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2013년2월3일, 마태복음16:18-19(본향교회와 성도인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곳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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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 옆에 있는 귀한 지체들과 함께 이렇게 고백합시다.
바나바처럼, 어려운 이웃을 정성껏 돕는, 착한 믿음의 사람의 됩시다.
바나바처럼, 주방의 洋銀냄비와 같은, 온유한 믿음의 사람의 됩시다.
바나바처럼, 실패자에게 다시 기회를 주는, 따뜻한 사람이 됩시다.
바나바처럼, 주방의 洋銀냄비와 같은, 온유한 믿음의 사람의 됩시다.
바나바처럼, 실패자에게 다시 기회를 주는, 따뜻한 사람이 됩시다.
귀한 성도여러분 ! 다음의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세상에 있는 모든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의 공로로 세워졌다.
"세상에 있는 모든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의 공로로 세워졌다.
그래서 어떤 교회든, 예수님께서 친히 세우신 교회이므로,
음부(陰府, 지옥)의 권세가 이기지 못할 것이다."
사실 저는 위의 말씀을 믿고, 세상 어떤 교회든 다 존중했는데,
어쩌면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최근 가끔씩 마음에 생깁니다.
왜냐하면 제 눈으로 봐도 이건 아니다 싶은 교회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이런 제 생각이 매우 잘못된 것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
하지만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
그리고 바울이 편지를 보냈던 그 교회들이 지금까지 남아있습니까 ?
아니요. 대부분의 교회가 사라졌습니다.
아니요. 대부분의 교회가 사라졌습니다.
그 가운데 몇 교회는
교회가 교회답지 못해 하나님께서 그 촛대를 옮겨 버리셨을 가능성은 충분합니다.(요한계시록2:5)
그런데 이러한 예는, 성경에 등장하는 교회뿐만이 아닙니다.
제가 일본에 와서 알고 지냈던 교회들 가운데도, 이미 사라진 교회가 많습니다.
물론, 사라져간 교회들 중에는, 우리들 보기에 참으로 신실한 교회, 교회다운 교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교회들이 세상에서 사라진 것에 대해서는,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이 가득합니다.
또한, '왜 하나님께서는 그 교회들을 사라지게 하셨을까 ? 혹은 사라지도록 내 버려 두셨을까 ?'하는
또한, '왜 하나님께서는 그 교회들을 사라지게 하셨을까 ? 혹은 사라지도록 내 버려 두셨을까 ?'하는
의문도 품게됩니다.
그러나 여러분 !
사라져 간 교회들 가운데는,
하나님의 뜻을 가장한 인간의 욕망을 가득 채웠던 교회도 있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바람직한 교회상(敎會像)이 무엇인지 살펴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 본향교회가 더욱 교회다운 교회로 나아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 본향교회가 더욱 교회다운 교회로 나아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주님 오시는 그 날까지 우리 본향교회가 없어지지 않고, 귀한 사명을 감당케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은 자신의 교회에 천국 열쇠를 주십니다.
본문18-19절,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본문18-19절,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그런데 그 열쇠에는 맬 수도 있고 풀 수도 있는 권세가 주어졌습니다.
본문19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본문19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그렇습니다. 여러분 !
예수님은 자신의 교회에 천국의 열쇠를 주셔서, 그 교회가 무엇인가를 매면 하늘에서도 매이게 하시고,
그 교회가 무엇인가를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게 하는, 놀라운 권세를 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에 있는 교회들은, 세상의 문제들을 담당하고, 해결해 주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악한 것들은 잡아매어 더 이상 악을 못하게 하며,
얽매어 있는 사람들은 자유롭게 풀어주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이렇듯 우리 예수님은, 교회 공동체가 스스로 담당해야 할 몫을 남겨두셨습니다.
그래서 지체들의 헌신을 통해, 主님의 교회가 더욱 든든히 세워져 가기를 기대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 우리 교회를 교회다운 교회로 만들어 봅시다.
그래서 잠시 전 말씀드린 것처럼, 주님 오실 때까지 남겨진 교회가 되게 합시다.
자 ! 우리들이 가꿔가야 할 본향 교회는 어떤 교회가 되야 할까요 ?
저는 생각합니다.
교회는 네 가지의 방향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첫째는 위, 둘째는 주변, 셋째는 바깥, 넷째는 안입니다.
이 중 어느 한쪽이라도 막히게 되면, 교회는 동맥경화에 걸릴 수밖에 없고,
이 중 어느 한쪽이라도 막히게 되면, 교회는 동맥경화에 걸릴 수밖에 없고,
그것이 계속되다 보면 뇌졸증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첫째, 교회는 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교회는 하나님께 예배드림이 최우선입니다.
교회가 존재하는 가장 큰 이유는,
교회가 존재하는 가장 큰 이유는,
지체들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서, 혹은 약한 자를 격려하기 위해서, 혹은 외로움을 달래주기 위해서,
혹은 영 육간의 병든 사람들을 치료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무엇보다도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해 존재합니다.
예배가 온전히 드려지지 못한다면, 그 교회는 다른 어느 것에서도 온전할 수 없습니다.
예배가 온전히 드려지지 못한다면, 그 교회는 다른 어느 것에서도 온전할 수 없습니다.
교회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목사나 찬양대, 그리고 교회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은,
결국 예배자들과 하나님의 교통이라는 궁극적인 목적을 위해서 존재합니다.
다시 말하면, 예배드림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구약의 모세오경 중 출애굽기, 레위기 등을 기억해 보십시오.
성막에서 드리는 예배를 어떻게 드려야 할 지에 대해, 엄청난 정성을 쏟고 있습니다.
더구나 레위기는 전체가 제사, 즉 예배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예배에 대해, 너무 너무 강조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예배에 대해, 너무 너무 강조합니다.
그렇습니다.
예배는 교회에서 가장 중요합니다.
그런데 요즘 일부교인들 중에는 교회를 영화관이나,
혹은 연극무대 정도로 생각하는 분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공연장에 가면, 좌석에 앉은 관람객들은 무대 위의 배우를 쳐다봅니다.
그리고 배우들은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최선의 연기를 합니다.
배우의 공연이 만족스러우면 관객들은 박수와 환호성으로 답례합니다.
여러분 ! 오늘날의 일부 교회가 혹 이런 모습은 아닙니까 ?
공연장에 가면, 좌석에 앉은 관람객들은 무대 위의 배우를 쳐다봅니다.
그리고 배우들은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최선의 연기를 합니다.
배우의 공연이 만족스러우면 관객들은 박수와 환호성으로 답례합니다.
여러분 ! 오늘날의 일부 교회가 혹 이런 모습은 아닙니까 ?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교회는 결코 이런 공연장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만약 우리들이 예배가 끝나고 집에 돌아가면서,
만약 우리들이 예배가 끝나고 집에 돌아가면서,
"오늘 내가 예배에서 무엇을 얻었는가 ?"생각한다면, 그것은 순서가 바뀐 것입니다.
내가 예배를 통해 얼마나 은혜를 받았는가 하는 것보다,
내가 예배를 통해 얼마나 은혜를 받았는가 하는 것보다,
오히려 "나의 예배로 오늘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셨을까 ?"생각해야 합니다.
성도여러분 !
예배를 드리면서 우리들의 눈과 마음을 고정시켜야 할 곳은, 찬양대도 아니고, 목회자도 아니고,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예배의 구경꾼이 되지 맙시다. 관객도 되지 맙시다.
하나님을 바라보며 온전히 예배하는, 진정한 예배자가 됩시다.
이것이야말로, 우리 교회가 교회다운 교회가 되는 가장 첫걸음입니다.
그리고 그리할 때, 본향교회는 진정한 하나님의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며 온전히 예배하는, 진정한 예배자가 됩시다.
이것이야말로, 우리 교회가 교회다운 교회가 되는 가장 첫걸음입니다.
그리고 그리할 때, 본향교회는 진정한 하나님의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위를 바라보는 교회란,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 최선의 영광을 드리는 교회,
정말 예배 중 다른 것은 아무 것도 바라지 않은 채, 하나님의 영광과 임재(臨在)만을
간절히 바라는 교회를 말합니다.
우리 본향교회가 이런 교회가 되도록, 우리 예배를 회복합시다.
우리 본향교회가 이런 교회가 되도록, 우리 예배를 회복합시다.
둘째, 교회는 주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주위를 바라보는 교회란, 다양성(多樣性)이 인정되는 교회를 말합니다.
한국 강남의 어떤 교회는, 박사(Ph. D)만 200여명이라고 합니다.
전체 성도가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지만, 박사가 200명이라면,
한국 강남의 어떤 교회는, 박사(Ph. D)만 200여명이라고 합니다.
전체 성도가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지만, 박사가 200명이라면,
박사 아닌 사람은 쉽게 그 교회의 교인이 되기 어려울 것입니다.
아무리 끼리끼리 모인다지만, 교회마저 그래서는 안됩니다.
아무리 끼리끼리 모인다지만, 교회마저 그래서는 안됩니다.
우리 교회도 이런 면에 있어서는 자유롭지를 못했습니다.
그 동안 우리 교회는, 젊은이들의 교회로 분류가 됐었습니다.
물론 우리가 원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좀 더 다양성 있는 교회를 추구했어야 합니다.
그 동안 우리 교회는, 젊은이들의 교회로 분류가 됐었습니다.
물론 우리가 원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좀 더 다양성 있는 교회를 추구했어야 합니다.
누구도 나아 올 수 있는 교회 말입니다.
여러분 ! 사도행전에 나타난 초대 예루살렘교회는 어떠했습니까 ?
유대인과 헬라인, 남자와 여자, 노예와 자유인이 함께 모인 교회였습니다.
유대인과 헬라인, 남자와 여자, 노예와 자유인이 함께 모인 교회였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모든 담을 허물었습니다.
그런데, 왜 오늘날의 많은 교회는 이런 사실을 잊고 있는 걸까요 ?
만약 예수님께서 지금 이러한 교회를 방문하신다면,
그런데, 왜 오늘날의 많은 교회는 이런 사실을 잊고 있는 걸까요 ?
만약 예수님께서 지금 이러한 교회를 방문하신다면,
어쩌면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하셨던 일을 다시 한 번 하실 지 모릅니다.
그때는 채찍을 만드셔서 성전에 있는 장사꾼들을 몰아 내셨지만,
그때는 채찍을 만드셔서 성전에 있는 장사꾼들을 몰아 내셨지만,
이제는 끼리끼리 모여있는 교인들을 흩어 버리실 지도 모릅니다.
여러분 ! 무지개는 일곱 색깔의 빛이 모여, 조화를 이루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입니다.
본향교회도 일곱 색깔 무지개 교회가 되게 합시다.
일본인도 중국인도 한국인도 올 수 있는 교회,
일본인도 중국인도 한국인도 올 수 있는 교회,
부자도 가난한 사람도 올 수 있는 교회,
노인도 장년도 젊은이도 아이들도 올 수 있는 교회,
하나님을 아는 이도 모른 이도 올 수 있는 그런 교회가 되게 합시다.
그래서 계층과 신분과 성별과 인종을 넘어,
그래서 계층과 신분과 성별과 인종을 넘어,
하나님의 사랑 안에 아름답게 모인 그러한 교회가 되게 합시다.
이 소망을 갖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부탁합니다.
이 소망을 갖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부탁합니다.
셋째, 교회는 밖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윌리엄 템플이라는 분이 교회의 정의를 이렇게 내렸습니다.
"교회란, 자신들의 일원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위해 존재하는, 세상에서 유일한 공동체다"
그렇습니다.
"교회란, 자신들의 일원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위해 존재하는, 세상에서 유일한 공동체다"
그렇습니다.
교회는 자기들에게 속하지 않은 사람들도 섬겨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교회는 그렇지 못합니다.
아니 오히려, 교회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오히려 세상의 단체와 사람들이 담당합니다.
미국 시카고에 가면, 러쎌 스트리트 처치라는 교회가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교회의 예배당이 세워진 곳은,
그런데 이 교회의 예배당이 세워진 곳은,
시카고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과 가장 가난한 지역의 딱 중간 지점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교회에서 동쪽으로 백여 미터를 가면, 연봉 일억 이상을 받는 황금해안 지역이고,
그러니까 교회에서 동쪽으로 백여 미터를 가면, 연봉 일억 이상을 받는 황금해안 지역이고,
서쪽으로 백여 미터를 가면 연봉 400만원이 안 되는 빈민주택단지라고 합니다.
왜 이런 곳에 그 교회의 예배당을 세웠을까요 ?
그것은 그 교회 담임인 빌 레슬리 목사님이,
그 교회 성도들에게 빈민지역 사람들에게 다가갈 것과
또한 그들을 섬길 것을 촉구함으로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교회가 점차 빈민들과 부자들이 섞이게 되니까,
그 교회 어린이들 중에는 읽고 쓸 줄도 모르는 아이들도 생기고,
어른 들 중엔 당장 끼니가 급한 사람도 생겨났습니다.
하지만, 그런 모든 문제들이 그 교회 안에서 다 해결됐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런 모든 문제들이 그 교회 안에서 다 해결됐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러쎌 스트리트 처치는
밖을 바라보며 섬기는 교회, 또 그 섬김을 교회 안으로 가져와 더욱 확실히 하는 교회였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사랑하는 여러분 !
우리 본향교회도 밖을 바라보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저 형식적으로, 혹은 연간행사로가 아니라, 항상(常に) 바라보고 섬겨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세상(이 땅)의 소금이고 세상(이 땅)의 빛이기 때문입니다.
그저 형식적으로, 혹은 연간행사로가 아니라, 항상(常に) 바라보고 섬겨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세상(이 땅)의 소금이고 세상(이 땅)의 빛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함께 교독합시다.
마태복음5: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마태복음5: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마태복음5: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마태복음5:15,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마태복음5: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마태복음5:15,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마태복음5: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마태복음5: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성도여러분 !
또한 교회와 성도는, 마치 거름과도 같습니다.
거름은 한 곳에 쌓아두면 이웃에게 악취를 풍깁니다. 정말 냄새가 심하지요.
그러나 그 거름이 땅에 골고루 뿌려지면, 그 땅을 비옥하게 만듭니다.
거름은 한 곳에 쌓아두면 이웃에게 악취를 풍깁니다. 정말 냄새가 심하지요.
그러나 그 거름이 땅에 골고루 뿌려지면, 그 땅을 비옥하게 만듭니다.
사랑은 아무리 나누어도 줄어들지 않습니다. 나눌수록 풍성해 지는 것이 사랑입니다.
우리 본향교회가 그런 교회가 되도록 우리 모두 힘씁시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러한 우리를 도와주실 것입니다.
우리 본향교회가 그런 교회가 되도록 우리 모두 힘씁시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러한 우리를 도와주실 것입니다.
넷째, 교회는 안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교회에 처음 갔을 때, 그 교회 어떤 점을 가장 눈여겨보십니까 ?
물어볼 것도 없이 전체를 통틀어 '사랑과 은혜가 있느냐 없느냐'일 것입니다.
어떤 교회든 안을 바라보는 교회란, 바로 그 사랑과 은혜의 존재 여부에 있습니다.
물어볼 것도 없이 전체를 통틀어 '사랑과 은혜가 있느냐 없느냐'일 것입니다.
어떤 교회든 안을 바라보는 교회란, 바로 그 사랑과 은혜의 존재 여부에 있습니다.
저는 몇 년 전 돌아가신, 제 스승 전대홍 목사님을 참 존경합니다.
그 분을 존경하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도 그 분은 하나님을 간절히 사랑했으며,
그 분을 존경하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도 그 분은 하나님을 간절히 사랑했으며,
그와 똑같은 마음으로, 함께 한 지체들을 사랑했다는 것입니다.
저 뿐 아니라 다른 성도들도, 그 목사님만 보면,
저 뿐 아니라 다른 성도들도, 그 목사님만 보면,
자기 자신이 그 분께 참으로 큰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제 스승 목사님이 세상을 떠난 것과 함께,
저를 향한 그 목사님의 가르침과 교훈도 하나 둘씩 잊혀져 갑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분은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셨고, 지체를 사랑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지금도 제 마음 속에 가득히 남아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분은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셨고, 지체를 사랑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지금도 제 마음 속에 가득히 남아있습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 교회도 이래야 합니다.
우리 본향에서 한 번이라도 예배를 드렸던 사람이라고 한다면,
우리 교회도 이래야 합니다.
우리 본향에서 한 번이라도 예배를 드렸던 사람이라고 한다면,
다른 것은 기억하지 못해도, '참 사랑이 가득한 교회였다' 혹은 '참 따뜻한 교회였다'고
기억할 수 있게 하는, 그런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시는 가,
그것을 끊임없이 느낄 수 있게 해 주는 교회가 좋은 교회이며,
아름다운 교회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 교회를 그런 교회가 되게 합시다.
담임목사인 저부터, 더욱 사랑으로 섬기는 본을 보이겠습니다.
앞서 헌신하시는 집사님, 권찰님들도 사랑으로 섬겨 주십시오.
그리고 우리 모든 지체들도 사랑으로 섬겨 주십시오.
우리 교회는 분명, 사랑이 가득한 사랑의 교회가 될 것입니다.
우리 교회를 그런 교회가 되게 합시다.
담임목사인 저부터, 더욱 사랑으로 섬기는 본을 보이겠습니다.
앞서 헌신하시는 집사님, 권찰님들도 사랑으로 섬겨 주십시오.
그리고 우리 모든 지체들도 사랑으로 섬겨 주십시오.
우리 교회는 분명, 사랑이 가득한 사랑의 교회가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
교회와 성도인 우리들은, 본향에 속한 모든 지체들에게,
교회와 성도인 우리들은, 본향에 속한 모든 지체들에게,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체험하게 하고, 느끼게 해야할 의무가 있습니다.
여러분 ! 그 사명을 올해는 뜨겁게 감당해 봅시다.
여러분 ! 그 사명을 올해는 뜨겁게 감당해 봅시다.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 교회가 이런 네 요소에 다 합당하는 교회가 되기에는, 아직 길이 참 멉니다.
아직 우리는, 위를 바라보는 것(예배)도 온전치 못합니다.
아직 우리는, 주위를 바라보는 것(다양성이 있는 교회)도 부족합니다.
아직 우리는, 밖을 바라보는 것(세상 이웃 섬김)도 턱없이 부족합니다.
아직 우리는, 안을 바라보는 것(성도 사랑)도 온전치 못합니다.
아직 우리는, 주위를 바라보는 것(다양성이 있는 교회)도 부족합니다.
아직 우리는, 밖을 바라보는 것(세상 이웃 섬김)도 턱없이 부족합니다.
아직 우리는, 안을 바라보는 것(성도 사랑)도 온전치 못합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 다 같이 그런 아름다운 교회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십시다.
우리 주님께서, 반드시 우리와 함께 하실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반드시 우리와 함께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교회, 우리가 꿈꾸는 교회다운 교회가,
하나님의 은혜와 우리들의 헌신을 통해 이 본향에 이루어지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간구합니다.
할렐루야 !
할렐루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