는 주님이 일하십니다.
우리 스스로가 主人되어 할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습니다.
여러분 !
엄청난 고기들 앞에 입을 벌리지 못하는 베드로의 환희가 보이지 않습니까 ?
저는 우리 본향의 모든 성도들도, 베드로의 환희를 꼭 느끼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의 수단을 포기하십시다. 우리만을 위한 야망도 접읍시다.
나 자신까지 십자가에 못 박읍시다.
그래서 이제부터 주님이 일하시는 것을 보십시다.
우리의 모든 것을 비워서,
우리가 얼마나 귀하게 쓰임 받는가를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며 지켜보십시다.
그물도 비우고, 고기도 비우고, 나 자신까지 비우고서 말입니다.
우리가 많이 비우면 많이 비울수록, 주님은 우리를 더 크게 쓰실 것입니다.
우리의 최종목표는 99%비우는 것이 아닙니다.
100%를 비우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비우고, 주님께 크게 쓰임 받으면서 가는 여러분의 앞길에,
우리 주님의 은혜와 축복이 가득 넘치시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