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2012년2월19일, 느헤미야1:1-9(새 역사의 중심에 우뚝 서는 본향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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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 옆에 계신 복스러운 지체들과 함께 고백하며 또한 축복합시다.
우리 본향교회를 교회다운 교회로 만들어 갑시다.
부족함과 연약함은 용납하되, 교만함과 거짓은 단호히 대처하는,
그런 교회가 되게 합시다.
주께 항상 드리기를 기뻐하시는 당신에게,
하나님께서 쌓을 곳이 없도록, 하늘의 복과 땅의 복들을 채워주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말씀 속에서 울고 있는 한 남자를 만납니다.
어린 아이도 아니고 다 큰 어른이, 몇 날을 대성통곡을 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이 사람은 누구이며, 지금 왜 울고 있을까요 ?
오늘 본문의 이야기는 主前(B. C.)445년경(지금으로부터 약2500년 전),
고대 페르시아(지금의 이란)의 王宮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자 ! 여러분 !
지금 본문에서 울고 있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
예 ! 그렇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있는 느헤미야입니다.
느헤미야의 조상들은, 그들의 나라 이스라엘이 바벨론에게 멸망당할 때,
포로로 이 먼 곳까지 붙잡혀왔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을 망하게 했던 바벨론은, 얼마 후 페르시아에게 망했고,
페르시아는 느헤미야 때에 이르러 매우 강성한 국가가 되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이곳 페르시아에서 태어나 성장했고,
당시 페르시아 황제였던 아닥사스다가 특별히 귀히 여긴 신하 중 한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느헤미야가 이스라엘을 위해 매우 큰일을 감당합니다.
이스라엘에서 무려 1800km나 떨어져 살던 해외동포가 말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도, 오늘 말씀을 통해 능력을 받아, 이 땅 일본과 대한민국을 위해,
큰일을 이루어내는 그런 큰 재목(材木)이 됩시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위기에 처한 세계를,
그리고 큰 어려움에 빠진 이 땅 일본과 한국을 일으켜 세우시기 위해서,
오늘도 한 사람을 찾으십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들이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이 되어,
이 땅과 세계의 새 역사 중심에 우뚝 서게 되는, 복을 받기를 원합니다.
자 ! 본문의 내용을 소개하겠습니다.
어느 날, 느헤미야는 동생 하나냐가 유다 땅에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그를 부릅니다. 그리고는 예루살렘의 형편을 묻습니다.
이때는 이미 1, 2차 포로귀환이 이루어진 후 상당기간(약90년)이 지난 후였기에,
느헤미야는 예루살렘과 유다의 형편을 물은 것입니다.
사실 1, 2차 歸還자들은 폐허가 되었던 이스라엘 공동체를 다시 회복하려는,
커다란 꿈과 희망을 가지고 고향으로 돌아갔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생각했습니다.
'사명에 불타는 믿음의 조상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으니
큰 어려움 없이 새 나라를 건설하고 있겠지 !'
그러나 예루살렘을 돌아보고 온 동생 하나냐를 통해 전해들은 고향 땅의 소식은
평안이 아니었습니다.
안타까운 소식들뿐이었습니다.
본문3절, "남은 자가 그 도에서 큰 환난을 만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성은 훼파되고 성문들은 소화되었다 하는지라"
표준새번역 성경, "남은 사람들은, 고생이 아주 심합니다. 업신여김을 받습니다.
예루살렘 성벽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다 불에 탔습니다."
그렇습니다.
느헤미야가 전해들은 예루살렘의 실상은, 백성들은 환란 가운데 있고,
예루살렘 성은 다 무너지고, 불타버렸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느헤미야는 자리 털썩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참담한 고향의 소식에 참으로 안타까워 통곡하며 울었습니다.
그렇지만 여러분 !
느헤미야는 그저 주저앉아 우는 것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우선 느헤미야는 눈물의 자리를 기도의 자리로 바꿨습니다.
그리고는 새로운 사명을 가슴에 품고 아닥사스다 왕에게 나아갔습니다.
결국 그는 왕의 허락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떠납니다.
그리고 그는, 온갖 어려움과 방해를 이겨내고,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당시 너무나도 중요했던 예루살렘 성벽을 쌓는데 성공합니다.
이스라엘의 새 역사 중심에 우뚝 서는, 복된 사명자가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여러분들도 이 땅 일본과 세계, 그리고 일터와 교회, 민족과 이 시대의
위대한 사명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오늘 느헤미야가 어떻게 새 역사의 중심에 우뚝 설 수 있게되었는지
그 원리에 집중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들도 새 역사의 중심인물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첫째, 새 역사의 중심에 서려면, 들을 수 있는 귀가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4절을 보면,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동안 슬퍼하며"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우리 사람들에게는 귀가 있습니다.
여러분 ! 왜 우리에게 귀가 있습니까 ?
그렇습니다. 귀고리를 걸고 안경을 걸으라고 있는 것이 아니라,
소리를 들으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귀가 있다고 해서, 어떤 소리든 잘 듣느냐 하면,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은 내가 원하는 소리만 들으려고 하지,
그것이 내게 쓰거나, 또한 관심이 없으면 전혀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느헤미야는 들을 것을 듣는 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당시 느헤미야는 황제 아닥사스다의 술 맡은 官員長이었습니다.
고대 군주들은 독살을 특히 두려워했는데, 느헤미야가 잔치를
주관하는 신하였다는 것은 황제의 크나큰 신임을 받고 있다는 증거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느헤미야의 직책은 황제와 늘 얼굴을 대면하는 자리였고,
또 황제가 어떤 화제로 얘기를 꺼내더라도 대화가 될 만큼의 학식과 지혜가
있어야 했던 자리였습니다. 느헤미야에게는 그것이 있었습니다.
더구나 페르시아 제국은 당시 세계의 최강대국이었습니다.
대다수 사람들은 이 정도가 되면, 남의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다른 사람에게 자기의 이야기를 하기도 시간이 부족합니다.
그러나 느헤미야에게 민족의 아픈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더구나 느헤미야에게 들려진 민족의 아픈 소리는,
그의 귀를 타고 들어가 그의 마음을 울리고 영혼을 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느헤미야는 너무나 큰 안타까움에 앉아 슬피 울었습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들의 주위에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꼭 들어야 할 소리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그 소리를 듣지 않습니다. 듣지 못합니다.
여러분 !
우리들이 하루 하루를 살아가면서 꼭 들어야 할 소리는 놓치고,
정작 버려야 될 소리는 귀담아 듣고 있다는 사실을 혹 아십니까 ?
마땅히 들어야 할 말을 듣지 않는 사람에게는 이런 특징이 있습니다.
우선, 가지고 있는 것이 너무나 많을 때 듣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많은 경험 때문에 듣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가진 세상의 많은 지식 때문에 듣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가진 많은 물질 때문에 듣지 못합니다.
이들이 즐겨 쓰는 말은 이것입니다.
"당신이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 지, 나는 이미 알고 있어요 !"
그런데 여러분 !
참으로 많은 신앙인들이 여기에 속해 있습니다.
오래된 신앙생활로 인해 성경이야기는 엄청나게 들었습니다.
그러나 많은 신앙인들의 마음은 변화되지 않은 모습 그대로입니다.
그래서 기도에 대해, 성경 읽기에 대해, 순종에 대해 설교하면 이렇게 말합니다.
"목사님, 그것은 요, 제가 다 아는 이야기입니다."
"뭐 ! 좀 다른 새로운 말씀, 신선한 말씀은 없습니까 ?"
한 제과점에 앵무새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한 아가씨가 출근길에 그 제과점 앞을 지나갈 때였습니다.
제과점의 앵무새가 입을 열었습니다.
"이봐 아가씨 ! 아가씨, 이리 와봐 ! 이리 좀 와보라니까 !"
아가씨가 앵무새의 말이 너무 거칠어 버릇을 고쳐 주려고 앵무새에게 다가갔습니다.
그랬더니 앵무새가 먼저 말합니다.
"아가씨 그렇게 못생겼니 ? 참 못생겼다 ! 꼭 메주를 닮았구나"
그 말을 들은 아가씨는 너무나 화가 났지만, 앵무새가 그냥 뱉어낸 소리라 하고,
돌이켜 출근길을 서둘렀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날 그 앞을 지나는데 앵무새가 또 그럽니다.
"이봐 ! 아가씨 ! 이리 와봐 ! 왜 그렇게 메주같이 생겼어 !"
여인은 몹시 기분이 상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제과점 주인에게 가서, 앵무새 버릇 좀 고치라고 단단히 말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그 아가씨가 제과점 앞을 또 지나가는데,
그 날은 야단을 맞아 그런지, 앵무새의 기가 좀 꺾인 것 같았습니다.
앵무새가 말합니다. "이봐요 아가씨 ! 이리 좀 와 보세요"
갑자기 존댓말도 해서, '이번에는 무슨 말을 할까'하여 가까이 가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앵무새가 이렇게 말하더랍니다.
"아가씨 ! 잘 알지요 ? 지금 내가 무슨 말을 할지 ?"
이 여인은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돌아섰습니다.
뒷말은 들어보지도 않았습니다.
다른 생각 할 여유를 전혀 갖지 못했습니다.
이 여인에게는 이미 다른 말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 이 앵무새가 무슨 말을 했을 것 같습니까 ?
① "가까이서 보니까, 정말로 메주같이 생겼네 !"
② "정말 미안해요. 내가 정말 잘못했어요 !"
만약 ①번이라고 생각하셨다면, 우리의 귀는 이미 막혀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끝까지 듣지도 않고 이미 판단해 버립니다.
여러분 !
혹시 다른 사람의 말이 들리지 않지 않습니까 ?
그렇다면 지금 우리들은, 우리들 자신의 귀를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또한, 깊은 좌절과 절망이 있는 사람은 남의 말을 듣지 못합니다.
그렇습니다. 그에게는 그럴 만한 여유가 없습니다.
상가(喪家)에 가서 우리가 별로 할 얘기가 없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어떤 말로 위로를 해도 큰 슬픔 때문에 잘 듣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 깊은 낙망에 빠져있습니까 ?
사랑하는 동역자들의 어떤 위로와 격려의 소리도,
자신의 마음까지 도달하지 않습니까 ?
그렇다면, 우리는 좀처럼 그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습니다.
특히 직장과 일터에서, 여러분들은 잘 듣는 쪽입니까
아니면, 귀를 막아버리는 쪽입니까 ?
혹 듣기 전에 미리 판단해 버리지는 않습니까 ?
지금 우리가,
가정의 역사, 기업의 역사, 민족의 역사, 미래의 역사를 바꾸기 위해서는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느헤미야와 같은 열린 귀가 있어야 합니다.
다른 소리가 안 들려오면, 그때부터 우리의 삶은 내리막길입니다.
특히, 하나님 말씀이 잘 안 들려오면 그것은 적신호입니다.
위험합니다.
오늘 이 시간 잘 듣는 복된 귀를 찾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둘째, 새 역사의 중심에 선 느헤미야는,
문제를 정확하게 진단하는 영적인 감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동생을 통해 들려 온 조국의 모습은, 어떠했습니까 ?
본문3절, "남은 자가 그 도에서 큰 환난을 만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성은 훼파되고 성문들은 소화되었다 하는지라"
자 ! 여러분 !
왜 예루살렘에 이런 일이 생겼습니까 ?
그렇습니다.
느헤미야는 무릎꿇고 우는 가운데 이유를 깨닫습니다.
그리고 본문6-7절을 통해 진단의 결과를 얻습니다.
"나와 나의 아비 집이 犯罪하여 주를 향하여 심히 악을 행하여
주의 종 모세에게 주께서 명하신 계명과 율례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였나이다"
그렇습니다.
자신의 민족의 어려움과 고난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느헤미야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역사, 철학을 비롯한
모든 분야에서 왕과 대화할 만한, 지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얼마든지 민족이 당한 환란의 원인을,
세상적인 경험과 시각으로 분석해 볼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민족의 고난의 원인을 세상에서 찾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찾았습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여러분은 여러분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그 일에 대한 원인을 어디에서 찾으십니까 ?
그저 세상적인 판단으로 그 원인을 찾고 있지는 않습니까 ?
나를 도와 사람이 없었다든지,
아니면 나를 위해 경제적으로 별로 도움되는 사람이 없었다든지 하는
그런 것에서 원인을 찾지는 않습니까 ?
혹은 '재수가 좋아서, 혹은 재수가 없어서'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까 ?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은, 모든 삶의 원인을 하나님 안에서 찾습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은 세상과 주위에서 그 원인을 찾으려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세상의 모든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 말씀 속에서, 그 원인을 찾고 또 깨달았던
느헤미야의 탁월한 영적 감각이, 여러분들 가운데도 있기를 축복합니다.
오래 전,
전기고장으로 미국의 포드 자동차 회사가
자동차를 생산하는 모든 시설들을 중단하게 되는, 큰 사고가 있었다고 합니다.
포드 자동차는 자체적으로 전기기사를 동원해서 고치려고 해봤지만,
도저히 고칠 수가 없었고, 결국에는 유명한 전기 전문 기사를 불렀다고 합니다.
포드 자동차 회사에 도착한 전기 전문가는
작은 공구 몇 개 들고 다니며 뚝딱뚝딱하더니, 1시간도 안되어 수리를 마쳤습니다.
역시 전문가였습니다.
얼마 후, 포드 자동차로 전기 수리 청구서가 날라 왔습니다.
그런데 그 금액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엄청났습니다.
포드 자동차는 즉각 항의하며, 청구 명세서를 요청했습니다.
얼마 후, 명세서가 왔는데 '고장 원인 진단 비용 990불, 수리비 10불'
그렇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진단하는 것이 기술의 핵심입니다.
우리가 가정을, 기업을, 내 미래를, 민족을 바꾸려면
먼저 원인이 어디서 왔는지를 분명히 진단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쉽게 고치고 흐름을 바꿀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오늘 본문의 느헤미야처럼,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자신과 가정과 일터와 신앙을 온전히 진단할 수 있는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셋째, 새 역사의 중심이 되려면, 지금 내 자리를 기도의 자리로 바꿔야 합니다.
본문4절을 보면,
느헤미야가 고국의 소식을 듣고 처음에는 대성통곡했지만,
곧바로 한 일은 기도였습니다.
수일 동안 그저 울기만 한 것이라, 눈물의 기도를 드렸던 것입니다.
느헤미야서는 모두 13장으로 되어 있는 아주 짧은 성경입니다.
그런데 그 사이에 느헤미야가 기도했다는 내용이 무려 아홉 군데나 나옵니다.
그렇습니다.
느헤미야는 성경에 나타난 누구보다도 기도에 열심인 사람이었습니다.
세상사람들이 볼 때, 황제에게 큰 신임을 얻고 있는 느헤미야는,
황제와 상의하면 모든 것이 끝나는 사람입니다. 해결 방법이 거기 있어 보입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그 황제를 의지하지 않고,
역사의 주관자 되시는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느헤미야는 사람이나 권력이나 물질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바로 이것이 그를 새 역사의 중심 되게 하는 핵심이었습니다.
더구나 느헤미야의 기도에는, 자신이 마땅히 감당할 헌신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가 기도하는 가운데, 아닥사스다 왕에게 한 말을 보면, 그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느헤미야2:5. "나를 유다 땅 나의 열조의 묘실 있는 성읍에 보내어
그 성을 중건하게 하옵소서"
성도여러분 !
기도 속에 내 헌신이 들어가지 않으면 그 기도는 완성된 기도가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느헤미야는 구체적으로 자신의 헌신할 일을 하나님께 아뢰었습니다.
우리들도 그저 기도만 하지말고, 내가 마땅히 드려야 할 헌신을 다짐합시다.
국가를 위해 기도한다면, 국가에 대한 헌신을,
기업과 직장을 위해서 기도한다면, 기업과 직장을 향한 나의 헌신을,
교회와 가정을 위해 기도한다면, 마땅히 교회와 가정을 위해 할 나의 헌신을,
그리고 누군가를 위해 기도한다면, 그를 향한 나의 섬김과 헌신이 포함되어야
참으로 온전한 기도인 것입니다.
더구나 그러한 헌신의 기도는, 우리를 새 역사의 중심에 서게 하는 열쇠가 됩니다.
나폴레옹은 전쟁을 하면 꼭 승리하는, 전쟁에 뛰어난 황제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승리하는 비결 중의 하나는,
전쟁이 막 벌어지고 있는 동안 꼭 핵심 참모들과 함께 전쟁터를 볼 수 있는
높은 고지에 올라간다는 것입니다.
한 번은, 참 불리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을 때였다고 합니다.
나폴레옹과 그의 부하 장군들이 올라가서 보는 동안 나폴레옹이 말했습니다.
"저 건너편에 농장이 보이나 ?"
"네, 보입니다"
"저 농장을 반드시 점령하라 !
그리고 사수하라. 모든 것을 다 잃어버려도 좋으니 무조건 사수하라."
병사들은 명령에 순종했고 결국 그 전쟁은 나폴레옹 군대의 승리로 끝났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나폴레옹 군대가 그 전투에 승리한 것은
그 농장이 전투의 승패가 되는 가장 중요한 거점이 됐었는데,
그것을 확보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나폴레옹, 그는 어디에 서 있어야 승리하는지를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진짜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
성공할 자리가 어디인지 알았던 사람입니다.
그것은 바로 헌신을 바탕으로 한, 기도의 자리였던 것입니다.
기도의 자리를 잃어버릴 때,
그는 모든 것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그랬기에 그는 기도의 자리를 놓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여러분은 승리를 위해서 어떤 방법으로, 어디에 서서 행하십니까 ?
느헤미야는 남들이 보기에 좋았던 위치를 오히려 버리고,
자기의 자리를 기도하는 자리로 바꿔서 역사를 바꾼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 !
혹시 지금 답답하지 않습니까 ?
뭔가 꽉 막혀있지 않습니까 ?
그 답답함의 고리를, 헌신의 기도로 확 끊어버리십시오.
그리고 여러분 자신의 역사를 바꾸십시오 !
하나님이 세우신 여러분의 가정, 기업을 위해 헌신을 다짐하며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가정은 놀라운 축복을 받는 가정이 될 것입니다.
또한 우리 다 같이 본향교회를 위해 헌신하며 기도합시다.
다른 사람이 있는 동안 부흥케 하지말고,
여러분이 계시는 동안 크게 부흥시키시기 바랍니다.
錦絲4丁目 어두운 골목에 있던 교회가 본향교회였습니다.
그 역사를 이제 바꾸십시다. 우리교회의 역사를 새로 쓰십시다.
우리의 믿음의 후배들에게 풍성하고 아름다운 것들로 물려주십시다.
아름다운 예배당은 물론,
기도실과 연주실이 가득하고,
찬양의 카페가 있고, 도서실이 있고, 휴게실이 있는 교회를 만듭시다.
어떻게 이 일이 가능합니까 ?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첫째, 귀를 여십시오.
하나님은 지금 우리들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둘째, 바르게 진단하십시오.
모든 일의 근본 원인을 하나님 말씀 안에서 발견하십시오.
셋째, 여러분의 자리를 기도의 자리로 바꾸십시오.
특히 헌신을 고백하며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은 이렇게 변화된 우리를, 큰 새 역사의 중심에 서게 하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
우리 본향교회를 교회다운 교회로 만들어 갑시다.
부족함과 연약함은 용납하되, 교만함과 거짓은 단호히 대처하는,
그런 교회가 되게 합시다.
주께 항상 드리기를 기뻐하시는 당신에게,
하나님께서 쌓을 곳이 없도록, 하늘의 복과 땅의 복들을 채워주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말씀 속에서 울고 있는 한 남자를 만납니다.
어린 아이도 아니고 다 큰 어른이, 몇 날을 대성통곡을 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이 사람은 누구이며, 지금 왜 울고 있을까요 ?
오늘 본문의 이야기는 主前(B. C.)445년경(지금으로부터 약2500년 전),
고대 페르시아(지금의 이란)의 王宮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자 ! 여러분 !
지금 본문에서 울고 있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
예 ! 그렇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있는 느헤미야입니다.
느헤미야의 조상들은, 그들의 나라 이스라엘이 바벨론에게 멸망당할 때,
포로로 이 먼 곳까지 붙잡혀왔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을 망하게 했던 바벨론은, 얼마 후 페르시아에게 망했고,
페르시아는 느헤미야 때에 이르러 매우 강성한 국가가 되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이곳 페르시아에서 태어나 성장했고,
당시 페르시아 황제였던 아닥사스다가 특별히 귀히 여긴 신하 중 한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느헤미야가 이스라엘을 위해 매우 큰일을 감당합니다.
이스라엘에서 무려 1800km나 떨어져 살던 해외동포가 말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도, 오늘 말씀을 통해 능력을 받아, 이 땅 일본과 대한민국을 위해,
큰일을 이루어내는 그런 큰 재목(材木)이 됩시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위기에 처한 세계를,
그리고 큰 어려움에 빠진 이 땅 일본과 한국을 일으켜 세우시기 위해서,
오늘도 한 사람을 찾으십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들이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이 되어,
이 땅과 세계의 새 역사 중심에 우뚝 서게 되는, 복을 받기를 원합니다.
자 ! 본문의 내용을 소개하겠습니다.
어느 날, 느헤미야는 동생 하나냐가 유다 땅에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그를 부릅니다. 그리고는 예루살렘의 형편을 묻습니다.
이때는 이미 1, 2차 포로귀환이 이루어진 후 상당기간(약90년)이 지난 후였기에,
느헤미야는 예루살렘과 유다의 형편을 물은 것입니다.
사실 1, 2차 歸還자들은 폐허가 되었던 이스라엘 공동체를 다시 회복하려는,
커다란 꿈과 희망을 가지고 고향으로 돌아갔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생각했습니다.
'사명에 불타는 믿음의 조상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으니
큰 어려움 없이 새 나라를 건설하고 있겠지 !'
그러나 예루살렘을 돌아보고 온 동생 하나냐를 통해 전해들은 고향 땅의 소식은
평안이 아니었습니다.
안타까운 소식들뿐이었습니다.
본문3절, "남은 자가 그 도에서 큰 환난을 만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성은 훼파되고 성문들은 소화되었다 하는지라"
표준새번역 성경, "남은 사람들은, 고생이 아주 심합니다. 업신여김을 받습니다.
예루살렘 성벽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다 불에 탔습니다."
그렇습니다.
느헤미야가 전해들은 예루살렘의 실상은, 백성들은 환란 가운데 있고,
예루살렘 성은 다 무너지고, 불타버렸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느헤미야는 자리 털썩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참담한 고향의 소식에 참으로 안타까워 통곡하며 울었습니다.
그렇지만 여러분 !
느헤미야는 그저 주저앉아 우는 것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우선 느헤미야는 눈물의 자리를 기도의 자리로 바꿨습니다.
그리고는 새로운 사명을 가슴에 품고 아닥사스다 왕에게 나아갔습니다.
결국 그는 왕의 허락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떠납니다.
그리고 그는, 온갖 어려움과 방해를 이겨내고,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당시 너무나도 중요했던 예루살렘 성벽을 쌓는데 성공합니다.
이스라엘의 새 역사 중심에 우뚝 서는, 복된 사명자가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여러분들도 이 땅 일본과 세계, 그리고 일터와 교회, 민족과 이 시대의
위대한 사명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오늘 느헤미야가 어떻게 새 역사의 중심에 우뚝 설 수 있게되었는지
그 원리에 집중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들도 새 역사의 중심인물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첫째, 새 역사의 중심에 서려면, 들을 수 있는 귀가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4절을 보면,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동안 슬퍼하며"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우리 사람들에게는 귀가 있습니다.
여러분 ! 왜 우리에게 귀가 있습니까 ?
그렇습니다. 귀고리를 걸고 안경을 걸으라고 있는 것이 아니라,
소리를 들으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귀가 있다고 해서, 어떤 소리든 잘 듣느냐 하면,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은 내가 원하는 소리만 들으려고 하지,
그것이 내게 쓰거나, 또한 관심이 없으면 전혀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느헤미야는 들을 것을 듣는 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당시 느헤미야는 황제 아닥사스다의 술 맡은 官員長이었습니다.
고대 군주들은 독살을 특히 두려워했는데, 느헤미야가 잔치를
주관하는 신하였다는 것은 황제의 크나큰 신임을 받고 있다는 증거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느헤미야의 직책은 황제와 늘 얼굴을 대면하는 자리였고,
또 황제가 어떤 화제로 얘기를 꺼내더라도 대화가 될 만큼의 학식과 지혜가
있어야 했던 자리였습니다. 느헤미야에게는 그것이 있었습니다.
더구나 페르시아 제국은 당시 세계의 최강대국이었습니다.
대다수 사람들은 이 정도가 되면, 남의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다른 사람에게 자기의 이야기를 하기도 시간이 부족합니다.
그러나 느헤미야에게 민족의 아픈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더구나 느헤미야에게 들려진 민족의 아픈 소리는,
그의 귀를 타고 들어가 그의 마음을 울리고 영혼을 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느헤미야는 너무나 큰 안타까움에 앉아 슬피 울었습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들의 주위에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꼭 들어야 할 소리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그 소리를 듣지 않습니다. 듣지 못합니다.
여러분 !
우리들이 하루 하루를 살아가면서 꼭 들어야 할 소리는 놓치고,
정작 버려야 될 소리는 귀담아 듣고 있다는 사실을 혹 아십니까 ?
마땅히 들어야 할 말을 듣지 않는 사람에게는 이런 특징이 있습니다.
우선, 가지고 있는 것이 너무나 많을 때 듣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많은 경험 때문에 듣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가진 세상의 많은 지식 때문에 듣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가진 많은 물질 때문에 듣지 못합니다.
이들이 즐겨 쓰는 말은 이것입니다.
"당신이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 지, 나는 이미 알고 있어요 !"
그런데 여러분 !
참으로 많은 신앙인들이 여기에 속해 있습니다.
오래된 신앙생활로 인해 성경이야기는 엄청나게 들었습니다.
그러나 많은 신앙인들의 마음은 변화되지 않은 모습 그대로입니다.
그래서 기도에 대해, 성경 읽기에 대해, 순종에 대해 설교하면 이렇게 말합니다.
"목사님, 그것은 요, 제가 다 아는 이야기입니다."
"뭐 ! 좀 다른 새로운 말씀, 신선한 말씀은 없습니까 ?"
한 제과점에 앵무새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한 아가씨가 출근길에 그 제과점 앞을 지나갈 때였습니다.
제과점의 앵무새가 입을 열었습니다.
"이봐 아가씨 ! 아가씨, 이리 와봐 ! 이리 좀 와보라니까 !"
아가씨가 앵무새의 말이 너무 거칠어 버릇을 고쳐 주려고 앵무새에게 다가갔습니다.
그랬더니 앵무새가 먼저 말합니다.
"아가씨 그렇게 못생겼니 ? 참 못생겼다 ! 꼭 메주를 닮았구나"
그 말을 들은 아가씨는 너무나 화가 났지만, 앵무새가 그냥 뱉어낸 소리라 하고,
돌이켜 출근길을 서둘렀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날 그 앞을 지나는데 앵무새가 또 그럽니다.
"이봐 ! 아가씨 ! 이리 와봐 ! 왜 그렇게 메주같이 생겼어 !"
여인은 몹시 기분이 상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제과점 주인에게 가서, 앵무새 버릇 좀 고치라고 단단히 말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그 아가씨가 제과점 앞을 또 지나가는데,
그 날은 야단을 맞아 그런지, 앵무새의 기가 좀 꺾인 것 같았습니다.
앵무새가 말합니다. "이봐요 아가씨 ! 이리 좀 와 보세요"
갑자기 존댓말도 해서, '이번에는 무슨 말을 할까'하여 가까이 가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앵무새가 이렇게 말하더랍니다.
"아가씨 ! 잘 알지요 ? 지금 내가 무슨 말을 할지 ?"
이 여인은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돌아섰습니다.
뒷말은 들어보지도 않았습니다.
다른 생각 할 여유를 전혀 갖지 못했습니다.
이 여인에게는 이미 다른 말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 이 앵무새가 무슨 말을 했을 것 같습니까 ?
① "가까이서 보니까, 정말로 메주같이 생겼네 !"
② "정말 미안해요. 내가 정말 잘못했어요 !"
만약 ①번이라고 생각하셨다면, 우리의 귀는 이미 막혀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끝까지 듣지도 않고 이미 판단해 버립니다.
여러분 !
혹시 다른 사람의 말이 들리지 않지 않습니까 ?
그렇다면 지금 우리들은, 우리들 자신의 귀를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또한, 깊은 좌절과 절망이 있는 사람은 남의 말을 듣지 못합니다.
그렇습니다. 그에게는 그럴 만한 여유가 없습니다.
상가(喪家)에 가서 우리가 별로 할 얘기가 없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어떤 말로 위로를 해도 큰 슬픔 때문에 잘 듣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 깊은 낙망에 빠져있습니까 ?
사랑하는 동역자들의 어떤 위로와 격려의 소리도,
자신의 마음까지 도달하지 않습니까 ?
그렇다면, 우리는 좀처럼 그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습니다.
특히 직장과 일터에서, 여러분들은 잘 듣는 쪽입니까
아니면, 귀를 막아버리는 쪽입니까 ?
혹 듣기 전에 미리 판단해 버리지는 않습니까 ?
지금 우리가,
가정의 역사, 기업의 역사, 민족의 역사, 미래의 역사를 바꾸기 위해서는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느헤미야와 같은 열린 귀가 있어야 합니다.
다른 소리가 안 들려오면, 그때부터 우리의 삶은 내리막길입니다.
특히, 하나님 말씀이 잘 안 들려오면 그것은 적신호입니다.
위험합니다.
오늘 이 시간 잘 듣는 복된 귀를 찾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둘째, 새 역사의 중심에 선 느헤미야는,
문제를 정확하게 진단하는 영적인 감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동생을 통해 들려 온 조국의 모습은, 어떠했습니까 ?
본문3절, "남은 자가 그 도에서 큰 환난을 만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성은 훼파되고 성문들은 소화되었다 하는지라"
자 ! 여러분 !
왜 예루살렘에 이런 일이 생겼습니까 ?
그렇습니다.
느헤미야는 무릎꿇고 우는 가운데 이유를 깨닫습니다.
그리고 본문6-7절을 통해 진단의 결과를 얻습니다.
"나와 나의 아비 집이 犯罪하여 주를 향하여 심히 악을 행하여
주의 종 모세에게 주께서 명하신 계명과 율례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였나이다"
그렇습니다.
자신의 민족의 어려움과 고난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느헤미야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역사, 철학을 비롯한
모든 분야에서 왕과 대화할 만한, 지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얼마든지 민족이 당한 환란의 원인을,
세상적인 경험과 시각으로 분석해 볼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민족의 고난의 원인을 세상에서 찾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찾았습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여러분은 여러분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그 일에 대한 원인을 어디에서 찾으십니까 ?
그저 세상적인 판단으로 그 원인을 찾고 있지는 않습니까 ?
나를 도와 사람이 없었다든지,
아니면 나를 위해 경제적으로 별로 도움되는 사람이 없었다든지 하는
그런 것에서 원인을 찾지는 않습니까 ?
혹은 '재수가 좋아서, 혹은 재수가 없어서'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까 ?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은, 모든 삶의 원인을 하나님 안에서 찾습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사람은 세상과 주위에서 그 원인을 찾으려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세상의 모든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 말씀 속에서, 그 원인을 찾고 또 깨달았던
느헤미야의 탁월한 영적 감각이, 여러분들 가운데도 있기를 축복합니다.
오래 전,
전기고장으로 미국의 포드 자동차 회사가
자동차를 생산하는 모든 시설들을 중단하게 되는, 큰 사고가 있었다고 합니다.
포드 자동차는 자체적으로 전기기사를 동원해서 고치려고 해봤지만,
도저히 고칠 수가 없었고, 결국에는 유명한 전기 전문 기사를 불렀다고 합니다.
포드 자동차 회사에 도착한 전기 전문가는
작은 공구 몇 개 들고 다니며 뚝딱뚝딱하더니, 1시간도 안되어 수리를 마쳤습니다.
역시 전문가였습니다.
얼마 후, 포드 자동차로 전기 수리 청구서가 날라 왔습니다.
그런데 그 금액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엄청났습니다.
포드 자동차는 즉각 항의하며, 청구 명세서를 요청했습니다.
얼마 후, 명세서가 왔는데 '고장 원인 진단 비용 990불, 수리비 10불'
그렇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진단하는 것이 기술의 핵심입니다.
우리가 가정을, 기업을, 내 미래를, 민족을 바꾸려면
먼저 원인이 어디서 왔는지를 분명히 진단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쉽게 고치고 흐름을 바꿀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오늘 본문의 느헤미야처럼,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자신과 가정과 일터와 신앙을 온전히 진단할 수 있는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셋째, 새 역사의 중심이 되려면, 지금 내 자리를 기도의 자리로 바꿔야 합니다.
본문4절을 보면,
느헤미야가 고국의 소식을 듣고 처음에는 대성통곡했지만,
곧바로 한 일은 기도였습니다.
수일 동안 그저 울기만 한 것이라, 눈물의 기도를 드렸던 것입니다.
느헤미야서는 모두 13장으로 되어 있는 아주 짧은 성경입니다.
그런데 그 사이에 느헤미야가 기도했다는 내용이 무려 아홉 군데나 나옵니다.
그렇습니다.
느헤미야는 성경에 나타난 누구보다도 기도에 열심인 사람이었습니다.
세상사람들이 볼 때, 황제에게 큰 신임을 얻고 있는 느헤미야는,
황제와 상의하면 모든 것이 끝나는 사람입니다. 해결 방법이 거기 있어 보입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그 황제를 의지하지 않고,
역사의 주관자 되시는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느헤미야는 사람이나 권력이나 물질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바로 이것이 그를 새 역사의 중심 되게 하는 핵심이었습니다.
더구나 느헤미야의 기도에는, 자신이 마땅히 감당할 헌신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가 기도하는 가운데, 아닥사스다 왕에게 한 말을 보면, 그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느헤미야2:5. "나를 유다 땅 나의 열조의 묘실 있는 성읍에 보내어
그 성을 중건하게 하옵소서"
성도여러분 !
기도 속에 내 헌신이 들어가지 않으면 그 기도는 완성된 기도가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느헤미야는 구체적으로 자신의 헌신할 일을 하나님께 아뢰었습니다.
우리들도 그저 기도만 하지말고, 내가 마땅히 드려야 할 헌신을 다짐합시다.
국가를 위해 기도한다면, 국가에 대한 헌신을,
기업과 직장을 위해서 기도한다면, 기업과 직장을 향한 나의 헌신을,
교회와 가정을 위해 기도한다면, 마땅히 교회와 가정을 위해 할 나의 헌신을,
그리고 누군가를 위해 기도한다면, 그를 향한 나의 섬김과 헌신이 포함되어야
참으로 온전한 기도인 것입니다.
더구나 그러한 헌신의 기도는, 우리를 새 역사의 중심에 서게 하는 열쇠가 됩니다.
나폴레옹은 전쟁을 하면 꼭 승리하는, 전쟁에 뛰어난 황제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승리하는 비결 중의 하나는,
전쟁이 막 벌어지고 있는 동안 꼭 핵심 참모들과 함께 전쟁터를 볼 수 있는
높은 고지에 올라간다는 것입니다.
한 번은, 참 불리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을 때였다고 합니다.
나폴레옹과 그의 부하 장군들이 올라가서 보는 동안 나폴레옹이 말했습니다.
"저 건너편에 농장이 보이나 ?"
"네, 보입니다"
"저 농장을 반드시 점령하라 !
그리고 사수하라. 모든 것을 다 잃어버려도 좋으니 무조건 사수하라."
병사들은 명령에 순종했고 결국 그 전쟁은 나폴레옹 군대의 승리로 끝났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나폴레옹 군대가 그 전투에 승리한 것은
그 농장이 전투의 승패가 되는 가장 중요한 거점이 됐었는데,
그것을 확보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나폴레옹, 그는 어디에 서 있어야 승리하는지를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진짜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
성공할 자리가 어디인지 알았던 사람입니다.
그것은 바로 헌신을 바탕으로 한, 기도의 자리였던 것입니다.
기도의 자리를 잃어버릴 때,
그는 모든 것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그랬기에 그는 기도의 자리를 놓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여러분은 승리를 위해서 어떤 방법으로, 어디에 서서 행하십니까 ?
느헤미야는 남들이 보기에 좋았던 위치를 오히려 버리고,
자기의 자리를 기도하는 자리로 바꿔서 역사를 바꾼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 !
혹시 지금 답답하지 않습니까 ?
뭔가 꽉 막혀있지 않습니까 ?
그 답답함의 고리를, 헌신의 기도로 확 끊어버리십시오.
그리고 여러분 자신의 역사를 바꾸십시오 !
하나님이 세우신 여러분의 가정, 기업을 위해 헌신을 다짐하며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가정은 놀라운 축복을 받는 가정이 될 것입니다.
또한 우리 다 같이 본향교회를 위해 헌신하며 기도합시다.
다른 사람이 있는 동안 부흥케 하지말고,
여러분이 계시는 동안 크게 부흥시키시기 바랍니다.
錦絲4丁目 어두운 골목에 있던 교회가 본향교회였습니다.
그 역사를 이제 바꾸십시다. 우리교회의 역사를 새로 쓰십시다.
우리의 믿음의 후배들에게 풍성하고 아름다운 것들로 물려주십시다.
아름다운 예배당은 물론,
기도실과 연주실이 가득하고,
찬양의 카페가 있고, 도서실이 있고, 휴게실이 있는 교회를 만듭시다.
어떻게 이 일이 가능합니까 ?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첫째, 귀를 여십시오.
하나님은 지금 우리들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둘째, 바르게 진단하십시오.
모든 일의 근본 원인을 하나님 말씀 안에서 발견하십시오.
셋째, 여러분의 자리를 기도의 자리로 바꾸십시오.
특히 헌신을 고백하며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은 이렇게 변화된 우리를, 큰 새 역사의 중심에 서게 하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