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2013년6월23일, 누가복음1:1-4(쓰는 글로서도 사명을 감당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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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 계신 복스러운 지체들을 이렇게 축복합시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축복할 수 있는 특권을 주셨습니다.
심지어 우리를 힘들게 하고, 핍박하는 사람들까지 축복하라고 하셨습니다.
심지어 우리를 힘들게 하고, 핍박하는 사람들까지 축복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축복의 권세를 가지고, 무엇보다 먼저, 맡김 받은 자녀를 축복합시다.
또한 이 축복의 권세를 가지고, 영적인 자녀들도 축복합시다.
또한 이 축복의 권세를 가지고, 믿음의 형제 자매들도 축복합시다.
또한 이 축복의 권세를 가지고, 영적인 자녀들도 축복합시다.
또한 이 축복의 권세를 가지고, 믿음의 형제 자매들도 축복합시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지난6월18일, 한국에서 열린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 회의에서,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정해졌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이제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는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정해졌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이제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는
UN유네스코의 지원 속에, 세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또 보호받게 되었습니다.
이날 세계기록문화유산 국제자문위원회(IAC)는
'난중일기(亂中日記)'의 세계기록유산 등재 이유에 대한 질문에 이렇게 답을 했습니다.
"난중일기는 한 개인의 일기(日記)이기는 하지만, 그 치열한 전쟁 기간에, 해군의 최고지휘관이,
"난중일기는 한 개인의 일기(日記)이기는 하지만, 그 치열한 전쟁 기간에, 해군의 최고지휘관이,
직접 매일 매일의 전투 상황과 개인적 감회를 현장감 있게 기록한 글로서,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아주 귀한 기록물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난중일기'는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이 시작된 1592년1월부터 1598년11월까지 7년에 걸쳐 기록한
일기이며, 총 7권으로서 현재는 한국 아산에 있는 현충사에서 보관되어 있습니다.
난중일기에는, 엄격한 진중생활, 국정에 대한 솔직한 느낌, 전투 후의 기록, 수군 통제전술,
부하들에 대한 상벌, 가족, 친지, 부하, 내외 요인들의 내왕과 편지글 등도 실려 있어
당시의 연구에 큰 도움을 준다합니다.
또한 개인적인 일상이나 고민도 많이 기록되어 있고,
어머니와 부인을 그리워하며, 자식을 걱정한 것도 기록 되어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오늘날에는 이순신 장군을 평가할 때, 전쟁의 영웅으로도 그를 높이지만,
그래서 오늘날에는 이순신 장군을 평가할 때, 전쟁의 영웅으로도 그를 높이지만,
훌륭한 기록자로서의 그를, 더욱 존경한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
난중일기가 기록될 당시를 한 번 상상해 보십시오.
이순신 장군은 전쟁 가운데 이 일기를 썼습니다.
총23번의 모든 전투가 목숨을 걸고 한 전투였는데,
총23번의 모든 전투가 목숨을 걸고 한 전투였는데,
그 전투를 마치고 진으로 돌아왔을 때 얼마나 지치고 힘들었겠습니까 ?
그리고 전투 후에 수습해야 될 일은 또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
일기고 전쟁의 기록이고, 우선은 쉬고 싶지 않았겠습니까 ?
그리고 전투 후에 수습해야 될 일은 또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
일기고 전쟁의 기록이고, 우선은 쉬고 싶지 않았겠습니까 ?
더구나 난중일기를 보면, 이순신 장군의 건강도 결코 좋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장군은 기록하기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더욱이 당시에는, 요새처럼 볼펜이나 만년필이 있던 시대가 아닙니다.
그런데도 장군은 기록하기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더욱이 당시에는, 요새처럼 볼펜이나 만년필이 있던 시대가 아닙니다.
먹과 붓으로 쓰려니 얼마나 번거롭고 또 힘들었겠습니까 ?
그런데 여러분 !
직접 펜으로 쓴 기록이 아니라, 컴퓨터의 자판으로 찍어내는 기록만으로도 글자와 글자 사이,
또는 문장과 문장 사이의 공간에서, 기록자가 느끼는 벅찬 느낌이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하물며 먹을 갈아 한 자 한 자 적어 나갈 때, 쏟아져 나오는 그것들의 부피와 크기가 얼마나 엄청날지는
하물며 먹을 갈아 한 자 한 자 적어 나갈 때, 쏟아져 나오는 그것들의 부피와 크기가 얼마나 엄청날지는
정말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사실, 이번에 난중일기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선정되어, 한국의 높은 문화를 세계에 알린 것도,
장군으로서의 이순신이 아닌, 기록자로서의 이순신이
세계 많은 사람들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은 것입니다.
여러분 ! 한 가지 묻겠습니까 ?
요즘, 글을 쓰시는 편입니까 ? 아니면 전혀 글을 쓴 기억이 없으십니까 ?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요즘, 글을 쓰시는 편입니까 ? 아니면 전혀 글을 쓴 기억이 없으십니까 ?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오늘 저는 여러분들에게 간곡히 부탁합니다.
우리 또한 위대한 기록자가 됩시다.
우리 또한 위대한 기록자가 됩시다.
어쩌면 우리가 지금보다 훨씬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었는데,
지금 정도에 머무르고 있는 까닭은 기록하지 않아서일지도 모릅니다.
"나는 본래 글 쓰는 것과는 거리가 멀어, 그것은 내 스타일이 아니야 !"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실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여러분 !
잘 쓴 글만 글이고, 길게 쓴 글만 글이고, 읽어줄 사람이 있는 글만 글인 것은 결코 아닙니다.
글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거기에 담긴 마음이요 소망인 것입니다.
기록자가 좀 서툴더라도, 그것을 읽게 된 독자는,
잘 쓴 글만 글이고, 길게 쓴 글만 글이고, 읽어줄 사람이 있는 글만 글인 것은 결코 아닙니다.
글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거기에 담긴 마음이요 소망인 것입니다.
기록자가 좀 서툴더라도, 그것을 읽게 된 독자는,
기록자가 기대한 것의 수십 배의 감동을 받는 경우들이 정말로 많습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 모두는 기록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의 글들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며,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 모두는 기록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의 글들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며,
사람에게 용기를 주고, 생명을 살리는 글로 성장되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어떤 기록자가 되어야 할지를 전하고자 합니다.
오늘 우리는 누가가 쓴 글의 가장 서두 부분을 읽었습니다.
그는 의사로서 사도 바울과 끝까지 함께 했던 신실한 동역자입니다.
그는 의사로서 사도 바울과 끝까지 함께 했던 신실한 동역자입니다.
본문3절을 보면, 누가는 이 글을 데오빌로에게 보내기 위해 썼습니다.
데오빌로라는 사람이 누군가 하는 것은, 여러 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실제 인물로서 로마의 고관이라 하기도 하고,
실제 인물로서 로마의 고관이라 하기도 하고,
누가의 친척인데 피치 못할 이유 때문에 가명을 쓴 것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어쨌든, 바울은 데오빌로에게 두 번의 편지를 씁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본문인 누가복음과 또 다른 신약성경인 사도행전입니다.
그런데, 누가 당시의 기록 환경은, 이순신 장군 때보다 더 나빴습니다.
갈대의 일종인 파피루스의 밑 둥을 잘라서 얼기설기 엮은 종이 위에다, 새의 깃털로 글자를 썼습니다.
어쨌든, 바울은 데오빌로에게 두 번의 편지를 씁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본문인 누가복음과 또 다른 신약성경인 사도행전입니다.
그런데, 누가 당시의 기록 환경은, 이순신 장군 때보다 더 나빴습니다.
갈대의 일종인 파피루스의 밑 둥을 잘라서 얼기설기 엮은 종이 위에다, 새의 깃털로 글자를 썼습니다.
거의 새겼다는 표현이 맞을 겁니다.
더구나 분량도 대단합니다.
더구나 분량도 대단합니다.
누가복음이 24장, 사도행전 28장이니까 오늘날 A4용지로 빽빽이 100페이지가 넘는 분량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어떤 한 사람을 위해, 이런 장문(長文)의 편지를 쓴다는 것이 정말 놀랍지 않습니까 ?
어떤 한 사람을 위해, 이런 장문(長文)의 편지를 쓴다는 것이 정말 놀랍지 않습니까 ?
오늘 드리고 싶은 첫 번째 이야기는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단 한 사람을 위해서라도, 글을 쓸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단 한 사람을 위해서라도, 글을 쓸 수 있어야 합니다.
본문을 기록한 누가는, 데오빌로를 생각하며 이 글을 썼습니다.
그는 분명 누가가 깊이 사랑하고 귀중히 여기는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는 분명 누가가 깊이 사랑하고 귀중히 여기는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내가 지금 아주 사랑하는 사람에게, 뭔가 간절히 전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를 위해 한 기록의 글도 쓰지 않고, 그냥 그렇게 시간만 보내고 있지는 않습니까 ?
한국에 오래 체류하는 외국인들이, 한국에서 가장 의아해 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라고 합니다.
서양 사람들은 누군가 죽으면, 대개의 경우 자신의 가족이나 친지들에게 글을 남긴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국사람들은 좀처럼 글을 남기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냥 말로 하나요 ?!)
여러분 ! 우리에게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부모님 혹은 형제 자매, 혹은 친구나 선생님 그리고 직장 동료나 동역자 .......
우리가 정말로 그들을 사랑한다면, 우리는 본문의 누가 정도는 아니어도,
우리가 정말로 그들을 사랑한다면, 우리는 본문의 누가 정도는 아니어도,
어떤 모양으로든 그들을 위해 글을 남겨야 하지 않겠습니까 ?
물론 사랑은 다른 여러 모습으로라도 충분히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도, 그 사랑을 다시금 깊이 느끼게 해주는 것은,
그러나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도, 그 사랑을 다시금 깊이 느끼게 해주는 것은,
기록된 글보다 더 좋은 것이 없습니다.
요즘 젊은 엄마들이 자녀를 키우면서 육아일기를 많이 씁니다.
분명 다가올 미래의 많은 날 동안,
분명 다가올 미래의 많은 날 동안,
기록한 어머니에게도 또 양육 받은 자녀에게도 더 없이 아름답고 소중한 사랑의 흔적이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무엇인가 글을 쓸 수 있는 그런 결심이,
우리들 모두에게 꼭 있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둘째,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무엇을 써야 할까요 ?
이것이 중요한 것은,
잘못 기록한 글, 잘못 쓴 글은 오히려 사람의 마음을 황폐하게 하거나 타락시키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찰스 다윈이 쓴 '종의 기원'을 바탕으로 진화론적 사상이 교육계에 들어갔고,
그 결과 인간은 원숭이의 후손이 된, 참으로 황당한 교육이 지금 세계 곳곳에서 시행되고 있습니다.
또한 히틀러가 쓴 '나의 투쟁'이란 글은,
또한 히틀러가 쓴 '나의 투쟁'이란 글은,
세계 많은 사람들을, 전쟁의 고통과 유대인들을 향한 학살로 이어지게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우리의 기록은 보다 긍정적이고, 더욱 아름다운 쪽을 중심으로 쓰여야 할 것입니다.
자 ! 그렇다면, 오늘 본문의 누가는 무엇을 기록했을까요 ?
누가가 데오빌로에게 쓴 또 다른 편지인 사도행전에는,
누가가 데오빌로에게 쓴 또 다른 편지인 사도행전에는,
누가 자신이 누가복음에 무엇을 기록했는지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사도행전1:1-2,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께서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그가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
그렇습니다. 한 마디로 온통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들이었습니다.
즉, 예수님을 주인공으로 해서 글을 썼다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을 주인공으로 해서 글을 썼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 말씀드린 대로 기록은 기록 자체가 갖는 힘이 있습니다.
그런데 쓰여진 글 중에서, 특히 읽는 자로 하여금 용기를 가지게 하고,
그런데 쓰여진 글 중에서, 특히 읽는 자로 하여금 용기를 가지게 하고,
소망을 가지게 하는 글은 분명 좋은 글이고 아름다운 글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
어떤 글이 그것을 읽는 사람에게 용기와 소망은 물론, 영원한 생명과 구원까지 얻게 한다면,
그 글은 정말 가치 있는 글입니다.
제가 무슨 말씀을 드리려고 하는지 아실 것입니다.
제가 무슨 말씀을 드리려고 하는지 아실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다윈과 히틀러의 글은 세상을 전쟁으로 밀고 인간의 존엄성을 잃게 했지만,
오늘 누가의 글은 수많은 사람을 살렸습니다.
요사이 새벽예배 때에 보는 말씀은 시편입니다.
지난주간에 시편38편까지 보았습니다. 거의 모두가 다윗의 시입니다.
그렇습니다. 다윗이 기록한 글들입니다.
사실 다윗은 틈만 있으면 글을 쓰는 사람이었습니다.
지난주간에 시편38편까지 보았습니다. 거의 모두가 다윗의 시입니다.
그렇습니다. 다윗이 기록한 글들입니다.
사실 다윗은 틈만 있으면 글을 쓰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니 이순신 장군처럼 틈이 없어도 다윗은 글을 썼습니다.
더구나 다윗의 글은 대개의 경우 시(詩)였습니다.
다윗은 두려울 때도 시를 썼습니다.
기쁠 때도 씨를 썼습니다.
비가 올 때도 시를 썼습니다.
낮의 해를 보면서도 글을 썼고, 밤하늘의 달과 별을 보면서 글을 썼습니다.
젊어서도 글을 쓰고 늙어서도 글을 썼습니다.
죄를 짓고도 글을 썼고, 회개하고서도 글을 썼습니다.
정말 시도 때도 없이 글을 썼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
이 모든 다윗 글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것, 꼭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
물론입니다. 하나님입니다.
물론입니다. 하나님입니다.
그는 어떤 글을 쓰면서도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래서 다윗의 글에는 하나님의 향기가 풀풀 납니다.
그래서 다윗의 글에는 하나님의 향기가 풀풀 납니다.
하나님의 향취가 가득합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들도 뭔가를 써 봅시다. 그리고 글을 쓰면서 주님을 바라봅시다.
묵상이든, 기도문이든, 시든, 수필이든 형식은 상관없습니다.
어쨌든 그렇게 한 줄 한 줄 써 가다보면, 머지 않아 우리의 글도 다윗의 그 글들처럼,
우리들도 뭔가를 써 봅시다. 그리고 글을 쓰면서 주님을 바라봅시다.
묵상이든, 기도문이든, 시든, 수필이든 형식은 상관없습니다.
어쨌든 그렇게 한 줄 한 줄 써 가다보면, 머지 않아 우리의 글도 다윗의 그 글들처럼,
오늘 본문의 누가의 글들처럼, 예수님 이야기로 가득해질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그 글들은, 분명 사람을 살리는 글이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
그리고 우리의 그 글들은, 분명 사람을 살리는 글이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 당장 오늘부터, 단 한 사람을 위해서라도 글 쓰기를 시작해 봅시다.
저는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 본향의 지체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거나 혹 믿음이 떨어진 우리의 가족들에게, 친지들에게, 친구들에게
우리 당장 오늘부터, 단 한 사람을 위해서라도 글 쓰기를 시작해 봅시다.
저는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 본향의 지체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거나 혹 믿음이 떨어진 우리의 가족들에게, 친지들에게, 친구들에게
글을 쓰게 되기를 바랍니다.
특히, 그저 예수님을 소개하는 딱딱한 글이 아닌, 우리의 삶을 통해 경험되어지고,
또한 체험되어진 그 예수님의 잔잔한 사랑을, 글로 쓸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분명, 우리들 삶 속에서 함께 해 주시는 예수님의 은혜들이,
분명, 우리들 삶 속에서 함께 해 주시는 예수님의 은혜들이,
우리의 글 속에서 아름다운 빛을 발하리라 확신합니다.
또한, 우리가 쓴 그 글들은, 분명 그 글을 읽는
우리의 가족, 친지, 친구들에게 예수님을 만나는 은혜의 통로가 될 것입니다.
데오빌로에게 보냈던 누가의 기록은, 본인이 상상치도 못했던 성경이 되었습니다.
여러분들의 기록 역시, 하나님의 큰 뜻을 이룰 것이라 확신합니다.
그런 소망을 가지고 기록을 시작하십시오.
여러분들의 기록 역시, 하나님의 큰 뜻을 이룰 것이라 확신합니다.
그런 소망을 가지고 기록을 시작하십시오.
우리 본향의 모든 성도들이, 쓰는 글로서도 사명을 감당하는, 다윗과 같은, 누가와 같은, 바울과 같은,
김남준 같은, 기일혜 같은 귀한 분들 되시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
할렐루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