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4월28일, 사무엘상16:10-13(自立도 이루어내고, 섬김도 힘쓰는 본향성도) > 主日説教原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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主日説教原稿

2013 2013년4월28일, 사무엘상16:10-13(自立도 이루어내고, 섬김도 힘쓰는 본향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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投稿者 박성철
コメント 0件 照会 11,613回 日時 13-05-21 22:11

本文

  옆에 계신 복스러운 지체들을 이렇게 축복합시다.

  당신이 가진 꿈과 소망은,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주신 귀한 복입니다.
  그 꿈들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 안에서 유혹들을 이겨내시기 바랍니다.
  당신의 그 꿈들은 곧 이루어질 것입니다. 곧 이루어지기를 축복합니다.
 
  우리들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성경말씀, 혹은 책, 혹은 미디어 等을 통해, 남다른 위대한 삶을 살아간 사람들을 만나보게 됩니다.
  그런데 그런 분들을 보면, 그들에게 분명한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 모두가 보통사람과 다른 특별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깊은 생각하는 것을 참 싫어합니다.
  깊은 사색(思索)을 싫어하고, 그에 따른 기도를 싫어하니까,
  결국 자기도 잘 모르는 것들에 의해서, 질질 끌려 다니는 삶을 살고 맙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우리가 깊이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시간은, 기도 시간입니다.
  더구나, 기도는 단지 하나님께 우리 소원을 드리는 시간만은 아닙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동안, 성령 하나님은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주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동안,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께 구한 것 외에도,
  하나님은 엄청난 보물들을 주십니다.
  예를 들면, 좋은 아이디어, 해결방법, 새로운 꿈, 결심 등등 헤아릴 수 없는 많은 것들입니다.
  여러분 ! 이제부터는 기도의 색다른 맛도 느껴 보시기를 축복합니다.
 
  자 ! 지금부터는 오늘 본문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몇 해 전, 한국의 한 기독교 사이트에서,
 "성경 인물 중 가장 좋아하는 분은 누구입니까 ?"라는 조사를 했습니다. 누가 1등을 차지했을까요 ?
  우리도 한 번 해볼까요 ?
  자 ! 여러분은 누구를 가장 좋아합니까 ?
  혹은 누굴 닮고 싶습니까 ?
  위의 조사에서 1등을 차지한 분은, 우리가 잘 아는 다윗이었습니다.
  우리는 다윗을 신실한 믿음의 사람이며, 훌륭한 시인, 그리고 영감을 가진 연주가, 용맹한 장수,
  탁월한 리더십의 사람 등으로 기억합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다윗에 대해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윗이 이 모든 것을 다, 날 때부터 받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물론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으셨습니다. 인정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
  하나님께서 사람 각자마다 엄청난 차이가 나도록 지으셨을까요 ?
  그렇지 않습니다. 절대로 그럴리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다윗 아니라 그 이상의 천재성을 부여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다윗처럼 위대한 인물이 되느냐 되지 않느냐는,
  단지 우리의 자각 여부에 달려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새 왕을 세우기 위해,
  선지자 사무엘을 베들레헴 이새의 집으로 보내십니다.
  이새의 아들 중, 한 아들을 왕으로 세우기를 작정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이새에게는 여덟의 아들이 있었는데, 사무엘은 장남 엘리압을 보자마자'
  마음에 "아 ! 이 사람이군 !"하며 왕으로 세우려 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막으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본문7절,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人は目に映ることを見るが, 主は心によって見る.)
  그렇습니다. 이 말씀 속에 오늘 메시지의 핵심이 담겨있습니다.
  우리 主 하나님은 사람을 선택하실 때, 그 사람의 중심(마음)을 보신다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제목을 "自立도 이루어내고, 섬김도 힘쓰는 본향성도"라고 정했습니다.
  오늘 다윗을 통해 이 제목을 마음에 새기고자 합니다.
 
  보통 한 사회는 세 世代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먼저는 과거에 땀 흘려서 지금을 이룬 세대들입니다.
  우리들의 부모님 세대겠지요. 이 분들은 당연히 공경과 섬김의 대상이 됩니다.
  그 다음은 지금의 사회를 잘 유지하기 위해서 땀 흘리며 수고하는 세대입니다.
  바로 우리들입니다. 격려와 협력이 필요한 세대입니다.
  마지막으로 미래에 이 사회를 위해 땀 흘려야 할 세대입니다.
  이 세대는 단순히 나이로 미성년들을 말하지 않고, 어떤 모양으로든 미래를 책임질 사람들을 말합니다.
  투자와 양육의 대상이 되겠지요.
  이 세 세대가 서로 공경하고, 협력하고, 또 양육하고 투자해야만,
  그 사회는 더불어 온전히 성장하는, 共生의 성장을 이루게 됩니다.
 
  여러분 ! 하나님은 우리에게 귀중한 계명을 한 가지 주셨습니다.
  요한복음13: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가장 먼저 실천해야 할 모임을 주께서 직접 만드셨는데, 그것이 바로 이 교회입니다.
  위에서 사회의 예를 말씀드린 것처럼, 교회에도 세 세대가 존재합니다.
  기초를 쌓은 세대, 땀 흘리고 있는 세대, 지금부터 땀 흘릴 세대입니다.
  사회에서와 마찬가지로, 교회도 이 세 세대가 서로 공경하고 협력하고 투자하며 사랑해야 만
  그 교회는 더불어 자라날 수 있습니다.
 
  여러분 ! 우리들이 사회 속에서 각각의 역할을 발휘하며 共生하려면,
  첫째, 우선 사회의 규칙(법, rule, ル―ル)을 꼭 지켜야 합니다.
  룰은 사람들 사이의 약속입니다.
  그 약속을 어기면 '함께(共生) 하는 삶'은 멀어지는 것입니다.
  교통신호는 지켜야 하고, 소득이 있었으면 세금을 내야하며,
  그 나라에 살고 있으면 그 나라의 법을 지켜야 합니다.
  또한, 교회 안에도 룰이 있습니다.
  예배시간을 정했으면 그것을 지켜야 하고, 봉사하면 함께 해야 하며,
  무슨 행사를 준비했으면 힘껏 참여해야 하고,
  어떤 일에 힘을 모으기로 했으면 모두 같이 협력해야 합니다.
  그 룰을 지켜야, 모두가 더불어 사는 삶이라 할 수 있고,
  그래야 만이 진정한 공동체요, 형제 자매라고 서로를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 밖 사람은 물론이고 교인들 역시, 룰을 잘 안 지킵니다.
  더 안타까운 것은 교인들이 법을 안 지키는 수준은, 안 믿는 사람들 못지 않다는 것입니다.
  아니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습니다.
  과거 본향에서 함께 신앙 생활했던 분들의 미납(未納) 전화요금, 미납 의료보험비 독촉장이
  지금도 교회로 종종 날아옵니다.
  심지어 자동차 위반 범칙금 독촉장, 신용카드 未결재 독촉장도 옵니다.
  성도여러분, 이래서야 되겠습니까, 더불어 성장할 수 있겠냐 말입니다.
  더불어 성장키 위해서는, 공동체 룰을 지키는 것이 너무나 중요합니다.
 
  둘째, 더불어 성장하기 위해서는, 예절도 지켜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主 안에서 서로 한 형제 자매가 되었습니다.
  서로가 편한 사이가 되고 친한 사이가 되었습니다. 격식이 많이 없어졌습니다.
  그런데 그렇더라도 더 잘 지켜야 하는 것이 예절입니다.
  공생을 위해서 만들어진 타율적 규범이 법이라면,
  인간과 인간 사이의 자율적 규범은 바로 예절입니다.
  이것은 때로는 법보다도 더 소중합니다.
  우리 교회는 동방예의지국(東方禮義之國) 출신이 대부분인 교회입니다.
  어린 사람들이 손위의 사람들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가는, 이미 유치원 때 다 배운 사항입니다.
  또한 어른들이 손아래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 가도, 우리는 잘 알고있습니다.
  아무리 교회 안이라도 어른들에게 지켜야 할 예의가 있고,
  아무리 어린 사람들에게라도 함부로 대해서는 안될 예의가 있는 것입니다.
  더구나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예절도 중요하지만, 하나님께 대한 예절은 더더욱 중요합니다.
  예배 시간에 조는 것 결코 예의 있는 신앙인의 모습이 아닙니다.
  심지어 핸드폰, 스마트폰 조작하는 것 옳지 않습니다.
  아버지 하나님께 대한 예의를, 분명히 지켜야 합니다.
 
  셋째, 더불어 성장하기 위해서는, 때로는 물질도 드려야 합니다.
  내 것만 챙기면서, 더불어 살아간다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 앞뒤가 맞지 않음, 話がまったく理屈に合わないこ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가복음10장의 선한 사마리아人의 삶은 우리에게 큰 교훈을 줍니다.
  어떤 사람이 길에서 강도를 만나, 거반 죽게 되어 버려졌습니다.
  버려진 사람을 제사장이 보았는데 그냥 지나갔고,
  얼마 후 레위인도 그냥 지나갔는데,
  유대인들이 매우 업신여기는 사마리아 사람이, 버려진 사람을 발견하고,
  응급처치를 한 후 주막으로 데려갑니다.
  자기 갈 길을 하루 멈추고 그 강도 만난 사람을 간호해 주고, 다음 날 떠나면서
  주막 주인에게 비용까지 주면서 그 사람을 부탁합니다.
  만약 비용이 부족하면 돌아오는 길에 갚아 주겠다고 까지 합니다.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시면서 결론으로 하신 말씀이 무엇이었습니까 ?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누가복음10:37)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청지기입니다.
  모든 물질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물질 중에는 이웃을 위한 몫이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들의 물질은 결코 우리들만의 것이 아닙니다.
 
  넷째, 더불어 성장키 위해서는, 함께 한 자들을 마음에 품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마음 속에 과연 몇 명의 지체들을 사랑으로 품고 계십니까 ?
  그것을 손쉽게 아는 방법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기도하실 때, 자신과 가족 외에 누구를 위해 기도하는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기도해 주는 사람의 수가 바로 우리들이 사랑으로 품은 사람의 수입니다.
  그 숫자가 적을수록 우리들은 자기중심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우리들이 서로 하나되어 성장하기 위해서는,
  법(룰)을 지켜야 한다.
  예절을 지켜야 한다.
  물질을 드려야 한다.
  마음 속에 많은 지체들을 품어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 이러한 더불어 사는 삶을 이야기할 때,
  사실 머리로는 이해가 되고, 말로는 부르짖으면서도 실제로는 그것이 잘 안됩니다.
  예배시간도 늦지 않고 싶고, 어른을 공경하고, 또 베풀고도 싶고, 기도해 주고도 싶지만
  좀처럼 실제로는 잘 안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
  그것은 내가 아직 자립(自立)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할 수 없고,
  젖을 먹는 어린아이가 배고픈 사람에게 음식을 줄 수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들이 自立하기를 또한 성장하기를 촉구하는 것은, 성경의 중요한 가르침입니다.
  고린도전서13:11,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히브리서5:12, "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
  베드로전서2:2, "갓난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그렇습니다.
  내가 성장해야, 내 자신이 자립해야,
  비로소 법(룰)과 예절도 지킬 수 있고, 물질도 드릴 수 있으며, 지체를 품게도 됩니다.
  여러분 ! 우리의 여러 부분들을 성장시킵시다. 자립시킵시다.
 
  자 !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을 자립(自立)시켜 나가야 할까요 ?
  첫째, 경제적으로 자립하십시오.
  자립 없이는 언제나 기생(寄生, 남에게 붙어서 피해주는 삶)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제 일본생활17년 간, 많은 지체들을 보았습니다.
  그중 유학생들의 경우를 보면,
  자신이 힘껏 아르바이트하여 학비 내고, 생활비 벌고, 방 값도 해결하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 자신이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을 경우, 일본생활을 지속할 수 없기에,
  아무리 어려워도 인내하며 최선을 다합니다.
  그들 가운데 대부분은 성공적인 일본생활을 계속하든지,
  혹은 의미 있는 유학생활을 마치고 고향에 돌아가 성공적인 삶을 삽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비용을 부모에게 의지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들은 아르바이트도 최소한의 시간만 합니다.
  그것도 거의 자기의 용돈을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조금만 힘들만 관둬 버립니다. 끈기가 없습니다.
  결국 쉽게 유혹에 빠지고 맙니다.
  본향성도여러분 ! 경제적인 자립을 위해 힘쓰는 여러분들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여러분 !
  경제적 자립에는, 더욱 큰 의미가 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경제적 자립은,
  내게 지금 주어진 경제적 상황에, 나 자신을 맞출 줄 아는 능력을 말합니다.
  빌립보서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바울의 고백입니다.
  이 말씀은 결코, 하나님이 능력만 주시면 모든 것을 할 수 있게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이 말씀의 바로 앞 두절이 어떻게 되어 있느냐 하면,
  빌립보서4:11-12,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무슨 말씀입니까 ?
  자기는 부유해 보기도 해봤고, 가난해 보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그 모든 경제적 상황에, 자기 자신을 맞출 줄 아는, 비결을 터득했다는 겁니다.
  그랬더니 자기 자신이 주님 주시는 은혜 안에서 맞추어 살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경제상황보다 더 많은 것을 지출합니다.
  그리고는 "어떻게 되겠지"하며 남에게 기댑니다.
  부모에게, 형제에게, 친구에게 기댑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 사람들에게는 커다란 부담과 피해가 될 뿐입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
  수중에 가진 것이 없으면 못 견뎌 하지는 않습니까 ?
  혹 좀 더 편안하고 더 풍부하기 위해서,
  남의 것을 끌어들여서라도 여러분의 욕망을 채우려 하지는 않습니까 ?
  지금 경제적 상황에 여러분 자신을 맞추도록, 힘써 노력하시기를 바랍니다.
  본향성도여러분 !
  하나님의 주신 작은 복을 귀히 여기며, 그것을 누릴 줄 아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더 큰복을 주심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행동의 자립과, 사명의 자립을 이루십시오.
  내가 해야할 일은 내가 하고, 다른 사람의 손이 재차(再次) 가지 않게 하라는 것입니다.
  사실 이것이, 공동체가 하나가 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중 하나입니다.
  많은 경우 자기가 마땅히 할 일을 누군가가 해 주기를 바랍니다.
  결국은 자신이 감당치 못한 그 일 때문에, 다른 지체가 너무나 힘이 들게 됩니다.
 
  여러분 ! 우리들의 삶은 언제나 그 흔적과 자취를 남깁니다.
  그러므로 흔적을 깔끔하게 처리하는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행동의 자립입니다.
  우리 主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7:21, "나더러 주여 ! 주여 !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셋째, 자립 가운데 가장 차원 높고 우리들이 꼭 이루어야 할 자립이, 영적 자립입니다.
  예수님을 처음 알고, 교회에 처음 다니면, 그 사람은 영적으로 분명 어린아이와 같습니다.
  성장한 지체들이 그를 아기처럼 붙들어 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연약한 지체도 조금씩, 조금씩 홀로 서기를 시도해야 합니다.
  혼자 기도도 해보고, 말씀도 읽어보며, 찬송도 해보고,
  또 누가 전화하지 않아도 예배는 꼭 드릴 수 있기까지 성장해 나가야 합니다.
  어린아이가 태어나서 홀로 걷기까지는 분명 부모의 도움도, 가족의 도움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결국 걷는 것은 자기가 걷는 것입니다. 누가 대신 걸어 주지 않습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홀로 서기까지는, 우선 전도한 사람이, 또한 함께 한 지체들이, 또한 목사가 응원해 줍니다.
  성령께서 힘도 용기도 주십니다.
  그러나 홀로 서는 것은, 결국 자신이 해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에 오신지 얼만데, 아직도 누군가의 도움이 없으면 예배도 못 드리십니까 ?
  충분히 넘길 수 있는 시험인데, 그것 하나 못 이겨내고 그렇게 시험마다 빠지십니까 ?
  웬만한 시험거리는 힘껏 짓밟아 버리시고, 그 위에 우뚝 서시기를 축복합니다.
  예수님이 설교하시면서 자주 자주 하시는 말씀이 무엇이었습니까 ?
 "귀 있는 자들은 들으라"는 것이었습니다. 무슨 말씀이겠습니까 ?
  모든(어렵고 딱딱한) 말씀을 알아들을 수 있도록, 영적으로 자립하라는 말씀입니다.
 
  자 ! 이제 서론에서 말씀드렸던,
  하나님께서 보신 '다윗의 중심(中心, 마음)이야기'를 하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이제까지 드린 말씀을 다윗을 통해 적용하겠습니다.
  다윗은 외아들이 아니었습니다. 무려 일곱의 형이 있었습니다. 다윗은 여덟 아들 중 막내였습니다.
  그런 그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여러분 ! 그 이유가 어디 있었겠습니까 ?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하나님께서 다윗을 왕으로 삼기를 원하신 것은, 다윗의 중심(즉, 마음)에 커다란 이유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은 다윗의 중심(마음)에서 무엇을 보셨을까요 ?
  첫째, 다윗이 자립한 사람인 것을 보셨습니다.
  당시 다윗은 이미 자립한, 한 사람으로 우뚝 서있었습니다.
  일곱 형들이 사무엘 앞에 있을 때, 다윗은 홀로 들판에서 양떼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행동의 자립, 사명의 자립을 이루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
  보통 막내들에게는 막내기질(예를 들면, 어리광기질)이 있습니다.
  대개의 경우 극히 他人의존적입니다.
  특히 형제가 많을 때는 그것이 아주 심합니다.
  우리 본향의 역사 속에서도 막내들이 그 기질을 십분 발휘하여,
  여러 지체들을 난처한 상황에 빠지게 한 적이, 몇 번 있습니다.
  그런데 여덟 형제 중 막내인 다윗은 어떠했습니까 ?
 "나는 막내이기 때문에, 형들이 내게 뭔가를 해줘야 한다"는 마음을,
  다윗에게서는 좀처럼 찾아 볼 수 없습니다.
  그는 자립했습니다. 막내의 기질을 일찌감치 버렸던 것입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맞아 싸울 때도 누가 시켜서 한 것이 아닙니다. 자기가 자원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왕이었던 사울이, 부모의 마음으로 보니, 그 싸움은 너무 무모했습니다.
  그래서 다윗을 타이릅니다.
 "네 용기는 가상하다마는 상대는 블레셋의 최고 장수인 골리앗이다. 네가 상대하기엔 너무 벅찰 것 같다"
  그때 다윗이 무엇이라고 합니까 ?
  사무엘상17:34-35, "다윗이 ...... 말하되,
  주의 종이 아버지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 떼에서 새끼를 물어 가면,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죽였나이다"
  구약학자들의 의견에 따르면, 당시 다윗의 나이는 아무리 많아도 16세를 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이미 그 나이에 그에겐 행동의 자립, 사명의 자립이 있었습니다.
  행동과 사명의 자립을 이룬 사람 다윗은, 골리앗을 향해 나가면서 이렇게 외칩니다.
  사무엘상17:45,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무슨 말입니까 ?
  이미 그 때 다윗은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보호를 굳게 믿는 '영적 자립인(靈的 自立人)'이 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행동의 자립, 사명의 자립, 영적인 믿음의 자립이 다윗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었고,
  하나님은 바로 이것을 보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뿐이 아닙니다.
 
  둘째,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중심에서, 더불어 살고자 하는 공생의 마음도 보셨습니다.
  이스라엘과 블레셋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을 때, 다윗의 형들 셋이 그 전쟁에 참전합니다.
  전쟁이 시작 된 얼마 후, 아버지 이새가 다윗을 부릅니다.
  음식을 주면서 그것을 천부장(군대 장교)과 형들에게 갖다 주라고 심부름을 시킵니다.
  볶은 곡식 한 에바와 떡 열 덩이, 그리고 치즈 열 덩이라면, 그 무게는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닙니다.
  대충 계산해도 30kg이 넘습니다.
  더구나 다윗의 집과 전쟁터까지는 상당한 거리가 있었습니다.
  결코 16세 정도 된 다윗에게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이새 집에 여덟 아들 중에 세 아들이 전쟁에 나갔으면 다윗 빼고 몇 명의 형제들이 남습니까 ?
  그렇습니다, 넷이 남지요.
  그러면 이새는 왜 네 명의 형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막둥이인 다윗에게 그 일을 시켰겠습니까 ?
 
  그렇습니다. 아버지는 알았던 것입니다.
  다른 아들들은 투덜댈지 모르지만, 다윗은 그 심부름을 "はい !"하면서 순종할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아버지 이새에게, 다윗이라면 믿음이 갔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다윗의 마음에, 형들을 생각하는 공생의 마음이 있는 것을 안 것입니다.
  그 후의 일을 통해서도, 우리는 다윗의 더불어 사는 삶의 모습을 발견 할 수 있습니다.
  골리앗을 죽임으로 인해 인기가 높아진 다윗을, 사울 왕이 질투합니다.
  그래서 그를 죽이기로 작정하고 특공대 3000명을 조직해서 쫓습니다.
  그때부터 다윗은 10년 이상을 도망하여 다닙니다.
  다윗이 아둘람에 피신해 있을 때,
  그의 식구가 오고, 빚진 자 억울한 자들 사백 명이 다윗에게 몰려왔습니다. 거두어 달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 찾아 온 그들을 돌보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
  자기가 먹는 것을 줄여야 합니다.
  충분하게 먹고살던 수준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다윗은 그들을 기꺼이 맞아들였습니다.
  내 코가 석 자인데도,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함께 할 줄 알았다는 것입니다.
 
  또한 쫓기면서 두 번 사울을 죽일 기회가 있었지만,
  하나님의 기름 부으신 자를 자신이 죽일 수 없다 해서 살려 줍니다.
  하나님의 법(룰)도 지킬 줄 아는 인물이었습니다.
 
  결론의 말씀을 드립니다.
 
  형제가 여덟이나 됐지만, 그 중에서 왕으로 선택받은 사람은 막내 다윗이었습니다.
  팔 형제, 그들은 모두 룻의 증손자로서 다 하나님의 은총을 받은 자였지만,
  하나님께서 크게 높이신 사람은,
  다름 아닌 "自立도 이루어내고, 섬김도 힘쓰는 삶"을 살 줄 아는 다윗뿐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다윗의 삶은 자립과 섬김으로 든든하게 짜여져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바로 이 삶이 우리가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삶의 모습입니다.
  우리 역시, 中心을 보시는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본향성도여러분 !
  말씀을 마치면서 다시 한 번 여러분께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自立하는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경제적으로, 행동으로, 사명으로, 영적으로 자립하시기를 바랍니다.
  더 이상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기대려고 만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그 자립된 힘으로, 이웃과 진정한 하나 됨의 삶, 섬김의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내가 자립하지 못하면, 절대로 남을 도와 줄 수 없습니다.
  섬기는 데, 하나되게 하는 데 지치게 됩니다. 그래서 마음과 삶이 다르게 움직입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우선 경제적, 행동적, 사명적, 영적 자립을 이루십시오.
  거듭 말씀드립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홀로 서십시오.
  그리고 그 힘을 바탕으로 더불어 사십시오. 세워 주십시오. 섬기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삶은 달라질 것입니다.
  넘치도록 풍요로워지고, 이생에서도 천국의 풍요를 맛보게 될 것입니다.
  그 축복이 여러분 생애 내내 함께 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
 
  題目 : おお, 御神を譽め奉れ(찬송가615장)
  ① おお, 御神(みかみ)を譽(ほ)め奉(まつ)れ, 盡(つ)きぬ命, 與えんと,
     獨(ひと)り子をも惜(お)しみなく, 世人(よびと)の爲, 降(くだ)し給(たも)う,
     譽(ほ)めよ, 譽(ほ)めよ, 神の愛を, 歌え, 歌え, 主の御業(みわざ)を,
   その御業(みわざ)に現れし, 父なる神の惠みを.
  ② 主は贖(あがな)い成し遂(と)げて, 御名に賴る人 の
    罪は如何(いか)に深くとも, 赦(ゆる)し與え, 助け給(たも)う,
      譽(ほ)めよ, 譽(ほ)めよ, 神の愛を, 歌え, 歌え, 主の御業(みわざ)を,
   その御業(みわざ)に現れし, 父なる神の惠みを.
  ③ 實(げ)に尊(とうと)き御救いよ, いと奇(くす)しき御敎えよ
    類(たぐい)もなき喜びは, 再び主に見(まみ)ゆる日
      譽(ほ)めよ, 譽(ほ)めよ, 神の愛を, 歌え, 歌え, 主の御業(みわざ)を,
   その御業(みわざ)に現れし, 父なる神の惠み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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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7 2013 박성철 13750 13-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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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4 2013 박성철 13239 13-07-02
283 2013 박성철 12612 13-06-22
282 2013 박성철 14395 13-06-12
281 2013 박성철 11571 13-06-06
280 2013 박성철 12583 13-05-29
279 2013 박성철 12782 13-05-29
278 2013 박성철 14326 13-05-29
277 2013 박성철 12575 13-05-21
열람중 2013 박성철 11614 13-05-21
275 2013 박성철 12732 13-05-21
274 2013 박성철 12877 13-04-09
273 2013 박성철 11848 13-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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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0 2013 박성철 11899 13-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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