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2013년2월10일, 누가복음2:41-51(혹 예수님 잃어버렸다면 이제는 찾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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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 옆에 있는 귀한 지체들과 함께 이렇게 고백합시다.
본향교회를,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사명 감당하는, 교회 되게 합시다.
그러기 위해, 온전히 예배드리는 교회, 이웃을 섬기는 교회 만듭시다.
우리의 사랑 실천과 봉사로, 예수님 사랑이 가득한 교회 되게 합시다.
오래 전, 일본에 처음 온지 몇 개월 지나, 겨우 ひらがな カタカナ를 익히고,
일본어로 자기 소개 정도를 할 수 있게되었을 때,
용감하게도 일본 분들이 모인 곳에서 일본어 예배를 인도하게 된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일본어학교에서 초급 일본어를 겨우2∼3개월 배운 저로서는,
당시 일본어학교에서 초급 일본어를 겨우2∼3개월 배운 저로서는,
일본어를 보고 읽는 것도 매우 서툴렀었습니다.
그러나 나름대로 준비하여, 예배 시작, 찬송, 신앙고백, 기도까지는 통역 없이 日語로 인도했습니다.
그런데 설교만큼은 도저히 자신이 없어,
그런데 설교만큼은 도저히 자신이 없어,
미리 전날, 일본의 대학에서 일본어를 전공하는 분에게 통역을 부탁하고 원고를 주었습니다.
드디어 설교가 시작되었고, 15분 정도의 길이로 준비한 설교는
드디어 설교가 시작되었고, 15분 정도의 길이로 준비한 설교는
통역하는 분의 도움(제가 한 마디 傳하면, 通譯하는 분이 그것을 통역하는 방식으로)을 받아,
은혜 가운데 선포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설교의 마지막 부분, 가장 중요한 결론 부분에 이르러,
그만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설교 마지막 페이지의 원고가 없어진 겁니다.
분명히 있어야 할 마지막 장이 없었습니다.
순간 눈앞이 깜깜해졌습니다.
순간 눈앞이 깜깜해졌습니다.
그 후 어떻게 설교를 끝냈는지 모릅니다.
분명한 것은 통역하는 분도 저만큼 당황했다는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통역하는 분도 저만큼 당황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여러분들도 이런 비슷한 경험이 있지 않습니까 ?
분명히 가지고 있는 줄 알았는데, 막상 필요한 때가 되어 찾아보니,
분명히 가지고 있는 줄 알았는데, 막상 필요한 때가 되어 찾아보니,
찾던 그것이 없을 때, 사실 참으로 당황스럽습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이와 같은 일을 당한, 한 부부를 만나게 됩니다.
이 부부가 잃어버린 것은 어떤 물건이 아니었습니다.
이 부부가 잃어버린 것은 어떤 물건이 아니었습니다.
이 부부는 예수님을 잃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를 잃어버렸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설명하겠습니다.
예수님이 열 두 살 되던 해,
예수님은 처음으로 육신의 부모이신 요셉과 마리아와 함께 예루살렘에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유대인 남자는 열두 살이 되면 성인으로 인정받아,
유대인 남자는 열두 살이 되면 성인으로 인정받아,
모든 공식적인 모임에 참여할 자격을 가지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생전 처음으로 유월절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모든 유월절 행사가 끝이 났습니다.
이에 요셉과 마리아는 예루살렘에서의 일정을 모두 정리하고,
이에 요셉과 마리아는 예루살렘에서의 일정을 모두 정리하고,
다시 자신들의 삶의 터전인 나사렛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그런데 하루 길을 다간 후, 그들은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함께 있는 줄 알았던 예수님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여행을 할 때, 보통 남자는 남자끼리, 여자는 여자끼리 무리를 져 다녔는데,
당시에는 여행을 할 때, 보통 남자는 남자끼리, 여자는 여자끼리 무리를 져 다녔는데,
아이들은 그 어느 쪽에 있어도 상관없었습니다.
그러니까 마리아는 당연히 예수님이 요셉과 함께 있는 줄 생각했고,
그러니까 마리아는 당연히 예수님이 요셉과 함께 있는 줄 생각했고,
또 요셉은 예수님이 마리아와 함께 있는 줄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저녁에 숙소에서 만나보니, 예수님은 그 어느 쪽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저녁에 숙소에서 만나보니, 예수님은 그 어느 쪽에 없었습니다.
난리가 났겠지요. 친구들 사이에 찾아봐도 예수님은 없었습니다.
여러분 ! 혹시 아이를 잃어버리셨던 적이 있으십니까 ?
아니면, 아이 잃어버린 부모를 보신 적이 있으신 가요 ? 어떻던가요 ?
아니면, 아이 잃어버린 부모를 보신 적이 있으신 가요 ? 어떻던가요 ?
거의 실성한 사람처럼 되는 것이 정상입니다.
더군다나 외지(外地)에서 그런 일을 당하면 거의 절망상태가 됩니다.
그렇습니다. 평소에 아무리 침착한 부모라도 아이를 잃어버리면 제 정신이 아닙니다.
더군다나 외지(外地)에서 그런 일을 당하면 거의 절망상태가 됩니다.
그렇습니다. 평소에 아무리 침착한 부모라도 아이를 잃어버리면 제 정신이 아닙니다.
아마도 요셉과 마리아 역시 그러했을 것입니다.
친족이나 친구들 사이에서도 예수님을 찾지 못하자,
요셉과 마리아는 왔던 길을 거슬러 다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삼 일만에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수님을 찾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삼 일만에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수님을 찾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아주 편안하게 랍비들과 말씀을 주고받고 있었습니다.
이에 화가 난 마리아가 예수님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본문48절, "아이야 !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본문48절, "아이야 !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
마리아는 성품이 차분한 분이니까 이렇게 점잖게 이야기했겠지만,
저 같았으면 일단 한 대 쥐어박고 얘기를 시작했을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답이 아주 의외입니다.
오히려 반문합니다.
본문49절,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
본문49절,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
내가 내 아버지(하나님)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
누가복음의 기록자는 이 예수님의 말씀 뒤에 이런 설명을 적었습니다.
본문50절, "그 부모가 그가 하신 말씀을 깨닫지 못하더라"
본문50절, "그 부모가 그가 하신 말씀을 깨닫지 못하더라"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오늘날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이 실상은 예수님을 잃은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날 일부 신앙인들의 문제가 뭐냐 하면,
본문의 마리와 요셉처럼, 사실은 예수님이 자신들 가운데 없는데도
(자신들과 함께 하고 계시지 않는데도), 자기들과 함께 계신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지금 예수님이 자기 자신 속에 계심을 확신하십니까 ?
정말입니까 ?
그렇다면, 우리가 이렇게 살면 되겠습니까 ?
오늘 마리아와 요셉의 모습을 살펴보면, 오늘날의 신앙인들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자 !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예수님을 근심하며 찾았던 마리아와 요셉의 마음을 보겠습니다.
여러분 ! 요셉의 경우는 그렇다하더라도,
마리아가 예수님을 잃어버린 후, 크게 근심했던 것은 조금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여러분 ! 사실 마리아에게 있어서, 예수님은 어떤 분이었습니까 ?
예수님을 잃어버린 이 사건이 있기 13년 전,
천사로부터 하나님의 아들을 잉태할 것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마리아는 참 많이 놀랐습니다.
당시 자신은 정혼한 처녀였습니다.
당시 자신은 정혼한 처녀였습니다.
고로 정혼한 요셉으로부터 받을 오해와,
세상 사람들로 받을 따가운 눈총은 마리아를 두렵게 만들었습니다.
잉태한 일로, 어쩌면 돌에 맞아 죽을 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잉태한 일로, 어쩌면 돌에 맞아 죽을 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자기 몸에서 태어나실 분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이, 그 모든 두려움을 이기게 했습니다.
구세주가 자기 몸에서 태어난다는 것, 한 여인으로서 그보다 더 큰복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천사에게 이렇게 말했었습니다.
누가복음1:38 ,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그래서 마리아는 천사에게 이렇게 말했었습니다.
누가복음1:38 ,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그 후 천사의 말과 같이,
예수님이 자신의 태(胎)를 통해 태어났고,
이어지는 목자들과 동방박사들의 방문과 경배는, 마리아로 하여금
자신이 낳은 아기 예수님이, 분명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확신하게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마리아는 분명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아기 예수님이 胎中에 있을 때나,
가슴에 안겨서 젖을 먹을 때나,
말을 배울 때나,
동네서 뛰어 놀 때나,
언제나 마리아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세상을 구원하실 분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예 ! 자신이 낳은 아들이지만, 분명 경외의 마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또한 전능의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지켜주시는 것도 알았을 것입니다.
또한 전능의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지켜주시는 것도 알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이 장면에서 보여주는 마리아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
한 평범한 어머니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한 평범한 어머니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아들을 잃어버리고 허겁지겁하는 보통 여인입니다.
예수님을 그저 연약한 자신의 아들로만 대합니다.
하나님의 역사와 섭리는 전혀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역사와 섭리는 전혀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니 ! 전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마리아는 처음에는 그렇지 않았지만,
어느 순간 예수님이 구세주라는 사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마리아가 그 사실을 잊는 순간,
그리고 마리아가 그 사실을 잊는 순간,
마리아와 예수님의 관계는 평범한 어머니요, 아들의 관계로 되고 만 것입니다.
여러분 ! 마리아가 잊지 말아야 될 것은,
예수님은 비록 자기 아들이지만, 구세주라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게 점점 잊혀지고 말았습니다.
또한 본문의 마리아는, 언제부턴가 자기가 누군지도 잊고 말았습니다.
그렇습니다. 비록 자기가 예수님의 육신의 어머니였지만,
그렇습니다. 비록 자기가 예수님의 육신의 어머니였지만,
자신도 그 아들로부터 구원받아야만 하는 존재임을 잊었던 것입니다.
마리아는 예수님과 함께 살아가면서
예수님이 主님이 아니라, 어느 새 아들로만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예수님이 자기를 위해 있어야 했습니다.
사실 본문에서 예수님을 잃어버린 것은,
예수님이 어디로 가셨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들이 미처 확인하지 못하고 두고 간 것이었습니다.
처음을 잊어버린 마리아에게 있어서,
처음을 잊어버린 마리아에게 있어서,
예수님은 자기를 졸졸 따라와야 할 아들일 뿐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맨 처음 신앙 생활하여 은혜를 받았을 때는,
맨 처음 신앙 생활하여 은혜를 받았을 때는,
"예수님은 나의 구세주가 되시고, 나의 주인이 되신다"라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삽니다.
그러나 신앙 생활을 지속하면서 감격과 결심을 잃어버립니다.
그래서 심지어는, 예수님을 믿는 신앙을, 짐으로까지 여깁니다.
내가 앞서고, 예수님이 나를 졸졸 따라오면 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신앙 생활을 지속하면서 감격과 결심을 잃어버립니다.
그래서 심지어는, 예수님을 믿는 신앙을, 짐으로까지 여깁니다.
내가 앞서고, 예수님이 나를 졸졸 따라오면 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예수님을 잃어버린 마리아와 요셉은,
예수님이 자기의 뒤를 졸졸 따라오다가, 어렵고 힘들 때만 자기를 도와주기를 바라는
잘못된 신앙인들의 대표적인 샘플인 것입니다.
둘째, 이곳 저곳 예수님을 찾아 헤매는 마리아와 요셉의 모습입니다.
자 ! 12살 되신 예수님의 입장에서 지금의 상황을 살펴보겠습니다.
오늘 본문의 소년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는 처음으로 자기 아버지의 집인 성전을 구경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 얼마나 감격스러웠겠습니까 ?! 얼마나 가슴 설레었을까요 ?!
오랫동안 이 날을 기다리셨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
소년 예수님은 불과 몇 일만에 그 성전을 떠나고 싶었겠습니까 ?
아니지요. 하나님의 집인 성전에 좀더 계시고 싶었을 것입니다.
아니지요. 하나님의 집인 성전에 좀더 계시고 싶었을 것입니다.
분명 예수님의 마음은 이런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시편84:1-2, 4,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살아 계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
주의 집에 사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
시편84:10, "주(하나님)의 궁정(宮廷)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그런데 여러분 !
소년 예수님을 잃어버린 마리아와 요셉은, 정작 어디에서 예수님을 찾아 헤매었습니까 ?
본문44-45절, "동행중에 있는 줄로 생각하고 하룻길을 간 후
본문44-45절, "동행중에 있는 줄로 생각하고 하룻길을 간 후
친족과 아는 자 중에서 찾되, 만나지 못하매 찾으면서 예루살렘에 돌아갔더니"
처음엔 친척들 중에서 찾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예수님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음에는 아는 사람 중에서 찾았습니다.
나사렛 사람들에게 일일이 물어봤을 겁니다.
그래서 다음에는 아는 사람 중에서 찾았습니다.
나사렛 사람들에게 일일이 물어봤을 겁니다.
그런데 거기에도 예수님은 없었습니다.
그러자 두 사람의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근심으로 가득 찼습니다.
그래서, 왔던 길을 돌이켜 예루살렘으로 향하면서,
그러자 두 사람의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근심으로 가득 찼습니다.
그래서, 왔던 길을 돌이켜 예루살렘으로 향하면서,
길과 거리 그리고 마을들을 훑으며 예루살렘까지 올라갔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마리아와 요셉은 엉뚱한 데서 예수님을 찾았던 것입니다.
그들은 왜 ! 하나님의 집인 성전에 계실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을까요 ?
그들은 왜 ! 하나님의 집인 성전에 계실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을까요 ?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많은 사람이 찾는 예수님, 우리들이 잃어버린 예수님은,
많은 사람이 찾는 예수님, 우리들이 잃어버린 예수님은,
우리들과 가까운 사람 사이에 계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들이 좋아하는 사람 중에 계시지 않습니다.
우리들의 비위를 맞추어 주는 사람들 속에도 안 계십니다.
본문44절에 보면, "동행중에 있는 줄 생각하고"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러분 ! 이 말씀을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매일의 삶 속에서 우리의 동행이 얼마나 많습니까 ?
직장과 일터와 학교에 가면 우리와 같은 길을 가고 있는 사람을 만날 수 있습니다.
가정에 돌아가면 우리와 한 뜻을 품고 사는 가족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그 가운데에서 예수님을 찾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본문44절에 보면, "동행중에 있는 줄 생각하고"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러분 ! 이 말씀을 깊이 생각해 보십시오.
매일의 삶 속에서 우리의 동행이 얼마나 많습니까 ?
직장과 일터와 학교에 가면 우리와 같은 길을 가고 있는 사람을 만날 수 있습니다.
가정에 돌아가면 우리와 한 뜻을 품고 사는 가족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그 가운데에서 예수님을 찾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아무리 우리에게 좋은 동반자가 있다 하더라도, 그 동반자에게서 예수님을 찾을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우리의 동반자들을 얼마나 의지합니까 ?
심지어 그 동반자가 아니면 자신은 아무 것도 못할 것 같이 생각합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우리의 동반자들을 얼마나 의지합니까 ?
심지어 그 동반자가 아니면 자신은 아무 것도 못할 것 같이 생각합니다.
성도여러분 ! 분명히 기억하십시오.
잃어버린 예수님을 옆 사람이 찾아 주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나와 동행하는 사람이 예수님을 찾아 주지 않습니다.
잃어버린 예수님, 아니 (어떤 분에게는) 아직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예수님은 내가 찾아야 합니다.
잃어버린 예수님을 옆 사람이 찾아 주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나와 동행하는 사람이 예수님을 찾아 주지 않습니다.
잃어버린 예수님, 아니 (어떤 분에게는) 아직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예수님은 내가 찾아야 합니다.
나 자신이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더구나
우리의 모임 속에 예수님이 계시다고 해서, 나도 그 예수님과 함께 하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지금 이 예배에 분명 주님이 함께 하시지만,
지금 이 예배에 분명 주님이 함께 하시지만,
우리들 가운데는 그 주님과 진정한 사귐과 교제를 못하는 분도 있다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이제 예수님을 찾으러 가십시다.
그분을 만납시다.
자 ! 그렇다면, 우리는 예수님을 어디서 어떻게 찾아야 할까요 ?
오늘 본문은 그 방법을 잘 알려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 방법을 잘 알려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요셉과 마리아는 예수님을 어디에서 찾았습니까 ?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찾았습니다.
이 말씀을 지금 우리에게 적용시켜 보십시다.
이 말씀을 지금 우리에게 적용시켜 보십시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
우리가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곳이 어디입니까 ?
물론입니다. 두말 할 것 없이 교회입니다.
물론입니다. 두말 할 것 없이 교회입니다.
교회에 나와야 합니다. 그래야 예수님을 찾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 잃은 예수님을 찾기 위해, 한번이라도 더 교회에 나아오시기 바랍니다.
또한 예수님의 이름으로 드려지는 예배들과 여러 모임에 참여하기를 바랍니다.
주일예배도 드리고, 기관 모임도 참여하시고,
또한 예수님의 이름으로 드려지는 예배들과 여러 모임에 참여하기를 바랍니다.
주일예배도 드리고, 기관 모임도 참여하시고,
주님의 이름으로 아픈 사람을 찾아가서 함께 기도해주고 위로해 주는 곳에 참여하시며,
또 주님의 이름으로 모이는 모든 자리에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그곳에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바로 그곳에서 예수님을 찾을 수 있고, 또 그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곳에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바로 그곳에서 예수님을 찾을 수 있고, 또 그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을 만나는 문제가 그렇게 간단치만은 않습니다.
본문의 마리아와 요셉은 예수님을 찾긴 찾았지만, 예수님을 이해하지는 못했습니다.
본문50절, "그 부모가 그가 하신 말씀을 깨닫지 못하더라"
본문의 마리아와 요셉은 예수님을 찾긴 찾았지만, 예수님을 이해하지는 못했습니다.
본문50절, "그 부모가 그가 하신 말씀을 깨닫지 못하더라"
그렇습니다. 여러분 !
모임에 참여했다 해서, 교회에 나왔다고 해서, 모두가 예수님을 만나는 것은 아닙니다.
모임에 참여했다 해서, 교회에 나왔다고 해서, 모두가 예수님을 만나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 ! 오늘 본문을 보면, 성전에서 예수님은 무엇을 하고 계셨습니까 ?
그렇습니다. 성경박사들인 선생(랍비)들과 이야기를 주고받고 계셨습니다.
본문46절, "사흘 후에 성전에서 만난즉
그렇습니다. 성경박사들인 선생(랍비)들과 이야기를 주고받고 계셨습니다.
본문46절, "사흘 후에 성전에서 만난즉
그가 선생들 중에 앉으사 그들에게 듣기도 하시며 묻기도 하시니"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공부하는 학생의 모습의 본을 보이셨습니다.
겸손하게 앉아서 듣고, 또 질문했습니다.
겸손하게 앉아서 듣고, 또 질문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이 진정으로 예수님을 찾고 만나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교회에 나오는 것으로만 그칠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도 하고, 또 묻기도 해야 합니다.
당시 유대 백성들은, 유월절이 되면 예루살렘의 사방 백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의무적으로 다 성전을 찾아야만 했습니다.
그야말로 유월절 기간 동안의 예루살렘 성전은 사람의 산이요, 사람의 바다였습니다.
그야말로 유월절 기간 동안의 예루살렘 성전은 사람의 산이요, 사람의 바다였습니다.
그런데, 그 많은 사람들이 다 유월절 예배를 진심으로 드리기 위해서 올라왔을까요 ?
정말로 하나님을 만나고, 그 분과 교제하며, 영광 돌리기 위해 나아왔을까요 ?
아니요. 그렇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 가운데는 그저 성전 뜰만 밟은 후에,
정말로 하나님을 만나고, 그 분과 교제하며, 영광 돌리기 위해 나아왔을까요 ?
아니요. 그렇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 가운데는 그저 성전 뜰만 밟은 후에,
금빛 찬란한 성전을 바라보면서 "야 ! 웅장하구나 ! 야 ! 참 아름답다 !"
그렇게 감탄사만 내지르고 간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내 의무를 다했다."라며 속 시원히 돌아가는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마치 오늘날 일부 그리스도인들이, 주일 예배를 그저 의무(義務)로 여기고,
마치 오늘날 일부 그리스도인들이, 주일 예배를 그저 의무(義務)로 여기고,
예배를 마친 후 속 시원한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날 자신의 문제로 교회를 찾는 사람은 많지만,
진정으로 예수님을 만나기를 원하는 사람은 너무나 적습니다.
이 시간 함께 한 우리 모두는,
이 시간 함께 한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우고 익혀, 그 말씀 중에 함께 하시는 예수님을 꼭 만나시기를 축원합니다.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이 번 한 주간, 혹시 예수님을 잃어버렸다면, 그 잃은 예수님을 찾읍시다.
한 번도 예수님을 만나본 적이 없다면, 이제는 그 예수님 만나기를 소망합시다.
한 번도 예수님을 만나본 적이 없다면, 이제는 그 예수님 만나기를 소망합시다.
그러기 위해 여러분 !
예배의 자리에, 모임의 자리에 힘껏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나아간 것에 멈추지 말고,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분께 또 질문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나아간 것에 멈추지 말고,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분께 또 질문하시기 바랍니다.
지금 예수님과 함께 하고 계십니까 ?
그렇다면 정말 감사한 일입니다.
그렇다면, 그 예수님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먼 길을 갈 때, 예수님을 앞세우십시오.
공부를 할 때도, 예수님을 앞세우십시오.
하루를 시작할 때도, 직장에서 일을 시작할 때도 예수님을 앞세우십시오.
사업을 할 때나, 사람을 만날 때도 예수님을 앞세우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여호와이레의 기쁨을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예수님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먼 길을 갈 때, 예수님을 앞세우십시오.
공부를 할 때도, 예수님을 앞세우십시오.
하루를 시작할 때도, 직장에서 일을 시작할 때도 예수님을 앞세우십시오.
사업을 할 때나, 사람을 만날 때도 예수님을 앞세우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여호와이레의 기쁨을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
이번 한 주간, 예수님을 잃은 분들은 예수님을 찾는 한 주간,
그리고 예수님과 함께 하는 분들은,
그리고 예수님과 함께 하는 분들은,
그분과 깊은 교제와 사귐을 통해 그 만남을 성숙하게 하는 한 주간 되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
할렐루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